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찍 잔다고 누웠는데 주위 '아저씨'들이랑 수다떨다가 12시 넘어서야 잠든 거 같다. 눈떠보니 8시반,

아저씨들은 여전히 자고 있고, 알람을 분명 맞춰놨던 시계도 여전히 자고 있다. 샤워하고 체크아웃.

지상열차라 불러야 할까, 터키의 트램은 귀엽기도 하고 편리하기도 하고. 이스탄불 시내를 도는데 매우 유용한

교통수단이었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집트 바자르 가면서 씁쓸한 기분으로 예니사원을 쳐다봐주고, 바자르 구경하면서 떡같은 것과 피스타치오를

계속 먹어댔더니 나중엔 아침 한끼가 해결되어 버렸다. 그래도 작정한대로 오늘 아침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바라보는 어느 벤치에 앉아 고등어케밥과 터키식 요구르트를 먹는 로망을 실천. 저번과는 달리 고등어뼈가

막판에 쵸큼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린내도 안 나고 역시 괜찮았다. 하긴, 음식을 가린 적이 없다.

비가 상당히 쏟아붓는 바다 위에서 유람선을 타니까 느낌이 또 다르다. 수업 빼먹고 제부도로 바다보러 혼자

들어갔다가 폭우로 배가 끊겼을 때..그때 들어가던 비가 딱 이모냥이었다. 십년만에 올해가 비를 가장 쏟아부을

거라던 이상기후. 흑해로 다가가 이름모를 폐허의 성에 오르니 바닷바람이 귀를 막아버린다. 좋으네.

가슴이 방방 부푸는 느낌.

한참 바람을 맞고 있자니 어느순간 속이 헛헛해져서 배로 돌아가는 길, 한 터키 대학생아가씨와 나눈 담소가

-주로 그녀의 수다를 들으며-배안에까지 이어졌다. 함께 점심으로 양고기 케밥을 먹고. 부두에 다시 도착할

때쯤엔 거의 폭우 수준이었던 비를 피해 그랜드 바자르로 향했다.

시골의 재래시장 느낌인 이집트 바자르와는 달리 나름 격조있으시게도 '뚜껑'있는 아케이드여서 비를 그을

수 있던 그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삐끼들과 말상대 좀 해주었다.(어쩌면 내가 말상대를 구한 건지도..

삐끼들이 안 잡으면 살짝 섭섭했으니.)

마지막으로 블루모스크랑 아야소피아 주변을 다시금 어슬렁대며 눈도장 좀 다시 찍어주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모스크 안의 분위기하며, 유려하고도 세련된 문양들, 그리고 광선을 걸러내는 저 이뿐 모양의 조그만

창들까지. 터키의 분위기랑 가장 잘 닮았다고 생각한 게 고즈넉할 때의 블루 모스크 분위기 같다고 생각했다.

많은 곳을 돌아본 것 같다. 숙제하듯이 가이드북에 하나하나 체크해가며 '클리어'해간다는 부담스러움보다는

걍 설렁설렁 다니며 여기 사람들하고 많이 놀고, 구간구간 함께 하는 사람들이랑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뭐...아직은 정말 만족스러운 거 같다.

원래 여행 컨셉이 혼자 하는 여행이었는데, 이스탄불 공항에서부터, 아니 인천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멋진 누님들하고 함께 하고, 또 새로운 친구도 만나고, 그러다 보니 실제로 혼자 여행을 다시 시작한 건

고작 며칠 전이었다. 잠시 만났던 터키쉬 말로는 혼자 하는 여행이 외로워지면 나이가 든 거라 했는데, 글쎄..

또 누군가는 그랬다. 혼자 밥먹는 걸 즐길 줄 알면 어른이 된 거라나.

셀축-아마도 젤 큰 로마시대 유적이 현존하는 지역이라는 그곳-에서 혼자 저녁을 먹으며 거리의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는 걸 구경했는데, 잠시 헷갈렸다. 어른이 된 건지, 나이가 든 건지.

아, 그리고 나서 카펫가게서 만났던 지야라는 20살 청년집에 놀러가서 환대받고, 과일과 차를 잔뜩 대접받고

왔었다. 지야, 지레, 부탄..삼형제의 장난스러움과 어수선함이라니. 내 군생활을 지탱했던 게 라디오헤드와

하루끼였는데, 지야 이녀석이 라디오헤드 광팬이었다. 같이 Paranoid Android, high & dry 뭐 그런 거

들으면서 화씨 9.11 이야기하고, 앞으로 뭐하고 싶은지 이야기하고. 그는 비엔나에 가서 영화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블랙 코미디를 찍고 싶댔다.

문제는, 이 동네 사람들이 워낙 여행객에 기대어 살다 보니까, 워낙 친구도 많고, 워낙 덧없는(?) 만남도

많을 거 같다는 거다. 사실 나 역시도 첨에 카펫가게에 들어간 건 아이쇼핑도 할 겸 (목도 칼칼한데) 차대접도

받을 겸..괜히 맘에도 없는 카펫으로 고민하는 척하는 연기를 하며 환심을 끌었다 해야 하나. 그들 역시 내게

바가지(알고 보니 바가지였다는..) 씌울라는 의도, 나 역시 낼모레 체크아웃한다며 당장 지갑을 열어 구매할

듯한 뉘앙스, 머 글케 서로 약간은 어긋난 만남으로 시작했었다. 그나저나 숱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떠나보내고

했을 그들은, 그 덧없는 '관계'라거나, 우연에 불과할지 모르는 '겹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묻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뒤를 돌아봐야 했다. 내 여행과 끝을 장식하는 모스크의 야경. 터키와 이집트의 모스크는, 마치 쇼윈도의

그것과 노점상의 그것만큼이나 다른 공기와 분위기를 뱉어낸다. 온몸을 내맡기는 오체투지의 자세로 알라의 뜻에

기대는 무슬림들의 뜻은 하나였으되, 터키에선 종종 그 숙연한 모습이 관광객들의 사진 배경쯤으로나 쓰이곤 했다.

관광객들의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천장의 돔을 뒤흔들고, 쫓기듯 설명하고 채근하듯 움직이던 가이드에 내몰려

모스크의 공기는 온통 찢겨진 채 비둘기들을 흥분시켰다.

그래도 나, 한점의 유서깊은 공기를 들이기며 블루모스크의 그 고아한,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 마지막 반나절을 오롯이 이 아름다운 모스크에 헌정했다. 구석에 최대한 쑤셔박힌 채 "눈까리가

째져라" 하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눈가리가 째졌다.

이제 내일 밤이면 터키를 떠나 이집트로. 그동네에선 지금이 딱 무지 덥고 습기도 없어 완전 미이라 되기에
 
최적인 날씨라고 했다. 머, 사막가서 여우나 길들여봐야겠다. 정말 사막에 가면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어린왕자의 '여우'라는 캐릭터는 어린왕자 스스로가 불러낸 '외로움'의 소산, 외로움의 메타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이집트다.


생각보다 많이 지쳤던 거 같다. 계속 죽은 듯이 자다가 루밀리성이 얼핏 보일 때쯤 잠시 정신차렸다가, 다시

이스탄불 오토가르에 올 때까지 전혀 대비없이 자버렸다. 셀축(Celcuk)-혹은 에페스(Efes)-에서부터 12시간

내리 달려 이스탄불까지. 버스들이 전부 껍데기는 벤츠인데 알맹이는 그냥 시골버스다. 차냄새 쿠리쿠리한. 

메트로 찾아서 악사라이까지 왔더니 또 친숙한 삐끼 아저씨를 한 명 달아버리고, 걍 주절주절 계속 달고

다니다가 비오는 걸 기화로 걍 떼내버렸지만 이젠 미안하지도 않다.


비가 오는 이스탄불은, 공기조차 달콤했다.

<돌마바흐체 궁전의 어느 입구..저 너머엔 황금빛 응가통이 있었던 듯 하다.>

체크인하며 Shit이라 내뱉는 서양아가씨에 동감하며 짐풀곤 바로 박물관으로. 모자가, 알고 보니 용도가

디게 다양하다. 우산으로도 쓸 수 있었다. 소피아라는 덴마크 아가씨 만나서 말 좀 섞다가 박물관의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이랑 최초의 평화조약을 함께 보고...또...여기 와서 많이 멍청해졌음을 느낀다, 들으면 바로

까먹으니. 여튼 몇 가지 멋졌던 것들을 기억하고 숙소에서 인터넷에서 좀 썼다.

<돌마바흐체의 후원이던가, 흑해에 바로 면한 이 뒤뜰에서 맞은 시원한 바닷바람과
빗물인지 바닷물인지 사방에 비산되던 촉촉한 물방울들.>


동양호텔은 사람도 넘 많고-밖에 없고-인터넷이 거의 비슷한 속도로 나온단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한국같이 익숙하고 둔감한 것이랄까, T4 라인 타고 돌마바흐체 가는데 현지 유학생을 만났다. 지나치게 친절하고

치근덕대는 터키 남자들때문에, 여자끼리 여행하기엔 참 안 좋은 곳이라는 그녀의 이야기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하기도 하고, 터키에서 공부한다는 그녀의 열정에 감탄하기도 하고.

돌마바흐체는 눈이 좀 편했달까. 대략 눈으로 좇으며 걸어다닐만한 정도의 화려함. 그 음양감과 생생한 조각의

흔적들이 모두 그림이라니. 쳇, 짭퉁이다. 결국 울룩불룩한 게 아니라 평면이란 말이지. 껌딱지처럼.
일단의 패키지 여행객을 만났는데, 가이드가 정말 별로였다. 전혀 자신의 일에 열의가 안 느껴진달까. 그냥, 그래

한번 훑어봐라~ 라는 식의 싸늘한 표정과 건조한 말투, 식은 눈빛. 시간과 정신이 담긴 문화재를 설명하는 일에,

비록 남의 나라 것이라 여겨서 그럴지 몰라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정말 별로였다. 이스탄불 왔더니 역시

한국인이 많다. 가이드의 째려보는 눈빛을 느끼면서도 그의 설명을 조금조금 귀동냥하다가, 배낭여행객은 절로

가라고 하도 눈치주며 구박하는 통에 걍 니들끼리 놀아라~ 속으로 그러고 말았다.

탁심까지. 갈라타탑까지. 갈라타대교까지 내처 걸었다. 명동같은 거리에서 첨으로 가이드북에 나왔던 음식점을

찾아 맛을 보기도 했고, 구시가에서 잠시 길을 잃고 버벅거렸는데 아마도 그건 그 직전 예니사원서 만났던

적반하장의 할배 탓일 거다. 무지 친절한 척하다가 갑자기 삐져버리고. 아직 영어로 싸우는 건, 혹은 따지는 건

잘 못하겠다. 그저 착하고 모범적인 영어만 배워왔으니 원. 그림도 신통찮더만, 맘껏 구경하래서 옆에서

그림그리는 거 구경하고 한점 두점 꺼내서 보여주는 거 잠자코 구경했다가 갈랬더니, 그림 하나 안산다고 난리...

걍 말 안통하는 사람한테는 그저 미안하다고 하고 치워야겠다.


일요일이어서 원래 문을 안 연 거였는지, 아님 갑작스레 8시가 넘으면서 어두워진 것에 놀란 건지, 좁은 시커먼

골목에 인적도 없고 아무 생명의 기운도 없고, 아잔 소리가 괴기스럽게 골목을 뒤흔들더닌 길가에 널린 고양이들이

음흉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헤매도 대로는 커녕 사람 한 명 안 보이는데 덜컥 쫄아서 어느순간 뛰기 시작했는데,

문득 아야소피아의 어여쁜 미나렛이 눈앞에 서있는 모습에 맥이 탁 놓였다.

무슨 페스티발 같은 게 오늘부터 아야소피아 앞 광장서 있었나보다. 우리네 장터같이 구멍가게들이 열리고,

경찰들이 분주하고, 사람들이 바글바글. 좀 구경해주다가 영 지치고 목도 마르고 다리도 아프고. 오렌지를 까먹고

싶단 생각이 불쑥 들었는데, 오렌지주스말고 생 오렌지는 절대 안 판다는 싸가지 아저씨에서, 여섯개에 오천원을

부르는 사기꾼식끼, 그런 고난과 역경 끝에 겨우 6개를 1$에 손에 넣었다. 어찌나 기쁘던지, 공연을 보며 오렌지를

까먹겠다던 원래 생각과는 달리 공연은 보는 둥 마는 둥 계단에 앉아 순식간에 다 까먹고 숙소로 들어와버렸다.





셀축(Celcuk)행 버스를 타고 '오라이~' 아저씨와 안 되는 영어로 둘다 애써가며 터키어도 몇마디 배워보고,

서로의 지갑도 구경시켜 주고 했다. 그렇게 심심찮게 도착한 셀축에선, 아르테미스 분수대 앞에서 또다시

새로운 아저씨와 친해지고 말았다. 재미있게 말도 잘했고, 맥주도 사준대다가 안주삼아 먹고 있던 도토리도

맛보여줘서 그냥 자연스레 합석하고, 함께 걷게 되었던 거다. 그냥 착한 현지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한적한

골목 어귀에 앉히고는 주위를 둘레둘레, 사뭇 긴장한 손짓으로 지갑 속에서 오래 되어 보이는 금화를 몇 닢이나

꺼내 놓았다.


250달러, 150달러, 100달러, 50달러, 40달러, 10달러, 5달러까지...재미삼아 시작한 흥정인데, 급기야 내가 찬

싸구려 목걸이라도 바꿔줄 수 있다고 했다. 에페스에서 일한다느니, 발굴작업하면 그냥 그런 과거의 유물들이

쏟아져나온다느니, 합법적인 루트로는 팔 방법이 없어 그러니 자신의 가족들을 생각해서 사달라느니,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 문득 질려버린 걸 느꼈다.

그런가 하면 이사베이모스크 옆의 가게에 있던 그 스무살짜리 아가씨, 뛰어와서 빨대까지 챙겨주는 거 보면

어려보인다고 칭찬해줬던 말이 약빨이 있었던 것 같다. 괜한 말이 아니라 정말, 머리 모양새도 그렇고 얼굴의

솜털도 그렇고..난 부모님이 잠시 안 계신 새 가게를 지키고 있는 중학생쯤으로나 상상했었단 말이다.


오토가르 가는 길 가르쳐주면서 담배도 권해주고 이것저것 유적도 보여줬던 아저씨도 있었다. 이빨을 온통

드러내며 환하게 웃어주었던 그의 주름진 털복숭이 얼굴. 그런 식의 친구가 권하는 담배는, 마다할 수가

없었다. 그런 사람들. 아, 시장에서 만난 카펫집 아저씨는 복숭아티도 사주고 쉬었다가 가라고 살갑게

대해주기까지 했었다. 사람들이 정말 친절하고 밝고 긍정적이랄까.


근데도 침대가 열 몇개 있는 데서 혼자 자려니 무진장 외롭네. 혼자 시장쪽을 돌며 아이쇼핑을 하는데, 문 다 닫힌

유적들을 헛되이 도는데 왜 그리도 허전하던지. 동양인따위 한명도 보이지 않는 외딴 곳에서 혼자 떨궈진

느낌이랄까.

시계를 7시반에 맞춰놓았는데 8시에 일어났다. 알람이 믿음직스럽지가 못하군. 샤워 한번 싹 해서 체온 좀 올리고

바로 체크아웃하고 나섰다. 성요한교회부터 찾아나섰다. 어젯 밤에 멋진 성이라고 생각했던 게 실은 교회유적의

일부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리저리 배회하며 구경을 하다가 어제 그 아저씨를 또 만나고 말았다.

숨겨져 있던 리얼 모자이크를 보여주겠다며 구석으로 끌고 가서는, 또다시 그 금화(라고 쓰고 동전나부랭이라고

읽기로 하자)를 꺼내들었다. 해서 필살기. Traveler's Check도 받아요? 바로 돌아서서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래도 사진이나 한 방 같이 찍어줄까 하는 마음이 동했으나, 그새 다른 여성여행객에게 달라붙어

금화(라고 쓰고 동전나부랭이라고 읽는 그 금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사베이모스크 보러 가는 길에 어제 그 아가씨 있는 가게에 다시 들러 물을 샀다.

하맘보러가다가 또다시 동전이랑 '파파 프러블럼'을 호소하는 아저씨한테 잡혀서 잠시 옥신각신하다가,
 
반강제로 그의 귀여운 아이와 함께 사진을 기어코 찍고는 빠이빠이. 모스크에선 비치되어 있던 쿠란을

조심스레 살펴보며 잠시 쉬었다.

그리고 아르테미스 신전을 거쳐 에페스까지 걷기로 작정, 아르테미스 신전은 기둥 하나 딸랑 남은 유적지.

참 친절한-주는 것 딱히 없이도 기분이 좋아지는-사람들을 많이 봤다.

카트를 무겁게 끌고 가던 꼬맹이 아이들, 비록 짐은 얼마 안 되었지만 카트 자체로도 충분히 무거워보였다구.

타투를 멋지게 하고 자전거를 타는 장난꾸러기 녀석들, 포스만은 폭주족이었다. 쉬었다 가라고 자리를 권하는

아저씨에 아까 동전갖고 하맘서 장난친 아저씨까지.

에페스는 멋졌다. 무진장 더운 거 빼고는. 또 어느 가족에게 잡혀 영어실습상대가 되어주기도 하고, 사진도

찍히고, 왠지 손해보는 듯 해서 나도 굳이 같이 찍자고 하고. 에페스서 오는 길에 긴 생머리 여선생님을 만나

마케서 과일 쫌 같이 사서 함께 나눠먹었다. 어찌나 달콤하고 양도 많던지. 남겼다.

푸욱 쉬고 박물관 가서 돌아보고는, 이번에는 오렌지를 사들고 돌아다니다가 카펫 가게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만난 지야. 아침에 환전해야 해서 여기저기 은행을 찾아보고 환전소를 찾다가 난감하던 중에, 어떤 삐끼

한명이 친절하게도 환전이 가능한 한 기념품 샵에 데려가 주었었는데, 그때 거기 누나가 파랑눈깔 비스무레한 걸

내게 달아줬었다. 그 삐끼가 바로 지야였던 것. 우연찮게 다시 만난 그는 무지 반가워하며 차도 잔뜩 대접해주고
 
카펫도 구경시켜 주고.

차 석잔쯤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문득 지야는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시장 들러서 잠시 그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가는데, 드디어 이곳 사람들이 사는 집까지 들어가보는구나 하고 상당히 기대를 했었다.

지야, 지레, 부탄..이던가, 난장판으로 어질러진 집에 가서 복숭아 먹고 무화과도 먹고. 터키 음악채널 보면서

음악이야기도 하고. 이런저런 장래 이야기랑 블랙코미디, 영화이야기까지. 뭐 약간의 연애나 여자이야기도 나오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난 여기서 Radiohead가 먹힐 줄은 몰랐다. 와우. HIgh & dry라거나 Let down..


뭐랄까, POWER of MUSIC.



안탈랴에서 마주쳤던 아이들, 저울을 갖고 다니며 몸무게를 재주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터키 전통아이스크림인 '돈두르마'를 파는 맥도널드 앞에서 머니머니~를 외치며 오가는 관광객을

붙잡기도 하고 있었다. 크고 짙은 쌍꺼풀이 인상적인, 그래서 그저 선해보이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눈에 꽉 찼다.


파묵칼레로 이동하려고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 문득 볼일이 있어서 급하게 주위를 찾았더니, 화장실 앞에

지하철 같은 회전문이 설치되어있었다. 무려 500,000터키쉬리라. 그래봐야 한국돈으로 치면 500원이라지만

어쨌든 이런 치사한.


안탈랴(Antalya)에서 데니즐리(Denizli)까지 4시간, 거기에서 다시 파묵칼레(Pamukkale)까지 30분 소요.

생각보다 피곤했었나보다. 여러 사람과 계속 다녀서 그랬는지, 혹은 맨날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빡센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내 자버렸다. 생각보다 파묵칼레는 별로였다.

탄산성분을 흠뻑 함유하고 있는 온천이 흘러나와 기원전시대부터 휴양지로 이름높았다는 파묵칼레, 이곳의

하얀 물그릇같은 웅덩이에 층층이 고인 하늘빛 물결이 찰랑이는 그림. 요새 터키 관광을 홍보하는 광고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바로 그곳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던가, 등재되어 있는 것으로도 알고 있고.

여러 이유가 있었을 거지만, 이 탄산온천 지역의 환경 및 수량 보존을 위해 유량을 제한하고 있었다는 것도 하나,

그리고 뭐랄까...딱 이 사진만큼의 풍경이었다는 이유도 하나, 마지막으로 저 언덕을 올라가는데 신발을 벗고

맨발로 느꼈던 물머금은 탄산칼슘 덩어리들의 찝질한 감촉이 그닥 유쾌하진 않았다는 것 하나까지.

해가 질 무렵 다시 올랐던 파묵칼레에서의 그늘진 풍경. 때로는 잔뜩 선망을 품고 다가갔던 그에게서 생각보다

전혀 진부하거나 실망스런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는 거다.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새하얀 '목화의 성'(파묵칼레의

의미라던데)다운 풍모가 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이대고 볼수록 뭔가 디테일에 집착하게 되는..멀리서 바라볼 때

더 좋은 풍경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에서 걸어서 고작 몇 분..? 그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고대의 도시 유적이다. 집터라거나,

아치형 문의 형체라거나, 여러 유적들이 남아있지만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2세기경에 만들어졌다는 로마의

원형극장이었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옆에서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에 귀를 쫑긋세워 감청해 보니 여기가

오히려 그곳보다 잘 보존되어 있고, 규모도 못지 않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실제로 여전히 당시 고안되어

배치되었던 돌들에 반사되는 음향효과가 작동하고 있어, 무대 위에서 지른 소리가 관객석 뒤쪽까지 전달된다고

했다. 반신반의하는 여행객들. 나도 뒤에서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원형극장을 한바퀴 돌았다.

그걸 확인하러 무대와 관객에 뿔뿔이 흩어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경탄하는 여행자들. 나는 신체분절의

마법을 사용하여 조금씩 사진 속에 나를 구겨넣기로 하고, 나의 가지런한 두 발을 사진에 담았다. 아 물론,

내 귀에도 무대에서 누군가가 "마이크 테스트"를 웅얼대는 소리가 와닿았었다.

더운 날씨였다. 8월의 터키는 계속 그랬었던 것 같다. 유럽에서 온 듯한 여행객들은 웃통을 훌떡 벗어제끼고,

우람한 배와 복실복실한 가슴털을 자랑하며 활개치고 다녔다.




카파도키아의 로즈밸리 하이킹을 함께 하며 친해진 일행들을 전부 꼬셔서 술과 안주가 무제한으로 나온다는(!)

투어에 끼기로 했다. 이름하야 '터키쉬 나이트'.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맥주는 물론이고 터키의 전통주인

'라키'가 나온다고 했다. '라키'란 포도를 증류해서 만든 50도짜리 술인데, 겉으로 보기엔 투명한 소주와 같지만

향이 매우 독특하고 맛도 묘하며, 물에 희석시키는 순간 하얗게 우윳빛으로 변해버리는 신비의 술이다. 사실 지금

우리 집에도 한병 있지만, 그 강렬한 이국의 맛과 향 때문인지 잘 손이 안 가는 게 사실이다.
물론 술이 무제한이라는 이유 이외에도, 터키의 전통춤인 밸리댄스를 보여준다는 이유도 있었다. 본전 생각에

저녁까지 굶고 저녁 8시에 숙소에서 출발, 우리 숙소처럼 똑같이 바위를 파고 만들어진 큼지막한 무대 옆에

차려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안주로 나온 과일과 과자를 계속해서 리필하며 밸리댄스와 수피댄스, 그리고

이름 모를 다양한 전통 춤들을 구경했는데, 아쉽게도 밸리댄스는 그다지 오래 공연되지 않았다. 이미 익숙한

밸리댄스보다 더욱 눈을 끌었던 것은, 남자분이 치마같은 하얀 옷을 입고 몽환적인 음악에 맞추어 내내

뱅글거리며 돌던 수피댄스. 이슬람 신비주의..만물이 쉼없이 유전하며 변화하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다는 그 댄스를 집중해서 보다보니, 지금까지 먹고 마신 술과 안주들이 뱃속에서 함께 뱅글거리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마지막은 거의 나이트 분위기,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무대로 올라와 춤을 추던...그런

히피스러운 분위기랄까. 비록 몸은 뻣뻣한 나무토막같았지만, 마음만은 그들과 함께 웃고 즐길 수 있었던 밤.

다음 날 눈떠보니 7시 반, 전날의 피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몸띵이를 채근하며 일어났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여러

투어 중에서 뭘 해야 하루가 알찰까 생각했지만 어차피 이곳이 워낙 넓고 기기묘묘한 형상들도 모두 신기한 터라,

굳이 다 '발자국 찍으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지 싶다. 이스탄불에서부터 함께 움직이던 누님들과 함께 사파리 지프

투어를 하기로 했다.

터키 중부의 황량한 지형, 그곳의 기묘한 풍광은 역시 스타워즈에서 배경으로 삼을만한 이질적이고도 낯선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곳을 마냥 달렸던 우리의 지프. 이름 까먹은 저 터키아저씨..영어는 짧았지만 손은 길어서,

은근슬쩍 스킨십을...ㅡㅡㆀ 누님과 휴학생 아가씨, 터키를 끝내 같이 돌았음 무지 잼있었을 멤버였는데.
울 뒷차엔 프랑스 할무이 한분, 글구 대구 커플 한팀..거기에 수학과외샌님들이랑-이분들한테 '아주머니'이랬다가

맞을 뻔했다. 그리고 회사 그만두고 몇달째 여행중이시라던 그 '여행속물' 아저씨 한 분. 여행 다님서 만나는

한국인은 딱 세 부류였다. 좀 젊다, 어리다 싶음 대학생, 약간 나이가 있다 싶음 학교 선생님들, 글구 어정쩡하니

왠지 안 어울려보이면 '백수'..회사 관두고 무언가 심기일전을 꾀하거나 애초의 꿈을 수복하거나. 학교 선생님들

참 많이도 만났다 그러고 보면.

차유신, 젤베, 데브란트, 우치사르..많은 곳을 돌며 그 루트도 참 괜찮다 싶던데, 황량한 벌판이나 완연한 시골길,

거친 오프로드에서 먼지를 뽀얗게 날리며, 때론 시냇길을 차로 주파하며 '물쑈'를 하기도 하고. 보면 볼수록

터키인들 참 친절하고 적극적이랄까, 지프타고 가면서 계속 손흔들고 인사하며 푸근하게도 웃고 다닌 것 같다.

어설픈 웃음이나 경직된 미소, 금세라도 무표정으로 바뀔 듯한 위태한 미소가 아니라 정말 여유있는 웃음. 그걸

여행 도중에 계속 갖고 다녀야지, 하고 다짐.


걍 대략 산비탈에 벽돌로 올려세운 집들이 아니라, 산을 깍아내고 만든 이 촘촘한 공간들. 때론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전체의 윤곽을 미처 알아보지 못할 만한 풍경들이 있는데, 카파도키아의 풍경 역시..지나고 나서야 무슨 길을

밟고 무슨 풍경 사이에 자신이 틈입했었는지 알 수 있는 법인갑다. 자연과 인간, 무슨 교양 수업 제목틱한 느낌을

카파도키아에서 참 실감나게 얻었더랬다.

어딜 가나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섞여 있기 마련이라지만, 대체로 울나라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무뚝뚝해

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대체로 터키, 그리고 이집트인들은 무지 친절하다. 머...여자들끼리 다님 좀 안

좋다는 터키 유학생의 투덜거림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이집트와는 달리 터키에선 아무한테나 카메라를 맡겨

사진을 부탁해도 잘 찍어주었다. 이것저것 말도 붙이며 호기심과 환대를 표하기도 하구. 이집트서는 카메라를

거부하거나, 왠지 카메라 받음 바로 도망갈 듯한 우려로 인하여 혼자 여행다님의 설움을 많이 느껴야 했었지만.

우치사르 정상에서 어느 붙임성좋고 잘생긴 터키 남성의 도움을 받은 단체 사진.

우리가 움직였던 코스. 그리고 우리가 묵었던 LAZER Pension.

여행은 줄곧 해뜨는 것으로부터 해지는 것까지의 주요 일정과, 해진 이후의 옵션으로 구성되었더랬다. '해가 진다',
 
'해가 뜬다'란 표현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국면과 형용불가의 장면들을 담고 있는 것인지, 몇십번을 봤건만

질리지가 않았다. 대체로, 터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할 듯한 곳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계속해서 한탄.

리가 머물던 숙소는 기묘한 형태의 바위를 파내어 방을 만들어낸, 그런 운치어린 곳이었다. 그보다 더욱 좋았던

건, 혼자라 생각하고 떠났던 여행이 어느새 정감어린 사람들에 둘려진 채 따스한 배웅까지도 받는 '럭셔리'한

것으로 바뀌었단 사실. 카파도키아를 떠나 지중해와 '나무 위의 집'-허클베리 핀이 살았을 법한-이 기다리는

올림포스로 떠나던 날 밤...누나들의 환송, 그리고 '아저씨'의 촬영.




기타 참고자료..도움이 되려나 몰겠지만.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치는 벤츠껍데기 버스를 타고 도착한 카파도키아. 제대로 잠을 못 자서 온통 뻣뻣해진

몸뚱이를 끌며 펜션에 들어섰지만, 테라스 쪽에서 보이는 풍경이 날 다시 분기시키기에 충분했다. HP +100.

온통 뾰족뾰족하게 갈아진 듯한 바위산에 자그마한 구멍이 난 채 옆의 구멍에선 연기가 뻐끔뻐끔 올라오는 천혜의

펜션인 거다. 바위집..이라는 표현도 부족하고, 토굴, 아니 바위굴...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저런 투어 중에 고민하던 참이었던지라, 우선 혼자 러브밸리라는 펜션 뒤쪽의 협곡을 트레킹하고 돌아오니

1시반, 왜 이름이 러브밸리인지는...ㅋㅋㅋ

잠시 쉬었다가 이곳에서 새로 만나게 된 휴학생 아가씨와 장기여행중인 아저씨하고 넷이 로즈밸리 하이킹을 시작.

기암괴석군들을 뚫고 다니며 자연의 낯선 풍광에 감탄하기도 하고, 그런 거칠고 황량한 곳에서 주거지를 파내고

종교를 고수하는 인간의 신념에 또한 경의를 표하면서 밧줄도 타고 기어오르기도 하고, 더러는 미끄러지고 그런

재미있는 코스였다. 저 너머 노출된 불그스름한 사면이 장밋빛이라 하여 로즈밸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여기서의 해지는 장면이 정말 멋지다고 하는데, 담에 직접 차몰고 다님서나-아마도 신혼여행쯤에ㅋ-볼 수 있을까.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색색으로 염색한 시루떡이 각각 만들어진 제조일자가 달라 굳은 정도에 차이가 나는

거라. 해서 비나 바람에 씻길 때 말랑말랑한 것부터 떨어져나가다 보니 야리꾸리한 형태의 바위들이 남게 된 것.

사진으로 보니까 별반 실감이 덜하다만은..

비록 풍경이 워낙 압도적이고 광활해서 바싹 붙어선 상태에선 그림에 채 담기지 않는다는 치명적이고 안타까운

면을 계속해서 한탄할 수 밖에 없었지만, 어쩌겠는가. 그길을 지난 후에야 내가 어떤 코스를 지났었는지 조망할

수 있다는 상식의 울림을 크게 해 준 것에 감사할 뿐.

아저씨가 사진을 좀 찍을 줄 아는 듯하여 먼저 내가 모델 역할을 해주고 그것과 똑같이 아저씨를 찍어주며 카메라
 
찍는 법 실습하는 식으로 많이 찍었다. 암만 생각해도 내가 가져간 필름이 많이 부족할 듯 하여 그 아저씨와 그런 

일종의 '공조'를 했던 건데, 결과적으로는 그 아저씨는 사진을 꼭 이메일로 보내주겠노라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내가 담긴 사진들을 전부 들고 날라버렸다. 난 그의 약속만 믿고 내 필카를 최대한 아끼고 있었기에

이곳의 사진들이 많이 남지 않는 비극이 벌어졌다는...


아마도 직장을 관두고 마음을 정리하러 세계여행을 다니는 중이라 했으니, 디카의 용량이 부족했으려니...

하지만. 그 아저씨는 내가 만난 대표적인 여행 '속물'이었다. 어디를 가던, 무슨 풍경을 보고 무엇을 먹던

꼭 한 마디. 이건 어디어디보다 못하네, 어디어디랑 똑같네.


많이 다녀봤다고 자랑하는 건지. 아니 다녀봤다는 일정을 들어보니 파리서 삼일, 런던서 삼일..머 그런

식이던데...내가 파리에서만 일주일 넘게 있었어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판에, 인증샷만 찍고 다니셨나.


아저씨, 그런 식의 싹둑 자르는 말은 속으로만 하시던가. 아니...속으로만이라 해도 그렇다. 돈을 싸짊어지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으나, 기껏 마음 정리하러 세계를 돌고 있다면서 여기와 저기를 꼭 그렇게 평가하고 비교해야

속이 시원하시겠수. 그냥 그곳을 느끼고 즐기면 되는 거 아니냔 말입니다.

그리고, 만사 제쳐놓고 여행이야 알아서 자기 느낌대로 떠나고 배우고 즐기는 거니까 터치 안 한다 치면..

했던 약속은 지켜야 할 거 아니냐구요. 당신 때문에 군대 휴가때마다 나와서 노가다 하며 번 돈으로 떠난

한달여의 귀한 여행 중 며칠간의 기록이 완전히 증발해 버리다시피 했단 말입니다.


어쨌든, 여행 다니시며 마음 좀 정리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난 참 기분이 그랬던 냥반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이 있었던 내게, 그런 다소 눈먼 호감은 위험하다고 알려준 사람 중 하나.

여기저기 다녀봤다고 자랑하듯 말하는 사람이나 이런 식으로 뭘 느끼는지 모르게 여행을 다니는 사람

(물론 전적으로 내 기준이지만), 혹은 심지어 게임기를 들고 다니며 이동 중에,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하는

사람까지. 난 그런 여행 속물이 아닌 채 여행을 계속하고 싶었다.




톱카프 궁전...이 지독히도 눈을 괴롭히는 궁전 기본 입장료가 15000, 보석관이 별도 10000, 하렘(여성전용 궁전

칸이라 해야하나;)이 별도 15000쯤 되던가. 안력을 만땅으로 돋구고, 쉴새없이 전후좌우위아래를 탐색해도

여전히 볼 것이 남던 그곳, 무지하게 화려한 온갖 치장과 혹시 한군데라도 빼놓을까 편집증적으로 치장된 기둥

-대들보-천장.
 
금남의 구역이던 하렘의 웬지모를 폐쇄적인 분위기와 화사한 장식들, 그리고 보석관에서 전시된 84캐럿 다이아를

위시한 보물들은 별도의 비용을 내고 들어갈 값어치가 충분히 있었다.

톱카프 궁전의 내실에서 발견한 절라 편해보이는 긴쿠션을 가진 의자, 게다가 어딜 가나 놓여있는 저 '향로'..?

온통 흰색과 파란색을 쓴 이즈니크 타일들과 천장 가득 조각된 문양들, 그리고 아낌없이 쓰여진 금색의 화려함은

곳곳에 놓인 보물류와 비싸보이는 도자기류들과 더불어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머...정신없이 보고 나왔는데,

대략 사람 살 곳은 못 되는 듯.ㅋㅋ

톱카프 궁전에서 어찌나 지쳤던지..하렘 입장표 끊고 난입직전 잠시 쉬는 중에 한 장. 아, 내 앞의 그 프랑스

아줌마 어찌나 싸가지 없던지...마구 허공을 찔러대는 손가락과 함께 blurblur..so be quiet, 이 지랄.--+ 하렘은

그 자체로 완결된 구조를 지녔다는 느낌과 더불어, 왠지모를 여성의 향기가 은은히 남은듯한 환상..마치 여행내내

차도르를 쓴 여성들의 눈을 보며 얼마나 이쁘실지를 상상하며 즐거워했듯.

톱카프 궁전의 뒷뜰에서 함께 하루를 빡시게 돌았던 누님들과 함께.

여행의 둘째날, 의욕에 불타던 나는 누님들을 독려해가며 오전, 오후를 상당히 밀도있는 스케줄로 함께했었다.

제대한지 기껏 5일 지난 군바리에게나 가능할 그런 스케줄을 소화해내느라 급기야, 한 누님은 터키식아이스크림

돈두르마를 먹고서 갑작스레 더위도 같이 먹었단 걸 깨닫고...담날 카파도키아로 가는 껍데기만 벤츠였던 잔뜩

구린 버스를 결국 다른 누나랑 나만 타야했던...그래도 이땐 마냥 좋았는데^^; 톱카프 궁전의 뒤뜰서 이스탄불의

시가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많은 모스크와 미나렛들에 감탄했었는데, 이집트 가보니 여긴 장난이었던 셈이다.ㅋ


보스포러스 해협에선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가 만난다고 한다. 한강둔치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던 그곳...

이 바다를 따라가면 한켠엔 흑해가, 한켠엔 지중해가. 그리고 지구는 둥그니까 언젠간 동해까지도 닿지 않을까

따위 망상에 잠시 젖기도 했었다. 흑해의 바닷물이란 어찌나 시퍼러둥둥하던지.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팔던 고등어케밥,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들 알겠지만, 내가 이곳을 여행했던 2004년만

해도 거의 아는 사람이 없었던 듯...바닷가에 정박해둔 배에서 고등어를 쉴새없이 구우며, 바게트빵사이에

토마토나 양배추와 함께 꼽아서 1,500,000터키쉬리라에 팔았던 듯. 말하자면 고등어샌드위치라고 볼 수도

있을 텐데, 애초엔 엄청 비리지 않을까, 좀체 빵 사이에 생선을 끼워먹는다는 게 말이나 되나 싶었지만..

먹어보니 무지 맛있었다. 터키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맛보고 오겠다고 다짐할 만큼, 유니크하고도 맛났던

샌드위치.


아, 1,500,000터키쉬리라였다곤 하지만 0 세개 떼고 생각하면 대략 한국돈으로는 1,500원쯤? 이란 이야기. 이걸

하루종일 빨빨거리며 다닐 때 점심으로 먹었었던가..그러고 보면 여전히 군바리 마인드가 강했었더랬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선 예니 사원을 뒤로 하고. 나중에 이곳에선 왠 '미친 할배' 하나와 손짓발짓으로 싸우고

말았다는.




아침 6시부터 움직이기로 누나들과 약속했었는데, 암만해도 의욕이 지나쳤었던 것 같다. 전날 이스탄불을

떠난다는 여행자로부터 론리플래넷 흥정하고 정보도 얻고 하느라 늦게 잤던 탓도 있고, 아무리 그래도 6시는

너무 이르다는 이야기도 있고 해서 밥먹고 8시 넘어서야 여행 시작.


히포드롬이라 해서 원형극장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다 허물어지고 남은 건 카르낙신전에서 들고 온 오벨리스크와

몇 개 벽돌찌끄러기들. 이 누님들 사진찍기를 얼마나 좋아하던지, 1000장 찍기가 목표라 했건만 이 속도라면

며칠도 안가 1000장쯤은 우습겠다 싶다. 디카를 사들고 왔어야 했는데 그럴려면 노가다를 몇주쯤 더 해야

했을 테니 여행 자체가 틀어졌을지도 모를 일, 어쩔 수 없었던 셈이다.

블루모스크는 안쪽의 거대한 돔과 타일로 이루어진 벽면이 인상적이었다. 전혀 이슬람 문화와 접촉이 없었던 내가

처음 밟은 모스크였다. 독특한 건물 모양, 그리고 파스텔풍의 색감이 참 부드럽다는 느낌..그 옆에 서 있는

아야소피아는 오백년전부터 계속 개축된 건물이라는데, 천장의 화려한 당초무늬라거나 꼬불하게 이어지는

그림같은 글씨들이 워낙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이어서...목이 아픈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바라보게 만들었다.

회칠이 벗겨지면 다시 덧칠하는 정도에서 끝내며 계속 '현재'에 소용되는 건물로 쓰이던 그 건물들이, 이제는

모두 볼썽 사나운 파이프 따위로 얼길설기 엮인 스피커와 감시카메라, 조명같은 것들로 포박당한 채 그저

과거의 유물로 고정되어 있었다. 더이상 생명이 이어지지는 않는 '관광지'의 느낌.

바로 옆에 붙어있던 아야소피아..하기야 소피아..라고도 하고, 소피아 대성당이라고도 하고, 그 다양한 명칭은

보르포러스해협에 자리해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의 요충을 잇는 이곳 이스탄불의 종교적 위세의 격변과

성쇠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애초 모스크였다가, 잠시 교회로 개축되었다가, 다시 회칠되어 모스크로 쓰였던

그곳은, 이제는 활짝 무장해제된 채 각국의 다양한 종교인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상숭배가 금지된 이슬람 교리에 따라 모스크 내에는 아무런 조각상이나 상징물이 없다. 다만 이슬람 세계의 중심인

메카의 카바 신전을 지시하는 구조물이 있으니, 사진의 조형물이 바로 그 방향을 나타낸다. 이슬람교도들이 기도를

할 때는 모두 이 곳을 향해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며, 메카의 방향을 정확히 잡기 위해 고대 이슬람의 수리지리학이

발달한 것이라고도 한다.


터키 물가는..그럭저럭 한국과 비슷한데, 숙박비가 싼편이다. 5~7$이면 하루밤 묵을 수 있으니..근데 입장료가

열라 비싸다.(지금은 아마 화폐개혁을 했다고 알고 있지만..) 아야소피아 입장료도 15,000,000 터키쉬리라(혹은

15,000bin). 오전의 지하궁전은 10,000터키쉬리라(혹은 10,000bin). 거기서 000을 빼면 대략 한국의 가격으로

환산이 가능했다. 그치만 예산 빠듯한 갓 군필자에겐 너무 혹독한 느낌을 안겨주던 그곳의 화폐 단위.

지하궁전의 온전함과 메두사의 뒤집어진 머리는 과거에도 그런 단절이 없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악의로던, 혹은 무의도적이던. 마치 거대한 연못을 지하에 파놓은 듯, 으슥하면서도 살짝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그곳에서 수백수천년동안 물에 찰박거리며 씻기우고 있던 메두사의 뒤집어진 머리조각이라니.

마침 지하의 그곳에는 우리 일행밖에 없이 한산했던 터라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도 더욱 큰 반향을 가지고

사방에서 메아리쳤고, 지하 특유의 냉기가 목덜미의 땀을 앗아갔던, 그런 특별했던 기억.





공항까지 가는 길이 어찌나 덥고 등짐은 무겁던지, 여기서 벌써 이렇게 진한 육수가 흐르는데 터키나 이집트에선

괜찮을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공항서 기어코 무료 인터넷컴을 찾아 숙제처럼 친구에게 인사를 남기고, 터키항공

비행기를 타고 창가쪽 자리에 앉았다. 앉고 나서 보니 창가쪽 자리란 초짜를 위한 자리구나 싶은 게, '우익'에 가려

잔뜩 갑갑한 창 너머 시야에 더해 옆좌석에 타자마자 담요를 머리까지 덮어쓴 채 뒤척이며 잠을 청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후회하고 있을 때였다.


왠지, 이 담백한-꾀죄죄한-아줌마가 어디선가 낯이 많이 익다는 신호가 마구 쏴지는 거다. 이미 그녀가 신문을

활짝 펼쳐서 읽는 것을 보며 살짝 빈정이 상하기는 했지만, 아님 말자는 심으로 '혹시 누구 닮았단 이야기 들어보지

않으셨나요?'라 말을 걸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누구를 닮았을까요?'라고 되물음으로 답하길래 에라, 모르겠다

싶어 '한비야씨 많이 닮으셨어요.'라 했더니 답이 돌아왔다. '제가 한비야에요'ㅋㅋ


그렇게 트인 말문은 이스탄불에 도착할 떄까지, 구호활동, 여행, 종교, 국가관, 역사, 외교부, 김선일 사건 그리고

이라크전, 민주노동당에 이르기까지 참 많이도 이야기하고 술마시고 건배하고 그렇게 이어졌다. 저마다의 쓰임이

있고, 영역이 있고, 세상일이란 어느 한명이 다 맡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소신에 투철한 '누님'이었다. 그녀의

겸손함은 어쩌면 종교의 힘일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신념과 열의는 사람에 기대어 분출된다. 누님과의 이야기중에

잡은 화두 하나, 내가 효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찾는 것. 인삼같은 만병통치약이 아닌 바에야.


누님은 이라크 국경에서 민간구호활동을 하러 가신다며 이스탄불 공항에서 아쉽게 헤어졌다. 이제 다시 혼자

시작하는 여행이구나, 싶었는데 공항서 왠 아가씨 둘이 환전하느라 낑낑대고 있는 것을 돕다가 합류하게 되었다.

친절한 터키인의 도움으로 메트로와 트램을 거쳐 '동양호텔'에 체크인, 야경이 어찌나 멋지던지 한시정도까지

밖에서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를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Efes 한 캔을 홀짝홀짝.


2층 드농관

'사모트라케의 니케'. 이 천사는 땅위에 막 내려앉은 걸까, 아니면 막 떠나려는 걸까. 헬레니즘 조각 중 손꼽히는 걸작이라는 이 조각상은 명성에 맞게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며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밀로의 비너스 역시 넉넉한 공간을 확보한 채 독보적으로 우뚝 선 채 사람들에 포위당해 있었는데, 마찬가지다.

피사체로서 니케상과 적당한 거리를 격한 채 둥그렇게 포위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카메라로 기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살짝 든 생각..니케의 조각상이나 밀로의 비너스 모두, 그 오랜 명성에서 기인한 후광효과라거나, 혹은 전시 방식에 따른 효과, 그리고 정말 미적으로 작품 자체에서 우러나는 효과를 구분해 볼 수 있을까 하는. 이미 일련의 회로를 따라 미적감각이 유인되고 승인되고, 또 어떠한 감동을 느껴야 할지도 정형화되어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삐딱한 딴지를 걸고 싶었다. 과거의 가치를 전승하고 위계를 공고히 하는 박물관의 디스플레이 기법, 혹은 필연적인 보수성.

이런 식으로 해 보면 어떨까. 다른 유물들, 예술품들과 차별화되지 않는 식으로 함께 전시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명작으로서의 명성을 갱신하고 가치를 재평가받을 수 있도록 해 보는 거다. 사람들이 단순히 '걸작'이니까 아름답다라거나 뛰어나다라는 식으로 사고하지 않도록. 스스로 그걸 발견해 내고 다른 점을 느낄 수 있도록.

물론 이 작품이 다른 것들에 비해 달라보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특별히 섬세하고도 자연스러운 저 옷자락의 율동감이라거나,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은-아름다운 몸을 가진 인간을 고대로 대리석으로 굳혀 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인체의 비례라거나, 무엇보다 당장이라도 어디로 떠나거나 혹은 막 어디로부터 떠나온 것처럼 느껴지는 그 생생함. 힘있게 쭉쭉 뻗는 날개 역시 상상력의 소산이라기엔 너무도 그럴 듯 하게 리얼한데다가 묘한 느낌을 던진다.

사람들이 지쳐 간다. 사실 루브르의 정수라 할 만한 것은 역시 2층 드농관에 있는 모나리자 등 회화와 3층 리슐리외, 쉴리관에 있는 프랑스 회화들일 텐데, 이들은 무엇을 보며 여기까지 와서 널부러진 걸까. 나 역시도 저기 한 구석에 앉아서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점차 뭉글뭉글 부풀고 있었지만 어차피 빈자리도 없다.

제리코가 그린 '메뒤즈호의 뗏목'같은 회화 대작들을 보며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걸어나가다 보니 일종의 '정체 구간'에 들어섰다는 걸 느꼈다. 모나리자가 앞에 있다.

모나리자가 그다지 크지 않은 그림이란 건 알았지만, 저렇게 작은 그림인 줄은 몰랐다. 세로 77cm, 가로 53cm. 온통 모나리자를 위해 열린 공간에 사람들이 그득그득 몰려 있었다. 한걸음씩, 서둘지 않고 내딛으며 모나리자에게 눈싸움을 걸었다.

사람들을 뚫고 맨 앞까지 나아가 한참동안 요모조모 찬찬히 살폈다. 눈, 입술, 얼굴, 손, 좌우 높이가 살짝 다르다는 배경..뭔가 안개가 스멀스멀 신기한 느낌을 자아내는 기법 탓이라곤 하지만, 역시 신비로운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주위에 웅성웅성대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없다면, 좀더 깊이 그 느낌에 젖어들 수 있을 텐데 아쉽다.

그치만 굳이 내가 파리에서 봤던 것 중 가장 멋졌던 예술작품을 꼽으라면..역시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중인 모네의 '수련' 연작. ([파리여행] 빛과 바람, 시간에 희롱당하는 수련..오랑주리 미술관.)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의 기법도 신묘하긴 하고, 모델이 된 그녀/그의 웃음도 신비롭긴 하지만, 그냥 난 수련이 더 맘에 들었다.

이런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촛불 시위때 등장했던 '유모차 부대'의 어머니들의 이미지도 왠지 오버랩되었고-맥락이 동일하진 않고 역할 역시 다르다지만-, 가운데 여성의 단호하고 결연한 표정이 가슴을 흔들었다.

그런가 하면 이런 평화롭고도 달콤한 풍경..화환을 만들어 자신의 허벅지를 베개삼아 기대 쉬고 있는 아가씨에게 씌워주려는 남자. 여성의 분홍빛 뺨과 발뒤꿈치가 앙증맞다.

레오나르도의 또다른 그림, '두 명의 성녀와 아기 예수'.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년의 기억"이라는 논문에서 이 그림이 그의 성적인 배경이라거나 어릴 적의 기억, 보다 정확히는 어머니에 대한 금기된 욕망을 해소하는 하나의 수단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논문에서 프로이트는 이 그림에서 발견된 '독수리'의 형체가 레오나르도가 종종 사로잡혔던 '독수리'의 환상이 반영된 것이라 말하며 이런저런 성적 욕망으로 읽어내는데, 저 그림 속 파란 옷자락이 바로 그 형체라 한다.
한참동안 그림 앞에 앉아 대체 어디에 독수리가 있는지 찾고 있을 때, 마침 옆에서도 유럽인 커플도 그 이야기를 하며 새를 찾고 있었다. 그들도 프로이트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그 새를 찾아내려 하고 있었던 게다. 우리는 한동안 대체 새가 어디에 있을지, 머리가 어디고 꼬리가 어딘지 뚫어져라 그림을 바라보았었지만 결국 그들은 포기하고 모나리자에게 가버렸댔다. 난, 내가 찾은 저게 아닐까 싶은데..모르겠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어귀에서 바라본 루브르 궁전. 그 중에서도 팔레루아얄 뮤제 드 루브르 메트로 역과 인접한 리슐리외관. 사람드이 이제 조금씩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다들 저녁을 먹으러 가거나, 다른 곳에 가서 파리의 야경을 감상할 생각이겠지. 난 이제 9시쯤까지만 3층 회화를 둘러보면 되니, 한결 여유로워졌다.

멀리 보이는 카루젤 개선문의 연한 핑크빛 대리석이 단정하고 따스한 느낌이다. 그림자가 잔뜩 길어진 저녁무렵.

3층 쉴리관

앗..이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랬다. 이건 어렸을 적부터 우리 집에 있던 도록에 포함되어 있던 그림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누나 또래라 생각하며 감상했었고, 조금 크고는 비슷한 나이대라 생각했었는데, 여기서 예기치 못하게 다시 만난 그녀는 이제 여동생이겠다 싶다. 하아....예술의 불멸성이란. (여전히 이 작품의 이름과 작가 명은 모르고 있다.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시길..ㅡㅡ;)

정말 발을 질질 끄는 수준이 되어 가고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을 걷기 시작한 지 거의 8시간여..4층의 회화 중에는 익히 알고 있는 것들도 많았고,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대작들도 많았지만 카메라를 들이댈 기력이 쇠해가고 있었다. 사실 속으로는 얼른 다 보고 나가서 좀 쉬자, 란 느낌도 없지 않았고, 또 한켠으로는 좀만 더 버티고 여유롭게 보자..언제 또 루브르 오겠냐..란 오기도 있었고.

그 중 이 그림은 지친 발을 좀 오래 쉬게 할 만한 유인이 되었다.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초상', 파스텔로 그려진 그림이라 그런지 색채가 부드러우면서 풍요한 느낌이 들고, 또 그러면서도 무지 세밀하고 섬세한 묘사를 해냈다는 점에서 경이롭기까지 했다. 모델인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루이 15세의 애첩이었고,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그녀는 당시 사교계의 여왕이었다고 한다. 그랬을 거 같다. 아름다우면서도 지적인 느낌을 잃지 않았고, 정숙해 보이는 듯 하지만 일변해 요부스러움을 과시할 만큼 충분히 유연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표정이다.(딱 내 이상형이다..ㅡㅡㆀ)

3층 리슐리외관에서는 루벤스의 대작들도 감상하며 파트라슈와 네로를 생각했고, 다른 고전파 화가들의 회화를 둘러보았다. 약간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았지만 역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려면 오르세 미술관을 가야 한다는 말이 맞지 싶었다. 그리고 난 이제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신발을 벗고 보니 심각할 정도의 악취와 함께 거대한 물집이 생겨 있었다.

뭐...저렇게 아름다운 루브르 궁전의 야경을 앞에 두고 할 이야기는 아니지 싶다.

이제 박물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고, 시간도 거의 9시에 육박해 가던 시간에 난 루브르 박물관 10시간 산책 대장정을 마칠 수 있었다. 아직 문이 닫히기 전까지 시간은 좀 남았고, 난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작품들을 다시 한번 찾아가 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으레 전시회 같은 곳에 가면 내가 취하는 코스가 그렇기도 하다. 우선 한번 쭈욱 둘러보고, 그다음엔 맘에 들었던 작품 몇 개를 찾아가 다시 한번 감상하는 것.

3층에서 퐁파두르 후작 부인을 다시 만나고, 루벤스의 그림들을 다시 보고, 2층으로 내려오며 니케를 다시 만났다. 조금 사람이 적지 않을까 해서 모나리자를 만나러 갔더니 거긴 암만해도 나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빠질 생각이 없나 보다. 여전히 시끄럽고 웅성웅성 소리가 울려서 잠시 후에 나왔다. 소란스러움을 피해 제리코의 '메뒤즈호의 뗏목', 베로네세의 '가나의 결혼식', '나폴레옹 1세의 제관' 같은 것들을 다시 둘러보던 중, 박물관의 폐문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9시 반 루브르 OUT. 정말 지쳤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발에서 은은하게 떨림이 느껴질 정도였다.

바람은 소슬한데 루브르의 야경은 왠지 눈물겹도록 따스해서, 왠지 미친듯이 센치해져서 순간 마음의 갈피를 잃었다. 방금까지 내가 있었던 그 공간의 넘치도록 풍요한 감성과 자극들이 원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배가 차면 조금 낫지 않을까 싶어서, 생각없이 노틀담을 향해 걷다가 예술의 다리를 지나게 되었다. 사람들이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떠들고 노는 걸 보고 있자니, 왠지 배도 고프고 가슴도 고프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니 이건 완전 한국의 가을 날씨였고, 루브르를 나서며 순간 난 '가을'을 탔던 것 같다.





1층 리슐리외관

이 영악스럽고 장난기 넘치는, 그렇지만 뭐든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 그야말로 사랑의 신이 가져야 할 법한 눈빛이다. 날개달린 어린 아이로 표현되어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근방을 맴도는 사랑의 신, 큐피트는 수많은 그림과 조각에서 묘사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 내 맘이 쏙 드는 표정이다. 아이처럼 여리고 부드럽고, 순수한 몸이지만 그 눈빛과 입가의 웃음은 왠지 조금 악마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조용히 하라며 오른손가락을 입술에 대곤, 왼손으로 슬몃 화살통에서 화살을 뽑아드는 순간. 큐피트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눈빛으로, 혹은 뭔가 재미있는 일을 잔뜩 기대하는 장난꾸러기의 표정으로 '사냥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신화의 어느 대목인 걸까. 뭐...뒷켠에서는 옷을 벗고 있는, 혹은 입고 있는 여성의 조각상도 보이고, 이 남성을 보면 '크기'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온통 세계 최고, 최대를 지향하고 선전하기에 바쁜 못난 사람들도 좀 맘의 안식을 찾으려나.

2층 리슐리외관

리슐리외관 2층에는 나폴레옹 3세의 살롱과 회랑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마도 나폴레옹 3세가 궁전으로 썼던 리슐리외관을 1993년에 미술관으로 바꾸면서 옛모습 그대로 남겨놓은 공간인 듯 싶다. 이런 화려한 '프랑스식' 궁전은 이미 터키에서, 또 태국에서도 봤던 거지만, 그 오리지널 버전인 거다.

샹들리에에서 노랗게 빛나는 불빛, 그 아래 반사광을 번뜩이며 가지런히 정렬된 소품들과 의자들. 원래는 이렇게 거무죽죽하게 죽은 색감이 아니었는데 아쉽다.

신기하게 생긴 의자. 세명이서 서로 뒷사람 등을 슬쩍 바라보며 앉아있을 수 있는 소용돌이식 의자라니, 서로 대화하기는 쉽지 않겠다. 셋다 목을 오른쪽으로 살짝씩 틀면 어쩜 셋이 마주보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으려나. 실제 앉아보고 싶은 욕구가 무럭무럭 자라났지만, 이녀석과 나 사이에는 출입을 금지하는 바가 설치되어 있어서 포기.

이런 색감인 거다. 화려하게 발색한 자줏빛 벨벳에, 황금빛이 은은하게 머금어져 있는 밝고도 따뜻한, 사치스럽지만 우아한 분위기.

비록 샹들리에에 꼽힌 초들이 전구꼽힌 짝퉁이라 해도, 그래서 바람에 펄럭이며 살아있는 듯 너울지는 불빛과 그림자의 신비로움을 머금고 있지는 못하다 해도, 온통 돋을새김된 조각들과 무늬들은 그 빛을 당당하게 발하고 있었다.

어쩌면, 살아있는 촛불과 달리 이렇게 멈춰지고 굳어져 버린 느낌의 전기불빛이 비춰진다는 건, 생활의 영역에서 떨어져나와 유리관 안에서 '보존'되는 박물관에 딱 어울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림과 조각으로 디테일한 공간마저 가득 채운 궁전.

2층의 리슐리외관이 끝나갈 무렵, 어느 방에 내려뜨려져 있던 본격 전기불빛 샹들리에. 만월들이 둥실둥실 떠있는 느낌.

2층 리슐리외관에 있던 자그마한 카페. 유리 피라밋 너머 드농관이 보인다. 애초 1980년대에 유리 피라밋의 건설을 둘러싸고 격렬한 찬반토론을 불러일으켰다지만, 결국 루브르 궁전과 유리 피라밋의 안 어울릴 것 같던 조합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냈다. 여기서 눈여겨야 할 것은 '결국' 끝이 좋지 않냐..라는 게 아니라, 그 건설을 둘러싸고 진행될 수 있었던 질긴 찬반토론, 혹자는 그 소란스러움과 유난스러움이 싫다고 할 지 몰라도.

작동을 멈춘 분수대 옆에서 서로 기댄 한 커플도 키스 상태로 멈춰 있었다. 오랫동안.

2층 쉴리관

대체 이집트인들은 얼마나 많은 유물을 남기고 있는 걸까. 이 곳의 있는 이집트 유물들도 카이로 박물관 못지 않게 많다. 물론 박물관 내에다가 디스플레이 따위 상관없이 빼곡히 좌판처럼 바닥에 벌려놓은 거기만 하겠냐만, 보면서 놀라게 된다.

관 안에 모셔진 망자가 여전히 밖의 세상을 지켜볼 수 있도록, 자신의 안녕을 도모할 수 있도록 관 외부에 그려진 두 개의 눈동자. 이집트에 가서 만들어온 반지에 있는 '호루스의 눈', 바로 그거다. (이집트 상형문자가 아로새겨진 '절대반지'.)

아네모피스 4세, 아케나톤의 거대했을 인물상이 일부만 남았다. 다소 그로테스크하게도, 뒷머리 부분이 예리하게 떨어져나갔다. 표정이며 풍채가 뭔가 범상치 않다는 느낌을 한웅큼 안겨 주지만, 뱀처럼 길게 찢어진 눈에 뾰족함이 강조된 턱이 그다지 호감이 가는 인상은 아니다.

이집트 미술이 전시된 공간을 허위허위, 그렇지만 쉼없이 내딛다가 여기서 비로소 한번 멈췄던 듯 하다. 저런 색감의 조각은 이집트에서도 못 봤었다. 무지 현대적이란 느낌을 주는 색감이면서 눈에 탁 띌만큼 청량한 색이라고 생각했다. 온통 칙칙하고 퇴락한 색만 드문드문 발려있던 유물들 사이에서 반짝반짝거리고 있었다.

2층 드농관

2층 드농관에서는 이탈리아, 에스파냐, 영국의 회화 및 19세기 프랑스 회화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모나리자를 비롯하여 워낙 유명한 대작들이 많아 루브르에서 가장 혼잡하다고 이야기되는 곳이기도 하단다. 그 곳에서 문득 내 눈에 들어왔던 회화가 한 점 있었다. 투구를 차려입은 신에게 알몸으로 달려가 뭔가를 호소하는 듯 간절한 여인. 그리고 그 뒤에 백발성성한 노인은 보디빌더처럼 근육이 잘 새겨진 몸뚱이를 갈색 날개에 온전히 의지하고 있다.

이건...무슨 제스쳐지...? 님좀짱인듯? 니가 짱 먹어라? 이 무렵의 그림은 문자나 텍스트, 혹은 이야기를 직접 그림 속에 풀어넣었다고는 하지만, 저 번쩍 치켜든 엄지손가락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앞쪽에서 갑자기 출현한 일군의 관광객들이 무시무시하게도 거침없는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별로 반갑지도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아는 척 하고 싶지도 않아서 잠시 조용히 창밖의 프랑스 정원을 내다보며 앉아 쉬었다. 중간중간 앉아서 쉴 만한 곳들을 많이도 만들어놨다. 6시간쯤 넘게 계속해서 걷고 있던 상황이어서, 한번 앉으니 발가락들이 아우성친다.

저녁도 먹어야 할 텐데, 일단 2층까지 다 돌고 내려가서 카루젤 개선문 옆의 PAUL에서 빵이랑 에스프레소로 때우기로 했다. 따져보니 대략 예정대로 잘 오고 있다. 딱히 주마간산 격으로 대충 봤다는 느낌도 없고, 인상적이었던 작품 앞에서는 한참을 빙빙 돌며 구경도 하고, 잠시 앉아서 바라보기도 했다. 물론 10분 이상 앉아서 쉰 적은 없으니 발이 완전히 욱신거리며 어딘가 물집이 잡혔노라고 항변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만족스럽다.

그리고 일어났더니, 발이 약간 질질 끌리는 느낌이긴 하다..

기다란 회랑, 그리고 천장과 벽면을 모두 모자이크하듯 가득 채우고 있는 커다란 회화들과 그림들 간의 구획을 지어주듯 구불구불거리며 온통 휘감고 있는 황금빛 장식들. 한 6시간쯤 계속해서 보다보니 이제 살짝 무감각해졌다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었지만, 뭐 멋진 건 멋진 거다.

루이 15세가 대관식 때 썼던 왕관이라고 한다. 물론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굵직굵직한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루비 같은 호사스런 보석들로 충분히 반짝거리기는 했지만 뭔가 아쉬웠다. 뭘까 생각해 보니 그런 거다. 왕관만 덩그마니 있으니 좀 부족해 보이는 거다. 그 화려한 복식과 다른 장신구들, 왕홀 같은 것들이 함께 하지 않아서야 역시 좀 볼품이 떨어진다.





루브르 박물관에 입장하려는 관광객들이 하도 많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던 터였지만, 막상 오전 11시 반쯤 도착한 루브르 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적었다. 다만 입장권 구매 창구를 몇 개 닫아놓은 데다가 느긋하기만 한 매표원들의 행동에 마음이 조금 답답했을 뿐이었다. 9유로의 입장권, 그리고 최근에 대한항공이 협찬하여 생긴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대여에는 5유로. 그냥 입장권만 구매했다.

# 루브르 박물관 "열시간 산책 대장정" 전략.

반지층 쉴리관

이곳부터 시작했다. 루브르 궁전의 역사적 변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전시물들이었다.

루브르 궁전의 원래 모습은 내성, 외성에 해자까지 파여있는 요새 모양의 성이었다고 한다. 윗 사진이 바로 그 때의 모습을 추정 복원한 것일 텐데, 작은 창문에 폐쇄적인 성곽 형태가 아주 단단해 보인다. 공사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는 이런 옛 자취들, 지금의 모습과는 영 딴판인 이런 모습을 보면 이곳도 꾸준히 전란이 이어졌고, 짓고 허물고 다시 짓고 허물어졌던 그런 땅이구나 싶다.

이 동서 1km에 이르는 거대하고도 우아한 궁전의 지하에서 발견된 과거 성벽의 유적들. 루브르 궁전, 아니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발견한 유물은 그래서 바로 루브르의 옛 모습이었다.

반지층 리슐리외관

이어진 길을 따라 리슐리외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런..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닥쳤다. 반지층이라곤 하지만 평탄한 하나의 공간을 쓰는 게 아니라 반층 높이만한 계단도 있고 해서, 길을 어찌어찌 좇다가 보면 어느새 리슐리외관 1, 2층까지 오르내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완전히 루트가 엉망이 되겠다 싶어서, 차분히 다시 바닥부터 훑기로 했다. 급하게 할 건 없고 아까부터 눈을 끌던 조각들이 보이던 탓이다.
혼자 여행을 다니는 건 내가, 혹은 상대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포즈로 서있는 사진을 찍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렇게 서로 마주보며 공이나 창이라도 던졌는지, 뭔가 역동적인 포즈를 취하는 이 두 조각상 사이에 내가 서 있다 상상하며 사진을 남겼다.

리슐리외관 천장, 그니까 루브르 박물관(혹은 궁전)의 천장은 일부 저런 식으로 자연채광을 위해 뚫려 있었다. 컴컴하던 쉴리관의 중세 루브르 유적과는 달리 화사한 햇살 아래 유백색 대리석 조각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광경은 역시 루트 따위, 9시간 주파 의지 따위 잊어버리게 만든다.

이 청동조각은 아마도 큰 뱀을 잡아죽이는 헤라클레스? 제목을 유념해서 살피긴 했는데, 그걸 다 기억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이녀석은 저 뱀의 생생한 피부질감의 묘사라거나 눈알의 섬뜩함, 그리고 다른 박물관에서 보던 여느 대리석상들의 남근이 대개 애매하게 뭉개져 있는 것과는 달리 당당했어서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곳의 대리석상들은 상당수가 제대로 된 남근을 소지하고 있었던 게 눈에 띄었다.

'크로톤의 밀론'이란 작품이랜다. 작가는 피에르 퓌제. 관람 안내문에도 표기된 작품인 걸 보면 뭔가 대단한 작품인가 본데, 내가 굳이 이걸 사진으로 남긴 건 왠지 우스꽝스러워서였다. 엄마~아, 엄마~아, 엉덩이가 뜨거워.

반지층 드농관

유리 피라밋을 중심으로 하여 세개의 건물동이 피라밋의 세 모서리를 바라보고 선 형태다. 매표소는 바로 그 유리 피라밋 아래에 있는데, 일단 티켓을 사고 나면 당일에는 몇 번이던 들락날락할 수 있다. 리슐리외관과 마주본 드농관으로 가기 위해 리슐리외관 출구로 일단 나와 매표소를 지나 드농관 입구로 들어갔다.
'성 막달라 마리아, 16세기 에르하르트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교 관련 예술품에 등장하는 여성은 거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것일 텐데, 게다가 그녀의 성스러움과 고귀함, 거룩함을 드러내고자 노력하는 게 상례라는 점에서 이건 특이하다 싶었다.

'거리의 여인'이었던 막달라 마리아라니. 게다가 저 새침하고 도도한 표정과 몸에 배인 듯 자연스러운 유혹적이고 도발적인 자태, 탐스럽고 구불구불한 긴 머리가 그녀의 벗은 가슴을 지나 음부에까지 교묘히 가려진다. 이뻐서 한참 이리저리 뜯어보았더니 살짝 우울해하는 듯한 그녀가 숨어있었다.

11-15세기 이탈리아 및 스페인 조각이 전시된 이 부근 공간에는 온통 그리스도교 관련 유물들이었다. 십자가상에, 피에타상에..처녀 혹은 아주머니와 아기 하나. 그 소재로 수세기 동안 무궁하리만치 다양한 표정과 구도, 자세를 표현하고 있었달까. 이 '성 막달라 마리아'만큼 인간적인 표정과 분위기가 어린 것 없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나름 청순, 요염, 새침, 푸근, 센치한 '여성'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 이제 반지하층에서 1층의 드농관으로 올라가는 길. 계단 어디메쯤에 있는 궁전의 장식품이던가, 아님 반지하층의 전시품 중 하나던가, 흉상이 루브르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긴 이 건물 안의 모든 것들은, 한때 궁전의 장식품이었던 것들을 포함해 모두 박물관의 전시품 아니겠는가. 이곳은 약 30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 3대 박물관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궁전에 미술관이 처음 생긴 건 프랑스 대혁명기인 1793년, 왕실이 수집한 미술품들이 왕가만을 위한 소장품이라는 비판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폭넓은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비판이지 않을까. 그때의 혁명적 의식과 기풍이란. 그들의 위에 군림하는 '왕'이 있었기에 왕의 목을 베었지만, 만약 그들의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이 있었다고 해도 그들은 대통령의 목을 베어냈을 거다.

1층 드농관

뭐더라..저 여자는 아마 월계수가 되고 남자는 그 월계잎으로 승자의 관을 씌워주는 아폴로였을 거다. 아폴로가 큐피드에게 잘난 척하다가 그의 화살을 맞고 저 강의 신 따님이신 여자를 죽도록 스토킹하게 되고, 그녀는 또한 큐피드의 화살을 맞고 무작정 피한다는 슬픈 어긋남의 이야기. 그녀는 싫다 하고, 그는 좋아한다 한다.(그렇다고 보기엔 남자의 눈빛이 열에 들뜨다 못해 잡아먹을 듯이 사나워져 버렸다. 욕정의 개입일까.)

그리스로마 신화란 게 생각해 보면 죄다 유괴, 강간, 치정에 의한 살인사건..그런 거다. 그만큼 원초적이고 원형적인 날것의 이야기란 뜻일까. 에로스만 과잉확대시킨 에로스박물관이나 섹스샵이 아니라, 이런 감정을 담아낸 예술작품에서 더 제대로 에로스를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신의 키스로 소생된 프시케'란다. 카노바의 작품. 유백색 대리석의 매끈함과 찰진 느낌이 그대로 프시케라는 여인과 천사의 몸으로 이어진다. 저 절묘한 자세하며, 그럼에도 흐트러짐없는 인체의 비율이나 자연스러움하며.

하아..그냥 딱 보면, 딱 이뿌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오바스럽지 않을 만큼.

그리스의 신들을 나타내기 위한 표징으로, 대리석상에는 뭔가 그들의 스토리 중 한 장면이 연출되거나, 양손에 상징물을 쥐고 있거나 한다고 한다. 부엉이를 쥐고 있는 이 신은 그렇다면 아테네, 미네르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야 날갯짓을 한다. 그치만 저 부엉이는 왜 저렇게 (귀엽긴 하지만) 엉성하게 조각된 느낌이 드는지. 동그란 원통형 몸에다 날개 두개 대충 만들어 꽂아넣은 느낌이랄까.

게다가 내려보고 있는 여신의 저 퉁명스럽고 냉소적인 눈빛. 미네르바를 잡아넣은 그들의 눈빛이고 그들의 움켜쥠처럼 느껴지는 건 과잉한 반응인 걸까.

1층 드농관에서 쉴리관으로 넘어가는 길에 있던 화려한 회랑. 천장화에 나온 사람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감별하며 걷자니 어질한 기분이 들었다.

저런 식의 무늬와 조각이 지금 생활에서 쓰여진 곳을 찾으라면 아마 뭔가 촌스럽게 키치화된 사진 액자나 그림 액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거 같다. 그렇지만 회랑의 천장부는 황금색의 현란함과 빼곡하게 채워진 문양들, 조각들에도 불구하고 과하다라거나 천박하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물론 그건 이 건물 자체가 이런 화려함과 과한 문양들로 그득한 일종의 '테마 파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1층 쉴리관

이건 뭔지 한눈에 알 거다. 너무나도 유명한, 그렇지만 정작 실물은 처음 보는 '밀로의 비너스'. 뭐랄까, 초등학교 때 첫사랑을 나이 서른에 만난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반가우면서도 낯설고 어색하고, 내가 알던 그사람이 이사람 맞는지 싶기도 하고, 그런 느낌이었다.

역시 난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밀로'는 그녀가 발견된 지역의 이름, '비너스'라곤 하지만 사실 그녀의 양손이 부러져 있어서 특징을 밝혀줄 징표가 사라진 탓에 정체는 불확실하단다. 손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었을지, 그렇게 그녀는 어떤 포즈를 결국 취하고 있었던 건지, 살짝 주춤한 골반과 모델의 워킹인 듯 율동감이 느껴지는 두 발의 실루엣..

가까이서 본 그녀의 얼굴은 내 상상 속에서보다는 훨씬 남성스럽고 강인해 보였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오똑한 코는 살짝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고, 다소 심술스럽게 앙다문 입술이나 이마의 생김이란 건 왠지 '이터널 선샤인'쯤의 케이트 윈슬렛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그늘이 지면 식스팩이 살짝 비치는 저 배는 대체...남성의 배라고 해도 믿겠다.

파라오 시대의 이집트 유물. 봉긋한 배와 다소 도식적이지만 끝이 돌돌 말린 머리모양에서 여성스러움이 묻어난다. 물론 좀 딱딱하고 엉성한 신체 묘사는 비너스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왠지 비너스의 몸은 (이뿌지만) 거구의 여전사나 남성의 몸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서 더욱 대비되는 듯 하다.

이곳의 유물들은 역시 카이로 박물관, 혹은 룩소의 '왕의 무덤'이나 '귀족의 무덤'群을 따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볍게 돌아보곤 빠져나왔다.

고대 이란의 '아파다나 궁의 기둥머리'랜다. 이런 기둥머리가 수십개가 열을 짓고 늘어서 건물을 받치고 있었을 텐데, 그 규모가 얼마나 웅장했을지 모르겠다. 아마 거대한 기둥들이 백 몇개씩 빼곡히 늘어서 있던 이집트 룩소르사원의 느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1층 리슐리외관

1층 쉴리관에서 리슐리외관으로 이어지는 통로의 창밖으로 내다본 루브르의 프랑스식 정원. 깍듯이 정돈된 초록빛 덤불이 구획을 짓고 있는 사각 공간 정원이란 건 루브르 궁전의 반듯한 외양과 잘 어울린다.

메소포타미아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공간에서 철푸덕 주저앉아 스케치 연습을 하고 있는 프랑스의 아이들. 이런 광경은 사실 어느 미술관에서나, 어느 박물관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아이들도 이런 식의 체험학습(이랄까)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에 익숙해 보였고, 비록 잘 그리진 못해도 뭔가 펜으로 표현하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이건 아시리아 제국의 사르곤 2세 궁전의 일부를 아예 통째로 복원해 놓은 전시관이었다. 궁전의 입구 한 면을 장식하는 유물들을 원래 장소로 추정되는 곳에 드문드문 배치해 놓았고, 무엇보다 입구 양옆에 버티고 선 이 반인반마의 괴수 두 마리의 위압감이 대단했다. 잘못하면 저 뾰족하고 단단해 보이는 발굽으로 뻥, 하고 걷어차일 듯한 압박감.



비즈니스 참고사항



비즈니스 에티켓


○ 약속 잡기

- 인도인들은 시간 엄수를 높이 평가하지만 스스로가 실천하지는 않으므로, 언제든지 약속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스케줄을 유동성 있게 잡을 필요가 있음.

- 계약 체결과 관련된 의사 결정은 오직 최고위층에 의해 이루어짐.

- 인도 경영층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 사이에 약속을 잡는 것을 선호함.

- 수많은 종교적 공휴일에는 비즈니스가 이루어지지 않음. 지역별로 서로 다른 공휴일들이 있으며, 해마다 날짜가 바뀌므로 사전에 미리 확인하여야 함.

드레스 코드

- 남성은 정장을 갖추어야 하나 더운 날씨로 인해 양복 상의와 넥타이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음.

- 가죽으로 된 의상은 피하는 것이 좋음.

- 여성은 전통 의상이나 바지 정장(pantsuit)을 선호

대화

-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는 것을 즐기며 비즈니스 미팅에 있어서도 가벼운 잡담으로 회의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임.

- 일반적으로 인도인들은 개방적이고 우호적이며 서구 국가에 비해 사생활에 대한 관념이 낮은 편임.

- 인도인들은 직접적으로 반대 표시를 하지 않는 편임.

화제

- 인도인들에게 있어 매우 인기 있는 세 가지 화제는 정치, 크리켓, 영화이며, 최근에는 경제 개발이 추가됨.

- 인도인은 자신들의 풍부하고 오랜 문화적 유산에 자긍심을 갖고 있으며, 특히 외국인들에게 그들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함.

피해야 할 주제들

- 종교에 관해서 논하는 것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지만 한편으로 종교는 그들의 일상에 매우 깊게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특정 종교 의식에 대한 순수한 질문은 매우 환영받을 수 있음.

- 대부분의 국민이 파키스탄에 대해서는 매우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는 피하는 것이 좋음.

- 자신들의 경제 발전을 매우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에 빈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매우 꺼리며, 만약 외국인이 먼저 그런 주제를 꺼낸다면 아주 무례한 비판으로 받아들일 것임.

호칭

- 상대방을 부를 때 “Professor”, “Doctor”로 부르는 것이 좋음.

- 한 사람의 지위는 나이, 학력, 직업, 카스트에 따라 정해지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정부 기관에 근무하는 것은 민간 부문에 종사하는 것보다 훨씬 고상한 것으로 인식됨.

○ 이름

- 인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성(surname)을 사용하며 특히 북인도에서 그러함. 여성은 남편의 성을 따름.

○ 협상

- 지방어로 번역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언제나 명함을 주도록 함.

- 어떠한 경우에도 육체적 다툼을 벌이는 것-옷깃을 잡는 것을 포함해서-은 용납되지 않으며, 아무리 불쾌한 경우에도 미소로 응대하는 것이 가장 득이 됨.

- 경직된 계급사회적 특성을 감안할 때 직원은 오직 직원만 대면하게 되므로 보스가 직접 미팅에 참석하여 상위 레벨의 상담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

- 접대는 비즈니스에 있어 핵심 요소로서, 대부분의 상담은 차가 나올 때까지 시작조차 하지 않으며 가벼운 잡담으로 시작함.

○ 기타

- 대부분의 인도인은 힌두교도이고, 힌두교는 남녀의 공공연한 접촉을 금지하고 있음.

-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힌두교도들의 전통적인 인사말은 “namaste(나마스떼)”로서, 인사법은 턱 아래에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는 것임.

- 누군가를 부를 때는 손바닥을 아래로 해서 손가락을 움직임. 손바닥을 위로 할 경우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

- 손을 엉덩이 근처에 올린 채 서 있는 것은(‘arms akimbo’) 화가 났다는 의사 표시이므로 유의해야 함.

-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은 결례이며, 인도 사람들은 보통 턱으로 가리킴.

- 발은 청결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므로 절대 자신의 발이 다른 사람에게 닿지 않도록 주의하고 만약 닿았다면 사과해야 함.


선물


○ 선물을 받자마자 열어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님.

○ 초대를 받았을 경우에는 초콜릿, 꽃 등의 작은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음.

- 선물 포장은 흰색, 검정색은 피하고 녹색, 빨간색, 노란색을 쓰는 것이 좋음.

○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수입 위스키는 아주 좋은 선물이 되며, 만약 현금을 선사하는 경우가 있다면 금액을 홀수로 맞추어야 함.


상관습


○ 인도 비즈니스맨이 가지고 있는 사업 관행과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 사업 관행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특히 유의해야 함. 인도 바이어들을 직접 상담한 후 바로 거래에 연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실제 오더 및 대금 결제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므로 느긋한 마음으로 임해야 함. 특히 인도 정부 기관은 느린 업무 처리로 악명이 높음.

○ 인도는 대표적인 가격 시장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가능하다면 제품의 기능을 옵션으로 두어 기능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가격에 융통성을 줄 수 있는 것이 좋음. 가격 협상은 최소한 몇 차례를 각오해야 하므로 마지막까지 가격의 마지노선을 제시하지 않는 것이 좋음.

○ 대금 결제는 처음부터 L/C 나 T/T 로 해야 함. 인도인들은 인도인들 사이의 거래에서도 대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물건을 주지 않는다고 할 정도이며, 대금 결제에서 신용을 제공하는 것은 문제의 불씨를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야 함.

○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는 선적 시 바이어로 하여금 선적 전에 제품을 검사하거나 그에 준하는 동의를 얻어 내는 것이 좋음. 단순히 샘플로만 합의하고 선적한 경우 나중에 제품의 불량이나 하자를 이유로 제품 도착 후 제품 수령을 거절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

○ 계약서를 꼼꼼히 검토하는 것은 기본이며, 제품 검사에 대해서도 검사 기관을 특정한 경우 검사에 소요되는 기간이나 비용을 미리 확인하여 비용에 반영하여야 함.

○ 제품의 성능 등에 대해서는 그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함. 애매한 표현은 화를 자초하거나 제품 수령을 거절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됨.

○ 계약에 관한 모든 사항은 반드시 문서로 남겨야 함. 인도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인도와의 거래에서 신사도(gentlemanship)는 없다고 말할 정도로, 단순히 선언적인 내용을 말로 약속한 것은 인도와의 거래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음.


근무시간


○ 공무원들의 근무 시간은 09:00~17:30이며, 토/일요일은 휴무임. 그러나 대부분의 정부 부처는 10:00 시 이후에야 정상적인 업무가 시작되는 편임.

- 또한 부서별로 근무 시간이 다소 차이가 있으며, 뭄바이 공무원 근무 시간은 10:00~17:00 또는 10:30~17:30 으로 이원화되어 있음.

- 첸나이 공무원 근무 시간은 10:00~17:00임.

○ 민간 기업은 업체의 사정에 따라 상이함.

- 은행의 근무 시간은 평일 10:00~16:00, 토요일은 10:00~12:00 에 정상 영업. 다만 현금 인출기는 24 시간 동안 사용 가능함.


현지 주요 연락처



주요 연락처


○ KOTRA 뉴델리 무역관

- 주소: Korea Trade Center, New Delhi B 9/1, Vasant Vihar, New Delhi, India (뉴델리 국제공항에서 차로 20분 소요)

- 전화: (91-11) 5166-0981~5

- 팩스: (91-11) 5166-0980

○ 주 인도 한국 지상사 협의회(코트라 첸나이 무역관 사무국 담당)

- 전화: (91-44) 2433-7280 /핸드폰(91-98400 25933)

○ 뉴델리 한인회

- 전화: (91-11) 5165-5061/2

- 한인회장: 이중훈

○ 임마누엘 교회(뉴델리)

- 주소: 24, Lodi Road, New Delhi

- 전화: (91-11) 2614-5342

- 담임: 김광선 목사

○ 베델교회(뉴델리)

- 주소: British School 강당

- 전화: (91-11) 2651-9986(천성조 목사), 2686-5260(황선옥)


대사관 정보


○ 주 인도 한국대사관

- 주소: 9, Chandragupta Marg, Chanakyapuri Ext. New Delhi- 110021 (뉴델리 국제공항에서 차로 15분, KOTRA 뉴델리 KBC에서 차로 10분 소요 거리)

- 전화: (91-11) 2688-5374/6, 5412, 5419

- 팩스: (91-11) 2688-4840

○ 뭄바이(구 봄베이) 총영사관

- 주소: Kanchanjunga Bldg., 9th FL., 72, Peddar Road, Mumbai 400026, India

- 전화: (91-22) 2388-6743~5

- 팩스: (91-22) 2388-6765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여행 정보



주요 관광지


인도는 5,000년의 역사와 더불어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굴지의 관광 자원국임.

○ 바라나시와 카쥬라호의 힌두 유적지, 보드가야와 아잔타의 불교 유적지, 델리와 아그라의 이슬람 유적지 등이 유명함.

- 최근에는 히말라야의 설경과 트레킹, 라자스탄의 사막 사파리 등 대자연의 풍경을 즐기려는 관광객도 크게 늘어나고 있음.

○ 관광개발공사(ITDC)는 열악한 숙박 및 교통시설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관광객 유치를 위한 홍보를 전개중

○ 뉴델리 및 인근 주요 관광지

- Red Fort : 무갈왕조 제 5 대 황제 샤자한이 건설(1639~1748 년)한 성으로 올드델리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붉은 빛의 사암으로 지어져 '붉은 성'이라는 이름을 얻었음.

- India Gate : 제1 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한 9 만 명의 인도 병사를 위한 높이 42m 의 위령비

인근 지역

- Taj Mahal : 아그라(델리에서 남동쪽으로 약 220Km)에 있는 세계7 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건축물로, 무갈 제국의 제 5 대 황제 샤 자한이 죽은 왕비를 위해 지은 무덤 (1631 건축시작, 1653 완성)

- 암베르 포트: 자이푸르 외곽 언덕에 위치한 가장 볼 만한 장소 중 하나, 1600 년 만싱경에 의해 시작되어 현재 모습으로 완성된 것은 18 세기 스와이 싱에 의해서임. 붉은 사암과 흰색 대리석으로 구성된 힌두와 무슬림 건축 혼합의 대표적인 예임.


비자


○ 인도에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은 비자가 필요함. 우리나라와는 2005. 10월부터 외교관 여권 및 관용 여권에 대해서는 90일 이내에서 비자가 면제됨.

비자 종류

기간

발급 주체

단기비자(복수)

15일 ~ 6개월

해외 주재 인도 공관(대사관) 재량으로 발급

장기 비자

1년 이상

해외 주재 인도 대사관이 본국(인도) 해당 부처 (Ministry of Home Affairs)에 조회하여 발급

- 1년 이상의 비자 소지자(외교관 제외)는 인도 도착 후 1주일 이내에 외국인 등록소(FRRO)에 등록해야 함.

- 인도에서 체류 중 체류 기간을 연장하고자 할 경우에는 외국인 등록소(FRRO)에 신청하면 됨.

- 비자 신청 시 특정 지역에 대해서는 특별 허가가 필요함.

○ 발급처: 주한인도대사관(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37-3)

- 전화번호 : (02) 798-4257/4268

- 근무시간 : 09:30~13:30, 14:00~16:00(공휴일 및 토요일 휴무)

- 소요시간 : 신청 후 3박 4일

- 소요비용: 6개월 65달러, 1년 이상 115달러, 2년 이상 210달러

○ 구비 서류

- 단기비자 : 신청서(APPLICATION FORM), 사진, 여권

- 장기비자 : 신청서, 인도 측의 초청장 또는 계약서 등의 근거 서류, 여권


입출국 정보 및 세관 정보


○ 입국 정보 및 세관 신고

- 인도 루피화(Rupee)의 반입 불가

- 5,000달러 이상 반입시 세관에 신고

- 950ml 이하의 위스키 1병, 담배 2박스(20갑) 면세 통관

- 기타 향수, 화장품 등 2,400루피(85달러)까지 면세 통관

- 비디오카메라 등 대형 아이템은 여행장 물품(TOURIST BAGGAGE RE-EXPORT FORM)양식으로 신고 후 반입하고 출국 시 신고

- 상업적 가치가 있는 샘플의 경우 인보이스를 반드시 지참하여 필요시 관세를 내고 통관해야 하며, 인보이스가 없을 경우 세관원 임의로 관세를 산정하거나 압류하는 경우가 있음.

- 출국 및 입국 공항에 모두 환전소가 있으며, 환전에는 반드시 환전 증명서를 받아 보관 하여야 나중에 외화로 재환전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함.

○ 출국 정보 및 세관 신고

- 출국 시 원칙적으로 공항세를 지불함.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부탄, 스리랑카 등 인접국인 경우 150루피, 기타 국가로 출국할 경우 300루피이나 항공권 구매 시 이 비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임.

- 인도에서 120 일 이상 체재 후 출국할 경우에는 "소득세 납입증명서(INCOME TAX CLEARANCE)"를 제출해야 함.

○ 주의할 사항

- 출장차 입국하는 업체의 경우 대부분 제품의 샘플 등을 지참하고 입국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에는 관세 부과를 고려하여 미리 인보이스를 소지하는 것이 바람직함. 인도는 아직 어느 정도의 언더 밸류는 인정되고 있으며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40%까지도 언더 밸류를 하는 것으로 알려짐.

- 전시물품의 경우 반송이 확실할 경우 까르네(Carnet)를 받아 오는 것이 최선이지만, 경우에 따라 현지에서 처분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일단 인보이스를 지참하는 것이 좋음.

- 또한 아무 준비 없이 입국하는 경우 화물을 찾아서 세관을 통과하기 전에 트렁크나 가방이 분필로 X 마크를 그어둔 것은 반드시 지우고 나오는 것이 요령. 이는 X 레이 체크에서 세관 검색대에서 검사하라는 표식이기 때문임.


환전


○ 통화 단위/종류

통화 단위

RS(RUPEE, 루피), PAISA(파이사, 1/100RS)

동전

지폐

25, 50 PAISA, 1, 2, 5RS

2, 5, 10, 50, 100, 500, 1,000RS

고액 계산 단위

(인도에서만 통용)

LAKH(랙: 10만 루피),

CRORE(크로르: 1,000만 루피)

○ 환전은 공항 환전소나 시내 은행 및 호텔에서도 가능하지만, 호텔의 경우 은행이나 공항 환전소에 비해 다소 불리한 환율을 적용

○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의 레스토랑이나 쇼핑센터의 경우 달러로 지급이 가능하지만 달러가 통용되지 않는 곳도 많아 일정 금액 이상의 경우 환율 면에서 가능한 환전하여 지급하는 것이 유리함.

- 국제적인 카드는 일정 규모의 상점이나 호텔,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데 거의 문제가 없음.


우편


○ 인도의 우편 서비스는 정부가 운영하는 우체국과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우편 서비스로 구분됨. 그러나 정부 우체국은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질에서 민간 업체에 비해 크게 뒤지기 때문에 대부분 민간 업체의 우편 서비스를 이용

○ 꾸리에(Courier) 서비스라 불리는 인도의 민간 우편 서비스 업체는 수십 개가 존재하며 대부분 특정 민간 우편 업체를 지정해서 우편물이 있으면 해당 업체의 직원이 우편물을 수령하여 배달함.

- 비용은 델리, 뭄바이, 첸나이의 경우 시내 배달 비용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비용은 10-20루피(250원), 인도 최남부의 경우 약 40루피(1,000원) 정도


국제 전화


○ 국제전화 (인도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 때)

- 00(국제전화) + 82(한국 국가코드) + 지역 코드(단 앞자리‘ 0’ 은 제외) + 전화번호

- 서울 전화인 02-123-4567번으로 전화한다면 00-82-2-123-4567 로 함. 한국과의 국제 전화 비용은 지난 수년간 많이 인하되어 공중전화 기준으로 1분당 약 400원 정도

○ 인도시내에서 국제전화를 할 때는 거리에서 STD/ISD라고 적힌 노란 간판이 달린 공중전화 박스에서 할 수 있지만, 우리와 같이 동전이나 카드를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미터기로 사용 내역이 자동 기록되고, 공중전화를 관리하는 사람이 청구서에 따라 금액을 청구함. 호텔 등에서도 당연히 국제전화, 인도 시외 전화를 이용할 수 있지만 일반 공중전화보다 몇 배 이상 비싸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음.


국내 전화


○ 인도 국내 전화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첫 자리가 0번으로 시작되는 지역(도시) 번호를 누르고 전화번호를 누르면 됨. 예를 들어 뭄바이에 있는 123-4567번으로 전화할 때는 022-123-4567로 누르면 됨.

○ 또한 최근에는 인도에서도 핸드폰 사용이 일반화되고 있어 출장 시 전화를 사용하고자 할 경우는 핸드폰을 임차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고, 비용도 싸게 이용할 수 있음.


전압


○ 인도는 전력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해 약 10%정도의 수급 격차가 상존하여 단전이 일상화되고 있음. 일반 가정이나 호텔 등에서 자체 발전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으며, 불안전한 전기 사정으로 일반 생산 공장에서도 외부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체 발전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음.

○ 전기 규격은 50HZ, 220V가 표준임.

- 한국(60HZ)과 헤르츠가 달라 한국에서 반입한 국산 전자 제품(특히 모터 부착)의 경우 가동되기는 하지만 100% 효율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정 기간(1~2년) 사용 후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음.

○ 전압의 등락폭이 커 180~280V 까지 움직이므로 민감 제품은 안정기를 사용하는 것이 필수적임. 이외에도 컴퓨터 등에는 UPS를 부착하여 전기가 나갈 경우 자동으로 UPS 전원이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임.


교통


○ 인도에서 외국인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내 교통 수단은 택시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음. 택시에는 우리 식의 미터기를 장착한 택시가 있으며 일반 거리에서는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서 이용할 수 없으며, 호텔이나 특정 지역에서 택시를 불러서 타고 가는 형태임.

○ 택시 요금은 대표적으로 델리의 국제선 공항(인디라간디 공항)에서 약 25~30분이 소요되는 시내 호텔까지의 요금이 200루피(약 5 불) 전후이며, 뭄바이, 첸나이의 경우 공항에서 시내 호텔까지 요금은 300~400루피 수준임.

- 미터기가 부착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타고나서 미터기로 하라고 운전사에게 확인하는 것이 요금에 대해 분쟁을 없애는 방법

○ 일반 시내버스의 경우 요금이 저렴하지만 연결 노선이 불편하고 언어 소통, 추행 등의 문제가 있어 힌디어 구사가 어느 정도 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히 여성의 경우 버스 내 추행 가능성이 많은 점도 유의해야 함.


도량형


○ 표준 단위

단위

도량형

거리

Meter

중량

Gram

○ 실제 생활에서는 feet가 주요 도량형으로 사용되고 있어 투자 업체의 공장 구매 및 주택 임차의 경우 한국에서 사용하는 평당으로 환산하기 어려워 도량형 환산표를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 거리 및 면적을 측정하는 데 도움이 됨.




○ 인도에서도 호텔이나 고급 식당 등에서 일정한 금액의 팁은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으나 미국과 같이 팁 관행이 엄격하지는 않으며, 다만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가능한 상황에서는 주는 것이 좋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됨.

○ 호텔에서 숙박을 할 경우 1박당 40~50루피, 호텔에서 벨보이나 짐 운반 등의 서비스를 받을 경우 1인당 10루피 정도를 주면 적당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비즈니스 참고사항



비즈니스 에티켓


○ 파키스탄인들의 96%가 회교도인으로 가급적 종교에 관한 인사말이나 농담은 삼가는 것이 바람직함.

- 여자 비즈니스맨들이 많지 않으나 여자와 상담할 때 악수를 먼저 신청하는 것은 결례임.

- 파키스탄은 인도와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으므로 인도를 찬미하는 말을 하는 것은 절대 하지 않아야 함.

- 회교가 국교이기는 하나 사우디 등 중동 국가에 비해서는 상당히 개방되어 있고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비교적 관대한 편임.

○ 상담 시 정장이 바람직하나 현지 기후 여건을 감안하여 한여름에는 깨끗한 와이셔츠(긴팔)에 노타이 차림도 정장으로 인정됨.

- 그러나 현지 비즈니스맨들은 반팔 셔츠는 거의 입지 않으며, 사적인 자리라도 반바지를 입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

○ 파키스탄인들이 가끔은 약속을 할 때 '인샬라'라는 말을 쓰면서 오른손을 자기의 왼편 가슴 부분에 갖다 대는 경향이 있음.

- 인샬라라는 말은 좋게 해석하면 자기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로, 나쁘게 해석하면 혹시라도 약속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르니(알라신의 뜻이므로) 이해해 달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음.

- 무슬림인 대부분의 파키스탄 비즈니스맨들이 특별한 의미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왼편 가슴에 자기의 오른손을 갖다 대는 것은 상대에 대한 신의의 표시임.


상관습


○ 상담 요령

- 파키스탄 비즈니스맨들은 과장하는 경향이 많고 가격 협상에서도 엄청난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으며,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수입 물품의 하자, 혹은 자국 경제 불안 등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결제 대금 인하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주의를 요함.

- 파키스탄 비즈니스맨들은 한국 업체들과 상담을 하면 처음부터 독점 에이전트를 제의하는 경우가 많으며, 자기 분야는 아니더라도 물건을 보면 일단 “내가 할 수 있다”고 함.

- 더 나아가 합작을 제의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며, 바이어들이 그러한 말을 할 때는 그것이 대개는 그냥 던져보는 말일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됨.

- 특히 독점 에이전트는 매우 신중하게 고려해야 함.

○ 수입업자들은 자국의 높은 관세율을 회피하기 위하여 수입 신용장에 대한 언더밸류(under value) 관행이 일반화되어 있음. 특히 중고 의류의 경우 수입 대금의 50%는 T/T로, 나머지 잔금은 신용장으로 대금을 결재하는 방법이 일반적임.

○ T/T 송금 시는 대부분 싱가포르 또는 두바이에 있는 외환 구좌를 통해 송금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이러한 은행을 통하지 않는 비정상적 외환 거래를 훈디 시스템이라고 함.

○ 훈디 시스템을 통해서 해외에 있는 파키스탄인 근로자들이 본국으로 송금을 하면 정상적으로 은행을 통하는 것보다 나은 환율을 주므로 상당한 근로자들이 이 방법을 이용함.

○ 파키스탄은 일반적으로 다품종 소량 주문 시장이고 가격이 경쟁력의 관건이 되는 시장이므로 이들의 가격 협상은 매우 집요하고 그 협상의 테크닉이 아주 좋은 편이어서 우리 기업의 철저한 준비가 요구됨.


계약 체결시 유의 사항


○ 파키스탄의 비즈니스맨은 대개가 소위 "인덴터"라고 부르는 커미션베이스의 수입업자로 시작하여 점차 전문화되고 특정 품목의 수입상으로 성장함.

○ 따라서 상담 시 수입상이 일단 뭐든지 해 보겠다고 덤비는 경우는 아직 돈이 없고 자기의 특정한 전문 분야가 없는 경우로 보아야 하며, 에이전트십을 맺을 때에도 이러한 전문성이 가장 먼저 확인되어야 함.

○ 최근에 빈발하고 있는 일로는 한국에의 불법 체류 알선을 목적으로 하는 위장 수입업자들이 거래를 제의해 오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함. 이들은 주로 파키스탄 제2의 도시인 라호르 및 그 인근 페이살라바드, 씨알코트 등에 위치하면서 한국 업체와 교신한 후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기계 등의 현물을 보고 계약을 하겠다는 제의를 하고 한국 방문을 위한 초청장 및 공항 도착 시 입국이 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 보통임.


관공서 관행


○ 관료적 행정으로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상부의 정부 정책이 하급 공무원까지 잘 전달되지 않는 경향이 많음.

- 신속한 일 처리를 위해서는 뇌물이나 현금수수 관행이 일반적이며 부패 지수가 세계 2위로 발표된 바도 있음.

- 특별한 인맥이 없는 일반인이 직접 가서 행정 서비스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 상당 시간 줄을 서야 하는 등 일 처리가 늦으나, 일반적으로 외국인이 직접 방문하는 경우 호의적으로 처리해 주는 경우도 있으므로 가급적 직접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함.

○ 유의 사항

- 관공서 방문 시 정장을 착용한 외국인에게는 상당히 호의적이며 우선권을 주는 경우도 많으므로 가급적 정장을 착용하는 것이 바람직함.


근무시간


○ 공공기관, 민간기관, 금융기관의 근무시간

- 공공 기관: 09:00-16:00

- 민간 기업: 10:30-18:30

- 금융 기관: 09:00-13:30

○ 매주 금요일 오후(12:30-2:30)에는 금요 기도 시간으로 대부분 업체들은 기도에 들어가 이 시간에는 비즈니스가 불가능하며, 오후 3:00 이후에는 공공 기관이나 일부 기업은 휴무를 함.

○ 토요일은 대부분 오전 근무제이며, 전일 근무하는 일부 제조업체도 있으나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 및 외국계 은행 등은 근무를 하지 않음.


현지 주요 연락처




주요 연락처


○ KOTRA 카라치 무역관

- 주소 : Bahria Complex, Ground Floor, 24, Moulvi Tamizuddin Khan Road, Karachi-74000, Pakistan

- 전화 : (92-21) 561-1658/1659/0219

- 팩스 : (92-21) 561-0779

- 이메일 : ktckhi@cyber.net.pk

○ 주 파키스탄 한국대사관 카라치 분관(카라치 총영사관)

- 주소 : 101, 29th St. Khayaban-e-Mohafiz, DHA, Phase VI, Karachi

- 전화 : (92-21) 585-3950

- 팩스 : (92-21) 534-0054

- 이메일 : karachi@mofat.go.kr

○ 경찰긴급 : 15, 241-2222, 242-8276

○ 소 방 서 : 16, 772-4891/92

○ 구 급 차 : 683-432, 225-225, 428-100

○ 공항안내 : 114, 4579-1259/60

○ 대한항공 : 567-8182, 567-8283

○ 타이항공 : 566-0155/64

○ 파키스탄항공 : 568-9631, 457-2011

○ 시내전화문의 : 17

○ 국제전화교환 : 0102


대사관 정보


○ 대사 : 신 언 대사

○ Block 13, Street 29, G-5/4, Diplomatic Enclave II, Islamabad, Pakistan (http://pak-islamabad.mofat.go.kr/)

전화 : (교환) (92-51) 227-9380/1, 227-9385/6/7

팩스 : (대표) (92-51) 227-9391, 287-3145(비자업무)

○ E-mail : (대표) emb-pk@mofat.go.kr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여행 정보



주요 관광지


○ 지나 묘지(The Tomb of Jinnah)

- 파키스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 MOHAMMAD ALIJINNAH (QUAID-E-AZAM)의 묘소로 카라치 주요 호텔에서 15분 거리에 있음.

-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대형 건물 내 관이 안치되어 있으며 수문장 교대가 볼만하며 또한 지나의 업적 및 소장품이 진열되어 있는 박물관도 있어 파키스탄의 건국 역사를 살펴볼 수 있음.

모헨조다로

- B.C. 3000~1500년경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인더스 문명의 중심으로 이루는 도시유적으로서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적인 유적지

- 모헨조다로에서 볼 수 있는 면밀한 도시 계획은 벽돌의 크기나 자 ·저울추의 출토에서 볼 수 있는 도량형의 규격화와 함께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졌음을 추측하게 함.

- 그 밖에도 토기·동기(銅器), 아직 해독되지 못한 문자를 새긴 인장(印章), 장신구 등의 유물이 있음.

LAHORE

- 라호르는 무굴제국 시대의 수도로 SHALIMAR 정원, BADSHAHI 사원 등 유적 및 유물을 관광할 수 있는 곳임.

PESHAWAR

- 파키스탄 북동쪽 아프가니스탄과 접경하여 있는 도시로 실크로드의 주요 교역로. 인근 산악 지대의 풍경이 뛰어남.


비자


○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공격 관련 사태 추이에 따라 출입국 보안 강화 조치를 취하여 2001.9.26 이후부터 파키스탄에 입국하는 외국인은 재외 공관에서 발행하는 유효한 입국 비자를 취득하여야 입국이 가능함.

○ 파키스탄의 조치로 그동안 지속되었던 한ㆍ파 비자 면제 협정은 한시적으로 유보되었으며 따라서 파키스탄 입국을 원하는 한국인들은 반드시 주한 파키스탄 대사관 또는 영사관에서 입국 사증(비자)을 취득하여야 파키스탄으로 입국할 수 있음.


출입국 절차 및 유의사항


○ 입국 시 여권(비자), 입국 신고서를 입국 심사대에 제출하고
입국 허가 받으며 출국시에는 비행기표를 소지한 승객만 공항 건물 내에 입장할 수 있음.

- 출국장에 들어가자마자 모든 수하물은 X-Ray 투시 검사를 받음.

○ 세관 검사

- 기내에서 세관 신고서를 작성하는데, 특별한 것이 없으면 신고하지 않아도 됨.

- 세관검사대는 X-Ray 투시기가 있어 수하물은 투시기를 통과시켜 의심이 가는 가방만 열어 보나, 그냥 통과시키는 경우도 있음.

○ 주의 사항

- 이전에는 내국인에게는 술, 비디오테이프, 전자제품 등에 엄격한 검사를 하고 외국인들에게는 검사를 완화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군사정부집권(1999. 10월) 이후, 특히 최근 들어서 외국인 수하물에 대한 검사도 엄격해져 주류 반입 등은 엄격히 규제되고 있음.

- 수하물을 찾은 후에 입국장으로 나올 때는 수하물표(Tag)를 제시하여 본인의 수하물임을 반드시 증명해야 하므로 수하물표 지참이 필요함.


통신/전화


○ 전화 사용

- 전화 회선 사정이 좋지 않으며 전화 보급률이 낮음.

- 서울 국제 통화료의 경우는 분당 약 84루피이며, 시내 통화인 경우는 분당 8루피, 시외 통화 요금도 매우 비싸 국제 통화 요금의 50%에 육박함.

휴대폰

- GSM 방식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CDMA는 도입 초기 상태

- 휴대폰은 SIM Card라는 번호 칩을 구입하여 장착하고, 대부분 정액 카드를 사(보통 1,000루피) 요금을 사전 입력시켜서 사용함.

- 국내 업체의 로밍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출발 전 공항에서 로밍폰을 지급받아 현지에서 사용할 수 있으나 통화 연결이 원활하지 못하고 요금이 상당히 비싼 편임.

한국으로의 통화 방법

- 현지에서 한국으로 전화 시는 먼저 00를 누르고 다음 국가, 시, 해당 전화번호를 누르면 됨.

- 교환을 통해서 전화 시는 0102 또는 102를 누르면 교환이 나오는데 이때 해당 전화 번호를 불러주면 되며, 주의해야 할 점은 파키스탄에서 국제 통화 시 수신자 부담(COLLECT CALL)은 불가능함.

인터넷

- 파키스탄은 인터넷 환경이 매우 좋지 않으며, 통신 인프라의 부족으로 ADSL 서비스는 도입 단계에 있어 한국에 비해 비용이 높으며, 가정에서는 주로 전화선을 많이 사용함.

편지/소포/특사 운송 관련

- 파키스탄 국내 우편은 Pakistan Post를 이용할 수 있으며 국내외 소포 및 특사운송 회사로는 DHL을 비롯 OCS, FedEx 등 다수의 다국적 기업이 진출해 있음.


교통


○ 시내 교통 : 버스, 택시 및 릭샤 등이 있음

- 버스, 택시 및 릭샤(3륜차) 등이 있으며 버스는 대부분 에어컨 시설이 없고 상태가 불량하여 외국인이 이용하기에는 부적합함.

- 릭샤(3륜차)도 공해 및 안전상의 문제로 권장할 만하지 않음.

- 가급적 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바람직한데, 택시를 이용할 경우 사전에 목적지와 요금을 협의한 후 이용해야 요금 관련 불필요한 논쟁을 피할 수 있음.

철도

- 철도의 총 길이는 8,775KM으로 기관차 시설의 노후화 및 부족으로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음.

- 외국인이 이용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며 현지 유력 인사들은 대부분 항공편을 이용함.


전압


○ 전압 : 220V(산업용 440V), 50Hz

○ 전압이 불안정하여 200~240볼트 범위를 수용 하는 제품이 수명이 오래감.

○ 전압에 민감한 전자제품(냉장고, 오디오, 컴퓨터 등)은 Automatic Voltage Regulator를 사용하는 것이 좋음.

○ 산업용은 380볼트까지 떨어지기도 함.


도량형


○ 파키스탄의 도량형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와 같이 미터, 그램, 톤, 리터 등을 기본으로 채택하고 있음.

○ 영국 식민지의 영향으로 feet, inch, 파운드 등도 많이 사용됨.


환전


○ 화폐 단위 : 파키스탄 루피(Rupee)

○ 환전은 공항 내 환전소 호텔, 은행, 기타 공인 환전소 등이 있는데 시내 공인 환전소에서 환전하는 경우 은행이나 호텔보다 유리

○ 환전 시, 환전 증명서를 가급적 보관하는 것이 재환전(루피화를 미 달러로)을 할 때 우대를 받을 수 있음.

○ 대형 호텔 및 일부 고급 레스토랑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점에서는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의 미비로 인해 신용카드 사용이 불가능한 실정임.


여행시 유의사항


○ 치안

- 카라치의 치안 상태는 좋지 않은 편임. 차량 절도 및 강도 사건이 자주 발생하며 간혹 시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함.

- 파키스탄은 폭탄 테러 다발 국가로 정치, 종교, 또는 동업자 간의 알력 다툼으로 인한 폭탄 테러가 종종 발생함.

- 따라서 모든 곳에서 검문검색이 심함. 호텔에서도 차량 트렁크 및 엔진후드를 열어보고 차 내부나 밑에 폭발물이 있는지 검사함. 또 호텔 및 주요 건물의 출입문에서는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고 핸드백이나 가방도 열어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건물에 검색이 있으며 특히 공공 건물이나 외국인 회사가 많은 유명 건물이 심한 편임.

○ 응급

- 병원이용의 경우, 현지 병원은 일반적으로 예약 후 치료가 가능하나 긴급 환자의 경우는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으며, 응급실은 휴일이나 근무 후(24시간 근무)에도 운영됨.

- 병원 내 약국은 대개 새벽 2시까지 열어 긴급한 약은 병원 내의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할 수 있고, 현지에서 감기약은 COF COL, 두통제 및 해열제도 쉽게 약국에서 구할 수 있음.

팁 문화

- 호텔이나 식당 등에서의 팁 지불은 관행화되어 있는 편임.

- 금액은 서비스의 형태나 질에 따라 다르나 고급 식당 이용 시 100루피 안팎의 수준에서 지불하면 됨.

기타 주의 사항

- 회교국인 관계로 과다한 노출은 삼가고, 특히 여자와 사진을 찍자고 하거나 악수를 청하는 것은 큰 실례임. 필요 이상으로 자주 여자에게 눈길을 주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삼가는 것이 좋음.

- 물은 항상 생수(용기로 포장되어 있는 것)를 사용하는 것이 좋으며 특히 물 때문에 설사 등 복통을 일으키는 일이 잦기 때문에 최대한 주의가 필요함.

- 술과 돼지고기는 금지되어 있으며, 금식 기간인 라마단 중에는 외부에서 음료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도 조심하는 것이 바람직함.

- 현지인들은 문화 및 종교적 자부심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거래 시 이에 대한 비방은 금물이며, 호텔이나 공공장소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다니는 것도 좋지 않음.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한-파키스탄 관계 일반



외교관계


○ 비동맹 중립외교노선에 따라 기본적으로 남․북한 등거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으나 90년대 이후 경제관계 비중이 중요시됨에 따라 한국과의 관계를 크게 중시하게 됨.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1965. 8월)후 친서방 노선에서 친중국 노선으로 전환함에 따라 1972. 11월 북한과 수교하는 등 친북자세를 보인 바 있음.

- Zulfikar Ali Bhutto 당시 수상의 사회주의적 성향도 작용

○ 그러나 1982. 3월 지아 정권 출범을 계기로 대한국관계 개선이 국익에 기여한다는 인식 아래 우리나라와 외교관계 수립을 단행하고 정치․경제 관계가 크게 강화됨.

○ 남북통일과 관련해 중립적 입장으로서 남․북한 당국간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문제 해결을 지지하는 입장


주요협정 체결 현황


○ 무역협정 (1968)

○ 해운협정 (1984)
○ 경제기술과학협력 및 무역증진협정(1985)
○ 문화협정(1985)
○ 과학기술협력협정(1985)
○ 이중과세방지협약(1987)
○ 투자보장협정(1988)
○ 항공협정(1996)


한-파키스탄 교역 및 투자 동향



교역 현황


○ 한-파키스탄 교역 현황

- 파키스탄은 한국의 세계 43위의 수출 대상국이며, 57위의 수입 대상국 (2009년 기준)

년도

수출

수입

수지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금액

2005

662

12.0

316

12.5

346

2006

673

1.7

341

8.0

332

2007

678

0.7

491

44.0

187

2008

840

23.8

631

28.6

209

2009. 1월

64

10.6

21

-65.2

43

자료원:kita.net (단위: 백만 달러, %)


주요 수출입품목


○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

- 주재국의 건설 프로젝트 증가와 산업화 진전으로 철강판의 수출이 25% 이상 급증하였으며 자동차 부품, 인조 섬유 등 전통적 강세 품목의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음.

- 반면, 2007년도까지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던 무선통신 기기를 비롯하여 섬유 및 화학기계 등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

순위

품목명

2007

2008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1

합성수지

51,678

28.9

78,310

51.5

2

철강판

65,775

40.2

76,114

15.7

3

무기류

3,434

131.7

59,470

1,631.9

4

석유제품

8,676

15.6

51,789

496.9

5

농약 및 의약품

17,248

2.3

37,827

119.3

6

인조섬유

17,846

-27.4

34,472

93.2

7

기타석유화학제품

30,636

48.8

29,773

-2.8

8

건설광산기계

20,295

-12.0

29.270

44.2

9

염료 및 안료

20,120

24.4

21,511

6.9

10

무선통신기기

47,880

12.2

18,780

-60.8

자료원:kita.net (단위: 백만 달러, %)

○ 한국의 주요 수입 품목

- 대 파키스탄 수입 품목은 석유제품, 면사, 가죽, 농/수산물 등 일부 품목에 편중되는 경향을 띠고 있음.

- 석유제품과 면사의 수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동제품의 수입 또한 급증세를 지속하고 있음.

순위

품목명

2007

2008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1

석유제품

253,630

79.6

342,629

35.1

2

동제품

70,461

194.1

95,569

35.6

3

천연섬유사

89,010

-14.9

63,360

-28.8

4

기호식품

11,984

43,683.5

41,188

243.7

5

가죽

22,702

-12.9

22,815

0.5

6

면직물

11,483

-7.1

21,067

83.5

7

어류

5,941

-28.0

8,080

36.0

8

곡실류

2,868

67.6

7,604

165.1

9

갑각류

2,120

-6.4

5,567

162.6

10

식물성 재료

2,569

16.7

2,648

3.1

자료원:kita.net (단위: 백만 달러, %)


우리 기업의 투자 현황


○ 연도별 한국의 인도 투자 현황

- 지난 1990년부터 2008년 9월까지 우리나라의 대 파키스탄 직접 투자 누계 금액은 2,800만 달러 수준으로 동 기간 중 우리나라의 총 해외 직접 투자액 768억 달러의 0.031%에 그치는 수준이며 특히 IMF 후 현지에 진출에 있던 효성 등 상당수 국내 기업이 철수함.

○ 현재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종합상사 등 일부 대기업이 지사 또는 연락 사무소 형태로 진출해 있으며, 직접 투자 형태로는 삼미 대우 고속운송 법인과 진광 JAZ, 나진-Pakistan 등이 있음.

○ 이와 같은 미미한 투자는 국내 기업의 파키스탄 시장에 대한 인지도 부족 및 열악한 인프라, 불안정한 정치 환경 등의 요인이 복합 작용한 결과로 판단됨.

연도

신고건수

신고금액

투자건수

투자금액

2004

2

4,569

1

1,633

2005

3

4,166

2

1,499

2006

1

1,000

1

1,000

2007

11

7,133

12

4,459

2008.9월

3

535

6

1,423

전체

56

205,690

47

28,903

자료 : 한국수출입은행 (단위 : 건, 천 달러, %)

○ 우리기업의 대파키스탄 업종별 투자 현황

- 제조업에 대한 투자가 총 876만 8,000달러(11건)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밖에 운송업, 건설업, 서비스업 부분 등에서 투자가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

업종

투자 건수

투자 금액

최근 투자 시기

제조업

25

10,033

2007년도(2건)

건설업

6

1,820

2002년도

도소매업

7

8,564

1997년도, 1999년도

운수창고업

5

8,181

1998년도

서비스업

4

305

2005년도

합계

16

28,903

자료 : 한국수출입은행 (단위 : 건, 천 달러, %)


한-파키스탄 인적교류 현황



한국인사 파키스탄 방문


00. 9 반기문 외교통상부(제3차 한・파 정책협의회)

03. 9 김재섭 외교통상부(제5차 한․파 정책협의회)

04.11 배기선, 고흥길 의원(AAPP 제5차 총회)

05. 4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제4차 ACD 외교장관회의)

05. 8 김성곤 의원(ICAPP 집행이사회)

05.11 한명숙, 노영민, 김형주, 문학진 의원(지진피해지역 시찰)

05.12 조성태, 임종인 의원(정보관련기관 방문)

06.11 남경필, 최철국 의원(의원친선협회단으로 의회 방문)


파키스탄인사 한국 방문


04. 4 Khalid Saeed 정보기술부(제11차 한․파 IT협력위)

04. 9 Legari 정보기술부 장관(ITU 텔레콤 아시아 2004)

05. 3 Tahir Iqubal 환경부 장관(2005 유엔 아․태 환경개발장관회의)

05. 5 Mushahid Hussain 상원외교위원장(ICAPP 집행이사회)

05. 9 Ghulam Sawar Khan 노동부 장관

05. 9 Shaukat Aziz 수상 방한

06. 1 Mushahid Hussain 상원외교위원장(상원의원 5명 동행)

06. 7 Ghulam Sawar Khan 노동부 장관(고용허가제 MOU체결)

06. 8 Malik Asif Hayat 노동부(제4차 ILO 아태총회)

06. 9 Daniyal Aziz 국가개혁위원장(아시아 정부 혁신포럼)

06. 9 Attar-ur-Rahman 고등교육위원장

06.11 Rashid Ahmed 철도부장관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파키스탄 (Islamic Republic of Pakistan) 개황



○ 국 명 : 파키스탄 회교공화국(Islamic Republic of Pakistan)

○ 수 도 : 이슬라마바드(Islamabad, 70만 명)

○ 국가원수 : Asif Ali Zardari 대통령(2008년 9월 9일 취임, 8년간 군사정권 이후의 문민정부)

○ 면 적 : 796,095㎢(한반도 면적의 3.6배)

○ 위 치 : 동쪽에 인도, 북서쪽에 아프가니스탄, 서남쪽에 이란, 북서-북동까지 중국, 타지키스탄과 접함.

○ 인 구 : 164.2백만 명(2007)

○ 민 족 : 펀잡인(66%), 신디인(13%)

- 다양한 종족 간의 대립 관계는 심각하지 않으나 경쟁 의식과 자아 의식이 강하고 지방별 언어 및 풍습이 상이함.

종 교 : 회교 96.3%(수니80%, 시아20%), 기독교 1.6%, 힌두 1.6%

○ 언 어 : 우루두어(공용어), 영어(상용어)

- 지방별 언어가 있으며, 같은 지방인들끼리는 지방어로 의사 소통하는 것이 일반적. 국민 전체 문맹률은 47%에 이르고 있음.

○ 주요도시 : Karachi(1,800만), Lahore(680만), Faisalbad(198만)

○ 정부형태 : 연방의회제

○ 의 회 : 양원제(상원 100석, 하원 342석)

○ 독립기념일 : 1947. 8. 14 (영국)

○ 화폐단위 : Pakistani Rupee(PR) (2009. 3월 현재 US$ 1 = 80.46 PKR)

산업구조 : 농업(20.9%), 제조업(18.9%), 교통·통신(10.3%), 건설(2.7%), 광업(2.5%) 등

○ 주요수출품 : 면사, 면직물, 의류, 스포츠용품, 카펫, 쌀

주요수입품 : 기계류, 원유, 화학, 철강 등

○ 주요부존자 천연가스, 석탄

○ 1인당 국민소득 : US$ 1,085달러

○ 국민총생산 : US$ 1,437억 달러

○ 표 준 시 : GMT+5 (최근 서머타임실시 중)

○ 기 후 : 열대 및 아열대 기우로 고온건조하며, 낮기온이 40도에 이르는 4-6월의 혹서기를 지나 7월경 몬순 시작


경제개황 및 주요지표



경제 구조 및 특징


○ 2007~2008년 기간 동안 계속되는 정정불안과 전세계적 경제위기의 여파로 경제 성장률은 다시 5.8%로 하락했고, 2008~2009년에는 5%대 이하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음.

- 지난 2004~2007년까지 6~9%에 이르는 견실한 성장세를 유지함.

○ 파키스탄의 주요산업은 농수산업 등의 1차 산업 분야로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 정도이며 일반제조업 및 물류, 통신, 도소매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임.

○ 파키스탄은 만성적인 대외 무역 적자를 겪고 있으며 특히 유가 급등에 따라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크게 늘어나자 정부에서는 수출 산업 지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옴. 이에 따라 정부는 불요불급한 제품에 대해서는 수입을 억제하고, 사회 인프라 기반 확충에 중점을 두고 있음.


주요지표 및 통계



○ 주요경제지표

구분

2004

2005

2006

2007

2008*

GDP(억 달러)

980

1,099

1,268

1,454

1,565

1인당 GDP(달러)

650

720

810

890

940

경제성장률(%)

7.4

7.7

6.9

6.4

3.6

재정수지/GDP(%)

-1.7

-3,8

-7.0

-4.1

-6.2

물가상승률(%)

7.4

9,1

7.9

7.6

15.6

경상수지(백만 달러)

-817

-3,605

-6,750

-8,255

-12,557

수출(백만 달러)

13,297

15,433

17,049

18,121

22,021

수입(백만 달러)

16,693

21,773

26,696

28,761

36,030

(자료원 : 한국수출입은행)


최근 경제 동향


(국내경제) 파키스탄의 최대수출국인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불안한 상황에서 유가 및 식료품 가격 상승에 따른 국내물가의 급등으로 인하여 민간소비가 감소하고, 섬유부문의 실적도 부진해짐에 따라, 정부의 투자지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이 2008년 6.0%에서 2009년 4.2%로 급속히 둔화될 전망임.

- 최근 6~7%대의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으나 부토 여사 살해, 총선 실시, 10년만의 민주정권 수립, 무샤라프 대통령 사임, 연쇄 폭탄 테러 발생 등 정치·사회적 불안이 증폭되면서 경제 둔화

- 재정수지가 빈곤퇴치를 위한 지출 증가, 군비 증가 등으로 증가하여 4% 이상으로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있음.

○ (경상수지) 파키스탄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총수출의 약28%)의 경기가 침체되어 있고, 주요 수출품목인 섬유 및 관련제품의 수출이 약세를 보이는 반면, 고유가와 국내투자 증가에 따른 원자재 및 자본재 수요증가에 따라 수입이 크게 증가하여 경상수지 적자폭이 확대됨.

- 2009년에는 국제 유가 하락에 힘입어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6.8%(약119억 달러)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이며, 수출성장세의 약화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영향으로 수입이 급격히 감소하여 상품수지 적자는 144억 달러로 다소 안정될 전망임.

(외환보유액) 외환보유액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08년 10월 약 83억 달러를 기록하였고, 대외부채를 감안하면 실질 외환보유액은 약 30억 달러 수준으로 한달 수입액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짐.

- 루피화 폭락, L/C 개설 거절 등 외환 시장이 급속히 악화되자 파키스탄 정부는 2008년 10월 IMF와 구제 금융 지원 협상을 시작, 11월에 협상을 일단락하고 IMF에 76억불의 구제 금융을 신청함.

- IMF는 구제 금융 제공 조건으로 정부 재정 적자 축소, 재정 수입 확대, 정부 경상 경비 및 국방비 삭감, 금리 인상 등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어 금년 파키스탄 경제는 더욱 어려운 한해가 될 것으로 전망됨.

주요산업 현황 및 전망

섬유 산업


○ 파키스탄은 세계 4위의 면화 생산국으로 인더스 강 유역의 풍부한 면화와 인구 1억 6,000만의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섬유 산업을 전체 산업 인력의 38%, 전체 제조업의 46%, 수출의 60%를 차지하는 국가 최대 산업으로 발전시킴.

○ 정부의 지원과 풍부한 원자재, 저가의 노동력 등을 이용하여 그 동안 중저가 면섬유 제품에서 강세를 보여 왔으나, 최근에는 품질 향상을 위한 각종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

○ 정부에서도 쿼터 폐지 후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후 설비 교체를 위한 각종 지원과 관세 등 세금 인하를 추진해 왔으며, 이를 통해 지난 수년간 섬유 기계의 현대화가 급속히 진척


가전산업


○ 대부분 다국적 기업과 현지 파트너와의 합작을 통한 현지 생산 형태를 띄고 있으며 TV, 에어컨, 냉장고 등이 주로 생산되고 있음.

○ 2002년부터 2007년까지 파키스탄 경제가 고성장을 실현했고 경기가 살아나면서 가전 제품의 보급이 늘어나고 있으며 또한 고급화되고 있는 추세

- 따라서 현지 생산 업체들은 사양을 과거에 비해 고급화하고 있으며 일부는 최신 제품을 수입하여 판매를 병행

현지 생산 기업들은 우리나라의 LG, 삼성을 포함하여 PHILIPS, PEL, ORION, DAWLANCE 등 여러 업체가 진출해 있으며 중국산도 상당 부분 유입되고 있음.

- 현재 시장 점유율은 한국산의 점유가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중국산도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강세를 보이고 있음.


자동차 산업


○ 지난 1995/1996년에 48,000대 정도이던 파키스탄 연간 자동차 생산량은 2006/2007년도에는 200,500대를 기록. 취약한 자체 부품 조달 능력 및 숙련 노동자의 부족 등 여러 제약 조건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4배 가까운 증가세를 실현함.

○ 최근 자동차 시장의 호황과 정부의 일관된 관련 정책 추진에 따른 불확실성의 감소로 다수의 국내외 기업이 자동차 산업에 투자

- Master Motors 는 지난 2004년 중반, 중국 기업과의 협력으로 픽업 트럭의 생산을 개시

- 800cc 규모의 Chevrolet 모델을 수입하던 Nexus Automotive 또한 현지 조립을 계획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Renault, 독일의 Volkswagen 역시 대규모 투자 계획을 수립 중인 것으로 알려짐.

○ 2007/2008년도의 승용차 판매는 최근의 정치 불안 및 금융 위기의 여파로 전년 대비 6.4% 감소


정보통신 산업


○ 2003년 통신산업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하며 통신산업의 경쟁 체제를 도입하였고 최근 유무선 통신 산업이 급속한 성장세를 보임.

이동통신 분야에 대한 투자 집중과 소득 수준 향상으로 이동전화 서비스 가입자 수가 최근에 급증세를 보이며 지난 1999년 26만 명 수준에서 2007년 5월에는 6,000만 명 이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

- 전체 인구 대비 휴대폰 보급률은 40% 대로 소득 수준에 비해 높은 편임.

○ 파키스탄은 통신 인프라가 열악하고 그 동안 정부의 강력한 인프라 구축 정책의 부재로 현재까지 통신산업 발전은 미흡한 편이나, 최근 경제 성장과 현정부의 인프라 투자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향후 정보 통신 산업의 급속한 성장이 예상됨.


시장 특징


○ 시장 규모

- 파키스탄은 2008년도 9월 기준으로 인구 1억 7,000만, 1인당 소득 약 925달러에 연간 수입시장 규모는 354억 달러 정도임.

- 일반적으로 소비재는 고관세로 수입 억제 정책을 실시하여 수입 품목의 대부분이 기계류, 석유, 화학제품 등 중화학 공업 제품으로 구성

- 생필품 중 특히 가전제품 등은 상당 부분이 밀수로 들어오거나 여행자 짐을 통해 시장에 반입되고 있어 실제로 소비재의 해외 제품 의존도는 정규 수입량보다 30% 정도 많은 것으로 추정

시장 특성

- 파키스탄 시장은 최근까지만 해도 전형적 프로젝트 시장으로 일반 소비재는 밀수가 주도적이었고 도로, 항만, 통신 등 기간산업 설비 확충에 따른 입찰 비즈니스의 비중이 절대적이었음.

- 그러나 1998년의 핵실험 이후 외국으로부터의 원조 및 차관이 크게 줄어들면서 대형 프로젝트는 대부분 공급자 금융의 BOT 또는 BOO 베이스로 추진되고 있음.

- 파키스탄 경제는 원면 및 면방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구조로서 Cotton 계열 산업 비중이 전체 산업의 60% 정도를 차지하고 이 산업은 국제 섬유 시황에 크게 영향 받고 있음.

- 산업 및 기업 구조적으로는 정부의 국영 기업 민영화 추진에도 불구하고 아직 공공 부문의 시장 점유율이 높으며, 정부가 시장에 대해 강력한 영향력을 미침.

○ 한국 상품 인지도

- 파키스탄 시장에서 한국 상품에 대한 품질 만족도는 비교적 높은 편으로 유럽이나 일본 제품의 대체품으로 인식되고 있음.

- 그러나 파키스탄은 대표적 저가 제품 위주 시장으로 중국 및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 수준이 우리 제품 구매에 가장 큰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음.

○ 소비면의 특성

- 고소득층 : 유럽 선진국의 모델과 스타일을 선호하며 관혼상제 등 사회적 위신에 관계되는 행사에는 거액의 자금을 지출하는 경향이 있음. 일반적으로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높음.

- 저소득층 : 식료품, 의류, 최소한의 가구 등 생활 필수품을 구매하는데 소득의 대부분을 지출

- 파키스탄은 색채 감각이 풍부하여 칼라 제품을 선호하며 참신한 디자인의 제품을 선호하나 가격에는 대단히 민감하여 품질보다는 가격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음.

유통 채널

- 파키스탄의 수입 상품 유통은 수입업자, 유통업자, 도소매업자에 이어 최종 소비자에 이르는 경로를 거치게 되며 품목에 따라서 수입업자가 유통업자의 역할까지 수행하기도 함.

- 수입업자와 유통업자 그리고 도소매업자 사이의 거래는 주로 상호 간의 신용도에 따라 15일에서 90일까지의 외상 거래에 의존함.


투자환경 및 동향



투자환경 일반


○ 투자 매력도

- 파키스탄 정부의 제반 인센티브에도 불구하고 정정 불안, 치안 불안정, 사회간접자본 부족, 훈련된 기능 인력의 부족 등 외적 투자 장애 요인을 비롯하여 회교권 문화 특성이 갖는 부수적 제약 요인(예: 금주, 위락 시설부재, 여성 노동력 이용 곤란)으로 투자 진출이 취약함.

- 삼양사의 폴리에스터스테이플화이버 합작 투자를 포함, 대 파키스탄 투자는 '90년대 들어와 비로소 시작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주변 서남아국에 비해 저조함.

- 파키스탄은 낮은 노동생산성 문제가 투자 부진의 가장 큰 요인이므로 후진국으로서의 낮은 임금만을 노리고 투자하기에는 업종과 시장 상황, 투자 방법 등에 있어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할 시장임.

투자 유치 정책

- 외화 보유고가 빈약한 파키스탄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투자 유치를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각종 산업 기반시설(도로, 공항 등)의 경우에는 BOT, BOO 등의 방법으로 투자 유치를 촉진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음.

투자 허가

- 법인(연락 사무소 포함) 설립 시 약 5,000~7,000달러 가량이 소요되며 그 기간은 약 8주가 걸림.

- 파키스탄 공공 기관의 늦은 업무 처리 관행을 고려해 보면 급행료를 지불하지 않는 한,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볼 수 있음.

- 필요 서류로는 소정의 신청 양식에, 주소 등 일반 사항과 경영진 인적 사항 등을 기입 후 영문 회사 정관을 첨부, 담당 부처인 투자청(The Board of Investment, BOI)에 신청하면 되며 양식은 BOI 홈페이지(www.pakboi.gov.pk)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음. 상기 절차를 마친 외국 기업은 파키스탄 증권거래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of Pakistan)에 등록을 하여야 함.


투자진출 유망 분야


○ 투자 진출 유망 분야

- 봉제는 생각보다 유망한 분야가 아니며, 섬유 쪽에 투자를 하려면 현지에 있는 원자재를 이용하여 제조하는 것이 한국에서 원자재를 들여와서 제조 수출하는 것보다 월등히 유리함.

- 현재 소규모 투자로 성공한 두 가지 사례 모두 현지의 면사 및 현지의 가죽 원단을 이용하여 제조, 수출하는 형태로 되어 있음.

- 섬유가 아닌 분야는 아직 많은 분야가 투자를 기다리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유망한 분야는 화학 제품, 플라스틱 제품 제조, 금형 설비, 농수산물 가공 등을 들 수 있음.


외국인 투자


○ 외국인 투자에 대한 개방화 정도

- 산업 발전 단계상으로 볼 때 파키스탄이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자체적으로 충당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파키스탄은 외국인투자 유치를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삼고 있음.

- 따라서 파키스탄 정부는 외국인 투자 시의 조세 감면과 금융 편의, 행정상의 편의, 과실 송금의 보장 등 일반적으로 투자 장려 국가에서 취하고 있는 모든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외국인 투자에 대한 정책적 개방화 정도의 측면에서는 투자자들에게 거의 문제가 없다 할 수 있음.

- 투자자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정부의 의욕적인 정책에 대해 실질적으로 투자의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제반 하드웨어적 또는 소프트웨어적인 기반이 따라 주지 않는 데에 있음.

- 각종 투자 인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후진적인 업무 관행도 제약 요인 중의 하나임.

○ 외국인 투자 제한

- 특별한 제한은 없으며 개인 회사, 합작 투자 회사 등 모두 설립 가능(단, 술, 화폐 제조, 국방 관련 품목은 별도 정부 허가가 필요)


무역, 투자 진출시 애로사항


○ 가격 위주의 구매 패턴

- 파키스탄의 일인당 국민 소득은 860달러 수준으로 가격이 구매 결정의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함.

- 이로 인해 값싼 중국, 동남아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며 파키스탄 바이어들의 가격 협상 능력은 매우 뛰어난 편임.

○ 정치/사회 불안

- 1947년 영국으로의 독립 이후 수 차례의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였고 과격 이슬람 세력의 테러 활동, 종파 간의 갈등 등 국가 위험도가 상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치, 사회적 불안정은 정부 정책 신뢰도의 저하로 이어지고 있음.

○ 열악한 인프라

- 전력, 통신 등 열악한 인프라가 생산 원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수자원 부족, 낙후된 공업 기술 및 설비로 인한 품질 경쟁력 저하의 문제가 있음.

수동적 인력

- 파키스탄의 인건비 수준은 매우 낮은 편이나 인센티브 제도 미정착 등으로 인한 수동적 인력 역시 파키스탄 진출의 애로 사항으로 지적될 수 있음.

○ 만연한 부정부패

- 부정부패 및 행정 시스템의 미발달로 인해 관공서의 각종 인허가 업무 처리는 매우 더딘 편이며 신속한 처리를 위한 급행료 지불, 관련 공무원에 대한 뇌물 공여는 현지에서 당연시 되고 있는 형편임.

-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국가별 부패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도 기준 파키스탄의 부패 지수 순위는 조사 대상 180개국 중 138위를 기록하였음.


투자시 유의 및 고려사항


○ 합작 투자에 대한 신중한 접근 필요

- 파키스탄 비즈니스맨들은 자신의 능력을 약간 과장되게 말하는 경향이 많고 전문 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이 있다고 얘기하므로 실제로 합작 투자 능력이 있는가를 세심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음.

- 대부분의 파키스탄 기업은 외국 기업과의 합작 투자를 매우 선호하여, 비즈니스 상담이 약간만 진척되면 합작 제의부터 시작하며 이는 그만큼 주위에 합작을 하여 재미를 본 사람이 많다는 것을 뜻하기도 함.

- 문제는 파키스탄 측이 투자하는 부분은 대개 토지, 건물 등 고정자산이며 외국인은 나머지 설비와 자금 등을 투자하는 조건이 되기 때문에 분쟁 발생 시 외국 투자자의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며 후진적 법률 시스템으로 인해 소송을 통한 해결 역시 여의치 않은 실정임.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 요구

- 파키스탄은 인구의 97%가 이슬람교도이며 종교로 인해 인도와 분리될 정도로 종교에 대한 충성도 역시 매우 높음.

- 따라서 현지의 모든 일상 생활이 종교의 지배를 크게 받으며 하루 5회의 기도와 1년에 한번 있는 라마단으로 인해 외국인이 생활하거나 현지인을 고용할 때 상당히 큰 불편을 겪음. 그러나 현지 투자 진출의 성공을 위해서는 종교적 관습에 대한 이해와 그들의 생활 양식을 존중하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

- 또한 종교적 이유로 인해 이슬람 방식으로 도살하지 않은 육류(Non-Halal Food)의 가공 및 유통, 주류의 생산(산업용 알코올은 예외), 돼지고기 생산 및 수입, 원산지가 이스라엘이거나 이스라엘을 경유하여 수입되는 물품 관련 분야 일체가 금지되어 있음을 알아둘 필요가 있음.

○ 현지 치안 확보에 만전

- 치안 문제는 파키스탄에서 외국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문제로 총기가 만연되어 있기 때문에 강도나 차량 절도 등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음.

- 따라서 투자 진출 시 현지 공관에 현지 파견 인원 현황을 반드시 등록하도록 하고 거주지 선정에 주의하여야 하며 야간에는 가급적 외출을 삼가하여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함.

○ 저렴한 인건비 보다는 현지 시장 성장에 주목

- 파키스탄의 경우 일인당 국민 소득이 1,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여 명목상 인건비 역시 우리나라에 비해 매우 저렴한 편임. 또한 선진국에 비해 노동법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고용에 대한 유연성 확보가 용이한 편임.

- 그러나 직업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낮은 편으로 근태 관리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교육 수준 역시 낮아 노동 생산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음.

- 이를 감안해 볼 때 파키스탄은 인건비가 저렴한 나라로 보기 어려운 바, 임금 차이를 통한 원가 절감보다는 인구 규모 세계 7위의 현지 시장 공략에 투자 진출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음.

○ 현지인의 낙관적 견해보단 철저한 사전 조사에 의지하라

- 투자 타당성의 조사 과정에서 접촉하는 대부분의 파키스탄인들(정부 공무원, 기업인 등)은 대부분 투자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이들의 의견만 듣고 프로젝트의 결과를 낙관하는 것은 금물

- 파키스탄은 통계 등 각종 시장 정보가 부족하여 전략적 조사가 쉽지 않은 바, 현지 공관 및 기존 투자 진출 기업과의 상담을 통해 각종 조세 제도, 노동법, 현지법인 설립 절차 및 유의 사항 등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야 함.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약사



인도 역사의 특징


인도는 다양한 인종, 종교, 언어, 생활풍습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대륙과지리적으로 차단된 특수성으로 인하여 일찍부터 독특하고 개성적인 문화를 이루어 왔음.

○ 5,000년 이상의 긴 역사 중 정치적 통일을 이룬 시기는 마우리아왕조(B.C.321-185), 굽타왕조(A.D.380-606) 및 무갈왕조(A.D.1526-1858) 등 3개 왕조에 불과하며, 북서부지역은 외부세력 침입의 출입구가 되어 그리스, 훈, 터키족 같은 외부 세력과의 항쟁 속에서 성쇠를 거듭하였으나, 데칸고원 등 남부지역은 지형적 요인으로 인해 외부세력의 침입을 비교적 적게 받아 왔음.


고대


○ 인더스 문명(기원전 3000-2000)

- 세계 4대문명 발상지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은 인더스강 유역에서 기원전 3,000~2,500년경부터 약 500년간 번성한 고대 문명으로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등의 유적이 있음.

- 고도로 발달된 후기 청동기 문명의 단계로서, 종교는 다신교, 정치 체제는 제사장 중심의 공화제를 형성

○ 아리안 문명(기원전 2000-1000)

- 인도 문화의 원형은 상당 부분 아리안족이 인도 대륙 침입 후 정착하면서 이루어졌음.

- 사제 계급인 브라만 중심의 제사 의식과 신에 대한 찬양 등이 집대성된 리그베다 등 베다문화가 이 시기에 형성됨.

○ 도시국가의 형성

- 기원전 7세기경에 이미 상당한 세력을 지닌 도시국가들을 건설

- 정복전쟁에서 가장 두각을 보인 마가다 왕국은 알렉산더왕의 침입 때까지 난다 왕조와 더불어 인도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을 유지하였으며, 기원전 500년경 불교 및 자이나교가 발생함.


중/근세


○ 마우리아 제국(기원전 321-185)

- 3대왕인 아쇼카왕(BC 272~232)은 지배영역을 확대하여 남서부의 타밀지역을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하고, 포교에 힘써 불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하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함.

○ 쿠샨왕조(78-226)

- 쿠샨족 카니슈카왕이 서쪽으로 이란, 동쪽으로 중국의 한나라, 남쪽으로는 인도대륙의 중심부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형성

○ 굽타왕조(380-606)

- 찬드라 굽타 2세(380-413) 시대에 문화적 르네상스를 구가하였으며, 불교, 힌두교 및 자이나교 등이 융성, 부흥했음.

○ 무굴제국(1526-1858)

- 데칸을 제외한 인도의 대부분과 아프가니스탄을 아우르는 대제국이 건설되었고 악바르 이후 150년 간 전성시대가 지속됨.

- 이슬람교가 번성하여 타지마할 등 이슬람 관련 유적을 남김.

- 1707년 이후 지방토후의 발호, 서구열강의 침입으로 약화

- 1757년 영국이 프랑스와의 플랏시 전투에서 승리

- 1857년 영국이 세포이 반란을 진압한 후 영국의 직할지로 편입.


근대


○ 반영 독립투쟁

- 18세기 후반에 생겨난 많은 정치단체 중, 1885년 결성된 "인도 국민회의"가 독립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함. 특히, 독립운동에 대한 영국의 냉담한 반응에 대응하여 보이콧 및 스와데시 운동이 전인도로 파급되게 됨.

- 이에 대해 영국은 분할통치 정책을 취하여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간 대립을 조장하였으며, 1906년에는 국민회의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영국의 배후 지원을 받은 회교도 연맹을 결성함.

- 1차 대전 이후 인도 국민회의는 마하트마 간디의 지도하에 영국이 제시한 자치령 지위를 거부하는 등 완전한 독립을 목표로 많은 인도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였고, 이에 반해 회교도 연맹은 파키스탄의 분리를 요구함.

○ 독립

- 2차 대전 후 영국은 인도에 독립을 부여하기로 결정하고,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 방안을 제시한 바, 동 제안을 국민회의가 수락함으로써 인도는 1947.8.15 영연방의 자치령으로 독립하게 됨.


현대


○ 인도 헌법 채택

- 1947년 8월 15일 독립과 함께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가 초대 인총리에 취임한 후, 1949년 제헌의회에서 연방제와 민주주의를 골자로 한 헌법이 채택되고, 1950. 1월 발효됨으로써 영연방 자치령의 지위에서 탈피함.

○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강화

- 한편, 독립 당시부터 파키스탄과는 종교적, 영토적 분쟁으로 1947. 10월, 1965. 6월, 1971. 12월 등 3차례 전쟁을 치뤘으며, 중국과는 국경문제인해 1962년 전쟁을 겪는 등 주변국들과 마찰을 겪기도 했으나 비동주의와 균형 및 실용주의를 적절히 추진함으로써 꾸준히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강화시켜 옴.

○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 시현

- 국내 정치적으로 국민회의당(Congress Party)이 정권을 독점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서구식 의회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추진해 오다가 1990년초 경제상황 악화에 따라 1991년 신경제정책을 채택하여 경제개혁 및 개방정책을 실시함. 1990년대 이후 국내 정치권력은 국민회의당․BJP 양대 정당과 군소 정당들이 합종연횡하면서 연립정부를 구성해 오고 있으며, 경제개방 및 개혁의 성과로 꾸준히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을 시현하고 있음.


정치 개황



국내 정치의 특수한 여건


인도의 국내정치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으로는 일반국민의 민주의식, 언론자유의 보장, 관료제도, 군부의 중립성, 사법부의 독립 등 긍정적인 요인들과 카스트 제도, 종교간 대립, 빈부격차, 지방주의, 취약한 정당기반 등 부정적인 요인들이 있음.

○ 인도의 고질적 사회풍습인 카스트제도를 타파하고 특히 전체국민의 22.5%에 해당하는 최하층민(Scheduled Caste와 Scheduled Tribe)과 52%에 해당하는 하층민(Other Backward Castes)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향상 문제는 인도정치가 안고 있는 최대 과제 중의 하나임.

- 오랜 인습은 타파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지방에서는 무력충돌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음. 2006년에는 정부의 OBC에 대한 국립대학 입학할당제도 도입 방안추진계획을 둘러싸고 찬반논쟁이 가열되기도 함.


헌법과 정부형태


○ 1950년 1월 26일 공포된 헌법은 22장 395조 및 부칙 9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특징은 아래와 같음.

- 정부형태는 내각책임제 공화국 표방

- 종교 무차별주의로 신앙의 자유 허용

- 주정책에 대한 지시지침(Directive Principle of State Policy)을 통해, 부의 공정하고 적절한 분배 및 생산수단의 집중방지 규정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연방국가로서 의원내각제의 정부형태를 취하고 있음.

- 연방은 28개 주(state, 2000년도에 3개 주 신설)와 7개 연방 직할지(Union Territory)로 구성

○ 각 주에는 주 정부와 주 의회가 있음. 주를 대표하는 주지사(Governor)는 5년의 임기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주행정의 실권은 주지사가 주 의회 다수당 지도자 중에서 지명하는 주 총리(Chief Minister)가 장악함.


입법/행정/사법부


○ 상원(Rajya Sabha)은 각주 및 연방 직할지 의회에서 간접 선출되는 238명 및 대통령이 임명하는 12명 등 총 250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6년으로 매 2년마다 1/3씩 새로 선출함.

○ 하원(Lok Sabha)은 각주 및 연방 직할지 대표 543명과 대통령이 임명하는 Anglo-Indian community 대표 2명 등 총 545명으로 구성하며, 임기는 5년임.

행정부는 대통령, 부통령, 총리 및 각료회의(Council of Ministers)로 구성

- 대통령은 5년 임기로 상‧하 양원 및 주 의회 의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에 의하여 간접 선출되며, 국가원수로서의 상징적 역할 수행(군 최고통수권 보유)

○ 사법부는 연방 대법원(Supreme Court of India), 주 최고법원(High Court), 지방법원(Lower Court)으로 구성되는 3심제임. 대법원은 인도 헌법과 법률에 대한 궁극적인 해석권을 가지며 대법원의 판결은 모든 법원에 대해 구속력을 가짐.


외교



대외정책의 기조


1947년 독립이후 인도의 외교정책을 지배해 온 기본적 원칙은 “네루외교노선”에서 비롯된 비동맹주의와 균형주의 원칙이며, 이와 같은 외교기조는 인도가 처한 특수한 외교 및 안보환경 즉, 광대한 국토와 복잡한 사회적 구조로 인해 국가적 단결이 독립초기의 최대의 관심사였고 대외정책 선택에 있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친 정책결정을 내리기 곤란한 국내적 제약조건에 기인한 것이었음.

- 인도는 독립 당시부터 패권주의 반대, 군사동맹 가입 반대, 국제분쟁평화적 해결 및 모든 국가와의 우호관계 수립 등 비동맹회의와 유사기본이념을 대외정책의 기본노선으로 표방하면서 비동맹운동의 창설을 주도하였고 비동맹주의를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아 왔음.


최근 외교정책 노선


점차 과거 비동맹 외교노선에서 탈피하여 고도 경제성장의 지속적 달성을 위한 실용주의적, 친서방적 외교정책 노선을 강화하는 추세이며, 특히 미국과의 관계 강화가 아시아의 세력 균형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

- 1990년대 후반 이후 현저하게 대미국관계 강화를 시도하는 실용주의 노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2004년 재집권한 Congress당 중심의 UPA 연합 정권 하에서도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고 있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등 부상하는 global power로서의 국제영향력 확대 노력을 가속화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G-4와의 협력 유지를 통한 외교노력을 경주하고 있음.

서남아 지역의 중심국가로서 지역분쟁 예방, 정세 안정화 및 역내 영향력 유지․확대를 위한 외교적 지도력를 추구하며, 특히 주변국가들에게 군림하던 과거의 형태를 벗어나 서남아지역연합(SAARC)의 활성화 등을 통한 전향적이고 유연한 지역 외교 노선으로 전환중임.

고도 경제성장에 필요한 에너지 확보를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추진하고, 특히 원자력 에너지협력을 위해 미국, EU, 러시아, 중국 등 기존 핵보유 국가들의 지원 확보를 위한 다방면의 외교노력을 기울이고 있음.

○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출범을 통한 장기적 East Asia Community 구상 추진, ASEAN과의 FTA 협상 마무리, 한국과의 FTA(CEPA) 협상 개시, 중국 및 일본과의 FTA 타당성 검토 등 동아시아권과의 지역 협력 강화를 통한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고 있음.


인도-파키스탄 관계


○ 카슈미르 문제는 대 파키스탄 외교정책의 가장 큰 부문으로서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이후 카슈미르(Kashmir) 지역에서 계속 일어나는 영유권 싸움이며 회교와 힌두간의 대표적인 종교적 갈등임.

○ 인도·파키스탄 전쟁

- 카슈미르 지역 영유권 분쟁은 1947년 영국 식민지하의 인도가 신생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될 당시, 동 지역 인구의 절대다수(77%)를 차지하는 회교도측이 파키스탄에 귀속코자 파키스탄 정부군의 지원하에 반란을 일으킴. 이에 대해 동지역의 힌두교 영주(Maharaja)가 인도정부에 군사지원을 요청하여 1947. 10월 제1차 인도·파키스탄 간에 전쟁이 발생하였고, UN의 거중조정에 따라 휴전선이 설정됨.

- 1965. 7월 양국간 다시 전쟁(제2차 인·파 전쟁)이 발발하였으나, UN 안보리의 노력으로 휴전됨.

-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을 둘러싸고 제3차 인·파 전쟁이 발발

○ 2003년 양국 간의 휴전 협정을 체결하여 분쟁을 종식시키는 노력과 동시에 그동안 끊겼던 항공 운항을 2004. 1월부터 재개하고 2005. 10월 발생한 대 지진과 관련 카슈미르 지역에서 양국 공동 구조 활동을 펼치는 등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음.

○ 그러나 2006. 7월 뭄바이열차 연쇄폭탄테러로 인해 약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인도 측은 동 테러를 일으킨 단체가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두고 있음을 이유로 7월에 예정되어 있는 외교차관 회담을 무기한 연기함.

2006. 7월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개최된 SAARC 상임위원회(Standing Council) 회의를 계기로 양국 외교차관 회담에서 양국은 평화구축 과정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단 공감하였으나, 구체적인 다방면 대화의 추후 일정은 정하지 못함.

○ 2006. 8월 파키스탄이 자국내 인도 외교관을 외교관 신분에 적절치 않은 행동을 한 혐의로 추방하자, 인도도 맞바로 자국내 파키스탄 외교관을 추방하는 사건이 발생함.

뭄바이 테러 사건 발생(2008.11.26-29)

- 10명의 테러리스트가 중무장한 채 해상을 통해 뭄바이에 침투, 11월 26일 밤 10시경부터 동시다발적 무차별 테러 공격 감행

- 약 170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부상당했으며, 테러범 9명을 사살하고 1명 생포하여 테러를 진압함.

- 파키스탄 정부는 이번 테러와 파키스탄 당국과의 관련성을 계속 부인해 왔으나, 파키스탄 무장단체 ‘라슈카르에타이바’(LeT)와 관련되어 있음이 밝혀짐.

- 이 사건을 통해서 군병력의 국경 재배치 움직임이 일어나고 양국간의 갈등이 다시 고조됨.


남아시아 지역협력 연합(SAARC)


○ 국제무대에서의 상호협력을 도모하고 역외개도국 및 타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증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아시아국가간 지역협력 기구로서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에 이어 두 번째로 창설됨,

- 경제, 사회, 문화, 과학‧기술 분야의 발전 모색(정치, 군사문제 제외)

-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네팔, 몰디브, 부탄, 아프가니스탄 등 서남아 8개국이 회원국이며, 한국, 중국, 일본, 미국, EU 옵서버 가입

역내국가간 국력의 불균형과 회원국간 다양한 갈등 및 대립 등 어려운 문제가 있으나 회원국 상호간의 공동체 인식과 함께 협력분위기 조성에 기여하는 바도 있음.


사회



카스트(Caste) 제도


○ 수천 년 간 인도인의 생활을 규율해 온 카스트 제도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
고, 근대화 및 교육의 영향으로 점차 약화되고 있으나 아직도 많은 인도인들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관습으로 존재하고 있음.

○ 카스트제도는 아리안 족이 인도를 정복한 후 소수집단인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동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짐. 피부색 또는 직업에 따라 승려계급인 브라만(Brahman), 군인‧ 통치계급인 크샤트리아(Kshatriya), 상인계급인 바이샤(Vaisya) 및 천민계급인 수드라(Sudra)로 크게 나누어지며, 이 안에는 다시 수많subcaste가 있음. 최하층 계급으로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이 있음.

○ 최초에는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으나 오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다른 카스트와의 결혼 불허 등 많은 금기를 가진 사회규범으로 굳어져 인도인들은 자기가 속한 카스트의 행위범을 준수해야 했었음. 이러한 계급제도는 인도사회를 안정시키고 결속시키는데 도움이 된 면도 있다고 하나, 인권을 침해하고 사회를 정체시켜 활력을 잃게 하는 부정적 영향이 큼.

마하트마 간디를 포함한 많은 사회개혁운동가들은 불가촉 천민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하면서 불가촉 천민들을 ‘신의 자식’이라는 뜻에서 하리잔(Harijan)으로 부르고, 이들이 힌두 사원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천민보호에 앞장섰음.

- 오늘날 인도에는 1억이 넘는 하리잔이 있는 바, 정부에서는 입학, 취업시 일정비율을 하리잔에 배정해 주는 등 혜택을 주고 있어 하리잔 출신이 장관까지 된 경우도 있으나, 농촌에서는 아직도 카스트제도가 많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임.
 

언어


○ 다양한 인종과 더불어 180여종이 넘는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헌법
으로 인정한 지역별 공용어는 18개임.

- 힌디어, 텔루구어, 벵갈어, 마라티어, 구자라트어 등

이중 인구의 38.7%가 사용하고 있는 힌디어는 전국적 공용어이며, 영어는 18개 공용어에 해당하지 않으나 의회, 행정부, 사법부 및 사각 분야에서 널리 사용하는 공용어이자, 학력이 높은 층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함.


복장


○ 남자 : 고유의상으로는 도티(Dhoti), 룽기(Lungi), 아즈칸(Achkan),
파자마 등을 들 수 있음. 그러나 도시에는 하절기에 사파리가 널리 사용되고 있음.

- 도티 : 동부‧남부지방에서 많이 입는데 긴 천을 밑으로 늘어뜨린 후 다시 허리춤으로 올려 동여 입는데 흰색의 얇은 천을 사용함.

- 룽기 : Kerala 등 해안지방에서 많이 입는데 좁은 폭의 천을 늘어뜨린 후 허리를 동여 입음.

- 아즈칸 : 네루 전 총리가 즐겨 입었던 목이 올라온 제복 스타일의 옷

- 파자마 : 우타르 프라데쉬 주에서는 무릎 아랫부분이 꼭 끼는 추리다(Churidar) 파자마를 입으며 Punjab에서는 헐거운 쿠르타(Kurta)를 입음. 흰색 천을 주로 사용함.

- 사파리 : 하절기(4월-11월)에 많은 도시인들이 즐겨 입는데 공식적모임에서는 점차 양복, 넥타이 차림이 조금씩 늘어가는 추세임.

여자 : 사리(Saree)라는 고유의상을 주로 입는데 지역에 따라 매는 방법, 천의 길이, 천의 개수가 다름.

- 입는 방법은 천을 허리에 감아 맨 다음 어깨에 걸쳐 밑으로 내려 입음. Punjab 지방에서는 사르와르 카미즈(Salwar Kameez)라는 상의가 길고 바지가 넉넉한 옷을 입으며 우타프라데쉬, 라자스탄, 구자라트에서는 가그라(Ghaghra)라는 긴 스커트를 입음.


문화


○ 베다문화(B.C.2000-500)

- 아리안 족의 침입 후 형성된 베다문화는 인도의 종교‧사회‧관습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힌두교를 탄생시켰으며, Veda와 같은 대서사시적인 경전을 발전시켰음. A.D.6세기-10세기를 통해 힌두문화는 건축․조각․회화 등 각종 예술 분야에서 번창했으며 힌두사원 등 많은 기념비적인 힌두문화 유물을 남겼음.

○ 불교문화(B.C.500-A.D.1100)

- 불교문화 전성기는 B.C. 3세기 야쇼카대왕 시대로 산치대탑, 보드가야의 대탑, 녹야원의 석탑, 아잔타․엘로라 동굴 조각 및 건축 예술에서 절정을 이룸. 아울러 불교는 중국, 한국 및 동남아 등 여러 나라로 전파됨.

○ 이슬람문화(A.D.1100-1600)

- 이슬람문화는 특히 건축에서 페르시아 및 힌두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조화를 이룬 대표적 양식으로, 초기의 상호배척을 점차 극복하고 상호간의 종교적 관용이 정착하면서 우루두어의 탄생 등 언어, 문화, 음악, 미술 분야에서도 많은 공헌을 함.

○ 서구문화의 영향(A.D.1700-1947)

- 250년에 걸친 영국 지배하에 인도예술, 특히 전통회화분야에서 서구 예술의 영향을 받음. 또한 영어의 도입과 함께 생활양식의 변화와 문학의 발전을 가져옴. 그러나 힌두문화는 상당부분 그대로 전승됨.

○ 독립이후(A.D.1947-현재)

- 독립 이후, 전통문화 창달과 문화유산을 보호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문학, 음악, 무용, 연극, 미술 등의 진흥을 위한 국가적 지원문화재 발굴, 보존, 전시 등을 위한 박물관, 문화재 관리국 등 국가행정기관을 통하여 현재 문화와 함께 전통문화를 조화시켜 나가고 있음.


교육


○ 교육의 기본정책은 지역 간의 교육격차해소, 전 계층 간의 균등한 교육기회, 국가사회 요구에 부응하는 인력자원개발 등에 목표를 두고 14세까지의 무상의무교육, 영어, 힌디어 및 주 공용어 등 3개 언어교육,
GNP의 6% 교육투자 등을 통해 중앙정부와 주정부가 공동 노력하고 있음.

학교교육은 10+2+3의 15년 과정의 교육제도로써 1968년도 채택 후 현재 거의 모든 주가 이를 실시하고 있음.


종교


인도는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Jainism), 시크교(Sikhism) 등 4개 종교발생지이며 이슬람교,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유태교 등 다양한 외래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나라임.

종교는 인도 국민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종교 없는 생활은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종교는 인도인의 생활과 밀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고 종교는 인도인의 일상생활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임.

○ 헌법은 모든 종교에 대한 무차별, 신앙의 절대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모든 종교는 국가로부터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음.

○ 인도의 종교인구 분포는 힌두교 81.5%, 이슬람교 11.2%, 기독교 2.7%, 시크교 2.4%, 불교 0.7%, 자이나교 0.4%, 기타 1.1%임.


힌두교


○ 힌두교는 B.C 2000년경 아리안족 침입 후 최고경전 Veda가 집대성
되면서 정치, 사회생활을 지배해 왔으며, 이슬람교 등 이교도의 수세기 동안에 걸친 침략 속에서도 이에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포용하면서 오늘에 이름.

- 드라비다족의 토속신앙, 아리안족의 자연신 숭배 등에 바탕을 둔 다신교인 힌두교는 외래사상과 종교 등에 대한 인내와 관용을 특징으로 하며 생활경험, 도덕, 사회관습, 규범의 총체로서 Dharma(정의 또는 의무)에 따른 수도생활과 최고 정신을 탐구하는 고도의 생활 철학적 종교임.

- 소를 신성시하고 카스트제도를 정착시킨 힌두교는 해외 전파보다는 인도인의 종교로 존속하길 바라는 성향을 띠고 있음.

- 현재 약 8억에 이르는 신도를 가진 힌두교는 인도사회에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 종교임.


보건


○ 약 26%의 빈곤층을 가지고 있는 인도는 모든 국민의 건강향상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농촌, 빈민층에 대한 위생, 의료혜택을 확대 실시하고 있음. 특히 UPA 정부는 집권기간 중 GDP의 2-3%를 보건 분야에 투입하되 기초보건에 우선적으로 투자한다는 계획이며,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의 조기 도입과 필수 의약품의 저렴한 판매 방안 마련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음.

○ 지난 30년 간 평균 수명은 31세에서 52세로 사망률은 천 명당 27.4%에서 14.2%로, 유아 사망률은 천 명당 146명에서 125명으로 개선됨. 또한 전염병퇴치를 위한 특별대책을 실시하고 있는 바, 1977년도를 기해 천연두는 퇴치되었으며 학질, 사상충, 나병, 콜레라, 결핵 등의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

○ 1952년 제1차 5개년 계획을 출발로 시작한 가족계획은 많은 성과를 가져출생률은 60년대 4.12%에서 1978년도 3.33%로 감소되었으며, 2002년에는 2.38%로 정부는 2001-11년의 10년 간 인구증가율을 16.2% 이내에서 억제한다는 계획임.


관습


인도인들 중에는 무신론자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이 절이나 집안에서 정기적으로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음. 힌두교는 다신교로서 교리나 성찰보다는 수많은 제신들의 형상화를 통한 의식이 주요 신앙생활을 이루고 있으며, 도덕률이나 내세구원보다는 개인의 현세구복에 치중하고 있음.

오랜 카스트제도 하에서 묵묵히 순종해온 생활태도, 불교의 자비와 관용적 사상, 장기에 걸친 이민족의 지배 등의 영향에 기인하는 관용적 태도, 생명존중 사상, 무저항주의 같은 평화주의 사상이 인도인들의 생활 저변있으며, 마하트마 간디가 제창한 비폭력주의도 이러한 전통적 사상의 계승 내지 발전으로 볼 수 있음.

- 그러나 이슬람-힌두 등 종교, 종파간 갈등 분규가 발생시 폭력사태로 변질되기 쉬우며,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하여 외국인의 주의를 요함.

인도인들은 전통과 관습을 존중, 일반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며, 보수적 풍속을 벗어나는 외국인은 풍속사범으로 체포, 처벌하기도 함.

인도에서는 금주제도를 실시하는 주가 있으며 일반 식당에서도 금주일이 있고, 판매시간이 제한되어 있음. 주류 판매는 호텔이나 규모가 큰 대중식당에만 국한되는 것이 일반적

○ 매춘은 불법이며, 지역마다 정도의 차는 있으나 대체로 자국인들 간에 이루어지며,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음.

○ 여성들은 복장법령에 따라 공적 활동시 반드시 전통의상인 사리 또는 사르와르 카미즈를 입어야 하며, 일반대학에서도 여학생들에게 전통의상을 강요하는 사례가 있음.


언론


인도의 언론은 스스로 영국으로부터 독립(1947년)을 쟁취하는데 공헌바 크고, 독립이후에는 국가 건설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높은 긍지를 갖고 있음.

- 개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언론자유가 보장되고 있으며 언론이 여론정치 구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음.

신문 등 정기간행물(약 8,000종)은 대부분이 개인소유로 운영되고 있음. 특히 TV 및 라디오는 방대한 지역과 인구의 1/3 이상이 문맹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보도‧교육‧오락 등 일반적인 방송기능은 물론 정부의 대국민 홍보기능 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

○ 인도 유일의 공중파 방송인 국영 TV Doordarshan(DD-TV)은 DD National, DD News, DD India(해외방송) 등의 채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외에 최근 대도시를 중심으로 민영TV 채널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으며, 케이블 TV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음.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인도 (Republic of India) 개황



○ 국 명 : 인도(Republic of India)

○ 수 도 : 뉴델리(New Delhi, 12.8백만 명)

○ 면 적 : 3,287,590㎢(한반도의 15배, 남한 면적의 33배)

○ 위 치 : 서남아시아(동경 68.7-97.25 도, 북위 8.4-37.6 도)

○ 인 구 : 11억 2,200만 명(2008년 추정치)

○ 주요도시 : New Delhi(1280만), Mumbai(1640만), Kolkata(1320만) 등

○ 민 족 : 인도 아리안족(72%), 드라비다족(25%), 기타(3%)

○ 종 교 : 힌두교(82.4%), 회교(11.7%), 기독교(2.3%), 시크교(2.0%), 불교(0.8%)

○ 언 어 : 힌두어 외 18개 공용어, 영어(상용어)

○ 정부형태 : 연방공화제

○ 국가원수 : 프라티바 파틸(Shrimati Pratibha Devisingh Patil) 대통령

- 취임일 : 2007.7.25(5년 임기)

○ 의 회 : 양원제(상원 245석, 하원 545석)

주요정당 : 국민회의당(INC), 인도인민당(BJP), 인도공산당(CPI)

○ 독립기념일 : 1947. 8. 15(영국으로부터 독립)

○ 화폐단위 : Rupee(2009. 3월 현재 US$ 1 = 51.80 Rs)

○ 산업구조 : 서비스업 52.8%, 제조업 29.4%, 농업 17.8%(2007)

○ 주요수출품 : 기계류, 석유제품, 섬유류, 보석제품

○ 주요수입품 : 석유제품, 전자제품, 금․은, 기계류

○ 주요부존자원 : 철광석, 석탄, 석유

○ 경제적 강점 : 천연자원 및 저임노동력 풍부, 거대한 내수시장

○ 경제적 약점 : 사회간접자본 미비, 관료주의 만연

○ 1인당 국민소득 : $ 1,180(2008)

○ 국민총생산 : $ 13,055억(2008)

○ 표 준 시 : GMT(우리나라와 9시간 차, 서머타임 미실시)

○ 기 후 : 한대성 기후(히말라야 고산지대), 건조기후(서북부 지대), 열대성 기후(북부 평야 지대의 도시들을 포함한 국토의 대부분) 등 지역별 편차가 극심 (연평균 기온 27-34도)

- 1월이 가장 낮고 4-5월이 가장 높으며, 6월 말부터 몬순이 시작


경제개황 및 주요지표



경제 구조 및 특징


○ 최근 5년간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견실한 성장으로 수출이 확대되면서 연평균 8.8%의 고도 성장세를 지속해 왔으며, 2008년에도 글로벌 경제위기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7.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

○ 부족한 세수기반, 분배위주정책, 외채원리금 상환 등으로 재정수지는 만성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열악한 투자환경에도 불구하고 인프라 및 IT 산업을 중심으로 FDI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

대외무역은 특히 눈에 띄게 상승세를 보이는 분야로 인도의 상품수지는 상품수입의 약 1/3을 차지하는 석유 가격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며, 고성장에 따른 수입수요 증대, 유가 상승, 점진적 무역 자유화 등으로 인한 수입 증가로 상품수지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음.

인도의 산업구조는 농업 중심에서 광공업, 특히 서비스업 중심의 선진적인 구조로 빠르게 변화함으로써 몬순 기후의 변화에 따라 연도별 성장률이 변동하는 농업 부문의 비중이 점차 감소하고 있음.


주요지표 및 통계


○ 주요경제지표

구분

2004

2005

2006

2007

2008

GDP(억 달러)

6,978

8,085

9,272

11,436

13,055

1인당 GDP(달러)

660

750

850

1,030

1,180

경제성장률(%)

8.3

9.2

9.7

9.0

7.7

재정수지/GDP(%)

-3.9

-4.1

-3.4

-2.8

-3.4

소비자물가상승률(%)

3.8

4.2

6.2

6.4

7.1

경상수지(백만 달러)

781

-10,285

-9,529

-11,794

-39,579

수출(백만 달러)

77,939

102,175

122,963

150,784

178,925

수입(백만 달러)

105,975

149,430

122,963

230,202

283,033

(자료원 : 한국수출입은행)


최근 경제 동향


○ (실물경제) 2008. 4월~2009. 1월 기간 동안 자동차 판매량은 974,661대로, 전년 동기 980,754대 대비 0.6% 하락함. 동기간 판매량이 감소한 것은 5년 만에 처음으로, Hyundai India는 -13.5%의 판매율 하락으로 고전 중임.

-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신용경색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며, 최근 금리하락 등의 경기 진작책에도 불구, 2009년 상반기 내 자동차산업 회복은 힘들 전망

○ (실물경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제조업 서브섹터(sub-sector) 96개 부문 중 1/3이 2008.4월~12월 기간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으며, 78% 이상이 성장부진 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함.

- 최악의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부문은 주조, 합성섬유, 직물기계, 상용차, 다용도차, 식용유, 압축기이며, 또한, 시멘트, 트랙터, 선풍기와 자동차산업 부문 중 모터자전거, 스쿠터, 자동차, 오토바이, 타이어 등 제조업 서브섹터의 45% 정도가 10% 미만의 성장률을 보임.

(정부정책) 금융위기로 인한 자본정체(moribund capital inflows)를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도 합작기업에 대한 FDI 규제를 완화시킴.

- 국내산업 보호 및 공공보건을 위해 중국산 완구류 수입 금지조치를 내려 중국과의 무역 분쟁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

○ (대외무역) 인도는 싱가포르, 태국, 아세안에 이어 일본, EU 등과 FTA 협상 중에 있는데, 경쟁국과의 FTA 확대는 우리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됨.

- 그러나 한-인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은 2009년 2월 9일 가서명을 완료하였음. 동 협정이 발효되면 양국 간의 무역 및 투자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됨.


주요산업 현황 및 전망



자동차 산업


○ 인도 자동차 산업 규모는 2016년까지 약 1,400억 달러로 추정되며, 특히 상용차량 분야의 성장이 예상

- 경제 발전에 따른 소득 증가와 할부 금융 기법의 도입 및 정부의 소형차에 대한 소비세 인하 등의 요인으로 두자리 수 성장 지속

○ 인도 정부도 내수뿐 아니라 수출 상품으로 자동차 산업을 적극 육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민영화 등 경쟁을 도입하여 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면세 혜택과 같은 다양한 외국인 투자 유인책을 도입

- 구매가능 계층의 확대, 도로망 개선, 대중교통수단 미비, 다양한 지불방식의 도입 등으로 승용차, 상용차, 이륜차에 대한 수요증가 추세는 지속될 전망

○ 현재 인도 자동차 부품업계는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인도에서의 부품 아웃소싱에 참여 덕분으로 호황을 맞고 있음.


철강 산업


○ 철강 산업은 풍부한 철광석과 석탄 부존, 저임 노동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왔으며, 인도는 5,071만 톤의 粗鋼(crude steel)과 5,190만톤의 탄소강을 생산하는 세계 제5위의 철강 생산국임.(2008. 3월 현재)

- 국내 외에서의 인프라, 부동산, 자동차 산업과 같은 분야의 수요 증대로 현재 5개년 계획 기간 동안 평균 16% 증가하여, 2016년까지 세계 2위의 철강 생산국이 될 것으로 전망됨.

○ 인도 철강산업은 풍부한 철광석 및 저렴한 임금에도 불구하고 비과학적 채굴과 낮은 생산성, coking coal의 해외 의존, 높은 금융 비용, 인프라 부족 등 많은 취약점을 가지고 있어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과제로 되어 있음.

○ 인도에는 확인된 철광석 매장량이 86억 톤, 추정 매장량이 91억 톤으로 약 170억 톤의 철광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상당량이 철 함유량 63% 이상의 적철광(Hematite)이나 품질은 열악한 편.


석유화학 산업


○ 인도의 석유화학 산업은 인도 정부의 규제 완화와 무역 정책의 변화로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 확대와 투자 증가가 가속화되는 한편 외자 합작 사업과 기술 이전도 촉진되고 있음.

- 원자재 획득 및 규모의 경제 상 석유화학산업은 구자라트, 마하라수트라, 웨스트 벵갈주 등이 3개 주 지역에 87.64%가 집중

○ 인도는 기초 원료의 생산을 시작으로 수요가 직접 발생하는 최종 단계(컴파운드, 성형가공)와 하류 제품(합성수지 등의 polymer 제품)으로 확대하는 선진국형 성장모델을 따르고 있음.

- 인도의 석유화학 산업은 풍부한 설비와 노동력, 일부 분야에서 고급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

○ 석유화학 제품은 현재 인도의 5대 수출 품목이며 1위를 차지한 섬유 제품 중 합섬 섬유의 원료로써 주력 수출 분야임.

- 국내외 수요 증가에 맞춰 생산 설비의 확장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 인도의 석유화학 시장은 고성장이 계속될 전망


섬유 산업


섬유 산업은 전체 산업 생산 중 14%(약 470억 달러), 인도의 전체 수출의 20%(약 170억 달러), 전체 GDP의 4%를 담당하며 고용 측면에서는 농업 다음으로 가장 많은 고용효과를 가진 중요 산업

- 인도는 저임의 숙련 노동력이 풍부하고 국내에서 생산되는 섬유량이 많으며 다양한 품목의 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음.

- 단순한 주문 생산에 따른 공급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기능 면에서 혁신적인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

○ 인도 정부의 섬유 산업과 관련한 ‘Vision 2010’을 통해 2010년까지 전세계 섬유 산업에서 인도의 점유율을 현재의 4%(370억 달러)에서 8%(850억 달러)로 증가시킬 계획

- 향후 세계 섬유 교역이 완전 자유화되면 인도 시장에 대한 선진국의 섬유 주문 및 생산 기지 이전이 더욱 크게 확대될 전망


서비스 산업


○ 인도의 서비스업 부문 중 IT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생명공학 등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며, 무선통신 산업과 케이블 TV, 건설․인프라, 광물 자원 개발 등은 발전 가능성이 높은 유망 성장 산업으로 평가

정보기술(IT: Information Technology)

- 인도의 IT 산업은 지난 5년 동안 연 평균 28%의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여왔으며, 전 세계 글로벌 IT 기업들의 연구와 개발 허브로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

- 저가의 고품질 소프트웨어 공급처를 확보하고 비즈니스 효율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소프트웨어 구입 및 업무 제휴의 목적으로 인도를 찾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으며, 컴퓨터 및 주변기기를 포함한 하드웨어에 대한 수요도 동반 상승할 전망.

○ 생명공학(BT: Biotechnology)

- 인도 BT 시장은 2000년에 18억 달러였으나 2005년에 22억 달러, 2010년에 50억 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며, 내수보다는 해외 진출을 겨냥한 전략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음.


농수산업


○ 농업 부문은 산업 구조의 고도화에 따라 비중과 경제적 중요성이 하락하여 인도 GDP의 18%를 담당하는데 불과하나,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농업부문에 종사하면서 극빈층을 형성

○ 산업 구조의 고도화와 농업 부문의 축소

- 인도의 농업 부문은 곡물 생산과 축산업으로 크게 구분되며 곡물이 70%, 축산업이 30%를 차지하고 있음.

- 인도 정부는 농업 부문 발전을 위해 1966년부터 1999년간 두 차례의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을 실시하여, 농업 부문 성장률을 1999년 3.35%까지 증가시킴.

○ 인도의 14개 주는 농업 및 관련 분야의 서비스와 원예 농업과 화훼원예, 종자의 개발, 동물 농장, 수산 양식, 양식, 야채 경작, 버섯 재배 등에서의 자동 승인을 통한 100% 외국인 투자를 허용함.


유망 제품


○ 한국 제품에 대한 인지도

- LG 전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여러 대기업들이 인도에 진출하여 큰 성공을 거둔바 있기 때문에 한국 제품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은 편임.

- 보편적인 인도 바이어들에게 한국 제품은 좋은 품질을 보유하고 있으나 가격이 비싼 제품으로 인식되고 있음.

○ 자동차 부품

- 현대 자동차의 대규모 증설과 현지 자동차 설비 증설 붐 그리고 자동차가 급증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자동차 부품의 수출은 계속해서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임.

전자 및 IT

- 각종 전자 제품, 보안 장비, MP3 플레이어, 디지털 카메라, LCD 등 현지에서 수요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는 전자 제품 및 IT 제품이 유망함.

기계류

- 인도의 산업화가 본격 추진됨에 따라 산업 기계류, 건설 기계류, 일반 기계류, 섬유 기계류 및 관련 부품, 건설 기계 등 기계류 수출이 유망함.

○ 정보통신 장비 및 기자재

○ 금형제품

○ 의료용 기자재 및 일회용 의료용품


투자환경 및 동향



시장 특징


○ 시장 규모가 광활한 시장

- 세계 2위의 인구 대국인 인도(11억 4,800만 명, 2008. 3월)는 중국보다는 저연령층이 두터운 편이기 때문에 2025년경을 기점으로 경제 활동인구수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됨. 이는 인도가 노동 집약적 제조업을 육성하는 데 장기적으로 중국보다 더 큰 잠재력이 있음을 의미

- 인도는 세계에서 7번째로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남한의 약 33배에 해당하는 서남 아시아의 대표 시장임.

○ 내수 소비의 폭발적 성장이 기대되는 시장

- 인도의 구매력 평가 기준 GDP(PPP)는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하며, 최근 국제 금융 자산의 유입과 부동산 및 증시 상승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

- 최근 중산층 및 신흥 부유층의 증가가 두드러졌으며, 매킨지사는 2025년까지 중류층 이상의 비율이 현재의 5%에서 43%까지 증가하여 중산층 위주의 사회로 변모할 것으로 예상

-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최근 4년간 약 10배 가량 증가하여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점하며, 자동차에 대한 수요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임.

○ 다양한 특성을 가진 시장

- 인도인은 수많은 외래민족의 유입으로 다양한 인종적 특성을 보이며, 힌디어를 포함한 16개 언어가 공용어로 인정되고 있음.

- 소득 양극화도 심각하고 카스트 제도 역시 엄연히 실재하고 있으며, 인도의 상권 역시 권역별 특징이 달라 해당 지역의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특성에 따라 진출 전략을 달리하는 것이 도움이 됨.

대규모 투자 자본이 유입되고 있는 시장

- 90년말 이후 인도는 IT 소프트웨어 및 관련 서비스의 아웃소싱 기지로 각광받았으며, 인도 진출시 내수 및 수출을 동시에 지향할 수 있다는 점 등 인도의 잠재력을 투자자들이 높이 평가

- 2007-08 회계 연도 기준 FDI 유치 규모는 246억 달러이며 전년 대비 56% 증가한 수치로서, 인도 정부 당국은 2008-09년도 6월 기준 100억 달러 이상의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였으며 투자가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고 발표

○ 정치, 경제, 사회적 안정성을 갖춘 시장

- 정치면에서 보면, 인도는 문자 그대로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이며, 높은 문맹률과 극심한 빈부격차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일반화되어 있음.

- 이러한 정치적 안정과 함께 풍부한 자원, 광범위한 산업기반, 증가일로에 있는 양질의 기술 인력, 경제개방과 자유화 정책 등에 힘입어 최근 경제적인 안정성이 강화되고 있다고 평가됨.

○ 원부자재, 자원 확보가 용이한 시장

- 인도는 광활한 국토면적으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부존자원이 풍부한 국가 중 하나로서, 생산 규모 면에서 볼 때 운모류 1위, 크롬 3위, 석탄 및 갈탄 3위, 철광석 4위, 보크사이트 및 망간광 각 6위, 알루미늄 10위의 위치를 차지

- 이에 따라 인도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활용키 위한 자원 확보형 투자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도의 대리석 또는 화강암을 겨냥한 우리나라의 동인석재, 풍부한 철광석을 고려한 포스코의 오리사주 투자사례가 이의 한 전형임.


투자 애로사항


○ 인프라의 부재

- 인도의 경제발전과 투자유치를 지체시키는 최대 문제점이자 애로사항은 전력, 용수, 도로, 항만, 공항 등 거의 모든 인프라가 매우 열악하다는 점임.

- 예컨대 전력의 경우 평시 전력부족률이 7~8%, 피크타임 전력부족률이 11~12%에 달하며 공급되는 전력의 품질도 매우 불량하여 일상적으로 정전이 발생함.

부동산 임대료의 급증

- 최근 델리, 뭄바이, 뱅갈로 지역을 중심으로 상업지역과 주거지역에 대한 부동산 임대료가 급상승하고 있으며, 공급측면에서 여러 신규 주택 공급 프로젝트들은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음.

인건비의 상승

- 인도는 최근 9%대의 고도성장을 거듭하면서 지난 몇 년간 두 자리수의 인건비 상승률이 이어지고 있으며, 2008년 인도 근로자 인건비 상승률(15.2%)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임.

- 인도 인력은 이직을 보편적인 몸값 상승의 기회로 여겨 쉽게 이직하는 추세이며, 고용 에이전트의 부추김도 상황을 악화시킴.

규제 및 불투명한 행정

- 인도에서 카스트제도는 현실에서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개인과 사회현상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 실제로 카스트와 얽힌 사회문제나 갈등은 어려움으로 작용

- 또한 여러 종교, 인종, 언어가 상존하다보니 일상적인 행정처리에 있어 비효율성이 큰 편이고, 사회주의경제시스템을 운영한 전통으로 노동자권익을 과다하게 보호한 노동법 체계 등이 실제 사업체를 운영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음.

한국 투자기업들의 애로사항

- 법인 및 공장 설립 단계에서 겪는 애로사항으로는 투자허가기관 및 파트너의 잦은 태도변화와 인도 특유의 복잡한 행정체계가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되었음.

- 경영관리 전반으로 겪는 애로사항으로는 인프라 부족과 원자재 및 부품의 조달과 관련된 애로사항으로 나타남.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출입국 절차

○ 모로코 카사블랑카 "모하메드 쌩크"(Mohamed V) 공항(비행기표 행선지로는 CMN으로 표기) 에 내리면 입국 사열장(Immigration)을 통과해 수하물(Baggage)을 찾고 세관(Douan)을 통과해 나오게 됨. 입국심사(Passport) 시 여권 사증란에 입국 스탬프와 외국인출입국 관리 일련번호(예: 117044UK / 6자리 숫자와 영문 대문자 2자)를 찍어 주는데, 동 번호는 호텔 체크인 시 필수적으로 기재하게 되어 있음.

- 이외 출입국에 필요한 특별한 절차는 없으며 모로코의 공항은 관광국으로 통관이 매우 수월한 편임.

○ 입국 시 신고 물품이 있을 경우에만 세관검사대를 거치며, 그 외에는 대부분 세관 검사 없이 통관을 하지만, 휴대품이 과도하게 많을 경우 세관원이 임의로 선택하여 세관 검사를 하므로 샘플 등은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한 표시가 필요하고 다량의 샘플(완제품)을 휴대할 경우 우리나라 상공 회의소에서 발행하는 샘플 증명서 (CARNET)를 지참하는 것이 바람직함.

기후

○ "태양이 뜨거운 서늘한 나라" 라고 칭해지는 모로코의 기후는 지역별로 위도, 고도, 바람, 해류에 따라 다양한 분포를 보임.

- 우기(11-4월) 중에는 온난 다습하며 평균 15도, 건기(5-10월) 중에는 고온건조하며 평균 28도이지만 건물 내부 등 그늘에는 서늘했으나 최근 세계적인 기상 이상 및 자동차 매연으로 한낮에는 무더운 편

○ 연중 가장 습한 달은 12월로 평균강수량이 86㎜이며, 가장 건조한 달은 7월로 평균강수량은 1㎜로 거의 비가 내리지 않음.

○ 가장 추운 달은 1월로 평균 섭씨 3-17도이며, 가장 더운 달은 8월로 평균 섭씨 18-28도임.

출장 시의 추천 복장

○ 우기(11-4월)에는 동절기 옷차림이 필수적이며, 일교차(20도 내외)가 심한 편으로 간단한 감기약 등 비상 의약품을 지참하는 것이 좋음.

- 일주일에 2-3일은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음.

○ 건기(5-10월)에는 우리나라 초여름 날씨 옷차림이면 무난하며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도 많으므로 긴 팔 티셔츠가 필요한 경우가 있음.

음식문화

○ 모로코인의 식생활에서 꾸스꾸스(COUSCOUS), 양갈비(꼬트다뇨), 포도주, 박하차는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인 만큼 방문 시 적어도 한번쯤 시식을 해 보는 것이 좋음.

- 꾸스꾸스는 2단 양은솥 중 아래 솥에 호박, 당근, 양배추 등 각종 야채와 양고기 또는 소고기를 넣고, 위 솥에는 미세한 밀가루(SEMOULE)를 넣은 다음 화덕에 불을 피워 아래 솥의 수증기로 위 솥의 밀가루를 찐 음식임.

치안

○ 이슬람국가 중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선임국왕인 모하메드 6 세를 대다수의 국민들이 매우 지지하였던 바, 후임국왕인 핫산 2 세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별 동요 없이 왕권을 이어가고 있음. 치안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외국인들의 여행 또는 생활에 큰 불편이 없음. 테러단 및 조직적인 범죄 단체는 없으나, 빈곤층이 국제테러조직과 연계하여 발생시킨 2003 년 5.16 일 카사블랑카 폭탄테러사건(40 명 사망)이후 안전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고 있으며 야간 여행이나 혼자 벽지 또는 원거리 여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

응급 의료

○ 카사블랑카 등 주요도시의 일반적 의료수준은 여타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잘 갖추어진 편이나 전문적인 치료를 요하는 의료시설이나 전문의가 많지 않은 편임.

○ 지방에는 의료시설 및 의료진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므로 여행 시 사전에 비상구급약을 휴대하는 것이 좋음.

○ 긴급환자가 있을 경우에는 앰뷸런스를 부를 수 있고, 앰뷸런스 호출은 지역마다 전화번호가 있으며 종합병원 응급실로 갈 수 있음.

- 야간 의사를 호텔로 부를 수 있음.

한국과의 시차

○ 모로코는 한국보다 9시간이 늦음. GMT 기준 시간과 동일, 여름 섬머타임 없음. 교류가 빈번한 프랑스와는 시차가 1시간 늦으나, 프랑스의 섬머타임 중에는 2시간의 시차가 있음.

교통사고 예방

○ 모로코는 교통사고율이 높은 나라중의 하나이므로 운전 시 각별히 조심하여야 하며, 방어운전이 필수적임. 우측통행이며, 우측방향차량 우선, 속도제한 및 일단정지, 주차 위반 등 단속을 하고 있음.

○ 시내에서 떨어진 지역이나 지방에서 사고 발생시 경찰 출동이 늦어 사상자를 오래 현장에 방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또한 지방의 경우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여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도 함.

팁 관행

○ 카사블랑카 "모하메드 쌩크" 공항에 내리면 "포터"가 짐을 승용차까지 실어주는데, 이때 팁은 짐 1개당 5-10디람(0.5-1불)을 주면 무난하며, 호텔에 도착하여 포터가 짐을 객실까지 운반해 줄 경우에도 마찬가지임. 팁은 수고의 표시로 보통 식당(불란서식당 등 고급 식당)에서 식대의 약 5-10%정도 주면 무난함.

- 정확하게 계산해서 얼마를 주어야 한다는 개념이 아니며, 일부 고급 식당의 경우 통상 10%의 서비스 요금이 포함되어 청구되기도 함.

식수

○ 현지인들은 수도물(L'eau portable)을 그냥 마시나 석회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가능한 식수는 Mineral Water를 구입하여 마시는 것이 위생상 바람직함. 현지 로컬 미네랄 워터로 "시디알리"(Sidi Ali)와 "시디 하라젬"(Sidi Harazem)의 2 종류 상표가 있으며, 일반 슈퍼판매가격은 1.5리터(5디람)와 0.5리터(2.5디람)이나 레스토랑 및 호텔객실 미니 바에서는 5배 정도 받음.

- 이외에 에비앙(Evian)등 프랑스 수입품도 있으나 현지 산에 비해 3배 이상 고가이기 때문에, 우리 입맛에는 물맛이 부드러운 "시디 알리"를 구입해 마시는 것이 무난함.

전기규격

○ 전압은 220V, 50HZ가 기준 규격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110V가 공급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220V가 주로 공급되고 있고 대형 주택 및 건물, 공장 등에는 삼상 380V가 공급되고 있음. 전기 코드는 유럽식 원형 Two-Pin 형으로 접지용 구멍 있는 것을 사용하고 있음.

주요 연락처

○ 국가번호 : 212, 지역번호 라바트 37, 카사블랑카 22 모로코 내에서

전화시 지역번호 앞에 0 을 추가, 외국에서 모로코로 전화시 212- 지역번호 - 전화번호 순

○ Rabat 지역

- 재 라바트한인회(회장 : 박재용) : 전화 037-753846

- 코레스모(대우 MAROC)( 전인수 사장) : 전화 037-565955/57

- 라바트 한인교회(담임목사 : 허영희) : 전화 068-18-3438

○ Casablanca 지역

- KOTRA (관장 : 홍성국) : 전화 022- 314232

- 삼성전자 (구자익 지점장) : 전화 022-335227

- LG전자 (이재영 법인장) : 전화 022-973232

○ Agadir 지역

- 아가딜 한인회(최규석 회장) : 전화 061-386918

- 아가딜 한인교회(신국렬 목사) : 전화 028- 848404

- 서울식당(손숙희) : 전화 028 - 827792

- 한국식당(이보연) : 전화 028 - 848570

○ Tantan 지역

- 최규석 기지장 : 전화 028-879306

- 제주식당(이강희) : 전화 028-878252

○ Dakhla 지역

- 이성식 사장 : 전화 028 - 898855

대사관 정보

○ 대 사 : 유정희

○ 주 소 : Ambassade de la Republique de Coree 41 Av. Mehdi

Ben Barka, Souissi, Rabat. Morocco

○ 전 화 : (212-37)75-1767, 6791, 6726, 1966

○ 팩 스 : (212-37)75-0189

○ E-MAIL : morocco@mofat.go.kr

○ 홈페이지 주소 : www.mofat.go.kr/morocco/

○ 근무시간 : 월-금, 09:00-18:00(12:00-14:00 중식시간) * 토, 일 휴무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모로코 (KINGDOM OF MOROCCO) 알기

지정학적 위치

○ 아프리카 북서단, 지중해 남서단(북위 23-36 도, 서경 13-17 도)

- 북쪽 : 지브랄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의 14Km 남쪽에 위치

- 남쪽 : 모리타니아와 접경

- 서쪽 : 대서양과 접경(해안선 3,500km)

- 동쪽 : 알제리와 접경

지형 특색

○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해발 4,000m의 아틀라스 산맥이 길게 뻗쳐 있고 남쪽으로는 사하라 사막이 알제리 국경에서부터 모리타니아 국경과 접한 대서양까지 연결

- 아틀라스 산맥 서쪽과 모로코 북부 및 중서부 대서양 연안지역에 전체국민의 70 % 이상이 거주

민족구성

○ 아랍인 60 %, 베르베르인 36 %, 유럽인, 유태인, 흑인등 4 %

- 베르베르족은 모로코지역에 기원전부터 정착해온 유목민족이며, 8세기 아랍족의 진출 이후 종교와 문화가 아랍화 됨.

- 아랍족은 주로 도시지역, 베르베르족은 주로 농촌 지방이나 아틀라스 산맥 인근 유목지대에 주로 거주

종교

○ 종교 : 이슬람교(수니파) 99.99 %, 기독교 및 유대교 0.01%

- 이슬람교가 국교이며, 국왕이 종교수반을 겸하고 있음

-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모로코인에 대한 타 종교 포교 행위는 금지되어 있음

언어

○ 공용어 : 아랍어, 베르베르어(Amazigh어)

- 표준 아랍어는 문어체(신문, 방송, 출판문)에서만 사용하며, 구어로는 모로코 방언을 주로 사용(표준 아랍어 문맹률은 약 50-60%임)

○ 상용어 : 불란서어(제 1 외국어)

- 국민학교 과정 이수자는 웬만한 불어 회화는 구사가능

약사

고대

○ 페니키아 및 카르타고 시대

- BC 1100년경부터 페니키아인들이 해안지대에 이주 시작, 내륙지방의 거주민인 베르베르족과 접촉 시작

- 한편, 튀니지 일대를 지배하던 카르타고인들이 아프리카 북부 해안선을 따라 탕제, 라바트 등지의 식민 항구도시 건설

- BC 196년 로마에 의한 카르타고 멸망이후 카르타고 난민들이 동 식민 항구도시로 유입

중세

○ 이슬람교 도래

- 680년 세우타 점령을 시작으로 이슬람교도들의 모로코 침입 시작

- 711년 경에 무어족에 의한 모로코 지배 확립

- 732년까지 베르베르족을 중심으로 모로코의 이슬람화

근대

○ 열강의 모로코 침공

- 유럽의 나폴레옹 전쟁 후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열강의 아프리카 진출 교두보로서 모로코 침공개시

- 국내 정정의 불안 및 열강의 침공에 대응한 고립 정책(대 유럽 통상금지 및 유럽영사관을 탕제로 추방)이 왕국의 쇠락 촉진

○ 프랑스는 훼즈협정을 통해 모로코의 국방, 외교, 국내 치안권을 장악하였고, 스페인은 유사한 협정을 통해 북부 해안지방과 남부지역 일부를 보호령화

○ 프랑스 및 스페인 보호령(1912-1956)

- 프랑스의 식민지 경영 정책에 따라 아틀라스 산악 지역에 대한 중앙정부의 확고한 통치권 확보

- 프랑스인들의 대규모 이민 및 불란서 식민 정부의 유화정책에 따라 프랑스 문화 보급 확대

- 한편, 스페인의 경우 북부 리프지역에서의 광물 탐사에 관심을 기울였으나, 남부지역에서는 단순한 지배자로서만 주둔하였을 뿐 식민지 개발에 무관심

현대

○ 대 프랑스 항쟁

- 1930년 라바트와 훼즈에 거주하는 프랑스 교육을 받은 모로코 엘리트가 중심이 되어 이슬람 민족주의 운동이 태동

- 프랑스는 분할 식민통치 방식으로 산악지대의 베르베르족에 대한 기독교 포교를 통해 도시지역의 이슬람교 아랍인들과 반목을 조장

○ 1927년 즉위한 Mohammed V 국왕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모로코의 독립 추구, 1953년 프랑스 식민 당국에 의해 강제 망명

○ 독립 모로코(1956- )

- 1955.11.18 Mohammed V 국왕은 해외 망명지에서 모로코의 일방적인 독립을 선언하였고, 1956년 프랑스와 스페인은 모로코의 독립인정

- 1956. 4. 22. 유엔 가입

○ 1961. 3. 3. Hassan II세 즉위

- 즉위 당시 모로코는 행정 수도인 라바트와 상업중심지인 카사블랑카를 제외한 거의 전 지역의 도로, 보건위생, 교육시설들이 매우 낙후되어 있었는 바, Hassan II세 국왕은 국가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전통적인 통치자로서의 국왕의 절대 권력은 계속 유지

- 1975.11.16 : 녹색대행진

(35만명이 서부사하라 사막 행진, 병합 촉진)

- 1979년 : 서부사하라 전역 장악(79.8.5. 모리타니는 폴리사리오, 알제리와 협정체결, 서부사하라 포기)

- 1992.9.14 : 새 헌법 채택

- 1996.9.13 : 제 4 차 헌법 개정(상. 하 양원 구성)

- 1999.7.23 : Hassan 2세 국왕 서거

○ 1999.7.30 현 Mohamed 6세 국왕 즉위

정치제도

국왕

○ 모로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왕국(Kingdom) 중의 하나로 서기 788년에 최초의 통일 왕조 수립 후 수차 왕조가 바뀌면서 왕국 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으며, 1660년부터 Alaouite 왕조가 현 모하메드 6 세 국왕까지 이어져 오고 있음.

○ 국왕은 종교 최고 지도자(Amir Al-Muminin), 국가 원수, 국가 통일의 상징 및 국가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이슬람과 국헌의 수호자(헌법 제19조)로 명시되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함.

○ 왕권은 국왕이 다른 왕자를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는 한 장자 상속(헌법 제20조)

행정부

○ 행정부는 의회 다수파 중 국왕에 의해 지명되는 수상(Prime Minister)과 수상에 의해 제청되어 국왕이 임명하는 각료(Ministers)로 구성되어 있음.

○ 수상은 국왕과 의회에 책임을 지며 법률을 집행하고 각 부처의 정책을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함.

사법부

○ 사법부는 독립을 유지하며, 법관은 국왕이 주재하는 최고 사법평의회의 추천에 의해 임명되고 있음.

- Communal and District Courts(지방법원) : 관할 구역 내 거주하는 개인의 재산권(금액 1,000 디람 이하)에 관한 심의를 담당

- Administrative Tribunals (행정법원)

- Tribunals of Original Jurisdiction(민사 1 심 법원) : 가족법, 상속, 계약, 노동분쟁, 민사 소송 등을 심의

- Courts of Appeal(상고법원)

- Supreme Court(대법원)

- Special Court of Justice(특별법원) : 지방 관리나 중앙 정부 공무원의 횡령 및 배임에 관한 재판을 전담

- High Court(고등법원) : 정부 공무원이 업무 수행 중 발생한 범죄나 위법행위에 심의

- The Standing Tribunal of the Royal Armed Forces(군사법원)

의회

○ 과거 단원제이던 의회는 제 4 차 헌법 개정(96.9.13)에 따라 상원(Chambre des Conseillers) 및 하원(Chambre des Representants)으로 구성된 양원제로 변경되었음.

하원은 임기 6년으로 직선에 의해 선출되며 정원 325석임. 하원 의장은 임기 3년이며, 각 위원회 의장단의 임기는 1년으로 정당 그룹별 의원 수에 비례하여 구성

○ 상원은 임기 9년으로 지역 선거인단 대표에 의해 총 의석(270석)의 3/5를 지역별로 선출하고, 나머지 2/5의석은 직능별 대표와 전국의 임금노동자 대표로 구성된 선거인단에 의해 선출함.

선거제도

○ 피선거권과 선거권은 공히 만 18세 이상의 모로코 국적자에게 주어짐

- 모로코는 195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 이후 국민투표, 의원 및 지방 선거 등 각종 선거를 치렀으며, 최초의 국민투표는 1962 년 12 월 7 일의 헌법제정을 위한 국민투표였음.

- 지난 1996년 9월 13일 국민투표를 통한 헌법개정을 통해 상/하 양원제를 채택하였음.

○ 최초의 지방선거는 1960년 5월에 있었고,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은 1963년 5월 최초로 치러졌고 매 5년마다 선거가 있음.

국가원수 겸 최고 통수권자 인적사항

○ 직 위 : 국왕 (Roi du Maroc)/ 입헌군주제

○ 성 명 : 모하메드 6세 (Mohamed VI)

○ 생년월일 : 1963.8.21

○ 약 력

- 1967-1981: 왕실교육을 통해 초, 중, 고등학교 과정 수료

- 1985: 라바트 소재 모하메드5세 대학교 졸업

- 1987: 모하메드 5세 대학교 정치학 석사

- 1993: 프랑스 니스-소피아 인터폴리스 대학교 법학박사

외교

외교정책기조

○ 모로코 대외정책의 기조는 비동맹 중립, 대 마그레브권 건설, 아랍권 단결 및 아프리카의 단결과 서부사하라(Western Sahara)의 영토 보전 및 통합임.

- 그간 이스라엘과의 특수 관계를 바탕으로 아랍권-이스라엘 간의 관계 개선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 왔음.

- 서구 유럽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프랑스 및 스페인이 중요한 동맹국인 한편 주요 교역 상대국의 위치를 차지

- 국제 관계 다변화 차원에서 중국 등 아시아 국가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음. 중국 및 인도와 기존 비동맹 외교에 바탕을 둔 친선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본과의 경제적 협력관계도 증진

- 대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 우리나라와는 기존 우호관계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음.

프랑스 및 미국 등 서구제국과의 전통적 유대관계 유지

○ 모로코는 지리적으로 지브랄타 해협을 사이로 유럽과 불과 14km 떨어져 있는 관계로 전통적, 역사적으로 유럽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져왔고, 정치, 경제, 외교적으로 유럽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프랑스로부터 44년간 식민통치를 받았으나, 독립 후 알제리가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한 것과는 달리, 서유럽 및 미국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우호관계를 지속해 오고 있음.

- EU는 2001년도 모로코 수출의 72.5%, 수입의 54%를 차지하고 있으며, 2000.3. EU와의 제휴협정 발효로 경제관계 집중화 현상 심화 예상

- 모로코는 EU 회원국 가입을 위해 1987년 가입신청을 한 바 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며, 단, 1996년 EU와의 협력협정(Association Agreement)을 체결(2000.3월 발효)하여 단계적으로 EU에 접근하고 있음.

- 또한 군사, 외교, 특히 중동평화협상 및 지역안보(서부사하라 문제 등) 측면에서 미국과 제 분야에서 긴밀한 우호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으며, 자유무역지대 설립을 협상 중

대아랍, 이슬람국가 관계 강화

○ 모로코는 아랍권 내 대표적인 온건 이슬람 국가로서, '관용'을 국가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으며, 기존 이스라엘과의 특수관계를 바탕으로 아랍권-이스라엘간의 관계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 옴.

- 선왕 Hassan 2세는 93.9.13 워싱턴 중동평화협정 성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바 있으며, 현재 모로코 국왕은 아랍연맹기구(OIC)의 예루살렘위원회(Al-Quds Committee) 위원장으로, 아랍국가들간 협의 및 관련 정책 추진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

○ 마그레브 아랍연합(UMA) 및 아랍연맹(Arab League)을 통한 역내 국가, 아랍권 및 회교권 전체 단결 공고화를 도모하고 있으며, 89. 2월 UMA의 형성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

- UMA는 모로코-알제리간 서부사하라 문제를 둘러싼 갈등, 서방의 대리비아 제재 등으로 그간 별다른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였으나, 99.4월 알제리 신임 대통령 및 99.7월 Mohamed 6세 국왕 취임, 리비아 제재의 부분적 해제와 더불어 관계 실무회의 개최 등을 통해 새로운 전기 마련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

○ 모로코는 2001. 5월 소위 Agadir 선언을 통해 모로코, 튀니지, 이집트, 요르단 등 4국간 자유무역지대(Arab-Mediterranean FTA) 설립 추진을 주도하고 있으며, 향후 이를 여타 아랍국가 들에게 개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음.

대아프리카 관계

○ 모로코는 아프리카 국가로서의 일체성을 부각, 아프리카 제국들에 대한 지원 및 우호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01년 모로코 국영통신(Maroc Telecom)의 모리타니아 국영통신 51% 지분 인수, 세네갈 국영항공 운영 참여 등 경제진출에도 역점을 두고 있음.

- 모로코는 폴리사리오의 OAU 가입에 항의, 1984년 OAU를 탈퇴하였으며, 현재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서부사하라 이남 국가들과 협조하여 폴리사리오의 OAU 축출을 도모하고 있음.

Mohamed 6세 국왕은 2002.2 모로코에서 시에라레온, 라이베리아, 기네 등 Manon강 유역 3국간 정상회담을 주선, 이들 국가들간의 국경선 분쟁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등 역내 평화유지에 적극 기여

대아시아 관계

○ 모로코는 외교관계 다변화 차원에서 최근 들어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를 적극 도모하고 있으며, 기존 제3세계 비동맹외교에 바탕을 둔 중국, 인도 등과의 친선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일본, 한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음.

- Mohamed 6세 국왕 아시아 방문 : 2001.2. 인도, 2002.2. 중국, 태국, 2003.3. 말레이시아

- 모로코 총리 아시아 방문 : 1998.12 중국, 2000.2. 태국, 인도, 2001.4 파키스탄, 2001.11 말레이시아

- 모로코 방문 아시아 주요인사 : 1999.10 중국 강택민주석, 2002.4 말레이시아 Mahathir 총리, 2002.3 한국 이만섭 국회의장, 2003.7 Musharraf 파키스탄 대통령

서부사하라 문제

○ 서부사하문제는 모로코 최대의 외교, 국방 과제로서, 모로코는 1975년 스페인이 서부사하라에 대한 식민지 점유권 포기 이후 Hassan 2세의 녹색대행진(green march)을 통해 동 지역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편입, 이를 기정사실화 하는 대외정책을 추진

- 이에 대해 당초 서부사하라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운동을 추진하던 폴리사리오전선(Polisario Front)은 76.2월 알제리 Tindouf에 거점을 정하고, 망명 정부인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RASD 또는 Polisario Front)의 수립을 선포, 알제리의 지원하에 서부사하라 독립을 위한 대모로코 게릴라 무력항쟁을 개시

- 동.서 냉전체제하에서 RASD는 세계 60여개 국으로부터 승인을 획득하였으나, 모로코는 지속적인 외교 노력을 전개,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이 동 승인을 철회토록 유도하고 RASD를 아프리카 단결기구(OAU)로부터 축출을 기도하였음.

○ 모로코가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가운데 현 평화유지 상황이 지속되는 한, 서부사하라의 모로코 편입 및 동화과정은 더욱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상당기간 유엔의 평화유지 기능이 계속되는 가운데, 모로코가 서부사하라를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동화시켜 나가느냐에 따라 서부사하라 장래가 정해질 전망임.

사회

인구

○ 인구(2004. 9월 모로코 정부 인구센서스 결과)

- 총 인구 : 2,989만명

- 인구증가율 : 1.4%(80년대 2.5%에서 2001년 이후 크게 감소)

- 평균수명 : 69세(남 : 67, 여 : 72)

- 인구분포 : 도시 55.1%, 농촌 44.9% (도시 인구증가율 변화 추이 : 1971년 35%, 1982년 42%, 1994년 51.4%)

- 연령별 인구 분포 : (0-14세) 34.39%, (15-64세) 60.93%, (65세 이상) 4.68%

- 평균자녀 : 3.05명/성인여자(2001년 추정)

교육

○ 주요 교육 시책 : 일반화, 지역간 격차 축소, 모로코화 및 아랍화

○ 정부 교육 정책

- 정부 총예산의 26.3%를 교육에 투입

- 지역간 격차 축소 및 교육 기회 확대 정책 추진

- 1963년부터 7-13세 남녀 아동에 대한 기초 의무교육 실시

○ 취학률 : 도시지역 81%, 농촌지역 67%, 여학생 취학률 : 71%

○ 교육제도는 우리 나라 제도와 비슷함.

- 초등학교(Ecole Primaire) 6년, 중학교(College) 3년, 고등학교(Lycee) 3년, 대학교(Universite, Ecole Special 혹은 Ecole Superieur) 4년, 대학원 및 박사과정(Doctorat)

- 각 교육과정별로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립학교와 민간이 운영하는 사립학교가 있음(유아원은 거의 전부 사립임). 공립학교는 초등부터 대학원 및 박사과정까지 무료이나, 사립은 주재국 생활수준에 비하여 학비가 높은 편임.

- 각 과정별 졸업은 비교적 엄격한 심사에 의해 결정되며 명문학교일수록 졸업심사가 까다로운 편임.

- 모로코 정부는 대학 졸업자수의 점진적인 증가에 비해 일자리가 정체되어 있는 고학력 실업문제를 정책적인 측면에서 해결코자 노력하고 있음.

기후

○ 기후 : 크게 우기와 건기로 구분되며, 지역별로 특성이 있음.

- 우기는 11월-4월로 온난 다습(평균 15도), 건기는 5월-10월로 고온 건조(평균 28도)

- 가장 더운달은 8월(평균 최저, 최고기온 18-28도), 가장 추운달은 1월(평균 최저, 최고기온 8-17도)

- 가장 건조한 달은 7월(평균 강우량 1mm), 습한 달은 12월(평균 강우량 86mm)

- 북부지역 : 지중해성 기후(겨울-온난다습, 여름-고온건조)

- 중부지역 : 대륙성 기후(겨울-한랭, 여름-서부사하라 사막의 열풍으로 고온건조)

- 남부지역 : 사막성 기후로 고온건조, 주야간 기온차 극심

비즈니스 에티켓

○ 문화 상대주의적인 입장에서 모로코의 문화, 풍속, 관습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자세에서 대화를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모로코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특히 모로코 역사 속의 세계적 인물, 예컨대 대여행가로서 이태리의 마르코 폴로, 중국의 정화 등과 비견되는 이븐 바투타(IBN BATTUTA, 1304-1368)를 화제로 삼는 것도 바람직함.

○ 식사 전에 ‘비쓰밀라(신의 이름으로)’를 중얼거리거나 동서양의 음식이나 모로코인이 즐겨 먹는 양고기와 꾸스꾸스(COUSCOUS)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한 방법이고, 이슬람에서 금하는 음식물인 돼지고기 등을 식사 화제로 삼지 않아야 함.

○ 극히 한정된 몇 마디의 아랍어라도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 수 있으며, '쌀람 알라이쿰'(안녕하세요)에 대한 답변은 '알라이쿰 앗쌀람' (당신께서도 안녕하신지요?)임. 그외 함두릴라(모든 것이 신의 뜻대로 잘 되고 있다), 슈크란(감사합니다) 등이 있음.

○ 친한 사이인 경우 남녀구별 없이 양 볼을 번갈아 가며 살짝 비비고, 그렇지 않으면 악수를 나누거나 말을 하면서 오른손이나 왼손을 가슴에 가볍게 얹어 상대에 대한 경의를 표시함. 모로코인들은 서로 안부 및 가족 안부 등도 잊지 않고 물어보며, 한편 모로코 전통옷을 입은 여성과는 신체접촉을 피해야 함.

문화적 특성

○ 모로코 시장은 대다수 품목이 전적으로 가격에 의해 구매가 좌우되는 철저한 가격시장으로 국내 업체의 오퍼 가격에 네고의 여지가 없다고 바이어가 판단하면 설사 한국산 수입에 관심이 많더라도 회신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결정권한이 사장에 집중되어 있어 사장이 부재 중이면 "예스"나 "노"라는 확답을 얻지 못함. 현지 중소 바이어들은 영어에 약하거나 아예 불어밖에 몰라 주로 불어를 사용

○ "인샬라"(신이 원한다면)라는 말은 본래 전지전능하신 신 앞에서의 겸허함에서 연유된 것인데, 종종 책임회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있는 만큼 상담 시에 잘 새겨들어야 함. 모로코인들은 스트레스 받기를 싫어하여 예스나 노에 대한 결정을 빨리 내리지 않는다고 다그쳐 봐야 일만 그르치며, 우리가 "빨리 빨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듯이 모로코인들은 "슈이아 슈이아"(천천히 천천히)라는 말을 즐겨 씀.

○ 모로코는 이슬람국가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정통 이슬람권과는 달리 상당히 개방적인 분위기를 보여 금요일을 공휴일로 하는 대부분의 이슬람권과는 달리 유럽의 영향으로 일요일이 공휴일이며, 라마단 등 종교 축제 기간을 제외하고는 음주가 가능하고, 여성의 경우 차도르를 착용하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가 어려운 실정임. 단, 이슬람력에 따른 종교행사인 금요일 오후 예배, 라마단(금식기간)등은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음.

라마단 기간은 이슬람 최대 종교행사의 하나로 이슬람력에 따라 매년 10 일 정도 앞당겨지며, 약 1개월 동안 계속되는 라마단 금식 기간 중에는 비즈니스 활동이 거의 중단상태이기 때문에 동 기간 중에는 가능한 한 이슬람권 비지니스 출장을 삼가하는 것이 바람직함. 라마단 기간 중 해가 떠있는 동안은 음식물 및 담배도 일체 금하며 해가 지고 나서야 예배를 보고 음식을 섭취함. 이 기간 중 근무시간은 대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점심시간 없이 연속근무를 하여 음식점은 모두 문을 닫아 점심식사를 하기가 곤란하나, 외국인을 위해 일부 호텔 레스토랑은 영업함. 흔히 3 금이라고 말하는 국왕, 체제 및 종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며 현지 관습을 존중해야 함.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외교관계

○ 1962년 수교 이후 한-모로코 양국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정치, 경제, 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협력이 꾸준히 심화, 확대되고 있고, 특히 양국은 민주주의, 관용, 무역자유화 등의 공동가치를 바탕으로 UN, WTO 등 국제기구에서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

○ 모로코는 남, 북한 수교국으로서 표면적으로는 중립정책을 표방하나, 실리 차원에서 우리와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으며, 대북정책에 있어 우리정부의 정책을 적극 지원하고 있음.

- 모로코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에 대해 정부명의의 환영성명을 발표하는 등 우리정부의 대북정책을 적극 지지해 옴.

주요협정 체결 현황

○ 경제. 기술협력협정(1976.5)

○ 무역협정(1976.5)

○ 문화. 과학협력협정(1977, 1979)

○ 체육협력의정서(1990.5)

○ 사증면제협정(1993.8)

○ 한. 모로코 청소년. 체육교류약정 체결(90.5)

○ 이중과세 방지협정(2000.6)

○ 투자보장협정(2001.5)

○ 해외봉사단 교환각서(2001.12)

○ 항공협정(2003.4)

○ 관광협정(2006.6)

○ 기타 원자력협정, 태권도사범 파견 교환각서, EDCF 기본협정, 해운협정 등 체결 추진중

교역현황

○ 모로코는 한국의 제59위 수출국, 제41위 수입국(2008. 8월 현재)

년도

수출

수입

수지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금액

2004

162

26.5

41

17.7

121

2005

208

28.1

56

35.5

152

2006

223

7.1

87

57.2

135

2007

390

75.2

105

20.7

285

2008. 1-8월

129

72.6

129

72.6

138

자료원:kita.net (단위 : 백만불, %)

주요 수출입품목

<對모로코 주요 수출품목>

순위

품목명

2007

2008. 1-8월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1

자동차

173

95.7

100

-3.4

2

무선통신기기

94

201.1

44

-44.2

3

공기조절기및냉난방기

4

429.7

25

2,313.0

4

영상기기

15

-5.5

15

51.9

5

인조섬유

6

60.8

8

215.6

6

정밀화학연료

9

219.0

8

114.6

7

합성수지

12

-39.9

7

-1.5

8

가정용회로기기

8

-21.3

6

-0.5

9

건설광산기계

3

-21.7

5

93.9

10

철강재용기및체인

1

437.2

5

427.5

<對모로코 주요 수입품목>

순위

품목명

2007

2008. 1-8월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1

기타비금속광물

31

2227.5

42

91.6

2

석유제품

22

-22.4

27

23.2

3

합금철선철및고철

0

-

20

-

4

반도체

26

34.1

14

-12.3

5

의류

4

20.6

6

91.9

6

동제품

7

264.2

6

196.0

7

알루미늄

5

28.3

4

0.7

8

해조류

2

-71.9

2

185.7

9

가죽

2

113.1

2

77.0

10

모피

1

-58.1

1

138.2

자료원 : kita.net, MTI 3단위 (단위:백만불, %)

우리 기업의 진출 현황 (06. 12월 현재)

○ 2006년말 현재 우리나라의 대모로코 직접투자 누계액은 약 58,202 천불이며 투자건수는 총 18건이지만, 2004년 대우건설이 Rabat 힐튼호텔을 매각, 철수한 이후 현재 남아 있는 투자건은 LG 전자가 유일함. 한국 가전업체들의 모로코 시장 점유율이 늘어나면서 모로코 정부로부터 한국기업의 모로코 투자 요청이 거세지고 있으나, 현지 투자여건의 미성숙으로 인해 아직 동 분야에서 투자를 고려중인 업체는 없으며, 최근 건설부문 및 발전소 부문에서 한국업체의 관심이 높아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

○ 모로코-미국 간 자유무역협정 체결, 모로코-터키간 FTA, EU-모로코간의 관세인하협정에 따른 주요경쟁품목의 관세인하 등으로 한국의 수출에 불리한 여건이 조성되고 있음. 모로코의 경제성장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유럽 및 북아프리카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로서의 모로코에 대한 투자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유럽국가들도 모로코를 주요 생산거점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발맞추어 모로코는 북단의 Tanger 지역에 거대한 자유무역지대를 조성하고, 이를 현재 개발중인 신항만과 연계하고 있어 한국기업의 대모로코 투자진출은 이제 더 이상 지체하여서는 안 될 것으로 보임.

○ 대 모로코 진출업체

상호

현지법인명

업종

신고일자

투자액

LG전자

LG Electronics

Morocco SARL

도,소매업

(가전제품)

2003.4.5

2,500천불

○ 지/상사 현황

업체명

진출년도

파견인원

비고

대우전자

1996

1명(김명식 차장)

판매법인

삼성전자

1996

2명(김상현 차장)

지사

LG전자

2000

6명(이재영 부장)

판매법인

※ 교민 현황

- 교민 250 명 (KOICA 봉사단 20 여명 2001.12월부터 정식활동)

모로코인사 아국 방문

04. 5 Baddou 고용 사회연대담당 국무상 및 Rhozali 교육 청소년

담당 국무상(세계여성지도자회의)

05. 5 Talbi El Alami 경제총괄부 장관, Ahmed El Midaoui 감사원장

(제6차 세계포럼)

06. 4 Mechahouri 대외교역부장관(한.아프리카 경제협력 세미나)

06. 12 Driss Sentissi 하원 제1부의장

07. 7 Karima Benyaich 외교협력부 문화과학협력국장

(제3차 한ㆍ모로코 문화공동위)

07. 8 Latifa El Abida 교육부 초ㆍ중등교육 담당 차관, Latifa Tricha

고등교육담당 차관

07. 12 Ahmed Lakhrif 외교협력부 국무장관(제5차 한ㆍ중동 협력포럼)

08. 5 Ahmed Lakhrif 외교협력부 국무장관(한-아랍 소사이어티 창설회의)

아국인사 모로코 방문

04. 3 대통령특사(서정화 국회통외통위원장)

05. 1 박희태 국회부의장 의회 대표단

05. 11 전윤철 감사원장

06. 5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06. 5 대통령특사(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06. 11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특위 시찰단(이원영 의원 등)

07. 2 국회 대표단(이경재 의원 등)

07. 3 한ㆍ모로코 의원친선협회 대표단

(손봉숙, 박희태, 노현송, 이광철 의원)

07. 8 국회 여성가족위 대표단(문희 위원장, 유승희 의원)

07. 10 김태랑 국회 사무총장

07. 10 국정감사단(이화영, 장영달, 한명숙, 김광원, 남경필 의원)

08. 1 국회 예산결산특별위 대표단(원혜영 위원장, 엄호성 의원)

08. 4 신장범 KOICA 총재

08. 4 국회 통외통위 대표단(김원웅 위원장, 배기선, 최성 의원)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모로코 (KINGDOM OF MOROCCO) 개황

개관

○ 국명 : 모로코 (KINGDOM OF MOROCCO)

○ 수도 : 라바트 (RABAT, 인구 : 70만 명)

○ 면 적 : 710,850㎢ (한반도의 약 3.5배)

○ 위 치 : 아프리카 북서단, 지중해 남서단 (북위23-36도, 서경13-17도)

○ 인 구 : 30.4백만 명 (2006)

- 15세 이상 경제활동 가능인구 : 11백만 명

○ 주요도시 : 카사블랑카, 마라케시, 아가딜, 탕제, 페스

○ 민 족 : 아랍계 60%, 베르베르족 36%, 소수의 흑인 및 유태인

○ 종 교 : 이슬람교 (대부분이 Sunni파)

○ 언 어 : 아랍어(공용어), 베르베르어 및 프랑스어 통용

○ 정부형태 : 입헌군주제 (국시 : 신, 조국, 국왕)

○ 국가원수 : Mohammed Ⅵ 국왕 (1999년 즉위)

○ 의 회 : 양원제 (하원 325석, 상원 270석)

주요정당 : 헌정연합당 (UC), 독립국민연합당 (RNI), 국민운동당 (MP)

○ 국제기구가입 : UN, ILO, IMF, WTO, AMU, 아랍연맹, AfDB, IBRD등

○ 독립기념일: 3월 2일 (1956. 3. 2. 프랑스로부터 독립)

○ 화폐단위 : 디람(Dirham/DH) (2008. 9월 현재 US$ 1 = 7.78633디람)

○ 산업구조 : 서비스업 57.2%, 제조업 17.6%, 농수산업 12.4%

○ 주요수출품 : 중간재, 소비재, 섬유, 전기부품

○ 주요수입품 : 중간재, 자본재, 식료품, 기계

○ 주요부존자원 : 인광석(세계 매장량의 2/3), 석탄, 철광석

○ 경제적 강점 : 경공업 발달, 풍부한 노동력, 지리적 요충지

○ 경제적 약점 : 외채 과중, 국방비부담 과중

○ 1인당 국민소득 :$ 4,100 (2007)

○ 국민총생산 : $ 734억 (2007)

○ 표 준 시 : GMT (우리나라와 9시간 차)

○ 기 후 : 크게 우기(11-4월)와 건기(5-10월)로 구분되며 지역차

- 북부지역 : 지중해성 기후(겨울-온난다습, 여름-고온건조)

- 중부지역 : 대륙성 기후(겨울-한랭, 여름-고온건조)

- 남부지역 : 사막성 기후로 고온건조, 주야간 기온차 극심

경제개황 및 주요지표

경제 특성 및 현황

○ 모로코는 석유부존자원이 없어 1인당 국민소득이 2,300불 선에 머물고 있지만 3천만의 인구를 보유한 잠재력 있는 소비 시장임. 연간 수입 규모는 150억불을 웃돌고 있어 아프리카대륙에서 남아공, 이집트, 나이지리아에 이어 4 위의 수입규모를 보유하고 있음.

○ 모로코 경제의 특징은 총GDP의 15-20%, 전체 노동인구의 약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농업부문의 성과가 경제 성장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음.

○ 제조업 등 비농업 부문은 대부분 완만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바, 이는 경제의 효율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공기업 민영화, 경제 개방가속화 및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데 노력한 결과로 평가되고 있음.

2007년도 모로코 경제 실적은 비농업부문은 정부의 공공부문 투자확대와 민간부문의 부동산 건설 수요와 지속적 산업투자 등 공공 및 민간부문 투자가 견인한 강한 국내수요에 힘입어 6.0%의 견실한 성장세를 보였으나, 농업부문이 기후조건 불량으로 인한 곡물생산 부실로 -21.2% 성장을 보임에 따라 전체 GDP 실질 성장률이 2.2%에 그침.

주요경제지표 및 통계

○ 주요경제지표

구분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GDP(억 달러)

498

564

590

652

736

892

1인당 GDP(달러)

1,688

1,890

1,956

2,149

2,368

2,831

경제성장률(%)

6.1

5.2

2.4

8.0

2.5

5.1

재정수지/GDP(%)

-3.2

-3.2

-3.8

-1.8

-1.4

-3.2

소비자물가상승률(%)

1.2

1.5

1.0

3.3

2.0

3.9

경상수지(백만 달러)

854

922

1,018

1,916

-338

-3,030

수출(백만 달러)

8,764

9,922

10,690

11,916

12,750

13,923

수입(백만 달러)

14,197

16,408

18,894

21,332

27,001

32,950

(자료원 : 한국수출입은행)

○ 국내총생산 (GDP)

- 농업을 제외한 부문에서는 대부분 전년대비 상당한 성장세를 보임.

- 과일류나 채소류의 생산 및 수출이 증가하여 곡물 부분의 손실을 크게 상쇄

- 전기 부문에서는 기업활동의 확대와 일반 가정의 소득수준 향상으로 인해 전년동기 대비 8.9%의 전기소비량 증가

○ 소비자물가지수

- 2007년 중 소비자 물가는 2.5% 인상으로 안정세를 보임. 이는 디람화의 대달러 외환율 강세로 인해 저가로 곡물을 수입하였고, 정부가 식품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정책과 주택자금 대출 증대 등 정책을 집행한 것에 기인함.

제조업

37,9%

서비스업

47.7%

농수산업

14.5%

○ 산업구조 (2007)

○ 무역수지

- 2007년 모로코의 교역은 곡물생산 부실로 인한 식량수입 급증과 국제원유가식량가 급등 및 투자확대와 민간 수요 증가로 인한 산업확장으로 수입이 22% 증가한 반면 수출은 7% 증가에 그쳐 무역수지 적자가 GDP의 22.7%에 상당하는 167억불에 달하여 국내경제 성장에 부정적 역할을 하였음.

○ 관광수입

- 정부의 관광진흥 정책에 힘입어 2007. 1-8월 중 530만명의 관광객(이중 48%는 해외거주 모로코인)이 입국하여 전년대비 11.9%증가

- 2007.1-9월 중 관광수입은 450억디람 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하였음.

경제정책

경제정책

○ 2007. 10월 구성된 모로코 신정부는 향후 5년간 매년 6%의 GDP 실질성장, 일자리 25만개 창출, 주택 15만호 건설 목표를 발표하였으나, 모로코 경제는 기후조건에 따라 농업생산량이 크게 변동하기 때문에 GDP 성장률 목표 달성은 쉽지 않음.

○ 농업부분이 통상 수준으로 복귀할 경우, GDP실질 성장률은 2008년 5.4%, 2009년 5.6%로 전망되며(2002-06년 평균 성장률 4.5%), 비농업부문은 EU의 수요증가로 인해 전반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됨.

○ 정부는 투자유인과 실직․빈곤 감소 정책을 의지적으로 추진하고, 사용자 권리강화와 노동법 개혁 등을 통해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인하여 대규모 고용증진을 기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됨. 또한 정부는 공공행정의 효율성 개선과 친기업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할 것임.

○ 2008년도 예산 정부안에 의하면, GDP 성장률 6.8%, 물가인상률 2%, 재정적자액을 230억 디람(GDP의 3.5%)으로 상정하고, INDH프로젝트 추진 등에 따른 사회복지 비용을 17.5% 증액(세출의 47%), 안보 비용 29.5%, 보조금 25%, 교육지출 9.2%, 보건지출 10.4%로 각 증액할 예정임.

○ 주택 12만호 건설, 인프라 비용을 33% 증액(76억 디람) 외에 마라케시-아가딜 구간 및 페즈-우즈다 구간 고속도로 연결, 타우리트-나도르 구간(117km) 및 탕제-Med항구와 국가 철도망 연결 등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각종 인프라에 대한 국가적 투자 지속

○ 현재 맹목적인 부동산 투자가 증가함에 따라 모로코 정부에서는 최근 부동산 구입시 구입목적을 신고하고, 그 목적 이외의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작성해 시행중임.

- 정부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 제조업의 대외 경쟁력 하락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데, 실제로 카사블랑카의 경우 다른 도시에 비해 물가가 훨씬 비싼 것으로 나타났으며, 외국기업이나 모로코 대기업을 위주로 종업원의 임금이 큰 폭으로 상승하는 경향

- 모로코는 전반적으로 시멘트, 콘크리트, 철강 등의 자재 부족상태에 있어 생산시설에 계속적인 투자를 유인하고 있음.

주요산업

농업

농업은 모로코 경제발전의 전통적 기반으로 전체 노동 인구의 약 44% 이상(여성 노동인력의 60%)을 점하고 있으며, GDP의 15-20%내외를 차지하고 있음.

- 천수답이 대부분인 관계로 기후 여건(가뭄, 강수량)에 따라 작황의 기복이 심함.

- 천수답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이 전체 농산물 수출의 75%, 농업인구의 1/3, 그리고 농업생산 부가가치의 45%를 차지함.

관개농지에서 생산되는 감귤류, 토마토, 감자, 채소 및 포도 등은 주로 유럽으로 수출되고, 사탕수수, 올리브와 올리브 오일은 수출 및 국내 소비함. EU 시장에서 그리스, 터키 등과 경쟁을 위해 재배작물의 다변화 등을 추구하고 있음.

농업분야 생산성 향상, EU 및 미국과의 FTA에 따른 대외개방 경제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국내 및 외국인을 대상으로 국영농지의 40년 장기임대 정책을 통해 농업부문에도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

수산업

○ 모로코는 1.1백만㎢의 수역과 3,500km의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고, 850여종의 각종 수산물을 생산, 수출하고 있는 아프리카, 아랍 지역 최대의 수산물 생산, 수출국임.

○ 수산업은 약 40만명을 직접 또는 간접고용하고 있으며, GDP의 3%를 차지하고 있는 모로코의 주력 산업으로, 지난 5년간 년 평균 약 6억불 이상의 수출고를 올리고 있어 모로코 총수출의 6%를 차지하고 있음.

- 수산부문 생산량은 2001년 111만톤(약 78억디람 상당)으로 최대치를 기록하였으나 미흡한 어업부문의 현대화 및 남획으로 계속 감소세임. 정부는 항구, 선박에 대한 투자를 증대하여 2007년까지 20억 달러의 수산물 수출을 계획

○ 모로코는 현재 350여척의 원양 조업어선, 1,800여척의 연안 어선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가 전략사업으로 항구건설, 어선 현대화 등 수산업 발전과 동 부문에의 FDI 유치를 위해 적극 노력중임.

제조업

○ 제조업은 모로코 GDP의 약 18%, 노동력의 약 13%를 차지하고 있으며, 경제성장 촉진 및 고용 창출을 위하여 외국인의 제조업 투자유치를 위한 제반 개방정책을 추진 중에 있음.

1980년대 초반까지는 통조림 가공, 제분, 제당 등 식품산업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이후 인광석 가공을 중심으로 한 화학 산업과 섬유, 의류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수출과 고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

○ 제조업 중에서는 의류, 직물, 피혁, 식품가공, 화학 부문이 주력 산업이며, 최근에는 전기, 전자산업이 년 4-5% 성장세를 보이고 있음.

- 섬유산업은 중국, 인도 등 아시아산 제품과의 경쟁, 2005.1월 다자간 섬유협정 상의 쿼터제 폐지 등으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음 미국과의 FTA 발효는 모로코 섬유산업에 숨통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며, 스페인 Tavex 섬유회사는 미국시장을 겨냥 Settat에 투자하고 있음.

- 2005년 현재 섬유산업은 전체 제조업 고용의 40%, 총 산업생산의 22%, 제조업 수출의 42%를 차지

광업

모로코는 세계 인광석 매장량의 3/4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제 3위의 인광석 생산국이자 최대 수출국으로 모로코 총 수출의 18% 이상을 차지, 최대의 단일 수출품목이며, 외화획득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

인광석이 모로코 전체 광업생산량의 95%를 차지하고 있으나, 은, 아연, 동, 코발트 등도 생산되고 있으며, 모로코 최대 민간기업인 ONA 계열의 Managem사가 국내에 9개의 광산을 운영하고 있음.

모로코정부는 1998년 10년간 2억달러 규모의 광물자원부존조사 계획을 수립, 외국인 투자 유치를 도모하고 있는 바, 모로코 국토의 80% 이상이 아직 충분히 탐사되지 않은 상태로 아틀라스 지역에 금, 은, 코발트 등이 다량 부존되어 있을 것으로 알려짐.

- 1998년 캐나다 및 아일랜드 회사와 국영 광물자원조사청(BRPM)간 광물탐사 합작협정 체결

시장환경 및 진출방안

모로코의 시장환경

○ 모로코는 구 식민 종주국 프랑스를 비롯해 스페인, 사우디(원유), 미국(곡물), 이태리, 독일 등 6 개국으로부터 총수입의 60% 이상을 공급받고 있음. 특히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등은 양국 정부간의 경협을 배경으로 USANCE 결제 조건 수용, 단기 인도기간, 신속한 A/S 등을 장점으로 일부 특정분야를 제외한 수입시장을 장악하고 있음.

○ 자본재로부터 주류 및 식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상품이 수입되고 있는 상황으로, 가장 개방된 시장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으나 수입관세가 높아 가격경쟁력이 현지진출에 최대의 관건임. 수입의 가장 큰 비중은 원유를 비롯하여 화학제품, 밀, 설탕, 원목, 종이류, 강관, 자동차 등이 차지하고 있는데, 밀은 미국에서 에너지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저가로 경공업제품은 중국 등 후발개도국에서, 자동차 및 자본재는 유럽과 일본에서 주로 수입

○ 주 상권은 대서양 연안을 낀 "카사블랑카-라바트(수도)-케니트라"이며, 카사블랑카 권이 약 70%, 라바트-케니트라권이 약 20%, 나머지 지역이 약 10%를 점유하고 있음. 카사블랑카 상권은 "DERB OMAR" 지역에 80%가 몰려 있으며, 현지 수입 상품의 유통 단계를 보면(수입상-도매상-소매상), (도매상-수입상-소매상)단계나 수입 딜러의 직접판매형태가 일반적임.

○ 모로코 정부가 지속적으로 밀수 척결에 나서고 있으나 주요지역마다 밀수품유통의 근거지가 있어 유통구조가 왜곡되어 있음. 모로코 북부 스페인령(세우타, 메릴라 등)을 통한 밀수품 유입으로 국내 제조업체의 생산활동 위축 및 외국투자가들의 투자기피를 초래하여, 지하경제가 총 GDP의 50%를 차지함. 단기적 근절에 어려움이 있으나 모-EU간 자유무역협정에 의거 2012년까지 단계적 관세인하로 밀수감소를 기대하고 있음.

○ 빈부격차가 점점 심화되고 있어 부유층은 고급브랜드, 저소득층은 저가품을 선호하고 있으며 중국이 저가의 경공업제품을 석권, 한국의 경공업제품 진출입지가 크게 축소되고 있는 상태임. 추후 소득 수준이 꾸준한 상승을 이룰 경우 중산층 증가로 이어져 중-고가의 한국 가전제품 및 자동차 판매 증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됨.

진출방안

○ 우리의 주요수출품목인 섬유직물, 전자전기 및 자동차부품 등 중소기업형 제품의 경우 5만불 미만의 소량수입이 보통인데, 이는 제품을 현지시장에 테스트해 검증을 받아야 하는 특성과 자금 회전상의 문제 때문임. 현지 바이어들은 한국산 품질을 인정하고 있지만 오퍼 가격이 유럽의 주요 공급국인 프랑스, 독일, 이태리산에 비해 평균 15%- 20% 낮아야 수입할 수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임.

○ 모로코에서 한국상품의 이미지가 양호 한 편이나 중소기업제품의 경우 중국제의 저가격에 밀려 어려움이 있음. 현재 대체로 수입 유통되는 품목들인 저가소비재류는 중국산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고가품일 경우 유럽, 일본 등의 제품 선호도가 높으나 가전제품, 핸드폰, 위성수신기, 직물 등은 한국 제품의 인지도가 높아, 국내 제조 시설이 있는 회사일 경우 모로코 현지 판매시스템을 갖출 경우 시장점유율에서 유리할 수 있음.

○ 국토 면적과 인구에 비해 구매력 부족으로 인한 내수시장이 제한되어 있어 시장성 있는 품목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음. 이는 구매력 있는 중산층이 엷고 산업 설비재와 고급소비재는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유명브랜드가 수입되어 경쟁이 치열하며 일반 공산품은 아직도 밀수가 보편화 되고 있어 이들 품목과의 경쟁도 염두에 두어야 함.

수출유망분야

○ 산업기계류 제품

- 유럽과의 교역비중이 매우 높은 모로코 경제특성상 유럽산 대비 한국산 기계류의 품질 및 가격경쟁력은 우수함.

- 섬유, 포장, 식품 기계류 중심으로 한국산 기계류 선호 가능

- 주요 수출 경쟁국: 유럽, 대만, 중국, 인도 등

○ 무선통신기기

- 모로코내 핸드폰 수요가 포화상태에 있고 소득의 증가에 따른 교체수요도 활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다기능 신상품 위주로 판매 호조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

- 주요 수출 경쟁국: 핀랜드, 독일(대만), 영국 등

○ 자동차

- 유로화 강세로 유럽차 대비 상대적 가격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모로코는 자국내 자동차 조립생산 수출국가이므로 관세경쟁력도 있음.

- 기아, 현대 자동차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4륜구동 및 소형승용차를 중심으로 한 모로코내 수요 증가로 우리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8%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

- 한편, 미니버스 등 노후차량의 교체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

- 주요 수출 경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태리, 미국 등

가전제품

- 모로코내 한국 가전제품 즉, LG, 삼성, 대우제품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와 소비자 선호도가 1위인 점을 감안할 때, 완만한 경제성장 예상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수요증가 예상

- 그러나 일부 가전제품(세탁기, 냉장고 등)의 경우, 유럽산 저가 관세혜택 제품과의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고율의 관세를 부담하는 우리제품의 불리한 측면도 다소 있음.

- 주요 수출 경쟁국: 스페인, 프랑스, 네델란드, 독일, 중국, 대만 등

자동차 부품

- 한국산 자동차의 판매 증가 및 모로코내 노후 차량의 증가로 자동차 부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

- 주요 수출 경쟁국: 중국, 대만, 스페인 등

○ 기계류: 절삭공구, 유압파쇄기 등

- 건축경기와 사회간접자본 투자 확대에 따른 건설공사 증가 및 플라스틱 사출, 포장, 섬유기계분야 수요 증가

- 기존 수출국: 유럽, 중국 등

○ 보안장비

- 사무실, 상가중심으로 보안시설 및 장비 확대 추세

- 기존 수출국: 독일, 대만, 중국 등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출입국 심사 및 통관

○ 입국심사

- 기내에서 출입국 신고서 작성

- 입국심사대에서 여권 제출

- 여권 심사 후 출구 밖에서 수하물 확인

- 흰색 분필이 칠해진 것 : 세관검사대상 제외

○ 세관신고

- 현금 2,000달러 이상 : 외환신고 관련증빙서 수령 후 출국심사시 휴대

○ 출국심사

- 보안체크 및 수속 창구의 불충분성 : 미리 수속준비 필요

- 출발시간 90분 전에 체크인 수속 창구 마감하는 시스템

○ 출입국 절차 및 유의사항

- 휴대품 검색 : 비교적 수월한 편 (단, 과도한 샘플은 과세대상)

- 예방접종 : 일부 예방접종을 권고하는 기관도 있으나, 근래에는 특별한 예방접종 및 방역은 필요하지 않음.

기후

강우량 : 연평균 800mm이하 (매년 현격한 차이를 보임)

- 사하라 사막의 남부지역은 연간 100mm이하의 강우량을 보여 연중 가뭄이 지속됨.

○ 온도차 : 해안지역에서 약 20도의 온도차를 나타냄.

- 알지에는 밤중에 평균 21도까지 떨어지는 7월 오후 평균 온도가 28도 정도이며, 1월중 온도는 매일 15-9도를 유지함.

- 일일 및 연간 온도 변화는 내륙 쪽에서는 심하게 나타나며, 사막지역에서 현격함.

전기 및 수도

○ 전압 : 220V

- 소형 주택에는 220V 공급

- 대형 주택 및 건물, 공장 등에서는 380V/50Hz 주파수가 공급

- 각종 플러그나 콘센트 규격도 유럽식 표준을 따르고 있어 휴대용 어댑터를 준비해야 함.

전화

○ 전화선 보급률이 인구 1,000명당 66회선 (2003년 기준)

- 전화선 보급이 열악한 상황

- 이동통신 보급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

○ 국제전화 이용시

- 국제전화코드 (00)+국가코드+지역번호+전화번호

- 서울의 경우 : 00+82+2+전화번호

환율 및 환전

○ 화폐단위와 종류

- Algerian Dinar (AD), US$1 = AD65.39 (2008)

- 미국 달러나 유로화는 환전을 통해 유통

- 지폐는 1,000/500/200/100 AD

- 동전은 100/50/20/10/5 AD

○ 유일한 공식 환전소 : 환전은 알제 국제공항 내

- 기타 특급호텔 출납창구에서 환전 가능

○ 팁

- 팁 지급이 의무사항이 아니므로 주지 않아도 무방하며, 사회주의 경험으로 형성된 알제리인들의 강한 자존심을 손상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유의

- 최근 공항, 호텔, 식당가 등 서비스업계에서 팁 관행이 확산됨.

교통정보

○ 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나, 정거장과 노선표시 안내가 체계화되지 않은 탓에 외국인의 활용도는 매우 낮음. 지하철은 현재 건설 중이며 2010년 이후 완공예정이므로 현재 외국인이 활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은 택시가 유일함.

○ 한국에 비해 택시 운행률이 높지 않아, 호텔에서 미리 사용호출 예약을 할 것이 요구됨. 요금계산은 단순 거리에 따라 요금을 지불하는 방식 (한국은 시간거리 병산제)

- 대부분의 택시 기사들은 영어구사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에 유의

공휴일 정보

○ 공휴일

- 관공서, 공공기업과 은행의 경우 8:30-15:00 또는 16:00까지 근무하며 일반기업 및 상점의 경우 17:00까지 근무함.

- 목요일과 금요일은 공휴일임. 개인기업의 경우 목요일에도 근무하는 경우가 있으며, 은행의 경우는 금, 토요일이 정기휴일임. (단 외국계 기업의 경우 본사와의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 토요일을 휴무하는 경우도 있음)

- 라마단 기간 중에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단축 근무(8:00-14:00)하므로 오후에는 상담이나 전화통화가 불가함.

알제리의 주요 관광명소

○ 카스바 (Casbah) : 전통적 도시 구조 유적과 고대 모스크, 성채 및 오토만 저택 궁전 등 유적 보유

○ 바스티용 뱅 트르와 (Palais des rais) : 15세기 오토만시대의 건축물

○ Cherchell 유적 : 로마시대 유적지로 고대 로마군의 병참기지로 활용되어 원형경기장, 공동목욕탕 등이 존재

○ Tipaza 유적 : 고대 카르타고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로마시대에는 전략기지로 활용되었으며, 박물관, 왕족묘 및 기독교인 묘 등이 존재

대사관 정보

○ 대 사 : 정해웅

○ 주 소 : Ambassade de la Republique de Coree 39, Avenue

Mohamed Khoudi, El Biar. Alger, Algerie

○ 전 화 : (213) 021-79-34-00, (213) 021-79-34-01,

(213) 021-79-34-02

○ 팩 스 : (213) 021-79-34-04

○ E-MAIL : koemal@mofat.go.kr

○ 홈페이지 주소 : http://www.mofat.go.kr/algeria/

○ 근무시간 : 08:30-17:00, 점심시간 : 12:00-14:00


○ 한인회

- 회장 : 김정진

- 전화 : (213 6) 61 51 06 62

- 이메일 : jung_jin@hanmail.net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알제리 (People's Democratic Republic of Algeria) 알기

국가 상징

○ 초록색과 하얀색 바탕에 있는 빨간색의 초승달과 5각 별은 이 나라의 국교(國敎)인 이슬람교의 상징이며, 초록색은 번영을, 하얀색은 평화를 나타냄.

지정학적 위치

위치 : 북아프리카, 지중해연안, 모로코와 튀니지 사이 (28.00N, 3.00E)

○ 면적 : 238만1741㎢, 국토면적 세계 10위, 아프리카 2위 (Sudan 다음)

○ 국경 :

- 총 6343km, 튀니지 (965km 동), 리비아 (982km 동), 니제르 (956km 남동), 말리 (1376km 남서), 모리타니 (463km 남서), 모로코 (1559km 북서), 서부사하라 (42km 서)

- 해안선 : 998km (지중해)

민족구성

○ 민족 : 아랍인 (81%), Berber인 (19%)

- 현재 양자간 구별은 어려우나, 베르베르인들은 주로 KABYLE지역 출신으로, 자신이 베르베르 후예임을 내세우며 아랍문화보다는 베르베르문화, 아랍어보다는 토착어인 AMAZIGH어에 강하게 집착

지형 특색

○ 동쪽에서 서쪽으로 4개 지역으로 구분

- 텔 지역 : 알제리 인구 다수가 거주, 언덕과 비옥한 계곡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경작가능 지역을 포함

- 고원지대 : 우기동안 물을 저장하고 건기에 마른 호수나 “쇼트 (chott, shott)”라고 부르는 염천이 됨.

- 사하라 아틀라스 지역 : 목초지의 영향으로 고원 지대보다 비가 많이 옴.

- 사하라 지역 : 아랍어로 ‘사막’이란 뜻으로 국토의 99%를 차지하며 오아시스 정착지가 흩어져 있어 대추야자 농업과 소규모 농업이 이루어짐.

종교

○ 현지 카톨릭 성당 및 개신교 교회가 있으나, 현 치안상태 하에서 잘 이용하지 못하고, 신자들의 집을 활용,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 (국교 : 이슬람(순니))

약사

고대

○ 페니키아인 도래 (BC 1250경)

○ 로마인 도래 (BC 510경)

○ 베르베르 토착왕국 (BC 3-2세기)

- Numidie왕조, Massinissa 왕조, Jugurtha왕조

○ Numidie왕국 로마 지방조직으로 편입 (BC 46)

- 북아프리카에 대한 로마화 진행 (1~429)

중/근세

○ 이슬람 도래 (647-1556)

- 사라센 문명

○ 오스만 터키 지배 (1518-1830)

근대

○ 프랑스 식민시대 (1830-1962 : 132년간)

- 1920년대 Messali Hadi를 중심으로 근대적 민족주의운동 시작

- 1954년 민족해방전선, FLN 결성 후 알제리에서 대 프랑스 무장투쟁

- 1962년 프랑스대통령 샤를 드골은 정전과 독립을 선언

○ 독립 알제리

- 1962년 9월 알제리 민주인민공화국 수립 (Ahmed Ben Bella 초대수상)

- 1965년 군사 쿠데타, 군장교로 이루어진 혁명 의회 구성

현대

○ 대규모 반정부 시위 및 총선

- 1988년 악화된 경제상황에 대한 항의와 폭동으로 수백명이 사망

- 1989년 국민투표로 새 민주헌법 채택

- 1990년 최초로 복수정당제하의 지방선거 및 총선 실시 결과, 이슬람구국전선(FIS)의 정권장악

○ 군부의 정치개입

- 1992년 군부개입으로 총선취소 및 FIS 해체

- 회교세력이 제도권외부 정치세력화 되면서 현재까지 테러 정국 계속

○ 2004년 임기5년의 8대 대통령으로 Abedlaziz Bouteflika 재선

알제리 정세

정세 개관

○ 2004년까지 매년 테러로 약 100-200여명이 사망하였으나, Bouteflika 대통령은 2005.1.3 테러 종식을 공식 선언하고, 동년 9.29(목) "평화와 민족대화합“을 위한 헌장을 97%의 높은 지지율로 채택하여 테러문제 해소에 관한 자신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함.

○ 5개년 경제개발계획(2005-2009)을 수립, 공적자금 600억불 투입하여 국내수요 창출, 농업 및 중소기업지원을 통한 노동집약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 확충 및 인력개발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음. 특히 알제리는 경제도약 3대 역점 분야를 설정, 정보통신, 농업 개발(식량안보 확보 및 고용창출), 주택 건설(매년 20만호 주택 건설) 개발을 적극 추진 중에 있음.

- 최근,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알제리정부는 대규모 공공 및 기간사업 조기발주를 추진하면서, 실업자 문제 및 주택부족 문제(가구당 평균 7명),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 부족 등 사회문제 해소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

대통령 인적사항

○ 성 명 :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Abdelaziz Bouteflika)

○ 생년월일 : 1937년 3월 2일

○ 경 력

- 1957 서부지역 참모본부 및 조국해방군 총통합참모 사령관 임명

- 1961 Aulnoy에 억류된 혁명지도자와의 접촉을 위해 프랑스 밀입국

- 1962 제헌국회의원 당선, 알제리 초대독립정부 관광/체육 및 청년부장관으로 임명

- 1963 외무부장관으로 임명

- 1974 제29차 국제 연합총회에서 의장 선출

- 1979 스위스에서 망명생활하며 외교고문 역할 수행

- 1995 대통령 당선

- 2004 대통령직 5년 연임 재선 승리

○ 기 타 : 최근 개헌을 통한 3선 집권 준비 중으로 알려짐.

○ 참고사항 : 2003. 12월 방한

외교

제3세계 비동맹외교

○ 전통적으로 비동맹 외교노선을 지향하고 제3세계 국가의 대변인 역할

- Bouteflika대통령은 74년 제29차 UN총회의장을 역임하던 당시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정부수반의 UN연설을 성사시켰고 인종차별을 이유로 남아공을 UN에서 축출한 바 있음.

○ 중동의 리더국으로 자임하면서, 아랍연맹의 이집트 독주에 반기를 제기하면서, 주도권 획득에 노력

- 2005.3.22 아랍연맹 정상회의 개최 (알제)

대프랑스 관계

○ 알제리의 주요 무역 파트너이자 실질적인 최대 수입국인 프랑스와는 경제적으로 긴밀한 협력관계 유지하고 있으나, 국민들의 반불정서는 상당히 높음.

- 이와 관련, 지난 2003년 Chirac 프랑스대통령의 알제리 방문시 합의된 우호협약(Traité d'Amité)은 2005년말 체결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005.2월 프랑스 식민지배의 긍정적인 면을 언급한 법안이 프랑스 의회를 통과함에 따라 무산됨.

- 이어 Douste-Blazy 프랑스 외무장관이 최근(2006.4.9-10) 알제리를 방문 우호조약 체결을 재추진 하였으나, 알제리측이 프랑스의 과거사 인식을 이유로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임.

알제리의 전체 수출 중 27%가 대 프랑스 수출로서 제1의 수출대상국임.

대미국 관계

1974년 외교관계를 재개하고 긴밀한 경제적인 협력관계를 유지(2004년 미국은 알제리 최대의 원유수입국임)

2001년 9.11테러 발생 이후, 알제리내 테러리스트 척결 및 미국의 대테러 전쟁 명분과 부합하면서, 2005.7월 양국은 사하라사막 지역에서 군사 합동훈련을 실시함.

- 알제리 남부지역에 미군도청기지 설립을 위한 협의

- 미국의 지원하에 알제리-NATO간 군사협력 강화는 물론 미군사고문단 약 100여명이 주재국 파견됨.

- 최근 Rumsfeld 국방장관의 방문 (2006.3), Bedjaoui 외교장관의 방미 (2006.4) 등 양국간 고위인사 교류도 지속

대EU 문제

○ EU는 알제리 무역의 60% 내외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상대임.

- EU는 2010년까지 알제리 등 12개 지중해연안국과 유럽-지중해 자유무역지대(EMFTA)를 창설키로 합의

○ 2002년 4월 알제리는 EU와 준회원협정(Association Accord)을 체결하였으나, 알제리 측 국내 비준문제로 2005년 9월 발효

- 양자는 발효시점으로부터 12년 후 완전한 관세철폐를 목표로 점진적인 관세 인하를 추진 중임.

대마그레브 문제

○ 인근국인 모로코와는 서부사하라 분쟁으로 소원한 관계 (서부사하라 망명정부가 알제리에서 활동)

○ “모리타니아”와는 1969년 친선협정 체결 (대이스라엘 수교로 다소 서운한 관계 유지)

○ 튀니지와 리비아와도 우호관계 유지

중동평화 문제

○ 전통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적극 지지 입장

- 요르단 및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화해하자 동 국가들과 외교관계 단절한 바 있음.

대중국 관계

알제리 독립 전쟁시 알제리 임시정부 승인해 준 중국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계 유지, 특히 과거 중국원조를 각종 SOC사업권으로 전환해줌.

국민들의 정서는 중국을 기대하지 않으나, 알제리 정부는 각종 대형 프로젝트(건설, 통신 등)에 중국의 참여를 적극 지지

사회

종교

○ 종교는 이슬람교(수니파 99%)이며, 각종 생활을 이슬람계율에 근거하여 행하고 있음.

- 기타 소수 가톨릭 신자

○ 주요 종교의식d d

- 하지 : 매년 히즈라력 12월 8일-13일까지 5일간의 메카 이슬람 성지순례가 있는데, 이를 위해 실시하는 이슬람국가의 전반적인 휴가

- 라마단 : 매년 히즈라력 9월은 사도 무함마드가 9월 29일 밤 하늘로부터 지브릴(가브리엘) 천사를 통하여 코란을 최초로 계시받은 달로서, 이달 한 달은 고행과 수도의 달로 일출후부터 일몰전까지 음식은 물론 물, 음료, 담배 등을 일체 금식하는 대신 밤에 식사를 하고 특별 예배를 봄. 라마단 행사가 끝나고 3일간은 ‘이둘휘뜨르’라는 제2대 명절로서 전 이슬람권이 친지, 이웃을 방문하는 공휴일

언어

○ 알제리 공용어 : 아랍어

- 상업 활동에는 불어가 광범위하게 통용되므로 주의를 요함.

문화적 특성

○ 알제리인의 경우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에는 알제리계 80여만명이 집단거주하고 있음. 알제리는 프랑스,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인접국으로 유럽문화 및 브랜드에 친숙하다고 평가됨.

○ 전 가정에 보급된 위성방송수신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유럽 주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음.

- 알제리인들은 정서적으로는 이슬람권에 속하지만, 소비자 취향은 유럽문화권에 속하고 있는 영향으로 유럽문화와 브랜드에 우호적임.

○ 이슬람 국가 중에서 여성의 사회참여도가 높은 편이며, 라마단 기간 등을 제외하고는 호텔 및 레스토랑에서 주류 판매가 허용되는 비교적 개방화된 문화를 갖고 있음.

○ 이슬람 기본예절에 따라 인사할 때와 식사할 때에는 왼손을 사용하지 않고, 돼지고기 섭취를 금기시하는 특성이 있음.

교육

○ 수도 알제에는 영미계 학교가 없어 초등학교 저학년은 현지학교나 프랑스계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으나, 중고교 취학자녀가 있는 겨우 인근 제3국에 유학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

○ 지난 2002. 9월 프랑스학교가 개교하여 운영되고 있음. 현지인 학교는 모두 국립이며 정부의 아랍화 정책에 따라 아랍어로 교육하고 있음. 최근 아랍어와 불어를 병행하는 현지 사립초등학교가 많이 세워졌으나 교육시설 및 수준은 미흡한 실정임.

치안

○ 1990년대 초 알제리 테러문제는 국내적 사회불안요소이자 대외적으로 알제리 이미지 손상의 주요 요인이면서, 알제리 경제 발전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여 왔음.

○ 최근 알제리가 정세가 안정된 이후, 외국기업들의 알제리 진출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으며, 2005.1월 Bouteflika 대통령의 테러 종식 선언과 함께 동년 9.28 실시된 “평화 및 민족대화합” 헌장 국민투표에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도 긍정적인 요인

○ 여전히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일부 테러집단이 잔재하고 있어 해당지역 여행시 주의를 요함.

사회보장제도

○ 알제리에 진출한 기업 및 기관은 알제리 사회보장제도에 따라 모든 고용주는 영어개시 10일 이내에 영업장 소재지 관할 사회보장 기관에 신고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

○ 사회보장금고(CNSS : Caisse National de Securite Sociale)에 가입할 의무가 있음.

○ 사회보장금고에 급여자와 견습자를 등록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

○ 사회보장금고에 급여자의 월급 중 고용주 26%, 피고용자 6% 납부

- 피고용인 10인 이하 : 각 분기 이후 30일 이내

- 피고용인 10인 이상 : 매월 말 30일 이내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외교관계

○ 알제리는 대 프랑스 항쟁 시부터 북한의 지원을 받았으며, 1962년 독립이후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 북한과 특별한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서대립의 냉전시대에 시종 반한 입장을 견지

○ 1985년 소련 개방과 함께 알제리도 민주화, 경제개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으며, 이때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모델에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됨.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통해 양국은 1990년 수교합의 및 주알제리 대사관이 설치됨.

○ 1990년 수교 이래 양국관계가 비약적으로 발전되면서 알제리가 실용주의적 외교 노선을 견지,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더욱 중시하는 자세를 보이고, 실질적 협력관계가 미미한 북한과는 1998년 상호 상주공관을 철수함.

○ 2003. 12월 Bouteflika 대통령의 국빈방한과 2006. 3월 노무현 대통령의 알제리 국빈방문을 통해 양국은 기존의 우호관계를 재확인하고 이를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시키기로 합의

- 양국은 노무현 대통령 방문 후속조치로 알제리 공무원에 대한 한국방문연수를 실시키로 하는 등 실질적인 협력관계를 심화

주요협정 체결 현황

○ 정부간의 경제 및 기술협력에 관한 협정 (00.8.19 발효)

○ 정부간의 문화협정 (00.8.19 발효)

○ 정부간의 투자의 증진 및 보호를 위한 협정 (01.9.30 발효)

○ 체육협력약정 (01.11.23 서명)

○ 외교부간 협력약정 (01.11.24 서명)

○ 한-알제리 문화교류계획서 (2002-2003) (01.11.24 서명)

○ 정부간의 이중과세방지협정 (01.11.24 서명)

교역현황

고유가 등에 따른 구매력 확대로 교역시장으로서의 중요성 증대

- 남아공․나이지리아․라이베리아․이집트와 함께 우리나라의 아프리카 지역 5대 교역상대국으로 부상

* 대 알제리 교역추이(백만불) : ('05) 506 → ('06) 968 → ('07) 1,415

년도

수출

수입

수지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금액

2004

355

57.9

240

25.5

115

2005

340

-4.0

166

-30.9

174

2006

791

14.8

578

247.4

213

2007

768

96.6

647

11.9

121

2008.1-8월

517

-1.8

714

64.9

-197

자료원:kita.net (단위 : 백만불, %)

주요 수출입품목

<對알제리 주요 수출품목>

순위

품목명

2007

2008. 1-8월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1

자동차

466

105.0

336

6.1

2

합성수지

78

107.8

57

16.6

3

건설광산기계

34

44.2

37

99.7

4

무선통신기기

20

6.5

19

41.3

5

자동차부품

13

7.

12

21.4

6

고무제품

8

-14.8

5

-1.1

7

냉장고

4

64.2

5

64.4

8

영상기기

1

-6.5

5

611.6

9

공기조절기및냉난방기

31

1,680.1

4

-87.9

<對알제리 주요 수입품목>

순위

품목명

2007

2008. 1-8월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1

원유

490

17.9

462

46.0

2

천연가스

106

-33.2

224

229.2

3

LPG

25

-

21

-14.6

4

정밀화학원료

1

-

4

-

5

알루미늄

1

58.1

2

786.0

6

무선통신기기

0

-

0

-

7

동제품

1

37.3

0

-

8

반도체

0

-

0

-

9

자동차

0

-

0

-

자료원 : kita.net, MTI 3단위 (단위:백만불, %)

한국의 투자진출 동향

○ 우리기업의 대 알제리 투자현황 (08. 6월 현재)

현지법인명

신고

건수

신규

법인

신고

금액

투자

건수

투자

금액

비고

Daewoo Algeria Hotel Co., Ltd.

8

1

263,423

21

179,719

01.11 매각철수

Daewoo Automobiles SPA.

7

1

22,996

5

16,191

03.12. 청산

KT Algerie

1

0

700

0

0

통신

Keangnam Algerie SPA

3

1

404

1

84

건설

La Sarl Ssang Yong Motor Algeria

1

1

300

1

300

자동차 도소매

Sarl Space Group Strategie

2

1

250

2

250

건축설계

Nuga Best Algeria

1

0

100

0

0

의료기기 판매

Sarl Nuga Medical Algerie

1

1

198

1

198

의료

총계

24

6

288,371

31

196,741

자료원 : 한국수출입은행 (단위 : 건, 천불)

○ 우리나라 기업의 알제리 주요 진출분야는 건설 및 건축설계, 자동차 도소매, 의료기기 판매 등임.

○ 아직까지 우리나라 기업의 알제리 제조업 부문 투자사례는 없음.

○ 투자 유망분야

- 건축자재(시멘트, 철강, 알루미늄 등) : 알제리 국내 저렴한 석유, 가스 및 전기가격을 활용한 제품생산 및 내수판매, 수출 가능

- 석유화학 부문(비료, 각종 석유화학 제품 등) : 석유 및 가스에 대한 부가가치 제고를 위한 알제리 정부차원의 육성정책 추진

상주직원 파견 한국기업 지사/상사 진출현황 [08. 8월 현재]

○ 현지법인

- 경남기업(2명), 공간건축(2명), 누가의료기(1명)

○ 연락사무소

- 대우건설(2명), 대우 INT'L(2명), 동명기술공단(2명), 삼성물산(1명), 삼성전자(1명), LG상사(1명), LG전자(2명), 우림건설(2명), KTA(1명), 토지공사(2명), 한국통산(2명), 한화건설(2명)

○ 교민 현황 : 한국인 약 78명 체류

- 기업인 및 동반가족, 개인사업 및 종교인 거주

아국인사 알제리 방문

2003. 6 Sidi-Abdellah 신도시 마스터플랜 수립사업 현지조사단

2004. 1 이만섭 전국회의장 방문

2004. 2 신윤표 한남대총장 방문

(Bouteflika대통령 명예박사학위 수여)

2004. 3 서정화 대통령 특사 방문

2005. 1 신도시개발 마스트플랜 최종세미나 (곽영훈 외)

2005. 1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 방문

2005. 5 한국석유공사 대표단 방문

2005. 5 염홍철 대전시장 방문 (대전-알제 자매결연 가서명)

2005. 6 전자정부세미나 대표단 방문 (신현준 한국소프트진흥원)

2005. 7 대전 정무부시장 및 경제사절단 방문 (박정효)

2005. 12 한국경제 아프리카순회 세미나 개최 (황의각 교수)

알제리인사 아국 방문

2003. 5 Karim YOUNES 하원의장 방한

2003. 5 반부패세계회의 참석

(단장 : Nabil HATTALI대통령실 보좌관)

2003. 8 대구 하계유니버스아드 대회 참가 선수단 (34명)

2003. 8 Sidi-Abdellah 신도시 개발관련 인사 (3명)

2003. 12 Bouteflika대통령 국빈방한

2004. 5 제2차 한-중동 포럼 참가 (Sator아주과장)

2004. 6 경찰청 간부 방한

(Hadaddine치안감, Sebbou알제시 지방경찰청장외 2명)

2004. 9 Meghlaoui 외무차관 방한 (3차 정책협의회 참석차)

2004. 9 Amar TOU 정통부장관 방한 (정보통신협력협정 서명)

2005. 8 Benyakhou 하원의원 외 2명

(국제사회봉사의원연맹(IPSS)총회 참석)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일반방문

○ 쿠웨이트는 외국기업의 투자 및 무역을 유치하고 외국인의 쿠웨이트방문을 권장하기 위하여, 34개 국가의 국민들에 대해서는 비자를 쿠웨이트 입국시점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발급 받도록 하는 특례조치를 시행하고 있음. (통상-3개월 유효비자 발급)

○ 동 특례조치는 상업, 방문 등 단기간 쿠웨이트를 방문하는 경우에만 적용되며, 취업, 유학 등의 목적으로 장기 방문하시는 경우에는 기존비자발급절차를 밟아야 됨.

○ 특례조치를 받는 절차로는

- 쿠웨이트에 입국하면, 입국수속창구 이외에 별도 설치된 비자 즉석발급대에서 여권과 현금 5KD(1KD는 약3.8달러 상당)를 납부하고, 비자발급을 신청하면 비자를 받을 수 있음

- 비자발급에 소요되는 시간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까지 포함하여 약 30분에서 2시간까지 소요

- 비자를 받은 후 세관입국수속 창구에서 입국절차를 받음. (특례조치의 적용을 받는 국가는 한국을 비롯한 34개 국가)

기후 및 복장

○ 현지구입도 가능하지만 사전에 준비해 오는 것이 좋음. (양복, 와이셔츠 등은 상당히 고가임)

○ 여름이 길고 겨울(11월-2월)이 짧으므로 여름옷 3 : 겨울옷 1의 비율로 준비, 겨울은 바바리코트 정도를 입는 한국의 늦가을 또는 초겨울날씨이므로 쉐타나 전기담요를 준비해 오는 것이 좋음.

○ 태양광선이 강하므로 썬글라스 착용이 필수(현지 안경 값이 매우 고가이므로 사전에 준비필요)

근무시간

○ 은 행 : 09:00 - 13:00 (금,토 휴무)

○ 우체국 : 08:00 - 13:00 (금,토 휴무)

○ 식 당 : 12:00 - 15:00, 18:00 - 22:00

○ 상 점 : 09:00 - 13:00, 16:00 - 20:00

공휴일

○ 매주 금, 토요일은 휴일

○ 공휴일

- 신정(1.1), 라마단 종료 축제기간(4일간*), 독립기념일(2.25),해방기념일(2.26-27), 이슬람 성찬일(4일간*), 이슬람 신년일 (1일*), 모하메드 탄생일(1일*), 모하메드 승천일(1일*), 라마단 종료 축제기 간(3일간*) (*표는 달의 운동에 따라 매년 변동)

식당

○ 아랍식당 : 양고기등 아랍전통 음식

○ 서양식당 : 쿠웨이트 주요 호텔에 소재

○ 한국식당

- 고려관(TEL : 2452740)

- 한국관(TEL : 5634200, Ext:315)

- 평균식대 : 1인당 US$ 20-30

○ 중국식당

- Gulf Royal, Peacock, 탕차오 등이 있으며 가격은 한국식당보다 약간 저렴

○ 일본식당

- 사꾸라, 케이, 에도, 와사비등이 있으며 가격은 1인당US$30 정도 소요

시내 교통

○ 버스의 경우 중동국에서는 가장 현대화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노선 및 횟수가 적어 이용에 불편 (주로 제3국 근로자들이 이용)

- 외국인의 경우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

- 렌트카의 경우 차종에 따라 1일 8-20KD 정도

통신 및 전화제도

○ 국내전화는 무료이나, 국제전화의 경우 매우 고가

○ 한국호출 국제전화(서울의 경우) : 00822-전화번호 (분당 2불 정도)

가전제품 사용시스템

○ 전원 : 240V, 50Hz

○ TV 및 VIDEO 방식 : PAL

주요 여행지

걸프로드

○ 걸프만 해안선을 따라 장장 21KM에 달하는 6차선 도로로서 1988년 완공됨. 주변에 5개의 수영장, 5개의 모래사장 등 각종 인공 조형물과 인공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곳곳마다 간이음식점등 편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음.

○ 시원한 바다바람을 쐬는 드라이브를 할 수 있으며 또한 수영, 낚시,보트, 제트 스키등 해상 레저를 즐길 수 있음.

○ 쿠웨이트의 거의 모든 주요 간선도로(1번에서 6번 도로까지)는 걸프로드와 연결되어 있어 시내 교통의 주요소통로 역할을 함.

Towers

○ 현대 쿠웨이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조형물로서 걸프로드변에 3개의탑으로 구성, 1979년에 세워졌음.

○ 1개는 물탱크로서 133만 갤론의 물을 수용하며(높이 147m) 다른 1개 는 전망대, CAFETERIA, RESTAURANT이 있음. 전망대의 높이는 123m로서 360도 회전하며 쿠웨이트 시내 전역을 바라볼 수 있음. 나머지 한 개는 96개의 SPOTLIGHTS가 설치되어 다른 2개의 조형물을 비춤으로써 KUWAIT TOWER 전체의 조형미와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음.

- 개장 시간 : 오전 10시 - 오후 11시 30분

- 입장료 : 1KD

- 전화번호 : 2444038

○ Al-Tuhreer Tower (Liberation Tower)

- 중동에서 가장 높은 205m Tower 콘크리트 구조물로 1987년에 착공하여 1990년 걸프전으로 잠시 중단, 1996년 완공,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있음.

- 6개층으로 이루어진 상층홀은 관리사무소로서 185m 상단에 위치해있음.

박물관

○ 국립 박물관

- 쿠웨이트 역사와 아랍 문화, 예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임.

-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이 이곳 소장품을 약탈해 같으나 일부를 다시 돌려 받아 다시 전시하고 있음.

- 위치 : 걸프로드의 국회주변에 위치

- 전화번호 : 2451195

○ TAREK RAJAB 박물관

- 개인 박물관으로서 시대별 중동지역 생활상을 잘 보존하고 있음. JABRIYA 소재

- 개장시간 : 오전9시 - 12시, 오후4시 - 7시

- 전화번호 : 5317358

* 대부분 입장료는 무료임.

GRAND MOSQUE

쿠웨이트시내(외무부 부근)에 위치해 있으며 1986년 8월 6일 완공되었음.

○ 총면적 45,000평방미터에 총 공사비 13백만KD가 소요된 쿠웨이트 제1의 회교사원임.

- 지름 26m, 높이 43m의 돔이 있는 주 예배실은 5,300㎡에 달해 5,000명의 남자와 550명의 여자를 동시에 수용가능

○ 전통 이슬람 건축양식과 현대식 기술이 조화를 이뤄 아름답고 우아하며 건물의 모든 벽을 자연 대리석을 사용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음.

ENTERTAINMENT CITY

○ 쿠웨이트시 북방 20km에 위치(Doha시 근방)

○ 1백만 평방미터의 쿠웨이트판 디즈니랜드로서 1984년 3월 13일 개장

○ VOYAGE OF SINDBAD, THE ARABIAN GULF BOAT CRUISE, THEAUSTRALIAN LOG RIDE, THE SPACE ROCKET, TORNADO, CARRACE, THE SPACE MIRROR PALACE, RAINBOW 등 재미있는 놀이기구들이 있어 쿠웨이트에서 다른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곳임

○ 입장료 : 이용할 수 있는 놀이기구 종류에 따라 다름.

○ 전화번호 : 4879455

FAILAKA ISLAND

○ 쿠웨이트시 북방 20KM 지점에 있는 길이 12km, 넓이 6㎢의 작은 섬

○ 구석기시대 문물이 출토되는 등 17C 본토인이 살기 훨씬 이전의 역사현장으로서 이곳에서는 BC 300-100 의 구석기, 청동기 문화의 주거형태, 사원, 성곽등 유적이 있음.

○ 현대식 휴양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수영장, 운동시설, 레스토랑,TOURIST COMPLEX 등 시설 갖춤.

재래시장 및 현대식 상가 쇼핑

○ 개점시간: 오전 9시-오후 1시, 오후 5시-오후 9시(금요일은 대개 휴무)

○ 주요 현대식상가

- SALHIA COMPLEX(메리디안호텔과 연결):고급의류, 시계, 보석, 구두,양품등 전문점, 레스토랑이 있음.

- AL MUTHANA COMPLEX : 의류, 구두, 보석, 전자, 문구, 장난감, 양품점, 헝그리버니, 피자헛 등이 있음.

- SLMIYA CENTER : 의류, 시계, 보석, 구두, 전자, 양품, 장난감, 피자헛, 햄버거, KFC 등이 있음.

- SALMIYA 지역상가 : 이지역내에 부페 레스토랑, 피자헛, 햄버거집,중국식식당이 있음.

- SULTAN CENTER : 식품 및 생활용품 판매하는 백화점, 연중무휴 24시간 개점

- ZAHRA COMPLEX : 의류, 보석, 시계, 구두, 양품 등

- FARWANIYA 가구상가 : 가구 및 사무용품 취급, 고급품 및 저가품의 다양한 가구류를 구입 가능

○ 재래시장

- KUWAIT CITY SOUK MARKET : 쿠웨이트시 중심부에 위하며, 쿠웨이

○ 전통상품 판매 시장

- 매주 목,금요일 오전 9:00 - 오후 9:30 개장

- 각종 생활용품 및 중고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 가능

- AL-RAI 지역 4번도로 인근에 위치

○ 동물시장 : FRIDAY MARKET 주변에 위치하며, 애완동물 및 다양한 동물 판매

현지 주요 연락처

주요 연락처

○ KOTRA

- 전화 : (965)2436933, 2436939

- Fax : (965)2436948

- E-mail : kotra@qualitynet.net

○ 한인회(회장 : 박정길, http://www.kukorean.com)

- 전화 : (965) 2412988

- Fax : 2412955

- E-mail : q8haninhwei@empal.com

○ 한글학교(교장 : 김경환, http://kuwait.ehomp.com)

- 전화 : (965) 5662312

- Fax : 9606251

○ 주요식당

- 고려관 (965) 2452740

- 한국관 (965) 5634200 (Ext.315)

○ 비상전화

- 경찰(범죄신고), 화재, 응급구호 등 종합 : 777

- 공항안내 : 4336699

- 앰블런스 : 2422366(Amiri Hospital), 5311437(Mubarak Hospital)

○ 정부종합병원

- Amiri Hospital(Tel : 2415844), Sabah Hospital(Tel : 4812000), Mubarak Hospital(Tel : 5312700)

대사관 정보

○ 대 사 : 문영한

○ 주 소 : Qourtoba Block 4, Street 1, Jaddah 3, House No. 5 P.O.Box 4272, Safat 13043, Kuwait (http://kwt.mofat.go.kr)

○ 전 화 : (965) 5339601/2/3

○ 팩 스 : (965) 5312459

○ E-MAIL : kuwait@mofat.go.kr

○ 근무시간 : 월-금, 09:00-18:00(12:00-14:00 중식시간) (토, 일 휴무)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쿠웨이트 (Kuwait) 알기

지정학적 위치

○ 북위 28-30도(한국과 대만 중간), 동경 46-48도

(우랄산맥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중간)

○ 쿠웨이트의 총면적은 17,818㎢로 한국의 경상북도 크기와 비슷 하며, 동서의 폭은 150km, 남북의 길이는 195km임. 총면적중 2,590㎢는 1966년 사우디와 쿠웨이트간에 분할된 '중립지대'(Neutral Zone)이며, '부비얀'(Bubiyan), '와르바'(Warba), '훼일라카'(Failaka)로 구성되는 10개의 근해 섬(offshore island)과 쿠웨이트만(灣)에 형성돼 있는 199km의 해안선을 가지고 있음.

지형적 특징

○ 쿠웨이트는 아라비아 반도의 동북부, 즉 걸프만의 머리 부분에 위치한 산유 부국(富國)으로 북으로는 이라크, 남으로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동으로는 걸프만에 인접. 쿠웨이트의 정식 국명인 State of Kuwait는 '작은 요새'(little fortress)라는 의미를 갖고 있음.

○ 쿠웨이트는 걸프만 내륙으로부터 이락에 이르는 진입로를 제공하는 약 간 경사진 단단한 땅을 가지고 있고, 가까운 모래 언덕과 산호초로 둘러싸인 양호한 항구를 가지고 있기에 성장에는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음.

○ 동부의 해안지대를 제외하고는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 10-80m의 평탄한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음.

기후

○ 열대성 사막기후

- 연간 평균기온 : 25도 연중 6개월이 30-53도 사이(연중 최고기온 53도)

- 연중 6개월이 30-35도 사이(연중 최고기온 53도)

-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더운 지역(6-8월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고온)이고, 겨울에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기온상 가장 추운 지역

약사

국가 형성 과정

○ 16세기 이전부터 터키(Ottoman 제국)의 영향에 있었으며, 18세기초부터 오늘날의 사우디, 이라크, 이란 등지로부터 Amaiza족 등이 이주하여 현 쿠웨이트 민족의 주류 형성

- 756년 초대 Sabah 왕이 황무지를 개척, Koutu라는 지역에 정착

○ 1897년 Mubarak왕은 터키의 쿠웨이트 합병을 피하기 위해 보호를 요청했고, 영국은 지중해와 인도간의 무역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1899년  쿠웨이트와 보호조약 체결, 이후 영국이 외교와 국방 담당 

근대 및 현대

○ 1961년 쿠웨이트는 영국과의 보호조약을 우호협력조약으로 대체, 독립국 지위 획득

- 화폐는 루피(Ruffy)에서 디나(Dinars)로 변경

○ 1990.8.2. 이라크가 침공, 쿠웨이트 합병 선언

- 유엔 결의에 따라 미국을 주축으로 구성된 27개국 다국적군의 공격으로 이라크군을 축출하고 1991.2.26. 쿠웨이트 해방

왕위 계승

○ 13대 ‘자베르(Jaber)’ 국왕(77.12 즉위)은 걸프전후 왕정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고조되자 언론검열 폐지(92.2), 여성 참정권 허용(05.5) 등 점진적으로 민주화 추진

○ 2006.1 ‘자베르’ 국왕의 사망으로 ‘사드(Saad)’ 왕세제가 즉위했으나 건강문제로 직무수행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10일만에 의회의 결정으로 퇴위

- 왕위계승 관련 법률 4조에는 의회가 재적의원 2/3 이상의 동의로 국왕 퇴위를 결정할 수 있다고 규정

○ 총리였던 ‘사바’가 국왕으로 즉위(06.1), 외교장관․총리로서 40년 이상 풍부한 국정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정국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

- 사바 국왕은 여성참정권 허용, 신언론법 제정, 선거구수 축소 등 선거제도 개선, 각종 규제완화 등 개혁정책 추진

- 쿠웨이트는 GCC 국가중 유일하게 의회 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06.6월 국회의원 선거에 여성이 최초로 입후보하고 투표에 참가

정치 개황

정부형태

○ 국가 형태 : 입헌 군주국

○ 국왕(AMIR)의 권한

- 국왕은 국가수반으로 각료 임면권, 의회 해산권 및 군 통수권을 갖고 있음. 국왕부재 시는 왕세자(CROWN PRINCE)가 업무를 대행하며, 왕세자의 업무대행이 불가할 경우 국왕은 칙령에 의한 대행자를 임명함.

- 종전에는 왕세자가 수상을 겸임했으나 2003.7월 정치 개편 이후 수상직이 별도 분리되었고, 각료수상의 추천에 따라 국왕이 임면함.

- 각료는 국가의 정책에 대한 집단 책임과 함께 개별 부서의 업무에 대한 개별 책임을 짐.

- 단일 도시국가 형태로 지방자치 제도는 전혀 확립되어 있지 않으며, 전국은 행정부 산하로 6개의 GOVERNORATE로 나뉘어 있음.

내각

보통, 비밀,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된 50명의 의원과 당연직 의원인 15명의 각료로 구성되며, 구성각료는 의원겸직 가능

의원의 임기는 4년으로 연임 제한은 없으며 법률안 의결권 및 왕세자 임명 동의권을 가짐.

의원 선거권자는 문자 해독이 가능한 21세 이상의 쿠웨이트 시민이며 왕족, 군인, 경찰및 보안관계 종사자는 투표권이 없음.

사법제도

3심제이며 모든 법원은 형사, 민사, 가정사건 등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사건을 다루고, 계엄 시 군사법정이 설치되며 재판관은 국왕이 임명함.

○ 대법원 - 대법원장과 부원장이 있으며 판결은 5인 1팀의 법관에 의해 내려짐.

○ 고등법원 - 법원장과 부장이 있으며 1심 또는 즉결심판에서 불복한사건에 대해 판결함. 판결은 3인 1팀의 법관에 의해 내려짐.

○ 1심 법원 - 형사 사건이나 단독심의에 의해 내려진 판결을 재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독심으로 진행됨.

○ 헌법 재판소 - 헌법에 위배되는 사항을 다루기 위한 법원으로 5명의 상시 재판관과 2명의 임시 재판관으로 구성되어 있음. 헌법소원은 의회나 정부 또는 하급법원에서 제기되고 있음.

각료명단 및 주요인사 인적사항

국왕

○ 이름 : His Highness The Amir, Sheikh Sabah Al-Ahmed Al-JaberAl-Sabah 아미르, 셰이크 사바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 생년 : 1929년

○ 출신 : 3대 국왕인 Amir Shaikh Jaber Al-Ahmed Al-Sabah(아미르 셰이크 자베르 알-아흐마드 앗-사바)의 동생

○ 경력

- 1962년 공보부 장관 역임

- 1965~1967년 재경부장관과 석유부장관대리 역임

- 1963~1991년 외무부장관 역임

- 1998~2003년 외무부장관과 제1부총리 겸임

- 2003~2006년 총리 역임

왕세자

○ 이름 : His Highness Sheikh Nawaf Al-Ahmed Al-Sabah(Amir’sbrother) 셰이크 나와프알-아흐마드 앗-사바(현 국왕의 동생)

○ 생년: 1937년

○ 경력

- 1962년 하왈리 주지사 역임

- 1978~1988년 내무부 장관 역임

- 1988~1991년 국방부 장관 역임

- 1991~2003년 국가방위군 부의장 역임

- 2003~2006년 내무부 장관과 부총리 겸임

총리

○ 이름 : Sheikh Nasser Al-Mohammad Al-Ahmad Al-Sabah

○ 생년 : 1940년

○ 경력

- 1965년 왕실 의전장관역임

- 1968년 이란대사 역임

- 1985~1988년 정보부장관 역임

- 1988~1990년 노동사회부장관 역임

- 1990~1991년 국무부장관 역임

- 1991~2006년 왕실 의전장관 역임

외교

외교정책기조

○ 독립 이후 비동맹 중립외교를 표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친서방 정책을 견지해 왔으나, 81년 5월 사우디, 바레인, UAE, 오만, 카타르 등과 GCC(페르시아 만안(灣岸) 협력 회의)를 창설, 강대국의 개입을 배제한 자주적 역내집단 안보체제 구축을 모색하면서부터 미∙소 양 진영에 대한 등거리 외교정책과 엄정 비동맹 정책을 추구

○ 이러한 외교적 노력의 실례로 81년도 SABAH 외상의 방소, JABER 국왕의 발칸 및 동구제국 순방, 82.6월 SABAH 외상의 동구 및 소련 방문, 미∙소 양측으로부터의 무기구입 등을 들 수 있는 바, 이는 친서방적인 종래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한 외교적 전략으로 해석됨.

○ 걸프전 이후 외교정책은 안보체제 구축을 최우선으로 하여 미국, 영 국, 프랑스, 러시아와 방위 조약을 체결하는 등 초강대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음.

대미국 관계

○ 쿠웨이트의 동∙서 등거리 외교원칙에 입각,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 왔 으나 쿠웨이트항공기 납치 및 국왕 피격 사건 시 미국의 신속한 태도 표명으로 85년부터 관계가 호전됨.

○ 미국의 대 이란 무기 판매 사건으로 쿠웨이트에 있어서 미국의 신뢰성이 크게 실추되었으나 2차에 걸친 미해군의 이란 쾌속정 및 석유시설 공격과 대 이란 무기 금수조치에 대한 명확한 태도 표명으로 신뢰성도 크게 회복됨.

○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에 의해 이라크로부터 해방된 91년 2월 이후 방위조약을 체결한 이후 경제적인 모든 면에서 미국 기업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등 미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유지하고 있으며, 2003년 이라크전을 통해 더욱 공고히 되고 있음.

아랍-이스라엘 분쟁

○ GCC 회원국들과 공동보조 아래 미국․EU의 중재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조속한 해결을 적극 지원한다는 입장

○ 이스라엘에 대해서는아랍권의 정서를 고려, 관계개선에 미온적이며 통상 관계도 중동평화협상 진전 상황을 보아가며 결정한다는 입장

유럽 및 러시아와의 관계

○ 93.11월 상호방위 조약 체결 이후 합동 군사 훈련을 계획하는 등 군사외교적 관계를 긴밀히 유지하고 있음.

○ 이라크로부터의 해방 후에도 이라크의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자국의 방위를 위한 UN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

○ GCC국가와 가장 밀접한 교역 파트너인 EU의 시장통합에 대응하기 위하여 GCC국가가 추진하고 있는 역내 자유교역 및 대EU 수입품의 수입 관세율 동일 적용 등의 추진에 회원국으로서 적극적으로 대응

대아시아 관계

○ 자국산 원유의 최대 도입국인 한․일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으며, 한․일의 쿠웨이트 진출기업 및 근로자들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 견지

○ 걸프전 시 다국적군에 참여한 한국의 역할에 사의

○ 2004.7 '사바‘ 총리(현 국왕)는 한국․일본․중국을 함께 방문한 바 있으며, 최근 들어 중국, 베트남과의 관계 강화에 적극적 자세를 보이면서 에너지 협력 및 금융투자 확대 추진

중동국가들과의 관계

○ 이라크와는 1990년 걸프전이라는 악몽이 남아 있으나, 최근 들어 이라크와의 과거 청산 및 미래지향적 협력관계 수립에 적극적 자세

-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말리키’ 총리의 2차례 쿠웨이트 방문(06.7)및 ‘국경선 설치에 관한 양해각서’ 체결(06.11) 등을 계기로 적대관계청산을 모색하고 있으나, 이라크와의 국경분쟁, 이라크 내부 혼란으로 인한 난민 유입 가능성 등에 대해 우려하여 친미 성향의 이라크 신정부정책을 지지하고, 이라크의 조속한 안정화를 지원

- 최근 대이라크 부채탕감 문제에 다소 신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이라크 재건사업에 5억 6,000만불 지원

○ 이란과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이란의 핵개발은 IAEA 체제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으로, 특히 이란의 핵개발로 인한 걸프지역의 해수오염 가능성에 우려

○ 2006.10 미국 주도의 PSI 해상 기동 훈련시 이란은 쿠웨이트가 참여하지 않도록 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하였으며, 이에 따라 쿠웨이트는 옵저버 자격으로만 참가

사회

교육

○ 공립학교 및 사립학교는 초, 중, 고 각 4년

○ 국제학교(사립학교)중 American School은 미국학제, British School은 영국학제를 따름

○ 학교현황

- 국.공립학교 : 현지인만 입학

- 사립 아랍어학교 : 현지인 및 외국인 입학가능

- Int‘l School : American School 및 British School 등 다수

- 학비는 US$5,000 - US$13,000 범위

○ 쿠웨이트대학 (www.kuniv.edu.kw)

- 현지인 및 외국인 입학가능 단, 외국인은 교육부장관 승인사항

- Tel : 4988-888

○ 사립대학

- American University of Kuwait, Gulf University, Australia University

언론

○ 채널 4개가 있으며 아랍어방송 1개, 영어방송 1개, 스포츠․오락방송 1개 등 아랍어 방송 2개가 있음. (모두 국영방송)

영어방송의 경우 대부분이 미국방송 프로그램을 그대로 방영하고 있음.

○ 위성수신 TV Channel이 다양하며 CNN, BBC, STAR TV 시청 가능

Arirang TV, Sun Channel, YTN TV등 한국 TV방송도 가입시 시청가능

○ 일간지 - 아랍어 현지 신문 5개, 영자신문 3개

사회적 갈등 요인

○ 국민을 1등국민(참정권 향유)과 2등국민(귀화후 20년 미경과자로서 참정권 없음)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약 12만명의 아랍계 무국적자(Bedouns) 및 외국인 근로자 등이 공존하면서 사회의 이질감 형성

서구식 자유를 향유코자 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보수 이슬람주의 자들이 사회를 이슬람화 하려는 동향이 있어 종종 갈등 노정

○ 외국인은 쿠웨이트인 Sponsor가 있어야 사업과 체류를 할 수 있는 바, 외국인 근로자의 체류비자를 둘러싸고 쿠웨이트인의 비자 알선 폭리와 인권유린이 사회문제화

○ 남.녀간의 성비 불균형(많은 외국인 독신 근로자들의 존재로 남성이 압도적인 다수 차지), 본인 의사에 반하는 결혼으로 이혼율 증대, 공공부문의 흡수능력 한계로 인한 쿠웨이트인들의 실업율 증대도 점차 사회문제로 대두

비즈니스 에티켓

○ 복장

- 반바지 착용 금지

- 여성의 경우 전통의상인 ‘아바야’ 반드시 착용 요망

- 여성이 남성 앞에서 손목과 발목 및 얼굴을 노출시킬 경우 외국인일지라도 종교경찰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음에 유의

○ 식사문화

- 세 번 이상 초대를 거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남.

- 전통식당에서 오른손으로만 식사해야 할 것에 유의

- 개, 돼지, 맹수류, 맹금류, 파충류와 이슬람식으로 도살되지 않은 고기, 죽은 짐승의 고기와 피, 내장 등을 먹지 않는 것이 관례

- 술을 권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남.

- 쿠웨이트는 주류, 마약 반입을 철저히 금하고 있어 입국 시 일체의 주류를 소지해서는 안됨. (마약 반입은 최고 사형)

○ 인사

- 남성 간에는 악수교환이 일반적인 인사법

○ 선물

- 이슬람 문화는 뇌물수수를 금기시하기 때문에 선물전달에 유의

- 특별한 기회에 소박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함.

○ 약속

- 현지인은 시간관념 부족

- 비즈니스 미팅의 경우 잦은 연락을 통해 약속을 지키도록 유도

사회문화

○ 가부장적인 가정생활

- 남편의 권위주의, 남아선호사상

- 사회발전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여성인권 및 사회진출 요구 중

○ 결혼문화

- 부족주의 시대관습 계승하여 근친간의 결혼형태가 만연

- 혼인을 위한 신랑의 막대한 지참금 부담이 사회문제화

관습및 체류시 주의사항

○ 관습

- 전통적 회교국으로서 사회생활의 근간을 이슬람 교리에 두고 있음.

- 대가족제도를 유지하고 있으나 사회발전에 따라 점차 핵가족화 경향

- 이슬람 교리에 따라 4번까지 중혼이 가능하나 중혼은 점차 줄어들고 있음.

- 매춘, 음주, 돼지고기, 이자놀이, 도박 등은 금기사항

○ 체류 시 주의해야 할 사항

- 이슬람교도가 아닌 경우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지 말 것.

- 기도하고 있는 사람의 앞을 지나가거나 말을 걸지 말고, 기도할 때 까는 담요를 밟지 말 것.

- 친한 경우가 아니면 종교나 상대방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말 것.

- 여주인이나 여자식구를 위해 선물을 사오거나, 여주인의 안부를 물어서는 안되며 거리에서 여인의 사진을 찍어서는 안됨.

- 여성의 경우 옷차림은 정숙하여야 하며 어깨를 드러내는 옷은 피해야함.

- 라마단 단식 기간 중에는 아랍인 앞에서 먹거나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지 말 것. (위반 시 구금)

- 특별히 의심되지 않는 쿠웨이트인이 제공하는 아랍커피와 홍차는 받아 마시는 것이 예의임.

- 물건을 주고받을 때는 바른손을 사용

- 쿠웨이트인과 면담 시, 신발바닥이 보이도록 앉는 것은 실례

- 길거리나 주요건물 앞에서 사진촬영 금지

(적발 시 벌금 부과 및 차후입국 시 입국금지 됨)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외교관계

○ 우리는 수교(79.6) 직후 최규하 대통령이 방문(80.5)하는 등 에너지 공급국․건설시장으로서 쿠웨이트와의 협력을 중시

○ 쿠웨이트는 우리의 걸프전 지원을 계기로 주한 대사관을 개설(92.11)하고 국제무대에서 우리입장을 지지하는 등 對韓중시 자세를 견지

- 우리는 걸프전(90.8-91.2)시 5억불, 군의료진 200명, 수송장비 및 장병 150명 지원

○ ‘사바’ 총리 방한, 이해찬 총리(05.11) 방쿠, 노무현 대통령 방쿠(07.3) 등 고위급 인사 방문을 통한 양국간 협력 관계 공고화

○ 주요 외교 연표

- 1962. 12 우리의 쿠웨이트 승인

- 1972. 7 駐쿠웨이트 통상대표부 설치

- 1979. 6 韓․쿠웨이트 외교관계 수립

- 1979. 7 駐쿠웨이트 대사관 개설

- 1992. 11 駐韓 쿠웨이트대사관 개설

주요협정 체결 현황

- 항공협정(1982.1)

- 문화협정(1983.2)

- 경제기술협력 및 무역증진협정(1984.2)

- 항공운수면세약정(1985.12)

- 이중과세방지협약(2000.6)

- SOFA협정(2003.4)

- 투자보장협정(2004.7)

- 경제기술협력협정(2005.11)

- 형사사법공조조약(2007.3)

- 범죄인 인도조약(2007.6)

교역현황

2007년도에는 전년 대비 95% 증가한 13억달러를 쿠웨이트에 수출하였으나 2008년도에는 다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됨. 수출물량의 큰 부분을 차지한 선박 수주물량의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으로 예상됨.

년도

수출

수입

수지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금액

2004

419

42.7

3,832

20.1

-3,413

2005

458

9.3

5,977

56.0

-5,519

2006

670

46.2

8,133

36.1

-7,463

2007

1,306

95.0

8,747

7.5

-7,441

2008. 1-8월

433

-46.9

8,677

65.8

-8,243

자료원:kita.net (단위: 백만 달러, %)

주요 수출입품목

< 주요 수출품목 >

순위

품목명

2007

2008. 1-8월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1

자동차

159

38.7

114

12.9

2

기계요소

39

-18.0

36

37.3

3

종이제품

15

20.9

21

143.3

4

선재봉강및철근

24

109.2

20

-16.4

5

전선

49

25.4

20

-32.2

6

철강판

39

-36.0

19

-34.5

7

주단조품

34

19.7

18

-41.0

8

철강관및철강선

18

-20.3

17

5.2

9

고무제품

22

-8.9

17

5.6

< 주요 수입품목 >

순위

품목명

2007

2008. 1-8월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1

원유

6,779

4.7

7,330

83.3

2

석유제품

1,508

25.3

946

-7.9

3

LPG

428

4.7

355

85.4

4

무기류

0

-

14

-

5

정밀화학원료

0

-

7

-

6

기타금속광물

2

-

6

-

7

알루미늄

5

-24.3

6

76.1

8

동제품

14

124.6

5

-46.4

9

합금철선철
및 고철

0

-

4

-

자료원 : kita.net (단위: 백만달러, %)

우리기업의 투자 현황

○ 한국기업의 최근 쿠웨이트 투자는 4 년간 연간 1~2 건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며 이전 투자 건까지 합쳐도 총 9 건, 762 만 달러 규모로서, 그나마 단독 투자가 아닌 쿠웨이트 현지자본과 합작투자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임.

○ 한국기업 단독 투자 방식의 경우 현지 관습 및 문화가 한국과 크게 달라 이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 판단되며, 또한 쿠웨이트에서는 비즈니스전반에 걸쳐 현지인 에이전트를 통한 거래관계가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합작투자가 주로 선호되고 있음.

○ 또한 현지 법인형태가 아닌 건설 공사 수주 및 시공을 위해서 현대건설, 현대 중공업, SK 건설, 대림산업, 두산중공업, 휴먼텍코리아, 대한전선 등이 원청 업체로 현지 공사에 참여하고 있음.

○ 진출기업

회사명

투자

투자내역

투자금액

(주)현대엔지니어링

2004

현지 법인명 : TIES Intreranational(지분 10%)

활동 : 건설공사 Engineering 및 Project Mar분야 수주 활동 및 사업수행

180천달러

(주)SK 건설

2005

현지법인명 : SBC Gneral Tradingand and Contracting Co.w.L.L(지분 49%)

영업 활동 : 건설 공사수주및 공사수행

424천달러

Jason Korea

2006

현지 법인명 : Janson Gulf Trading & constructing Co(지분 49%)

영업활동 : 건설자재, 에어컨 수입판매

261천달러

○ 건설공사 수주 및 시공현황

- 08년도 수주 현황 : 3건 10.5억불

- 계약 대기중 공사 : 1건 63.7억불(제4차 정유공장)

- 시공중 공사현황 : 22건 71.3억불

- 향후 우리업체 관심공사 : 12건 250억불

○ 건설사 직원 현황

- 한국인(882명) : 건설기술자 709명, 건설가족 173명

- 제3국인 : 13,644명(인도, 필리핀, 태국, 방글라데시 등)

한국인사 쿠웨이트 방문

2005. 11. 이해찬 국무총리

2005. 12. 추병직 건교장관

2006. 1. ‘자베르’국왕서거 조문사절단

2006. 10. 진영 의원 등 국정감사단

2006. 12. 박유철 국가보훈처장관

2007. 3. 노무현대통령 국빈방문

2007. 4. 김명곤 문광부장관, 조배숙 문광위원장 등 의원단 (인천아시안게임 유치)

2007. 5. 김원웅 국회 외통위원장 일행

2007. 8. 전윤철 감사원장

2007. 9. 임성준 국제교류재단이사장(여수세계박람회 유치사절단장)

2007. 11. 김은기 공군 참모총장

2007. 12. 김흥걸 국가보훈처 차장

2008. 5. 김준규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쿠웨이트 인사 한국 방문

2002. 10. Muhammad 외교담당 국무장관

2004. 7. Al-Sabah 총리

2004. 11. Mubarak 국방장관

2005. 9. 한-쿠 의원친선협회 의원사절단

2006. 8. Al Khaled 노동장관

2007. 3. Bader Al Humaidhi 재무장관

2007. 6. Muhammad 외교장관(ACD 외교장관 회의 참석)

2007. 6. Abdullah Maatoq 법무장관

2007. 10. Ali Fahad Al-Mudhaf 산업청장

2007. 11. Adel Al-Wugayan 기획개발 최고위원회 사무총장

2008. 7. Sheikh Nasser 총리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