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 4점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김영사
 

돌려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조금 맘을 잡고 읽어본 정의란 무엇인가 나부랭.

 

베스트셀러니 어쩌구 하는 책들을 전혀 신뢰치 않기에 좀체 볼 마음이 동하지 않은 채 반년이 지난 셈이다.

 

마침 최근에 방한한 샌델이 스타 대접을 받으며 동시에 각종 찌라시들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면 읽지 않은 채로

 

돌려 줬을지도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본심이다. 책을 읽기 전이나 읽고 나서나, 그런 양면의 거품은 불편하다.



간단한 소감. 이 책은 결국 '성찰'에 대한 책이다. 세사에 대해 신문 찌라시나 일상에 (잘난 척) 횡행하는 단언들과

 

자극적인 타이틀에 절어버린 입맛 앞에 대령하는 수십수백 페이지짜리 각주랄까. 세상사 간단하고 확실한 정답이나

 

규정은 없으며 난망한 이러저러한 면이 있다면서 각종 사례들을 사방으로 뒤채며 보여주고 있는, 그야말로 역시나 교과서다.

 

사고와 성찰이란 건 이런 베이스로 작동한다는 걸 보여주는 대학교 교양섭 기본 강의 수준.


 

예를 들어 최근 술마시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이른바 '주폭' 문제가 갑작스레 부각되고 있는데, 이를 보고 단순히

 

"술을 못 먹게 해야 돼"라거나 "술값을 올리면 돼"라는 처방을 제시하는 게 한국사회다. 심지어 '주폭' 문제를 진단한다는

 

TV 시사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이런 수준에서 과히 벗어나지 않는다. 샌델 식으로 말한다면 어떨까.

 

사회 전반을 짓누르는 높은 스트레스와 불만지수, 저소득층 성인의 유일한 즐길거리, 전반적인 놀이문화의 부재를 살피고,

 

조금 다른 면으로는 '주폭'을 방지하기 위해 술을 막아야 할지 범죄가 발생한 후 일벌백계해야 할지 등등 한없이 뻗어간다.

 

 

그런 수많은 결들이 단순한 것처럼 보이는 문제 뒤에 숨어 있다는 것,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따지기 위해선

 

이쪽과 저쪽에 서서 가능한 모든 측면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건 사실 일종의 상식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영어 원제가

 

그러한 의미를 함축한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라는 걸 생각하면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은 좀 '정의'라는 단어를

 

앞세웠다는 느낌이 있다. 그건 한국 사회가 그만큼 '정의'에 목말라있다는 걸 감지한 영리한 상술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사회의 또다른 상식은, '전봇대가 걸리적거리면 불도저를 동원해 깡그리 밀어버리'는 걸 추진력과 유능함으로

 

치부해 왔으니까. 내 판단으로는 성찰을 말하는 이 책 역시 베스트셀러로, 일종의 유행으로 소비해버리고는 저자에 대한 '팬질'을

 

시작해 버린 굉장한 나라다. ('팬질'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대상이 가진 입장과 의견에 대한 숙고 과정과 성찰이 생략되어 버린단

 

점에서 샌델의 메시지와 반하거나 최소한 무관하다.)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화려하고 선정적인 답을 찾을 게 아니라 답찾는 과정,

 

자못 지루하고 고루하며 담백한 그런 입맛을 길러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이런 식으로 소비되는 책이, 우리 사회에 어떤 유익함과 성찰, 자기 반성을 남겼고 남기고 있을까. 2010년 '올해의 책'에 선정되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지 이미 수년이 흘렀는데 여전히 사회 곳곳에는 '정의가 무엇인지' 묻지 않고 따지지도 않은 채 '부자'가

 

되겠다는 야만과 몰상식이 횡행한다.(심지어 자장면 한 그릇 먹는데도 맛있게 먹고 부자되란 말이 복음처럼 전파된다.) 샌델에 대한

 

팬질은 물론이고 나꼼수니 노무현이니 김연아니, 보다 오랜 대상으로는 박정희니 박근혜니 등등 팬질은 거침없이 하이킥중이다.

 

 

 '정의'가 무엇인지 단숨에 밀어붙이고 싶은 열망은 곳곳에서 파열하며 총선과 야권연대를 말아먹었고, 사람들은 '140자'로 표상되는

 

 SNS 시대에 걸맞는 짧고 자극적인 이야기에 열중하는 와중에, 성찰을 말하는 책에 대고 '정의'가 뭔지 말해달라며 개미떼처럼

 

달려들고 말았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유례없이 대히트를 치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나라의 이야기다. 암울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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