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의 로즈밸리 하이킹을 함께 하며 친해진 일행들을 전부 꼬셔서 술과 안주가 무제한으로 나온다는(!)

투어에 끼기로 했다. 이름하야 '터키쉬 나이트'.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맥주는 물론이고 터키의 전통주인

'라키'가 나온다고 했다. '라키'란 포도를 증류해서 만든 50도짜리 술인데, 겉으로 보기엔 투명한 소주와 같지만

향이 매우 독특하고 맛도 묘하며, 물에 희석시키는 순간 하얗게 우윳빛으로 변해버리는 신비의 술이다. 사실 지금

우리 집에도 한병 있지만, 그 강렬한 이국의 맛과 향 때문인지 잘 손이 안 가는 게 사실이다.
물론 술이 무제한이라는 이유 이외에도, 터키의 전통춤인 밸리댄스를 보여준다는 이유도 있었다. 본전 생각에

저녁까지 굶고 저녁 8시에 숙소에서 출발, 우리 숙소처럼 똑같이 바위를 파고 만들어진 큼지막한 무대 옆에

차려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안주로 나온 과일과 과자를 계속해서 리필하며 밸리댄스와 수피댄스, 그리고

이름 모를 다양한 전통 춤들을 구경했는데, 아쉽게도 밸리댄스는 그다지 오래 공연되지 않았다. 이미 익숙한

밸리댄스보다 더욱 눈을 끌었던 것은, 남자분이 치마같은 하얀 옷을 입고 몽환적인 음악에 맞추어 내내

뱅글거리며 돌던 수피댄스. 이슬람 신비주의..만물이 쉼없이 유전하며 변화하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다는 그 댄스를 집중해서 보다보니, 지금까지 먹고 마신 술과 안주들이 뱃속에서 함께 뱅글거리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마지막은 거의 나이트 분위기,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무대로 올라와 춤을 추던...그런

히피스러운 분위기랄까. 비록 몸은 뻣뻣한 나무토막같았지만, 마음만은 그들과 함께 웃고 즐길 수 있었던 밤.

다음 날 눈떠보니 7시 반, 전날의 피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몸띵이를 채근하며 일어났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여러

투어 중에서 뭘 해야 하루가 알찰까 생각했지만 어차피 이곳이 워낙 넓고 기기묘묘한 형상들도 모두 신기한 터라,

굳이 다 '발자국 찍으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지 싶다. 이스탄불에서부터 함께 움직이던 누님들과 함께 사파리 지프

투어를 하기로 했다.

터키 중부의 황량한 지형, 그곳의 기묘한 풍광은 역시 스타워즈에서 배경으로 삼을만한 이질적이고도 낯선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곳을 마냥 달렸던 우리의 지프. 이름 까먹은 저 터키아저씨..영어는 짧았지만 손은 길어서,

은근슬쩍 스킨십을...ㅡㅡㆀ 누님과 휴학생 아가씨, 터키를 끝내 같이 돌았음 무지 잼있었을 멤버였는데.
울 뒷차엔 프랑스 할무이 한분, 글구 대구 커플 한팀..거기에 수학과외샌님들이랑-이분들한테 '아주머니'이랬다가

맞을 뻔했다. 그리고 회사 그만두고 몇달째 여행중이시라던 그 '여행속물' 아저씨 한 분. 여행 다님서 만나는

한국인은 딱 세 부류였다. 좀 젊다, 어리다 싶음 대학생, 약간 나이가 있다 싶음 학교 선생님들, 글구 어정쩡하니

왠지 안 어울려보이면 '백수'..회사 관두고 무언가 심기일전을 꾀하거나 애초의 꿈을 수복하거나. 학교 선생님들

참 많이도 만났다 그러고 보면.

차유신, 젤베, 데브란트, 우치사르..많은 곳을 돌며 그 루트도 참 괜찮다 싶던데, 황량한 벌판이나 완연한 시골길,

거친 오프로드에서 먼지를 뽀얗게 날리며, 때론 시냇길을 차로 주파하며 '물쑈'를 하기도 하고. 보면 볼수록

터키인들 참 친절하고 적극적이랄까, 지프타고 가면서 계속 손흔들고 인사하며 푸근하게도 웃고 다닌 것 같다.

어설픈 웃음이나 경직된 미소, 금세라도 무표정으로 바뀔 듯한 위태한 미소가 아니라 정말 여유있는 웃음. 그걸

여행 도중에 계속 갖고 다녀야지, 하고 다짐.


걍 대략 산비탈에 벽돌로 올려세운 집들이 아니라, 산을 깍아내고 만든 이 촘촘한 공간들. 때론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전체의 윤곽을 미처 알아보지 못할 만한 풍경들이 있는데, 카파도키아의 풍경 역시..지나고 나서야 무슨 길을

밟고 무슨 풍경 사이에 자신이 틈입했었는지 알 수 있는 법인갑다. 자연과 인간, 무슨 교양 수업 제목틱한 느낌을

카파도키아에서 참 실감나게 얻었더랬다.

어딜 가나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섞여 있기 마련이라지만, 대체로 울나라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무뚝뚝해

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대체로 터키, 그리고 이집트인들은 무지 친절하다. 머...여자들끼리 다님 좀 안

좋다는 터키 유학생의 투덜거림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이집트와는 달리 터키에선 아무한테나 카메라를 맡겨

사진을 부탁해도 잘 찍어주었다. 이것저것 말도 붙이며 호기심과 환대를 표하기도 하구. 이집트서는 카메라를

거부하거나, 왠지 카메라 받음 바로 도망갈 듯한 우려로 인하여 혼자 여행다님의 설움을 많이 느껴야 했었지만.

우치사르 정상에서 어느 붙임성좋고 잘생긴 터키 남성의 도움을 받은 단체 사진.

우리가 움직였던 코스. 그리고 우리가 묵었던 LAZER Pension.

여행은 줄곧 해뜨는 것으로부터 해지는 것까지의 주요 일정과, 해진 이후의 옵션으로 구성되었더랬다. '해가 진다',
 
'해가 뜬다'란 표현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국면과 형용불가의 장면들을 담고 있는 것인지, 몇십번을 봤건만

질리지가 않았다. 대체로, 터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할 듯한 곳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계속해서 한탄.

리가 머물던 숙소는 기묘한 형태의 바위를 파내어 방을 만들어낸, 그런 운치어린 곳이었다. 그보다 더욱 좋았던

건, 혼자라 생각하고 떠났던 여행이 어느새 정감어린 사람들에 둘려진 채 따스한 배웅까지도 받는 '럭셔리'한

것으로 바뀌었단 사실. 카파도키아를 떠나 지중해와 '나무 위의 집'-허클베리 핀이 살았을 법한-이 기다리는

올림포스로 떠나던 날 밤...누나들의 환송, 그리고 '아저씨'의 촬영.




기타 참고자료..도움이 되려나 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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