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조상신과 헤르메스-여행자를 돌본다는-의 도움으로, 문득 6시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시계는 한개도 못 들었지만,

덕분에 아침도 먹고 샤워도 하고 일정도 점검하고 여유있게 택시를 탔다. 어제 그토록 찾기 힘들었던 투르고만 가리지와

부스를 쉽게 찾아 시와로 출발. 마루사 마투르와(Marsa Matru)에서 12시쯤 내려 점심으로 펠라페를 먹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1시반에 다시 출발.
 
여행자의 행색은 나와, 터키서 말을 섞었던 형님 한분밖에 없어서 살짝 비즈와히르 사막투어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보다 끝없이 황량한 지평선과 그야말로 먼지같이 뿌옇기만 한 풍경에 지쳐 꼬박꼬박 졸아버리고

말았다. 카이로에서 마루사 마투르와까진 5시간, 거기서 시와까지는 4시간을 더 가야 했다.

그리고 시와. 갑작스레 푸른 빛깔이 눈앞에 점점이 나타나더니 커다란 마을이 되어 불쑥 눈안에 차고 들어왔다. 흙은

여전히 물기 하나없이 풀풀 날리는 먼지같건만, 야자수가 더불어 숲이 되니 이런 오아시스가 생겨났다. 아마 생겨난 

순서는 반대로 오아시스가 있어 더불어 숲이 이루어진 거겠지만. 사막이 저멀리 보인다. 여우를 볼 수 있을까.

죽은 자의 산, 이곳에 미이라가 네 구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산 사이의 크레바스처럼 갈라진 틈에 고이 모셔져

있는, 바싹 마른 사자(死者). 그들의 죽음은 무섭다기보다는 왠지 처연했달까. 완전히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기보다

껍데기만 남아 왜소하고 볼품없이 말라 비틀어진..

석양을 산위에서 맞이하기로 하고 조용히 앉아 기다렸다. 메마른 바람이, 그 꺼칠함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몸을

휘감았고,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서 조금 떨어진 사막의 모래 사각이는 소리가 들리는 환상에 빠졌다.

이 한가로움과 유유함. 시끄럽고 정신없는 카이로에서 내가 정말 바라던, 그리고 여행이 어느덧 이주가 넘어가면서

살짝 지친 내게 꼭 필요한 그런 거였다.

저녁으로 지방음식 중 삭슈가인가, 발음도 제대로 안 되던 그런 신기한 걸 먹었는데, 음식이란 게 상상력만으론 닿기 힘든

그런 영역인 거 같다. 이름만 가지고서는 예상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설명을 듣고도 도무지 어떤 음식인지 상상해내기가

힘드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먹어치우고, 모처럼 간만에 배부르게 먹고, 물담배 시샤(seesha)를 한 대 피워올리며

포도 1킬로를 사서 나눠먹었다.


시샤가 생각보다 셌던 건지, 아님 내가 연기를 지나치게 몸안에서 많이 돌려버린 건지, 한국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문득 보였다. 마침 지나가던 당나귀를 붙잡고 장난을 치다가 사진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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