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시작은 블로그 방명록에 남은 그리 길지 않던 안내글 하나였다.

 

"안녕하세요 ^^
저는 문화의 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탑스피커즈 프로젝트 매니저입니다.

저희는 저자강연회와 사회공헌프로젝트를 같이 묶어서 하는 강연회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참가비로는 중고책을 받고, 그 수익금 전액으로 태국 메솟의 고아 난민들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블로거님과 함께 하고 싶어 이렇게 연락드렸습니다.
정철 선생님의 신간 <머리를 9하라>리뷰 블로깅을 통해 함께 해주신다면 저희가 작지만 감사의 의미로 ‘정철 선생님의 머리를 9하라’ 신간과 ‘인생사전’, ‘만년필’, ‘제주도 리조트 사우나 이용권’을 선물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책과 강연'을 좋아하고, '손쉬운 재능 기부'로 '난민 아이들 돕기'에 뜻을 같이 하실 수 있는 분들은 의사를 알려주시고 주소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서울에서의 저자 강연회는 6월 4일 이화여대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추후 정철 선생님과 함께 식사도 있을 예정입니다^^
문화의 선한 바람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능 기부, 한때는 뭔가 트렌디한 물결처럼 덮쳐왔다가 요새는 '공짜로 상대의 재능을 착취하겠다'는 의미와 등치되기에까지 이른

 

단어가 튀어나왔고. 누가 쓴 건지 책을 준다고 하고. 또 만년필을 준다고 하여-만년필에 대한 애착이 있는지라-이쯤 되면 딱히

 

재능이랄 것도 없는 리뷰 포스팅 하나로 좋은 뜻에 함께 할 수 있겠다, 딱히 착취랄 것도 없겠다 싶어 대뜸 손을 들게 되었다.

 

 

 

#1. 책이 왔다. 정철의 '머리를 9하라'

 

 

사실 책보다 먼저 눈이 갔던 건, 색지를 자르고 풀로 편지를 붙인 듯한, 게다가 직접 펜으로 이름을 일일이 쓴 듯한 편지였다.

 

재능을 기부해주어 감사하며, 이는 태국 메솟 지역에 있는 난민 고아들을 위한 기부금으로 적립될 것이라는 안내. 뿌듯했다.

 

근데, 정철이 누구지? 사실 책에 대해서는 거의 기대하는 것도 없었다. 워낙 나무에게 미안한 책들이 많은 세상이니까.

 

 

 

#2. 책을 펼치고, 그의 직업이 '카피라이터'였음을 알게 되다.

 

이런 재기발랄함이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채 '상식'의 틀 안에서 안전하고 무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철은 뇌 근육을 한번 움직여보고, 꾸준히 움직여 훈련하라고 권해주는 거다.

 

덕분에 이런 발랄한 그의 카피나 짧은 문구들, 단문들이 나오는 것이리라. 다소 뻔뻔하기까지 한 그의 자기 자랑, 혹은 자기

 

작품에 대한 '감상' 요청은 어느결에 마음을 열고 나 역시도 지지 않겠다며 뇌근육을 꿈틀대도록 하는 자극이 되는 거다.

 

'구두에서 가장 때가 타기 쉬운 곳은 밑창인데'로 시작해서, '마음이 정말 구두 밑창 같으시네요'로 끝나는 찰진 문장.

 

 

#3. 머리를 좌우로 돌렸다 앞뒤로 돌렸다가. 목운동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재기발랄함, 카피 한 줄이 갖는 팽팽한 긴장감과 잘 다듬어진 아름다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게으르게 책을 보는 데서 그치지 말고 잠시라도 읽기를 멈추고 직접

 

머리를 써보기를 권한다. 그런 부지런함과 집중, 대상에 대한 몰입은 심지어 장미의 붉은 입술마저 열게 했댄다.

 

 

그리고 이렇게 그가 일을 할 때의 작업 노트가 몇 장 실사로 담겨 있기도 했다. 역시, 허투루 얻어지는 한 문장, 한 단어가 아니었다.

 

작업노트를 온통 까맣게 메운 단어들과 문자들, 그 중에서 얼마나 살아남아 빛을 보고 대중들에게 공개되었을까.

 

 

#4. 현재 시점에서 가장 맘에 와닿던 카피라이터 정철의 작품 두 점 감상.

 

 

여행.

 

빈틈없는 계획이 섰니?

 

그럼 가지 마.

 

여행은 틈을 만나러 가는 거야.

 

 

 

별과 달 중에.

 

별과 달 중에 누가 더 외로울까.

 

힌트는 별은 무수히 많은데 달은 혼자라는 것.

 

그래, 별이 더 외롭지.

 

무수히 많은 속에서 혼자인 게 훨씬 더 외롭지.

 

당신처럼.

 

나처럼.

 

 

 

#5. 사회공헌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쭈욱.

 

정철의 작품을 더러는 곰곰이 되씹으며, 혹은 그냥 심상하게 지나치기도 하며 후루룩 한 권을 쉽게 읽어버렸다. 그러고 나니

 

처음보다는 정철이란 사람이 쓴 이 책에 호의적인 감정이 생겨났다. 최소한, 나무에게 아까운 책은 아니고 더구나 꽤나

 

머리를 요리조리 돌려보고 발상을 자유로이 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인 거다.

 

 

이런 재미에, 그래도 전혀 기대치 않았던 책에서 나름 몇몇 포인트-폰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남겨두고 싶은 것들-을 찾아낼 때의

 

쾌감 덕분에 새로운 책에 대한 은근한 기대를 놓을 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계속 기회가 닿으면 함께 해도 좋겠다 싶은 프로젝트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