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기차,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 13시간을 달렸다. 내가 앉은 좌석에 또다른 티켓이 발부되어 잠시 소란이 이는 등

영 못 미더운 이집트 기차의 저질 서비스를 실감하고 내리 자다가, 꽉꽉 들이찼던 사람들이 많이 빠진 한적한 찻칸에

동그마니 남았다. 아침 6시밖에 안 되었는데, 유리창 너머 햇살이..느낌일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남으로 내려갈수록

심상찮다. 입으로 이글이글 소리를 내면서 내리쬔다는 느낌?


불쑥 승무원 아저씨가 객실에 들어오더니 통로바닥에 깔린 카펫이 깨끗하다고 막 자랑을 늘어놓는다. 어이없게도

그러고 나서 박시쉬 달라고. 기차 카펫 깨끗하니 팁달라는 건 대체 무슨 경우냐. 하이 머니 헬로우 머니 어쩌구 하는

아이들도 적나라한 사례였다. 뭐랄까, 그들의 생업 자체가 관광객에 달려있어서, 아직 그다지 세련화하지는 못한

-서비스 정신으로 치장되지 못한-fight for money가 더욱 두드러진다고 느꼈다.

숙소를 잡자마자 나섰다. 정처없이 아스완 시내구경 좀 하다가, 이집트 남단의 원주민이라는 누비안족의 문화나 유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엘레펀트 아일랜드에 들어가기로 했다. 20파운드(2000원)이라는 관광객요금을 요구하는 페리호
 
선장을 쌩까고 1파운드(200원)의 현지인요금만 내고 건너간 그 섬에서, 플라스틱 물병을 소중히 간직한채 5시간여 거닐며

온갖것을 볼라다가 일사병 걸리는 줄 알았더랬다. 그 조그마한 섬에서도 길을 잃고 헤매던 내게 자신의 짐을 들리시곤,

자신의 집방향과 같은 곳에 있던 누비안박물관을 안내해 주셨던 순박한 아저씨, 들고 갔던 2리터짜리 물병을 다 비우고

탈진해가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뜨신 차이를 나눠줬던 맘좋은 아저씨..들 덕분에 살아돌아나왔달까.

햇빛 가릴 한 줌의 그늘이 아쉬워질 정도의 열기, 눈알이 화끈거리며 말라붙는 듯하던 그 열풍이라니. 물통 역시

금세 끓어오를 듯이 뜨거워져서는 물이 이미 미지근함을 넘어서버린지 오래였다. 박물관에선 그래도 손님이 나밖에

없어서 그랬는지 관리인이 따라다니며 불켜줬다가 다시 끄고 설명도 해주고 차도 함께 마시고 그랬다.

펠루카와 엘레판트 아일랜드. 강에 내려앉은 나비떼 같은 저 하얀 돛단배들이 바로 펠루카. 무동력범선이랄까.

오로지 돛의 힘으로 움직인다는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갈 때는 노를 쓰고. 그치만 갈수록 모터도 다는 추세인 거

같았다, 펠루카 선장들과의 인터뷰 결과 노질이 너무 힘들어서 모터를 다는 거라나. 아스완은 수단과의 경계에

가장 근접한 도시인지라, 내가 내려간 최남단의 도시이기도 했다. 아부심벨은 물론 여기서 한 160킬로 더 남단에

있었고. 무진장 더웠다. 하루에 1.5리터 펫병을 네개까지 먹을 정도였으니...에어콘은 커녕 선풍기조차 천장에 붙은

크다란 팬밖에 없는 숙소는 그저 밤에 잠잘때만 들어갔고, 나머지 시간은 저 유유한 나일강의 유유한 펠루카를

바라보며 유유하고자 했다.

 펠루카와 나일강..은 참 잘 어울린다. 한강에는...거북선이 어울릴라나. 뜬금없이 한강도 보고 싶어졌다.

어딜가나 박시시(일종의 팁)을 요구하는 이집트인들, 오죽하면 카이로공항에 첨 떨어져서 화장실을 이용할 때
 
휴지 빼주고 건조기 버튼눌러주고는 팁을 요구할까..어딜가나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내가 자발적으로 박시시를

줘야겠다고 맘먹은 아저씨, 너무도 더운 아스완에서 그것도 2시에서 3시쯤에, 아스완 서안에 있는 tombs of

nobles를 안내해가며 다니는데 할아버지가 넘 힘들어하는 거다. 내 욕심같아선 몇개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나도 지쳤고 물도 떨어졌고 해서 걍 만족하고 내려오는 길. 이미 볼만치 봤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덤들의 열쇠를 가진 할아버지는 내가 보자고 하는 무덤에 앞장서 도착해 문을 열어줬고, 내가 보고 나온 무덤을

다시 잠그고는 서둘러 앞장섰더랬다. 무덤들은, 비슷하게 정형화된 양식인 듯 했지만, 그 안에 온통 가득한

히에라글립스(상형문자)들과 그림들은 정말 볼 만 했다. 단순히 치장이나 배경이 아니라 죽은 자의 일생을

세세히 새겨넣어 후생을 기하려는, 그런 어떤 의지가 강렬하게 와닿을 정도로,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의지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내게 등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을 앞세우는 것은 살짝 안심스런 일이기도 하다. 그 사람에 대한 신뢰와 호의가 쌓여

무언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사이라면, 난 그사람이 쥐여준 끈을 잡고 길을 인도받는 셈이다. 누군가에게

등을 보이고, 누군가에게서 등을 빌리고. 그 길이 비록 뜨끈뜨끈한 모래바람이 휘몰아친대도, 태양이 아무리

녹여내릴 듯 작열한대도.(저 짙은 그늘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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