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은 합정역에서 걸어서 찾아갈 수 있는 양화진 외국인 묘역.
1890년대 외세의 개화 압력에 나라의 빗장을 연 후, 이 땅에서 사망한 서구의 선교사와 정치가, 사업가 등이
묻혀 있는 외국인 묘역을 찾았다.
합정역에서 외국인 묘원까지 걷는 길은 찻길도 아닌 것이 인도도 아닌 것이 묘한 느낌이었고,
그 묘한 길의 한켠으로는 벌건 벽돌담 너머로 슬몃 고개를 내민 기와지붕이 숨어있거나 아니면
아예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시커먼 속을 온통 드러낸 조그마한 서점이 놓여 있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흔히 좀비가 일어선다거나 귀신이 나타나는 장면에서 보이던 두꺼운 대리석 십자가와 석비들이
즐비한 공간, 서울 한복판에 이런 느낌을 자아내는 풍경이 있었는줄은 몰랐다.
이 곳은 말하자면, 바로 옆에 인접한 가톨릭 교회의 성지인 절두산성지에 비견될만한 기독교계의 성지화 작업이
한창인 그런 곳인 거다. 참배객, 순례자, 부담스런 어휘들이 미처 준비되지 않은 마음을 자꾸 찔러왔다.
그래서 조용히 카메라만 들고 주변 풍경을 담기 시작..
팔 하나가 떨어져나간 돌십자가도 보이고.
독특한 형태로 만들어진 무덤과 상징들이 보였다. 아마도 그 주인의 국적과 문화에 따라 다른 거였을 듯.
굉장히 우람하게 생긴 비석을 머리맡에 세워둔 고인은 아마도 그만큼 영향력도, 지위도 남달랐으리라.
혹은 이렇게 자신의 영역을 대리석으로 구획해놓은 고인들 역시 어느정도의 끝발이 있었을 테고.
이렇게 특색없는 석비에 간략한 생몰연대와 이름만 적힌, 비좁게 열맞춰 선 고인들의 이야기는 늘 안갯속에 잠겨있다.
전체적으로 야트막한 구릉을 따라 늘어선 석비들과 몽땅한 나무들이다 싶었는데, 이 나무 한그루는 유독
하늘 높이 삐쭉 치솟아 발치에 짙은 그늘을 만들어냈다. 얼핏 하늘을 받치고 선 느낌이기도 하다.
굉장히 딱 떨어지는 좌우대칭, 기하학적 형태의 교회. 그려볼까 하고 잠시 쳐다보았지만
너무나 딱딱 각이 맞고 직선들만 가득한 건물임에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석비들의 모양새, 무덤의 생김생김이 다르다며 한참을 돌아보고 나니 이제 좀 싱싱하고 살아있는 것들을
보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묘원의 분위기는 생기발랄함이나 밝음과는 거리가 있는 거다.
5월의 묘지로부터 눈을 돌려 싱싱한 초록의 나무들로, 그리고 땅거죽을 흥건히 덮고 피어나는 꽃망울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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