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표시도 남다른 사우디아라비아. 터번을 감은 턱수염 아저씨와 머릿수건 히잡을 쓴 망사 속의 아가씨가

각각 남여 화장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왠지 여성은 검은 색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남성보다 은밀하고 숨겨진 느낌이 든다. 단순히 조명이 직접

때려지지 않아 마침 광택이 조금 덜했던 걸 넘 크게 해석한 걸까.

남성이라면 잠시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난 첨 화장실에 들어가서 이걸 보는데, 앉아서 쓰란 건지 서서 쓰란 건지

순간 혼란스러운 느낌마저 일었었다. 저 거창한 칸막이도 흔히 보는 소변기 사이의 칸막이라기엔 좀 거시기하다.

비록 생긴 건 좌변기같이 길쭘하게 생겼지만, 어쨌든 이건 남성용 소변기. 서서 쓰는 거다.ㅡㅡ;

아침부터 시작한 상담회인데, 하루 종일 실내에만 있으려니 하도 답답해서 잠시 호텔 밖으로 나섰다. 여전히 호텔

문 앞에서 사람들과 짐들을 스캐닝하고 있는 금속 탐지기. 안그래도 내 손에 쥐어진 카메라를 불안하게 경계하던

보안요원은 내가 미친 척하고 카메라를 들이대자 즉각 반응한다. 찍지 말랜다.


알았다고, 웃음기조차 없는 그 얼굴이 인상쓰면 정말 무섭겠다 싶어 얼른 밖에 나섰더니 어느새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아 있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은 알 파이잘리야(Al Faisaliah) 타워, 사우디 리야드의 가장 높은 건물 중의

하나이자 대표적인 랜드마크라고 한다. 붉고 노란 라이트불빛만 늘어뜨리고 호텔 앞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

초점이 안 맞은 채 찍힌 사진이지만, 왠지 이 딱딱하고 적대적인 공간을 조금이나마 부드러운 이미지로 기억시켜

줄 것 같은 사진. 하품이라도 하고 눈에 물기가 잔뜩 어린 채 쳐다보는 세상같다.

다시 상담회장으로 돌아가는 길, 불과 십 분도 안 되는 짧은시간 건물을 나갔다 들어왔지만 예외없이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했다. 우선 플라스틱 바구니에 카메라와 주머니속 잡동사니들을 빼놓고는 검은색 고무로 된 컨베이어

벨트 위에 얹는다. 그리고 그 바구니가 거의 소형차 마티즈만한 사이즈의 기계를 통과하는 동안 나는 공항에서

흔히 보는 탐지기를 통과해서 스캐너로 사지를 스캔당한다. 통과. 당할 때마다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상담회장 바로 옆에 카펫 판매장이 있었다. 호텔 내 기념품점이야 어느 나라에나 있고 이곳에도 이런저런

기념품을 파는 매장이 따로 있었지만 카펫을 파는 곳이 아예 이렇게 따로 있을 줄이야. 잠시 들어가서

한바퀴 돌아보며 카펫의 문양과 촉감을 구경하고 나왔다. 따스하고 보들보들한 느낌이 손끝을 스치는 게

둘둘 감고 있으면 포근할 거 같다.

메리어트 리야드 호텔의 1층 로비. 은근하지만 화려한 조명과 야자수가 휘영청 늘어진 느낌이 그럴 듯 하다.

두바이 공항과 달랐던 점은 저 야자수들이 전부 진짜였다는 점, 그리고 잎사귀에 먼지가 낄 새도 없이 잘 관리되고

있어서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였다는 점. 역시 호텔은 가오로 먹고 산다.

별 모양으로 늘어뜨려진 조명과 저 멀리 초대 국왕, 선대 국왕, 그리고 현재 국왕의 초상화가 보인다. 흡연이

자유로운 아랍 문화답게 호텔 로비에서던, 복도에서던 흡연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

내가 들은 기억으론 가운데가 초대 국왕, 왼쪽이 선대 국왕, 그리고 오른쪽이 현재 국왕이라고 했던 거 같다.

가운데 아저씨가 입고 있는 검은색 옷(사실은 왼쪽 오른쪽 아저씨들도 입고 있지만)은 굵은 금색 실로 치장되어

상당히 화려한 느낌을 주는 의례복으로, 왕가의 사람들이 공식적 행사에 참여할 때 입는 복식이라고 한다.

호텔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엘레베이터 앞 재떨이. 거리낌없이 아침부터 담배를 피워대는 투숙객들 때문에,

두 개층을 오르내리며 겨우 흐트러지지 않은 재떨이 모래무지를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알고 보니

수시로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치우고 모래를 일부 걷어내고는 다시 메리어트 호텔 마크를 저렇게 찍어 놓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산책을 겸해 호텔 밖을 또(!) 나섰다. 호텔 바깥의 녹색 공간은 시간맞춰 분사되는 이런 스프링쿨러

시스템에 크게 빚지고 있었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몇십분 동안 쉼없이 흩뿌려지는 물들, 중동권에서 물은

기름보다 비싸다던가.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자 무진장한 수준의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는 사우디에서 더욱더

실감나는 말이다. 심지어 이들은 천연가스는 아직 개발도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상태인 거다.


보안요원이 따라나오더니 사진 찍지 말랜다. 왜!! 냐고 묻고 싶었지만, 역시 무서운 얼굴에 쫄아버렸다. 나무에

물주는 거 찍겠다는 나도 니들눈에 웃길지 몰라도, 그걸 굳이 막겠다고 나선 니들도 웃기다 참.

우선 알겠다고 하고 몇걸음 내딛다가 다시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건 그 뒷켠의 화단. 물기없이 부석부석한 흙에서

비실대고 있는 꽃들이 안쓰럽다. 호스가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저런식으로 물을 뿌려주고 있었지만 글쎄..축 쳐진채

잔뜩 목말라보이는 저 꽃의 뿌리까지 촉촉하게 젖어서 꽃잎이 팽팽해지려면 한참 걸리지 싶다.

근데 이 꽃...한국에서도 많이 봤던 거 같은데, 이름도 알았던 거 같은데 영 기억이 안 난다.

꽃에 대고 사진찍는 것도 못마땅했나보다. 여기까지 다시 쫓아나온 보안요원, 오늘은 아침부터 보안요원하고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숨바꼭질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엔 짜증을 낸다. 자꾸 이러면 카메라를 검사해서 사진을 다 지워

버리는 수가 있댄다. 나도 대체 왜, 왜 꽃이나 나무도 못 찍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게 규정이랜다. 호텔, 공공건물을

촬영하는 게 금지되어 있다나. 사실 카메라를 검사하겠다는 으름장에 살짝 쫄아있던 상태였는지라, 고분고분 말을

듣기로 했다. 카메라 안에는 이들 왕의 초상화도 담겨 있는데 행여 걸리면 어찌되겠다 싶어서.


그래도 이대로 들어가긴 따땃한 사우디의 아침햇살이 너무 아쉽다. 호텔 안의 에어컨 바람에 질린 참이었다.

알 파이잘리야 타워 쪽 아침 풍경을 한번 돌아보았더니, 이번에는 타워 위쪽에 있는 구 형태의 조형까지 뚜렷이

보인다. 그리고 발톱처럼 유선형으로 건물을 타고 오르는 곡선의 실루엣도 선명하다.

메리어트 리야드 호텔 옆에 이어지는 정원, 그리고 부속건물들. 이건 대체 무슨 건물인가 싶어서 크게 호텔 주변을

돌아보기로 맘먹었다. 호텔보다 화려하고 얼마 되지 않은 새 건물 같은 게, 뭔가 특별한 용도가 있지 싶었다.

알고 보니 허무하다. 메리어트에 딸린 bodyline Health Club & Spa랜다. 사우디의 부유층들은 운동량이 정말

얼마 안 된다고 한다. 당뇨 등 성인병이 만연해 있고 양고기 등 기름진 음식에 대한 경계심도 없는 데다가, 따로

운동을 해서 건강관리를 해야겠다는 의식도 없는 탓이라고 하는데 여긴 장사가 될런지 모르겠다. 아직 한국같은

'웰빙' 바람이 불어닥치지 않은 무풍지대, 사우디아라비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