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쯤 이집트공항에 떨어졌는데, 그새 친해진 일행 넷이 모두 여권 정밀검사에 걸리고 말았다. 한참 기다리다가 3시쯤

공항을 나와서 그 중 길동무가 된 친구 하나와 택시를 잡았다. 그는 애초 내가 가려던 호텔이 아닌 다른 호텔을 고집했고,

별생각없이 난 그저 시나브로 시작된 이집션들의 바가지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일단 그의 의견을 따랐다. 문제가 시작...

방이 없댄다. 옆의 가깝다는 호텔을 알아봐줬는데, 길도 알려줬는데, 반대길로 내가 앞장서버렸고, 거기서부터 2시간

가까이의 개삽질을 해야 했다. 완전히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더구나 현재좌표조차 부유하는 상황에서 경찰서를 찾아

도움을 청했지만, 영어 한마디 소통이 불가능했다.


6시에야 무지 비싼 곳의 더블룸을 잡을 수 있었다. (사실 애초 묵고 싶었던 곳은 하루에 15EP, 우리가 묵었던 곳은 30EP,

가격은 두배지만..그래봐야 6000원 안짝?) 한밤중 새벽녘의 카이로란 거. 이제 아무리 혼자 헤매도 해가 말간 낮이기만

하면 걱정따위 안 할 거 같다. 줄창 자버릴 줄 알았는데 9시전에 일어나서 아침먹고 밖에 나섰다. 세상에.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카이로의 무질서함과 대혼란스러움인가 싶었다.

폭주하는 차들, 가만 보면 어디 하나 성한 구석없어 사이드미러가 없거나 범퍼가 찌부러졌거나, 녹이 벌겋게 슨 차들은
 
마치 수다떨듯 클랙션을 두들겨대고 있었다. 재미삼아 합주해내는 클랙션의 무아지경과 도처에서 밟히는 브레이크의

굉음, 게다가 온전한 차 찾기가 힘들 정도로 광폭한 운전자들이라니...이러니 누군가 이집트 여행을 왔다가 식겁해서

공항으로 바로 돌아가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는 일화까지 전해지지. 신호등도 변변찮은 이곳의 도로는..극한의 무단횡단

신공을 요구했다.

사실 약간 질리긴 했다. 좀 이 정신없고 공격적인 도시를 벗어나 여행도 추스리고 쉴 필요도 있을 거 같아 우선 내일은

이집트 서쪽에 외떨어진 오아시스 마을 시와(Siwa)로 뜨기로 했다. 힘겹게 환전을 하고, 쿠샤리로 배를 채우고.

ⓒ 위키피디아.
'
쿠샤리'란 흔히 "저 이집트 가서 쿠사리먹고 왔어요"할 때의 그 쿠사리다. 이집트의 전통적인 음식인데, 쌀, 콩, 마카로니,

국수 등을 토마토 소스와 버무려 나오는 음식이랄까. '쿠샤리'라는 뜻 자체도 모든 걸 섞어 만든다는 뜻이라고 한다.

좀 거칠게 만들어진 파스타랄까, 그치만 콩이나 쌀 덕분에 파스타보다도 되려 씹는 맛은 좋았다.
 
그리곤 다시 나와서 이슬람 카이로지구를 방황하고 있다. 어느 모스크에서 아잔을 틀었던 성직자 할배가 미나렛을

열어주곤 박시쉬를 달라는 게 아닌가. 그것도 20EP나. 박시쉬란 일종의 팁을 말하는 거고, 이집트는 이런 식의 

팁문화가 일반적이라곤 해도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터무니없는 요구가 그침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방금

먹었던 쿠샤리가 1.75EP, 호텔 하루 방값이 20EP였다는 걸 감안하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뻔뻔스러움이다.

물론 10$를 환전해서 62EP정도를 만들었던 당시 환율을 따지자면 '고작'...얼만고, 4,500원 정도? 그정도긴 하지만

현지 물가를 감안컨대 이건 아니다. 더구나 여행경비는 내가 군대 휴가나와서는 꼬박꼬박 노가다를 뛰며 모은,

못도 밟아가며 모은 피같은 돈이란 말이다.(심지어 빠듯한..ㅡㅡ;)

그래서 말했다. 이봐, 그러지 말고 5EP 줄테니 이곳에서 내 사진이나 찍어주지 않겠나. 결국 10EP로 낙찰. 그럴 줄 알았음

처음에 미나렛 열어준다며 앞장설 때 그렇게 좋아하고 고마워하진 않았어도 되는 건데, 어쨌든 전망이 꽤나 좋았으니.

서울 야경을 뻘겅십자가가 점령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여긴 모스크의 미나렛이 천지삐까리다. 저 꼭대기에서 한꺼번에

시간맞추어 아잔소리를 틀어댄다고 생각하니 공기조차 달라보인다. 제각기 다른 실루엣을 띈 미나렛들.

이집트 여행을 시작하며 내 자세부터 결정해야 했다. 사람을 안 믿어야 한다..기엔 오버스럽고, 친절을 베풀려 하는

사람에겐 박시쉬줘야 하는 건지부터 물어야 하는 건지 원. 공항에선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휴지걸이 쪽으로 가는데,

왠 아저씨가 잽싸게 휴지마디를 끊어 건네길래 엉겁결에 받았더니 박시쉬 달라고 손내미는 통에 깜짝 놀라 도망치는

일도 있었단 말이다.

그냥, 무난한 선에서 그때그때 눙치며 넘어가기로 했다. 박시쉬가 이들에겐 자연스러운 문화라니 기겁할 일도 아닌 거고.

그런데 조금 후에 만난 구두닦이 녀석은 정말 착했다. 나 혼자 빵조각 우물거리며 앉아 쉬는 걸 보더니, 자기가 싸온 거

같이 먹자며 집에서 싸온 양념통들을 꺼낸다. 호오...토마토소스가 정말 맛있어서, 유쾌하게 다 먹어버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친구들이라며 뒤늦게 합류한 목걸이 파는 애, 음료수 파는 애들이 오길래 인사도 하고, 사진 찍어달라고

카메라를 내밀었더니 신나서 자기들끼리 서로 난사하듯 마구 찍어버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쉽게 헤어지고, 알-아자르(Al-Azar)모스크가서 세개의 미나렛을 보며 즐기다가 이왕 온거 밥-주웨일라

(Bob-zuweila)까지 보자 하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일어났다. 어쩌면 이런 식으로 과거의 것들을 현재에까지 여전한

방식으로 활용하며 공존하는 게 진짜 그 '유물'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일지 모른다.

좀 변두리 지역서는 카메라를 들고 신기한 듯 건물들을 돌아보는 내가 무진장 이상스러운 사람처럼 의아한 눈총을

받기도 했다. 피샤위 커피숍서 물담배 한대 피워올리려다가, 워낙 현지의 이집션들밖에 없어서 왠지 살짝 소심해져서

포기, 대신 망고주스가 얼마나 맛있는 건지 깨우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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