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동 인근의 어느 까페였던 거 같은데, 무심코 들어간 화장실에 남녀 구분을 이렇게 심플하고 명료하게 해놓은 거다.


원목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문짝에다가 하얀색 페인트로 깔끔하니 눈에도 잘 띄고 이쁘기도 하고. 맘에 들었다.


여자화장실에도 마찬가지, 다소 밋밋해보였던 남성의 그것에 비하면 제법 배려를 많이 한 듯 큼지막한 모양새를


띄고 있다는 점에서 디자이너가 얼마나 섬세하게 고민했는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겠다.




런던 타워 브릿지 인근의 애프터눈티 까페에서 마주친 화장실 표시. 남자와 여자, 트럼프의 킹과 퀸의 이미지를 그대로


갖다가 화장실 표시로 쓰고 있었다. 여왕이 통치중인 나라에서, 왠지 트럼프도 영국에서 생겨났을 것만 같은 데다가,


젠틀맨이란 표현 역시 영국에 맞춤한 표현이다 보니 여러모로 절묘한 표시란 생각.


남자용입니다. 젠틀맨, 킹.


여자용입니다. 레이디, 퀸.




전주의 숨어있는 까페, 나무라디오. 혹은 나무라듸오. 오랜 한옥집의 얼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까페로 탈바꿈한 곳인지라,

 

나름의 따뜻함과 오랜 목재들이 빚어내는 운치가 살아있다. 게다가 잔잔한 분위기의 음악과 그걸 그대로 체현한 듯한 주인 아저씨도.

 

 

 

 

 

 

 

어슴푸레해질 무렵 들어서는 입구에 이렇게 이쁘게 반짝반짝 조명이 섰다.

 

 

벽면에 붙어있던 다종다기한 낙서같은 모양새의 나무라디오 간판..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도 주인 아저씨가 취미삼아

 

나무를 만지시나본데, 하나하나 꽤나 품과 시간을 들이셨을 법 하다.

 

 

 

 

자전거를 타고 피어39에서 금문교를 지나, 그만큼의 거리를 또 달리고 나면 소살리토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처음 도착한 여행지에 들렀을 때 으레 그러하듯 다짜고짜 여행안내소로. 여기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요?

 

왠지 현지에서 사시는 분들의 추천은 가이드북과는 달랐던 경험에서 나온 건데, 역시나 새하얀 백발이 눈부신 할머니의

 

카랑카랑하고도 자부심 넘치는 한 마디. 꼭 봐야 하는 건 없지만, 한나절 여유롭게 거닐기엔 딱 좋은 사이즈와 분위기가 있답니다.

 

소살리토 초입에 들어서자 바다넘어 보이는 샌프란시스코의 마천루.

 

 

 

그리고 해변의 돌들을 가지고 아주아주 미묘하게 균형을 잡아 세우는 예술작업중이신 예술가 아저씨.

 

 

샌프란시스코의 도로변에도 비슷한 표지가 있었는데, 소살리토의 표지는 생선 모양으로 조금 다르다.

 

그리고 소살리토를 돌아볼 때 일종의 이정표가 될 수 있는 분수. 삐에로처럼 고리눈을 한 채 활짝 웃는 표정이 괴랄하다.

 

미국의 소도시, 작은 마을에서 왠지 인도 냄새가 나는 코끼리상을 볼 줄은 몰랐는데.

 

샌프란시스코나 여기나, 시끌벅적하게 공기를 찢으며 내달리는 소방차의 위용은 마찬가지.

 

 

그런데 참 번쩍번쩍, 얼핏 보기에도 관리도 잘 되어 있고 굉장히 신형인 차들이다. 새빨간 도색은 말할 것도 없고.

 

 

소살리토의 샵들, 레스토랑들, 까페들과 자그마한 갤러리들을 휘적휘적 둘러보고 나니 두어시간.

 

 

자전거 주차는 아무데나 하지 말라고 경고판이 사방에 붙어있지만, 사실 또 그렇다고 유료로 주차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사진의 포인트가 저 자전거 주차금지 표지판인 건 아니랄까.

 

 

화단이 잘 정돈된 모양새나, 천박하지 않은 간판들이 차분하게 늘어선 모양새나. 제각기 개성있는 건물들하며.

 

 그 와중에 소살리토의 메인로드로부터 샛길로 빠지는 왼갖 골목길들이 호시탐탐 여행객들을 노리고 있다.

 

 금문교를 건너 자전거로 여기까지 온 여행자들은 대개 페리를 이용해서 샌프란 시내로 돌아가는데, 대충 두어시간이면

 

돌아갈 수 있는 길이니 그냥 사람들 배타는 것만 조금 구경하다가 슬슬 돌아가기로 했다.

 

 

비지터 센터의 호호백발 할머니 말씀이 맞았던 거 같다. 뭔가 특별히 볼 게 있다거나 즐길 게 있는 곳은 아니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맞이하는 바다와는 다른 느낌의 풍경과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소살리토란.

 

 

 

전주에서 차로 조금 이동해야 나타나는 오스 갤러리, 어느결에 사람들이 수두룩빽빽해진 전주 시내 말고 좀더 내밀한 곳을 원할 때.

 

 

봄에 오면 벚꽃이 만개해 있다는 길을 한참 꼬불꼬불 달리다보면 툭, 하고 나타나는 야트막한 건물. 갤러리 느낌이 벌써부터.

 

여리지만 섬세한 겨울볕, 그만큼 희뿌옇고 존재감없는 겨울 그림자.

 

귀여운 화장실 표시.

 

그리고 통유리로 시원하게 트인 바깥 풍경과 함께, 어느 푸릇한 봄철 이 곳을 담았을 사진 몇장이 겹쳐졌다.

 

 

 

 

 

 

 

 

 

 

 

 

 

 

 

 

 

 

숙소로 가는 트램 안에서. 자그레브의 구시가 앞, 옐라치차 광장 앞에서 나를 내려줄 6번 트램 중에 섞여있는 오래된 트램 중에는

 

이렇게 객차들이 분리되어 있는 형태도 있는 거다. 왠지 앞엣 객차에선 뭔가 스탠딩 파티가 벌어지기라도 한 분위기.

 

 

며칠만에 다시 돌아왔을 뿐인데 되게 반갑다. 문을 닫고 정리하려는 꽃가게들의 풍경만 봐도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는 느낌.

 

그리고 아침, 왠지 몸이 무겁고 침대에서 나오고 싶지가 않다 했더니. 슬로베니아에서는 진눈깨비와 비를 잔뜩 맞았다 했는데

 

아무래도 이번 여행의 컨셉은 비와 눈을 온몸 가득 맞으며 돌아다니는 건가보다.

 

 

눈이 가진 질감과 부피감은 눈꺼풀 위에 날려들어 떨어질 줄 모를 때 가장 크게 실감난다. 빗물은 그저 흘러내릴 뿐 달라붙을 줄

 

모르지만 눈은 차디찬 바깥공기에 힘입어 뻗어나간 가느다란 팔다리로 시야를 가리고 마는 거다.

 

광장에 펼쳐진 난장 가운데에서 치즈를 팔던 아가씨는 눈 때문인지 손님 발걸음이 뚝 끊긴 와중에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이야기하느라

 

손이 빨갛게 곱는 줄도 모른다. 아마도 사랑이어라.

 

 

 

그리고 눈이 점점 삼엄하게 내리는 와중에도 꿋꿋한 자그레브인들의 걸음걸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노천 마켓에서 블루베리도 사고.

 

 

옆에 있는 까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과 피자 한 조각을 사먹으며 가벼운 아침식사도 하고.

 

두어번 나도 들러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던 까페. 몇몇 가이드북엔 맛집으로 소개되었던데, 에스프레소는 확실히 맛있던 곳인데다가

 

아침 시간에도 어김없이 가게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면면이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똑같길래 왠지 더욱 정감이 가던 곳이었다.

 

Shabby hostel, 아고다를 통해 찾아본 값싼 숙소 중에서 가장 가격도 싸고 위치도 최상이었던 곳이다. 10명이 한 방에 자는

 

도미토리가 한화로 2만원 선이었던가. 가격도 싸고 시설도 괜찮은 데다가, 직원들도 다들 친절해서 자그레브에 체류할 때마다

 

가능한 이 곳에 묵고 싶었더랬다.

 

 

 

그리고 플리트비체를 가기 위해 자그레브 버스정류장으로 떠나려는 참. 갑작스런 폭설 떄문에 교통 상황도 많이 안 좋았는지

 

트램과 자동차 간의 접촉사고도 났다고 하고, 왠지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트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고난 트램이 삐걱거리며 철로를 따라 어딘가로 이송된 후에야 나타난 다른 트램들. 다행히도 사고는 그리 대단치는 않아

 

트램의 자동문이 조금 찌그러진 정도, 다친 사람도 없는 거 같으니 정말 다행이었다. 어쩌면, 트램이 있어서 도심지의 교통 흐름

 

속도가 그나마 좀 여유로워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사고가 나도 크지 않은 수준에서 멈추는지도.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내 앞에 앉아계시던 두 어르신은 뭔가를 계속 이야기하며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고 계셨다. 오랜 지기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두 분은 때로는 창밖을 함께 내다보며 숙연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거나 웃음으로 화답하기도 하고,

 

굉장히 훈훈한 풍경이어서 슬쩍.

 

그리고 버스정류장 도착. 애초 이 곳은 자그레브 국제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올 때 내렸던 곳이기도 했다.

 

트램을 타고 구시가 쪽으로 들어가기 위한 중간 경유지였달까. 이제 플리트비체로 가는 버스 티켓을 사고 출발 직전.

 

 

* 교통 (Zagreb to Plitvice, 100쿠나(baggage fee 7쿠나 포함) 3시간 소요)

 

 10:30, 11:30, 12:30 하루 세 차례 운행이 전부  (2013. 3월 현재)

 

 

 

* 플리트비체행 버스가 언제든지 있는 듯이 이야기하는 가이드북 믿었다가 뒷통수 맞지 말고 미리미리 확인할 것!

 

 

 

 

시외버스 플랫폼의 황량하다면 황량한 풍경. 그래도 파랗고 붉은 색으로 도색이 말끔하게 되어 있어서 그나마 괜찮은 셈이었달까.

 

플리트비체 행 티켓, 정확하게 티켓 값으로는 93쿠나. 1쿠나가 대충 200원이라 치고 티켓이 2만원쯤 하는 셈이다.

 

그리고 플리트비체로 가는 중간중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인 건지 기사님도 내리고 손님들도 자연스레 내린 시간에 잠시 근처 구경.

 

여기는 자그레브보다 더욱 굵은 눈발이 펑펑 내리는 참이었다.

 

 

 

 어느새 나무들은 모두 새하얗게 뒤덮여 버린지 오래. 이런 식이라면 대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고지대에 위치한다는

 

플리트비체는 어떠려나 슬쩍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역시나, 세시간여 달리고 나서 '무키네 Mukinje' 마을 입구에 내가 떨궈질 때는 버스 안에 나 밖에 없었다는 사실, 오는 길 내내

 

대관령 눈꽃열차를 달리는 기분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 떨궈지고 나니 좀처럼 모든 게 막막하니 새하얗게

 

덮어있는 풍경이어서, 당장이라도 길이 끊기고 고립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부터 잔뜩 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겠다.

 

 

용이 지키고 있는 류블랴나 성의 입구. 밑에서 위로 치고 올라오는 조명을 맞은 용이 위로 솟구치는 것만 같다.

 

프레셰렌 광장에서 신나게 거리 연주중인 트리오.

 

광장 한 가운데에는 이런저런 조형물이랄까, 예술품들이 내걸려 있다고 한다. 내가 찾았을 때는 조그마한 집의 모형.

  

구시가에서 광장으로 향하는 가운데길, 다리가 세 개나 만들어져 있다. 원래 있던 다리 양 옆에 두 개의 보행자용 다리를 더했다나.

 

 

류블랴나 성으로 향하는 길, 류블랴니차 강의 양쪽 둔치를 따라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산책로를 따라 걷는 참이다.

 

해골이 숨어 있는 사진.

 

강을 따라 이어지는 노천 까페들.

 

 

류블랴나 성으로 이어지는 큰 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금세 도착한다. 특히나 구시가 쪽은 꽤나 작은 편이다.

 

류블랴나의 맨홀 뚜껑은 용이 지키는 류블랴나성의 모습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성으로 올라가는 입구는 온통 초록빛 이끼로 그득한 벽면을 따라걷게 된다.

 

 

류블랴나 성 입구에 있는 성 조감도.

 

 

금발 미녀들을 따라 들어선 류블랴나 성의 안쪽 풍경.

 

 

그리 높지는 않다 싶었는데 성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과히 뚝 떨어지는 느낌은 아닌게 야트막하다.

 

니콜라스 대성당 뒤로는 노천 시장이 열리곤 하는 공터가 내려보인다.

 

그리고 류블랴나 성에서 발견한 무려 1.5유로를 넣으면 0.5유로를 기념품 메달로 바꿔주는 기계.

 

류블랴나 성의 곳곳을 연결하는 문에도 용의 형상은 잊지 않고 튀어나온다. 마치 매직아이같이 숨어있는 녀석들.

 

 

3월 중순임에도 아직 드문드문 잊지 않고 눈이 내려주시는 동유럽의 날씨.

 

류블랴나 성의 감옥, 어디나 감옥에는 왠지 모를 냉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성 안에 있는 조그마한 예배 공간. 그러고 보면 성은 그 자체로 굉장히 자족적인 하나의 마을 같기도 하다.

 

 

기념품점에선 온통 용이다. 용, 용. 근데 참 이뻐서 몇 번을 살까말까 망설이게 됐던 저 장식품.

 

 

 

류블랴나 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언덕으로 올라가는 몇 갈래의 길로 나뉘는데, 그 코스는 흡사 남한산성에 오르는

 

숱한 등산로의 갈래갈래 갈린 길을 연상케 하는 거다. 그 길 중의 하나를 따라 걷다가 발견한 조각상.

 

그리고. 용으로 시작해서 드문드문 용이 나오다간 용으로 끝내는 류블랴나 성의 풍경.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구시가에는 두개의 야트막한 언덕을 중심으로 중세때부터 발전해온 카프톨과 그라데츠 두 마을이 있다.

 

그리고 언덕을 중심으로 형성된 두 개의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개천을 메워 조성한 거리가 바로 돌라츠 시장과 트칼치체바 거리.

 

 

성모승천 대성당을 중심으로 한 종교의 중심지 카프톨 언덕, 그리고 스톤 게이트를 중심으로 한 상공업의 중심지 그라데츠,

 

두 마을 사이 간에는 미묘한 긴장과 협력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었을 테니 아무래도 대부분의 협상과 협력은 이 곳,

 

두 마을의 경계선을 따라 이뤄지지 않았을까.

 

그런 분위기를 이어받았다고 해야 할지, 이곳은 이제 현지인과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노천 까페가 즐비한,

 

우리로 치자면 신사동 까페골목이라거나 청담동, 혹은 분당 정자동 같은 느낌의 까페골목으로 변신했다.

 

 

아직 바람이 살짝 쌀쌀한 날씨에도 대리석 보도 위로 테이블과 의자를 깔아놓고 무릎담요까지 얹어두는 센스, 그리고

 

어김없이 빈자리를 찾아드는 여유로운 사람들. 그리고 이내 피어오르는 까만 에스프레소의 하얀 김 한오라기.

 

 

붉은 지붕들 너머로 슬쩍 보이는 성 마르크 성당의 첨탑 끄트머리.

 

어느 까페 모서리에 붙어있던 왼갖 브랜드 간판들. 크로아티아 산 유명한 맥주 Karlovacko를 비롯, 하이네켄, 에딩거, 그리고

 

커피브랜드 라바짜와 전세계를 점령한 코카콜라까지.

 

 

중간중간 맘에 드는 까페 겸 레스토랑들이 보여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마침 배도 출출한 겸 그 중 하나에 입장.

 

버터를 살짝 올린 돼지고기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그리고 짙은 까만색의 흑맥주 한잔. 생각보다 포만감 가득한 맛있는 식사였다.

 

크로아티아 전통음식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 머리 희끗한 주인장 할아버지가 추천해준 음식을 그대로 따랐는데 만족만족.

 

 

 

곳곳에서 보이는 아이템들, 뭔가 가게 주인이 고심해서 포인트를 잡았다는 티가 역력한 빨간 자전거나 빨간 대문들이 눈길을 끈다.

 

 

크로아티아 전통음식말고도 아드리아해 너머 이탈리아에서 전래되었을 피자라거나 파스타류, 그리고 코스모폴리타닉한

 

국적불명의 웨스턴 음식들을 취급하는 레스토랑도 있고, 케밥이나 심지어 스시를 파는 레스토랑도 봤었지만, 그래도 이런

 

크로아티아 전통의상을 파는 가게도 보이고 대체로 크로아티아 느낌이 충만한 곳이다.

 

골목에 처음 들어올 때는 몰랐는데, 돌아나오는 길에야 그 용도가 혹시 해시계인가 싶어서, 시간을 확인해보곤 깜놀. 정확했다.

 

 

딱히 밥 때가 되었다고 사람이 더 많은 것도 아닌거 같고, 일단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며 유유자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저들이 모두 관광객인 거 같지는 않고, 그냥 크로아티아라는 동유럽 국가의 기본적인 삶의 페이스 아닐까 싶어 굉장히 부러워졌다.

 

그리고, 잔뜩 헐고 낡아서 볼품없어져 버린 거리의 뒷켠조차 이렇게 알 수 없는 운치가 서려 있는 풍경을 가진 나라라는 건.

 

압축성장을 위해 과거를 밀어버린 폐허를 계속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수고 하는, 그런 류의 개도국에선 불가능하고 근대를 리드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하는 중인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분위기가 아닐까 했었는데, 어쩌면 그건 손쉬운 핑계가 아니었는지 싶기도.

 

 

 

 

 

여기가 거기였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구시가 복판에 있는 성 마르크성당. 예전에 어디에선가 사진으로 스쳐지나갔던,

 

그렇지만 굳이 여기가 어디에 있는 건물일까 찾아보게 만들었던 그 건물이었다. 하얀 외벽에 깜찍한 지붕을 얹은 성당.

 

성모승천 대성당을 지나,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를 지나 금세 다다른 조그마한 광장, 아니 광장에 채 진입하기도 전에

 

지붕부터 대번에 시선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림이라기엔 기와 한장한장의 입체감이 너무도 뚜렷한, 그래서 흡사 레고블록을 쌓은 듯한.

 

사실 성 마르크성당의 건물 자체도 1200년대에 지어졌다니 굉장히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결코 만만치 않은 내공을 풍긴다.

 

들어서는 정문만 해도 십여명의 수호성인들이 지키고 선 걸 보면 그렇다.

 

그렇지만 저 흰색과 파란색, 빨간색이 올망졸망한 지붕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하얀 벽 위에 얹혀 있는 데서 이야기는 끝나버렸다.

 

타일 지붕은 고작(?) 1880년에야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고 하는데, 왼쪽은 중세의 크로아티아 왕국, 달마티아 지방, 슬라보니아 지방을

 

나타내고 오른쪽은 자그레브 시를 나타내는 문양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게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 더하기 달마티아 지방(현재 크로아티아의 중부 지방) 더하기 슬라보니아 지방(동부 지방)의 상징.

 

그리고 이게 자그레브 시의 상징인 셈이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까 타일 한장 한장이 선명하고 화려한 발색을 내며 각자의 입체감을

 

돋을새김하듯 지붕 위에서 어필하고 있는 모습이 더욱더 뚜렷하다.

 

성당 안에서의 촬영은 다른 여느 성당들이 그랬듯이-성모승천 대성당도 마찬가지였지만-촬영 불가. 잠시 들어가서 그 묵직하고 오랜

 

공기를 들이마시며 어두컴컴한 실내에 적응할 때쯤 다시 나와버렸다. 최소한 성 마르크성당은 밖에서 보는 게 진짜다.

 

아마 성 마르크성당 주변에는 EU 관련한 관공서랄까 정부 청사가 있는 건지 크로아티아 국기와 EU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그리고 패트롤이나 검정색 커다란 세단들도 누군가 귀빈들을 위해 대기중이었고.

 

그 와중에 경찰 아저씨의 허락을 득하고 찍은 크로아티아 경찰 오토바이의 위용. 진격의 BMW Motorad.

 

옐라치차 광장에서 성모승천 대성당, 각종 뮤지엄들, 그리고 성 마르크성당까지 그러고 보면 참 오밀조밀 잘도 붙어있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눈앞에 나타나는 굉장한 풍경들과 역사의 증거물들 앞에서 숨 한번 돌릴 여유를 찾기엔 노천 까페가 최고.

 

이쯤해서 돌라츠 시장의 노천 까페를 찾아 잠시 쉬어갈 타이밍이다.

 

 

 

 

 

100여년전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다는 구룡포항 앞의 조그마한 거리, 일본식의 '적산가옥'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곳으로 향하는

 

입구를 지나면 여느 소도시, 아니 조그마한 마을의 아기자기한 거리 풍경이 그대로 나타난다.

 

 

높아봐야 2층짜리 건물들이 어깨를 맞부비고 있는 조그마한 골목통, 그 와중에도 네모 반듯반듯하고 말끔한 분위기의

 

일본식 건물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옆엣 건물들의 어깨 사이에서 살짝 기죽어 있는 듯한 단층 건물 역시 담백한 직선과 네모로 이루어진 형태가 일본냄새를 풍긴다.

 

 

100년전의 낡은 지붕, 붉은 벽돌과 뻥 뚫린 나무창살까지 일본식 가옥거리의 이전 모습과 지금 모습을 비교한 사진들.

 

 

 

잔설이 채 녹아내리지 않은 채 하얗고 까만 일본식 기와가 얹힌 담장들이 차분하다.

 

그렇게 골목통을 따라 휘휘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일본식 가옥들은 저만치 밀려나고 또다른 생활의 풍경이 나타난다.

 

날것의 거칠한 질감 가득한 콘크리트 벽돌블록을 쌓아만든 담장 옆에는 그래도 구룡포 앞바다빛깔을 담은 파란색 칠의 대문이.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는 외계인 가면처럼 생긴 오징어들이 배를 째고서 바닷바람에 마르는 중이었다.

 

지붕위를 두텁게 덮었던 하얀 눈이불은 발치까지 끌어내려져서는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온통 녹슬어버린 파란 대문짝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풍상, 바닷바람의 짠기, 그리고 이곳 사람들의 일상..

 

 

분분이 남아있던 잔설들은 단정하고 담백한 일본식 기와지붕의 갈비뼈를 까맣게 드러냈고, 거칠고 투박한 벽돌은 축축하게 적셔주었다.

 

 

산기슭을 따라 형성된 근대문화역사거리의 가장 윗동네에 있던 초등학교는 언제부터인지 폐교된 채 방치되었다.

 

그리고 윗동네에서 내려다본 구룡포항의 저녁 풍경. 불밝혀진 노점들의 행렬 너머로 바닷물이 일렁인다.

 

 

어느 골목에서 발견한 찻집. 잠시 들러 몸도 녹이고 차 한잔을 하려 하였건만 자리도 몇 개 안 되고 문도 일찍 닫는 듯 하다.

 

 

애초엔 '근대문화역사거리'인 줄만 알고 들어섰던 골목길이었지만 꼭 그런 느낌만 담겨있던 공간은 아니었다.

 

사실 늘 새롭고 예기치 않은 풍경으로 이끌어줬던 건 이런 골목길들이 품고 있는 마력 덕분이었으니, 이곳 역시도 마찬가지.

 

 

 

 

 

겨울비가 제법 대차게 내리던 지난 1월. 포항을 지나 경주의 대릉원 앞 까페 골목에 잠시 멎었다. 겨울비도 잠시 멎은 그 때.

 

 

천년고도라는 진부한 호칭에도 불구하고 경주에는 뭔가 있다. 까페 인테리어에 이런 담백한 창살이 자연스러운 분위기.

 

 

커다란 새장 같은 전등갓에 불빛이 하얗게 스며들었다. 어느새 다시 캄캄해진 하늘.

 

야외 테라스에 내어놓은 테이블과 의자들은 흠뻑 빗물을 머금다 못해 뚝뚝 뱉어내는 중.

 

 

까페에서 단팥죽을 파는 것 역시 경주니까 그럴 만 하겠다 싶은데, 의외로 굉장히 맛있어서 깜놀. 에스프레소 꼼파냐도 달콜달콤.

 

이런 느낌의 룸, 마루보다 한층 올라간 높이가 조금 어색하지만 그래도 안에 들어가 있으면 막 아늑해지고 그러는 분위기.

 

 

그리고 이 까페 앞에 웅크린 천년 전 왕들의 무덤들, 조금 너머 하늘을 받치고 있던 야트막하지만 단단한 첨성대,

 

그런 것들과 함께인 듯 따로 그럴 듯하게 서있던 나무들 같은 풍경이 참 아름답던 경주 대릉원 너머 이차선도로 맞은편.

 

 

 

 

 

 

강릉에 가면 꼭 들르게 되는 커피 포레스트 바이 테라로사, 경포 해수욕장에서 순긋 해수욕장으로 가는 해송숲 옆에

 

슬쩍 숨어있는데, 그렇게 좁지 않은 건물 앞 주차장이 온통 차로 가득하다.

 

벽난롯불이 이글이글 열기를 내뿜는 1층의 공기가 2층짜리 높은 천장의 카페 건물을 지긋이 덥히고 있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다소 어둑한 와중에도 중간층에 걸려 있는 인형이 눈길을 잡는다.

 

 

까페 라떼랑 아포가토, 커피를 붓기 전에도 이미 초코시럽이 촉촉하게 쿠키랑 아이스크림에 젖어들었다.

 

 

바닷바람에 치이긴 했겠지만 아직 해송림의 푸른 빛이 살아있던 11월, 햇살이 문득 봄인양 하던 잠시지간.

 

시원하게 유리창으로 구분된 야외 테라스, 겨울 바람과 얄포름한 겨울 햇살이 자유로이 드나는 공간처럼 보인다.

 

 

 

까페에서 책도 보고 뒹굴대다 보니 어느새 짧은 겨울해가 까무룩하니 바닷속으로 잠겨버리고 까페 역시 어둠에 잠기다.

 

 

까페 입구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찻잔과 찻잔받침들이 반짝반짝 금빛을 번쩍이며 늘어서 있기도 했고.

 

 

도심의 이러저러한 까페들과는 달리 넉넉한 스탭들의 공간과 위아래로 즐비하게 늘어선 커피 원두나 찻잔들이 여유롭다.

 

(아마 이건 서울과 지방의 땅값 차이가 크게 작용했겠지만)

 

밤이 깊어지면서 더욱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벽난로의 화염이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사실 열기는 그다지.

 

떠나기 전 까페 건물 앞에서 노랑불빛이 일렁이는 유리창들을 한 장 담았다. 해송림 너머에서도 슬몃슬몃

 

드러나보이던, 보석을 담아둔 유리상자같이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의 까페.

 

 

 

 

 

 

모처럼 찾은 인사동, 길이 꽁꽁 얼어붙은 탓에 걷기도 힘들고 공기조차 차갑게 호흡기를 긁어내리며 들이마셔지는 느낌이라

 

가나아트스페이스니 무슨무슨 갤러리니 등등 눈에 띄는대로 일단 들어가서 체온을 보충, 그리고 설렁설렁 구경하다 다시 밖으로.

 

 

그러다 보니 이런 조각보 전시도 예기치 않게 구경하기도 하고, 생활한복이니 도자기니 사진전이니 등등, 예기치는 않았지만

 

예상했던 것만큼 쏠쏠한 재미가 있는 인사동 나들이가 되었다.

 

 쌈지길이 이렇게 내려다보이도록 높은 곳까지 한층한층 차근하게 구경하며 옆 건물의 갤러리를 돌아보기도 하고.

 

 기와지붕에 하얗게 눈이 내려앉은 고즈넉한 풍경 너머로 질척한 뻘밭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사람들.

 

 새하얀 눈송이를 머리 위에 지고 있는 장독대 4인가족이 흘낏 훔쳐보는 쌈지길의 번다함과 퓨전스러움은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슬쩍 스며들듯 찾아온 조용한 까페. 아무래도 메인로드 양옆의 까페들이나 전통찻집은 늘 바글바글대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조용하고 나름 테이블간 거리도 아늑한 곳이 있었구나 싶다.

 

 

 

왠지 요새 크리스마스는 어영부영 지나버리는 느낌이지만 그즈음의 이런 장식들은 한철이라 더 이쁘게 느껴지는 거 같다.

 

 

 

 

그다지 길지 않은 하루 해가 그렇게 또 가고. 창 너머 비스듬한 옆집 지붕 위에는 에어콘 환풍기가 일렬로 늘어선 채

 

'홍콩'반점의 뿌연 형광등빛을 한겨울 얼어붙은 눈무더기처럼 이고지고 버텨낸다.

 

 

 

 

 

 

 

 

@ 까페 꼼마.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0권 출간기념, 도정일 평론가의 강연.

'순교자'란 책, 한국전쟁에 참전한 후 미국으로 건너간 32살의 김은국이 쓴 소설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실존적 한계, 그리고 종교적 위안이 가질 수 있는 의미에 대한 극한까지 뻗어가는 이야기였는데, 한국인 출신으로 최초로 노벨문학상에 근접했던 작품이었달만큼 강력하다. (서평은 http://ytzsche.tistory.com/1453)

 

그런 책을 번역했던 역자 도정일, 문학평론가이자 시민운동가이기도 한 그가 '이 시대에 문학읽기는 왜 중요한가'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고, 난 끝내 손을 들어 질문도 하고 나름의 답이나 공감도 얻었고. (사실 답없는 질문에 정답없는 대답이었다지만)

 

 

내 질문은 크게 두 가지였다.

 

Q1. 책의 역자로서 도정일 평론가는 도스토옙스키와 까뮈, 멀찍이는 욥에 이르는 실존주의 철학에 '순교자'라는 작품과 김은국 작가를 연관지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 '이 대위'와 '신 목사'라는 사람은 그런 실존적 질문 앞에 직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또다른 등장인물군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 대중'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대위는 니체식으로 그런 실존적 질문을 극한까지 몰고 나가려 하지만, 신 목사는 그들 일반 대중들을 위해 끝까지 존재의 이유, 포장지를 씌워주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작품의 포인트나 문제의식이 신 목사에게 많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측면에서 앞서 언급한 실존주의 작가들의 작품과 이 작품의 포인트나 결이 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Q2. 또 하나로는, 그렇게 '진실을 알아버린', 매트릭스를 비겨 말하자면 '빨간 알약을 먹어버린' 신목사나 이대위와는 달리 일반 대중과의 격차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더구나 신목사가 그들을 위해 진실을 가려주고 위로를 제공하려 든다는 점에서 일종의 엘리티시즘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11월의 바다, 이런 추운 날씨에도 꽃마차는 경포 해수욕장 근처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닐 포장막 안과 밖으로 울긋불긋한 조화들이 샛노란 마차 색깔과는 잘 어울려 보인다.

 

확실히 바다 근처에서 거칠 것 없이 내달리는 바람 덕분에, 소라도 팔고 번데기도 파는 아저씨 뒤를 지키고 선

 

커다란 파라솔이 마치 격류에 휘말린 말미잘처럼 촉수들을 나부끼고 있는 중. 

 

모래사장까지 들어오지는 못한 마차 대신, 경포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에는 말들만 들어와있다.

 

느긋하게 누워 손님을 기다리는 말, 그리고 무릎을 구부리는 것조차 귀찮은 듯 나른한 표정이 인상적인 말. 

 

 

 바닷바람 냄새를 잔뜩 품고서, 강릉의 커피골목으로 들어왔다. 골목 입구서부터 벽면에 그려진 그래피티가 예사롭지 않다.

 

 

 사층짜리 건물 한 채가 오롯이 까페였는데, 아쉽게도 옥상은 개방되어 있지 않았고 2층에만 올라가도 이렇게

 

한가롭고 포근한 분위기의 공간이 펼쳐졌다는.

 

 

 

그렇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두 손으로 모아쥐고 홀짝거리다가 문득 창밖을 보니 코앞이 다시, 바다다.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관 사이에 텅빈 공간은 그대로 서울의 밤풍경을 담아내는 화폭이 된다.

 

멀찍이 파랗게 빛나는 탑은 서울N타원, 주변에 별무리처럼 총총이 박힌 주홍불빛들이 따스해 보인다.

  

위로 올라가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 이른 시간부터 후둑후둑 내려앉은 어둠 사이로 집집의 불빛이 안온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폐장이 가까운 시간이 되니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거대한 구조물만 덩그마니 남았다.

 

박물관 안에 있는 이쁜 까페에도 온통 테이블과 의자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창밖으로 드리운 두꺼운 어둠 덕분에 깊은 바다속에 들어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창 밖, 그 심해 속에서 유영하고 있던 두 석상. 중앙박물관 앞에 꾸며진 석조산책로는 예상치 못했던 멋진 공간이었다.

 

 

 

 

 

이쁘다 싶은 까페 안에서도 막상 손에 들린 카메라를 여기저기 향하며 사진에 담기란 쉽지 않은 거 같다.

 

그런 흔치 않은 기회는, 까페 안에 손님이 달랑 나 혼자라거나 각자의 뭔가에 열중한 사람들이 조금 있을 때 정도랄까.

 

 

 올림픽 공원 근처 우유빙수가 제법 맛있는 어느 까페에 갔을 때, 마침 시그마 18-250렌즈 신형을 시험하던 차에

 

잔뜩 찍어본 까페 안 풍경.

 

 

 

간결하고 매끈하면서도 뒤로 무난하게 잘 젖혀질 거 같은 의자들이 쿠션을 하나씩 품고 있기도 하고.

 

 

 벽면에 장식된 그림이나 자잘한 소품들에 눈길이 간다.

 

 의자 위에는 잡지가 자연스레 누워있기도 하고.

 

 

 고양이 인형이 발딱 서 있는데 저건 태엽시계인 거 같은데 움직이질 않으니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고.

 

 

 까페 공간보다 훨씬 크게 마련된 공간에는 와인을 팔고 있었는데, 거기에도 나름 독특한 소품들이 보였다.

 

 

 이런 와인 창고를 하나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어느 주류 매장에 가던 꼭 한 번 해보는 생각.

 

 

일어서기 전, 방금까지 내 옆에 비스듬히 고개를 숙인 채 따뜻한 빛을 떨궈주던 스탠드를 한번 슥 봐주고 바이바이.

 

 

 

 

 

이쁜 까페와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신사동 가로수길 옆길 이름은, 세로수길. 가로수에서 '가로'만 떼어서

 

그에 대응하는 '세로'수길이라 이름붙인 작명센스에는 감탄할 만 하다.

 

발 닿는대로 들어간 그 중의 한 레스토랑. 요새 브런치 메뉴가 없는 곳이 없다지만 여긴 그 중에서도 꽤나 만족스러웠다.

 

 

 음식도 괜찮았고, 새파랑 물병도 맘에 들었던 것이 왠지 새하얀 벽돌담을 가진 햇살 쨍쨍한 이국의 테라스를 떠올리는.

 

 

 하얀 회벽을 그대로 드러낸 인테리어야 요새 워낙 흔하게 보이는 스타일이라곤 하지만 저렇게 천장에까지 그림을 넣은 건 참신한 듯.

 

그리고 또다른 '세로수길'의 까페. 레스토랑을 나와 몇걸음 걷지 않아 나타난 까페였는데, 밖에서 봤을 때

 

그럴 듯 해보이기도 했고 밖에서 볼 때뿐 아니라 안에 들어가서도 제법 이쁘겠다는 판단이 섰더랬다.

 

 

2층에 위치한 까페의 창문은 온통 활짝 열려 창밖의 풍경을 눈앞 가까이 끌어당겼다.

 

 

벽면 한귀퉁이의 칠판에 쓰인 흐트러진 글씨체, 그리고 책장 한 칸을 넓게 차지한 화분과 열쇠 하나.

 

 

아포가토와 에스프레소. 귀여운 차받침과 예기치 않은 장식용 인형들의 출현에 깜짝 놀랬다.

 

그렇게, 가로수길 옆 세로수길에 있던 어느 까페와 레스토랑. 그다지 특별하지 않지만 이쁘고 한적한 공간이라 남겨둔다.

 

 

 

이태원역보다는 녹사평, 9호선 사평역이 아닌 6호선 녹사평역에서 훨씬 가까운 까페. 조금은 사람들의 눈길에서 빗겨난 곳.

 

뭐랄까, 이태원역에서부터 막막한 걸음으로 어디가 좋을까, 사람도 조금은 적고 아늑한 까페라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레스토랑들을 지나고 자잘한 악세서리점들과 노점을 지나다보면 어느 순간 까꿍, 눈앞에 나타나는 까페다.

 

 

저번에 갔을 때와는 테이블 배치가 좀 달라졌지만, 손바닥만한 공간, 고작해야 조그마한 테이블 세네개가 고작인 곳이니

 

아무리 달라져봐야 분위기는 그대로다. 구석춤에 파묻혀 책이라도 한 권 읽고 가기 딱 좋은 까페. 

 

 

 

 

 

소호의 가로세로 바둑판같은 골목길들, 소호 거리라는 실감을 나게 해주는 건 건물밖으로 삐져나온 철제 계단들.

 

 

건물 밖으로 튀어나온 철제 계단, 필요에 따라 땅까지 늘어뜨리기도 하고 올려두기도 한다는 건 끝내 신기하다.

 

 

이래서 문화의 거리, 란 걸까 싶도록 구석구석 숨어있는 재미난 것들.

 

 

아마도 이건 지난 아큐파이 시위 때 붙여놓은 걸까.

건물들이 그럴 듯 하니 어떻게 찍어도 화보스러운 분위기가 물씬하다.

 

 

 

막무가내로 그래피티같지도 않은 글씨들이 그려진 녹슨 철문조차 위에 붉은 크림 하나를 얹었다.

 

 

저 처자분 종아리의 그림은, 설마 타투는 아니리라 믿지만, 왠지 그럴지도 모르겠다.

 

 

 

서로 본체 만체 지날 뻔 했던 두 아저씨는 각자를 이끌고 앞서 가던 개 두마리가 얽히는 바람에 눈이 맞게 되고..

 

 

온통 촘촘하게 세워진 건물과 어디로던 통할 거 같은 철제 계단이 미로처럼 얽힌 속에서 괜히 여행을 떠날 때처럼 설레는 거다.

 

 

덥다 싶으면 무턱대로 가까운 갤러리로 들어가 전시된 작품들도 구경하고 땀도 식히고.

 

 

여전히 저런 스티커도 눈에 띈다. 9/11 is a lie. 그만큼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반증일 텐데,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캠퍼 샵의 시원시원한 디스플레이.

 

 

소호도 예전같지 않다더니-예전이라 함은 이전에 여길 들렀던 2001년쯤-명품 샵들이 사방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래도 여전히 멋진 샵들과 갤러리, 그리고 어디서든 털썩 가방과 카메라를 던져놓고 커피 한잔에

 

샌드위치 하나를 베어물고 싶게 만드는 까페나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거리, 소호다.

 

 

 

 

 

 

맨하탄의 제일 번화한 Avenue를 들라고 하면 흔히들 5번가를 꼽을지 모르지만, 사실 정말 부유한 사람들이 살거나

 

럭셔리한 샵들이 몰려있는 곳은 바로 Madison Avenue다. 그 매디슨 애버뉴 80가에서 81가 사이에 있는 E.A.T라는

 

브런치 까페는 관광객이나 외지인들보다는 뉴요커들 사이에서 더욱 인기있는 곳이라고 한다.

 

 

ㅇ 위치 : Madison Ave. 80th St. ~ 81th St.

 

 

 

가게의 한쪽에는 테이크아웃을 위한 빵과 음료를 팔고 있고, 안쪽으로는 테이블이 가지런히 놓여 브런치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풍스런 난간을 딛고 올라가는 2층에도 자리가 있는 거 같은데 가보진 못했다.

 

 

우선 빵과 버터, 쨈이 나오는 바구니 하나를 시켰다. 따끈하고 고소한 빵에 칼로 썬 버터를 올리자마자 사르르.

 

 

이게 뭐라는 메뉴더라. cheese Blintzes라던가, 얇고 바삭한 껍데기 속에 온통 치즈가 꽉 차 있다는 느낌.

 

그리고 라즈베리가 사이에 숨어있는 팬케잌. 얇고 바스락거리면서도 적당히 메이플시럽에 저며든 식감이란 참.

 

후식삼아 시킨 건 Fruit Plate. Fruit Salad가 아니라 아예 Plate를 시켰으니 양이 꽤나 많을 줄은 미리 예상했지만

 

이렇게 다양한 종류가 나올 줄은 몰랐다. 베리만 해도 라즈베리, 블루베리, 블랙베리에다가 파인애플에 메론까지.

 

 

 

무엇보다 좋았던 건 느긋하게 브런치를 즐기는 동안에도 시끌벅적한 외국인이나 관광객 포스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나가는 부산스러움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사라베스 보다 가격은 조금씩 더 싸면서도 양은 조금 더 많았던 듯.

 

 

 

 

 

 

 

지난 3개월여, 토요일마다 서울 곳곳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

 

고등학교 언젠가부터 칼로 끊기듯 뚝 끊겼던 4B연필이나 '그림그리기'와의 인연이 그렇게 다시 이어졌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둘 그어본 선들이 형태를 만들어내는 게 신기했다.

 

고경일 선생님이나 김부일 선생님의 칭찬은 넘쳐올라 들썩이는 파도가 되었다.

 

 

서울 곳곳의 숨어있는 풍경을 찾아다니는 것도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서촌, 이태원, 보문동, 애오개, 양화진..서울이 숨긴 풍경을 지긋이 응시하는 두어시간.

 

 

실력은 치졸하지만, 아마 그림 그리기의 매력이란 그런 거 같다.

 

바가지로 물을 퍼내듯 슬쩍 사진에 담아내고 말 풍경을, 한방울씩 곱씹으며 가만히 퍼올려내는 작업이랄까.

 

 

 

- 참여연대 부설 아카데미 느티나무강좌 '고경일, 김부일의 서울 드로잉' 3기 소감.

 

 

 

엽서로 제작된 내 그림 두 점.

 

나무 판넬로 제작되어 전시될 그림 한 점. 어느 비오는 날 실내에서 본인이 갔던 여행지 사진을 그리는 날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 위, 사크레쾨르 대성당의 드로잉.

 

 

 

 

다른 그림들 몇 점..

 

 

 

 

 

서울 통인동에 소재한 참여연대 건물, 여기 1층에 있는 '까페 통인'에서 2주 정도 걸려있을 그림들.

 

6/22~7/6, '전시회'라기도 우스운 '학예회' 수준의 자리라는 게 맞겠지만 혹 시간 나시면 들러서

 

'숨은 서울찾기展'의 숨어 있는 제 그림들을 찾아 보시길.

 

 

 

 

 

 

티비에서 몇 번 본 적은 있었다. 아티스트가 온몸을 기울이며 커다란 화폭 앞뒤로 격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며,

 

손끝에서 사방으로 튀던 물감방울이며. 그런 이미지가 그대로 담긴 '드로잉쇼'의 티켓함.

 

생각보다 크지 않은 장충동 웰콤씨어터에는 R석과 S석이 있었는데, 앞섶에 앉은 관객들에게는 아예 입장할 때

 

비옷이 제공되었다. 대체 얼마나 물감비가 쏟아져 내리려나, 사방에 마구 흩뿌리는 광란의 분위기가 연출되려나

 

조금 걱정도 되고 묘하게 설레기도 했는데. 생각보다는 물감 한방울 휘날리지 않는 깔끔한 공연이었다.

 

 

공연 중에는 카메라를 꺼내들지 않는 게 공연과 배우와 관객들에 대한 예의염치. 근 한시간반에 걸친 공연이 끝나고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의 커다란 그림을 배경으로 배우들이 사진 촬영 시간을 안배해 주었다.

 

 

굉장히 시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배우 중 한 명. 대사 하나 없이 보여지는 그림 만으로 극을 끌어가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거다. 특히나 그림을 즉석에서 그려내는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고는 해도 완성되기까지, 적어도

 

관중의 감탄을 얻어낼 만큼의 윤곽이 드러나기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가 관건일 터.

 

 

그럼 틈새를 역동적인 액션과 의미를 알 수 없는 몇 마디 괴성으로 이루어진 퍼포먼스로 때론 진지하게, 때론

 

코믹하게 채워나가는 걸 지켜보는 자잘한 재미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즉석에서 그려진 그림들의 선 하나,

 

실루엣 하나가 공연 전반에 흐르는 강렬한 에너지와 역동감이 그대로 담긴 듯 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공연이 있던 웰콤씨어터. Welcome을 왜 굳이 웰콤이라 부르나 했더니 철자부터가 달랐다. Welcomm.

 

 

엉거주춤 선 사람과 쪼그려 앉은 사람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저 그림은, 유머러스하고 명료하면서도 살짝

 

젠틀하다는 느낌마저 전해준다. 왜 쪼그려앉은 사람에게서는 머리에서  저게 나가는 걸까.

 

 

웰콤씨어터 건물 자체도 요모조모 뜯어볼 만한 구석이 많았다. 어느새 길어진 햇살마저 뉘엿거리는 시간대엔 더욱.

 

 

 

다음에 이 쪽에서 공연을 볼 일이 있다면, 저 의자에 가만 앉아서 기다리는 것도 괜찮겠다. 혹은, 아무 일 없이도

 

근처에 들를 일이 있다면 그저 앉아서 책 한권 뚝딱 읽고 일어서도 좋을 듯.

 

 

동대입구역에서 웰콤씨어터까지 왔다갔다 하는 길 위에서 만난 이쁜 건물 장식 하나.

 

 

그리고, 이 날 드로잉쇼를 보기 전 저녁식사로 먹었던 빠네 파스타와 먹물도우 피자.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찍었던 풍경과 공연이 끝난 후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은 후의 풍경이 워낙 다르다.

 

어쩌면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보다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는 게 더 많은 걸 공감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하고.

 

 

 

 

 

 

 

 

 

 

 

 

  

 

 

 

 

 

 

 

청계천을 걷고 종로통을 지나, 길냥이가 살고 있는 까페로 돌아가다.

 

이로써 짧막한 반나절의 출사는 끝.

 

 

by NX20.

 

 

 

강릉 순포해변 옆의 까페 테라로사.

 

올초에 다녀왔던 강릉, 해안가를 따라 걷다가 우연히 발견했던 커피 포레스트 바이 테라로사. 테라로사는

 

강릉 시내에도 있고 여기저기 분점도 있고 하던데, 여기는 정확히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이 곳 자체로 분위기 좋고 커피맛 좋고, 그리고 천장이 높고 자리가 넓찍해서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

 

 

이전에 갔을 때나 지금이나 건물의 독특한 외관이나 질감, 그리고 시원시원하게 뚫려있는 창문들이 좋다.

 

계산대, 시멘트의 질감이나 회색빛이 날 것 그대로 묻어나는 공간에서 나뭇결이 살아있는 공간이 두드러진다.

 

 

한쪽에 설치된 주문도우미. 저번에도 이 기계 앞에서 조금 버벅거렸는데, 이번에는 아예 점원 하나가 옆에서 도왔다.

 

뭐 신기하긴 한데, 어차피 점원의 손을 거쳐 주문을 받는 거라면 굳이 이렇게 기계를 앞세울 필요가 있을까 싶다.

 

카푸치노, 아무래도 보헤미안의 카푸치노와 맛이 비교하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는데, 그에 못지 않거나 더 나은 듯.

 

그리고 예가체프. 같은 술을 마셔도 분위기나 상대, 컨디션에 따라 취하는 정도도 맛도 달라진다고 하는데,

 

커피 역시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던 날.

 

2층의 가뜩이나 너른 공간에 앉아서 고개를 들면 보이던 눈부신 하늘, 그리고 한구석에 양념처럼 얹힌 솔가지 몇 개.

 

햇살이 사방으로 폭발하듯 번져가는 시간, 잠시후면 까무룩히 산너머로 해가 잠겨버릴 테니 이젠 서울로 돌아갈 때.

 

 

 

 

 


쁘띠프랑스 안에 츄러스도 팔고 커피도 파는 조그마한 까페, 잠시 앉아갈 수 있나 쭈뼛거렸더니 아주머니가 안으로

 

들어와서 쉬었다 가라며 이끌어주셨다. 생각보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창가엔 선인장이 촘촘하던 자리.

 

걸리적대는 선인장과 창문살을 타넘어 침투에 성공한 햇살이 테이블에 함뿍 스며들고는 바닥으로 따끈하게 흘러내렸다.

 

창밖으로 슬몃 보이는 보이는 건 쁘띠프랑스의 이국적인 건물 지붕선들이 모여 만든 운치있는 스카이라인.

 

다들 입구에 서서 차와 간식을 사서 쁘띠프랑스 안의 어딘가로 향하기 바빠보이는데 이렇게 안에서 느긋하게

 

자리잡고서 커피와 츄러스를 먹는 것도 일종의 '상대적 풍요로움'을 만끽하게 해주었던 거 같다.

 

쁘띠프랑스 오가는 길, 커다란 청평호를 끼고 달리는 75번 국도, 호반로를 따르는 드라이브코스는 과장섞어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라고들 하던데. 커다란 청평댐이 그러쥐고 있는 북한강 물줄기가 잔뜩 또아리를 틀고 앉았다.

 

청평호에서 피어오른 물안개 너머로 수묵담채화처럼 은은하게 그려진 산줄기들. 앞서거니 뒷서거니 존재감이 확연하다.

 

 

선루프를 활짝 열고서 달리는 차를 따라 전선이 함께 달리고, 제법 두터운 구름과 숨바꼭질 중이던 햇살도 함께.

 

 

돌아오는 길 어느 보리밥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나물을 둘로 나눠 탈탈 털어넣고 된장에 슥슥 비벼먹은 밥 한 그릇.

대학로, 처음 문 연 날 가보고는 두번째로 찾아간 까페. 방송대 옆에 있는 고색창연한 낡은 건물 '예술가의 집' 안에

있는 슬로우가든이다.

천장이 높아 소리가 웅얼웅얼 울리거나 답답하지 않고, 은은한 조명이 샹들리에 크리스탈에 마구 반사되어 한결

부드럽고 화려해졌고, 그리고 테이블 간격이 널찍널찍해서 다른 사람에 방해받지 않고.

브런치세트가 오후 세시까지. 와플세트랑 토스트세트가 있던가. 하나씩 시켰는데 샐러드 드레싱도 맛있고 양도 솔찮던.

프렌치토스트는 포실포실하니 촉촉했고, 벨기안와플은 보들보들하니 부드러웠고. 탱글탱글한 소세지를 뱀처럼

빈틈없이 휘감고 있던 도톰하고 쫀득거리던 베이컨까지.

연극을 보고 나서 돌아가는 길, '예술가의 집'로부터 새어나오는 노랑색 불빛.

알고 보니 여기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슬로우가든' 지점이 존재하는 체인이라고 하는데, 최근에는 삼청동에도

체인점을 냈나보다. 체인점이 번지는 속도도 슬로우슬로우.





커피 포레스트 by 테라로사. 강릉 순포해변 인근에 해안가를 잠식한 군부대 뒷켠에 이차선 도로 안쪽으로 숨어있는.

2층짜리 건물 벽면이 시원하게 온통 유리창이다. 말간 유리창에 비치는 솔숲과 맑은 하늘.

1층 전경. 널찍한 공간에 띄어띄엄 놓인 테이블이 맘에 들었다. 일단 주문부터 하고 한바퀴 돌아보기로 결정.

2층에 올라가 내려본 풍경. 2층 일부만 바닥이 있어 테이블이 놓였고, 나머지 대부분의 공간은 이렇게 뻥 뚫렸다.

1층과 2층 사이 계단에서, 커다란 액자처럼 바깥 풍경을 담고 있는 창문.

그리고 각양각색의 커피 가는 기계들. 우리 집에 있는 기계도 저렇게 손때가 잔뜩 묻고 세월의 연륜이 담기고 있으니

버리지 말고 계속해서 아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땔나무를 드문드문 넣어주던, 맹렬한 불길이 날름거리던 벽난로. 온통 유리로 된 건물이라 자칫 추워보일 수 있는데

벽난로가 있으니 심리적으로나 실제로나 덜 추운 거 같다.

내가 앉았던 자리. 예가체프 드립 커피를 시켰는데 자리에서 직접 내려주지는 않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새콤하고 쌉쌀한 맛은 실망스럽지 않았던. 이쁜 찻잔 역시 맘에 들었다.

자리에 앉아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니 보이는 창밖 풍경.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가는 사다리, 그리고 얼핏

시야 끄트머리에 가지만 걸쳐진 소나무들.

쿠스모토 마키 선집, 이란 책이 책꽂이에 꽂혀 있길래 뭔가 했더니 만화다. 이날 여기에 앉아 봤던 두 권의 책중

한 권. 필치도 좋고 스토리도 매력적이고, 그 중에서 인상적이던 페이지 하나.

그렇게 책도 보고 노래도 듣고 멍하니 있다 보니 창밖은 어느새 어둠이 깔렸다. 비워진지 오래였던 찻잔은

치워지고, 혼자 와서 청승떠는 게 불쌍해 보이셨는지 아메리카노 한잔을 서비스해주신 점원분. 감사해요.


그리고 2층 야외 테라스. 천막처럼 보이는 곳은 따로 마련된 흡연공간이고, 비스듬히 올라가는 벽면에는

커다란 통유리가 시원시원하게 짜맞춰져 있다. 근데 여기는 뭔가 세미나실같은 분위기기도 하고.

금세 어둑어둑해지는 한겨울의 금요일 저녁. 2층이나 1층이나 손님들이 거의 없어서 맘대로 돌아다니며 구경하기도

좋고, 누구 눈치볼 일도 없어서 참 좋았던 까페. 아니, 까페도 까페지만 시간대가 중요했을 거 같긴 하다.

찬바람을 맞으며 멍해진 정신을 애써 추스리고 있는데 저쪽의 도로에서 차들이 드문드문 달려오고 달려간다.

가뭄에 콩 나듯 쌩쌩 내달리는 차들 중에서도 더욱 드물게 코너를 돌아 까페로 찾아 들어오는 차 한대.


더이상 깜깜해지면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다 싶어, 그리고 이미 네다섯시간 가까이 혼자 놀다보니 괜시리

혼자 눈치도 보인다 싶어 일어나기로 했다. 벽난로 속 노란 불빛은 여전히 맹렬하게 탁탁 타오르고.

다시 순포해변, 순긋해변과 사근진해변을 거쳐 경포해변으로 걷는 길. 이미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가 따꼼거렸고

깜깜해진 밤바다는 살짝 무섭기까지 해서, 그냥 도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안개가 끼었는지 뿌연 가로등만 띄엄띄엄.

갈 때보다는 훨씬 빠르게, 한시간정도 걸려서 도착한 경포해수욕장의 밤풍경. 차갑고 여린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던.




한 장의 사진을 기억하며 찾았던 강릉 경포해수욕장. 해풍을 막는 야트막한 솔숲 너머로 깔끔한 흔들의자가,

그리고 그 너머로 탈색되어버린 듯한 누런 빛의 모래사장과 퍼러딩딩한 바다가 있었다.

바다에 도달하면 더 나아갈 곳이 없다 멈추게 되지만, 사실 조금만 몸을 틀면 될 일이다. 바다와 함께, 파도소리와

함께 발맞춰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무한하게 뻗어가는 거다.

모래사장엔 경사에 기대어 꽁꽁 얼어있는 잔설들이 아직 남아있었다. 여름철 뜨겁게 달궈졌던 누런 모래사장이

색이 바랜듯 창백해져버린지라 시퍼렇게 차가운 얼음눈들은 자연스레 보호색을 맞춰입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바다를 따라 앞서 걸어간 걸음걸이들. 발자욱들이 줄맞춰 정연히 늘어선 게 왠지 땅을 헤집어둔 공동묘지같다.

무언가 저 구덩이에 넣고 봉긋하게 흙을 쌓아올리면 파도가 와서 다 쓸어버릴 것 같은. 그런 세기말적 풍경.

바다를 따라 걷는 기분이 그랬다. 파티나 잔치가 끝난 뒤의 적막함이랄까, 50연발 폭죽이 숨쉴틈 없이 터지고 나서

텅 비어버린 채 모래사장에 나뒹구는 느낌. 겨울바다의 풍경들이 하얗게 재만 남아버린 가슴에 날아와 박혔댔다.

BGM은 서영은의 '겨울바다', 경포해수욕장에서 무작정 북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뭐 뾰족한 일정이 있는 것도

가야 할 곳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그냥 저 위쪽 어딘가에 테라로사라는 까페가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슬슬 걸어보기로 했던 참이었다. 바다를 따라 걷다가 불쑥 기습하는 파도에 발걸음이 뒤척거리기도 하고,

문득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발걸음이 파도에 씻겨내리기도 하는 길.

그러다 문득 발에 채인 유리병 하나. 와인병에 코르크 마개로 단단히 막힌 게, 안에는 돌돌 말린 종이까지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게 한눈에도 파도에 실려온 메시지를 담고 있어 보였다. 뭐지, 일본에서 왔나. 아님 미국..?

그 자리에서 코르크마개를 따고 안의 종이두루마리를 꺼내 보았다. 약간 습기가 차 있긴 했지만 까끌한 종이의

질감이 그대로 남아있고, 테이프로 허리춤이 둘둘 감겨 있어 슬쩍 들춰본 속지엔 한글이 써져 있는 듯. 일단은

들고 가다가 나중에 따뜻한 데 앉아서 읽어보기로 했다.

꽁꽁 언 민물길이 바다로 향하는 길, 얼음에 반사된 빛무리들이 시멘트 교각 바닥을 긁으며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삼면이 바다라는 한국의 해안가에 빼놓을 수 없는, 군부대와 군대 시설물들. 여긴 심지어 탱크가 한대

바닷바람에 녹슬어가고 있었다.

뭍에서 흘러내리는 민물이 모래사장 사이로 야트막한 개울을 만들었다. 찰박거리며 위태로이 바다로 향하는

물길을 시시각각 얼리며 덮쳐오는 얼음판, 그 위로 성글게 번지는 빛그림자.


더이상 물의 흐름이 읽히지 않는 빙판, 여러번 깨지고 얼고 깨지고 얼고의 과정을 반복한 듯 조각난 얼음판들이

조각보처럼 이리저리 얽혔다.

그리고 어느 모래사장에 꽂힌 채 당당히 바다를 굽어보던 팽팽한 낚시대 하나. 가늘고 약해 보이는 낚시대가

바싹 성난 듯이 머리를 곧추세우고 있는 게 제법 긴장감을 머금고 있다.

몇 걸음 걷다가 문득 뒷주머니가 허전해졌다. 아까 그 와인병 안에서 꺼냈던 메시지를 뒷춤에 꼽아넣고 있었는데

여러번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카메라를 만지다 보니 어느 틈에 도망가 버린 것. 왠지, 그 종이쪼가리를 꼭 찾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발걸음을 되짚어 거꾸로 걷길 십여분. 이렇게 얌전히 구덩이에 놓여있는 걸 용케 다시 만났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은 언제 봐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바다가 떠밀어 보내준 메시지도 다시 찾았고,

방파제를 때려부술 듯한 소리를 내며 들썩이는 파도를 보며 계속 걸었다. 


날카로운 칼날처럼 깨어졌을 유리조각조차 이렇게 부드럽고 둥그런 모습으로 바꿔버리는 파도의, 바다의 위력.

특히나 겨울바다가 주는 신산하고 허한 느낌이란 건, 어쩌면 이렇게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고 잘게 부숴버리다가

종국에는 남는 것 하나 없이 지워버리는 그 압도적이고 거대한 힘에 대한 경외감이나 허무함일지도 모르겠다.

겨울이라 그런지, 바다 색깔이 한결 더 검푸르다. 잉크처럼 검푸른 바닷물이 수면으로 밀어올려져서는 점점

에메랄드빛으로 연해지다간 하얀 파도로 보글보글. 모래사장까지 끌려나온 파도는 뒤미쳐 온 파도에 익사해버린다.

이쯤이 좋겠다 싶어서, 메시지를 펼쳐 보았다. 누군가의 글씨가 하얀 종이 가득 적힌 채 인연을 칭하며 친구를

청하고 있었고, 언제나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란다는 인사까지 적혀있었던 메시지. 이메일 주소도 적혀있었지만

알아볼 수가 없어 연락할 도리는 없고, 배를 접어 바다에 띄워보내는 게 최선이지 싶었다.

그렇게 뭍에서 흘러내리는 민물이 만들어낸 자그마한 개울에 띄워서 바다로 흘려보내며. 중간중간 모래톱에

걸쳐 멈추기도 하고, 빙글빙글 제자리에 맴을 돌기도 했지만 어쨌든 바다까지 나가는데 성공.

순긋해변이던가, 간소하게 만들어진 부두가 방파제의 품 속에 안겨 있었다. 시뻘겋게 녹슨 철제구조물 위로

앙상하게 덮인 나무판때기, 그리고 딱딱한 부두시설과 딱딱하고 약한 배 사이의 완충을 위한 고무타이어.


파도가 철썩철썩 방파제에 속절없이 부딪혀 깨지고 있었다. 자그마한 부두의 외곽을 단단히 감싼 방파제,

언뜻 보면 아무렇게나 팔다리를 쩍쩍 벌린 채 내팽개친 탕녀나 탕아 같기도 하다.

모래사장을 따라 계속 걷고 있는 참이었다. 경포대에서 사근진, 순긋, 순포해변까지 이름이 계속 바뀌고는

있었지만, 모래사장은 죽 이어진 한 길이었다. 물론 이렇게 중간중간 민물이 넘실거리며 모래사장을 가르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물이 마른 겨울철이라 잔뜩 녹슨 다리는 아무 쓰임도 없이 그저 거기 있을 뿐.


바다를 계속 끼고 걷자니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까는 바다가 모든 걸 지워버리고 무화시켜 버리는 힘을

갖고 있어서 허무하다 했지만, 아니, 그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아무리 잘게 깨고 부수고 으깨어도 뭔가는


남는다. 그렇게 남은 것들이 조금씩 쌓여 모래사장을 이룬 걸 테니까. 말하자면 저건 수백년, 수만년 전의

감정과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겨 있는 거대한 아카이브인지도 모른다.

사념(思念), 사념(沙念), 모래들의 사념들. 파도가 아무리 으깨고 바스라뜨릴 기세로 억겁년을 덤벼든다 해도

사념들은 고스란히 남는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변한다는 말이 진리처럼 통용되지만, 아닐지도 모른다.

조금씩 해가 기울어갔다. 쉬엄쉬엄 사진도 찍고 돌아보기도 하며 걸은 길인지라, 게다가 바닥이 단단하지 않아

걷기 쉽지 않은 모래사장으로만 따라 걸어온 길인지라 꽤나 시간을 들여 걷고 있었다.

저 너머 고래등처럼 수면 위로 불쑥 튀어나온 바위 위에는 갈매기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석들이

싸질렀을 게 뻔한 배설물들이 성난 파도로도 쉽게 지워지지 않을 하얀 줄무늬가 얼룩덜룩.

순포해변을 지나 계속 올라가려는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하다. 해안가를 따라 철망을 얹은 철책이 끝없이

이어져있고 중간중간 저렇게 침투 대비용 표찰까지 붙여놨다. 어렸을 때는 돌멩이를 철책에 꼽아놨었던 거 같은데.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모래사장, 녹슨 깡통만 굴러다니며 버려진 해변이나 마찬가지다.

한쪽엔 바다를, 한쪽엔 부대를 끼고서 아예 쭉 주파해버릴 생각으로 열심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난리가

났다. 호루라기를 불고 손을 흔들고. 더이상 접근하지 말라길래 은근 부아가 나서 걍 지나간다는데 왜 난리냐고

한마디 했다가, 그냥 왔던 걸음 되짚어 돌아가기로. 불쌍한 군바리들, 까라면 까는 그들이 무슨 잘못인가.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트리 위에 얹었던 탈지면 솜뭉치를 닮은 얼어붙은 눈 한조각. 밟으면 아작아작 소리가 나는게

좋아서 한참 밟고 돌아다니다가 조그마한 이 녀석은 차마 밟지 못하고 사진 한장.

이 녀석은 얼마나 묵은 걸까. 모래를 잔뜩 묵은 이 녀석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단단한 알루미늄 캔이 호일처럼

얊고 약해질만큼의 시간이 흘렀고, 이제 조금씩 몸이 헐어가며 모래알로 변해갈 거다.

돌아나와선 부대 뒷켠의 차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앙상한 싸리비를 거꾸로 꽂아놓은 듯한 겨울 나무, 그 위로

싸리비에 이리저리 쓸리고 번져버린 듯한 겨울 하늘. 슬몃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다.


애초 목적지도 없이 그저 걷던 참이었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이 근방에 테라로사라는 까페가 있다고 했었다.

겨울바다라봐야, 도착하면 금세 추워져서 이내 돌아올 걸 알고 있었으니까. 저런 까페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거짓말처럼 눈 앞에 번쩍 나타났다.

그렇게 근 세시간, 경포대에서부터 북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모래사장을 밟아 걷던 길이 끝나고, 테라로사에 앉아

다시 또 네다섯시간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글도 끼적이고.


잔뜩 걸었지만, 쉼없이 뭔가를 생각했던 것 같지만. 막상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다 사라져버린 것 같아서

따뜻한 까페 안에서 이상한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했던. 그렇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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