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를 떠난 비행기가 리야드에 도착할 무렵이 되자 창밖 풍경이 언뜻언뜻 보인다. 온통 누렇고도 붉은 기가

감도는 모래벌판인데, 네모난 건물들이 보이고 모래벽을 쌓아 자신의 앞마당을 구획지은 듯 하다. 왜 선사시대의

집터를 발굴해 놨다는 곳에서 저런 식으로 복원된 흙벽이 꼬불대며 이어지고 있는 거랑 비슷해 보인다.

모랫판 위에다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린 걸까. 그런 선사시대 집터 복원현장같은 공간들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며

검은색 아스팔트 도로가 놓여 있다. 잘 보면 사막의 모래가 야곰대며 그 검은색 아스팔트 도로의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침식해들어가고 있는게 보인다. 누런 사막과 검정 도로의 경계가 슬몃 섞여 들어가는 느낌.

도착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아마도 초원이 늘어나는 느낌이다. 정확히는 초원이 아니라 각 집에서 꾸미는 정원이나

그런 거지 싶다. 아랍에서 초록색을 평화의 색, 부의 색..이라고 한다는 건 이 황량한 사막에서 마주친 녹색 식물의

귀함을 생각하면 쉽사리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저 가정들도 정원을 꾸미고 녹색 공간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고와 비용을 들이고 있을까. 가정이라기엔 너무 크지 싶기도 하지만, 왕족만 기십기백을 헤아린다는 이 독특한

왕국에서는 그런 왕족의 집 중 한 채인가부지 하고 마는 게다.

사우디에서는 관광비자를 내주지 않고 단지 사업용, 비즈니스용 비자만 내준다고 한다. 사전에 여러 복잡한 서류를

구비해서 사우디 비자를 받아내는 데 성공한 후에야 사우디를 향해 떠날 수 있는 셈이다. 여성의 경우에는 그 비자

받는 것부터 쉽지 않다고 하며, 사우디 현지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댄다. 여성은 사회생활도 못 하고,

운전대도 못 잡으니 집밖에 나서려면 꼭 운전수 혹은 가드 역할을 할 남자가 필요한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왕국.


비행기가 착륙했다. 황사가 심한 봄날처럼 시계가 온통 뿌연 비행기창 너머로 보이는 공항 건물도 특이하다.

모랫바람을 피해 땅위에 바싹 웅크린 듯 한 모양이랄까. 비행기가 몇 대 보이지 않는데, 알고 보니 왕족 전용

공항은 따로 있다고 한다. 그 쪽이 훨씬 사용자 수도 많고 비행기 수도 많다나.

사우디 아라비아 항공의 꼬리 날개 부분. 야자수 아래 교차된 칼 두자루 그림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상징같은

거다. 비행기 댓수가 적어서만은 아닌 거 같은데, 방금 거쳐온 두바이 공항에 비해서는 왠지 활기가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과 며칠 사우디에 머물렀을 뿐이지만, 그 잔뜩 처지고 늘어지는 느낌이란.

사우디 출장용 비자는 단수 비자, 유효기간은 발급일부터 3개월. 그리고 "Not Permitted to Work"라는 글자가

선명히 박혀 있었다. 두바이를 떠난 비행기에서 내려 모랫빛 건물 리야드 공항 안으로 도착하니, 정말 휑하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객은 전혀 없고 단지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한 사람들이나 공항을 이용하겠지만, 사우디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몹시 쉽지 않기 때문일 거다.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왕정 체제에, 기십명에 달하는

왕족과의 연줄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사우디의 유력자가 스폰서십-그것도 심히 불공정한-을 맺어주지 않으면

왕국 내에서 사업도 불가능한 나라랜다. 게다가 공무원을 거슬리면 입국도 못하고 쫓겨나는 수도 있다는 아주

고약한 공무원 우위의 나라.


입국심사대 앞에서 받은 입국카드. 마약소지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붉은 글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나씩 칸을 채우다가 잠시 펜끝을 망설이게 만든 항목, 종교. 무슬림이라고 적어야 통과시켜 주는 건 아닐까.

아님 최소한 기독교 계통은 아니라고 적어야 통과시켜 주지 않을까. 무교라고 적으면 뭐라 그럴까. 왼갖

생각들이 소용돌이치다가, 그냥 비워버렸다. 나중에 들었지만 무슬림들은 믿는 종교가 없다는 것에 대해

이해를 쉽게 하지 못한다고 한다. 신은 분명히 있는데 왜 믿지를 못하냐는 식인 거 같다.

입국카드의 뒷면. 스폰서와 주소를 적는 칸이 있지만, 우리는 사우디에서 스폰서를 구해서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비운 채 패스. 스폰서를 구하게 되면 보통 수익은 51:49로 배분하게 된단다. 사업자가

51이 아니라 스폰서가 51을 먹는 불공정한 룰. 게다가, 언제든지 스폰서는 사업자를 떼어내고 자신의

바지사장을 내려보내 본인의 사업으로 꿀꺽할 수 있다는 점도 위험 요소다.

무사히 공항을 벗어났다. 에어콘이 빵빵하던 공항문을 나서자마자 훅, 하고 뻗쳐오는 건조하고 텁텁한 열감.

오랜만에 느껴보는 중동의 열기였다. 흐르던 땀이 말라붙고 입술이 바싹 타들어가는 땡볕 아래서 잠시 해바라기.

공항을 벗어나 시가로 진입하는 길에 보이는 건물들은 모두 모랫빛이다. 화려한 색깔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모랫빛 풍경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건 그나마 짙은 녹색의 야자수 가로수들. 하늘마저 파랗다기보다는 뿌연

하늘빛이다. 왠지 침침하고 모래가 서걱서걱해 보이는 살풍경.

도심으로 향할수록 차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 차들, 운전이 과격하다. 양쪽 사이드미러를 다 깨뜨리고 앞뒤

범퍼가 성한 차를 찾기 힘든 이집트 차들만큼은 아니더라도, 깜빡이도 안 켜고 훌쩍 1차선에서 3차선으로 내려서는

차가 있는가 하면 맹렬히 앞차를 추격하고 기어코 끼어드는 차들로 가득한 도로. 과격한 운전솜씨는 유명하댄다.

도착한 곳은 메리어트 리야드 호텔. 오성급 특급호텔이라지만, 꽤나 오래된 건물이지 싶다. 역시 누런 모랫빛

건물이고, 건물 앞의 네온사인은 중간중간 허물어졌다. 겉으로 보기엔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들어가서

돌아다니며 확인을 해본 후 평가를 내리기로 했다.

그래도 호텔 주변은 잔디밭도 조성되어 있고 이런저런 녹색 식물들이 잘 가꿔지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우디 호텔이나 공항 등 공공장소를 함부로 사진찍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게다가 이 호텔도 들어가려면

정문에서 자신의 짐과 몸 모두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했다. 잠시 나갔다 들어올 때에도 꼭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하는 불편함은 기실 사우디 뿐 아니라 이후 카타르, 쿠웨이트 모든 나라들이 다 그랬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처음에는 엄청 불편했다. 테러의 위협을 대비한 것이라고 하던데, 실제 이집트나 쿠웨이트에서

호텔을 겨냥한 테러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몇 년 전쯤  얼핏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오후가 되었고, 튈를리 정원에 앉아 지친 발을 풀밭에 눕혔다.

저녁무렵이 되어서인지 루브르 박물관 쪽에서 여행객들이 꾸역꾸역 나오고 있었지만, 당연히 내게는 모두 얼굴

낯설고 이름 모를 타향의 사람들. 더구나 왜이렇게 모두들 삼삼오오 일행들과 함께 나오는 건지.

혼자 떠난 여행의 단점은 자신의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다는 것 외에도..문득문득 이렇게 혼자라는 느낌이 치받아

올 때가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런 때에는 나무가 느닷없는 일진광풍을 가만히 견뎌내듯,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며 외로움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내가 벌렁 누웠던 풀밭 옆에서 자기들끼리 열중한 채 놀고 있는 아이들의 발랄하고 경쾌한 웃음소리조차 그저

왁자한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그런 순간. 주홍빛 백열등처럼 변한 태양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HOME으로 돌아가는지 전부 떠나고 나자, 이번에는 한 커플이 그자리를 떡하니

차지했다. 사실 저 카메라를 잔뜩 의식한 채 경계심을 풀지 못한 커플을 꼭 찍으려는 게 아니라, 하늘의 갑작스런

뭉게구름을 찍고 싶어서 쳐든 카메라였다. 이곳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

살짝 센치해진 기분을 달래보려고 일단 일어서서 잠깐 걷기로 했다. 루브르 궁전 건물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또

길어지고 있었다. 사람들도 한결 덜어낸 공간이 다소 휑한 느낌이다. 차라리 한낮에 바글대던 그 공간이 낫겠다는

생각이 슬몃 고개를 쳐든 건 또 무슨 변덕일까.

카루젤 개선문도 왠지 분홍빛의 온기를 잃은 채 차가워져 가는 느낌. 모든 게 냉막해지고, 파리에 혼자 떨어져서

뭐하고 있는 건가 싶은 답답함이 울컥울컥해져 버렸다.

다시 돌아온 애초의 내 자리. 아까의 그 커플은 보이지 않고, 텅빈 녹색의 공간에 나만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오늘따라 뭉게뭉게 구름은 잘도 피어오르는구나. 잿빛 하늘보다는 그래도, 파란 하늘이 보이니까 맘은 좀 낫다.

이런 식의 센치함이 닥쳐 온 건 사실 어딜 가던 한번씩은 꼭 있는 일이었다. 이건 단지 일상으로부터 도피한 것

뿐이라고, 아니 도피한 척 하는 것일 뿐이라고, 그리고 혼자 이렇게 다니는 거 하나도 재미없다고, 이제 누군가와

함께 다니고 함께 보고 즐기고 싶다고.

날 위로해 주듯, 문득 고개를 돌린 곳에서 황홀한 낙조가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하얗게 탈색되어 버린 하늘에

찍찍 그어진 구름띠들, 그리고 어느 한점에서부터 엷은 금빛으로 물들여 나가는 다정다감한 햇살.

카루젤 개선문의 뒤로 돌아 서쪽을 바라보니 저멀리 노을이 은은하고 비치고, 해는 바야흐로 스물스물 기어내리고

있었다. 파리의 태양이 이제 서울로 떠나는구나. 6시간의 시차를 메꾸고 서울을 밝히러. 서울에 있는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을 덥히러 가는구나 싶다.

하늘은 여전히 은은한 금빛이 흩뿌려져 있었지만, 지상의 사람들은 적당한 어둠 속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저정도 어둠을 머금은 사람들의 어슴푸레한 윤곽은 왠지 정겨워졌다. 노랑빛이 풀어져 내린 흑백사진 속의 파리.

그래도 아직 대지는 고집스럽게 녹색을 움켜쥐고 있다. 저 운치있는 가로등과, 그림같은 가로수들의 형체들이

잔뜩 움츠러들고 옹송그려졌던 내 마음을 잔잔히 어루만졌다.

한국으로 가는구나. 엄밀한 과학적 상식으로야 내가 올라탄 이 지구라는 녀석이 팽팽 돌며 태양을 비껴나가는

거라지만, 그리고 태양이라는 거대한 불덩이가 고작 나를 위로하겠다고 세이 굳바이~ 할리야 없는 거라지만,

어쨌든 이제 맨눈으로 바라봐도 전혀 위협적이거나 아프지 않을 만큼 온화해진 태양은 조금씩 사그라들며

서울로 가노라고 했다.

해가 마침내 완전히 기울고, 서쪽 하늘만 조금씩 붉은 기운이 맴돌다가 사그라드는 걸 바라보면서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센치했던 기분과 왠지 처졌던 느낌들은 모두 이곳에 버려두고 가기로 했다.

룩소에서 봤던 오벨리스크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아 그래, 룩소에서도 문득 예기치 못한 그리움에 사로잡혔을 때,

창밖의 나일강을 바라보며 달랬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힘내서 여행길을.

왠지 '드래곤라자'에서 나왔던 인사말이 떠올라 버린 타이밍.


"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사우디 아라비아, 카타르, 그리고 쿠웨이트의 삼개국.

내 머릿속의 세계지도를 펼쳐놓으라면 아마도..커다란 존재감을 과시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내가 가본 프랑스,

터키, 이집트, 태국, 일본..그런 나라들에 밀려 구석탱이에 조그맣게 눌려있거나 혹은 아예 존재치 않았었을

나라들이다.


두 달여 정신없이 이런저런 일들과 함께 동시에 준비하던 출장이라, 삼개국 관련한 국가 자료를 만들고 어쩌고

했지만 막상 도착할 때까지도 이 나라들이 대체 어떤 나라들일지, 아무런 감이 없었다. 그저 어렸을 적 아버지가

일하시러 떠나셨던, 멀고먼 세계의 끝에나 있을 나라랄까, 난 한번도 밟을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런 나라.


출장 떠나기 직전, 정신사납게 어질러져 있는 사무실 내 책상. 들고 가야 할 온갖 자료들, 서류 뭉치들과 남겨놓은

일들, 계산기나 잡다한 문구류들. 눈앞의 일들에 급급해 막상 떠나는 곳에 대한 아무런 '선입견'도 없이 출발했단

걸 깨달았던 것은, 리야드행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떠나 두바이를 경유했던 그 쯔음이었을 게다.


이번 출장을 위해 산 29인치짜리 초대형 가방에 들어간 건 아마도 9할쯤이 가서 일하기 위한 준비였고, 내 짐은

그 나머지 1할 밖에 차지하지 않았다. 저 컵라면박스는 가서 선물로 주고 오거나, 출장길을 함께 하는 분들을 위해

챙겨가는 비상식량. 휴대용 프린터은 억지로 우겨넣고, 카메라가방은 메고 가기로 했다.

밤 11시 55분 비행기로 우선 두바이까지 10시간 15분여를 날아간 후, 6시간 정도 트랜짓 시간을 거쳐 다시 1시간

40여분을 날아 사우디 리야드에 도착하는 게 우선의 일정이었다. 밤 9시가 넘어 도착한 인천공항은 흔히 보던

낮의 풍경과는 너무 많이 달랐다. 출국심사대를 거치고 바로 나타난 면세품 찾는 곳에서는 하루일을 정리중이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하나 없었고, 백화점 면세점에서 미리 구매한 물건들을 쌓아두었을 뒷켠의 캐비넷들은 온통 텅텅

비어있었고, 그리고 짐을 옮기는 플라스틱 상자와 가방들을 모두 꺼내놓고 셔터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줄서서 면세품을 챙겨가던 그곳의 낯선 풍경.

평소에 즐비하게 늘어서있던 명품샵들과 화장품, 주류, 담배 등을 빼곡히 팔던 면세점들은 온통 닫았다. 한바퀴

둘러보며 보딩 시간을 기다리려던 계획이 틀어져서 다소 심드렁하던 차에 문득 눈에 띈 24시간 심야면세점 표지판.

뭐 볼 게 있을까 했지만, 이건 모...김, 김치, 인삼, 홍삼...전부 먹을거리 뿐이다. 밤비행기를 타면 면세점도 못

돌아보는구나 하고 실망해서 발걸음을 돌렸다. 참...밤비행기를 타기 전엔 시간 보내기도 쉽지 않구나, 했다.

그리고 10시간동안 영화도 보고 잠도 자고 하다가 도착한 두바이. 좌석 앞에 붙은 모니터안의 조그마한 비행기는

태양에 조금씩 노출되어 가는 지구면을 피해서 기를 쓰고 어둠 속으로 날고 있었다.


아랍에미레이트의 수도 아부다비보다 더 잘 알려진 아랍에미레이트 연방의 현대적 상업 도시, 두바이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시간 새벽 5시 10분. 'Transfer' 사인을 따라 들어온 두바이 공항의 실내는 왕궁을 떠올리게 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별이 총총한, 시와 사막에서 봤었던 듯 한 밤하늘이 그려진 것도 그랬고.

아직 해가 뜨기 전, 한밤중이랄 시간인데도 공항이 무척이나 번잡스러웠다. 빼곡한 좌석마다 사람들이 그득히

앉아 있었고, 미처 자리를 못잡은 듯한 사람들은 아무데나 철푸덕 앉아서는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에스컬레이터로

어딘가를 향해 걷기도 한다. 인천공항에서 느꼈던 분위기와는 영 다르다. 왠지 10시간여의 비행을 한 노곤한

몸이었음에도, 사람들이 꽉 차있고 번잡스런 두바이 공항의 분위기에 젖어서인지 잠이 깨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짐이 놓인 카트를 두고 잠을 청하기란 쉽지 않을 거다.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짐에 대한 안전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잠이 올리 만무한 것. 그래서 저렇게, 자신의 몸으로 카트를 고정시켜 두거나 아예 껴안고 자는 사람들.

사막무늬를 형상화한 것이겠지만, 누런 색 바탕에 갈색 물결이 반복되는 카펫 위에는 저런 야자수가 몇그루씩

군집해 있었다. 진짜일까 궁금해져서 나중에 만져봤는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가짜여서 살짝 실망.

하긴 인천공항만큼 자연채광이 잘 되어 있지는 않아서 진짜 나무가 자라기에는 매우 열악한 조건이지 싶다.

지하의 면세점은 불야성을 이룬 채 사람들이 가득하다. 인천공항이, 그리고 한국이 동아시아의 허브가 되겠다고

했던 이야기의 온갖 변주가 가득한 한국이다. 금융의 허브, 물류의 허브...그렇지만 얼마전 신문에서 한 교수였던가

한마디 따꼼한 소리를 했던 게 생각난다. 허브라느니, 대문이라느니 식의 이미지 메이킹이나 지향은 피해야 한다,

직접 갈 수 있는 조건이 점차 갖춰질수록 굳이 대문을 지나고 허브를 거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게 내가 이해한

그의 포인트. 어쨌든 우리가 몇 년째 공염불로 외고만 있는 그 '허브'라는 거, 두바이 공항은 이미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거다. 그래서 이렇게 바글바글, 유럽 가는 길에 경유하고, 아프리카 가는 길에 경유하고, 아시아

가는 길에 경유하고. 불꺼진 공연장을 연상케 했던 인천공항과는 영 딴판이다. 물론, 인천공항이 이렇게 되기에는

여러 현실적 제약도 있을 것이고, 두바이랑 인천은 입지조건이나 주변 국가수라거나..여러 차이도 있을 게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인천이 왜 두바이가 못 되는가..하는 장탄식이 아니라, 한국에서 '허브'라느니 '대문'이라느니

떠드는 선전선동의 태생적 한계..그리고 보다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비전을 구상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굳이

그런 식의 되도않는 이미지를 갖다붙이려 해봐야 어울리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단 말이다.

천장 가까이에서 기둥을 감싸고 있는 저 금빛 구체, 그리고 오오라처럼 사방으로 뿜어져 올라가는 금빛 실오라기.

창밖으로는 조금씩 동이 터오는 듯, 물빛에 비행기 동체가 온통 잠겨있다.

마치 피난민들 같다. 이들은 이런 시간에 익숙한 듯 보인다. 이미 챙겨왔을 모포와 깔개를 한껏 활용해 온몸을

감싸고는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해 숙면하는 것. 천에 둘둘 감긴 미이라를 연상케 할 만큼 꽁꽁 싸매고 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자 하나만을 활용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의자를 몇개씩 차지한 채 누워버린 염치없는 사람도

보인다. 우리나라 시골 버스정류장 대합실 분위기랑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두바이 공항은 이들에게 그 정도로

손쉽고 가까운 정류장인지 모른다.

문득, 내가 앉아서 쉬고 있던 곳 바로 옆의 비상구 문을 억지로 열려던 한 아저씨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뭘 어떻게

만졌는지 미친 듯이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 그 아저씨는 총총히 자리를 떠버렸고, 나와 내 일행은 모처럼 얻은 자릴

포기하고 기약없는 다른 곳으로 옮기기 싫어 버티기로 했다. 금방 누군가 와서 조치를 취해주고 저 신경 거슬리는

소리를 가라앉혀주겠지, 하고.


30분, 공항에서 근무하는 듯한 제복입은 사람이 왔다. 문을 덜컹거려 보다가 버튼 몇개 눌러보다가 가버린다.

40분, 어이가 없어서 직원을 불러왔다. 문을 덜컹이고 두들겨보고는, 자기는 어쩔 수가 없고 경비원을 불러야

한다며 가버렸다. 45분, 직원들이 귀를 막고 지나간다. 아무도 조치를 취할 생각도 없는 듯, 손에 든 무전기는

장식품인양 하다. 50분, 경비원을 불러왔지만, 자신은 이 구역담당자가 아니랜다. 지칠 줄 모르고 울려대는 사이렌.

일행 중 한명은 휴지로 귀를 막았고, 다른 한명은 비행기에서 쓰던 귀마개를 틀어박았다.

사이렌이 터진지 1시간 반이 지났고, 우리는 다른 곳으로 옮길까 몇번 돌아봤으나 좀처럼 빈자리가 없다. 아무도

와서 소리를 꺼줄 생각을 안 했고, 두바이 공항 한구석에서부터 요란하게 터진 소리는 이미 주변 사람들의 잠을

완전히 깨워버린지 오래였다. 2시간쯤..우린 결국 이 사이렌이 다시 꺼지는 걸 못 보고 리야드행 비행기 티켓팅을

위해 자리를 떴다. 참 지독한 두바이 공항의 직원들. 손을 대는 순간 자신의 책임이 되는 거고, 그걸 싫어하기 때문에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비단 공항직원의 문제가 아니라 중동의 문화가 그렇다고 했다.

티켓팅을 마친 후 살짝 들렀던 두바이 공항의 면세점, 온통 초콜렛, 담배, 그리고 치약같은 자잘한 소비재였다.

중동에서 일하는 인도, 파키스탄, 혹은 기타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귀국하면서 장을 봐갖고 간다고 한다. 대부분

형편이 넉넉치 않은 상황인지라 면세점이 일종의 이마트같은 대형마트 느낌으로 운영되는 건 당연할 거다.

그나저나, 중동에도 가을이면 단풍이 들까. 저 인테리어 디자인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한국의 백화점같은 데서

볼법한 빨간 단풍 그림.

두바이 공항의 스타벅스. 아랍어로 씌여진 메뉴판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국과는 살짝 다른 휘핑크림의 맛이라거나

메뉴가 새롭기도 했다. 진열장에 조각케잌을 진열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솔찮이 오래 걸린다. 보고 있자니, 케잌

몇개 밀어넣고는 옆사람과 잡담하고, 잠시 신문도 보고, 손님도 맞고. 그리고는 또 몇개 밀어넣고는 딴짓하고.

계속 보면 왠지 깝깝한 기분이 복받칠 거 같아서 그냥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로 했다.

기념품으로 이런 걸 사와도 괜찮겠다 싶을 만큼 특이하고 이뿐 텀블러들. 아랍어로 뭔가가 씌어져 있기도 하고,

문양들 역시 아랍권 문화의 냄새가 풀풀 풍긴다. 스타벅스는 중동에도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일까. 가격대를 보면

한국보다 살짝 싸단 느낌이다. 역시, 우리나라 커피값은 세계 최고라는..

아랍에미레이트 항공(EK)을 타면 하나씩 좌석에 비치되어 있는 스티커. 좌석에 자신의 필요대로 알아서 붙이라는

세 가지 종류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건들지 마셈, 밥줄때 깨우셈, 그리고 면세품 팔 때 깨우셈..이라는 세가지.

그림도 귀엽지만 저 꼬불꼬불한 아랍어는 왠지 모를 매력이 있다. 예전에 이집트 여행할 때 아랍어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걸 직접 보고 문화적 충격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온통 손날부분을 시꺼멓게 만들어가며, 글자를

뭉개가며 연필로 꼭꼭 눌러쓰던 기차역 매표원.

그 스티커의 뒷면에는 이렇게 자세한 사용설명서도 있었다.

아침에 빵을 사들고 오른 샤요궁전의 테라스. 사람없는 한적한 테라스 위에서 두발뻗고 앉아 에펠탑과 파리의

경치를 유유히 감상했다. 샤요궁전 앞 정원 분수에 비친 에펠탑의 윤곽이라거나, 그너머 샹드마르스 공원, 그리고

사관학교 뒷편의 앵발리드까지 하나하나 내가 가봤던 곳들을 눈으로 어림해가며, 고즈넉한 파리의 아침 풍경과

예상했던 것만큼이나 평화로운 샤요궁전 테라스의 분위기에 한껏 취했다.

에펠탑의 두 다리 사이로 보이는 샹드마르스 공원의 연두빛 풀빛이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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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들고 갔던 바게트 빵과 토르트를 테라스 옆 까페에서 파는 에스프레소와 함께 조금씩 뜯어먹으면서 생각했다.

호텔 조식 부페라고 해봐야 사실 먹을 것도 없고 금세 질려버려서 몇 접시 못 먹는데, 여기 이렇게 앉아서라면

빵이고 커피고 몇개고 몇잔이고 마시겠다고. 바게트빵이 눈에 띄게 줄어버리는 게 아쉬울 만큼, 그리고 다른 곳에

비해 많이 따라줬던 에스프레소 커피 한 방울이 아쉬울 만큼 맛있었던 파리의 아침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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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에 없었지만, 에펠탑을 지나 샹드마르스 공원을 걸어보고 싶었다. 잠시 앉아서 시간을 확인하고는 샤요궁전을

떠났다. 몇 걸음 걸어 분수를 지나고 세느강을 지나고 돌아본 에펠탑, 그리고 에펠탑의 딱 벌린 두 다리 사이로

보이는 샤요 궁전, 왠지 아이스께끼~ 가 생각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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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드마르스공원(Champs de Mars)은 샹젤리제거리처럼 '샹'(Champs)으로 시작한다. 정원이라는 뜻이라지만,

그러고 보면 프랑스어에는 샹, 샤..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많다. 자칫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이렇게

글로 적었을 때의 느낌과는 영 딴판으로 프랑스인들의 매혹적이고 부드러운 발음으로 잘 넘어간달까.


샹드마르스공원은 이전엔느 군대의 연병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가, 대혁명 시대에는 여러 역사적 사건들을 겪기도
했단다. 파리 꼬뮌을 기념하는 탑이 공원 한켠에 조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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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사실 상당 부분 공사 중인 듯 했다. 여기저기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공원에서 편안히 앉아서 쉴 만한

벤치는 많지 않아서, 그냥 공원 끝 사관학교가 있는 곳까지 걸었다. 새로 산 신발이 아침이슬을 머금은 잔디에

젖는 걸 느끼면서, 드문드문 보이는 여행자나 노숙자들을 지나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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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드마르스공원 끝에 있는 조그마한 문..형태의 조형물이랄까. 뭔가 현재 진행중인 샹드마르스 공원 공사의 일환인

듯 했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씌여진 평화라는 단어가 유리에 새겨져 있다. 한 십여개 언어로 씌여져 있었는데,

한국어는 용케 맨 밑단을 차지하고 있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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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에 있는 올림픽공원의 '평화의 문'이랑 왠지 형태가 비슷하단 느낌을 받았다. 양쪽으로 넓게 펼쳐진

지붕하며, 두개의 두꺼운 기둥으로 버티고 선 저 포즈하며. 에펠탑 너머 멀리 샤요궁전이 보이지만, 기실 내가

걸었던 거리는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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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벗어나 큰길로 나왔더니 공사 현장에 대한 설명..인 듯 한 게 붙어있다. 프랑스어를 모르니 그냥 찍어만

왔지만, 뭔가 코스를 조성하는 걸까, 저 음표 모양의 기호가 수상쩍기는 하지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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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차 중의 하나인 푸조 308. 한국에선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차이지만, 여기선 발에 채이도록 보인다.

좀더 희소하고, 좀더 고급스런 차로 내 '꿈의 차'를 바꿔야 하는 걸까, 왠지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샹드마르스공원을 지나 나타난 사관학교. 프랑스 국기가 펄럭이는 이 곳에서 지금도 사관생도들을 양성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흐릿한 아침인 데다 빗발까지 살짝 섞여들기 시작해서였을까, 건물이 왠지 침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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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오르세 미술관 앞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은 번번이 깨어지곤 했었다. 팡테온 위 전망대에 올랐다가

굳이 함께 내려가야한다는 안내인의 고집때문에 팡테온서 오르세까지 숨이 턱에 차도록 뜀박질하다가 결국 십여분

늦기도 했고, 노틀담 성당에 잠시 갔다가 예기치 않은 대주교 집전의 미사를 구경하며 오분만, 오분만 하다가 또

십여분 늦어버리기도 했고. 메트로와 버스를 모두 무제한 사용가능한 프리패스를 사놓고는 왜 이용하지 않냐고

타박을 듣기도 했지만, 버스나 메트로가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건 서울이나 파리나 마찬가지인 게다.


옷 아래 옆구리 어간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리라 생각될 즈음 멀찌감치서 이 오르세 미술관 간판이 보이면 그래도

잠시 걸음을 늦춰 한숨 돌리곤 했었다. 나 자신만의 은밀한 안도의 상징이 되어버린 오르세 미술관의 간판.


애초 기차역사였던 공간을 미술관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멀찍이 보이는 커다란 시계는 기차 역에 붙어있던 바로

그 시계라고 하며, 둥그런 천장 역시 역사의 외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공간 한복판에 불쑥불쑥 솟아나온

우윳빛의 대리석상들.

토마 쿠튀르의 "쇠퇴기의 로마인들(la Decadance)"라는 작품의 일부. 중앙 통로의 복판쯤을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는 대작이었는데, 총기와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술과 여자, 잔치로 점철된 로마문화의 말기적 징후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술먹고 싸울 듯 인상을 찌푸린 녀석, 여자와 희롱하는 녀석, 술먹고 과장된 몸동작을 취하는 녀석..온갖

인간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왠지 지난 날의 내 음주생활과 그로 인한 온갖 사건사고들을 떠올리고 피식 웃음이

났지만, 대박은 이녀석. 술 취해서는 대리석상을 붙잡고 건방진 눈빛을 한채 술을 권하고 있다. 현대로 치자면,

술취해선 마네킹을 붙잡고 뒹군다거나 전봇대와 싸우는 정도..의 애미애비도 못알아본다는 개망나니 수준이 아닐까.

중간중간 앉아서 감상할 수 있도록 대리석 의자가 놓여있었다. 대리석의 선뜻한 차가운 느낌 때문에 오래 앉아있긴

힘들었는데, 그런 자리에 앉아서 몇시간이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도 꽤나 보였다. 너무 자연스러운 광경.

오르세 미술관에 들어서서 한가지 이상했던 점, 왜 카메라를 찍도록 냅두는 걸까. 세계에서 손꼽힐만큼 크다던

이집트 카이로 미술관에 가서도 사진은 하나도 못 찍게 했던 것 같다.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안의 석상에 누워보게

하고 왕의 계곡에 있는 무덤들에 손대고 플래시 터뜨리며 사진찍도록 냅두던 그들이었지만, 박물관에선 최소한

사진을 안 찍게 했던 거 같은데, 여긴 아니다. 오르세 만이 아니라 루브르, 오랑주르..다 그랬다.


덕분에 자유롭게 사진을 찍으며 구경했다. 스스로 정한 제한선은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기로.

참 오밀조밀하게 공간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오르세 미술관의 전경. 언젠가 이야기했던 것 같지만, 불어의

'R' 발음은 대개 'ㅎ'로 발음이된다고 한다. 한국에 있을 때 누군가 파리에 오래 있었다던 사람에게 그 친구가

오르세 미술관이 좋다며, 어쩌구 하고 물었더니 한동안 못 알아듣는 척을 했다는 이야기. "오르세 미술관? 아~

혹시 오ㅎ세 미술관 이야기하는 거야? 오르세가 뭐니 촌스럽게." 라는 식으로 기어코 상대를 면박주고 싶었을까.

이 그림의 제목이 뭐였더라...파라다이스? 환타지? 남자의 로망? 꽃밭? 천국? 실낙원?

도무지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저 발랄하고 투명한 색감과 여인들의 말간 속살이, 그리고 저 은박지로 만든듯한

갑옷을 입은 남자의 살짝 흔들리는 표정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내가 너무 감정이입한 걸까. 사실 내가 떠올려낸

저 제목들은 모두 내 기호를 반영하고 있는 게다.

고개를 꺽은 채 허리를 뒤튼 여체. 대담하게 머리칼쪽에 던져둔 두 손 덕분에 농염하게 드러나는 젖가슴.

살집풍만한 허리와 허벅지를 보건대 분명 저 시대와 지금 시대의 미적 감각은 차이가 있지 싶으면서도, 저 조각이

내 마음을 움직이는 건 그 싱싱한 생명력과 리얼한 몸의 움직임 때문이다.

Henri de Toulouse-Lautrec(1864-1901)라는 작가가 계속 눈에 띄었다. 아마 오르세, 혹은 오ㅎ세를 방문한 오늘

내가 건져갈 미술가는 이 사람인가 보다. 거친 몇 개의 선으로 날카롭지만 섬세하게 인물에 숨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여성의 누드가 단지 이상화된 여신을 묘사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던 기존의 풍조와는 달리 여성의 누드가

갖는 통속성이랄까, 그 자체로서 갖는 의미에 집중한 그림이란 느낌이다. 마치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혹은

'올랭피아'가 기존 화단이 고수하던 전통과 도덕적 금기를 깨뜨린 것처럼, 내가 본 그의 그림들은 모두 상당히

도발적이고, 동시에 현대적이란 느낌.

몇몇 보고 싶던 작품들이 전시되지 않고 있던 것은 아쉬웠지만, 얼마전 한국에도 왔다가면서 인사를 건넸던

부르델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를 여기서 다시 만났던 거나, 요새 좋아라 하는 인상주의 작품들이 많았던 점은

정말 맘에 들었다.


참, 유의할 점 하나. 총 3층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는데, 층수로 치자면 0층, 2층, 그리고 5층 이렇게 세 개 층으로

구분되어 있다. 1층과 3, 4층으로 가는 길은 찾을 수도 없으니 행여나 찾으려 노력하는 건 내가 잠시 저질렀던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는 셈이다.




오르세 미술관의 티켓. 아마도 에드가 드가의 그림인 듯한 저 발레하는 소녀들의 모습, 그리고 그 뒷면에 선명히

찍혀있는 5.5유로의 입장료.

사크레 쾨르에서 조금 북쪽으로 올라가면 시계가 녹아내리는 달리의 미술관도 있고, 몽마르뜨에 거주했던 숱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중인 미술관도 있다고 했다. 애초 왔던 길을 되짚어 가기보다는 좀 크게 원을 그리며

몽마르뜨 언덕의 정취를 맘껏 즐기다가 다시 앙베르(Anvers)역이나 아베스(Abbesses)역으로 되돌아갈 생각이었다.
 
사크레 쾨르 성당 안에서 잠시 펼쳐본 가이드북에 의하면 아베스역의 지하철 역 입구는 누군지 처음 들어봤지만

여튼 '거장 기마르'가 디자인한 아치란 거다. 왠지 조금더 그 주변에서 한 바퀴 돌아보며 눈에 담아야 할 거 같은

부담감, 그리고 이런 걸 조금더 눈에 새기지 못하고 왔구나 하는 스스로의 안목에 대한 살짜쿵 부끄러움이 드는

순간이었다. 가이드북은 이런 식으로 종종 성가신 걸음을 걷도록 압박하곤 한다.

주변 골목을 아무길이나 쑤시고 들어갔다. 가파른 경사를 가늠컨대 사크레 쾨르의 방향과 내려가는 방향은 얼추

쉽게 잡겠다 싶어서, 그다지 거리 이름을 괘념치 않고 뭔가 이뻐보이거나 눈에 밟히는 게 있다 싶은 곳으로 향했던

게다. 그 골목에서 내 눈을 사로잡았던 건 형형색색의 화려한 원색 컬러를 가진 저 티테이블들.
의자와 테이블이 꼭 같은 색으로 매치된 것도 아니다. 아마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배치되어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자를 이쪽저쪽으로 끌어당기고 테이블도 몇번씩 들었다놨다 하면서 지금처럼 마구잡이식의

랜덤한 배치가 이루어진 게 아닐까, 근데 이뿌다.

그 풍경 속에 들어가 앉아 차를 한잔 하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풍경이

마주보이는 길건너편의 까페로 들어갔다. 이미 많은 여행객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차를 마시며 쉬거나, 그 무질서

하지만 경쾌한 색의 배합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지도를 보며 길을 정하고 있었다. 나는 안쪽에 들어가서 우선

에스프레소를 시키곤 지도를 펼쳐서 여기가 어딘지부터 확인. 이게 바로 내가 여행 내내 들고 다니던 지도책,

PARIS PRATIQUE, 거리 이름이 모두 나와있고 아무리 조그마한 골목길도 다 그려져 있어서, 파리지앵들도 길을

찾는데 쓴다는 그 책이다. 가이드북은 가끔 뭔가 설명이 더 필요하다 싶거나, 뭔가 주위에 같이 볼만한 게 없을지

체크할 때만 펼쳐보았었다. 아마 나중에 파리 갈 일이 또 생긴다 해도 이 책이면 충분할 거 같다. 사실 이제 왠만한

거리나 방향은 다 익숙해져 버려서 따로 지도나 가이드북이 필요있겠냐 싶다만은.

에스프레소 커피의 쓴 맛은 솔직하다. 쌉쌀한 냄새와 함께 혀를 얼얼하게 만들 정도로 진한 커피 원액이 입안에

한모금 흘려넣어지면 정신이 바싹 긴장하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갈색빛 거품을 헤치고 그 쓰디쓴 맛을 가만히 혀로
분별해 나가보면 진한 단맛도 느껴지고, 순수한 쓴 맛도 느껴지고, 그리고 약간의 시큼한 맛까지 감지된다. 사실

파리지앵들은 아메리카노를 두고 에스프레소에 물탄 거라면서 다소 낮춰보는 느낌이 없지 않다는데,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경사가 완연히 느껴지는 골목들. 저쪽 높은 곳에는 사크레 쾨르가 있을 테니 일단 낮은 곳으로 내려가다 보면, 크게

방향이 틀리지 않는 한, 왔던 곳으로 쉽게 되돌아가겠거니 했다. 그치만 골목들이 얼기설기 만나고 있었던 데다가

몇번 모퉁이를 돌고 나니 어느 쪽으로 향하고 있었는지 방향조차 가늠하기 힘든 패닉 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

저런 식으로 담쟁이 덩굴이 빼곡히 담을 치고 있는 공간 안에서 살면, 무지 맑은 공기를 이십사시간 마실 수 있지

않을까. 한눈에도 무지 풍성하고 두꺼워보이는 녹색의 벽안에선 혹시 어떤 예술가가 21세기의 걸작을 예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은 저런 식으로 창문이 탁 트여서 바깥을 공간 안으로 품을 수 있고, 동시에 밖에서도 안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건...역시나 왠지 예술가와 어울린다 싶은 느낌인 게다. 몽마르뜨 언덕의 독특한 운치와 분위기가

계속 내 상상력을 그런 쪽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단정한 벽돌집. 올이 굵은 실로 짜여진 스웨터를 연상케 하는, 그리고 그 오돌토돌한 촉감이 선명히 살아나는

건물의 외관이 왠지 정겹다.

어떻게 돌았던 걸까,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느 순간 생 피에르 교회가 다시 나타났다. 안 그래도 아까

사크레 쾨르를 반 바퀴 돌아서 정문쪽으로 가면서 왠지 오래되어 보인다, 싶던 건물이었다. 미처 그게 파리에서

오래된 성당으로 손꼽힌다는 생 피에르 교회인지는 몰랐던 게다. 그치만 사실 그런 정보를 알고 볼 때나 모르고 볼

때나, 이 오래고 낡은 성당이 주는 칙칙하고 우울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재빨리 스킵해서 테르트르 광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 이곳에 나오면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이 모여있다더니 정말이다. 벌써 꼬맹이 두명이 거리의 화가들의

오브제가 되어 있었다. 이런 화가들을 일러 사기꾼 화가라거나, 돈벌려고 화가인척 한다고 비난할 수야 있겠지만,

글쎄...화가라는 게 기본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진정한 리얼 화가일까. 다만

저들의 실력이 다소 모자란다거나, 혹은 오브제이자 돈주머니의 심기를 맞출만한 센스가 부족하다거나 할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가짜 화가'라거나 '사기꾼'이라고까지 폄하하는 건 좀 감정적인 거 같다.


살짝 들여다 본 그들의 화폭에 담긴 인물은 글쎄, 눈앞에 있는 오브제와 많이 닮은 거 같단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았던 건 사실였지만, 그래도 그들 눈에 보인 오브제가 그렇게 보였나부지.

골목길을 종횡하고 다니다가 문득 마주친 상점. 찌그러져 들어가며 언제든지 기우뚱, 쳐져버릴 것 같은 찌푸린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반듯하고 반짝반짝 광이 나는 새것이었다면 이 골목에 어울리지 않았을 거 같았다.

실제로 저 휘어진 천막이 몇십년씩이나 됐겠냐만은, 그래도 나름의 시간이 배어있다는 점에서, 몽마르뜨 언덕위에

빼곡한 고풍스런 건물들과 반들반들한 포석들, 그리고 사크레쾨르와 생 피에르 성당과 잘 어울려 보였다.

아마도..화가의 집일까. 창문에 내걸린 저런 작품들을 한점 한점 구경하며 발걸음을 느릿느릿 떼어놓는 것도 이곳

몽마르뜨 언덕의 묘미인 거 같다. 맘에 드는 그림이 있으면 한 점 사갈까, 했지만 딱히 내 눈을 붙잡았던 그림은

없었다. 뭔가 그림들이 강렬하거나 인상적인 걸 의도한다기보다는, 잔잔하면서도 편한 느낌, 그러니까 가벼운

소품으로 쓰기 좋은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려 가는 길에 저런 식으로 계속 눈길을 끄는 뭔가가 있었던 거다. 저건 또 무슨 뮤제..뮤지엄, 박물관일까.

이런 식으로 몇번 방향을 꺽는 사이에 난 점차 몽마르뜨 언덕을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가로질러 넘어가고 있었다.

막판에 도착한 역은 그래서, 12호선의 라마르크 콜랑쿠르(Lamarck Caulaincourt) 역.

짙은 녹색에서 누런색을 거쳐 붉은색으로까지 변색되어 있는 담쟁이덩굴은, 뮤제 드 몽마르뜨, 몽마르뜨 미술관의

표지판 만큼이나 금방 눈에 띄었다. 빨간 표지판과 녹색 담쟁이덩굴의 대비. 안으로 들어갔더니 조그마한 전시

공간이 있었고, 이곳에서 작업을 했던 화가들의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대개 자그만 소품들이었고 그다지

인상적인 건 찾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건 이미 내가 파리의 여러 굵직한 미술관을 거치면서 터무니없이 눈만

높아져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래로 내려가기만 하면 어쨌든 아베스 역이던, 앙베르 역이던 만나리라고 쉽게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하도

이상해서 몇번이나 지도를 확인한 결과, 이미 몽마르뜨 언덕을 오르내려서, 오를 때와는 영 다른 곳으로 떨어져

내렸음을 알아차렸다.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 지나면서 가이드북에 소개되었던 이러저러한 '관광 포인트'들도

찍어볼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아쉬워했던 것도 잠시, 이미 난 골목을 뱅글뱅글 돌면서 몽마르뜨 언덕을 네다섯시간

여유롭게 완상했음을 깨달았다.
일정을 고민하다가 몽마르뜨 언덕을 오르기로 했다. 비가 주룩대는 날씨에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는 없다

싶어서 애초 오랑주리 미술관을 갈라고 하다가 맘을 접었다. 좀 이유같지 않은 이유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은

왠지 햇살 눈부시고 풍경이 화사한 그런 날에 봐야 할 것 같았다.


일부러 살짝 돌아갔다. 메트로 12호선 아베스(Abbesses)역에서 내려서는 크게 에둘러서 사크레 쾨르 성당으로

오르기로 했다. 조금씩 가팔라지는 경사를 체감할 수 있던 그 길에는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주택들이 한채씩

나타났고, 특이한 상점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아침 시간이라서였을까. 문을 닫고 있던 한 가게 안에는 온갖 종류의 고양이 소품들이 쇼윈도우 밖을 흘끔대며

구경하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꼭 들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사크레 쾨르를 지나 몽마르뜨언덕 위의 골목길들을

이리저리 종횡하다가 깜빡 잊고 말았다.

조그마한 컴팩트카가 주차되어 있는 뒤에는 둥글둥글한 벽돌로 지어진 주택이 서 있다. 차도나 인도의 포석도 그런

벽돌로 깔려 있어서, 걸을 맛이 나는 골목이었다. 벽돌집 옆구리에 붙어있는 파란색 표지판은 거리 이름이 적힌

표지판인데, 저 건물의 정면과 측면의 거리가 뭐라는 것을 알려주어 길찾기가 정말 편하게 해 준다. 무슨 거리와

무슨 거리가 교차하는 곳에 놓인 건물, 이라고 하면 금방 찾는 이치다. 모든 건물에 저런 표지가 붙어 있어서

프랑스 현지인들도 거리이름이 빼곡히 적힌 지도 하나만 있음 어디든 잘 찾아다닌댄다.


창문 밖의 빨간 꽃들은 아마 제라듐일까, 비가 부슬거리는 날씨에 새빨간 꽃잎이 선연하다.

경사가 어느 정도 실감이 될 무렵, 나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언덕을 오르는 여행객들이 보인다. 아마 에둘러

크게 돌아 오르던 내가 다른 길에서 오르는 사람들과 합류하는 지점이지 싶기도 하다.

몽마르뜨가 애초 예술가들의 거리였다던가. 예술가들에 대한 고정관념이랄까, 왠지 담배를 즐기고 까페에서

에스프레소와 와인을 줄창 마셔댔으며, 돈이 떨어질 때면 화구를 들고 광기에 휩싸여 그림을 그리고는..

내다 판 돈으로 다시 술을 사 마시고 룸펜처럼 지냈을 거 같다. 글쟁이였대도 별반 다를 거 같지 않고.

그런 사람들이 저런 까페 안에서 뿌연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내뿜으며 몇시간이고 죽치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CAFE라 하면, 한국과는 달리 단순히 커피나 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저녁이 되면 술도

파는 주점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좁은 길이 얼기설기 얽혀 있어서, 이리저리 발걸음을 마구 갈지자로 흩어놓아도 어디선가 사크레 쾨르 성당의

하얀 돔을 마주치게 되었다. 아무리 여행이란 게 방향 감각을 내팽개치고 발길 닿는 대로 헤매면서 하는 거라지만

최소한 파리에서, 이렇게 길이 복잡하게 나 있고 미로 같은 곳은 처음 봤다. 올라갈 때야 사크레 쾨르 성당의

흰 빛을 따라 오르면 되었다지만, 기실 내려갈 때 영 헤매고 말았던 거다.

드디어 근접 촬영. 사크레 쾨르, 신선한, 아니 '신성한 심장'이라는 뜻이다. 어느 가이드북에서는 성심 교회..라던가,

그런 식으로 번역해 놓기도 했지만, 사크레 쾨르 성당이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지 싶다. '신성한 심장 성당'이라는

뭔가 영험할 듯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 역사나 착공 배경은 기실 그다지 신성하지는 않다.

빠리 꼬뮌의 비극이 있었던 1870년을 지나며, 아마도 비관적이고 삶에 대한 염세에 젖어 있었을, 그리고 프랑스

중앙 정부에 대한 거부감과 반감이 여전히 가슴 속에서 부글대고 있었을 파리 시민들을 종교적 차원에서 감싸안고

달래고자 했을 거다. 그걸 좀더 고상하게 얘기하건대, 불행한 시대를 거친 가톨릭 교도의 마음을 달래줄 목적으로

지어진 성당, 그게 바로 사크레 쾨르 성당이라는 얘기. 

정문을 마주보고 섰다. 알고 보니 내가 길을 어떻게 잡고 갔는지 사크레 쾨르 성당의 등덜미를 보고 왔던 게다.

사크레 쾨르 주위를 반 바퀴 돌아 정면에 섰더니, 내가 돌아온 길 말고, 정면을 보고 바로 올라온 여행객들이 이미

바글바글하다.

성당의 첨탑이나 하얀 빛의 벽 같은 부분들이 왠지 이슬람 사원을 연상케 했다. 성당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다소

전형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 둥글고 높은 돔이 터키에서 봤던 '아야 소피아

사원'이나 '블루 모스크'를 떠올리게 했다. 하기야 그런 터키의 건물들은 지배세력의 종교에 따라 그때그때

가톨릭 성당과 이슬람 모스크를 넘나들며 개축되고 변신했던 거니까 예외라고 쳐도, 사크레 쾨르는 왜 그럴까.

다소 고답적이고 추상적인 차원에서 굳이 답을 하자면, 문명간의 교류를 통한 건축 문화의 융합?


옆에서 어떤 귀여운 일본 아가씨가 혼자 낑낑대며 셀카를 찍고 있길래, 말을 섞어 보았다. 매우 짧은 영어로 그녀는

힘겹게 몇 마디를 했는데, 회사원이고, 파리에는 그저께 왔으며, 내일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얘기만

좀더 잘 통했어도 같이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같이 사진도 찍어주고 잘 돌아다녔을 텐데, 소통이 거의

불가한 지경이었어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는 여행 잘 하라며 안녕을 고했다.

사실 어줍잖은 영어 실력만 믿고 해외로 나서고,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겠다고 하는 건 다소 만용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자용의 짧은 영어구문들을 주고 받는 것을 넘어서, 속을 터놓고 이런저런 깊은 이야기를 하려면,

영어가 되었던 두 사람 중 하나의 모국어가 되었던 서로를 서로에게 최대한 손실없이 전달할 수단이 절실하다.

당장 내가 영어 말고 일어를 좀 배워왔어도 훨씬 많은 이야기의 기회가 있었을 텐데, 아쉽다.

성당 안에 들어가 둘러 보았는데, 역시 성당은 쉬기에 적당치 않은 장소였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성함에 다들

스스로 압도당하거나 혹은 순응해 버린 채, 숨소리도 조심스런 그 갑갑한 분위기. 하물며 아침으로 먹겠다고 사온

빵을 꺼내 베어물기란 불가능한 공간이었다. 후딱 한바퀴 돌아보았지만, 사실 성당 내부는 거기가 거기다.

2유로짜리 초를 봉헌하라는 한 구석의 촛불잔치, 정면의 십자가상과 벽면에 늘어붙은 '십자가의 길'용 그림들,

세속의 햇살을 정제해서 들이려는 듯한 딱딱한 표정의 스태인드글라스까지.


성당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 빵을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잠시 구경했다. 여기도 옥상 돔에 올라가 전망을

바라보는 코스가 있나보다. 사람들이 줄서서 티켓을 사고 있었지만, 어제 판테온도 가보고 그곳의 돔에 올라

전망도 보았던 나는 그냥 스킵, 차라리 몽마르뜨 언덕 주변을 헤매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번에는 정면에 난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생각했던 길은 정면에 난 길로 쭉 내려가며 주변길을 더듬어 보다가,

가까이 있는 2호선 앙베르(Anvers)역으로 갈 생각이었다. 내려가면서 만난 한국인 여행객, 요 며칠 마주치지 못한

흔치 않은 한국인이라 어쩔까 생각하다가 그냥 조용히 모르는 척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어찌 알았는지 내게

한국인이시죠, 하며 말을 거는 아저씨. 가족 사진 한 장 찍어드리고 나도 사진 한 장 부탁드렸다.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한 마음에 계속 뒤를 돌아보며 다른 여행객들을 분별해 보게 된다. 그치만 아무리 돌아봐도

잘 모르겠고, 오히려 자꾸 눈에 들어오는 건 사크레 쾨르의 세 봉우리. 뫼산 山자의 오리지널이 여기 있었구나,

싶기도 하고...고작 해발 130미터라는 이 몽마르트 언덕의 정점에 선 이 성당이 파리 코뮌을 속죄한다는 게 대체

어떤 의미일까 자꾸 반감이 들기도 하고. 뭘까, 파리 코뮌을 세웠던 시민들의 반기독교적, 반종교적 '행태'에 대한

죄사함을 대신 빌어주겠다는 건가.


그게 좀 불분명해 보인다. 파리 코뮌을 프랑스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프랑스의 거울에

비춰보는 한국. 한국은, 멀리 갈 것도 없이 80년 광주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걸까.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녀석과

숨이 턱까지 닿도록 내달려 들어섰던 저녁무렵 광주 구 묘역의 황량하고 신산한 분위기가 떠올랐다.

하얀 빛을 머금은 사크레 쾨르 성당과 새초록의 잔디. 그리고 빗발이 오락가락하는 우중충한 하늘.

어쩌면 사크레 쾨르의 정면을 보면서 걸어 들어왔으면 더 멋졌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지나다가 어느 순간 나뭇가지에 살풋 가리워진 하얀 건물을 마주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불쑥 다짜고짜

흰 몸뚱이를 내팽개치듯 완전히 내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사크레 쾨르 성당과 희롱하며 다가설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내가 온 길은 뒷통수를 갈기러 살금살금 까치발로 숨어들어온 뒷길이랄까.

루브르 궁전의 야경을 보고 싶었다.

저녁을 든든히 먹으니 파리 시내 곳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쌀쌀한 밤바람이 한결 수월하게 느껴졌다. 조금은 더

매끈하고 조금은 더 시원하다는 느낌으로 바람을 등에 지고서는, 불쑥 치받은 생각을 따라 걸었다.

오...유리 피라밋을 밑에서부터 다시 지탱해 세우는 듯한 저 조명의 힘. 그리고 멀찌감치 떨어져서도 궁전의 얼굴이

보인다. 자동차 앞모습을 보며 사람의 찡그린/화난/웃는/사념에 잠긴 모습을 쉽게 떠올리듯 건물의 전면을 보고

사람의 표정을 읽어내자고 한다면, 아마 루브르 궁전의 표정은 왜 영화 스크림에 나왔던 유령마스크 같다는 생각.

혹은 뭉크의 작품 '절규'의 표정을 살짝만 완화시킨다면 루브르 궁전의 표정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가서 볼수록 유서깊은 루브르궁전의 삼층 창문은 속이 퀭하니 들어간 동공처럼 보이고, 일층의 입구는

ㅇ모양으로 모은 입술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옆에서 광선검 두 자루가 서로 챙캉대며 부딪히는 듯한 느낌의

유리 피라밋 실내 조명.

유리 피라밋 주위를 둘러싼 분수에 물결치는 백색의 불빛너울. 낮에 사람이 미어터질 듯이 많았을 때에는 미처

눈에 띄지 않았던 분수였는데, 역설적이게도 어둠이 공간에 들이차고 나니 분수대의 조용한 반짝임이 멀리서부터

눈에 와 박혔다. 낮에 왔던 루브르 궁전과 유리 피라밋과는 영 다른 느낌.

루브르 궁전에서 튈를리정원 쪽을 아무리 눈여겨 보아도 불빛이 거뭇거뭇하니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생선 비늘같기도 하고 뭔가 기하학적인 무늬가 아름다운 유리 피라밋이 속이 비치도록 투명한 불빛에 힘입어

둥실 떠올라 있는 풍경은 정말 쉽게 눈을 뗄 수 없었더랬다. 더욱이 루브르 궁전의 화려한 노란빛 조명이 백색의

유리 피라밋 조명과 마주 서 있는 풍경이란..
궁전의 앞마당에는 가로등 이외에도 다른 조명이 여럿 설치되어 분위기를 더욱 화사하게 만들고 있었다. 예컨대

위의 사진에서처럼, 마치 불을 켜든 청사초롱을 바닥에 내려놓은 것처럼 네모난 조명틀 속에서 빛나는 백열등 불빛.

사실 유리 피라밋은 단순한 사각뿔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주위에 그보다 작은 몇개의 사각뿔

유리 피라밋이 호위하는 형태처럼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을 분수대와 분수가 메꾸고 있달까.

이미 어둠이 꽤나 짙어진 시간이었음에도, 사진촬영을 온 신혼부부가 언뜻 눈에 띄었다. 응, 이런 곳서

사진을 찍으면 기억에 남을 만한 사진이 나올 듯 했다. 뭐, 장비가 꽤나 전문적으로 갖춰져야 제대로

된 사진이 나올 것 같다는 전제조건이 있지만.

내가 찍었던 사진들은 아무리 조리개를 넓히니 어쩌니 해도 시시각각 깊어지는 어둠의 힘을 못 이기고

하나둘 꺼먹꺼먹하게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저 뒤에 보이는 하얀 웨딩드레스의 시커먼 새신부.

이쯤되면 완벽한 반영이다. Reflection. 뒤집어서 놔도 금방 알아채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하기야

찍고 나서 한동안은 이 사진이 대체 어디가 위일지 감도 안 잡혔었으니깐.

유리 피라밋의 반짝임에 혹해서 한동안 몰입해 있었지만, 사실 루브르 궁전의 화사하고 우아한 윤곽도

그에 못지않다. 바람결을 타고 어디서부턴가 들리는 바이올린 선율까지. 어느 거리의 악사가 고심해서

루브르 궁전의 어느 통로쯤에 서서는 소리의 반향을 맘껏 즐기며 켜고 있는 게다, 몇 번쯤 음정을

틀린다 해도 사방으로 튀어나가고 다시 반사되는 소리의 깊이와 울림에 쉽게 가려지기도 할 테고.

그러고 보면,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의 순간을 '현대'라고 규정짓고는 그 이전의 시간을

모두 '과거'라 해서 박물관 속 유물로 안치해 놓는 것들은 거개가 시각적인 것들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

그 밖의 다른 감각들..청각이라거나 후각이라거나, 그런 것들에 대한 과거의 정보는 대부분 휘발되어

버렸고, 하다못해 불과 한달전에 다녀온 내 여행에서 기억해 왔던 바이올린의 선율, 한줄기 서늘한

바람에 느꼈던 한기, 빵집에서 맡았던 그 고소하고도 기분좋은 냄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싶다.

이제부터 바이올리니스트를 찾으러 루브르 궁전의 내외곽을 돌아다니는 짧은 탐색의 기록.

음악 소리는 ㄷ자 모양의 루브르 궁전 건물에 부딪히고 꺽이는 바람을 타고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었지만, 막상

어디에서 나는지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구석 여기저기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나, 담배를

피우면서 우르르 몰려앉은 프랑스 청소년들, 아니면 나처럼 카메라를 한 손에 쥐고는 등에 가방을 둘러멘 여행자.

그리고, 마치 무도회라도 있는 양 불이 환하게 밝혀진 루브르 궁전.

조명의 질감이 이렇게 달라 보인다. 아마 찍은 시간대가 차이나서 이렇게 조명'빨'이 달라보이는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어둠이 내려앉음에 따라 변해가는 루브르 궁전과 유리 피라밋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은 놓쳐서는

안 될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저 안에는 '모나리자'가 있고, '성가족'이 있으며, 밀로의 비너스상이나 니케의 여신상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 작품이 한가득 전시되어 있댄다. 그치만 왠지 한밤에 바라본 루브르 궁전은, 그런 미술관 내지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고관대작들이 화려하게 치장하고 무도회라도 벌일 것 같은 곳이었다.

어렸을 적 빼놓지 않고 티비에 달라붙을 듯 봤던 달타냥과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그리고 포르토스가 나오는

만화영화가 뒤마의 '삼총사'를 처음 접했던 기억이다. 촌뜨기 달타냥이 왠지 밍숭하게 생긴 강아지로 출현했던

'동물의 세계' 버전이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는 아직 젖내나는 어린아이의 '인간' 버전이 있었다. 아라미스는

복슬대는 털이 고혹적이던 긴 속눈썹의 푸들, 그리고 긴 금발머리의 '알고 보니' 여자였다는 미남캐릭터로 나왔고,

아토스는 술잘 먹고 큰소리만 질러대는 마초같은 캐릭이었던 거 같다. 포르토스는 수염을 멋지게 다듬은 신사같은

이미지였던 거 같지만, 하도 어렸을 적이라 잘은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그 만화는 내게 일종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안기기도 했었다. 주인공은 오로지 하나, 달타냥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던 어린 내게, 달타냥보다 외모나 칼쓰는 솜씨에서나 우위에 서는 인물이 세명씩이나 균형감을 맞춰

'삼총사'로 등장하고 있다는 게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거 같다. 왠지 달타냥보다 다른 인물에게 무게가 실린다

싶으면 기분이 상하기도 하고, 달타냥한테 괜히 미안해하기도 하고 그랬던 거 같다.

되게 유치했던 거 같기도 하지만, 사실 그런 식의 캐릭터에 대한 충성심이란 건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저 '무한도전'을 먼저 보기 시작했다는 이유 하나로 '1박2일'이나 '패밀리가떴다' 같은 후발프로에 대한

경계심을 품는다거나, 어느 순간 '패밀리가떴다'를 보며 웃고 있는 나를 의식하며 '무한도전'의 여섯 멤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거나, 별반 어렸을 적과 달라진 게 없는 정신상태랄까.


어쨌거나...개와 인간, 두가지 버전의 '달타냥과 삼총사'(기어이 만화영화 제목을 내마음대로 지어부르고 있다) 

만화의 공통적인 적은 바로 리슐리외, 루이 13세 치하의 당대 프랑스를 주름잡는 재상이었다. 개로 표현할라치면

턱밑에 주름이 꼬깃꼬깃하고 눈가는 음흉한 게 다크서클이 근육으로 안착해 버린 불독..이었던가, 그리고 사람으로

치자면 속에 구렁이를 댓마리쯤 숨기고 있는 모사꾼이자 음모가로 나왔던 거 같다.


그렇지만 리슐리외는 사실 훌륭한 재상이었다. 귀족들간의 권력 암투로 혼란해진 프랑스를 안정시키고, 왕권을

강화하여 절대주의의 기반을 닦은 유능한 정치가였다는 게 역사가들의 중평인 게다. 다시 한번, 캐릭터에 대한

충성도를 시험에 들게 하는 순간이다. 새롭게 알게 된 리슐리외가 좋은가, 그저 어려서부터 주인공으로 친숙했던

달타냥과 삼총사가 좋은가.

주인공을 누구로 한 이야기를 듣는지, 그리고 누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지..라는 문제는 이래서 중요하다.
서설이 길었다. 그가 살던 저택, 그가 죽고 나서는 왕가에 기증되어 유소년기의 루이 14세가 머물던 곳에 갔다.

이름도 팔레 루아얄, Palais Royal이라곤 하지만 그다지 궁전의 기품이나 긍지높은 고고함은 엿보기 힘들었다.

이미 그 앞마당은 수백여개에 이를 것 같은 얼룩무늬 원기둥으로 점령당해 있었는데, 아마 공공장소에 설치된

현대 설치미술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들이 폴짝폴짝 뛰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깡충대기에는 스스로 너무

수줍음이 많아져버린 어른들은 그 위에 올라 사진을 찍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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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는 들어갈 수가 없는 듯 했다. 무작정 앞마당을 따라 걷다보니 또 이상한 분수가 나온다. 어디서 본 거 같다

싶더니 라데팡스 가는 길에 마주쳤던 '스댕 재질'의 설치미술작품과 비슷하지 싶다. 셀카에 지친 내가 반사물을

이용한 사진은 어떨까 잠시 장난치고 있을 때 눈여겨 보았던 그 볼록거울같은 은색 구.

그걸 몇개 이어붙이니 저런 분수대가 되는구나 싶었다. 라데팡스의 그것처럼, 역시 파란 하늘과 쿠키색 건물과

카메라를 들이댄 내 모습을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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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이 노는 걸 보면서 살짝 놀랐다. 어렸을 적 우리가 하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랑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었던 거다. 문득 생각난 김에 네이버에 물었더니 프랑스의 나라꽃이 백합인지, 흰붓꽃(아이리스)인지 명확치

않은 것 같지만..어쨌든 그렇담 이 아이들이 저 하얀 기둥에 등돌리고 웅얼대던 프랑스어는 '백합꽃이 피었습니다'

라거나 '아이리스가 피었습니다'라는 의미였던 걸까.


해맑게 뛰노는 아이들, 회전목마를 좋아하는 아이들, 그리고 '아이리스가 피었습니다'를 하며 노는 아이들.

보기에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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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 정원은 이곳 역시 잘 가꾸어져 있어서, 가로수 두 줄로 이루어진 산책길은 선명한 아치를 그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구김없고 때묻지 않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여전히 맴돌고 있어서 그런지 군기 잘 잡힌 신병처럼 각잡혀서

서있는 나무들을 너그러이 보아넘길 만큼 마음이 후해진 이후, ㅁ자의 건물로 감싸진 마당이 그 자체로 포근하고

넉넉한 휴식공간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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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 미술관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점심시간이 지난 2시경, 우선 근처의 까페에서 배를 채우고 입장하기로 했다.

입구 바로 옆켠에 있던 까페에서 치즈샌드위치 하나랑 와인 한 잔을 주문했더니, 와인잔이 철철 넘치도록 따라진

레드와인이 나왔다. 물론 잔이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잔이 찰랑이도록 따라마시는 와인이라는 거.

한국엔 이렇게 편히 마시는 와인이 아니라 고급스러운 몇 만원짜리 잔에 살짝 따라마시는 와인만 들어온 게 애석할

따름이다. 치즈가 듬뿍 들어있던 샌드위치를 먹고 힘내서 로댕 미술관, 드디어 입장.

로댕 미술관의 티켓이라기엔 좀 어색한 그림이 들어가 있다. 알고 보니 이 곳에는 로댕의 대표적인 조각들 말고도,

쉽게 보기 힘든 그의 습작들과 소묘도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 그렇지만 나더러 티켓 전면에 넣을 만한,

로댕 미술관을 대표할 만한 것을 고르라면...아마 정원 맨 안쪽에 있는 긴의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계속된 여행이 아무래도 피곤했던 탓일까, 부쩍 심해진 일교차 때문일까, 그것도 아님 방금 홀짝대며 마셨던 와인

때문일까, 정원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도착한 정원 끝에는 정말 편안해 보이는 긴의자가 있었고, 잠시 낮잠이

들고 말았다. 그늘의 서늘함이 으스스한 추위로 느껴질 즈음이 되어서야 겨우 깨서는 한동안 정신을 못차린 채

멍때리고 있었지만, 짧은 낮잠 덕에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로댕 미술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지옥의 문. 로댕의 대표작이다. 예술작품 중 이론적으로 몇 번이고 같은 작품을 찍어낼 수 있는 판화나 조각 같은

작품에는 작가가 몇 분의 몇 이런식으로 자신의 작품을 '인증'한다. 예컨대 7/150 이라고 하면 총 150개의 작품이

복제된 것까지 작가의 작품으로 인증이 된 것으로 그중 일곱 번째로 만들어진 작품이란 이야기다. 한국에도 지옥의

문이 하나 '오리지널'로 있다. 리움미술관에 일곱번째인가 여덟번째인가로 제작된 작품이 있다고 하는데, 글쎄..

작품이 '오리지널'이라는 작가의 인증 절차라는 건, 사실 작품의 희소성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가장 크지 않을까.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일본 애니에 나오는 차원의 문이랄까, 그것의 이미지가 아마 이 지옥의 문에서 차용된 것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강철의 연금술사'의 이미지가 강했거나, 혹은 매우 유사했다. 말로만 진부하게 들어왔던

지옥의 문이라는 게 갖고 있는 아비규환과 혼돈의 이미지를 다른 곳에서 먼저 접해 버려 김이 빠져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 뭐랄까, 마치 관용구처럼 쓰이는 몇개 단어들..'밤꽃향기'라거나 '아지랑이'같은 표현들이 애초 유래한

평화로운 농촌에서 떨어져서 이상한 야설이나 아스팔트 위에서 뒹구는 단어가 되어버린 것처럼.

마치 그 옛날 지구를 떠받치고 있었던 아틀라스나 타이탄들처럼,(정확히 이 아이들이 지구를 들었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대충 그런 근육 불뚝거리고 인고의 세월이 깊은 주름으로 파인 신족이라고 치고,) 세 사람이 어깨를

잔뜩 긴장한 채 햇살을 떠받치고 있다. 저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해 보이는 근육의 꿈틀거림. 인간이다.

아무리 강인하게 단련이 된다 해도 부드러운 질감과 곡선형의 윤곽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아무리 부드럽고

혹은 허약해 보인다 해도 저치들은 지금 햇살을 이고 있다.

이 동상은 왠지 이목을 끌었다. 언젠가 티비에 나왔던 60대 보디빌더같은, 그런 생뚱한 조합에서 기인한 걸까.

얼굴은 꽤나 나이들어보이는 데다가, 굳게 악다문 입은 왠지 세상에 치이다 맺힌 근성이랄까 똥고집을 느끼게 한다.

그러면서도 아직 시들지 않은 육체는 나ㅡ름 긴장감이 풀리지 않은 근육으로 감겨 있는 듯이 보인다.

빅토르 위고를 기리며 제작했다는 조각. 로댕 미술관에 들어서서 길게 이어진 정원에는 몇걸음 옮길 때마다 멋진

조각들이 자리깔고선 날 기다리고 있었고, 그때마다 몇걸음 걸어들어가서 줌-인했다가, 다시 몇걸음 빠져서

줌-아웃했다가, 한바퀴 돌아보기도 했다가, 그런 스텝을 밟았다.

정원 끝에서 날 기다리던 긴의자들. 이미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한 채 햇볕을 쬐며 누워서 책을 읽거나 애인과

소곤거리거나 혹은 아이를 보고 있었다. 냉큼 자리를 잡고는 내가 걸어온 쪽을 향해 사진 한 장. 덤불로 마치

성벽처럼 담을 쌓고 세 개의 아치형 문도 내놨다. 그 사이로 살짝 보이는 로댕미술관 건물.

토막잠이나마 자다 일어났더니 몸이 으슬으슬했다. 원래는 긴의자 사진도 좀 찍고 주변의 짙은 숲 분위기를 한껏

살린 사진도 몇 장 남기려고 했었지만 모두 포기, 그나마 햇볕이 나뭇가지에 걸리지 않고 바로 내리쬐는 곳으로

나와 몸을 덥혔다. 깔끔하게 관리된 정원, 그리고 깔끔하게 지어진 건물.

이건 로댕의 비너스라 해야 할까. 뭔가 다른 이름을 붙였겠지만, 왠지 팔이 없는 걸 보면 비너스..란 이름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이건 지옥의 문 위에 걸터앉아 뭔가를 고민하는 표정의 '생각하는 사람'. 영어로 된 작품 제목은 'the Thinker'.

할머니 두분이서 그 앞 벤치에 앉아 이 생각에 잠긴 녀석을 바라보고 계시길래 사진 한장을 부탁드렸다. 외국에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자기 사진을 남기기란 얼마나 귀찮고도 번잡한 일인지. 한국 사람들만큼 사진 잘 찍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다. 프랑스 할머니들이 두 번만에 그럭저럭 포착하는데 성공하신 '생각하는

사람 따라하기'.


사실은 좀더 무릎을 접어 올리고, 고개를 숙이고, 발도 11자로 모았어야 했다. 왜 내가 같이 여행다닐 사람 없었던

걸 아쉬워하는 때라는 게 고작 요런 사진을 좀더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일까.ㅎ

그래도 할머니들은 연신 웃어대시면서 재밌다고 야단들이셨으니 뭐, 나쁘지 않다.

건물 안에 들어서니 로댕의 초기부터 말기까지, 그가 창조해낸 온갖 청동조각, 대리석상, 소묘들이 가득하다.

그 중 아마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다고 알려진 까미유 끌로델의 두상이지 싶은데, 무언가에 놀란 듯한 눈매를

보고 장난기가 발동했다. "엄머~ 다시 한번 말해봐~ 뗄미뗄미~"

2층에 걸쳐있는 그의 작품들을 둘러보고 나왔지만, 애초 정원을 거닐며 만났던 로댕의 대작들이 남긴 기억이 워낙

강렬했어서 사실 건물 내의 작품들은 그다지 내 맘을 흔들지 못했다. 건물 밖에 나와서 다시 정원을 휘 둘러보던

중에 만난 장미꽃들. 그새 내 눈이 반듯하게 정돈된 프랑스식 정원과 화단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이렇게 삐쭉대고

하늘높이 피어오른 장미를 보니 왠지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느낌이 신선했다.

로댕 미술관의 브로슈어.


입구에서 정원 반쪽.

정원 반쪽에서 끝까지 나머지 반쪽.


1층. 알겠지만 어떤 나라들은 한국에서 1층이라 불리는 층을 'ground floor'라고 하고, 그 위부터 '1st floor'(일층)

이라고 한다. 프랑스가 그랬다.

그래서 여기가 한국식으로는 2층, 프랑스식으로는 1층.


오랑주리 미술관의 정문 앞에는, 두 남녀가 정열적으로 키스를 나누고 있는 청동상이 놓여있다. 왠지 정면에서

바라보기는 겸연쩍어서 살짝 가재눈으로 흘깃대야 할 것처럼, 그렇게도 뜨겁게 자신들의 감정에 몰입해 있다.

이게 로댕 미술관 1층 로비에 있는 '키스'라는 작품과 같은 거다. 다만 미술관 내의 '키스'는 흰색 대리석이었다면

이건 청동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다를 뿐..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이 이렇게 다르구나, 라는

새삼스런 깨달음이랄까. 키스하는 이 두 남녀의 몸을 보아도 동그란 어깨와 완만한 둔덕이 피어오른 여체와

어딘지 우악스럽고 쫀득하게 강인해 보이는 남성의 몸이 그럴듯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바토무슈란 파리 세느강을 내달리는 여러 유람선 코스 중의 하나를 담당하는 유람선이라고 한다. 메트로 9호선

Alma-Marceau역에서 내려서 Pont de L'Alma 다리아래에 승차장이 있는데, 대략 1시간20여분간 유람선을 타고

세느강을 따라 오르내리고는 원래 위치로 돌아오는 코스. 에펠탑이 굽어보는 선착장에서 그랑/쁘띠팔레를 지나

콩코드광장, 루브르박물관, 시테섬, 노틀담성당, 퐁네프 다리, 오르세미술관, 알렉산더 3세다리 등을 돌아서 다시

에펠탑 쪽으로 돌아오는 게다.


애초 내게 이 유람선을 꼭 타고 돌아오라 했던 여자친구는 특히, 야경을 보고 싶다면 9시쯤에 선착장에 나가라는

조언을 줬었고, 그 말을 명심했던 나는 에펠탑이 이미 파란색으로 물들어버린 저녁 시간에 맞춰 선착장에 도착했다.

철골 하나하나를 모두다 파란 빛깔의 물감통 속에 빠뜨렸다가 다시 조립해낸 것 같이, 에펠탑을 구성하는 뼈대가

파르스름한 빛을 머금고 있다. 노란 별 열두개와 파란 탑의 모양새는 마치 어렸을 적 디즈니 만화에서 봤던 마법사

모자같기도 하고..왜 마법의 힘을 가진 모자를 훔쳐 썼던 마법사의 제자가 물긷는 빗자루 하인을 수없이 만들어

놓고는 온동네를 물바다로 만들어버렸던가..그런 이야기에 나오는 높고 뾰족한 모자 말이다. 

시간간격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9시부터 한 십여분, 저렇게 에펠탑은 반짝이기 시작한다. 마치 별들이

쏟아져 내려와 에펠탑에 부딪혀 명멸하는 것처럼. 그 불빛들이 저마다 번갈아가며 수다스럽게 깜빡이는 호흡이란

건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흔히 보이는 전구들의 깜빡임보다 두세배는 더 빠르지 싶다.

파리지앵은 저 요란스럽게 빤짝이는 불빛쇼를 '창녀같다'며 싫어한다고 하지만 글쎄..에펠탑에 올랐을 때 전망대

2층에서 봤을 땐 천지사방에서 불빛이 휘황하게 번쩍이는 느낌이 천박하다기보다는 무지 화려하다는 느낌이었다. 

그치만 역시 자주 보니까 질리더라. 나중에는 역시 파랗게 단정한 에펠탑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동의하게 되었다.

마치 그런 취향의 동조로 파리지앵에 한 걸음 가까워지기라도 할 것처럼.


에펠탑을 지나 선착장에서 배를 타려고 내려갔다. 관광버스가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을 보고 사람들이 전부

야경보겠다고 유람선 타러 온 게 아닐까, 잠시 긴장했지만 그렇진 않았다. 물론 유람선이 꽉꽉 찰 만큼 사람들이

많았고, 자리도 제대로 못 잡겠다 싶어 유람선 한 척은 먼저 보내주고 삼십분을 더 기다리긴 했지만.

유람선 출발. 생각보다 빠른 속도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방송으로는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어..까지

나왔던 듯 하다. 좌석마다 전화기처럼 생긴 기구가 놓여 있어 유람선이 지나는 주변 풍경이나 건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머..딱히 그런 설명이 없어도 이제 어디에 무슨 건물이 있는지, 저게 무슨 건물인지 보면

딱 알아볼 수 있을만큼은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냥 아무 도움없이 유유히 배 밖의 풍경을 감상했다.

한강 유람선을 작년에 한번 탔었는데, 계속 이상한 트로트 음악만 시끄럽게 나와서 영 거슬렸던 적이 있다. 그때도

야경을 보겠다고 밤에 탔었지만 생각보다 한강변의 야경은 어둠이 깊었고, 그다지 조명을 아름답게 꾸며놓지도

않았다고 실망했었다.

단순비교는 무리일 테다, 왜냐면 파리의 세느강은 한강의 폭에 비하면 개울 수준이랄까, 유람선 선로로 치면

왕복 이차선정도일 거 같고, 한강은 못해도 왕복 육, 팔차선은 될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왼쪽, 오른쪽의 풍경이

훨씬 손에 잡힐 듯 잘 다가온 탓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확실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건물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이 사진은 세느강이 고작해야 이차선이지 않을까, 라는 내멋대로의 추측에 근거가 될 만한..교차하는

두 대의 유람선. 어둡지만 않았다면 상대 배에 누가 탔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가 충분히 식별가능할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바람이 무지하게 차가웠다. 유람선 내에는 아크릴로 천장이 덮인 실내 공간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배의 가장자리에

기대어 바깥을 구경하다가 추워지면 들어가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메꾸고, 그런식으로 로테이션하며 사이좋게

관람했다.

시테섬을 지나 노틀담 성당이 보이는 곳까지 이르렀다. 시시각각 깊어지는 어둠에 사진이 조금 흐릿하게 나왔지만,

불빛을 무수하게 깨뜨려서 퍼뜨리는 세느강의 수면과 어둠속에서도 선연한 노틀담 성당의 멋진 정면 모습은 왠지

가슴 속에 잔잔한 울림을 던져주었다.

몇 개의 다리를 지났고, 그러한 다리마다 지상에선 볼 수 없던 곳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들과 그림들을 품고 있음에

탄복했다. 사실 그저 밋밋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강을 가로질러 이어주는 기능적인 면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미적인 건축물이자 감상물이라는 마인드가 부러웠다.

갑자기 선내가 소란스러워졌다. 평온하고 경쾌한 '솔'음을 줄곧 유지하며 몇개국어로 가이드 멘트를 해주던 누님이

높은 '도'음쯤으로 음정을 높이고는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며, 금방 나타날 다리를 지날 때 눈을 감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뤄질 거라고 했다. 글쎄,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하나. 곰곰 생각하기엔 배가 너무 빨랐고, 다리가

너무 순식간에 나타났다. 이건 뭐 유성이 꼬리를 끌며 떨어지는 걸 보고 소원을 빌라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하고

툴툴거리면서 우선 잽싸게 사진부터 찍었다. 한두장 찍고는 흔들린 사진에 불평할 겨를도 없이 초스피드로 눈을

감고 소원 하나, 둘, 셋..이것 저것 손끝에서 비비적대며 우선순위를 가늠하다가 끝나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잘들 빌었을까. 다음에 또 이런 경우가 생기면 뭘 빌어야 할지 미리 준비해 둘까..하고 생각한 다음

순간, 세느강 수면에 비춰지는 불빛 쪼가리들의 일렁거림이 시야를 붙잡았다.

주홍빛으로, 하얀빛으로 반짝이며 광택을 흘리는 실크 재질의 천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 느낌이다.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처럼 대담하게 그어진 굵고 힘찬 획들이 세느강 위에 온통 흩뿌려져 있다.

멀리 에펠탑이 다시 보이고, 강변의 둥근 가로등불이 세느강에 떨궈져서는 수십배의 빛무리를 만들어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살짝 센치해지기도 하고, 지금 내 머리를 흩날리는 바람을 볼 수 있다면 아마 저런 느낌의

파장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게 큰 의미나 울림을 던지지 못하는 수많은 다른 객체와 타인들과 섞여 있던 낮과는 달리, 니가 누군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어둠, 그리고 불빛. 저런 스포트 라이트를 받을만한 건물이 많을수록 야경이 멋져지듯이,

저런 아우라를 지닌 사람이 주위에 많을수록 '삶'이라는 여행이 멋져질 게다.

그새 더욱 농밀해진 어둠 속에서 에펠탑의 파란 빛은 더욱 미묘해졌다. 주위의 검은 빛을 조금 덜어내서 파란 빛에

풀어냈는지, 조금은 어두워진 파란 빛깔이 어둠 속에 둥실 떠있다.

몇 장을 찍어 보아도 좀처럼 딱 이거다 싶은 사진을 못 고르겠었는데, 지금은 또 막상 이건 아니다 싶은 사진도

못 고르겠다. 이제 난 파란빛을 머금지 않은 에펠탑의 야경은 생각지도 못하게 되어버렸다. 매년 다른 빛깔로

탑을 치장한다고 하는데, 일종의 첫인상 효과랄까..아마 다른 색의 에펠탑을 보게 되면 아쉬움과 더불어 왠지

억지스런 꼬투리를 잡는 건 물론이고, 혼자만의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정말이지, 검은 밤에 파란색 에펠탑이 노란별을 두르고 서있는 거 말고, 어떤 그림을 더 상상할 수가 있을지.

빨간색? 보라색? 초록색? 노란색? 음...글쎄. 역시 파란색만한 게 없지 싶다.

티켓은 11유로였던가, 다른 미술관이나 건축물 입장료에 비긴대도 싼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꼭 한 번, 특히 밤에

탄다면 파리가 품고 있던 또다른 비경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곳을 찾아 나섰다. 추억과 사랑의 힘으로, 모든 걸 탈색시키고 휘발시키는 시간의 절대적인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던 공간.


노틀담성당이 서있는 시테섬의 남쪽 강변 건너편에는 영화 '비포 선셋'에서 9년만에 남녀가 재회하는 공간,

"Shakespeare and Company"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파리 여행을 떠나기 전

파리의 풍광과 그에 얽힌 이미지들을 머릿속에 꼬깃꼬깃 가져가겠다며 한번 다시 봤던 영화 중의 하나가

'비포 선셋'이었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후끈 달아오른 눈빛과 뉘앙스들을 서로에게 아낌없이 쏴보내던

그때와는 달리, 다소 주름살이 보이고 삶에 찌들어 보이던 그들의 모습에 살짝 실망하기도 했었다. 그치만

서로의 존재로 인해, 또 서로의 기억을 맞춰나가면서 점증하는 가슴속 진동으로 인해 조금씩 표정이 펴지고

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파워 오브 러브랄까.


생각보다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시테섬과 마주한 세느강 남안에는 아기자기한 골목길들이 이리저리 돌아

보고 싶지 않느냐고 유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이란 헤매는 과정이라고, 아무리 지도를 들고 나침반을 들어도

살짝 옆길로 새보기도 하고 크~게 돌아가 보기도 하는 게 여행이라면 어쨌거나 헤맬 수 밖에 없는 거라는 식으로,

내 빈약한 방향감각을 애써 옹호하고 있던 터였다.


내게 팔랑팔랑 손짓하던 매혹적인 골목길 중 하나. 저 좁다란 골목길은 어디로 이어질까.


어느 순간 덜컥 시야에 잡힌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낯익은 노란 간판. 큰길로부터 한발짝 물러선 채 놓인 건물,

그 앞에 놓인 수수한 화단. 그렇지만 그 성기게 피어난 작은 꽃들과 별 관리를 받고 있지 않은 듯한 화단이 왠지

모르게 서점의 운치를 더하는 것 같다.


책방 앞으로 한 걸음 내딛고 보니, 입구가 두개다. 왼쪽은 그냥 조그맣게 1층만 쓰는 곳이었고, 오른쪽 입구가

2층까지 이어져 있었다. 저 주홍빛 백열등이 오래된 장서들의 갱지색 종이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고 있다.


변장한 천사일지 모르니 낯선이에게 친절하라..라는 글이 적혀 있는 2층 계단끄트머리.

춥고 비 오는 밤

파리에 온다면

세익스피어 서점을 찾아요

반가운 곳이죠

 

그 서점 모토는

다정하고 따뜻하죠

변장한 천사일지 모르니

낯선 이에게 친절하라


이게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공식 노래라는 사실은 방금 다른 블로그들을 뒤적대다가 알게 된 사실.
 
(참조 : http://www.cyworld.com/eyebrowsmoon/367152)

공식 노래도 있는 서점이라니, 서울에 있는 인문사회과학 서점들도 자체의 노래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신림동에 있는 '그날이 오면' 서점의 공식 노래, '그날이 온댄다' 정도 어떨지.


2층에 있는 자그마한 서재. 창밖으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고, 사방에서 풍기는 책내음은 내 장활동을

활발하게 자극했다. 왠지 모르게, 학교 도서관이나 어쨌든 책냄새가 풀풀 나는 공간에만 들어서면 나는 모종의

욕구가 고개를 불쑥 치켜들곤 했다. 나만 그런가...ㅡㅡㆀ


나중에 내 집이 생기면, 저런 식의 서재를 꼭 하나 갖고 싶다. 정 안된다면 티비를 빼고 그자리에 서재를 마련하는

것도 꽤나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반강제로 티비를 몰수하고 책을 보도록 하는 것보다는, 어른들이

먼저 모범만 보여도 애들은 잘 따라할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찾고 있던 책이 있었다. Nelson Mandela의 'long walk to freedom'을 얼마전부터 읽고 싶었어서 여기저기

가격을 알아보다가 온 여행이었어서, 이왕이면 이곳에서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도장이 떡하니 찍힌 책으로

사들고 오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머릿속에서 순간 '롱워크 투 프리덤'을 샹젤리제 거리의 어느 이뿐 까페에서

펼치고 보는 그림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도 했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알파벳 순으로 대략...정말 대략 정리되어 있는 2층을 한바퀴 돌면서 찾았지만 못 찾고 카운터에 가서 물어보려고

계단을 내려서려는 내눈에 다닥다닥한 쪽지들이 들어찼다. 마치 '그날이 오면' 서점 앞에 빼곡하게 붙어있던

온갖 세미나, 뒷풀이, 술자리, 동문회 약속장소와 시간을 적어놓은 메모처럼. 이건 뭘까.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메모였다. 어느 나라에서 온 누군데, 이곳에서 이러저러한 느낌을 받았다며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글을 남기고 있었다. 말그대로 '포스팅'. 더러는 자신의 사진도 남겨 놓았고, 한글도

꽤나 많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 날짜가 꽤나 따끈따끈한 걸로 보아하니 서점측에서 관리를 하기도 꽤나 일이겠다

싶었다.



1층에 내려와서 카운터를 지키는 누님에게 책이 있는지 물었다. 컴퓨터를 사용해 책을 검색하는 것에 살짝 놀랐다.

마치 도서관처럼 퀘퀘하면서도 정겨운 오래된 책냄새가 가득한 이공간이라면, 왠지 컴퓨터와는 거리가 멀 거라고

은근히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내가 책의 소재 여부를 물은지 1초만에, 그녀는 부정적인 답을 내놨고, 난 조금 실망한

채 서점을 나왔다.


나오기 전 내 눈을 잡아끌던 조그마한 모금함..이랄까. 커피 한잔 마실 값을 모아서 젊은 작가들이 책을 쓸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취지의 글이 이 모금함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누구도 쉽게 잊지 못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좋아했어도 헤어지면 쉽게 잊어

  물건을 바꾸듯 딴 사람을 만나지

  하지만 난 누구도 잊을 수 없어

  누구나 각자의 특징이 뚜렷하거든

  한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대체 할 순 없잖아

  그래서 더 소중해지게 돼

 즐기기만 하는 상대라도 그럴꺼야

 그 사람의 작은 특징들이 생각나서 마음을 어지렵히거든

 사람들 하고도 그래

 저마다의 작은 특징을 발견해서 감동하고 언제까지나 그리워하지

  그래서 누구도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순 없어

 자기도 그랬어

  수엽에 붉은빛이 돌잖아 

 떠나던 날 아침에 햇빛을 받아 붉게 빛나던 모습

 

그 모습을 기억하고 그리워 했어

                                     - 줄리델피의 대사中 -(참조 : http://cafe.naver.com/firenze.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74535)

 


오늘 예약했놨던 항공권을 예매하면서 여행 준비가 끝났다.

국제학생증도 만들었고, 여행자보험도 들었고, 티켓팅도 했고 여비도 내가 할 수 있는데까지는 모아서 환전했구.

짐싸야 할 것들 목록도 챙겨봤고, 여행수첩도 마련했고.


음...이제 떠나기만 함 되는군^^*

그래도 연초에 삘받아서 계획했던 거, 글구 최대한 내힘만으로 가보려 한 거 대략 성공한 거 같아서 뿌듯하네.ㅋ

첨엔 동유럽을 가볼까 했다가 중동쪽으로 선회해서 4개국 정도 욕심부렸지만, 머, 터키 열흘, 이집트 열이레쯤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누군가 유격훈련가냐고 걱정하길래...ㅡ.ㅡㆀ


이제야 살짝 긴장도 되지만 그보다는 역시 흥분흥분.ㅋㅋ

오늘은 홍대입구 쪽서 일을 했는데, 용접봉에서 뿜어나오는 빨간 쇳물방울이 머리위서 폭격하는 와중에 4층높이로

100키로짜리 ㄷ자 프레임을 200개 올리는 졸라리 빡센데다가 사실 '일당잡부'가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 말았다.

어찌나 짱나던지.--++

게다가 인력소 측에선지 아님 그 현장 측에선지 내 일당 5천원이 새고 있었단 말이다. 밥값 만원 포함해서 칠만원,

소개료 오천원 빼고 오만오천원을 받아왔다던데, 현장서 하는 말은 총 칠만오천원, 밥값빼고 육만오천원에서

소개료를 10%빼는 게 아니냔 얘기.


거기서 쭈욱 일하던 용역아저씨들 살벌히 욕해가며 열받은 모습도 볼만했지만, 용역업체 소장이랑 현장 책임자를

통화시켜 누가 거짓말하는지 확인해보자는 내 말에 걍 우물우물 넘기려는 모습이 참...할아버지뻘 되는

아저씨들한테까지 농을 건네며 하대하는 소장의 위세란 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또한 '경험'삼은 알바생의 입장과 선택의 여지없이 '밥줄'삼은 직장인의 입장..그런 차이.


이제 며칠만 더함 아마 앞으로 내가 '알바'삼아, '경험'삼아 노가다를 뛸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묘한

자유스러움으로 먼지와 흙이 범벅된 차림으로 돌아다니거나(용산역 만남의광장), 묘한 기분으로

근처 유흥가를 돌아다니는 커플을 보거나(한양대, 홍대입구), 혹은 체력이 바닥에 떨어진 걸 절감하면서 그저

시간만 기다리며 헐떡이기도 하고, 아저씨나 나같은 알바생들이랑 무지막지한 스킨십을 거쳐 친해지기도 하는

그런 일이었던지라...재미있었다.ㅋ
제대 전날까지도 작업 절라게 시키는 이넘의 부대인지라 나역시도 원래는 오늘부터 쭈욱 작업이 있었던 게다.

콘크리트 비벼서 흡연장 다시 만들고-저번 외박때 경력을 쌓아놔서 다행이다..그땐 칠만원이었는데..ㅠ.ㅠ-

내무실 건물 도색 다시 싹 하고..젠장, 더이상 말하기도 짱나는군. 그나마 직전에 나간 녀석들처럼 위험한

제초작업이 아닌게 다행인가.


어쨌거나, 시간이 해결해 줄테고, 여행 계획 다 짰다.

터키 11일, 그리고 이집트 17일.

애초에 생각했던 터키-시리아-요르단-이집트가 무리였다 싶어서, 일단 글케 경로를 축소하고 깜냥을 줄여낸담

계획을 짜다 보니까 처음 생각했던 것보단 덜 아쉽네. 내 첨 계획을 본 누군가 그랬듯 유격훈련 가냐는 식의

일정이 아니라, 터키-이집트를 좀더 여유롭게 '즐기는' 데 충분할 거 같기도 하고.


뭐랄까, 못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가게 될 길에 대한 기대나 설렘..이 역시 훨씬 크다. 단순해서 그런건지,

아님 '현실적'인 틀지워짐을 납득한 탓인지 간에, 의외성과 불확정성이 점차 줄어가고 일종의 '정향'이 가다듬어

질수록 일말의 안도감이 드는걸 스스로 느끼고 있다. 흠...글타고...내가 무슨 계획만능주의자라거나

짜여진 대로 안가면 클나는줄 아는 넘일 턱도 없고, 여전히 이집트 쪽의 일정은 닫혀 있지 않으니...


여행 계획 '대략' 다 짰다고 얘기해야 할라나.
티켓을 예약했다.

이스탄불 in, 카이로 out. 일정을 짜다보니 계속 질문이 생긴다.

뭘 보려 하는건지. 무얼 기대하며 가는 건지.


구체적으로는, 섭렵하는 나라수로 치면 자그마치 4개국을 한달만에 주파한다는 걸 내 자신에게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국경에 개의치 않고, 걍 북회귀선을 넘어 적도로 달리는 그 코스의 몇개 지점들을 꾹꾹 눌러 밟으며..예컨대

터키의 안탈랴,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어디의...이런 게 아니라 걍 사람 사는 곳, 글케 둘러보려한다.


여행, 몇 군데의 꼭 보고 싶은 장면들..터키의 카파도키아라거나,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요르단의 와디럼 사막,

아님 이집트의 피라밋과 나일강위를 미끄러지는 펠루카...그런 것들을 꾹꾹 눌러 밟으며 나머지는 최단경로상에서

해결해 봐야겠다. 자꾸 스케줄 잡다보니까 시간이 참...모자르단 생각이 들지만. 어쩌겠어.ㅋ


어느새 이럭저럭 쌓아놓은 자료가 A4 한권(250장)이 넘어버렸다. 그걸...짱날 때 담배를 입에 무는 대신

눈에 물고 있다.
엊그제, 둘째날 갔던 현대산업개발 오피스텔 현장 갔다가...잠시 옥상서 시멘트푸대 나르던 중 코엑스에 한눈을

팔았는지 못을 '삽입'해 버리고 말았다. 발바닥에다가. 푸욱.

자재에 박혀있는 못이 각목을 받침삼아 하늘로 솟은 자태가 워낙 공공연하기로 항시 주의깊게 발딛을 곳을

마련하고 있었으나, 벌써 몇번씩 운동화 바닥이 못을 맞이했다가 내 발바닥의 눈부신 반사신경에 기대어

소박놓기를 거듭했던 터였다. 그치만 푸대의 무게가 어깨에 실리고, 고개의 움직임이 180도로 제약되어 버린

상황에서 더구나 뒷걸음까지 쳐버렸으니.


무언가 쑤욱 피부조직을 날카롭게 헤집고 들어오는게 꼭 주사맞는 느낌이 들었다. 절라 큰 콘크리트 못.

10센치는 되려나..쫌 깊게 박혔는지 발을 들고 휘둘러도 각목이 발바닥에 붙어있다, 달랑달랑 딸려서 말이지..쳇.

어느새 땀에 흠뻑 젖은 채 신발과 양말을 벗고 주저앉아 피를 빼내고 있었더니 작업반장님이 '연장'을 들고 쪼그려

앉는다. 망치로 발바닥을 치니까 그 리듬에 맞추어 피가 뽁,뽁,뽁 뿜어나왔다. 제길, 한두대는 아프더니 그담엔

발바닥이 얼얼한게 마비된 느낌이다, 내발같지가 않은..--ㆀ


대충 피가 다 나왔다 싶으니까 반장님 얘기가, 파상풍걸릴 수도 있으니 집에 가서 약 사 먹으란다. 소염제.

그리고는...계속 나르랬다.-.ㅡ^


오후에, 콘크리트국물이 14층부터 비산되어 마침 옆에 있던 주차장 차들에 잔뜩 튀었단다, 튀었다고 닦으랜다.

갑자기 세차요원으로 변신해서, 차를 한 스무대 닦았다. 그러고 나니 또 딴 쪽으로 가자고, 그쪽이 더 급하다고

델꼬 간다. 크라이슬러 한대랑 엑센트가 완전히 점박이가 되어있었다. 자재반장도 나오고 호스까지 동원되서

-걸레질 잘못하면 상처난다고-차를 닦기 시작했다. 크라이슬러만. 비싼 차니까 조심하라고 잔뜩 호령해대며

이것저것 반말로 시키는 게 절라 맘에 안들었는데, 30분동안 그 차 한대에 네명이 달라붙어 완전 새차를 만들어

버렸다.


그리곤 어디서 비니루 갖고 와선 차를 아예 포장을 해버린다. 마른 걸레로 물기까지 싹 제거하고는 비니루로 차를

감싸고 청테이프로 고정시켜 버렸다. 그 사이, 옆에 있는 액센트는 머...가끔 호스의 물길이 엇나가면 잠시

씻겨지고 옆차에 달라붙은 사람들이 몸으로 뭉개면 그때서야 잠시 닦여지고. 

걸레질 함 대충 하고, 대충 비닐로 덮어놓고 치웠다.


처음엔 외제차랍시고 절라 알아서 '기어주는' 분위기에 맘이 안 들었는데, 차닦다가 5시반이 넘어버리니 나중에 걍
 
세차하는 일 자체가 맘에 안 들었던 거 같다. 아님 나흘만에 첨으로 반말지꺼리하는 씹탱을 드뎌 만나서였는지.

결국 왜 기분이 드러워져 버렸는지 확실히 알지 못한채 5시 40분이 되어서야 일을 끝냈지..


물론 공사장측서 차를 닦아줘야 하는 게 맞을 텐데, 그 닦아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조차 상대와 자신간의 거리..

재정상태..혹은 그 상징에 따라 절라 편파적이라는 게 맘에 걸린다. 그게 실제로 편의적이어선지-돈많음 목소리도

클테니 나중에 골치아플수있겠지-아님 합리적이어선지-비싼 차니까 여차해서 보상들어감 부담되겠지-모르겠지만

액센트 타는 사람이 얼마나 불만 갖겠어, 외제차 타고 다니는 사람이나 권력있다는 사람들, 그리고 그에 따라

이렇게 다른 대접을 받는다는 게..
오늘은 창동, 북한산 인수봉이 희뿌연 스모그 사이로 희끗거리는 아파트 신축공사장에 갔었다. 완죤 전국구로

돌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침에 5시에 인나서, 창동역 앞서 바리바리 작업복을 가방에 담은 아저씨들 만나 북한산

I'PARK 공사장으로 갔었지...여긴, 얼마전 내무실서 후임들이 서울 여긴 얼마짜리고 저긴 얼마짜리고-마치 서울

사는 사람은 그 모든 집값과 노른자위를 다 꿰차고 있는 양-물어보는 와중에 내게 들이대졌던 신문광고에

나왔었기 땜시 기분이 묘하더군.ㅋ


첫날은 비록 17층짜리였다 하나 지하4층서 일했고, 어젠 15층짜리 건물 15, 14층서 일했고..오늘은 24층짜리 옥상,

그니까 25층서 눈 치웠다, 오전 작업. 눈치우는 거야 워낙 '단련'된 일여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일했으되, 워낙

꽁꽁 얼어붙어서 마치갖다 깨가면서 모닥불에 지져감서 진행해야 했어서 생각보다 오래 지체..


공사장용 엘리베이터-일명 호이스트카-가 강풍에 휘청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사방이 뚫린 그곳은 어제보다도

삼엄하던 것. 오늘 간 곳은 특이하게도 아주머니들이 '오야지(작업반장)'로 있어서 아저씨들이 꼼짝못하고

아줌마들의 호령을 따라야 했는데, 머...유독 '어린' 나야 원래 아줌마들이 하도 좋아해줘서 잼나게 일할 수 있었다.

마치 아들내미처럼 잘 챙겨주시고 살갑게 대해 주시더라구.ㅋㅋ 첫날 같이 일했던 아저씨들을 다시 만났더니

무진장 반가워해주시며 마스크도 챙겨주시고, 잘 따라 다니라고 신경도 써주시고. 으레 그렇듯 담배 한까치의

휴식시간엔 군인 '무용담'이 왕래하고.ㅋ


일은 오늘도 별로 어렵지 않았는데, 문제는 추위였다. 어찌나 춥던지..사무실서 줏은 전투복내피(일명 깔깔이..)를
 
외투삼고 옷을 몇개씩 껴입어도 무진장 춥더라. 이넘의 노가다판에는 거개가 군용물품이다. 아예 전투복 일체를

빼입고-줄까지 칼같이 잡힌..-오는가 하면, 귀마개에 깔깔이, 워커까지..-.ㅡ^


삽을 쥐고 굴신운동을 오전 내내 해서인지 배가 무진장 아팠다. 가건물로 지어진 화장실이지만 칸이 여섯개나

있다..왼쪽부터 까면 정상이고 가운데부터 까면 변태, 오른쪽부터 까면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이란 이야기가

기억나서 왼쪽부터 까기 시작했다. 무데기무데기무데기...변기가 양변기면 뭐하노...그대로 앉음 찔릴 판이다,

뾰족한 산을 이루고 있더군...절라 충격. 제길.


어쩐지~ 화장실이 이러니 아파트 집집마다 구석탱이엔 그게 얼어있던 거였구나..아까도 정체를 모르고 손으로

집고서야 알아차렸더랬다. 몇번이나 예기치 못한 조우를 했던 것인지. 정말이지 거기 아주머니 말씀대로 아파트

전체가 똥천지다. 어쩔 수 없이...이미 갈데까지 가버린 그 높이를 더욱 융기시킬 수 없어, 걍 뚜껑을 닫고 그 위에

쪼그릴 수 밖에 없더군..쿨럭.


내일은 또다시 삼성역이다. 일단 낼까지 하면 대략 터키서 이집트가는 비행기 값정도 마련하는군.ㅋㅋㅋㅋㅋ
아침 6시에 만난 오늘의 동료는 서른여덟의 아찌 하나, 서른셋의 총각 하나, 그리고 마흔셋의 애아부지 하나.

삼성역이라 해서 설마 코엑스를 드가랴 했는데, 역시 코엑스는 안 드가고 큰길 맞은편의 15층짜리

신축공사현장으로 갔다.


아직 벽도 안 선 채 그저 기둥 몇개로 콘크리트 판때기 몇개 층층 받혀놓은 형상인 그 곳은, 정말 바람이 무진장

씨게 불었다. 14층에서 왼갖 잡일들을 하면서 안전도구 하나 달랑 쓰고..플라스틱하이바..몸의 무게중심이

간당간당하게 건물 내부에 심긴 채 고개와 몸을 빼든 장면이 첨엔 보기만 해도 섬찟거리며 똥꼬..했으나, 대략

점심먹고 참먹을 때 쯤엔 유유히 길 건너 코엑스와 아셈타워를 바라보며 몸을 살짝 뺄 정도로 익숙해졌더랬다.

여전히 근처 든든해 보이는 무언가를 한손에 잔뜩 우겨넣은 상태였지만.ㅋ


사실 '잡부'라는 거, 특별한 기술도 필요없고, 다만 약간의 딴딴한 비위와 약간의 체력만 있음 걍 된다. 군대랑

상당히 비슷한 게 사람들의 스타일, 말투, 일처리하는 방식, 점심 먹고 난 후의 '오침', 적당히 담배 한대 피운다며

10분을 띵기는 식의 '유도리'. 아, 나 짐 한달째 금연 성공 중이다.ㅋㅋㅋ 덕택에 아저씨들 다 담배물 때 난

하이바깔고 앉아 손에 입김불고 있지만.--;


어쨌거나 인건비가 상당히 쎄다는 것에 자체적으로 대략 공감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하이바에 눌려 잔뜩 떡진

머리와 흙덩이진 옷차림으로 삼성동의 그럴듯한 식당서 쿠폰내고 밥먹긴 좀 글타. 게다가 사람들은 왜 이리

공사장을 종횡하며 다니는지. 그래도 솔찮은 재미가 있는 게, 이럴 때가 아님 공사장의 그 부실한 '엘레베이터'

언제 실컷 타보겠어..중간에 고장나서 결국 점심하고 참은 15층서 걸어내려왔다 올라가야 했다지만.


여튼지간 오늘은 몸이 고된 것보단, 정신적으로 상당히 쫄았단 게다. 친한 선배 말이 예리한게, 내가 의외로 겁이

많단 말야..ㅡ.ㅡㆀ 말만 드럽게 한다지.ㅋ


낼은 창동이다, 아주 걍 서울 투어를 하는구먼. 몸이 살~ 삐그덕거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워낙 추워서리.
왠만함 이번엔 나와서도 죽은 척 갈라 그랬는데 결국 우려하던대로 세인들의 분노가 폭발해 버렸구나...-.ㅡ^

아무리 휴가가 많다느니 언제 다녀왔다고 또 나오느니 그래도 어쩌겠어, 공군은 휴가(연가)와 외박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니깐. 외박주로는 11월초에 나왔던 거 이후로 두달이 넘었단 말이다.


어쨌거나, 이번 외박부터는 자중하며 '생산적인' 시간을 갖기로 맘먹었다. 제대하고 바로 배낭을 꾸려볼까 하고.

제대할 때까지 여행갈 자금이나 '생산'해서리, 집에 손벌리기도 민망하고 더이상 환대도 못받는 상황도 타개하고자

하는게 내 아이디어.


해서, 현대 해상에 들어갔다.

현대 해상 사옥이 어디 있는지 아나?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을 축으로 등거리상에 교보빌딩을 마주 보고 있는 곳의

초현대적인-메탈과 유리가 두드러진-건물이 바로 그곳, 지금 보수 공사중이다.

오늘 4시50분에 인나서 인력회사 나가서는 방금, 집에 들어왔지...지하 4층에 있는 보일러실을 손봐주고 왔다.

일당 55,000원. 사실 60,000원인데 소개비조로 인력회사서 5,000원을 가져가더라구.


그나마 일거리도 거진 없는 겨울에, 경력이라고는 고2때 장난처럼 두 주 했던 거 말고 그저 군바리일 뿐인

(그것도 펜대굴리며 문서나 도장범벅 만들어놓는) 나로서는 굉장히 감지덕지지. 일은 머, 말그대로 인력, 군대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을 정도고, 힘든 정도는 글쎄...일병, 이병때보다는 쉽고 상병 떄보다는 어려운 편..

병장으로서는 쫌...측정불능. 요새 작업 나간지 하도 오래 되어서...대조군이 없군.ㅋ


그래도 시설담당 나대리나 같이 용역나간 아저씨들이 다들 군바리라고 일잘한다고 인정해 주는 거 보니 나쁘진

않은 듯하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다. 여태 월급 받은 건 외박 나올때마다 족족 다 뽑아 먹었으니 이제부터

군에서 받는 월급/보너스, 일케 일해서 버는 돈, 그런 것들 열심히 다 합침 대략 여행경비나올꺼같아서, 계속

열심히 살아 볼 생각이다. 일자리가 안정적이면 좋겠다만...어쩔 수 없지. 국가에 매인 이 한 몸, 무엇을 할 수 있다

말이오. 노동일 혹 노가다, 이건 뭐랄까...경험삼아라기보다는 지금 내가 돈을 모을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는 게지. 싫단 건 아니고, 어쩜 이런 자세가 제대로 된 '현장활동' 아닐까 싶어서. 호호호.


내일은 삼성역, 어디서 일할진 몰겠다만 기대만발이다.


이번 외박은 폰을 안 살리기로 했다.

생일에 맞춰 나오긴 했지만, 굳이 머..생일을 여기서 맞으면 죽어버릴거 같단 극단적인 생각때문이 아니라 걍,

이왕 나올 꺼 생일쯤 해서 나오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생각으로.

솔직히 이제 병장단지 다섯달 되는 시점에서, 주위의 사람들이 '미쳐' 가는 걸 보고 있다.


일이병 때의 절실했던 온갖 개인적인 욕구들, 꿈들..그런 것들이 객관적으로 손에 닿거나 이미 충족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어느새 피한다던 똥에 딩굴어버린건지, 그저 제대날만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제대날이 된다고

마법에 걸린다거나 무언가 살 방법이 절로 생겨나는 것도 아닌 건데. 이전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방식을 다시 만들어가얄 건데..나 역시 위험하다.


요새 아침점호에 살짝살짝 빠지며 8시까지 늦잠자는데 습관을 슬~ 들이고 있는데다가 일욜이면 잔다고 피씨방도

안 나온다--; 머..나름대로 1시까지 책보니까 피곤하단 핑계를 대긴 하지만, 또 점호따위 안 나가고 잠자는게

차라리 생산적이라고 핑계대지만, 그래도 이미 부대서 '거칠 것 없어진' 터에 자기규제마저 풀려버리면 끝갈줄

모르고 방만해질 게다.


해서, 이제 외박 나와서 스트레스 푼다고 소비적인 생활로 풀어버리는 건 쫌...민망한 노릇이지 싶다. 물론 여전히

여기에 속박되어 있고, 아무리 편해졌대도 여전히 내 의지가 작용하지 않는 공간인지라 거기서 거기겠지만, 어쨌건

더이상 줄구장창 한 풀듯이 마시고 노는 건 좀 아닌 거 같단 얘기.


저번 휴가 때부터 구체적으로 살살 다듬어가는 여행 계획이 있다.

원래 제대하고 바로 유럽 여행이나 가 볼까..하는 수준이었는데, 여기저기 디비다 보니까 중동 쪽이 정말 가고

싶어졌다. 여기서 착취당하며 그나마 손에 쥐어진 돈 몇 푼과 외박 때, 그리고 제대쯤에 '수금(정말 맘에 안드는

단어지만, 솔직히 아무런 생산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나로선 상당한 자금원이다, 전적으로 금전적인 면에서

이야기해서.)'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중요한 건 외박 때마다 돈을 벌어볼라구.


아무튼 그런 post-ㅈㅔㄷㅐ의 기획으로, 절라리 지루해지고 병장 12호봉까지 가야하는 조또 공군의 최대 심적

난관을 극복, 해피하고 "섹쉬~하게", 활기넘치게 살고자 하는데.

일단 여행 계획 짜며, 이런저런 구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자체 즐거움이 되더군. 그렇게 '말년병장'의 매너리즘과

방만함을 떨쳐볼라고 겸사겸사 생각중이다. 내 의지가 힘을 쓰는 시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건, 해서 내가 행함에

따라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일을 한단 건 꽤나 오랜만인 듯 시프다.


쩝...근데 머하고 돈벌지?
튈를리 정원의 커다란 원형 분수대를 지나면, 예의 프랑스식 정원의 각잡힌 덤불들이 좌우로 시립해 있는 걸 볼 수

있다. 마치 어릴 때 집을 그리라고 하면 당연한 듯 그렸던 그 모양처럼 덤불을 깎아놓았는데, 실제로 그 모양이

아주 의미심장한 메타포로 누군가에겐 읽히고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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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모양으로 다듬어진 덤불들이 양측으로 시립한 가운데, 분홍빛의 카루젤 개선문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나폴레옹이

완성된 카루젤 개선문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음에 실망해서, 설계 중이던 개선문의 사이즈를 훨씬 키우라고

명했다던가. 흰빛의 커다란 개선문도 당당하니 위엄있고 장중해 보였지만 글쎄..보는 사람의 고개와 사기를 꺽고야

말겠다는 듯이 심신을 위축시키는 개선문보다는 이 다정다감해 보이고 부드러운 느낌의 카루젤 개선문이 더

마음에 들었다. 물론, 위치가 바로 루브르 궁전 앞인지라 여러번 오며가며 마주치다 보니 더욱 호감도가 상승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튈를리 정원에서 루브르 쪽으로 바라본 카루젤 개선문의 모습. 그녀는 뒤를 돌아보고 있다. 개선문의 용도란 건,

외국 영토나 국가 외부에서 싸우고 돌아온 전사들을 궁전이나 국가 중심부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바라볼 때 보다

뽀대있어 보이기 위함인 거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나폴레옹의 입장에서는, 대중에게 보여지기 위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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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쳐 개선문 양측에는 예의 집모양 덤불과 조각상들이 파란 잔디밭 위에 펼쳐져 있다. 아마도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아폴로가 줄기차게 쫓아다녔다던 다프네가 도망다니던 쓰러진 절박한 상황을 나타낸 걸까. 그녀가

강의 신인 아버지에게 부탁해 월계수로 몸을 바꾸었고, 이후 아폴로가 승리의 상징으로 월계관을 씌워 주었다는

후일담까지 고려한다면 왠지 궁전 앞머리에 있을 법한 조각상이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프랑스에 유학중인 친구의 말로는,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따라잡으려 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친숙해져 버린 채 살아가면서 별 의식조차 못하지만, 신화라거나 전래동화, 그 속에 있는 풍부한

메타포와 뉘앙스들을 교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왠지 이해의 깊이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특히나 서양 근대 철학이나 그리스로마 고전을 어려서부터 많이 읽히는 나라에서 통용되는 상식과

한국의 상식이란 건 다를 수 밖에 없을 거 같다.


그런 문화적 베이스가 깔린 사람들은-실제로 그렇게 생각할지, 또 내 추측이 맞을지도 알 수 없는 거지만-그 조각상

아래에 완전 편한 자세로 누워서 시체놀이를 하고 있거나 유유자적하게 신문을 보고, 나와 함께 이곳에 앉았던

내 친구는 그리스 고전을 인상쓰며 읽고 있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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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앞의 동상이 다프네를 형상화한 게 맞다면ㅡ, 이 아이는 뭘까. 다프네가 자꾸 치근덕대는 아폴로한테

날아차기라도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는 짧막한 그리스로마 신화에선 그 전거를 찾을 수가 없는

다이나믹한 포즈의 여성조각상.


역시, 그런 걸 갖고 머리 싸매는 건 단군신화의 나라에서 온 나 뿐. 다른 사람들은 전부 여기저기서 시체놀이중.

보슬보슬한 잔디의 촉감이 좋긴 좋았다. 싱싱한 잔디잎새가 서늘한 기운을 몸에 흘려넣는 것도 좋았고, 뜨겁지도

따갑지도 않은 따스한 볕이 꼬물대며 내려앉는 느낌도 좋았고..동상이야 날아차기를 하던 암바를 조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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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루젤 개선문 양편 덤불의 비밀.

대낮인데도 그 사이사이에 틀어박힌 연인들은 저마다의 사정私情에 여념이 없다. 가볍게는 은밀한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꼭 껴안고 있기도 하고, 심하게는 잔뜩 엉겨붙어서 팔넷다리넷머리둘을 가진 한 사람이 된 거 같다.

비밀은, 저 집 모양으로 다듬어진 덤불의 내부가 텅텅 비어있고 굵은 가지 몇개만 외양을 지탱하는데 힘쓰고 있단

사실. 마치 조그마한 텐트처럼 두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충분히 나오는 그 곳에는, 이미 수많은 투숙객들의

흔적이 사방에 남아있었다.


저런 동상이 그런 욕동을 더욱 부채질하는 게지, 싶기도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외려 상상해보면 무지 로맨틱할 수도 있겠다 싶다. 물론 덤불의 나뭇가지에 여기저기

찔리고 긁히겠지만..나무'집'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도 이미 스릴감이 충분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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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루젤 개선문 옆에 출장나와 있는 빵집, PAUL(이라 쓰고 폴이 아닌 뽀올..이라고 읽는다.)은 끼니때가 되었지

싶을 때마다 여행자들이 길다란 줄을 늘어서 있을 정도로 성황이다. 어디서 사든, 동네 빵집이던 체인화된 빵집이던

파리의 빵은 어디서나 맛있는 것만 파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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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빵 한쪽에 에스프레소 한잔하면서 만난 옆자리의 가족. 꼬맹이가 다코다 패닝을 살짝 닮았다. 참새나

비둘기가 아무리 들이대도 겁내거나 놀라서 소리치기는 커녕, 좋아라 하면서 빵조각을 던져주고 있다. 급기야

참새들을 손위로 부르고, 어깨 위로 불러내서는 너무 좋아하는 꼬마 아가씨.

파리의 참새들은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더니 정말 그랬다.

내가 먹던 빵을 뜯어 살짝 흔들기만 했는데, 1번 참새가 포르르 날아올라, 2번 참새도 포르르 날아올라, 3번 참새도

포르르 날아올라..푸덕푸덕대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일었다. 겁도 없이 내 손마저 빵조각인양 쪼아보는 새들.

참새랑 같이 빵을 씹다가 슬슬 루브르 쪽으로 걸었다. 개선문을 의기양양하게 통과했고, 통과하자 유명한

유리피라밋이 불쑥 나타났다. 루브르의 유리피라밋, 이라는 키워드로 찾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구도로

사진을 우선 한 장 찍어 주고, 한장 한장 내 눈길을 따라 사진을 찍으며 다가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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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피라밋을 기준으로 좌측의 풍경. 루브르 궁전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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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피라밋을 기준으로 우측의 풍경, 루브르 궁전의 또다른 일부. 기마상 위에 용맹하게 버티고 선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이런 멘트를 하고 있는 느낌?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루브르 궁전을 보라."

..그냥 그런 식의 위풍당당하고 패기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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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피라밋은 생각보다 살짝 작은 느낌이었지만, 루브르 궁전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현대 건축의 즐겨찾기 재료라 할 철골과 유리로 지어진 유리 피라밋 자체가 가진 심플하고 고대 이집트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으로 약간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는 데다가, 저렇게 오돌토돌해 보이고 오랜 느낌의 궁전 건축물과

함께 하나의 풍경으로 자연스레 녹아들어간다는 것이 더욱 묘한 기분을 자아냈다.


유리피라밋에 새겨진 루브르 궁전, 그리고 파리의 하늘과 구름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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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이 문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유리 피라밋 쪽 입구로 살짝 내려가서 한 바퀴 돌아보기만 했다.

유리 피라밋 안에서 바라본 루브르 궁전은..뭐랄까, 거미줄 같은 풍경 속에 얽혀서 옴짝달싹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날렵하고 유연해 보이는 유리 피라밋의 뼈대도 묘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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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과는 달리 안 간 곳도 있고, 몇 군데 정보를 얻은 곳 중에 그냥 놓아준 곳도 있다. 전부 다 숙제하듯 볼 생각은

아니었으니, 그냥, 내키는 대로 걷고 보다가 힘들면 쉬고 싶었다. 그치만 사실은 '설렁설렁'이라는 애초의 컨셉을
 
잘 지켰는지 반성을 해야할 지도 모르겠는 게, 성격상의 문제인지 혹은 아직은 뭔가 내 리듬 자체가 그런 여유롭고

한적한 스피드보다는 한참 더 액셀레이터를 밟고 있지 싶어서.


다른 사람을 추월하지 않기, 주위를 둘러보며 걷기, 힘들게 전투하듯 일정짜고 소화하지 않기..이런 것들은 단지

여행을 다니면서 염두에 두었을 뿐 아니라 블로깅 하는 데도 일정부분 와닿는 게 있지 싶다. 뭐, 더 나아가서는

삶에 대한 메타포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진부하므로 패스.


어찌됐건, 파리가서 오페라나 발레 한 작품을 꼭 관람하고 오겠다는 다짐이었지만, 내 체류 기간동안에는 파리시내

두 개의 오페라 극장 모두 아무런 일정도 없었다. 오페라 역에 있는 오페라 가르니에(Palais Garnier), 그리고

바스티유 역에 있는 오페라 바스티유(Opera Bastille)의 10월 일정표.
혹여 10월 중에 파리 가시는 분은 참고하시고 꼭 관람하면 좋을 거 같다. 양 오페라극장 모두 물론 비싼 좌석은

약 300유로 정도였던가, 엄청 비싸지만 5유로면 될 만큼 싼 좌석도 꽤나 있었다. 파리와 서울의 물가를 대비한다면

더욱 가볼 만 한 거 같다는 느낌. 싼 좌석이나 혹은 예비티켓..같은 것들은 공연 직전 삼십분 전쯤 가면 구할 수도

있다는 팁을 어느 싸이트에선가 본 거 같은데, 다시 찾으려니 또 못 찾겠다. 애초 난 그냥 주위를 어슬렁대며 놀다가

시간됐지 싶을 때 일단 들이대면 어떻게든 표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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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역으로 가는 길은 좌우로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쭈욱 늘어서 있었다. 그런 한 켠에서 '귀빈'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식당을 발견했는데, 반갑다기보다는 왠지 파리에서 느끼고 싶던 이름모를 느낌을 살짝 방해받은 느낌.

여기 있어서는 안 될 무언가가 풍경에 끼어있다는 느낌이었어서, 눈에 확 띄었었다.

요새 파리에서는 유학생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몇몇 한국식당에 대한 불만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돈을 벌 만한 경로가 많지 않은 유학생들은 현지 한국인들에게 손쉬운 타겟이 되기 십상이겠다.


사실 내가 2001년 뉴욕에 머물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단기 관광비자나 유학비자로 취업이 금지되어 있던

터라 높은 물가에 용돈이 궁한 한인유학생들은 맨하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옆 코리아타운서 불법취업을 많이

했었다. 법정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시급을 주기도 했고, 턱없이 긴 수습기간을 설정해서 그기간에는 그나마

시급의 반만 주기도 했고, 밥은 늘 변함없이 전 식사시간에 먹다 남은 김치찌개에 국물붓고 약간의 김치와 고기, 햄
 
등을 추가해서 끓인 찌개와 함께 먹었었다. 왜 일본 같은 곳의 이름난 라면집 국물이나 '식객'에서 나왔던 신비의

간장이 수백년 동안 애초의 베이스를 유지한 채 보존되고 재생산되듯이. 그런 경험이 있는 터라 난 유학생에 한표.

오페라 바스티유에선 지휘자 정명훈씨가 재임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고풍스럽고 화려한 느낌의 오페라 가르니에와

비교하면 상당히 심플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의 건물이었다. 그치만 날씨 탓일까, 아님 단순히 사진이 이상하게

찍힌 탓일까, 1989년에 완성되었다는 오페라 바스티유가 1875년에 완성된 가르니에보다 훨씬 칙칙하고 오래되어

보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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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사한 벽면의 장식들과 에메랄드빛 돔 천장을 보면, 정말 화려하고 독특하다는 느낌이 든다. 완성 당시 건축가가

이 건물은 과거의 그 어떤 양식도 아니고 '나폴레옹 3세 양식'이라고 얘기했다는 일화가 수긍할 만 하다. 저

펑퍼짐한 돔의 형태, 짧게 끊긴 채 두 개씩 늘어서 있는 기둥들, 조각이 넘실대는 지상층과 옥상의 윤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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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조각들, 그리고 동상들은 이곳이 문화예술의 전당임을 더욱 실감나게 했다. 비록

별렀던 발레나 오페라 같은 공연을 볼 수는 없었지만 건물 자체만 봐두는 것도 뭐,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위로.

정말 주변의 오래된 건물들과 어울려서, 마치 과거 어느 시간대의 프랑스 파리를 걷다가 오페라 공연을 보러

우아한 복장을 하고 계단을 오르는 듯 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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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한 오페라 거리에 서 있다 보니, 자칫 너무 튀거나 어색해 보일 수 있을 이런 뜬금없는

하늘을 찌른 독수리 횃대모양 가로등도 제 자리에 서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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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가르니에의 정문. 공연이 없는 기간이라 그런지 한적하기 짝이 없었지만, 드문드문 들어가서 미리 티켓을

예매해 가는 현지 파리지앵들의 모습이 보였다. 경비아저씨가 안 된다는 통에 티켓 예매소 이상을 들어가 볼 수가

없었고,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그 멋지다는 천장화나 내부 장식은 그냥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했다. 사실 그다지

땡기지도 않았던 건...그때 배가 상당히 고픈 상태였기 때문이다. 역시, 예전같지 않다. 예전에는 밥을 쫄쫄 굶고

다녀도 배고픈줄 몰랐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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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그 가로등의 특이한 아랫도리 장식. 뱃머리의 문양을 차용한 듯 한데, 저 기분나쁜 눈이야 바다에선 바다괴물과

사이렌, 풍랑과 역병을 쫓아냈겠지만, 가로등 위에 달려선 뭘 쫓아내려나.

몽마르뜨 언덕 근처의 블랑슈(Blanche) 역. 역에서 올라오면 그 유명한 물랑 루즈의 붉은 풍차 건물이 보인다.

물랑루즈라는 곳을 알게 된 건, 영화 '물랑루즈'와 드라마 '파리의 연인'때문이었다. 영화 '물랑 루즈'는 뉴욕서

체류할 때 먼저 한 번 봤었고, 노래가 너무 좋아 씨디를 사들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정도였다. 그리고 파리의 연인서

나왔던 물랑 루즈의 멋진 공연, 그리고 김정은의 귀엽고 천진난만한 리액션까지의 이미지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해가 떨어지고 붉은 풍차에 불이 들어오기 전, 백주대낮에 찾은 이곳은 왠지 분장 전의 배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술병이 가득 담긴 박스가 수십개씩 들어가고 있었고, 네온사인이 반짝여야 할 'MOULIN

ROUGE'라는 간판에는 불꺼진 네온 램프가 구불거리며 이리저리 휘어져 돌아가는 게 보였다. 트레이드마크라 할

붉은 풍차 역시 양쪽의 건물들이 어깨로 치받아서 잔뜩 위축되어 보였고.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전철역 하나만큼 걷기로 했다. 피갈(Pigalle)역으로 가면 2호선이 아니라 12호선을 바로 타고

중심가인 콩코드광장쪽으로 바로 내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몇 걸음 채 걷지 않아 거리의 풍광이 심히 묘해짐을 깨달았다.
각종 야릇한 란제리를 디스플레이해 놓은 상점, 지나다니는 관광객들이 DSLR을 들이대고 사진을 찍고 있길래

별 쪽팔림없이 나도 한데 묻어 같이 사진을 찍어보았다. 뭐..그렇다고 나중에 혼자 자세히 봐야지, 라고 꼭 생각했던

건 아니다.

다음으로 나타났던 가게는 피규어 가게. 상당히 세밀하게 묘사된 여성 피규어들이 가죽치마나 부츠를 신고 달뜬

표정을 짓고 있었고, 혹은 간호사나 경찰 같은 제복을 흐트러뜨린 채 정지되어 있었다. 저런 걸 대체 누가 돈주고

살까 싶으면서도, 예기치 못한 선정적인 볼거리들에 호기심이 잔뜩 부풀었다.

에로틱 아트 뮤지엄이랜다, 참내...이곳 파리의 트렌드에 맞게 오전 10시 개장을 하면서도, 폐장 시간은 자그마치

밤 2시. 앞에서 표를 파는 아가씨에게 얼마냐고 물었더니 이런 민망한 브로슈어를 건네주었다. 그렇게 관광객이

많아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해써 들어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성(性)이라는 이슈에 대해 인류가 그간 쌓아올린 온갖 지식과 특화된 도구들이 총집결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내 지갑에서 8유로를 빼내고자 했다면, 반면 이런 식의 선정적이기만 한 접근은 사람을 쉽게 질리게 해 버린다는

경험칙이 얼른 그곳을 뜨고자 했던 이유였달까.


그렇지만 입구 주위에 맛보기처럼 전시된 몇몇 전시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난 왠지 이 곳의 전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거나 이미지가 무엇일지 다 알아버린 느낌이 들어서, 다시 건물밖으로 나와 버렸다.

잠깐 사이였는데도 공기가 다르다는 느낌.

에로틱 뮤지엄..이라곤 하지만 그냥 길가의 평범한 상점 건물의 공간을 쓰고 있는 곳이다. 보도 쪽으로 전시된

몇 개의 소장품..이 단어가 너무 안 어울린다 싶다면 전시품 중의 하나, 정조대. 이야기만 들었지 실물을 본 건

이게 처음이었다. 사진에 바깥 풍경이 반사되어 잡혔지만, 차라리 그래서 다행이지 싶다.

이걸 창밖으로 보고 나서는, 에로틱 뮤지엄이라는 데가 인류의 '성애(性愛)'의 역사를 뭔가 고답적으로라거나

철학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이런 '생생하고 선정적인 자료'들을 모아서 보여주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스스로의 추측에 더욱 확신이 들었다. 이건, 육체적 사랑에 대한 저속한 농담들만 모아놓은 공간일 거 같다.

물론 들어가지 않아서 실제 내용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저 취향 독특한 의자를 보는 순간 앞선 정조대의 의미와

맞물리며 무진장 남성적인 공간일 거라는 생각. 마초적인 발상과 성욕으로 일방의 욕망만을 투영시킨.

하긴, 이렇게 섹스숍이 줄줄이 이어져 있는 동네에서 좀더 아름답고 건전한, 그러면서도 흥미로울 수 있는 육체적

사랑을 테마로 한 박물관을 기대하기란 무리일지 모른다. 여성은 비디오로, DVD로, 혹은 육체 그 자체로까지

팔리는 상품이자 (변기와도 같은) 욕망의 해소공간으로 자리잡힌 채, 지갑과 육체를 쥐고 그러한 여성을 소비하는

남성들의 시각이 이 거리를 바라보는 일종의 빅브러더 같은 걸 게다.

밤이 되면 치안이 안 좋다고 들었던 몽마르뜨 앞의 환락가가 여길 얘기하는 거였구나, 뒤늦게 두 개의 퍼즐이

맞아떨어졌다. 피갈(Pigalle)역까지 걸어야 했던 거리는 사실 무지 짧았지만, 그 짧은 거리를 가득 채웠던 건 발정난

남성의 욕구 해소를 위한 온갖 상품들의 백화상품식 진열대.


그러고 보면 영화 '물랑루즈'에서 이완맥그리거가 "Just one night, just one night"을 노래하며 니콜 키드먼에게

구애를 한다. 그건 구매의 의사표시였을까, 아니면 이 동네의 문법에 맞는 방식으로 풀어진 구애의 의사표시였을까.

니콜 키드먼의 대답은 이랬었다. "There's no way, 'cause you can't pay."

생드골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내 유로를 허물었던 건 파리 시내까지 들어가기 위한 지하철 티켓이었다.

파리 도심에서부터 원형 형태로 1, 2, 3, 4, 글고 5 Zone까지 구분해서 요금을 징수하는 파리의 지하철 요금체계에

따르자면, 공항(5 Zone)에서 파리 시내(1 Zone)로 들어서려면 자그마치 8.4유로짜리 티켓을 사야 한다.

내게 처음 그 지하세계의 이미지를 던졌던 지하철 RER B선. 일종의 교외선이다 보니 한국에서도 그렇듯, 암만해도

좀 낡고 많이 허름한 느낌이다. 밤에 혼자 타기는 다소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파리 시내에서 여행을 다니는 건 1 Zone, 혹은 2 Zone내에서 다 해결되기 때문에, 1-day free pass는

3.2유로. 계산해 보니 두 번 이상만 타면 일일자유이용권이 쌌던 것 같다. 더구나 일일 자유이용권같은 경우, 그

티켓으로 버스도 자유승차가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편리하다. 다만 그렇게 교통 요금체계가 바뀐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 지하철표를 들고 버스에 탔을 때 아직은 운전기사가 번번히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태우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일주일 무료 이용권. 16.4유로였던가..대략 16유로였다. 유의할 점은 일주일 무료 이용권은 항상 월요일을 기점으로

표를 구매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많은 개찰구를 표로 후비고 다녔는지 너덜너덜해졌다. 파리지앵들의

경우는 보통 한달 무료 이용권을 사서 쓰는데, 창구에서 사면 자그마한 카드같은 곳에 자신의 사진을 끼우고 표를

사용케 한다고 한다.

파리 시내의 역은 저마다 약간씩 모양이 다르지만, 몽마르뜨 언덕을 가는 길에 내렸던 아베스(Abbesses) 역의

외관은 날렵해 보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개구리가 생각난다. 좀 만화적인 느낌이기도 하고.

파리의 지하철 내부는 나지막한 천장에 이리저리 꼬불거리는 통로로 가득하다. 지하철 내의 광고가 얼마나 붙어

있는지를 기준으로 그곳의 경기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요새 텅텅 비어있는 서울 지하철 내 광고판들을 보면서

했던 생각이다. 그런 기준에서라면 파리의 경기는 나쁘지 않다. 아크릴광고판도 있고, 이런 식으로 사람이 직접

풀을 묻혀가며 붙이는 포스터같은 광고도 있었다.

14개나 되나 지하철 노선은 파리의 모든 지역을 편하게 가 닿도록 해주지만, 역과 역 사이의 거리가 짧아서 자칫

한눈이라도 팔다간 원하던 역에서 두세정거장씩 지나있기 십상이었다. 안내표지가 많아서 환승도 쉽게 할 수

있으며, 지하철 노선마다 다니는 지하철 내부의 모양이나 깔끔한 정도가 다르다.

가끔은 환승 거리가 길어서 이런 식의 에스컬레이터가 쓰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역에서는 에스컬레이터를 보기

매우 힘든 편인 듯 하다. 첫날, 그리고 마지막 날, 바리바리 싸든 여행짐꾸러미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땀이 삐질삐질 났댔다. 그렇지만 계단이 높거나 터무니없이 길지는 않았어서, 걷기에 나쁘지 않다.

몽마르뜨 언덕 가는 길에 나선처럼 비비 꼬인 계단을 한참동안 올랐다. 유독 긴 거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달팽이길에 이런 식으로 벽화가 그려져 있어서 지루하다거나 힘든 줄 모르고 오를 수 있었던 듯.

비단 몽마르뜨 옆의 이 역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도 지하철역 근처의 명승고적이나 유래에 따라서 아기자기한

소개를 하고 있다. 예컨대, 파스퇴르 역이라 치면 그의 의학적 공헌이나 간략한 연대기에 대한 소개가 있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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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프랑스나, 다른 나라에서도 그랬던 것같지만 지하철을 상징하는 알파벳은 역시 'M'. 내가 머물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이었던 Convention(이라 쓰고 콩방숑..이라 읽는다)역의 야경.

지하철 역내 플랫폼으로 가는 길 역시 역마다 매우 다르다. 배선이 밖으로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이런 풍경이

흔하고, 다소 으슥해 보이는 구간도 없지 않지만 글쎄...전반적으로 매우 양호한 편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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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에서는 쉴 새없이 어디선가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다못해 바이올린이나 트럼펫, 혹은 중국 악기인

얼후까지. 많은 허름한 예술가들이 자신의 연주 자체를 즐기면서 덤으로 승객들의 호의를 기대하는 듯 했다.

그 중에서도 샤틀레(Chatelet)역은 자그마치 5개 노선의 환승이 가능한 파리 중심부의 요충지랄까, 그래서인지

항상 지날 때마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귀를 쫑긋 세웠고, 항상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무슨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루는 바이올린 7대, 비올라 2대, 그리고 첼로 1대로 이루어진 굉장한 규모의 합주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이나 감상했었다. 지하철 역의 야트막한 천장, 사방으로 뻗은 좁은 통로..를 타고

천지사방으로 공명하는 현의 떨림을 따라 심장까지 함께 공명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른 날에는, 아코디언과 클래식 기타 반주에 맞춘 성악.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이 곳을 지날 때마다

실망하지 않고 무엇이든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고, 파리에서 발레건 오페라건 멋진 공연 하나 못 보고 돌아오는

아쉬움을 적잖이 달랠 수 있을 만큼 맘에 들었었다.

그것 역시 일상으로 받아들이면 무덤덤해지는 걸까. 파리지앵들의 주저함없는 발걸음을 보면서, 그리고 백이면 백

모두 멈춰서서 즐기는 여행자들을 보면서, 사실은 열린 마음이 문제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른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십분이고 이십분이고 원하는 공간에 머무를 수 있는 자유로움의 문제일지도.

학교, 직장, 혹은 지인들과의 약속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오롯한 자기 시간을 확보한. 그러니까 여행을 떠나는 거다.

Sortie(라고 쓰고 쏘ㅎ띠에..라고 읽으면 되는 듯했다, R발음을 ㅎ쯤으로 낸다는 것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

파리 유학을 다녀왔음을 과시하고 싶었던 나머지 친구가 오르세미술관 어쩌구...할 때 못 알아들은 척 했다나.

오르세가 뭐니, 오흐세라 그래야 알아듣지, 라고 했단다.)

지하철의 출구. 출구를 나설 때는 따로 티켓을 집어넣고 하는 일은 없었다. 단지 저렇게 출구에 가까이 가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시스템. 아마 발밑의 무게를 감지하고 열리는 게 아닐까 싶은데, 잘은 모르겠다.
어렸을 적 48색 크레파스를 쓰면서, 금색과 은색 크레파스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곤혹스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것들과는 달리 반짝이는 색깔이 특별하고 귀해 보여서 아무 그림에나 쓰기는 아까워 했던 기억과, 그렇게

아끼다가 어딘가 그림 구석에 금색이나 은색칠을 할라치면 정작 생각만큼 이뿌게 나오지 않아 맘상했던 기억이다.

물론 정확히 이런 식으로 의식하지는 못했겠지만..다루기 까탈스러운 금/은색 크레파스는 대개 다른 아이들이

몽당이가 될 때까지도 공장천연의 끄트머리 각이 그대로 살아있곤 했다.
앵발리드의 반짝이는 금빛돔을 올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추적추적 나리는 빗발이 눈에 들이쳤지만, 섬세하면서

부드러운 장식이 금박의 사용으로 인해 자칫 천박해 보일 수 있는 외관에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이집트에

갔을 때 밋밋한 돔 형태에 빤짝이는 금박을 쳐발랐던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모스크를 본 적이 있는데, 어찌나

싸구려스러워 보이던지 차라리 담백한 벽돌색이 그대로 남아있는 모스크에 눈이 갔더랬다.

그치만 이건 그렇다. 금색 크레파스를 딱 적당하게 썼네, 싶다. 파리 시내 어디서고 반짝이는 황금빛이 부드럽게

시각을 자극할 만큼 충분히 눈에 띄면서도, 그렇게 야하지 않은 수준.

앵발리드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 황금빛 돔의 교회가 바로 보이는 남쪽 문과, 정원을 안고 서 있는 북쪽 문.

남쪽 문으로 바로 들어서려다 보니 어라, 자그마한 해자가 파여 있고, 사진에서 보이듯 뭔가 다리를 세팅하기 위한

기계장치가 보인다. 애초 나폴레옹의 묘소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군사 시설이었다고 하던데, 그래서 방어 목적의

시설물이 구비되어 있는 게 아닐까. 덕분에 살짝 에둘러 가야 했지만 쌀쌀한 추위마저 느껴지는 현재 시간은 9시 반.

여긴 대부분의 관광지가 오전 열 시에 개관을 하나보다. 샤요 궁전의 박물관도, 앵발리드도, 오랑주르 미술관도

모두 10시에 개장한다고 했다. 매표소에서 돌아나와 정원을 거닐었다.

코스모스. 한국에도 같은 종자의 꽃이 있겠지만, 이렇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는 건 순전히 이게 파리이기 때문이다.

원래 코스모스의 꽃잎맥이 저렇게 팽팽하게 조여졌던가..괜시리 새삼스런 시각으로 꽃을 바라본다.

화사한 형광빛의 꽃잎이 빗물을 잔뜩 움키고 있었다. 그 물방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꽃이파리가 처질지언정,

끝내 빗물을 받아내겠다는 꽃잎은 하늘을 바라본다.

이게 북쪽 문으로 들어가는 앵발리드의 입구. 앵발리드는 네모난 마당, 아니면 사열대를 둘러싼 ㅁ자 형태의

건물과 남쪽의 교회로 이루어져 있었다. 티켓은 자그마치 6유로,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돔교회와 ㅁ자 건물내의

군사박물관 입장료를 포함한 금액이다. 황금돔 교회에서 해설용 라디오기계를 대여하면 저런 돔 모양을 본딴

도장을 찍어주곤 무료로 빌려준다.

나폴레옹은 19세기의 영웅이었다, 그것도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나 봤음직한 그런 영웅. 앵발리드, 곧 그의

무덤은 하나의 신전과도 같았다. 그리고 보면 오벨리스크, 피라밋, 옛 거석문명의 자취를 좇는 기념물들을 보건대

유럽이나 미국이나, 그다지 그 문화유산들은 새로운 건 아니지 싶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이념을 설파하는 동시에

그 '민주주의'라는 허울 위에 높게 쌓인 국가 권력을 새롭게 찬양하고 신화화하려는, 과거의 재탕.

마당에서는 아마도 나폴레옹의 군대가 열병을 하고, 발걸음을 맞추어 군가를 불렀으리라. 포석에 울리는 군홧발

소리와 절걱대는 쇠붙이 소리들은, 사방으로 비산되며 건물벽에 부딪히다가는 한참이나 애쓴 후에야 하늘로

퍼져 나가지 않았을까. 그 광경을 잔뜩 힘준 눈으로 오만하게 지켜보는 나폴레옹의 동상.

사열대 한쪽 켠에는 과거부터 프랑스가 써왔던 각종 포신이 진열되어 있었다. 사실 이 때 눈치를 채고 군사박물관

따위 갈 생각은 애당초 깨끗이 잘랐어야 했던 거다. 딱 보면, 대포 잔뜩 진열해 놓고 총기와 군복 전시해 놓고,

멀게는 말과 사람의 전신용 갑옷에서부터 가깝게는 방독면까지 전시해놓고 치열했던 전투지역 디오라마 펼쳐놓고.

그런 느낌인 게 뻔했는데, 마치 전쟁을 기념한다는 용산의 전쟁'기념'관처럼. 내가 살짝 관대해졌었다.

어디선가 갑작스레 새가 날아올랐다. 날아오른다..는 이미지에 덧씌워지는 인간계의 단상이란 정신의 고양, 보다

높고 근본적인 것으로의 비상, 뭐 그런 것들 아닐까. 지상에 발딛고 선 인간의 영혼이 하늘에 가닿기 위해서는

새의 날개를 빌어야 할 것처럼.
 
꼭 그런 건 아니더라도 음울한 날씨에 음산한 건물..왠지 새의 궤적을 눈으로 좇으며 망연해져 버렸다.

입장. 사람이 좀더 많아지기 전에 나폴레옹의 무덤을 한가로이 구경하고 싶어서 우선 돔교회부터 들어갔다.

먼저 눈에 띄인 건, 나폴레옹의 이미지로 어느샌가 각인되어 버린 저 모자와 코트. 실제로 썼던 건 아니겠지만

그 물품들과 나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정교한 유리상자와 몇개의 할로겐 조명이 만들어낸 진지한 분위기에 젖어선,

그것들을 쓰고 걸친 나폴레옹을 상상해 보았다.

다른 한 켠에 잇는 그리스도 상. 꼬불꼬불한 대리석 기둥이 사면에서 그리스도상 위의 차양을 받치고 있는 형태가

특이하다. 이런식으로 비비 틀어진 기둥 형태는 처음 봤기도 했지만, 검정얼룩 대리석과 담백한 금빛이 아주

세련된 느낌을 자아냈던 게다. 나폴레옹의 안식을 빌기 위해 세워진 교회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지만, 나중에

가이드북을 참고해보니 교회 자체는 17세기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새롭게 덧붙여 지어진 건 나폴레옹의

커다란 대리석 관이 놓인 지하 성당.

그 황금빛 돔의 안쪽 벽면이다. 벽화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살피고 싶었지만 너무 멀고 높아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높이가 107미터라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그보다 아랫쪽에 놓인 나폴레옹의 관이 더욱 관심이 갔기

때문이기도 했다.

얼핏 보면 무슨 베개 같기도 하고, 발받침대 같기도 하고, 다소 클래시컬한 의자같기도 한 저 생김새지만, 자그마치

6중으로 짜여진 저 붉은색 대리석-나무가 아니다!-관 안에 나폴레옹이 잠들어 있는 거다. 레닌이나 김일성 같은

현대 정치인들의 유해가 포름 알데히드에 절여져 대중에 공개된다고 새삼스러울 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그런 아이디어는 나폴레옹의 죽음 이후에도 그를 이용하려는 의도에 따라, 땅 속에 묻히지 않은 관짝 그대로

대중에, 혹은 프랑스 국민에게 노출됨으로써 구현되고 있었던 거다. 1850년대의 일이다.


그의 관 주위를 둘러싼 (아마도) 12명의 여신들은 영웅의 죽음을 기리며, 그의 평안한 사후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에는 지상의 통치권을 뜻하는 왕관과 손 모양의 왕홀을 바치는 왼편의 노인과, 하늘의 영광을

뜻하는 신물을 들고 있는 오른편의 노인을 마주하게 된다. 그 입구 위에는 써 있는 문구는 나폴레옹의 유언으로,

"나는 내가 깊이 사랑한 프랑스 국민에게 둘러싸여 세느 강에서 쉴 수 있기를 바란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무덤으로 내려간다는 게 실감이 날 만큼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에서, 나폴레옹의 시신이 사후에 운구되는 과정을

묘사한 조각을 보았다. 울음을 참지 못하는 나폴레옹의 군인들, 그리고 왠지 깊이없이 묘사된 왼쪽의 정치인들..

나폴레옹의 군대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깊은 눈매와 감상적인 표정은, 단지 촬영 각도로 인한 우연인 걸까,

아니면 작가의 의도인 걸까.

밑에서 바라본 그의 무덤은 더욱 크다. 이제는 발받침이나 베개라기보다는, 무슨 기묘한 트로피같기도 하고,

보물상자같기도 한 모양새다. 아마 그는..저 안에서 앙상한 먼지로 남아 있지 않을까. 그의 죽음은 더이상 아무런

실체나 흔적 따위 남기지 않고, 그저 저 커다란 관이라는 이미지로만 남아 있다.

이건 나폴레옹이 아니라, 나폴레옹 3세의 조각상이라고 했던 것 같다. 나폴레옹 3세는 나폴레옹의 동생의 아들,

간단히 조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나폴레옹의 이름을 이어받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황제로 변신하는 식의

모습도 이어받았으나, 외교적 수완이나 군사적 능력은 그리 신통치 못하여 프랑스를 유럽에서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하고 결국 비스마르크에게 패해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지 표정이 좀...어릿하다.

영웅 나폴레옹의 치적을 열두개로 나누어 장면장면 해설한 부분이다. 상업을 번창시키고, 시민의 권리를 옹호하고..

글쎄, 얼마나 수긍해야 할 지는 모르겠으되, 다만 그가 이렇게까지 신적으로 추앙받고 있는지 미처 몰랐던 점을

알게 된 것만으로 만족이다.

관을 둘러싸고 마치 한바퀴 순례라도 하라는 듯 이어져 있는 원형의 통로. 그리고 벽면을 채운 나폴레옹의 업적과

반대쪽 풍경을 가득 채운 큼지막한 나폴레옹의 관.

돔교회랄까 아니면 거대한 돔 묘지랄까, 그곳을 벗어나 군사박물관 쪽으로 향했다. 고대에서 현재까지 이르는

전쟁무기나 장식품, 전쟁의 불가피성과 자국의 순수성과 정당성을 강변하는 프로파간다를 보여 줄 게 뻔했지만,

그런 것들보다 난 나폴레옹의 데드마스크만 보고 나오려고 했었다.


영어가 짧은 가이드 아저씨는 데드마스크가 현재 전시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정확하게 그는 'no'라고 했을 뿐이지만

내 질문과 그의 제스처로부터 그의 심중을 유추해보면 그러했다는 얘기다. 중간에 만난 한 이탈리아 아저씨의

말대로, 전쟁박물관은 so stupid things로 가득찬 공간, 데드마스크도 없다니 별 아쉬움 없이 앵발리드를 나섰다.


사실 잠시 2층의 전시관 몇 개와 1층의 중세시대 전시관을 둘러봤지만,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질려버리는 바람에

얼른 뛰쳐나오고 말았다. 파리까지 와서 그간의 '전쟁'이 자랑스럽게, 또 자세하게 보관되어 있음을 떠올리는 건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아닐 듯 했달까.

저런 식으로 바닥에 깔린 포석, 세월의 더께를 담뿍 머금은 건물의 누런 벽, 희끗희끗 색이 바랜 듯한 짙은 회색빛

지붕, 그리고 이 모든 탁색을 순식간에 생명가득한 풍경의 일부로 바꾸어 버리는 녹색 정원. 선명한 연두빛 잔디와

보들보들해 보이는 녹색원통뿔 모냥의 작은 나무.

앵발리드의 금빛 돔 아래엔 나폴레옹이 쉬고 있다. 그의 유언은 사실, 세느 강에서 사랑하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둘러싸여 쉬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글쎄...앵발리드의 금빛 돔 지하교회가 그가 원했던 휴식처일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불편한 대리석 6중 관 안에 누워있는게 과연 그가 바랬던 사후의 모습일까.


그의 유언은, 프랑스 국민들에게 둘러싸여 쉬고 싶다는 말은 그를 인간 그 자체가 아닌 일국의 영웅으로 기억하게

했다. 그리고 앵발리드의 군사박물관과 더불어 그의 무덤은, 프랑스의 옛 영화, 군사적 자부심의 원천을 퍼올리기

위한 마르지 않는 샘물로 활용되고 있는 건 아닐까.
튈를리 정원에는 portable 화분이 열맞춰 놓여 있었다. 언제든지 원하는 배치로 화분들을 옮겨 다닐 수 있도록 한

그 참신함에 살짝 놀랬다. 아직은 그리 크지 않은 나뭇잎의 연한 녹색, 줄기의 회갈색, 그리고 화분의 약간은

퇴락한 듯한 느낌의 하얀색이 꽤나 그럴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콩코드 광장을 지나 들어선 튈를리 정원에서 바로 마주친 커다란 분수대. 거의 작은 호수만한 사이즈였다.

지하철에서 한 부 집어든 세계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한다는 무가지..Metro의 프랑스판을 괜시리 꼽아둔 가방을

살포시 안고선, 잠시 가방에 앉아 잠시 나온 햇볕을 즐겼다. 따뜻하게 몸이 데워지는 느낌. 

튈를리 정원을 순찰하는 승마경찰들. 잘 생긴 말들은 자기들끼리 고개를 끄덕이며 장난도 치고, 경찰들도 드문드문

잡담을 나누는 모습이 참 평화롭다. 사실 파리의 치안 상황은 매우 좋은 편으로, 강력사고나 기타 잡범들의 범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여행자들에게도 이 정도면 그다지 신경 곤두세우지 않고 다닐 수 있는 동네지 싶다.

튈를리 정원을 따라 루브르 미술관 쪽으로 걷다 보면 정원 내의 이런 카페가 세네 군데 보인다. 카페에서 파는

에스프레소값을 기준으로 보자면, 루브르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값이 비싸졌다. 2.8, 3.0, 3.8...좀더 이뿐 곳이

없을까 찾으며 마냥 걷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잠시 뒤로 돌아 애초 2.8유로 에스프레소를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생각하면 사실 별반 차이 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1유로는 지금 천육백, 칠백원까지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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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숲속에 있는 느낌이 들 만큼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드문드문 단풍이 들어가는 나무를 보니 가을이 오고 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반팔 티셔츠 차림, 긴팔 티셔츠 차림, 혹은 잠바나 스웨터, 스카프까지 아주 제멋대로다. 마치

한국의 종잡을 수 없는 가을날씨가 집을 나서기 전 사람들을 옷장 문 앞에서 잡아놓고 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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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마주하고 앉은 까페. 혼자 밥먹고 차마시는 걸 즐길 줄 안다면 어른이 된 거라 했던가. 한국에서도 기꺼이

즐기던 혼자만의 밥상, 혹은 찻상머리겠지만 파리로 와서 달라진 점은 하나.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있지 않다는 것.

짐을 꾸리면서도, 계속 들고 갈까 말까 했던 엠피쓰리 플레이어는 결국 왕복 비행기 안에서만 그 효용을 다했다.

그나마 파리로 향할 때에는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과 쉬엄쉬엄 이야기하고 계획도 같이 짜고 하느라 거의 안

들었으니, 다른 사람의 말을 듣거나 외부의 소리에 자신을 활짝 열어두고 싶을 땐 귀를 막는 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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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PRIX에서 사온 초코퍼지 케잌 한 조각을 꺼내고는, 에스프레소와 함께 먹었다. 원래 저 초코케잌은 살

생각이 없었는데, 그냥 모노프리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구경하던 중에 맛있어 보여서 하나 산 거였다. 그렇지만

보이는 그대로 무지하게 달았던 초코케잌이 에스프레소의 쌉싸레한 맛을 중화시키는 바람에 생각보다 둘 사이의

조합은, 내 입맛으로는, 별로였다. 에스프레소의 쌉쌀함을 그대로 좋아라 하고, 초코케잌의 미친듯이 단 맛을

그대로 모두 좋아하는 거지, 두 맛이 섞여서 달콤쌉싸레..라기보다는 왠지 어정쩡한 느낌이 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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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시를 두고 무슨무슨 도시네, 하는 식으로 규정짓는 것은 너무 선정적이랄까, 과장스럽달까. 그치만 파리를

일러 '사랑의 도시'쯤으로 일컫는 건 그다지 오바스럽다는 생각은 안 든다. 아마 범죄율이 낮은 것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키스하고 사랑하기 바빠서 미처 남에게 해코지할 시간이 없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남 눈치안보고

사랑표현을 한다. 요새는 한국에서도 많이 자유로와진 편이지만, 내가 속한 세대들 역시 알게 모르게 스스로

자신을 규율하는 심리적 족쇄까지는 풀리지 않은 듯 하다. 아마 다음 세대..쯤에서는 이런 그림이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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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타난 루브르 궁전의 끄트머리. 문득 여름철에 온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저 희끗하고 자칫

칙칙해 보일 수 있는 톤의 석조건물을 화사하게 살려주는 건 그 앞에 넓게 펼쳐진 프랑스 정원이라는 느낌 때문.

겨울에 온다면 왠지 무지 황량하고 쓸쓸해서, 마음까지 추워보이는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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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궁전 앞에는 카루젤 개선문이라고, 말하자면 개선문의 프로토 타입..이 있다. 나폴레옹이 이 카루젤 개선문의

완공된 사이즈를 보고는 생각보다 작은 것에 실망해서 개선문의 크기를 더욱 크게 짓도록 시켰다던가.

그렇지만 저 분홍빛의 카루젤 개선문은 좀더 섬세하고 화사한 느낌이 짙어서, 개인적으로는 맘에 들었다.

바로 그 앞에 있는 분수에는, 이젠 놀랍지도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해바라기를 하려고 나와서 볕을 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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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이 솟는 분수대의 저 강력한 물줄기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시원스러워졌다. 참...좋았다. 방에서 깔깔이입고

소파 위에서 딩굴대며 보낸다는 '최고의 휴일'보다는, 그냥 저렇게 분수대 주변에 길게 누워서 볕을 쬐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하고, 낮잠도 자는 편이 훨씬 멋진 휴식시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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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눈에 띄었던 건, 미국에서와는 달리 백인과 흑인, 혹은 그 어디메쯤의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그다지

크게 구획되지 않은 채 자연스레 섞여 있다는 느낌이었다. 흑인 남성, 백인 여성의 커플은 전철이나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프랑스에서는 그다지 피부색이라는 부분에 대해 민감하지 않은 거 같다.

실제로 그들의 피부색이 뚜렷하게 흑-백으로 갈려 보인다기 보다는 약간의 밝고 어두운 명암차랄까, 그 정도로

미미하게 보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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튈를리 정원에 널린 조각상이나 각종 전시 미술품 중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액션을 취하는 조각상. 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은...혹시 자신의 새콤한 암내에 괴로워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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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6세의 목이 댕강,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도 댕강, 그게 바로 여기서 이루어졌음을 알려주는 바닥의 안내문.

아마도 프랑스 혁명 이후 공포정치를 실시하던 로베스 피에르의 목도 아마 여기서 댕강? 그랬던 광장인지라 이후

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아 광장의 이름을 콩코드로 바꿨댄다. 조화라는 뜻.


무려 1343명의 피가 거리를 적셨다는 이 광장은, 가이드북의 도움을 빌자면 파리 시내의 수많은 광장중에서도

역사, 위치, 규모 면에서 가장 뛰어난 광장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내겐 다소 실망스러웠다.
 
마치 개선문 앞 로터리에서 차들이 씽씽 달리며 웅장하고 아름다운 개선문 주위의 분위기를 산만케 했던 것처럼

여기도 차들이 사방으로 거침없이 다니면서 소음과 스피드로 광장을 포위하는 느낌이었달까.

차라리 서울 시청앞 광장이 안정된 녹색 잔디밭을 확보한 채 도로로부터 조여오는 압박을 버텨내는 것만도 못한

것 같았다. 외부의 소음이나 번잡스러움으로부터 독자적인 공간, 독립적인 공간으로서 파리의 광장과 공원이

갖고 있던 온갖 장점들이 사라져 버린 채, 그저 샹젤리제 거리와 루브르 궁전 앞 튈를리 정원을 이어주는 역할

밖에는..남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이곳에서 프랑스 혁명의 분위기를 조금은 더 짙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기요틴이 한가운데 떡하니 놓여있고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뭔가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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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편의 샹젤리제 거리로부터 쭉 넘어와선 어느 순간 보이는 조각상과 마치 마카롱 전문제과점으로 유명한

'LA DUREE'의 색감을 떠올리게 만든 가로등. 그치만 내가 그 유명한 콩코드광장에 서 있음을 깨달은 건 사방을

둘러본 조금 후의 일이었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 곳 콩코드광장 한가운데엔 1833년에 이집트에서 받은 룩소신전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고

했다. 내 앞 불과 10미터 앞에 황금색으로 번쩍번쩍 덧칠된 오벨리스크가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에 대해 내가

발견해낸 첫번째 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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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 여행갔을 때 놀랐던 사실 중의 하나는, 원래 저러한 히에로글리프(그림문자)로 가득한 사원들, 건축물들이

모두 각종 화려한 색깔로 채색되어 있었다는 것. 세월이 지나면서 대부분 씻겨 나가고 모랫빛만 남은 바탕색에

익숙해졌을 뿐이지만, 그것 역시 자세히 보면 깊숙히 새겨진 틈새에는 마치 손톱에 낀 때처럼 과거의 물감이 조금씩

남아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금칠이 된 오벨리스크는 여기서 처음 봤다. 룩소에서 봤던 외짝 오벨리스크의 반쪽이구나, 생각하니

왠지 무지하게 반가웠고, 이집트의 선물이었다곤 하지만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정말 순수하게 주고 싶은 마음에서

준 걸까, 왠지 나폴레옹이 로제타 석비를 옮겨오고 다른 녀석들도 이곳저곳을 들쑤셔 유물들을 강탈해 온 것처럼

강제적인 게 아니었을까 싶었기 때문.
 
나중에 친구에게 들은 얘기로는 당시 나폴레옹 3세에게 이집트 통치자가 나머지 한 개도 선물로 마저 줄라고

했다지만, 이 거대한 돌덩이를 옮겨오고 다시 세우는데 고생이 너무 심했던 나머지 (감)사,but(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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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형했다는 내용이 담긴 동판도 바로 이 오벨리스크 옆바닥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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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던 길을 거슬러 보면, 쭉 이어진 가로수길이 좌우로 시립한 가운데 개선문이 당당히 버티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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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보면 마치 파르테논 신전처럼 생긴 마들렌 교회가 보인다. 콩코드 광장이 팔각형의 형태라는데 글쎄,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일단 오벨리스크 주위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여기가 뭔가 파리 중심부의 주요한 건물들을

사방으로 품고 있는 중요한 교차로라는 건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남쪽으로 보면 앵발리드의 금빛 돔이 멀찍이 보인다. 저 금빛 돔은 에펠탑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선명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주변에선 역시나 눈에 잘 띄는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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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쪽으로 난 에펠탑의 보일듯말듯한 자태. 에펠탑을 구성한 저 철골 뼈대들은 가까이서 보면 상당히 두툼하지만,

멀리 떨어져서 볼수록 앙상해지면서 다소 흐릿해 보인다. 당연한 거지만, 왠지 저렇게 어른어른거리는 에펠탑을

보다가 주위를 둘러보면 잠시 눈이 세상에 적응을 못하는 걸 보니 새삼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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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코드 광장..인지 정신없고 번잡스런 교차로인지 간에, 튈를리 정원으로 들어가려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잘 꾸며진 채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정원과 분수대를 기대하면서.


그 입구에 서있는 저건, 마치 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삼륜 자동차 '툭툭'이랑 비슷하게 생겼다. 그치만 저 하얀

외장으로 자전거의 빈약하고 없어보이는 내장을 감쌌을 뿐인데도 느껴지는 이 엄청난 이미지의 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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튈를리 정원에 들어서면 다소 두툼한 껌을 비스듬히 살짝 휘어놓은 채 두개를 평행하게 벌여 놓은 것 같은 거대한

설치 미술 작품을 통과할 수도 있다.

쇠가 시뻘겋게 녹이 슬어가고, 만지지 말라는 사인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남은 손자국과 발자국까지, 그다지 멋지단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저 번잡스럽고 실망스러운 콩코드 광장과는 별개인 공간에 들어선다는 느낌을 생생히 갖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는 아주 효과적이었다.

중요한 사원, 신전들을 보호하는 수호상들. 비슷한 모티프로 제작된 상상속의 동물들이나 인물들이지만, 곳곳에서

색다른 표정과 뉘앙스를 만나게 된다. 약간은 찡그린, 멍청해보이기도 하고, 뭔가 불만에 가득하거나 화장실이

급해보이기도 하는 다양한 표정들. 

이거 왠지, 서울시청 으슥한 곳으로부터 아무런 조율도 의견수렴도 없이 서울의 상징으로 불도적식 밀어붙여지고

있다는 '해태'와 느낌이 닮았다. 사실 내가 알기로는 해태란 상상속의 동물은, 불교적인 색채를 많이 띄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불교의 나라 태국에 비스꾸레한 형상들이 넘쳐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다.


찍다 보니까, 얼레, 의식하기 시작하니까 사원 내 온갖 곳에 그런 수호상이 세워져있다. 문 양쪽으로 당당히 시립해

있는 건 물론이고, 이 아이들은 왠지 저 쓰레기통을 지키고 있다. 주위에 흘리거나 제대로 버리지 않음 우씨,

제스처를 취한 저 아저씨의 돌주먹에 호되게 맞는다는 뜻이렸다.

계단 모서리에도 생명체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스물스물 계단턱을 타고 내려와 쫑긋, 대가리를 세웠다. 머리

다섯개 달린 용가리라고 해야 하나, 발가락 하나하나 날카롭고 까칠할 듯한 이빨을 품고 있는 발바닥이라 해야하나.

난 왠지 황금발바닥에 한 표. 발바닥이라기에는 넘 심한 평발이긴 하다는 반론은 기꺼이 인정.

뭔가 불꽃같은 이미지의...개? 늑대? 여우? 어찌 보면 또 닭같기도 하다.

이 녀석은 왠지...뭔가 닮았다 닮았다 싶더니, 퍼뜩 떠올랐다. 요놈.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왠지 살짝 슬퍼보이면서 순종적인 눈매와 처연한 입꼬리, 그리고 몽땅한 두 앞다리를

치켜든 제스처와 분위기가 딱인 거 같은데.

이런 서양적인 마스크를 가진 녀석은 언제부터 이 태국 땅에 서있었을까. 어쩌면 이미 '색목인'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다른 이러저러한 경로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고대, 중세에는 훨씬 활발한 교류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녀석, 얼굴을 조금만 추상화시켜서 볼라치면 딱 시골동네 어귀에 섰는 장승닮았다.

입꼬리를 자세히 보면, 이녀석 비웃고 있는 거다. 푸훗..이런 식으로.


그리고 현대적 의미의 수호상들은, 영국의 왕궁 앞이라거나, 미국 워싱턴 국립묘지의 교대식장이라거나, 아직

잔존하는 몇몇 왕궁과 같은 시설을 경호하고 있는 살아있는 경비병들일 게다.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체, 공간의

일부가 되어 관광객들의 배경이 되어 주기도 하고 여전히 날선 권위의 생생한 증인이 되어 주기도 한다.

태국 왕궁의 경비병들은, 하얀 제복이 새하얗다 못해 형광등처럼 푸르스름한 기운마저 머금었다.

종종 수호상들은 문짝을 고정시켜놓기 위한 유용한 받침돌로도 사용되고, 만들어진지 얼마 안된 수호상들은

차가운 금속성의 철파이프를 잡고 있기도 했다. 예전같으면 생각도 못했을 용도를 발굴해낸 근대의 도구적 인간들.


이를 드러내고 제법 용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의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돌을 간지럽히며 표정 흉내내보기.

저 달그락거리는 자그마한 돌맹이를 만지작대다 보니 왠지 유쾌해졌다. 그나저나, 어떻게 집어넣었을까?

저 녀석이 찌익~ 입을 벌리고 돌을 앙 물고선 다시 빳빳하게 돌로 돌아갔을 리도 없는 거고, 돌을 덧붙여서 구멍을

막는다거나 할 리도 없는 거고, 신기한 일이다.

태국적인 느낌의 수호상..이라고 하면, 이제 이미지가 좀 머릿속에 구체화되면서 그게 무얼 말하는지 알 거 같다.

마치 A형의 혈액형을 가진 여자라거나 O형의 남자..라는 묘사가 대화하는 사람 간의 머릿속에 무언가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해서 나름의 유용성을 확보하듯이 말이다. 태국적 느낌의 수호상이라는 걸 머릿속에 그려보자면

아마도 뭔가 도톨도톨한 느낌의 혹이 잔뜩 붙어있고, 입꼬리를 쫘악 올려붙이고 있으며, 굵은 주름이 사정없이

흘러내리는 얼굴에 표정이 생생하게 묘사된 다소 위압적이면서도 살짝 우스꽝스러운..동물상이랄까. 그것도 닭의
 
벼슬, 사자의 갈기, 개의 꼬리 등속을 마구 짬뽕시켜 놓은..상상력에 적지 않은 재량권을 허용하는 윤곽.

나중에, 여행을 많이 다녀서 이런 수호상들 사진을 잔뜩 모으게 되면, 나름의 컬렉션으로도 괜찮겠다 싶다. 종교를

막론하고 지키고 싶은 권위와 힘이 있던 곳에는 모종의 경비병, 신적인 권능을 상징하는 수호자를 세워놓기 마련.


일종의 power-base가 소재하는, 소재했던, 혹은 새롭게 부각되는 곳의 상징, 슈렉 고양이를 닮은 수호상들.


Champs Elysees, 엘리제의 정원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게 바로 샹젤리제.

몰랐다. 파리에 여름 휴가간다고 잔뜩 들떠서 다시는 한국에, 회사에 안 돌아올 것처럼 말그대로 마음이 이미

떠나 있었을 때, 잠시 딴 생각이라도 할라치면 어느새 흥얼대고 있던 '오~ 샹젤리제~'의 그곳.


샹젤리제 거리는 라데팡스의 신개선문, 개선문이나 노틀담성당처럼 하나의 건물이나 닫힌 공간이 아니라 그런지

뭐랄까 율동감이 느껴지는 거리였다. 주위를 두리번대며 자꾸 발걸음을 늦추는 관광객들의 흐름이 하나의 파트를

맡고 있다면, 이 곳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단호하고 간결한 행보는 또 다른 하나의 파트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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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거리라 불리는 약 2.3km의 이 거리는 커다란 마로니에 나무와 플라타너스 나무가 길가에 죽 늘어서서는,

아스팔트가 아닌 주먹만한 포석이 박혀있는 도로와 보도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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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로나 그렇지만 샹젤리제 거리에서 뻗어나가는 좌우의 자그마한 골목길들, 그 골목들을 따라 가다 보면 또

뭔가 재미있고 인상적인 것들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싶었지만 우선은 넓은 길을 걷고 본다. 이리저리 뺑글대며

돌아서 가는 것도 좋아라 하지만 샹젤리제 거리에 이어지는 명품샵들과 까페들을 횡단보도 좌우로 건너면서 하나씩

코박고 구경하는 것도 이미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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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센터의 잔상이 아직 뇌에 남아있었는지, 공사중이던-아마도 리모델링?-건물의 산만하고 얼기설기한 외관을

보는 순간 앗, 퐁피두다, 라고 생각했다. 샹젤리제 거리의 이곳저곳에서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대부분 샵의

외관을 리모델링하는 공사라고 한다. 계절에 따라, 신상품 출시에 따라, 혹은 아예 다른 매장이 들어서는 탓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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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거리를 걷다 맘내키는 노천까페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잔, 그리고 샌드위치 하나..내가 꿈꾸던 파리여행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그림이었다. 원래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 터라 한국에서도 자주 마시곤 했지만, 왠지 이곳의

에스프레소는 파리의 공기와 물 덕분인지 맛이 다르다. 녹차만 해도 물을 뭘 쓰는지, 어떤 다기를 쓰는지에 따라서

엄청나게 맛의 차이가 나는 것처럼 파리의 에스프레소는 맛이 달랐다. 아, 물론 그보다 미시적인 차원에서도,

가게마다 약간씩 맛이 달랐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스프레소는 어느날 아침 빵을 사들고 샤요궁전 위의 발코니

난간에 올라앉아, 에펠탑을 바라보며 마셨던 모닝 에스프레소. 가격도 착했다. 1.5유로였던가.


어렸을 적 '몽둥이빵'이라고 부르며 좋아했던 바게트빵은 딱딱하다기보단, 실은 바삭바삭한 식감을 갖고 있단 걸

알게 해준 파리의 빵집들. 그 중 조만간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라는 PAUL...옆에 Brioche Doree.

왠지 김인문아저씨톤으로 "니들이 빵(pain)맛을 알아?"랄까. 왠지 한국에만 들어오면 딱딱해지고 그악스러워지고,

독해지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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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하루세끼 빵조각만 뜯고도 잘만 다녔는데, 이제 그런 식의 여행은 힘들겠구나 싶었다. 아침점심은 대충

때우고 돌아다니면서 군것질하듯 먹는다 쳐도 왠지 해가 뉘엿해지고 숙소로 돌아갈 즈음이 되면, 몸에서 단백질과

뭔가 격식이 차려진 메뉴를 요구한다. 이왕이면 좀 여유롭고 분위기 있는 곳에서,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으면서도

먹고 나면 몸에도 불끈 힘이 솟을 만한 것으로. 아마 이런 추세대로라면, 근 십년쯤 후에는 세끼 모두 맛나고 비싼
 
것만 찾아다니며 온천같은 곳에서 하루의 피로를 푸는 정도 그림이 나오는, 그런 유복한 웰빙 여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급화를 추구하며 땡깡놓는 내 몸의 요구를 채워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염려가 벌써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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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에 우거진 녹음, 한뼘의 햇볕을 받아 안으려는 여인의 해바라기. 햇볕조차 바람에 휘영청 기울어 내려쬐는

듯 햇살 조각이 사방으로 펄럭이며 내리쬐는 파리의 미친 날씨에 한국의 후덥한 여름날씨가 그리울 지경이었다.

햇빛 한 뼘을 좇아 수고로이 걸음을 옮기고, 그 따스함을 감각하면서 맹렬한 바람을 견디고 있었던 나 역시 어느새

파리지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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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거리에는 디즈니샵도 있었다. 파리에서 디즈니샵을 보다니, 이들의 문화적 자존감과 우월감에 대한 신화가

너무 거창하게 알려져 있었구나 싶기도 하다. 프랑스도 WALL-E 열풍인가 보다. 디즈니샵의 쇼윈도에 온통 월-이랑

이브 장난감만 가득하다. 올여름에 봤던 영화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영화 중 하나지만, 내가 가장 끌렸던/끌리는

'모!'캐릭 장난감은 하나도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정말이지 있기만 했으면 바로 질렀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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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거리를 걷다 뒤를 돌아보면 하얗게 빛나는 개선문이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다. 정말 뜬금없지만,

개선문을 모델로 해서 근대 대한제국의 땅에 세워진 '독립문'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한번 보고 왔음 좋았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오리지널과의 비교를 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개선문은 저기 당당히

위치를 잡고 서있는데 독립문은 어디에 있으며 지금 한국에서 어떤 의미로 읽히고 있을까..그런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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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거리의 즐비한 상점가와 까페들의 출현이 끊길 즈음, 쁘띠 팔레와 그랑 팔레로 이어지는 길.

이 길을 죽 밟으면 콩코드 광장을 거쳐 튈를리 공원, 카루젤 개선문과 루브르 궁전까지 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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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으로 목이 잘려나가 땅에 나뒹굴었을 부처의 머리가 똑바로 서있다.

나무 뿌리에 단단히 걸린다는 다소 과다한 우연의 힘과, 실수없이 끌어올려지는 수백년의 시간의 힘을 빌어.

부처상의 머리 부분에 대고 빈다기 보다는, 난 왠지 그 우연과 시간이 빚어낼 수 있는 경이로움에 질려버려 비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왠지 2000년대 한국의 건축물에서도 자주 쓰이는 붉은벽돌로 지어졌다 해도 그다지 큰 어려움없이 믿을 수 있을

법한 아유타야의 사원들. 그렇지만 약 1300년대에 건설되어 400여년 동안 아유타야 왕조의 수도로 번영했다는

그 단단한 역사적 사실을 떠올려 보면, 저 정교하고 튼실한 벽돌郡이 수백여년을 버티어 왔다는 사실이

경탄스럽다. 더구나 여기는 여름, 우기, 겨울로 계절이 구분된다는 비많고 수풀우거지는 타일랜드인 거다. 인간의

흔적 따위 한 철 비바람이면 물에 씻기고 녹색 덩굴에 씻기기 십상일 텐데.

그런데 이렇게 하늘을 향한 탑..혹은 탑파의 원형을 세밀한 부분까지 보존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물론 자세히 보면 새들이 남기고 간 얼룩부터 시작해서 군데군데 잠식해나가는 파랗고 강인한 풀떼기가

보이지만. 한 옆에서는 서울서 가로수 정비할 때 쓰는 도구같이 생긴, 끝에 칼을 묶어놓은 장대같은

것으로 관리원들이 식물의 접착을 막고 있었다.

여행의 컨셉은 배낭여행이었다. 휴가를 못받은 동생을 빼고, 엄마랑 아빠랑 나. 여행을 좋아하는 가족인지라,

패키지는 애초 코웃음 한방, 투어는 원칙적으로 안하기로. 일정은 전적으로 내가.

방콕에서 북쪽으로 두시간, 버스를 타고 달리면서 비가 오지는 않을까, 일정을 얼마나한 밀도로 채워야 할까..

(더구나 부모님이랑) 이런저런 생각이 피워올랐지만. 여름, 우기, 겨울, 이렇게 세가지 계절을 가진 태국은 우리가

한나절 내내 걸어다녀도 그닥 덥지않을 만큼 선선한 날씨를 선물했다.

'툭툭'이라는 이름의 탈것은 오토바이를 개조한 엉성한 삼륜차지만, 나름 태국 시내에서나 근처 관광지를 돌때에는

아주 편리한 것 중 하나다. 뭐..두 명이 타기엔 저렇게 다소 힘들어보일 수는 있지만, 정작 부모님 본인들은 괜찮다

하셨다.


인력으로 움직이는 이러한 탈 것에 대해 다소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마치 제3세계 빈곤국의 아이들이 커피를

수확하는 노동에 종사한다는 사실에 대해, 가혹한 수준으로 착취받고 있다고 지적할 수도 있지만 반면 그러한

노동의 기회마저 없다면 당장 그 아이들의 생존이 백척간두에 처하고 만다는 엄연한 사실도 동시에 존재하는 거다.

어쩌면 이렇게 뚜렷한 옳고 그름의 지표를 집단적인 차원에서 내릴 수 없는 경우라면, 우선 개인적인 차원에서라도

그 긴장을 해소하려 노력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진심이 느껴지고 따뜻한 웃음으로, 조심스럽고

존중하는 태도로, 상대와 상대의 일을 존중하고 내게 그 서비스를 베품에 감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그렇게 우리가 간 곳은 코끼리 탑승장, 사람이 태워주는 것도 민망한 판에 코끼리를 타는 것도 다소 미안했다.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는 나로서는, 이런 식으로 사역당하거나 공연장에서 쇼를 하는 코끼리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부려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미지가 가득했던 거다.

그렇지만, "코끼리 비스켓"이란 표현이 적절했던 것 같다. 나 한명 그리고 저 아저씨..조종수랄지 운전수랄지 혹은

기수랄지..가 탔다고 해서 코끼리가 움쩍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냥 앉았다가 일어서는 동작, 사뿐하고도 부드러운

리듬을 타고서 지상 삼 미터쯤 위로 불끈 올라섰다.


코끼리의 등짝과 정수리쪽의 가죽은 물에 흠뻑 젖었다가 바싹 말라비틀어진 소가죽같았다. 거칠거칠하면서도

아무런 수분의 느낌없는 부석부석한 촉감. 그리고 완강하게 잡혀있는 깊게 패인 주름들. 동물을 만질 때 느껴지는

체온이나 따스함, 부드러움 등의 느낌은 별로 전해지지 않는 거대한 초식동물.

중간에 아저씨는 코끼리와 모종의 교감을 거쳤는지, 억센 생명력 그 자체인양 뻗어나간 풀잎들이 삼엄한 한 쪽

풀밭에 코끼리를 주차했다. 이내 강력하고도 섬세한 코를 사용해 식사를 시작한 코끼리.


부드럽고도 날렵한 코의 스냅이란. 그리고 단호하면서도 세련된 그 완력이란.

내가 탄 코끼리를 '운전'하신 분의 이름은 KLUAYMAI. 그리고 그 밑에 병기된 일어가 눈에 거슬렸었나보다.

앞뒤로 파도치듯 일렁이는 코끼리 걸음의 리듬을 타고 있었을 한 자존심강한 '한국인'이 굳이 한글로 적어넣었다.

        아이   이'. 코끼리 등에서 느껴지는 리듬감이 고스란히 글자에 남아있었다.
 '클루     마


글쎄..다소 유치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실제로 태국으로 많이 쏟아져들어가는 한국인들의 편의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처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다만 그렇게 한글로 굳이 적어넣은 행동이 영어와 일어가 병기된 데로부터

촉발해 발끈한 속좁고 치졸한 행동만은 아니기를 바랬다.

왠지 몽환적이었다. 정글 한가운데서 불쑥 튀어나온 고대의 사원들은 어느새 인공의 느낌과 자연의 느낌을 묘하게

뒤섞어 놓은, 인간의 것도 자연의 것도 아닌 느낌이었다.

자연을 굳이 '신'이라 표현한다면, 신과 인간의 경계지대에 놓여있는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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