튈를리 정원에는 portable 화분이 열맞춰 놓여 있었다. 언제든지 원하는 배치로 화분들을 옮겨 다닐 수 있도록 한

그 참신함에 살짝 놀랬다. 아직은 그리 크지 않은 나뭇잎의 연한 녹색, 줄기의 회갈색, 그리고 화분의 약간은

퇴락한 듯한 느낌의 하얀색이 꽤나 그럴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콩코드 광장을 지나 들어선 튈를리 정원에서 바로 마주친 커다란 분수대. 거의 작은 호수만한 사이즈였다.

지하철에서 한 부 집어든 세계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한다는 무가지..Metro의 프랑스판을 괜시리 꼽아둔 가방을

살포시 안고선, 잠시 가방에 앉아 잠시 나온 햇볕을 즐겼다. 따뜻하게 몸이 데워지는 느낌. 

튈를리 정원을 순찰하는 승마경찰들. 잘 생긴 말들은 자기들끼리 고개를 끄덕이며 장난도 치고, 경찰들도 드문드문

잡담을 나누는 모습이 참 평화롭다. 사실 파리의 치안 상황은 매우 좋은 편으로, 강력사고나 기타 잡범들의 범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여행자들에게도 이 정도면 그다지 신경 곤두세우지 않고 다닐 수 있는 동네지 싶다.

튈를리 정원을 따라 루브르 미술관 쪽으로 걷다 보면 정원 내의 이런 카페가 세네 군데 보인다. 카페에서 파는

에스프레소값을 기준으로 보자면, 루브르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값이 비싸졌다. 2.8, 3.0, 3.8...좀더 이뿐 곳이

없을까 찾으며 마냥 걷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잠시 뒤로 돌아 애초 2.8유로 에스프레소를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생각하면 사실 별반 차이 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1유로는 지금 천육백, 칠백원까지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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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숲속에 있는 느낌이 들 만큼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드문드문 단풍이 들어가는 나무를 보니 가을이 오고 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반팔 티셔츠 차림, 긴팔 티셔츠 차림, 혹은 잠바나 스웨터, 스카프까지 아주 제멋대로다. 마치

한국의 종잡을 수 없는 가을날씨가 집을 나서기 전 사람들을 옷장 문 앞에서 잡아놓고 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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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마주하고 앉은 까페. 혼자 밥먹고 차마시는 걸 즐길 줄 안다면 어른이 된 거라 했던가. 한국에서도 기꺼이

즐기던 혼자만의 밥상, 혹은 찻상머리겠지만 파리로 와서 달라진 점은 하나.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있지 않다는 것.

짐을 꾸리면서도, 계속 들고 갈까 말까 했던 엠피쓰리 플레이어는 결국 왕복 비행기 안에서만 그 효용을 다했다.

그나마 파리로 향할 때에는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과 쉬엄쉬엄 이야기하고 계획도 같이 짜고 하느라 거의 안

들었으니, 다른 사람의 말을 듣거나 외부의 소리에 자신을 활짝 열어두고 싶을 땐 귀를 막는 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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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PRIX에서 사온 초코퍼지 케잌 한 조각을 꺼내고는, 에스프레소와 함께 먹었다. 원래 저 초코케잌은 살

생각이 없었는데, 그냥 모노프리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구경하던 중에 맛있어 보여서 하나 산 거였다. 그렇지만

보이는 그대로 무지하게 달았던 초코케잌이 에스프레소의 쌉싸레한 맛을 중화시키는 바람에 생각보다 둘 사이의

조합은, 내 입맛으로는, 별로였다. 에스프레소의 쌉쌀함을 그대로 좋아라 하고, 초코케잌의 미친듯이 단 맛을

그대로 모두 좋아하는 거지, 두 맛이 섞여서 달콤쌉싸레..라기보다는 왠지 어정쩡한 느낌이 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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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시를 두고 무슨무슨 도시네, 하는 식으로 규정짓는 것은 너무 선정적이랄까, 과장스럽달까. 그치만 파리를

일러 '사랑의 도시'쯤으로 일컫는 건 그다지 오바스럽다는 생각은 안 든다. 아마 범죄율이 낮은 것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키스하고 사랑하기 바빠서 미처 남에게 해코지할 시간이 없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남 눈치안보고

사랑표현을 한다. 요새는 한국에서도 많이 자유로와진 편이지만, 내가 속한 세대들 역시 알게 모르게 스스로

자신을 규율하는 심리적 족쇄까지는 풀리지 않은 듯 하다. 아마 다음 세대..쯤에서는 이런 그림이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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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타난 루브르 궁전의 끄트머리. 문득 여름철에 온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저 희끗하고 자칫

칙칙해 보일 수 있는 톤의 석조건물을 화사하게 살려주는 건 그 앞에 넓게 펼쳐진 프랑스 정원이라는 느낌 때문.

겨울에 온다면 왠지 무지 황량하고 쓸쓸해서, 마음까지 추워보이는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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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궁전 앞에는 카루젤 개선문이라고, 말하자면 개선문의 프로토 타입..이 있다. 나폴레옹이 이 카루젤 개선문의

완공된 사이즈를 보고는 생각보다 작은 것에 실망해서 개선문의 크기를 더욱 크게 짓도록 시켰다던가.

그렇지만 저 분홍빛의 카루젤 개선문은 좀더 섬세하고 화사한 느낌이 짙어서, 개인적으로는 맘에 들었다.

바로 그 앞에 있는 분수에는, 이젠 놀랍지도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해바라기를 하려고 나와서 볕을 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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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이 솟는 분수대의 저 강력한 물줄기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시원스러워졌다. 참...좋았다. 방에서 깔깔이입고

소파 위에서 딩굴대며 보낸다는 '최고의 휴일'보다는, 그냥 저렇게 분수대 주변에 길게 누워서 볕을 쬐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하고, 낮잠도 자는 편이 훨씬 멋진 휴식시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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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눈에 띄었던 건, 미국에서와는 달리 백인과 흑인, 혹은 그 어디메쯤의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그다지

크게 구획되지 않은 채 자연스레 섞여 있다는 느낌이었다. 흑인 남성, 백인 여성의 커플은 전철이나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프랑스에서는 그다지 피부색이라는 부분에 대해 민감하지 않은 거 같다.

실제로 그들의 피부색이 뚜렷하게 흑-백으로 갈려 보인다기 보다는 약간의 밝고 어두운 명암차랄까, 그 정도로

미미하게 보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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튈를리 정원에 널린 조각상이나 각종 전시 미술품 중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액션을 취하는 조각상. 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은...혹시 자신의 새콤한 암내에 괴로워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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