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6세의 목이 댕강,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도 댕강, 그게 바로 여기서 이루어졌음을 알려주는 바닥의 안내문.
아마도 프랑스 혁명 이후 공포정치를 실시하던 로베스 피에르의 목도 아마 여기서 댕강? 그랬던 광장인지라 이후
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아 광장의 이름을 콩코드로 바꿨댄다. 조화라는 뜻.
무려 1343명의 피가 거리를 적셨다는 이 광장은, 가이드북의 도움을 빌자면 파리 시내의 수많은 광장중에서도
역사, 위치, 규모 면에서 가장 뛰어난 광장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내겐 다소 실망스러웠다.
마치 개선문 앞 로터리에서 차들이 씽씽 달리며 웅장하고 아름다운 개선문 주위의 분위기를 산만케 했던 것처럼
여기도 차들이 사방으로 거침없이 다니면서 소음과 스피드로 광장을 포위하는 느낌이었달까.
차라리 서울 시청앞 광장이 안정된 녹색 잔디밭을 확보한 채 도로로부터 조여오는 압박을 버텨내는 것만도 못한
것 같았다. 외부의 소음이나 번잡스러움으로부터 독자적인 공간, 독립적인 공간으로서 파리의 광장과 공원이
갖고 있던 온갖 장점들이 사라져 버린 채, 그저 샹젤리제 거리와 루브르 궁전 앞 튈를리 정원을 이어주는 역할
밖에는..남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이곳에서 프랑스 혁명의 분위기를 조금은 더 짙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기요틴이 한가운데 떡하니 놓여있고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뭔가 아쉬움이 크다.
서쪽편의 샹젤리제 거리로부터 쭉 넘어와선 어느 순간 보이는 조각상과 마치 마카롱 전문제과점으로 유명한
'LA DUREE'의 색감을 떠올리게 만든 가로등. 그치만 내가 그 유명한 콩코드광장에 서 있음을 깨달은 건 사방을
둘러본 조금 후의 일이었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 곳 콩코드광장 한가운데엔 1833년에 이집트에서 받은 룩소신전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고
했다. 내 앞 불과 10미터 앞에 황금색으로 번쩍번쩍 덧칠된 오벨리스크가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에 대해 내가
발견해낸 첫번째 힌트.
이집트에 여행갔을 때 놀랐던 사실 중의 하나는, 원래 저러한 히에로글리프(그림문자)로 가득한 사원들, 건축물들이
모두 각종 화려한 색깔로 채색되어 있었다는 것. 세월이 지나면서 대부분 씻겨 나가고 모랫빛만 남은 바탕색에
익숙해졌을 뿐이지만, 그것 역시 자세히 보면 깊숙히 새겨진 틈새에는 마치 손톱에 낀 때처럼 과거의 물감이 조금씩
남아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금칠이 된 오벨리스크는 여기서 처음 봤다. 룩소에서 봤던 외짝 오벨리스크의 반쪽이구나, 생각하니
왠지 무지하게 반가웠고, 이집트의 선물이었다곤 하지만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정말 순수하게 주고 싶은 마음에서
준 걸까, 왠지 나폴레옹이 로제타 석비를 옮겨오고 다른 녀석들도 이곳저곳을 들쑤셔 유물들을 강탈해 온 것처럼
강제적인 게 아니었을까 싶었기 때문.
나중에 친구에게 들은 얘기로는 당시 나폴레옹 3세에게 이집트 통치자가 나머지 한 개도 선물로 마저 줄라고
했다지만, 이 거대한 돌덩이를 옮겨오고 다시 세우는데 고생이 너무 심했던 나머지 (감)사,but(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아까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형했다는 내용이 담긴 동판도 바로 이 오벨리스크 옆바닥에서 볼 수 있다.
오던 길을 거슬러 보면, 쭉 이어진 가로수길이 좌우로 시립한 가운데 개선문이 당당히 버티고 서 있다.
북쪽으로 보면 마치 파르테논 신전처럼 생긴 마들렌 교회가 보인다. 콩코드 광장이 팔각형의 형태라는데 글쎄,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일단 오벨리스크 주위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여기가 뭔가 파리 중심부의 주요한 건물들을
사방으로 품고 있는 중요한 교차로라는 건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남쪽으로 보면 앵발리드의 금빛 돔이 멀찍이 보인다. 저 금빛 돔은 에펠탑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선명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주변에선 역시나 눈에 잘 띄는 녀석이다.
남서쪽으로 난 에펠탑의 보일듯말듯한 자태. 에펠탑을 구성한 저 철골 뼈대들은 가까이서 보면 상당히 두툼하지만,
멀리 떨어져서 볼수록 앙상해지면서 다소 흐릿해 보인다. 당연한 거지만, 왠지 저렇게 어른어른거리는 에펠탑을
보다가 주위를 둘러보면 잠시 눈이 세상에 적응을 못하는 걸 보니 새삼 신기하다.
콩코드 광장..인지 정신없고 번잡스런 교차로인지 간에, 튈를리 정원으로 들어가려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잘 꾸며진 채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정원과 분수대를 기대하면서.
그 입구에 서있는 저건, 마치 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삼륜 자동차 '툭툭'이랑 비슷하게 생겼다. 그치만 저 하얀
외장으로 자전거의 빈약하고 없어보이는 내장을 감쌌을 뿐인데도 느껴지는 이 엄청난 이미지의 차이란.
튈를리 정원에 들어서면 다소 두툼한 껌을 비스듬히 살짝 휘어놓은 채 두개를 평행하게 벌여 놓은 것 같은 거대한
설치 미술 작품을 통과할 수도 있다.
쇠가 시뻘겋게 녹이 슬어가고, 만지지 말라는 사인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남은 손자국과 발자국까지, 그다지 멋지단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저 번잡스럽고 실망스러운 콩코드 광장과는 별개인 공간에 들어선다는 느낌을 생생히 갖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는 아주 효과적이었다.
아마도 프랑스 혁명 이후 공포정치를 실시하던 로베스 피에르의 목도 아마 여기서 댕강? 그랬던 광장인지라 이후
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아 광장의 이름을 콩코드로 바꿨댄다. 조화라는 뜻.
무려 1343명의 피가 거리를 적셨다는 이 광장은, 가이드북의 도움을 빌자면 파리 시내의 수많은 광장중에서도
역사, 위치, 규모 면에서 가장 뛰어난 광장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내겐 다소 실망스러웠다.
마치 개선문 앞 로터리에서 차들이 씽씽 달리며 웅장하고 아름다운 개선문 주위의 분위기를 산만케 했던 것처럼
여기도 차들이 사방으로 거침없이 다니면서 소음과 스피드로 광장을 포위하는 느낌이었달까.
차라리 서울 시청앞 광장이 안정된 녹색 잔디밭을 확보한 채 도로로부터 조여오는 압박을 버텨내는 것만도 못한
것 같았다. 외부의 소음이나 번잡스러움으로부터 독자적인 공간, 독립적인 공간으로서 파리의 광장과 공원이
갖고 있던 온갖 장점들이 사라져 버린 채, 그저 샹젤리제 거리와 루브르 궁전 앞 튈를리 정원을 이어주는 역할
밖에는..남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이곳에서 프랑스 혁명의 분위기를 조금은 더 짙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기요틴이 한가운데 떡하니 놓여있고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뭔가 아쉬움이 크다.
서쪽편의 샹젤리제 거리로부터 쭉 넘어와선 어느 순간 보이는 조각상과 마치 마카롱 전문제과점으로 유명한
'LA DUREE'의 색감을 떠올리게 만든 가로등. 그치만 내가 그 유명한 콩코드광장에 서 있음을 깨달은 건 사방을
둘러본 조금 후의 일이었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 곳 콩코드광장 한가운데엔 1833년에 이집트에서 받은 룩소신전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고
했다. 내 앞 불과 10미터 앞에 황금색으로 번쩍번쩍 덧칠된 오벨리스크가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에 대해 내가
발견해낸 첫번째 힌트.
이집트에 여행갔을 때 놀랐던 사실 중의 하나는, 원래 저러한 히에로글리프(그림문자)로 가득한 사원들, 건축물들이
모두 각종 화려한 색깔로 채색되어 있었다는 것. 세월이 지나면서 대부분 씻겨 나가고 모랫빛만 남은 바탕색에
익숙해졌을 뿐이지만, 그것 역시 자세히 보면 깊숙히 새겨진 틈새에는 마치 손톱에 낀 때처럼 과거의 물감이 조금씩
남아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금칠이 된 오벨리스크는 여기서 처음 봤다. 룩소에서 봤던 외짝 오벨리스크의 반쪽이구나, 생각하니
왠지 무지하게 반가웠고, 이집트의 선물이었다곤 하지만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정말 순수하게 주고 싶은 마음에서
준 걸까, 왠지 나폴레옹이 로제타 석비를 옮겨오고 다른 녀석들도 이곳저곳을 들쑤셔 유물들을 강탈해 온 것처럼
강제적인 게 아니었을까 싶었기 때문.
나중에 친구에게 들은 얘기로는 당시 나폴레옹 3세에게 이집트 통치자가 나머지 한 개도 선물로 마저 줄라고
했다지만, 이 거대한 돌덩이를 옮겨오고 다시 세우는데 고생이 너무 심했던 나머지 (감)사,but(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아까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형했다는 내용이 담긴 동판도 바로 이 오벨리스크 옆바닥에서 볼 수 있다.
오던 길을 거슬러 보면, 쭉 이어진 가로수길이 좌우로 시립한 가운데 개선문이 당당히 버티고 서 있다.
북쪽으로 보면 마치 파르테논 신전처럼 생긴 마들렌 교회가 보인다. 콩코드 광장이 팔각형의 형태라는데 글쎄,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일단 오벨리스크 주위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여기가 뭔가 파리 중심부의 주요한 건물들을
사방으로 품고 있는 중요한 교차로라는 건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남쪽으로 보면 앵발리드의 금빛 돔이 멀찍이 보인다. 저 금빛 돔은 에펠탑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선명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주변에선 역시나 눈에 잘 띄는 녀석이다.
남서쪽으로 난 에펠탑의 보일듯말듯한 자태. 에펠탑을 구성한 저 철골 뼈대들은 가까이서 보면 상당히 두툼하지만,
멀리 떨어져서 볼수록 앙상해지면서 다소 흐릿해 보인다. 당연한 거지만, 왠지 저렇게 어른어른거리는 에펠탑을
보다가 주위를 둘러보면 잠시 눈이 세상에 적응을 못하는 걸 보니 새삼 신기하다.
콩코드 광장..인지 정신없고 번잡스런 교차로인지 간에, 튈를리 정원으로 들어가려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잘 꾸며진 채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정원과 분수대를 기대하면서.
그 입구에 서있는 저건, 마치 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삼륜 자동차 '툭툭'이랑 비슷하게 생겼다. 그치만 저 하얀
외장으로 자전거의 빈약하고 없어보이는 내장을 감쌌을 뿐인데도 느껴지는 이 엄청난 이미지의 차이란.
튈를리 정원에 들어서면 다소 두툼한 껌을 비스듬히 살짝 휘어놓은 채 두개를 평행하게 벌여 놓은 것 같은 거대한
설치 미술 작품을 통과할 수도 있다.
쇠가 시뻘겋게 녹이 슬어가고, 만지지 말라는 사인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남은 손자국과 발자국까지, 그다지 멋지단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저 번잡스럽고 실망스러운 콩코드 광장과는 별개인 공간에 들어선다는 느낌을 생생히 갖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는 아주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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