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에 제주도 출장을 가서 머물렀던 펜션. 제주 컨벤션센터와 가까워서 좋기도 했지만, 일단 통나무로 이쁘게

지어진 2층짜리 펜션이 넘 이뻐서 좋았다. 더구나 2층은 뾰족한 세모꼴 천장이 그대로 살아있었다는.

펜션 자체도 이뻤지만, 앞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귤밭이 정말. 2008년 10월 말께의 노란 제주도 귤밭.

워낙 귤나무가 무성한 잎사귀들을 달고 있어서 무슨 정글 속에 노란 귤 한 박스쯤 쏟아 부어놓은 듯한 느낌.

신라호텔이었던가, 여기 전복죽이 아주 맛있다는 이야기에 죽 한사발씩 먹고 산책삼아 걸었던 호텔 정원.

수영장 바닥을 파란색으로 칠하는 건 참 멋진 아이디어였던 거다. 시원해 보이고, 맑아 보이고, 그래서

뛰어들고 싶게 만드는 파랑물이 일렁일렁. 옆에 있는 파라솔들 역시 매력도 아닌 '마력' 아이템.

신라호텔 뒷길 산책로가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길래, 그래? 이랬더니 여기에 바로 그 쉬리 마지막 장면을 찍은

벤치와 언덕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휘적휘적 걷던 중에 마주친 (징그러운) 잉어떼들.

옛날 이야기 중에 물에 빠진 사람을 물고기들이 수면으로 떠밀어올려 살았다거나, 적들에게 쫓기던 와중에

물고기들이 물위로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어 큰 강을 건널 수 있다거나. 이걸 보면 왠지 있음직한 일이다.

어디 한번 먹다 죽어봐라, 하는 심정으로 먹이를 뿌려댔을 거다 분명히.

그러고 보니 이 날도 꽤나 흐렸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한걸음 한걸음 가까워지는 해안가. 깜장이 현무암

울타리를 넘어서는 초록빛 싱싱한 풀밭에 들꽃이 지천이었다.

이게 바로 '쉬리 벤치'. 한석규와 김윤진이 나란히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When I dream..

그러고 보면 '쉬리'란 언젯적 작품이냐..1999년이었을 거다. 근데 쉬리의 영문명이 Swiri라는 건 방금 알았다.


일망무제의 바다, 터무니없이 큰 물웅덩이를 눈앞에 두고 있으면 왠지 막막해지기도 하고, 멍해지기도 하고, 그렇다.

해변을 따라 제주도에서 흔치 않을 모래사장이 곱게 이어져 있었다.

돌아오는 길엔 억새가 깃발처럼 나부꼈다. 호텔 시설을 굳이 사용하지 않고도, 단지 산책로를 걷고 쉬리 벤치에

한번 앉아 보는 것도 괜찮다 한다. 지나는 길에 잠깐 차 세우고 걸어봄직한, 짧막하지만 꽤나 이뿐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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