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쨌건 이 블로그는 여행 이야기를 차곡차곡 쟁여두고 싶었던 공간이라, 요 며칠의 딴 글들을 씻어내릴 만한

쉬어가기용 & 분위기 쇄신용 포스팅을 시도..

방콕의 주말시장은 우리네 재래시장같다. 좁고 살짝 지저분한 시멘트 발린 길 양쪽으로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입구쯤에서부터 눈길을 팍 끌었던 가방. 저건...부분을 재활용한 걸까 아님 단지 흉내만 낸 걸까.

실제로 저런 걸 들고 다닐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웃기다기보단 살짝 어이가 없을

거 같기도 하다. 저런 짧막한 가방에 신발까지 맞춰 신는다면 다갈빛 카우보이모자까지 쓴 카우보이 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불끈불끈 들 거 같은데, 혹자는 그런 걸 똘끼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그냥 보는 게 더 재미있지 싶다.

레드 하우스. 맑스의 초상화와 공산당 선언의 전문이 새겨진 초록색 티를 기념품삼아 산 곳이다. 체게바라, 로자

룩셈부르크, 맑스, 마오쩌둥, 레닌..온갖 혁명가들의 초상화가 전시된 그 공간에는 붉은 별과 붉은 목도리, 그리고

붉은 색 휘장이나 배지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왠지 보고 있으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흥분되는 빨간색. 그치만

투우에서 빨간색 천을 휘둘러봐야 소는 색깔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했다.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다는.

2006년에 태국을 방문할 즈음이나, 2009년 지금이나. 그리고 사실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이후부터 줄곧

국제 이슈로 남아있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 정립 문제. 이 성조기 무늬가 들어간 쪼리는 팔레스타인에서

수입되었다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얼마전 부시가 신발에 맞고서야 알게 된 중동 지역의 문화적 특징이랄까,

전통 중 하나는, 발에 밟히거나 신발에 맞는 건 최악의 혐오감을 표현한다는 사실. 그러니까 미'제국'의 화신

부시와 성조기가 발(신발) 아래에서 밟히는 건 이미 오래 전부터 예정되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대학교 때 체게바라 평전이 갑작스레 대중적인 인기를 받았었다. 이미 평전을 그 전에 읽었고 평전살 때 받았던

체게바라 배지를 가방에 자랑스레 달고 다니던 나는, 왠지 나의 체게바라가 '세속화'되는 것 같아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치만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인 잘생긴 체게바라, 그리고 역시 멋지게 생긴

맑스..그들을 어떤 식으로 해석해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각자에게 달려있는 몫인 거다. 그들의 이미지와

메시지, 아이디어가 상품으로 유통되는 건 사실 자연스럽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일 듯.


난 이내 그런 '상품으로서의 체게바라'에 익숙해졌고, 나름 긍정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태국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마주친 요 혁명가의 전당 같은 샵에서 티셔츠를 샀다. 사진 가운데에 있는 어두운 녹색 바탕에

하얀 맑스 얼굴이 둥둥 떠있는 티. 한국에 돌아와선 신나라~ 하면서 입고 돌아다녔었다.

휴지가 콧구멍에서 나오고, 입에서 나오고, 심하게는 가슴에서도 뽑혀 나오게 만드는 마법의 휴지걸이.

주말시장 길거리에 벌여진 가판에선, 태국의 복권을 팔고 있었다. 다소 조잡해 보이는 인쇄물이지만 저렇게

열맞춰 다소곳이 놓여있는 모습에서 왠지 경탄해 버렸다. 정리하기 힘드셨겠어요.

잠시 보고 있으려니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한장씩, 두장씩 사가는 듯 하다.

우리네 재래시장에선 얼음을 가득 재여놓은 판 위에 생선을 보기좋게 깔아놓지만, 여긴 그런 건 안 보인다.

더운 날씨 때문일까. 아마도 반건조쯤 된 듯한 생선들을 한 마리씩 저렇게 비닐팩 안에 담아놓고 팔고 있었다.

하긴 날씨도 덥고 날파리 같은 것들도 많을 테니 저렇게 하는 게 위생적인 면에서나 신선도 면에서 나은 방법이지

싶다. 역시, 지역의 특성에 적응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바뀌는 법인가 보다.

주말시장엔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발걸음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동대문시장에서 좌판을 벌인 분들이 핏대선

목청으로 손님을 끌듯 상인들은 태국어로 뭐라고뭐라고 시끄럽게 외치고, 그 소리에 끌려들듯 사람들은 잔뜩 쌓인

옷가지무더기로 몰려든다.

그 와중에 뻥 터진 해맑은 웃음으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발랄한 마네킹. 그녀는 모든 걸 웃어버리고 치울 거 같다.

이거 뭐라고 하더라..짚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전통적인 저주 인형은 '제웅'이라는 허수아비인데, 그 비슷한 거같다.

부두교랑 태국이랑 관련이 있나, 아님 태국의 전통적인 저주 인형인 걸까..여튼, 내가 설명들었던 바로는 이 곳의

저주 인형을 좀 귀엽게 캐릭터상품화한 거라던가.

* 볼 때마다 까먹는 단어 : 짚으로 만든 인형 제웅에 대해서...(http://mybox.happycampus.com/godrnehd/375722)

제웅이란 짚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든 것. 추령(芻靈) 또는 처용(處容)이라고도 한다. 뒤에 가서 종이나 형겊에 그린 화상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사람의 나이가 나후직성(또는 제웅직성;나이에 따라 운수를 맡아보는 아홉 직성의 하나)에 들면 액운이 들어 만사가 여의치 않다고 하는데, 이 직성은 남자 11세, 여자 10세를 시작으로 9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온다고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직성이 든 사람은 제웅을 만들어 거기에 그 사람의 옷을 입힌 다음 푼돈을 넣고, 이름과 출생한 해의 간지(干支)를 적어 음력 정월 14일 밤에 길가나 다리 밑에 버린다고 한다. 옛날에는 정월 14일 밤에 아이들이 문 밖에 몰려와 제웅을 달라고 청하면 선뜻 내주었고, 돈만 꺼내고 아이들이 길에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이를 제웅치기[打芻戱]라고 하며, 그 유래를 신라 구역신(驅疫神)인 처용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무녀가 제웅을 만들어 비는 경우도 있었으며,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과 《계축일기(癸丑日記)》에는 제웅을 만들어 남을 저주하였다는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 『다음 백과사전 p.14150』

어디선가 단체 관광객이 왔다. 시장통 한쪽이 떠들썩하더니 빨간 색 티를 맞춰입은 학생스러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미소의 나라 태국이라 했던가, 내가 카메라를 여기저기 들어대는 걸 보더니 환호성을 터지고 온통

손끝에서 브이가 만발한다. 수학여행쯤 온 건가 싶은 밝은 미소의 아이들.

그런 왁자한 시장통 분위기 한 켠에선,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단정하게 생긴 여학생이 단정하게 앞머리를

내리고선 짙은 핑크색 리코더를 청승맞게 불고 있었다. 뭔가 설명이 붙은 종이상자를 앞에 두고는 차분한

표정으로, 마치 시장통의 시끌벅적함이나 왠지 들뜬 분위기엔 전혀 굴하지 않는다는 듯, 학교 교과서에서

나왔던 듯한 심플한 가락을 뽑고 있었다.

보너스 샷...이랄까. 이런 식의 어처구니없는 디자인은, 그냥 보고 웃으라고 한두벌 만들어 놓은 거겠지? 그렇지만

사람들이 전부 여유롭고 마음 넉넉해 보이는 이 나라, 태국에서라면 왠지 저런 거 입고 다녀도 모두들 허허 웃고

말 거 같다. 갈수록 각박해지고 자기검열도 심해져가는 한국에서라면..음..웃고 치울 수 있는 여유도 갈수록

줄어가는 것 같은데, 아마 저런 티를 입고 돌아다니면 이곳저곳에서 치일지 모르겠다.(머..진지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남근주의가 반영된 거라 말할 수도 있을 거다. 그리고 한국에선 이런 걸 웃음의 소재로 삼기에는 아직

사회적 상식이나 암묵적 합의의 수준이 그에 이르지 못해서..개그나 유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인 거 같아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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