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몇 번씩 깨어서 남은 포도 마저 먹고, 모기향도 다시 갈아줄 정도로 잠을 뒤척였다. 5시반쯤에 인나서 6시에 떠나는

투어를 준비하고 보니 일행 두 명이 슬며시 로비로 나온다. 체코인 파블로와 마르코, 처음엔 걍 몇 마디 주고받는 선에서

그치고, 이제 드디어 직접 밟을 수 있었던 사막에서의 일출을 감상하는데 집중..

사막은 생각했던만큼이나 굉장했는데 그 깨끗함이나 우아함, 그리고 순수함이랄까. 오로지 모래만으로 언덕을 이루고,

골짜기를 이루고 벌판이 되고. 게다가 그 고아하고 부드러운, 때로는 비현실적일만큼 아름답고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실루엣이라니. 아무리 보아도 성에 차지 않아, 결국 신발도 벗고 언덕에서 구르기도 하고, 전력으로 달리기도 해보고,

여태 바닷가에서도 제대로 해본 기억이 없는 모래찜질을 순식간에 해치우기도 하고. 그렇게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조금씩 사막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샌드보드. 사막에서 타는 보드는 정말 그럴 듯했다. 어찌나 재미나던지, 점점 경사가 급한 곳을 찾아서는

거침없이 내달려주고, 다시 헉헉거리며 보드를 들고 올라서는 또 순식간에 훅~ 달려주고. 휘영청 만곡한 듄을

타고 달리는데 몇 번을 타도 질리지가 않을 정도..결국 내가 급경사를 타고 내려오던 중 쫄아서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보드 발걸이를 뿌셔먹고서야 어쩔 수 없이 보드에서 내렸다.

그렇게 사막과의 첫대면을 질펀하게 해주시고, 핫스프링이랑 콜드스프링, 솔트레이크-온천, 냉천, 그리고 소금호수..

라고 바꿔 말하면 되려나-를 향했다. 내가 생각했던 그런 이상적인 오아시스, 뭐랄까 손바닥만한 맑은 호수 주위를

추욱추욱 늘어진 초록빛 싱그런 야자수들이 뺑글하게 둘러싸고 있고, 야자가 툭툭 떨어지는 짙은 그늘 아래엔 왠지

파라솔이나 해먹이 매어져 있을 법한 그림과는 영 달랐다. 내가 그리던 맑고 깨끗하기 짝이 없는 그림이 워낙

만화적이란 건 알고 있었는데도 깜짝 놀랐다.


이미 넓게 펼쳐진 야자수숲 가운데쯤 엉성한 풀장 같은 게 있다. 이끼가 잔뜩 끼고 물고기도 잔뜩 사는..깊이도

무지하게 깊어 보이는 짙은 푸른색의 물. 여행을 떠나기 전 '물가를 멀리 하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는

엄마의 얘기를 되새기며 혹시 어젯밤 꿈이 더러웠던가 잠시 상기했다. 겨우 물에 들어갈 엄두를 냈던 건, 간밤에
 
꿈을 꾼 기억이 없었던 데다가, 이미 들어가서 유유히 놀고 있는 체코 친구들한테 꿀려보이기도 싫었고, 워낙

덥기도 했으며(이미 난 피부 때깔이 달라져 있었다..8월의 이집트란..), 그렇게 깊은 데를 여태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는 자각도 한 몫했다.

다이빙, 발이 닿지 않는다. 허부적대다가 오아시스의 가장자리를 테두리지어둔 바위에 겨우 의지하고, 다시 다이빙.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물에 대한 공포가 많이 사그라들었다. 도무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퍼런 물의

심연이나 문득문득 팔다리에 스치는 이끼의 매끈하고 섬뜩한 느낌도 조금은 익숙해졌다 싶어서, 살짝살짝 수영해

나가는 거리를 높여가다가 결국 오아시스 횡단 성공. 힘이 빠져 중간에 퍼뜩 죽음을 떠올리기도 하였으나, 그래도

신났다. 파블로와 마르코가 사륜구동 차위에 올라 오아시스로 다이빙하는 모습을 보고 불끈, 나도 버둥버둥 차에

기어오르긴 했으나...차마 뛸 용기는 안 생겨서 패스. 사진만 찍어달라고 하고는 쪼르르 내려와버렸다.

그렇게 두어시간 놀다가 점심먹고 걸어간 곳이 소금호수. 팬티를 콜드스프링에서 벗어놓고 말린 참이라 바지를

입고 들어갈 수 밖에 없었지만, 바닥에 잔뜩 형성된 소금결정들이 가시처럼 온통 꽂히고 박히는 통에 차라리 

바지차림이 나았던 듯 하다. 절로 몸이 둥둥 뜨는 게 물장구치려는 몸짓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곳의

물이 피부에 좋다는 이야기에 나름대로 열심히 세수도 하고 몸도 여러차례 앞뒤로 뒤집어 주고. 

핫스프링은 그냥, 온천물같았다. 거기서조차 이끼가 잔뜩 끼고 하도 더러워보여서 발만 좀 담가보고 세수 한번

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콜드스프링에 가서, 소금 가시들이 잔뜩 박혀있는 바지도 빨 겸 열심히 놀다가

호텔로 돌아와 휴식. 밤에는 사막에서 자며 별을 보기로 했는지라, 좀 자두는 만치 오늘밤 사막에서 별을 더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다시 출발해서 템플 오브 오라클, 아문, 그리고 클레오파트라의 연못까지. 생각보다 좀 다 별로였다. 아무래도

문명 세계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인지라 붕괴되기 전의 유적들도 좀 급이 낮은 것들 아니었을까. 클레오파트라의

연못은 잠깐 클레오파트라가 쉬었다 갔다던가...뭐 그래서 붙은 이름이라니 말 다했다. 그치만 역시 사막에서 

듄에 올라 바라본 석양이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다.  

사막에서 언덕을 오르내리고 초승달처럼 잔뜩 휘어진 언덕 아래 자리를 깔고 생선이랑 빵, 밥이랑 해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 그리고 그보다 빠르게 날아와 박히는 별, 별, 별들. 그렇게

많은 별들은 여태 본 적이 없었다. 은하수란 게 저토록 선명하리라곤. 우윳길, 혹은 젖길이라고 불리웠다던

과거의 이름이 왜 붙게 되었는지 실감했을 정도로, 그렇게 이쁜 줄은 몰랐다. 안내인 알리와 압둘라를 비롯한

우리 일행들은 한국어, 체코어와 아랍어 등 저마다의 언어로 말하다가 영어로 말하다가.

별구경하며 사막의 밤을 보내면 은근히 엄습하리라 예상했던 괜시리 센치한 고민 따위로 다운될 여지조차 없었다.

완벽한 항복. 완전한 충일감. 쉼없이 떨어져내리는 별똥별 역시, 넌 떨어져라 난 즐길란다. 딱히 빌 소원조차 없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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