Kenooz 레스토랑서 기필코 저녁 한 끼 먹어볼라다가 오늘은 또 '오늘부터 내부수리'란다. 결국 벼르고 별렀던 대충야자

밀크 쉐이크는 맛도 못보고, 걍 오다가다 대추야자만 실컷 따먹었다. 어찌나 달콤한지 나중에 배가 아릴 정도..

Shali에 올라 석양을 보려는데, 앞에서 파블로와 마르코가 내려온다. 이미 끝났대나..그래도 정상에서 벌겋게 불붙은

하늘을 보며 시와의 마지막 해를 잔뜩 감상해줬다. 생각해 보면, 아침에 일어나 해뜨는 것보고 미친 것처럼 사막으로
 
내달려 하염없이 사막을 바라보다가, 저녁이면 해지는 것 보고 별 총총한 하늘을 원없이 구경하다가 자고.

요새 계속 그런 식이다. 그렇다고 전혀 식상해질 줄 모르는 이런 스케줄..언제 또 가능할지.

샤워하고 버스를 탔는데 얼마 못가 차가 '퍼졌다'. 고친다고 운전사가 꾸물꾸물 움직거리는 새 버스 앞 아스팔트 도로에

누워 어젯밤만큼 멋진 밤하늘을 뚫어져라, 눈깜빡이는 것도 아까워하며 바라보았다. 별똥별은 역시 그냥 떨어져라,

냅뒀다. 눈에 담아가고, 마음에 담아가고, 넘칠 만큼 길어가고 싶은 이미지와 감흥과 감각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시와는.


차가 고장나서 한 30여분 아스팔트 바닥에 대자로 누워 칠흑같은 밤에 한가득 펼쳐진 별들을 잔뜩 바라본 거 빼고는,

좀체 정신을 못차리고 잠만 집요하게 청하고 만 밤 버스여행이었다. 문득 잠이 깨서 눈뜨니 왠 생경한 버스 터미널,

알렉산드리아란다. 6시 20분. 바다내음과 잔망스러운 모기떼들을 보면 알렉산드리아 같기는 한데, 사람들 표정이나

공기가 영 낯설다. 굳은 표정과 어수선하고 차가운 공기. 시와의 분위기나 호흡에 꽤나 익숙해져 있었던 게다.

그래도 친절한 아저씨 한분이 시디가베르 정류장 근처 내가 가려던 호텔까지 안내해 주어 금방 체크인할 수 있었다.

체크인하고 샤워 한번 하고는 바로 나와서, 포트 콰이트베이. 등대의 모습은 찾을 길 없고 그저 귀여운 외양의 요새만

서 있는데, 무엇보다 다시 혼자가 되어 사진찍어줄 사람도 없어지고 얘기할 사람도 없어졌단 게 좀 아쉬웠다. 그런 거다.

누군가에게 등을 보여주고 등을 보고..그렇게 나란히 서는 것. '드래곤 라자'의 후치처럼 그렇게 등을 보여주는 사람을

왕이라 생각지는 않더라도.

이제 어디로 가볼까. 생각해보면 은근히 빡시게도 여기까지 왔다. 좀 쉬엄쉬엄, 오늘은 그렇게 한 호흡 골라낼 생각인데

또 모르겠다. 트램을 한번 갈아타고 '폼페이의 기둥'을 봤다. 날 일본인이라 오해한 이집션이 일본어 한번 실습해 보려고
 
말을 걸었다가 함께 도서관이랑 기둥이랑, 사진도 번갈아 찍어주고, 근데 막상 또 한명이 생기니 불편하다. 해서 먼저

보내고, 혼자 카타콤을 향했다. 일종의 지하 공동묘지랄까, 죽음의 냄새가 짙게 서린 곳.

일본인 집단1과 프랑스 패키지집단2가 계속 앞길을 가로막아서 아예 확 뒤처져 유유히 돌아볼 생각도 했지만,

내부가 워낙 공포물스러웠던지라. 시와에서처럼 미라 한두어구 있었더라면 정말 식은땀이 흘렀을 게다.

지상으로 다시 나오니 폭싹 지쳐버렸다. 마땅히 걸을 거리도 아니고 해서, 택시 잡고 7EP 부르는 걸 4EP로 깍았다.

방금 점심삼아 먹었던 망고주스-거의 중독수준으로 마시고 있다..-랑 꿀 들어있는 빵 값이 빠진 셈이라고 어찌나

기쁘던지.ㅡㅡ; 아저씨가 영어를 잘 못하는데, 대우/현대차 지나갈 때마다 알려주며 한국좋다고 그러길래, 나도 이집트

좋다고, 멋지다고 엄지손가락을 쭉쭉 뻗어줬다. 그레코로망박물관. 로마식의 유물은 터키서도 많이 봤었지만, 마치

카타콤에서 봤던 아누비스가 로마틱한 옷을 입고 있었듯이 조금씩 융합된 유물들을 감별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던 듯.

이집트 유적도 그렇고.

지중해 도시로 이집트의 대체적인 분위기와 상당히 이질적인 알렉산드리아마저 모스크와 미나렛들은 빼곡했다. 그중에

이 사원은, 중세까지의 황금기를 거치고 이민족들의 지배를 몇백년간 받음서 황폐해진 이집트에서 근대에 들어와 다시금

피워낸 이슬람 건축문화의 백미라고 하던가. 어찌보면, 고대 이집트에서 탑처럼 세워낸 오벨리스크는 미나렛에 상응하고,

히에라글리프(상형문자)를 빼곡히 채워낸 건물 벽면은 모스크에 잔뜩 새겨진 코란문구와 아랍어에 상응하고...그런

식으로 꾸며내는 방식을 이어온 듯하다. 물론 그 내용은 고대 이집트 문명과 이슬람 문명으로 판이하게 달랐다지만,

그걸 담아내는 그릇, 그것을 위한 상상력은 역시나 역사적인 맥락을 이어왔단 추측..어쨌거나 우리나라에도 이런 멋진

모스크가 잔뜩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막판에는 시든 풀처럼 지쳐서 아무생각없이 숙소로 돌아와 샤워하고 잠들어 버렸다. 한 세시간쯤. 그러고 보니 여태껏 푹

낮잠을 자본 게 시와의 야자수 정원에 묶여있던 해먹에서 한번뿐이었다. 생각보다 강행군이었는지도. 자고 일어나 모처럼

-무려 나흘만에-돈 계산을 해볼까 하고 다 뒤적여 꺼냈더니 복대 안의 달러가 모자란다. 최근에 정산해 본 이래로 여행자

수표(T/C) 한장 환전한 것밖에는 없는데, 허리 쌕은 잘 때도 껴안고 잤는데, 떼어놓은 적이라곤...언제지...? 어디서, 누가
 
그랬을지, 누가 그랬을 가능성이 있는지 생각해 보기도 싫다. 여태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좋은 기억들만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내가 어디에서 흘린 게다.


저녁 한끼 덜먹고 돈 덜 쓴다고 복구될 것도 아니고, 걍 지금까지처럼 크게 구애받지 않는 선에서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근데 결국 저녁은 1.5EP(300원짜리) 망고주스랑 1EP(200원짜리) 펠라페. 윽..내 나흘치 노가다 일당.


어딜 가나 말을 걸어주고 친구라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 포트 콰이트베이에서나, 폼페이의 기둥에서나, 그레코로망

박물관에서조차. 때론 무지 고맙고 재미있고 그런데, 때론 내가 혼자 조용히 다이어리를 정리하거나 론리플래넷을 뒤적일

여지조차 치고 들어온다는 사실에 짜증이 살짝 일 때도 있다. 여행자 수준의 영어를 되풀이하며, 도식적이라 할 만한

자기 소개와 인사말을 건넨 후 이집트 좋은지, 이 지역 좋은지 계속 물어보는 그들.


여행, 확실히 친구랑도 젤 마지막에 해야한다는 이벤트인 건 확실하지 싶다. 그래도 여기서 만난 사람들하고 이렇게

저렇게 서로 맞춰가면서 말을 섞는 것도 나쁘진 않다. 다만 정말 계속 붙어다닐 수 있는 한 명 정도 있으면 훨씬

좋겠단 생각도 들지만. 참, 파블로와 마르코를 또다시 알렉산드리아 거리에서 조우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그들 남매에게 펄쩍 안기듯 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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