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까지 가는 길이 어찌나 덥고 등짐은 무겁던지, 여기서 벌써 이렇게 진한 육수가 흐르는데 터키나 이집트에선

괜찮을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공항서 기어코 무료 인터넷컴을 찾아 숙제처럼 친구에게 인사를 남기고, 터키항공

비행기를 타고 창가쪽 자리에 앉았다. 앉고 나서 보니 창가쪽 자리란 초짜를 위한 자리구나 싶은 게, '우익'에 가려

잔뜩 갑갑한 창 너머 시야에 더해 옆좌석에 타자마자 담요를 머리까지 덮어쓴 채 뒤척이며 잠을 청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후회하고 있을 때였다.


왠지, 이 담백한-꾀죄죄한-아줌마가 어디선가 낯이 많이 익다는 신호가 마구 쏴지는 거다. 이미 그녀가 신문을

활짝 펼쳐서 읽는 것을 보며 살짝 빈정이 상하기는 했지만, 아님 말자는 심으로 '혹시 누구 닮았단 이야기 들어보지

않으셨나요?'라 말을 걸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누구를 닮았을까요?'라고 되물음으로 답하길래 에라, 모르겠다

싶어 '한비야씨 많이 닮으셨어요.'라 했더니 답이 돌아왔다. '제가 한비야에요'ㅋㅋ


그렇게 트인 말문은 이스탄불에 도착할 떄까지, 구호활동, 여행, 종교, 국가관, 역사, 외교부, 김선일 사건 그리고

이라크전, 민주노동당에 이르기까지 참 많이도 이야기하고 술마시고 건배하고 그렇게 이어졌다. 저마다의 쓰임이

있고, 영역이 있고, 세상일이란 어느 한명이 다 맡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소신에 투철한 '누님'이었다. 그녀의

겸손함은 어쩌면 종교의 힘일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신념과 열의는 사람에 기대어 분출된다. 누님과의 이야기중에

잡은 화두 하나, 내가 효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찾는 것. 인삼같은 만병통치약이 아닌 바에야.


누님은 이라크 국경에서 민간구호활동을 하러 가신다며 이스탄불 공항에서 아쉽게 헤어졌다. 이제 다시 혼자

시작하는 여행이구나, 싶었는데 공항서 왠 아가씨 둘이 환전하느라 낑낑대고 있는 것을 돕다가 합류하게 되었다.

친절한 터키인의 도움으로 메트로와 트램을 거쳐 '동양호텔'에 체크인, 야경이 어찌나 멋지던지 한시정도까지

밖에서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를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Efes 한 캔을 홀짝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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