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카이로에 가서 시타델을 보고선 기자 피라밋을 보러 갈 생각이었다. 으레 그렇듯 이슬람 카이로에 갔다가 길을

잃고 잔뜩 헤매다 보니, 어느 순간 무너져가는 건물들, 구정물이 흐르는 도로에 마구 폐차가 쌓여있는 할렘같은 도로변..

그런 풍경 속에 서있었다. 말하자면 카이로의 달동네랄까, 도시가 과잉팽창하면서 외곽에 생겼을 슬럼지역인 게다.

때가 꼬질한 아이들은 웽웽대는 파리떼를 몰고선 벌거벗고 내 주위를 맴돌았고, 어른들은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눈빛을 아끼지 않았다.


한참 당황해서 골목을 헤집다 보니 겨우 기자 피라밋으로 향하는 버스를 찾을 수 있었고, 시간상 레이저쇼를 보기에 딱

좋겠다 싶었다. 피라밋을 멀찌감치서 처음 보니 문득 가슴뛰는 것이 오늘 하루 뺑이치고 삽질하고 바가지쓰고 불쾌했던

것들이 싹 잊혀지는 느낌이다. 바로 옆 레스토랑 이층에 자리잡고 피라밋을 구경하자니, 왠지 사막하고 닮았단 느낌.

오천년 가까운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 커다란 '산'을 자연처럼 완성시켜놓았달까. 애초 매끈하게 표면을 덮었을 

라임색 마감석들이 모두 벗겨지고 밑엣돌들이 드러나되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무질서한 듯 무너져내려가는 듯

보이면서도 전체로 보면 아주아주 그럴듯한. 오천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인력으론 도저히 따라하기 힘들 그

어떤 경지, 그런 경지에 오른 느낌이다.


잔뜩 보고 있다가, 해가 지고 기다리던 레이져쇼를 할 시간이 되었다. 알고 보니 조명이 내가 자리잡은 곳 반대편인지라

다시 그쪽으로 향했다. 좀 피곤하긴 했지만, 피라밋은 왠지 사방의 여러 각도에서 여러 차례 바라보며 머릿속에 꾹꾹

눌러담아야 할 것 같아 피곤함과 지침을 무릅쓰고 반대편으로 걸었다. 다행히 중간에 착한 아저씨들이 차를 태워주어서

쉽게 도착, 비록 우락부락한 털복숭이 아저씨 셋만 타고 있던 차여서 조금 경계를 하긴 했지만.


반대편에서 본 피라밋과 스핑크스도 물론 조망은 좋았지만, 역시 안에 들어가서 보는 것만은 못하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애초 레이져쇼는 44EP를 내고 입장해서 구경하는 건데 내가 듣기론 굳이 입장하지 않고 밖에서 봐도 충분히 괜찮더란

얘기. 색색의 조명이 밝혀진 세 개의 피라밋과 스핑크스가 달하나 점처럼 박힌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버티고 선 풍경.

생각했던 것처럼 레이져나 조명이 하늘에 선을 긋고 그러는 건 아니었지만, 담백한 조명아래 드러난 피라밋의 그

연륜있는 모습이 그 자체로 두드러졌던 것 같다.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전부 어둠에 먹혀서 아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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