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망월동, 국립 5.18민주묘지(신묘역) 앞에 선 안내판에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있다.
"손수레나 청소차에 실려와 5.18 구묘지에 묻혀야 했던 분들을 이곳에 모셔와 안장했다"는 문구다.
(광주 망월동 신묘역, 이 곳에 선 문재인과 안철수는 무엇을 보았을까.)
1980년 5월이 무려 17년이나 지난 1997년에야 비로소. 그리고 나서 구묘역은 잊혀지고 버려지다시피 했다.
정치인들도 찾지 않고, 아마 2004년이던가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찾았던 게 거의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전례다.
그렇지만 구묘역은 여전히 5.18의 기억들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으며, 광주의 비극을 초래한 학살자 전두환과의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가 있다는 점에서 지난 2012년 9월말의 다음 기사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문 후보는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열사,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 열사 등 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문 후보는 또 정치인들이 잘 찾지 않는 옛 묘역을 찾아 87민주항쟁 때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묘역도 참배했다.
문 후보는 "이분들 덕분에 오늘의 민주주의가 있는데 자꾸 후퇴하니 볼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구 묘역 참배를 마치고 나오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민박기념비'가 이곳에 묻혀있다는 얘기를 듣고 되돌아와 이 비를 발로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민박기념비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2년 전남 담양군 마을을 방문한 뒤 세운 것으로 광주·전남 민주동지회가 1989년 이 비를 부순 뒤 구묘역 입구에 묻어 사람들이 밟고지나가도록 한 것이다...
* 오마이뉴스, 2012. 9. 28. 기사 발췌.
문재인이 이 곳을 굳이 찾았다는 것, 그리고 굳이 전두환 기념비를 밟고 나왔다는 건 어쨌든 유의미한 퍼포먼스다.
게다가 망월동 신묘역 안의 민주 열사들 영정 앞에서 저리도 해맑게 웃고 치우는 누군가와는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신묘역의 후문,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열사들의 영정 앞에서 파안대소를 했던 곳을 지나 조금만 더 걸으면 나타나는
후문을 나와서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구묘역이다. 전두환 정권의 회유책과 묘지 이장 책동에도 불구, 여전히 5.18 희생자가
119분이나 안장되어 있으며 이후의 민주화 투쟁 중 살해된 열사들이 함께 모셔져 있는 곳이다.
이 곳이다. 제대로 다져지지도 않은 땅, 틀도 잘 갖추지 못한 채 제각기 색다르고 형이 다른 비석을 명패삼아 모셔진 분들.
그리고, 올라서는 곳 들머리에는 아스팔트가 커다랗게 구멍이 난 채 뭔가를 물고 있었다.
대충 식별되는 글자는, 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민박마을...
옆에 선 안내판의 내용을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놓기로 한다.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현장.
민족의 반역자요 광주민중 학살과 자주 민주 통일의 원흉 전두환이 자기 죄를 은폐하고자 학살현장인 광주를
방문하지 못하고 1982년 3월 10일 담양군 고서면 성산마을에 잠입하여 민박 기념비를 세웠다.
이에 복받쳐 오르는 분노와 수치심을 참을 수가 없어 1989년 1월 13일 이 비를 부수어 이곳에 묻었나니
5월 영령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이곳을 짓밟아 통일을 향한 큰길로 함께 나아갑시다.
영령들이여! 고이 잠드소서!
1989년 1월 13일
광주, 전남 민주동지회"
저런 허름하고 낡은 '흔적'들이 아니었다면, 이 곳은 그저 여느 동네 야산의 공동묘지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을 뻔 했다.
그만큼 더욱 안타깝기도 하고, 무언가 이 나라의 현실이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강렬히 보내는, 그야말로 세계의 끝이다.
인혁당과 민혁당을 헷갈렸던, 프롬프터에 오타가 났던 박근혜의 진정성 없는 사과는 그들에게 상처만 더한 건 아닐까.
인혁당 유가족분들이 최근에 다녀가신 듯 싱싱하고 새하얀 화환 하나가 제대 위에 놓였다.
(그 옆에는 최근에 다녀간 문재인 대통령후보의 화환도 있었지만, 바람이 불었는지(?) 엎어진 채 꽃이 모두 시들어있었다.)
'진보적 정권교체'의 붉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열사들, 이름이 있고 없고간에, 이 땅의 정신적 영토와 면면한 흐름을
지켜내온 그들은 총칼로 나라를 지켜낸 사람들만큼은 최소한 존중받고 기억되고 기려져야 하는 거 아닐지.
그렇기는커녕 거꾸로 흐르는 세월 탓에 저들은 무덤에 누워서까지 붉은 머리띠를 동여맸다.
구묘역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마한 꽃집. 색색깔의 꽃다발과 여러겹 펼쳐진 파라솔의 색감이 꽤나 화려하고 이뻤지만
왼쪽으로 시야에 걸린 '광주'라는 두 글자가, 그리고 묘역의 스산하고 비극적인 분위기가 모두 잠식해버리고 말았다.
떠나기 전. 여전히 떵떵거리며 호의호식중인 문어 대가리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꺼이 즈려밟고 침을 뱉어주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그, 피해자 중 한명이었던 정치인으로부터 사면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나머지로부터는 아니다.
게다가 스스로 뉘우침이 없이 29만원이 전재산이라며 불법 축재물에 대한 추징조차 피하고 있는 그런 괴물은 사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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