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이다 보니 아무래도 화장실 표시부터 남다르다. (그리고 화장실 문이 절대 닫혀있지 않도록


쇠사슬로 열어놓은 채 고정해놨다는 건 또다른 포인트) 큐빅인지 뭔지, 그런 소재를 가지고 남자의 몸을 형상화하고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이 눈물만은 아닙니다'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듯한 남자화장실 표시.


그리고 제법 현실적인 몸매를 갖춘 여성의 닭똥같은 낙루. 여자화장실.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제주도 천제연, 갈때마다 날씨에 욕심을 부리게 되는 명소 중 하나. 이날 역시 하늘이 파랗게 이쁘진 않았던 게 아쉽지만,

 

육각기둥형태로 굳어진 주상절리의 기묘한 병풍에 둘러싸인 짙은 에메랄드빛의 연못은 언제나 매혹적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연한 초록빛이 되기도, 혹은 심원한 푸른빛이 되기도 하는 물빛깔이라니.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2폭포와 3폭포. 그런데 선임교라는 것도 예전부터 있었던가 살짝 갸우뚱.

 

 

 천제연에서 흘러내린 물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아래로 아래로. 그토록 신비로운 빛깔을 지녔던 물방울들이 매끈하게 흘러내린다.

 

 

 척, 하니 옆구리에 팔을 올린 것만 같은 아크로바틱한 나뭇가지도 지나가고.

 

 깊은 숲속에 들어온 것처럼 우거진 나무들을 지나는 분위기를 만끽하다 보면.

 

어느새 도달하는 제2폭포. 제법 수량도 꽤 되고 폭포 아래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하얀 폭포수에 씻겨내리는 게 근사하다.

 

 비가 많이 온 다음이어서 더 그랬겠지만 장쾌한 폭포의 맛이 살아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선임교. 문제의 선임교..옆면에 붙어 있는 저 선녀들의 부조부터 왠지 조금 이질감이 느껴졌다. 하얀색 플라스틱으로

 

사출해낸 것만 같은 저렴한 느낌도 그렇지만, 왠지 한국적이라기엔 뭔가 미묘하게 어긋난.

 

 여하간 큰 호를 그리며 위로 올라섰다가 내려서는 구름다리는 꽤나 재미있는 경험이고, 마침 해가 뉘엿거릴 때는 저렇게

 

샛노랗게 물드는 하늘을 볼 수도 있었다. 물론 저 석등이 이어지는 디자인이라거나 국적불명의 울타리는 좀 걸렸지만.

다리의 맨 꼭대기쯤에서 다리 너머를 바라보니 야자수가 점점이 늘어선 게 멋지다. 남국의 어딘가에 와있는 느낌,

 

한국이라기보다는 어디 중국의 남쪽 리조트같은 느낌에 가까우려나.

 

 이 아이도 좀 미묘했던 게, 한국의 사찰이나 전통 건축물을 꾸미고 있는 분수라거나 연못에 놓이지는 않는 형태 같은데.

 

최근 중국 자본이 제주도에 깊숙히 침투하고 있다더니 이런 자연 유산을 어떻게 꾸미는지에 대해서도 입김을 발휘하는 걸까,

 

천제연의 아름다운 비경 그자체에는 한국이다 중국이다 딱지를 붙일 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식으로 덧붙는 조형물들이 이왕이면

 

이 땅의 문화와 역사를 계승하고 있는 거라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살짝.

 

 

 

제주 모슬포항, 고등어회가 유명한 이 곳, 가파도로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는 곳에서 맞았던 봄.

 

 

짠기운 섞인 비바람에 삭아내려 조각조각 부서져내리는 항구 끄트머리의 나무틀.

 

 

그 틈새에서 용케도 뿌리를 내리고 새 잎사귀를 틔워내고 줄기를 겯고 급기야 꽃망울까지 터뜨린 녀석들.

 

언제고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모슬포항, 곳곳에 그려진 벽화도 무척이나 리얼하다.

 

모슬포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는 버스를 몇차례 타보면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건 꼭 사람만은 아니더라는.

 

기다림이 간절하면 저렇게 갓 박아둔 보도블록 틈새로 손가락만큼 굵은 꽃대를 세우기도 하더라는.

 

 

 

 

 


협재 해수욕장, 그야말로 제주도 관광의 성수기이던 8월 언젠가쯤이어서 그랬는지 해변가엔 온통 쓰레기가

검정 현무암돌바닥을 가리울 지경이었지만 나름의 운치는 여전했다. 홀로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반백 아저씨의

살짝 굽은 뒷 등덜미가 바닷바람에 조금 도닥여지는 거 같기도 하고.

해수욕장 앞으로 이어진 마을은 온통 구멍숭숭한 현무암 돌담으로 집집이 구획되어 있었는데, 그 엉성한 돌담에

하나 더 얹어진 돌멩이인 양 엉성하게 끼어 있는 새파랑 우편함이 웃겨서 사진 한장.

바다에 연한 시멘트 방조제. 하루방을 저런 식으로 표현해 놓으니까 무슨 모아이의 석상 같기도 하고, 표정도

뭔가 굉장히 엄하거나 화난 듯 하기도 한데다가 서로 등 돌리고 있으니 영락없이 싸우고 삐친 모습이다.



바다 색깔이 진짜로 이뻤는데, 사진엔 채 반의 반도 담지 못한 거 같다. 동남아의 유수한 신혼여행지 앞바다라며

보이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여기에 펼쳐져 있었는데.


먼 바다에서 둘둘이 짝지어선 서로 마주보며 데이트 중인 어선들.

그리고 현무암질 용암이 질질 흐르다간 바다를 만나 쩍쩍 갈라지며 급격히 식어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해변가.


해녀상. 튜브를 한팔에 꿰고 있는 다소 현대적인 매무새의 해녀도 있었고, 저고리 고름을 곱게 맨 채 등짐을 지고

있는 해녀도 있었고. 그리고 그녀들 너머로 보이는 투명한 바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내려앉기 전에 바닷물에 발톱부터 담군 타이밍, 사람들이 슬슬 바다 밖으로 상륙하기 시작했다.











제주 한림공원에서 토실토실 잘 자라고 있던 선인장들, 심심하거나 단조롭게 생겼다 싶은 외관과는 달리 피어내는

꽃들은 제법 천연색이 발랄하니 샤방샤방한 모습이었다. 다만 사람들이 이름을 남기고 기록을 남기고 싶은 욕구는

어쩔 도리가 없어 손 뻗어 닿기 쉬운 곳에 있는 선인장들은 마치 '골든벨' 최종도전자의 그것과도 같이 누군지도

알 수 없는 명찰들이 바글바글 달려있는 모습. 

이 나무의 이름은 '와싱토니아'.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와싱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라는데 와싱톤이라..

아무래도 저 안내판은 이 '와싱토니아'의 씨앗이 처음 뿌려진 1971년쯤 만들어진 거 아닐까 싶었다.




곳곳에 있던 제주 전통 현관문인 '정낭', 자연스레 한림공원 내부의 동선을 잡아주고 있었는데, 이런 돌담들도

은근히 어거지로 밀고 나가려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돌담을 허물지 말아달라는 표지판이 서 있을 정도.

내부의 온실에서 자라고 있던 뱀이나 도마뱀 같은 동물들에 더해 거북이들도. 두마리가 서로 반대쪽을 바라보면서도

무슨 탑쌓기하듯이 포개어져 있었다.


 






그리고, 만지면 느끼는 게 아니라 보면서 느끼는 꽃들. "보기만 허고 만지지랑 맙서예!"








한림공원에는 협재굴과 쌍용동굴이 있다. 그쪽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저 만화 캐릭터를 보면서 왠지 '낢 이야기'의

낢 작가 캐릭터가 떠올랐던 건 왜일까.



협재굴 들어갔다, 협재굴 나왔다. 빛이 반겼다.



그리고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나왔던 정령들처럼 봉긋봉긋 튀어나온

돌 인형들. 짙고 거칠게 파인 눈매가 장난스럽기도 하고 살짝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한림공원을 떠나 바로 앞의 협재해수욕장이나 금능해변으로 옮겨가는 길, 하루방과 해녀가 어깨를 걸고는

살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 제주.


● 일시 : 2011년 10월 27일(목) PM 18:00부터

●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저 문장을 해석하고 뜻을 말씀해 주세요.
 
            가장 근접한 의미를 새기는 분께 초대장 드립니다.


           + 초대장을 받을 이메일주소!^-^*


● 주최 : ytzsche(이채, 異彩)

● 제공 : 초대장 5장




제주도에 많다는 것 세가지, 돌, 바람, 여자, 그래서 제주도를 삼다도라 이른다던가. 그 세가지 아이템을

가지고 꾸며놓은 제주도 절물 자연휴양림의 화장실 표시. 여자화장실을 나타내는데는 '여자'와 '바람',

두가지 테마가 쓰인 셈이다.
 

나머지 하나, '돌'을 가지고 표현한 남자화장실 표시. 어렸을 적 갖고 놀았던 암석로보트가 생각나기도 하는

외형이지만, 그래도 남자들을 이쪽으로 이끌기엔 부족함이 없는 이미지인 거 같다. 아무래도 남자는 돌,

특히 현무암의 거칠고 단단한 인상이 어울린달까. 나머지 두개, 바람이나 여자라는 테마로는 좀체 남자

화장실을 가리킬 실마리가 안 보이니깐.




*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모아보고자 합니다. 자신이 본 최고의 화장실 표시를 제보해주실 분은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수평 감각을 잃고서는 하늘을 바다라고, 바다를 하늘이라고 착각하게 된다거나 수평 비행중에도 비행기가

상승 혹은 하강한다고 착각하게 되는 게 흔히 이야기하는 버티고(Vertigo) 현상. 말만 듣고서는 대체

어떻게 저런 착각에 빠질 수 있을까 싶지만, 땅 위에서도 비슷한 착각에서 허우적대는 공간들이 있다.

제주도의 이곳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도깨비도로'가 바로 그런 버티고의 공간.

사진이 저쪽에서부터 슬슬 올라오는 오르막길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저 '시작점'에서부터

슬슬 내려가는 내리막길이라는 게, 내 몸이 받아들이는 위치감각과의 부조화를 갖고 온다.

올라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라는 거. 여기서부터 차들이 비상등을 켜고서는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거다. 승용차던 관광버스던 그렇게 슬슬슬 굴러내려가는 신비의 체험.

길 주변 풍경은 아무래도 살짝 오르막을 타는 느낌인데 둥그런 차 바퀴는 뒤가 아닌 앞으로 슬슬 굴러가니까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이질감과 묘한 부조화를 감지하게 되는 거다.

내 신체의 감각기관, 귀의 반고리관과 달팽이관이 협업하고 시각이 보완해서 만들어지는 평형감각기관들이

아우성치며 여기는 내리막길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굳이 수평계 어플을 다운받아서 아이폰을 바닥에

살풋 내려놓았더니 예측을 완연히 배신하고 말았다. 인간의 감각 따위, 역시 하찮고도 미미한 거였다.


사진상으로는 차들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거 같은데, 수평계 어플이나 슬슬 굴러오는 차바퀴는 이곳이

내리막길임을 흔들림없이 가리키고 있었다.

'신비의 도로'가 끝나는 지점, 도깨비휴게실이 있어 차들이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차에서 내려 도깨비도로를

직접 걸어보기도 하고. 몇걸음 걷다보니 어지러워져서 걷다가 말았는데, 귓가가 멍멍해지고 약간 토쏠리는

기분이 도는 것이 무슨 뱅뱅 도는 놀이기구를 타고 내린 기분.


옆에 '캐나다 삼촌집'은 뭘까. 제주도에 와서 저런 뜬금없는 간판을 보게 될 줄이야. 근데 확 꽂히긴 한다.ㅋ





지난 2월 중순쯤에 한번 아이폰 사진폴더에 지저분한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몇 장 선별해서 올렸던 포스팅,

아이폰 사진폴더에서 잠자던 사진들. 에 이어서 한 6개월새 또 잔뜩 잡다구레한 사진들로 가득차 버린

사진폴더도 정리할 겸.

회사에서 갔던 직무연수, 이천 근처에 있는 연수원에서 2박3일동안 재밌게 지내다가. 집체수업 와중에 있던

쉬는 시간, 이쁘고 푹신한 쇼파에서 다정한 한때를 보내던 동기들과 하얀 속살의 배를 까내린 사람.

연수원 앞에 펼쳐진 잔디밭에 드문드문 놓인 바윗돌의 그림자들이 길어지던 시간, 그 너머 인공잔디밭에서

공을 쫓아다니느라 때이른 구슬땀을 뻘뻘 흘렸더랬다.

수업하고 저녁먹고 가볍게 맥주 한잔 하면서 과일안주 데코레이션으로 괜히 꽃꽂이를 해보기도 하고.


연수원 뒤의 무성한 숲 사이로 삐져나와 길을 잃어버린 초록개구리 한마리, 네비게이션이 재로딩되는 중.

서울 동쪽의 어느 동네, 독거노인분들 도시락 배달하는 봉사활동 중에 눈에 들어온 신기한 전봇대. 직선으로

쭉쭉 뻗은 전선의 흐름을 지켜내려한 건지, 아니면 옆건물의 실루엣을 배려한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휘영청.

초등학교 앞에는 여전히 이런 뽑기 기계가 너댓개씩 열맞춰 늘어서 있었다. 내용물은 조금씩 달라진 거 같기도

하면서 유치하거나 쓸데없다는 점에선 정말 똑같은 거 같기도 하고. 드림하이니 뭐니 속지는 최근에 바뀐 거

같긴 한데, 저렇게 뙤약볕맞고 비바람에 씻기면 빛바랜 빈티지 느낌 완연해지는 건 금방이다.

'카모메식당'이란 일본영화에서 처음 들었던 '까페 루왁'이란 단어. 커피맛이 좋아지라는 주문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커피가 있는 거다. 사향쥐가 먹고 뒤로 배출된 커피콩이 바로 커피 루왁.

커피맛이 정말 달랐다. 굉장히 독특한 향도 그렇고 색깔도 조금 일반 커피와는 다른 느낌.

어느 동네를 가던 들고 다니는 카메라 말고도 아이폰으로도 사진 한두장씩은 남기는 이유, 아이폰에

사진찍힌 위치가 기록된다는 게 재미있어서 곳곳에 로그를 남겨두고 싶어서다. 제주도 초콜릿박물관

갔을 때도 마찬가지, 방문 후 포스팅을 남기면 추첨해서 선물을 준다길래 열심히 썼는데 아무런

응답도 없어서 섭섭하더라는. [제주] 초콜릿박물관, '초콜릿은 마약?'이란 질문에 답이 있는 곳.

청주에 가던 길, 맞은편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게 보였다. 트럭에 실려있던 종이박스에서

불이 시작된 거 같은데..아마 어딘가로부터 날아온 담뱃불이 그 불씨 아니었을까. 갖고 있던 카메라로 먼저

찍고 폰카메라로 다시 촬영한 사진.

어린이대공원,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이 저런 애매모호한 거시기가 툭 튀어나오다니. 이쪽 끝 말고도 다른쪽

끝 역시도 비슷한 녀석이 코끼리 코같은 걸 툭 내밀고 있길래 재미있어서 한장.

일본의 어느 호텔, 그야말로 빈티지 오토바이들이 주르르 늘어서 전시되어 있는 로비. 카와사키의 바이크도

보이고, 스쿠터도 보이고, 미니바이크처럼 조그맣고 귀여운 것들도 보이고. 아마도 호텔 주인이 바이크

매니아였던 거 같다.

그리고 아오모리 공항을 떠나기 전 공항내 경찰서 앞에 빼곡하게 붙어있던 현상수배 포스터. 사설탐정이

활동하고 있는 일본이니까 아무래도 저런 현상금을 노리고 범죄자를 쫓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아오모리에서 돌아오던 비행기, 인천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 날개가 파랗게 질리더니 구름이 번졌다.

회사에서 있었던 족구대회. 비가 온다고 코엑스의 빈 전시장에 그물을 쳐놓고 족구경기를 하는 회사는

아마도 이곳밖에 없지 않을까. 태앵탱, 공이 바닥에서 튕기는 소리가 광활한 전시장에 울려퍼졌다.

올해 세번째 갔던 제주도에서 카페리를 타고 가파도로 들어가던 길. 렌트카에 장착된 네비게이션은 차가

망망대해 한복판에 둥둥 떠있다고 나왔고, 녀석은 잔뜩 당황해선 계속 뱅글뱅글 돌며 시끄럽게 굴었다.

쉼없이 계속되던 경로 재탐색의 메시지는 배가 무사히 가파도항에 도착하고 나서야 조용해졌다는.

신당동 떡볶이를 먹고 나서였던가, 근처 아이스크림집에 들어가서 발견한 마법의 문짝. 아마도 청소도구나

기타 비품류를 보관해두는 창고 문이 아닐까 싶은데, 저렇게 그림을 그려넣으니 그 자체로 훌륭한 장식이 되었다.

그리고 강원도 속초에 놀러갔을 때, 맥가이버 BGM이 나오는 가운데 누군가의 손가락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희생된 콘돔의 새로운 용례. 안에 동글동글 맺힌 물방울은 다른 게 아니라 손가락의 땀..이지 않을까.;

이게 누구꺼더라, 아이폰 케이스가 넘 맘에 들었다. 카메라렌즈 부위를 새의 눈으로 활용한 센스도

훌륭하거니와 그 새가 뻐큐 손가락 위에 내려앉아 있는 모습이 딱 내 스타일인데..이제 난 3GS를 벗어나

5G를 기다리고 있으니 일단 대기.

어느 사케집의 화장실 표시. 노상방뇨하는 남자를 황급히 피해 몸을 날린 건지, 아니면 그를 향해 니킥을

날리려고 몸을 던진 건지는 불분명하지만 여하간 노상방뇨는 남을 놀래키거나 매를 버는 나쁜 짓이라는

메시지는 선명히 전달되는 거 같다.

앤디 워홀에 대한 오마주..랄까. 이태원의 식료품가게를 갔더니 캠벨의 스프깡통들이 차곡차곡 진열되어

있었던 거다. 시립미술관에서 보았던 그의 작품들이 만들어졌던 때와 똑같은 디자인으로 여전히 생산되고

있는 캠벨의 치킨누들스프가 특히 눈에 들어왔다. 이런 걸 워홀보다 먼저 태어나 먼저 포착했다면 그의

부와 명성은 모두 내 것이었을 텐데. 아울러 아마도 캠벨스프 평생무료이용권 같은 것도.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오랜만에 만난 대학 친구, 선후배들. 노래방에 갔더니 뜬금없이 봉 하나가 천장에서

바닥까지 단단하게 설치되어 있는 거다. 이게 뭥미, 하다가 술김에 다들 봉을 잡고선 서로 기어오르겠다고

싸우며 '봉춤'사위를 펼치던 두어시간. 오랜만에 잠들어있던 근육을 깨웠더니 한동안 팔이 땡겼다.

어느 사거리 앞의 쓰레기통, 온갖 브랜드의 커피 플라스틱잔들과 음료수 펫병, 유리병들이 빼곡하게

올라가 있었다. 얼핏 위만 보면 누군가 설치미술을 해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질서하면서도

형형색색의 스트로우와 형체에서 뭔가 미감이 느껴지는 건...나만의 생각인 건가.

광주에 놀러갔을 때, 집에서 문자가 와서는 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 거냐고 하길래 인증샷 겸 찍어서

보내드린 광주의 어느 버스노선도. 아무리 지금 광주라고 말로 해봐야 사진 한장의 위력보다 못하다는.

어디 까페였더라, 시럽들이 3X2로 줄맞춰 서있는데 뚜껑 하나가 내게 눈을 찡긋찡긋.

올림픽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던 사람들, 네트가 없으니 자전거를 쭉 늘어세워 네트 대신. 이런 식의

임기응변 참 맘에 든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네트가 없으면 자전거로.

얼마전 퇴근하는 길에 문득 올려다본 하늘, 추락하듯 뚝 떨어지는 무지개를 보며 원래 저렇게 생겨먹었던가

싶을 만큼 참 오랜만에 본 무지개.

대학교 근처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약속, 좀 많이 일찍 도착해 버린 바람에 학교 다닐 때 가끔

시험공부를 하거나, 그리고 맘먹고 좀 길게 공부하던 때 찾았던 사회대 도서관을 새삼 들어가봤다.

사회대와 앞 아고라는 반토막났지만 난간에 기대어 음료수를 마시던 그 장소는 그대로.

선릉쪽에 이쁜 까페들이 좀 늘어나고 있는 듯 한데 그 와중에 눈에 띄던 이쁜 가구점. 저  흔들의자가

완전 맘에 들었다. 귀까지 디테일한 양모양으로 만들어져 복슬하게 양털이 감싸인 의자가 굉장히

포근하고 따뜻할 거 같은데다가 경사가 그리 급하진 않아서 정말 흔들흔들 잠들기 딱 좋을 거 같은.

그리고 이건.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직접 만들었다는 '기타바', 울림통을 떼어내고 휴대하기 편하도록

고안했다는 기타바를 전시, 판매하는 매장을 발견하고 말았다. 안 그래도 요새 기타 들고 다니기 불편한데

저런 기타 하나 있음 좋겠다 싶기도 하고.

추석 연휴, 예전에 받아둔 채 묵혀두고만 있던 스타워즈 에피소드 1,2,3,4,5,6을 다 보아버렸댔다. 지금

뭘 하고 있냐는 질문에 가장 적절한 장면을 찍어보내려다 보니 요다를 찍게 됐다. 사실 다스베이더의

그 유명한 'I am your father' 장면을 찍었어야 했지 싶기도 하지만, 요다의 광선검 실력도 굉장하더라는.

그리고 왕십리였던가, 고층 빌딩마다 의무적으로 공공예술작품을 앞에 설치해야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돌로 젠가를 쌓아놓아도 되는 건지는 몰랐다. 대리석 젠가.





제주도에 있는 선녀와 나무꾼 테마파크, 계속해서 업데이트되고 있는 한국의 7,80년대 풍경, 상가라거나

학교라거나 달동네 풍경을 담고 있는 곳에서 발견한 화장실 표시. 어르신들의 향수를 자극하는-이라지만

내가 고등학교때나 대학교때 쓰던 커다란 삐삐나 휴대폰들도 있어서 반가웠다는-시절의 풍경 말고도

어촌, 전통마을의 풍경이라거나 고색창연한 도깨비집도 있었던 곳이어서 한번 들러볼 만한 곳 같던데,

그런 공간의 이름이 왜 '선녀와 나무꾼'인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이름과 딱 맞아떨어지는 남자화장실.

일종의 브랜드-빌딩(brand-building)이랄까, 간판과 어울리는 구색으로 컨텐츠를 채우고 화장실과 같은

자잘한 디테일까지 일관성 있고도 개성있게 꾸미는 작업은 꽤나 중요한 거 같다. 방문자로 하여금

이 공간이 참 많이 신경쓰여 가꾸어진 거구나, 하는 느낌을 갖도록 해줄 뿐 아니라 수많은 관광지 사이에

묻히지 않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주효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디테일까지 신경쓴 티가 가득한 이곳 '선녀와 나무꾼'은 옛 서울역사를 닮은 입구를 지나

여전히 서울 여기저기서 보이는 달동네의 풍경, 7,80년대 고고장을 지나 어렸을 적 몇 번 가봤던 듯한

시시껄렁한(그렇지만 꽤나 무서운) 공포의 집 제법 풍성한 컨텐츠를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계속 컨텐츠를 확충하고 있으니 앞으로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한번 가봐도 좋겠지 싶다.


말로만 듣던 거대 버거. 제주도에 가면 꼭 한번 먹어봐야지 했던, 바로 그 '빅허브버거'다. 접시 위에

담대하게 올라앉은 그 버거의 사이즈를 체감할 수 있는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하다가, 손닦으라고

나온 '건강물티슈'를 바로 옆에 붙여두고 찍었다.

커플버거도 있다는데, 별로 가격차이도 나지 않는 걸로 보아 빅버거로 쏠리게 하려는 속셈인 듯.

처음 생겼을 때에 비해 가격이 점점 올랐다는 불만의 글도 어디선가 봤는데, 사실 싼 건 아니다.

갈린 허브가 섞여있는 두툼하고 고소한 빵 사이에, 조금 얇다싶은 패티와 사과니 양파니 양배추니

패티의 아쉬움을 달래고 메인 목을 풀어주는 아삭아삭한 과일과 채소가 많이 들어있어서 조금 과하게

먹어도 그렇게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뭐, 저 거대한 빅허브버거도 버거지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전의 금능 해수욕장과 그너머 바다가

그대로 보이는 커다란 통유리가 참 맘에 들었다. 마침 식사시간을 좀 빗겨난 타이밍이라 아무도 없던

가게에서 이리저리 구경하며 창밖도 내다보고 가게 안도 구경하고.

벽면에 아기자기하게 장식되어 있는 자그마한 화분이라거나 그림들이 꽤나 귀여운 이미지를 연출중.

따뜻한 노랑색의 조명도 맘에 들고.

그리고 화장실 표지도 발랄하다. 글자체도 그렇지만 변기에 앉아 행복해하는 꼬맹이 표정이 참.

 

해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고, 바다로 점차 잠기며 한없이 길어지는 그림자가 가게 벽면에 이런저런

기하학적인 무늬를 남겼다. 미련이 가득한듯 벽면을 야금야금 긁어내리는 뒤늦은 햇살이 따가웠다.

피자처럼 여덟조각으로 커팅되어서 나온 버거는 어느새 약간의 빵부스러기와 양배추만 남기고

전부 사라져버린 상태. 옷을 탁탁 털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자리를 나섰다.

태양이 녹아내리는 바다에 뛰어들어서는 햇살을 산산이 조각내며 노니는 사람들.






초콜릿 박물관에 이르면 가장 먼저 그 초콜릿 색깔의 독특한 건물에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제주도 남서쪽,

모슬포항에서 놀다가 제주시로 올라가는 길에서야 비로소 이전부터 꼭 들르고 싶었던 그곳, 초콜릿 박물관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세계에 산재한 '초콜릿 박물관'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이 곳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사실

압구정에 있는 '샤또 쇼콜라' 초콜릿 전문점에서였다. 밀크나 유지방이 텁텁하게 들어간 네*퀵 류의 초코

음료가 아니라 제대로 된 맛이 나는 진짜 초콜릿 음료가 맘에 들었고, 그제서야 제주도에 언젠가 왔을 때

눈으로 슥 훑었던 지명 하나가 떠올랐다. '초콜릿 박물관'.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입장하기 전부터 뭔가 시선을 붙잡는 것들이 많았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초콜릿 빛깔의

판타지스러운 성같은 본관 건물이 그랬는데, 저 색깔은 제주도 특유의 화산석인 '송이석'으로 건물을 지은

덕분이라 하니 왠지 초콜릿과 제주도는 은근 궁합이 절묘하게 맞는 거 같기도 하다. 그리고 카카오 열매를

두손으로 받쳐들고 있는 카카오의 신님. 신이라기보다는 '찰리와 초콜렛공장의 비밀'에 나오는 움파룸파족같은.

이곳이 어떻게 2010 '세계 10대' 초콜릿 박물관 중 하나로 선정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안내문에는 이곳의 초콜릿을

만드는 전 공정이 보여지는 작업장과 각종 초콜릿 아트 갤러리가 눈을 끈다고 되어 있다. 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트롤리도 있다고 하는데 결국 이건 박물관을 돌아보는 동안 못 보고 말았다. 여하간 중요한 건, 이곳에서

초콜릿을 직접 만들고 있을 만큼 애정도 깊고 열정도 대단한 개인이 이런 박물관을 만들어내었다는 것.

초콜릿의 맛에 영향이 있을까봐 전구역에서 엄격한 금연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그 마음이 느껴진다.

햐아. 건물 안에 들어가서 저 안에 초콜릿에 대한 무슨 내용들이 꽉 차 있을지도 궁금하지만 아무래도 그 전에

이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건물 자체를 좀더 즐기고 싶은 맘이 큰 거다. 초록빛으로 싱싱한 잔디밭과 드문드문

여유롭게 놓인 테이블도 그렇고. 초록색과 초콜릿색의 뚜렷한 대비가 웬지 먹음직스럽기도 하고.

어렸을 적 읽었던 '찰리와 초콜렛공장의 비밀'이란 소설에선 그야말로 어린 아이의 상상력과 식욕을 마구

자극하는 온갖 기기묘묘한 초콜릿들이 등장했었다. 그렇지만 그 다채로운 초콜릿의 향연 중에서도 가장

매혹적이었던 건 아랍의 어느 왕자를 위해, 단단한 초콜릿으로 성을 만들고 안의 인테리어도 전부 초콜릿으로,

심지어 초콜릿으로 만든 수도꼭지를 틀면 마시는 초콜릿이 나오게 했다던 전설 같은 이야기. 이 성이 딱 그렇다.


마구 신나서는 건물을 사방에서 요모조모 뜯어보기도 하고, 잔디밭을 여기저기 찔러보며 걷기도 하고,

카메라를 들고 잔디밭 위에서 펄쩍펄쩍 뛰어보기도 하고. 완전 신난 기분이 그대로 찍힌 듯한 사진 한장.

아마도 이제 슬슬 저 안에 뭐가 숨어있을지 궁금함이 극에 달한 시점, 초콜릿 박물관 입구를 향해 달음박질하던

참이었던 거 같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건 중세 유럽의 완전무장한 철갑주의 기사. 한손엔 가문의 문양이 그려진 방패를 쥐고,

다른 한손엔 칼을 쥐고 초콜릿 박물관을 수호하고 있었다. 뭔가 그 기세만으로 따지면 십리 밖에서 바람타고

넘어온 극미량의 담배연기조차 쫄아서 발걸음을 돌릴 듯.

철갑의 기사를 지나니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바로 카카오. 하얗게 속이 꽉 차 있는 카카오는 아직 익지 않은 카카오로

녹색의 껍질을 두들기면 둔탁하고 속이 찬 느낌이 든다고 한다. 이 카카오는 최고 품질의 초콜릿을 만들 때 쓴다는

크리올로(criollo) 종이라고.

4-5개월 쯤 지난 카카오. 아직 조금 덜 익어서 껍질의 색깔은 노랑색을 띄고 있지만 크기는 약 20센티미터나

되고 무게도 500그램 가까이 된다고 하니 얼추 모양새는 잡힌 셈이다.

 

그렇게 익지 않은 카카오가 한 6개월 지나면 껍질이 불그스름하게 바뀌고, 두들기면 속이 비어있는 맑은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달고 신 맛이 나는 작은 씨가 삼사십개 들어있는 익은 카카오의 모습. 저 씨를 가지고 여러모로


가공해서 만드는 게 일반적인 초콜릿의 제조 방법이라고 한다.

걸음을 뗄라 하면 금세 새로운 뭔가가 발길을 붙잡는다. 입구에서부터 걸음을 떼놓기가 쉽지 않을 만큼

풍부한 이야기거리와 볼거리를 갖고 있다는 느낌. 입구 천장에 그려진 그림과 카카오 나무 화분이

묘한 현실감을 부여하며 3D 입체영상처럼 창세기의 한대목을 재연해 냈다.

최초의 초콜릿은 지금과 같은 딱딱한 판형이나 응고된 형태의 모양이 아니라 마시는 형태였다고 한다.

고대 중앙아메리카대륙에서 처음 시작된 '마시는 초콜릿'은 이후 대항해시대에 유럽으로 건너가며

왕실이나 귀족층의 고급 음료로 큰 인기를 끌며 점차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된 것이라고.

그래서 현재까지도 멕시코나 중남미에서는 전통으로 내려오는 도구들을 동원해 마시는 초콜릿을 일상에서

즐겨마신다고 하는데, 그들의 조상은 무려 기원전 십여세기 이전으로 올라가는 시절부터 그렇게 가까이에서

카카오 열매를 활용한 음료를 즐겼다는 거다. 심지어는 종교의례에까지 가미되어 제사장의 피와 카카오를

섞어마시는 일도 있었다니, 뭔가 하늘과 땅을 잇는 신비의 음료라고 생각했는지도.

그렇게 초콜릿에 대한 동서고금의 역사를 살피고, 어떻게 유럽을 거쳐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수많은 전시물들과 설명을 지나, 초콜릿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는 Q&A 공간이 있었다. 원래

알고 있던 사실도 있었고, 전혀 처음 듣는 사실도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웠던 것들 몇개만.

Q. 초콜릿은 여드름을 유발하나요? A. 아닙니다. 유발하지 않습니다.

Q. 초콜릿은 최음제의 역할을 하나요? A.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음..딱 떨어지는 답변은 아닌 거 같아서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뭐 아즈텍의 왕들이나 카사노바 등이

많이 먹었다니까 나도 많이 먹어야겠다..가 아니라, 많이 먹여야겠다, 가 맞으려나 그럼? 여하간.


과학적인 뒷받침이랄까, 카카오는 다양한 흥분제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익히 알고 있는 카페인,

근데 이게 카카오에 들어잇는 줄은 몰랐고. 테오브로민과 테어필린이란 흥분제 성분도 있다고. 물론

다른 설명에 나와있듯 초콜릿의 성분이 마약같은 중독에 이르려면 몸무게 60킬로그램의 성인이 하루

11킬로그램씩 초콜릿을 먹어야 한다니 과히 걱정하거나 유의할 수준은 아닌 거 같다.

그렇지만 박물관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공간은 바로 이곳, 크리스마스 룸. 방 전체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꾸며진 데다가, 온갖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그득하게 채워져있고 크리스마스 케잌을 꾸미거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고받음직한 초콜릿류가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던 거다.


심지어 푸른 잔디밭이 창밖 가득 펼쳐진 유리창 위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데다가,

누구라도 잠시 앉아 쉬어갈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 위에는 크리스마스 트리 무늬가 귀엽게 박혀있는 테이블

보까지. 관람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때였지만 이 방만은 유독 사람들이 몰려서 떠날 줄을 모른 채 사진찍기에

열중하고 있더라는.


케잌 장식에 사용되는 각종 초콜릿과 설탕 공예 작품들, 그리고 이런저런 초콜릿 브랜드들이 판촉에 나서며

만들었을 장난감들까지도 저렇게 많이 수집해 놓았다. 근 30년동안 전세계 천여개에 가까운 초콜릿 샵을

돌아다니고 백여개가 넘는 초콜릿 공장을 방문했다는 박물관장의 열의 앞에 새삼 감탄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녹인 초콜릿을 부어 형체를 만드는 몰드. 돼지니 원숭이니, 심플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복잡하고

커다란 것에 이르는 수십개의 몰드가 유리장 안에, 벽면에 열지어 늘어서 있었다. 실제로 여전히 초콜릿을

만들 때 쓰이기도 한다는 이 몰드들도 유래한 나라의 문화와 미적 감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셈이니

주화나 지폐, 우표처럼 꽤나 의미있고 흥미로운 수집목록이 되는구나 싶다.

초콜릿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 중에, 그리고 초콜릿 브랜드 중에 '고디바'를 빼놓을 수는 없는 거다.

자신의 백성들에게 높은 세금을 매기려는 성주에게 선처를 호소하던 젊은 고디바 부인이, 옷을 벗고

말을 탄 채 마을을 한 바퀴 돌면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성주의 삐뚤어진 요구에 그대로 응하였다던가,

그대로 행한 부인의 결심도 대단하지만 그때 문과 창을 모두 걸어닫은 채 그녀를 지켰다는 마을 사람들

역시 대단하긴 매한가지다. 아름다운 이야기에 걸맞는 맛과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고디바.

우리나라에선 언제쯤 그런 유서깊고 정평난 초콜릿 브랜드가 생겨날까. 한국인에게 초콜릿은 꽤나 새롭고

낯선 음식이었을 거다. 한국전쟁 때 미군으로부터 받아먹은 초콜릿 한 조각의 기억이 무한히 재생되는가 하면

그 이전 명성황후가 초콜릿을 좋아했다는 기록은 수입품으로 그녀의 눈을 홀리려던 일본의 계략이었다느니

그런 악의적인 해석이 난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세계 10대 초콜릿 박물관에 들어가는 수준의 박물관이 한국에 있다는 건 정말 놀랍고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일천한 역사를 딛고서 순전히 박물관장의 개인적인 열의와 노력으로

이런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것, 그리고 초콜릿 제조에 대해서도 세계적 수준으로 훈련받고 노력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는 것. 계속해서 이 곳이 발전해 나가 나중엔 '고디바'와 같은 명성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유리벽 너머 작업장에서 초콜릿 만들기에 열중한 저들의 손놀림과 눈빛을 보니 더욱.

초콜릿 제조실 안에는 초콜릿 품질 관리를 위해 절대 관람객들의 출입을 엄금하고 있다지만, 따뜻하게 녹여진

초콜릿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는 유리벽 너머까지 침투하기가 거침이 없다. 달달하고 사랑스런 분위기.

좀 뜬금없지만, 아~ 이래서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하는구나, 단번에 납득하고 말았다.


순수 초콜릿으로만 제작되었다는 수공예품들. 신데렐라, 곰돌이 인형, 에펠탑 등등이 한쪽 코너를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하나하나 꼼꼼이 살펴볼수록 그 정교함이나 세련된 터치에 감탄하고 마는 것들이었다.

저런 건 아까워서 먹을 수도 없다지만 그 짙고 먹음직스런 초콜릿색깔과 향기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고 전세계에서 팔리고 있는 고급 초콜릿 선물박스들을 모아두었던 곳에도 볼 게 참 많았다. 비운의

다이애나비를 추모하는, 혹은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는 초콜릿 박스도 인상적이었고, 오즈의 마법사

오리지널 버전인 듯 보이는 캐릭터들이 그려진 양철가방 모양의 초콜릿상자도 재미있었다.

이 곳에서 만들고 있는 초콜릿들을 전시, 판매하는 샵을 한번 둘러보고는 다시 박물관 건물 밖으로 나왔다.

마당 반대쪽에 온실같은 게 보여서 슬쩍 가봤더니 카카오나무를 직접 기르고 있는 온실이라는 거다. 아니,

한국의 기후에 카카오나무가 자라는 게 가능한가 싶어서 꼼꼼이 안내판을 읽었더니 역시 생육 조건은 절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 차례의 실패 끝에 겨우 싹을 틔우고 작은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설명, 언젠가

'의지의 한국인이 키운 카카오나무에 달린 카카오빈으로 달콤한 초콜렛을 만들 그날'을 그린다는 마지막

문장이 굉장히 맘에 들었다. 보통 20년 내지 30년 정도의 수령이 된 나무가 가장 좋다니, 그때쯤이려나.


돌아나오는 길. 사실 요새는 예전과는 달리 고급 초콜릿을 파는 샵도 많이 늘었고 수제 초콜릿에 대한

수요도 많이 늘어난 거 같다. 그래도 아직 한국의 초콜릿 소비량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서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라지만, 수천년 이래 인간에게 달콤쌉쌀한 맛을 전해준 초콜릿이 사랑과 열정, 도취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온 것처럼 한국에서도 점점 그렇게 되어가는 거 같아서 다행인 거다.


사실 초콜릿이면 무조건 아리도록 달기만 한다고 생각했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처음에 99% 초콜릿이니

다크 초콜릿이니 그런 걸 좋아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원. 그런 점에서 이곳

초콜릿 박물관은 한국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종류의 초콜릿을 만끽하도록 도와주는 좋은

공간인 거 같다.

* 아, 그리고 하나 더. 보통 '초콜렛'이라고 많이 쓰는데 이 박물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초콜릿'

이라고 적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맞춤법 관련 규정을 확인하니, 놀랍게도 '초콜릿'이 올바른 표기.

많은 걸 배우고 돌아가게 해주는 제주 초콜릿 박물관이다.ㅋ




우도로 가는 길은 한가지다. 제주 동쪽끝의 성산 일출봉, 성산포항에서 거의 한시간 간격으로 있는 카페리에

몸만 싣던, 아님 차도 싣던 해서 그 배를 타고 우도로. 승용차 기준 9대가 꽉 차는 카페리의 아가리가 닫히고

15분 정도만 바다 위를 달리면 우도가 나타난다.

2층의 조타실에서 키를 잡고 있는 선장님, 촘촘하게 나사를 박아 단단해 보이는 창문 너머 허브 화분이

눈에 띄어서 한장. 그리고 불과 3.8킬로미터 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우도는 벌써부터 보이길래, 저 너머

길게 소가 물속에서 머리를 내민 모양으로 보이는 바로 우도다. 소牛 자를 써서 우도.

바다가 생각보다 많이 거칠었다. 듣고 보니 제주 서남쪽 모슬포항에서 출발하는 가파도행, 마라도행 배도

궂은 날씨로 뜨지 못했다던가. 저번에 왔을 때는 작은 섬이라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제법 큰 섬이었다.

섬 해안도로만 따라 걸어도 17킬로미터, 약 천오백명이 사는 섬이라니.

우도는 해양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특별히 관리될 만큼 자연생태나 풍광이 빼어난 섬인데, 그런 풍경을

'우도팔경'이라고 이름붙여 놓았다. 제주에서 배타고 우도로 향하는 중에 보는 우도의 풍경, 앞선 사진의

그 모습도 그 중 하나. 그리고 천진항으로 입항해 우도봉으로 걸어올라가는 길의 너른 잔디밭도 팔경 중 하나.

멀리 왼쪽으로 보이는 게 우도등대공원, 그리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구릉의 꼭대기가 우도봉. 132미터밖에

안되는 높이이긴 하지만, 거칠것 없이 불어닥치는 바닷바람 때문에 올라가는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길.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대는 탓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는 가족들과의 대화도 목소리를 키워서 해야 했다.

우도의 소 형상, 그중에 머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해서 '섬머리'라고 불린다는 부분이 바로 여기니깐,

말하자면 소 머리를 기어오르는 길인 셈이다.

방금 배타고 도착했던 천진항이 저만큼 내려다 보였다. 우도엔 천진항과 하우목동항, 이렇게 두 개의 항구가

있는데 대부분의 배가 왕래하는 곳은 천진항. 그 너머 보이는 게 제주도 본섬이니 날씨가 좋아 저 구름이

다 걷히는 때면 한라산도 보이지 않을까. 쉽지는 않겠지만 그 역시 우도팔경의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성산 일출봉의 저 묵직하면서도 날렵한 모양새. 중후한 독일제 세단을 보는 거 같은 느낌마저 든다.

계속해서 소머리를 밟고 올라가는 길. 키작은 잔디가 촘촘하게 자라나 푹신하게 밟히는 느낌이 참 좋다.

섬 바깥쪽으로는 무너지는 곳도 있고 지반이 약한 곳도 있다 하여 이렇게 넉넉하게 울타리를 둘러놓고는

'넘어가지 마세요'라고 안내판도 붙여두었지만, 장난스런 누군가가 두 글자를 지워 의미를 뒤집어버렸다.

사람들이 밟지 않는 쪽 풀떼기들은 뭐가 저리도 무성한지, 먼바다 파도처럼 넘실넘실.


우도봉 정상..이라기엔 좀 뭐한 높이지만, 그래도 속이 탁 트이도록 시원한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높이다.

싱싱한 초록색의 잔디가 곱게 깔려있던 구불구불한 길이 울타리의 인도를 받았고, 그 너머로는 짙푸른

담청색의 바다가 제주도와 우도를 갈라놓았다. 머리가 사방으로 봉두난발처럼 뻗쳐나가게 희롱하던

바람의 위력이란. 저 풀떼기들이 여자들 싸울 때 머리끄뎅이 잡아뽑히듯이 전부 뽑혀 훌훌 날려갈 기세.

울타리쪽으로 고무깔판을 깔아두어 미끄럼을 방지한 길 대신, 잔디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다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듬성듬성 야트막한 산처럼 쌓인 말들의 '생의 흔적'을 만났고, 그 중 한 곳에서는 질펀하게

싸제껴진 똥덩어리 사이로 노랑색 꽃을 피워낸 민들레를 발견했다. 저것이 양분이 되어 꽃을 틔웠다기엔

시간차가 좀 있는 거 같고, 이제라도 더욱 선명하고 이쁜 노랑색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지 않을까.


제주도식 무덤은 꼭 이렇게 봉분 주변을 돌울타리로 한번 치는 게 상례라고 했다. 소나 말, 혹은 다른 동물이

행여 봉분을 훼손하지 않도록 막기 위함이라는데 보통 현무암을 얼기설기 쌓아올려 울타리를 치더니 여긴

시멘트로 아예 발라버린 거 같다. 천오백명이나 산다더니 정말, 이쪽의 양지바른 곳에 묘지가 잔뜩 모인 게

거의 공동묘지 분위기였다. 야트막한 언덕이 온통 올록볼록 엠보싱.

잔디밭 한가운데 시멘트로 엑스(X)자 모양을 만들어둔 헬기 이착륙장을 지나, 우도봉 뒤로 일찌감치

봐두었던 우도등대공원으로 걸었다. 정신없이 불어제끼는 바람 때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발길을 돌려 우도의 해안으로 가는 거 같았지만, 저번에 여기 왔을 때 꽤나 멋졌던 곳으로 기억하고

있어서 굳이 걸어올라갔다. 사실 얼마 멀지도 않고.

사람들이 많이 오진 않는지 길 한복판에 둥둥 떠서 멈춰있던 잠자리에 깜짝 놀랬다. 날아가는 모습 그대로

공중에 멈춰 있다니, 자세히 보니 길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이어진 커다란 거미줄에 걸려서 이미

적잖은 시간 비바람에 시달린 듯 하다.

거미줄을 피해 조심조심 오르는 길, 나무 데크로 잘 정돈된 길을 오르다 보면 우리나라나 세계의 주요 등대들

모형이 차례로 만나게 된다. 마라도니 독도니, 우리나라의 주요 뱃길을 비추는 등대들도 그렇고, 뉴욕의

허드슨강을 지키던 등대니 뭐니, 이것저것 훑어보다 보면 어느새 공원의 끝, 우도 등대에 다다르는 거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실제로 쓰였다는 우도 등대. 그리 높진 않지만 단단하고 든든해보이는 체구의 하얀 등대다.

아래부터 위까지 스캐닝하듯 쭉 훑어보다가 발견한 저 풍향계, 그리고 꽃술처럼 풍성하게 벌어진 피뢰침.

풍향계에 그려진 N, E, W, S가 뚜렷하다. 그러고 보니 동서남북의 사방을 가리키는 영어 첫자를 따서 어케

잘 조합하면 뉴스(NEWS)가 되는구나. 뜬금없는 생각에 괜시리 감탄 한번.

그래도 역시, 더이상 쓰이지 않고 사람들이 드나들지도 않으며 비바람에 씻겨갈 뿐인 건물이란 건 왠지 슬프다.

문에 걸린 채 붉은 녹물만 주룩주룩 흘려대는 자물쇠 몇 개가 앙상하게 부식된 껍데기를 떨구고 있었다.


우도등대 앞에 서서 내려다본 우도의 마을 풍경. 시퍼렇다 못해 시꺼먼 바다가 해안에 다가와선 시퍼런 거품을

만들며 시위 중이었다. 그리고 울타리 틈틈마다 거미줄을 만들며 삶을 이어가는 거미. 샛노랗고 까뭇한 색의

대비가 바다보다 화려했다.

더이상 쓰이지 않게 된 하얗고 조그만 등대 대신 그 뒤에 버티고 선 등대전시관의 등대가 새로 작동하고

있다고 했던가. '에어콘 가동중'이란 안내에 낚여 뛰쳐들어갔다가 전혀 냉기 따위 없다는 걸 직감하고 그보다

빠른 속도로 뛰쳐나오느라 이 건물 안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바람은 강했지만 바닷가이다 보니 습하고

소금기 꿉꿉한 기분까지는 어쩔 수 없어서 에어컨으로 좀 말리고 싶었단 말이다.(버럭!)


우도를 지키는 해안경비단을 지나 다시 내려오는 길. 아까는 나무데크가 잘 정돈된 길로 올라가며 등대공원의

여러 전시품들을 둘러봤었고, 이번엔 완만한 내리막길로 걸어내려오며 바다 너머 제주도의 구름 가리운

풍경과 (무엇보다) 발밑을 내려다보며 걸었다.


다시 우도의 너른 초원을 걸어내려가는 길, 옆에서 이리저리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이 있고 1박2일팀이

와서 말을 타고 갔다는 광고가 내걸려있다. 가족 중의 누구 한번 타보라는 권유에 선뜻 앞으로 나선 동생,

요새 승마를 좀 연습했으니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기대.

종아리를 다 덮는 기다란 장화를 신고는 아저씨에 이끌려 초원으로 향했다. 조금 걷다가, 이내 머리가 날리도록

내달리기 시작하는데 제법 멋지다. 쏜살같이 내달려 어느새 손톱만한 사이즈로 변해버린 두마리 말을 좇아

카메라를 이리저리 들이대야 했다. 말을 배우려면 이렇게 풍경 멋진 데서 오르막 내리막을 모두 경험하며

배워야 한다고 아저씨가 코웃음쳤다던가.


차를 주차해둔 쪽으로 걷던 중에 우도의 명물 땅콩을 파는 아주머니들 옆으로 망아지 한 마리가 휘적휘적

유유히 걸어다닌다. 사람들 틈에 섞여서도 무서워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그저 제 갈길 간다는 태도. 그 옆에는

망아지 갈기와 땅콩 껍질을 소용돌이치듯 갈퀴질하는 거센 바닷바람에 날려 뒤집혀버린 하얀 의자가 적나라하니

나뒹굴고 있었다.

서빈백사. 우도의 서쪽 바닷가에 하얀 홍조단괴해빈해수욕장에 있는 모래는 온통 하얗게 반짝거렸다.

하얀 산호와 조개껍데기들이 깨지고 부서져서 바닷가에 쌓인 게 이 모래 아닌 백사장의 정체라고 하는데,

우도팔경 중의 하나로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다. 발로 밟으며 걷기엔 조금 아픈 감도 있는 게 아직 산호나

조개껍데기가 모래알처럼 작게 깨지거나 고와지지 않고, 나름의 형체를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산호가 풍화되어 생겨난 하얀 백사장은 우리나라에서 여기 딱 한 군데라고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독특한 풍경 속에서, 맨발벗은 발을 따꼼따꼼 찌르는 아픔 속에서도 천막에 앉아 해삼과

멍게, 그리고 우도 특산물이라는 '톳'을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다른 해산물들도 다들 싱싱하고 맛났지만

특히 이곳에서 처음 맛본 톳은 싱싱하고 탱글거려서 제일 먼저 없어져버렸다는.

무려 3미터짜리, 3톤이 넘는다는 해녀상이 서 있던 하고수동 해수욕장. 세계 최대의 해녀상은 1932년 3개월동안

1만 7천여명의 해녀가 항일 항쟁을 벌였던 것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하는데, 당시 해녀가를 지어 불렀던

해녀가 우도 출신이었기에 여기 이런 거대한 해녀상이 선 거라고 한다. 
 

그 앞에는 또 하나의 해녀상이 서 있었는데 그 유래는 전혀 모르겠고, 시선이 계속 쏠리는 건 그 상들 너머

에메랄드빛 바다. 자잘하게 부서진 파도가 잔잔하게 이는 그 깊고 투명한 색감의 바다가 멋지다.

어라, 제주도에 비양도는 북서쪽 금능해수욕장 맞은 편 아니었던가. 알고 보니 여기도 비양도라는 같은 이름을

쓰는 섬이 하나 우도랑 연결되어 있었다. 조그마한 섬이고 우도랑 붙어 있어서 그냥 시멘트길이 넓게 이어져

차를 타고도 쉽게 한바퀴 돌아보고 나올 수 있었는데, 섬 앞머리 표식이 인상적이다. 온통 조개 껍데기를

탑처럼 쌓아올린 표식 바깥에 촘촘히 붙여놓아서, 멀리서 보면 새하얗게 반짝거리던 것.

우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검멀레 모래사장 앞 '동안경굴'. 검멀레는 왠지 발음부터 연상되더니

역시, 검은 모래를 가리키는 제주도말이라 하고, 그 앞의 동굴까지 사람들이 내려가 볼 수 있는 거다. 이 동굴에

옛날엔 커다란 고래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는데 그 앞의 깊고 짙푸른 바다를 보면 왠지 상상이 되었다.

동안경굴, 우도팔경 중의 하나였던 그 동굴 위로 뻗은 산책로 앞에 있던 제주도 전통 대문인 '정낭'의 나뭇살

세개가 모두 구멍에 끼어져 있다. 주인이 멀리 출타 중이란 의미를 남길 때 저렇게 세 개를 모두 구멍에

끼어놓는다고 했는데, 산책로를 당분간 폐쇄한다는 안내판에 꼭 맞는 의미심장한 표식인 셈이다.


* 참고로, 제주도 전통 대문인 '정낭'의 표식에 대한 의미 정리. (네이버 지식인 참조)
 
ㅇ 나무가 한 개도 걸쳐 있지 않을 경우 : 집안에 사람이 있음

ㅇ 나무가 한 개 걸쳐져 있는 경우 : 가까운 곳(이웃집 등)에 잠시 나가 있음

ㅇ 나무가 두 개 걸쳐져 있는 경우 : 이웃 마을 등에 갔음

ㅇ 나무가 세 개 모두 걸쳐져 있는 경우 :  멀리 출타중임


산굼부리. 벌써 두번째 찾는 이곳은 분화구만 유독 뚜렷한 지형과 바람소리를 그려내는 억새밭이 만들어내는

호젓하고도 기묘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곳이다. 저번에 왔었을 때는 억새가 온통 누렇게 물든 계절이었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이제나 그제나 제주도의 변덕스런 날씨 덕에 꾸물거리는 하늘은 변함없었던 거다.

제주도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주차장이 어디든 넓찍하니 잘 마련되어 있단 것. 게다가 주차요금을 별도로

받지도 않는다. 산굼부리 주차장은 현무암으로 잘 조성된 너른 마당인데다가, 주차장에서 산굼부리

매표소로 가는 길도 운치있게 잘 정비되어 있어서 늘 기억에 남는다.

산굼부리 들어서는 입구. 매표소를 지나 걸어들어가면 현무암으로 이쁘게 지어올려진 관리사무소가 덩굴을

온통 칭칭 휘감은 채 버티고 있고, 이끼가 보들보들하게 돋아난 나무들에도 무슨 목걸이처럼 덩굴이 매달려

있었다. 바닥에 깔린 붉은 화산석이 비를 맞아 더욱 선연한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렇게 구멍이 뚫린 화산석은 어떻게 생긴 걸까. 옆의 설명을 참고하니 어찌 생긴 건지는 알겠지만 그

신비로움이 덜어지진 않는다. 화산이 폭발할 때 흘러내린 용암이 나무를 감싼채 굳어버렸단 거다. 그렇게

용암은 단단하게 굳어가고, 나무는 그대로 까맣게 숯이 되도록 타버렸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흔적도 없이

사그라져 버리곤 저렇게 빈 구멍의 흔적만 남기게 된다는. 제주도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용암수형석.


산굼부리에 오르는 사람들은 이쯤에서 여지없이 한번 주춤하는 거 같다. 길이 무려 세갈래나 되는 거다.

제법 경사진 계단으로 오르는 첫째길, 좀더 완만한 두번째 길, 그리고 아예 평탄하게 이어지는 셋째길까지.

첫째둘째길은 결국 산굼부리 정상으로 오르는 같은 길, 셋째길은 억새밭을 좀더 에둘러가는 길, 결국 같다. 


산굼부리, '굼부리'는 화산의 분화구를 이르는 제주도말이라고 한다. 한라산이 불쑥 솟아오르던 즈음에 함께

생겨났다는 산굼부리가 제주도의 수많은 기생화산, 그들의 분화구 중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이유는 여기

분화구가 솟아난 산세에 비해 유독 커다랗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높이 치솟지도 않았는데 분화구의

크기가 크다 보니, 평지 한복판이 움푹 파인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올라가는 길도 이렇게 완만하고,

곳곳에 제주도식으로 돌담을 두른 무덤들도 자리를 잡았다.
 

금세 도착한 산굼부리의 분화구 둘레. '추락주의'라는 경고문구가 보여주듯 아래쪽으로는 깍아지른 듯한

가파른 사면이 분화구 아래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깊고 큰 화구가 남을 수 있었던 건 여기 분화구가

폭발할 때 주로 가스만 새어나오고 다른 용암이라거나 화산재들이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덕분에 분화구 주변이 높아지지 않은 거기도 하고, 분화구가 그대로 움푹 패인 채 남아있는 거고.

알고 보니 이 분화구, 백록담보다도 크고 깊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여기도 백록담처럼 물이 고여있었다면 좀더 멋지지 않았을까, 싶도록 분화구 아랫쪽은 온통 초록빛일색이다.

식물의 생태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분화구 사면에 따라 받는 일사량과 일조시간, 기온에 따라 다른 식생이

살고 있다며 온대, 난대성 식물과 각종 희귀한 식물이 산다는 사실에 좀더 많이 감탄했겠지만,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저 헤에, 그런갑다 할 뿐이다. (사실 아래까지 내려가서 직접 확인할 수도 없거니와)

산굼부리 분화구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다 보면, 그렇게 높진 않다지만 나름의 언덕 위에서 산굼부리 주변

풍경을 둘러볼 수 있어서 좋다. 시선이 산굼부리 안쪽, 바깥쪽으로 번갈아 움직이는 거다. 깊은 구멍 속에

초록빛이 연못처럼 고여있는 산굼부리 안쪽 사면, 그리고 억새밭이 넓게 펼쳐진 산굼부리 바깥 사면과

그너머 듬성듬성한 다른 기생화산들.

일단은 다시 원점, 세갈래길이 갈라지는 지점까지 돌아내려와서 다른 두길을 걷기로 했다.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기념품점 현무암 지붕이 온통 말라죽은 이끼 색으로 변해 있었는데 저게 정말 이끼가 덕지덕지

붙었다가 죽어서 남은 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색깔의 식물이 덮인 건지는 모르겠다.

두번째길로 돌아서 다시 올라가는 길은 온통 사람들의 소원이 뾰족뾰족 봉우리들을 만들고 있었다. 붉고 검은

화산석들이 제각기의 까칠한 모양새를 감내하며 어떻게든 바닥을 받치고 위로 서고, 또다시 바닥이 되어

중심을 잡고 윗자리를 마련하고.

둘째길로 들어서서 세번째길로 돌아나오는 길, 온통 억새밭이 장관이었다. 바람소리가 문득 까먹었다는 듯이

윙윙 울릴 즈음이면 억새들은 제들끼리 사각거리며 바람의 잔영을 새기기에 바빴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이 점점 다가오거나 멀어지고 있다는 게 억새밭의 움직임으로 가늠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어서,

질리지도 않고 계속 바라보았다. 


세번째 길까지. 산굼부리의 길들을 샅샅이 걸어보고 내려가는 길, 여태 꾸물거리며 겨우겨우 참는다 싶더니

그 길에서야 울음이 터졌다. 굵은 빗방울이 시원하게 내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저 신민아를 닮은 아가씨가

입고 있는 우의와 쓰고 있는 우산을 사러 매점으로 달려야 했다.




한라산 백록담은 생각보다 작았다. 물이 조금 마른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원래 저 사이즈만큼

물이 고여있다고 했다. 구름이 위로 지나면 순간 뿌옇게 변하기도 할 정도로 맑은 물이었는데

제법 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데도 백록담 밑의 바닥이나 수면 위의 물결이 일렁이는 것까지

전부 보인다는 게 신기했다는. 단순히 연못이 크고 작고를 떠나서 저 시퍼렇고 맑은 물빛과

주변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맞물려서 역시 백록담, 이란 감탄을 하고 말았다.



세계각국의 유명 건축물들의 미니어처를 모아두었다는 제주 미니미니랜드, 삼십분의 일이라거나 십오분의 일

사이즈로 줄여놓았을 뿐 실물과 똑같다는 그 건축물들이 모인 곳을 어떻게 해야 가장 재미있게 돌아볼 수

있을지 생각해보니, 다녀온 곳들, 보았던 곳들 앞에서 각자 인증샷을 찍으면 괜찮겠다 싶다. 간 데가 몇군데

안된다 하더라도 뭐, 어쨌든 세계 곳곳에 산재한 명소들이 한 곳에 모여있단 건 큰 메리트니깐.

건축물들 미니어쳐 앞에 섰을 때, 걸리버가 소인국에 떨어졌을 때의 느낌에 최대한 가까울수록 성공적인

거 아닐까. 소인들이 꼬물거리며 지어올리고 그 안에서 사는 건물들의 디테일이나 리얼리티란 건 그야말로

최고의 수준일 테고, 그들 소인들보다 크고 무딘 손으로 조그마한 건축물을 지어올리려면 말이다.

타이완의 중정기념당, 한 사람을 위한 공간, 중정기념당에서 장개석을 생각하다.

중국 자금성,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 내가 카메라랑 그다지 친하지 않던 시절 다녀왔던. 비가 내리는 궂은

어두컴컴한 날씨였지만 황금빛 기와지붕과 붉은 담벼락은 여전히 화려하게 반짝거렸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왓, 캄보디아#31. 채색의 흔적을 발견하다, 앙코르 왓(1/3)

캄보디아#32. 박스 안의 박스, 무한선물상자를 열어보는 즐거움, 앙코르왓2

캄보디아#33. 앙코르왓의 전경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던 연못, 앙코르왓3

캄보디아의 앙코르톰. 사실 앙코르왓은 씨엠립의 여러 옛 사원 중 하나의 이름일 뿐.

캄보디아#4. '크메르의 미소' 바이욘(앙코르 톰)

이집트의 스핑크스. 이집트#7. 카이로 달동네를 거쳐 피라밋으로.

이집트#8. 쿠푸왕 대피라밋 안의 석관에 누워보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플랫아이언빌딩이 있었는데, 여기도 2001년..까마득한 과거에 다녀왔는지라.

뭐 자유의 여신상이나 플랫아이언에서 찍은 건 아니지만 어느날의 월스트리트.  풍요로운 땅 뉴욕의 공립도서관.


태국의 왕궁, 왕궁(Grand Palace)에서 만난 수호상, 랍스타 퍼레이드.

공원이 꽤나 넓었다. 무려 120여점의 건축물을 오밀조밀 세워둔 세계 7대 미니어처 파크라니 이정도 크기는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조경까지 생각하고 지역이니 나름의 테마에 따라 보기좋게 진열하려면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거 같다. 어느 순간 비가 쏴아 쏟아붓기 시작해서 부랴부랴 비를 피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우의를 사입고 구경을 재개했다.


인도의 타지마할, 인도#5. 우윳빛깔 풍만한 타지마할의 자체발광, 하악하악.

미국의 워싱턴 국회의사당. 여기도 2001년에 3개월동안 체류하며 불법으로 알바하며 모은 돈으로 갔던 곳.

쿠웨이트의 쿠웨이트타워, [쿠웨이트] 24시간의 쿠웨이트 체류.

중국의 만리장성, 미니어처 건축물과 건축물 사이에 뱀처럼 몸을 좌우로 뒤채며 늘어져있었다. 

역시 내가 블로그를 하기 전, 카메라랑 친하기 전에 다녀왔던 곳. 


미국의 백악관. 워싱턴을 샅샅이 훑었던 그 때, 마일스톤 앞에서 잔뜩 폼을 잡고 사진을 찍었던 곳.

그리고 역시 미국의 링컨 기념관. 이번에 정말 재미없던 트랜스포머3에서 저 거대한 의자에 앉은 링컨을

밀어내고 나쁜 로봇이 편하게 앉았었다.

여긴 다녀오진 않았지만, 이 곳에서 가장 크고 이쁜 미니어처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어서 한 장.

이탈리아의 트레비분수였다던가.

이것도 뭔지는 모르겠지만 초록빛깔 잔디와 잘 어울리는 게 왠지 스위스 쯤에 있는 뭔가가 아닐까.

안 가본 나라가 너무 많은 거다. 이곳에 모인 것들은 전세계 곳곳의 50개국을 대표하는 한두점들일 뿐인데도

이 중에서도 안 가보고 모르는 것들이 이리도 많다니. 미니어처 말고 진품을 직접 보고 싶은 맘이 무럭무럭.

그리고 한국의 불국사. 여기야 뭐,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많이들 갔었지만, 막상 혼자던 친구랑이던

한번 다시 가면 새삼스러운 구석이 참 많던 곳이다. 불국사 말고도 경주라는 도시가 그랬다.

청와대. 시화연풍, 청와대 들어가기.

남대문, 지금 열심히 복원공사중일 텐데 이전보다 더욱 오리지널에 가깝고 단단하게 복원되면 좋겠다.

건축물들만 밋밋하게 열맞춰 늘어선 게 아니라, 나름의 야트막한 언덕이나 구릉이 있었고 또 이런 나무들도

있었으며 연못도 있고 다리도 있고 그랬다. 이끼가 파랗게 낀 보슬보슬한 촉감의 나무에 덩굴 하나가 체인처럼

기둥을 휘감은 채 흘러내린 모습이 너무 이뻤다.

하루방을 뭔가 캐릭터로 만들어보고 싶었던 거 같은데, 좀 아쉽다. 좀더 간결하고 참신하게 바꿨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다. 무엇보다 좀더 귀여웠어야 했지 싶다.


제주도 똥돼지를 멀뚱하게 바라보는 젊은이 하루방.

아무래도 제주가 좀 습하고 따뜻하고 그래서 그런지 나무들이 조금만 그늘진 곳이다 하면 저토록 빽빽히

이끼가 끼는 거 같다. 온통 연두빛 융단을 휘감은 듯한 느낌의 나무둥치.

세계 위인들의 조각상들도 있었다. 어떻게 선정된 위인들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선수로는 충무공 이순신과

세종대왕. 아마 화폐에 활용된 인물을 기준으로 한 게 아닌가 싶은데 그보다 놀랍고 기분좋았던 건 바로

맑스가 이 곳에 전시되어 있단 사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맑스의 조각상 뒤에서 주먹 불끈 쥐고 인증샷 찍고는 맑스 조각상을 따로 찍는 걸

깜빡하고 말았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러시아어가 적혀있는 그의 조각상을 전시하다니,

미니랜드가 급 좋아져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만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공간도 있었다. 스머프들이 뛰노는 마을 뒤에서 음흉하게 웃으며

쳐다보고 있는 가가멜과 그의 고양이 아즈라엘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얄미운 표정을 짓고 있는 똘똘이 스머프 뒤로 텔레토비도 보인다.

그리고 원피스! 루피와 조로, 샹띠가 멋진 포즈를 잡고 있었는데 애들 보다는 오히려 내 또래의 '어른'들이

더 좋아라하던 포토존이었던 듯. 그나저나 대체 원피스는 언제 완결되려나.

무엇보다 캐릭터들 중의 압권이자 대미는 우리의 뽀통령. 모자빨과 안경빨일 뿐, 조그만한 눈에 앞머리 탈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게 함정이라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인기만점이던 포토존.

이건 태권V의 입체그림이라고 했다. 정해진 뷰포인트에 두발을 고정하고 그림을 바라보면 바닥에 그려진

그림이 마치 벽처럼 일어나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거다. 아마도 지정된 점으로 집중되도록 소실점을 잡고선

원근을 감안한 덕분인 듯 한데, 페인트칠한지 좀 오래라 발색이 선명하진 않아도 제법 일어난 느낌이다.

쥬라기공원에 등장했던 렉터, 티라노사우루스도 있었다. 꽤나 정밀하게 묘사된 피부나 이빨, 발톱의

모양새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박치기하는 애들, 이름이 뭐더라, 그 초식공룡들도 마치 산책로를

점거할 듯한 기세로 산책로 옆에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렀던 곳은, 무료라는 글자를 큼지막하게 박아두고 있던 매직거울체험관. 미로공원에서 이미

겪었듯 길 찾기에는 영 젬병이란 걸 알고 있었는데, 이 기둥이 무한하게 이어지는 듯 보이는 거울의 방에서

자칫 못 나올 뻔 했다. 두 손을 엉거주춤 벌리고 앞의 공간을 더듬으며 그게 거울인지 아님 열린 공간이지

확인하며 한참을 버벅댄 후에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비만 안 왔으면 좀더 둘러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그래도 제법 꼼꼼하게 다 살펴보았더니 두시간 가까이

흘렀던 거 같다. 나오는 길에 눈길을 잡았던 건 오줌싸는 소녀의 상. 이건 대체 어느 나라에 있는 조각상을

소개한 건지는 전혀 확인하지 못했지만 익살맞은 표정이나 편안해보이는 자세가 매력적이었다.





제주도를 수차례 여행도 하고 출장도 다녀왔지만, 생각해보면 한라산은 늘 '아웃오브안중'이었던 듯 하다.

기껏해야 섬 한가운데 딱 박혀서는 겨울철에 갑작스런 폭설을 쏟아붓거나 변덕스런 날씨를 만드는 주범이라고나

생각했을까, 제주도의 찾아가볼 곳 중에서도 늘 빠졌던 한라산은 그냥 배경화면처럼 거기 있었던 거다.


이번에 그 배경화면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볼 기회가 있었다. 성판악에서 백록담으로 올라 관음사로

내려오는 구간, 오르는데 네 시간이 채 안 걸렸고 내리는데 다섯시간이 채 안 걸렸으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런 구간이겠으나, 아무에게나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는 백록담이 구름을 훑어내고 활짝 열렸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어서. BGM은 '헉헉헉' 쯤 숨이 턱에 닿는 소리라고 치고 사진만으로 포스팅.

백록담까지 오르내리는 길이나, 정상 아래로 깔린 운해나, 백록담의 미묘한 색감, 그리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들의 기이한 형상들까지. 아,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오르고 싶어졌다는 정도는 말해둬야겠다.


삼양검은모래 해수욕장의 낙조.  모래빛깔이 검은 탓인지 더욱 검게만 보이는 해변가, 그리고 중부지방엔,

특히 서울 강남엔 엄청난 폭우가 내렸던 날이라 그런지 갈기갈기 찢긴 구름이 선홍빛으로 물들었다.

한 세시간 전쯤의 삼양검은모래해수욕장 앞바다. 햇볕이 뜨끈뜨끈 내리쏘이던 제주 북부, 제주시에서

그리 멀지않은 해수욕장인데도 사람이 얼마 없었다. 이곳의 검은모래가 신경통이나 피부병에 특효를

발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참이었다.

이미 대여섯시쯤 되어 사람들이 한풀 꺾였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 이렇게 사람을 묻고 사람이 묻혔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아있었으니. 어찌 보면 씨앗들을 뿌리기 전의 밭고랑같기도 하다.

여긴 또 다르다. 일일 만오천원이던가, 쯤의 금액을 내고 입장할 수 있는 모래찜질 전용 공간. 삽과 기타

전문도구로 무장한 아주머니가 순식간에 사람을 묻었다가 파냈다가 그러나보다. 밭고랑이라기보다는

무슨 대규모 플랜트농장같은 느낌. 거대한 트랙터가 굉음을 내며 왔다갔다 할 거 같은.

여하간, 정오의 햇살이 전달해준 열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모래는 생각보다 뜨끈거렸다. 어느 정도

깊이 파낸 모래도 그새 땅속 깊이 머금어진 햇빛의 힘으로 따뜻한 온기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모래가

어두운 검정빛을 띄고 있어서 더욱 따뜻했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만 남기고 온통 파묻혀버린 사진.

커다란 봉분이 따끈하게 섰고, 그 속에서 옴쭉달싹 못한 채 순식간에 땀이 주륵주륵 흐르기 시작했다.

한 삼십분쯤 모래무덤 속에 짓눌려 있었던가, 생각보다 몸 위에 덮인 모래의 무게는 상당해서 좀처럼 쉽게

빠져나올 엄두를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땀이 뻘뻘 흐르기에 이르렀고 버둥거리며 모래더미를 파헤치고선

좀비처럼 기어나와, 바다로 달려들었다. 누워있을 땐 몰랐는데 이미 많이 기울어버린 해.

그리고 잠시 후에 내 옆에서 함께 찜질하던 아빠가 일어나서 바다로. 정말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해안이 제주시 근처에 있단 걸 여태 몰랐다. 모래찜질하기에 딱 좋은 검고 고운 모래가 쪼르륵

깔려있는 아담한 해안, 햇빛에 뜨끈뜨끈 달궈진 모래인데다가, 눈앞의 바닷물도 깨끗한 편이고 경사도 완만해

놀기에도 좋은 곳인 듯 하다. 아빠가 몸에 곱게 코팅된 모래를 꼼꼼히 씻는 모습을 엄마가 바라보고 있다.

왠지 선녀와 나뭇꾼 스토리를 현대적으로 전복한 이미지같기도 하고. 당당하게 남자를 훔쳐보는 여자랄까.

해안의 야경 사진 몇 장 더. 멀찍이 깜빡이는 노랑 불빛은 동해에서 남하한 오징어를 따라 제주도까지 내려온

오징어잡이배들이고, 하늘에서 반짝이는 빨간 불빛은 어디론가 우르르 일렬로 날아가던 헬리콥터들.

햇살의 잔영이 남아있는 바다쪽 말고 뒤를 돌아보니 이미 새까맣다. 해안가에는 DNA 나선형 구조의

LED조명이 불을 밝혔고, 한결 더위가 가신 해변가에는 치킨이니 맥주를 들고 나와 삼삼오오 모여 마시는

사람들이 다시 출현했다.

이번엔 좀 늦게 해수욕장에 도착한 감이 있었던 데다가 수영복이고 세면도구고 전혀 준비하지 않고

무작정 쳐들어간 거여서, 다음에는 모래찜질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좀더 뜨끈할 때 가는 것도 괜찮겠다.





미로공원의 대체적인 이미지는 그런 거다. 회양목류의 정원수를 키가 넘도록 길러서는 도톰하게 관리해서

이리저리 휘어지고 갈라지는 길을 뱅글뱅글 만들어두는 것. 다만 그게 어려워봐야 얼마나 어렵겠나, 그냥

애기들이나 재밌다며 돌아볼 그런 난이도의 가벼운 미로일 거라고 생각했고, 미로보다는 잘 다듬어졌을

그 정원 자체가 볼 것이 더 크지 않을까 했었다. 오산이었다. 최근에 본 네이버 웹툰에서 미로를 빠져나가는

'좌수법'이니 '우수법'이니를 배워두길 잘 했다 싶었다.

비슷한 테마파크들이 서로를 복제하며 우후죽순처럼 들어선다 싶은 제주도, 미로공원 역시 여러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역시 가장 오래 된 곳은 이곳 '김녕미로공원'이다. 제주도 동북부의 김녕해수욕장이랑 바싹

인접해 있기도 하고, 제주시에서부터 차로 달려도 채 한시간이 안 걸리는 거리. 입구 매표소에선 미로를

다 통과하면 종을 울리면 된다며, 아무리 헤매도 한시간내로는 다 찾는다고 했다. (그래서 미로 패스하고

난 기념 선물은 아이들에게만 준다고도 했다.)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푯말 하나. 대개가 30분 안에 종을 울린다는 이야기인데, 좀체 방향감각이나 길찾는 능력이

떨어지는 나로서는 저 80% 안에 들을 수 있을지 슬쩍 의구심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1시간이 넘도록 헤매는 건

아니겠지 설마, 했는데 막상 미로 속에 들어서니 설마가 역시나가 될 듯한 분위기.

키를 훌쩍 넘어까지 올라간 미로의 수풀 담벼락, 길도 두사람이 동시에 지나기 힘들정도로 좁은 데다가

이리저리 격하게 휘어지고 갈라져 있어서 좀체 한치 앞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저렇게 하트 모양으로

다듬어둔 모양조차 올려다보아야 하는 높이의 커다란 사이즈로 미로 속 인간들을 압박하는 듯.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세갈래길, 이곳저곳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얄미워 보였지만 뭐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하나씩 차례로 뚫어보기로 하고 우선은 오른쪽 길로 고고.

길이 좀 아닌 거 같다. 몇걸음 지나지 않아 덤불 저 너머로는 시체라도 파묻을 듯 붉게 드러난 흙무더기

위로 삽 두자루가 꽂혀 있는 모습이 살벌했다. 미로공원에 함께 들어왔던 가족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수가

그리 적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주위에 인기척은 없고, 미로의 벽들이 소리를 전부 흡수해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괴괴한 분위기가 살짝. 뭐, 0.5초 만에 앞의 코너에서 불쑥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나긴 했지만.

여하간 중간중간 사람들의 인적이 뚝 끊긴 분위기가 연출될 때가 있는 데다가, 길이 막다르거나 혹은 조금

급하게 휘어져돌아간다 싶은 곳에서는 아무래도 이런 표지가 필요하겠다. 뽀뽀금지. 연인들이 손붙잡고

이쪽저쪽을 상의하며 가다가, 어딘가에서 불쑥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둘만 있다고 느낄 때 인지상정인 거다.

이렇게 덜컥 막다른 길이 눈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눈높이로 보이는 건 온통 초록색 담벼락인데다가 담 너머

저쪽에는 뭔가 기준으로 삼을 만한 표식도 없어서, 망망대해에서 둥둥 속절없이 떠다니는 느낌이다.

이렇게 휘휘 감아 돌아가는 길에서 그냥 무작정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은 그래서, 딱히 내 의지가 실렸다기보단

그저 되는대로 가보자, 언젠가는 길이 뚫리겠지, 라는 식의 체념과 멍때림의 상태. 아이들 눈높이에 딱 맞는

수준의 미로일 거라 지레 짐작했던 걸 반성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 닿은 곳은 어이없게도 입구. 차분한 맘으로 다시 미로를 재출발하기로 했다. 알고 보니 사람들이

한번씩은 다시 입구까지 돌아와서 출발한 경험이 있어서 딱히 내가 멍청한 건 아니..라고 자기 위안.

이번에 새로 밟는 길에선 드문드문 해골이 깔려있기도 했다. 여름철 야간개장을 한다고 밤 9시반까지 미로를

개방한다더니 혹시 저 해골들은 밤에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야광해골은 아닐지. 깜깜해진 어둠 속에서 미로를

헤매는 건 음...살짝 스릴 넘칠 거 같단 생각도 든다.

종이 매달려 있는 도착점이 눈앞인데, 좀체 저기로 나가는 길을 모르겠단 말이다. 그 와중에 아까 봤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엇갈려 마주치고, 정말 두세번 만나는 게 낯설지 않았다.


해골과 키스하지 말란 표지판. 뭔가 으스스하면서도 달콤한 분위기가 풍기는 미로공원이다.

겨우 발견한 길, 미로 위로 올라서는 계단이길래 다 왔구나 했다. 근데 아직. 갈 길이 좀더 남았더라는.

이쪽에서 저쪽 종이 있는 곳까지 다시 또 미로를 헤쳐나가야 한다니, 더구나 이렇게 위에서 바라봐도

좀체 꼬불꼬불한 길을 어떻게 뚫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미로가 생각보다 훨씬 크구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어떻게 이리저리 길을 휘휘 돌다 보니까 불쑥 미로의 끝에 도달했다. 다시 걸어보라면 또다시 헤매며

좀체 학습이 이뤄지지 않은 그 길이었지만 어떻든 도착점은 예고도 없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덜컥 다가왔다.

이미 앞서 도착한 사람들이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걸음을 재촉하니 사람들 표정이 다들 환하다. 


종을 울리고 미로 밖으로 빠져나오기 전 한번 휘휘 눈으로 온 길을 되짚어 볼까 했는데, 아무래도 모르겠다.

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야 시작점과 도착점을 아무런 방황없이 통과할 수 있을까. 그치만 사실 미로는 좀

그렇게 헤매고, 뒤로 돌기도 하고, 왔던 길 또 가기도 하라고 만들어둔 거니까 대충 삼십분쯤 헤매면 미로가

가진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인 거 같다. 바로 한큐에 왔다면 글쎄, 한 5분 걸리려나.

미로 밖으로 내려섰더니 이제야 미로 앞의 잘 꾸며진 정원도 눈에 좀 들어온다. 정원도 길이 꼬불꼬불하니

또다른 미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동선이 야릇했지만, 그래도 잘 다듬어진 관목들과 꽃나무들이 보기 좋다.

아래는 그 정원에서 찍은 꽃들.

확실히 제주도는 따뜻한 남녘땅이어서 그런지 화려하고 커다란 꽃들도 많은 거 같고, 위에서 못 봤던

품종들도 많은 거 같다. 아니면 내가 '위쪽'에서 보았던 게 대부분 콘크리트 사이에서 비리비리한 한계절용

조경들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고.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말은 뱃속으로'란 말이 가장 맞지 않을까 싶었던 말고기

오찬. 제주도산 말만 취급한다는 전문점에서 세트메뉴를 시켰더니 가장 먼저 나오는 건 말고기 사시미.

참치살처럼 새빨갛고 촉촉한 살점이 가지런히 놓여 나왔다. 굉장히 부드럽고 단 맛이 도는 고기라서 사진 한번

찍고는 훌떡훌떡.

이어지는 육회. 생고기로만 만드는 육사시미의 맛을 알고 나서부터는 저가의 냉동육에 계란과 배로 맛을 내는

육회는 그다지 안 먹게 되었지만, 말고기의 경우는 물론 예외인 거다. 계란과 배를 잘 섞어서 맛보는데, 딱히

냉동고기 같지도 않고 비린 맛도 없다. 아니,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말 특유의 냄새가 약해진 거라 말해야

하지 않을까. 많이 안 먹어보던 고기, 예컨대 양이나 염소 같은 고기에 노린내가 나니 냄새가 심하니, 말하지만

사실 모든 고기엔 특유의 향취가 있는 거니까. 다만 우리가 소와 닭과 돼지 냄새에 익숙해 있을 뿐인 거다.

말의 향취를 그야말로 응축시켜서 느낄 수 있던 건 육회 다음으로 나왔던 말엑기스. 시꺼멓고 끈적한 느낌의

액체가 막걸리잔보다는 조금 작은 잔에 담겨나왔다. 원래 한약냄새 풀풀 나는 것들도 잘 먹는지라 조금씩 맛을

음미하며 마셨는데, 에스프레소처럼 첫맛은 쓰고 시다가 뒷맛은 뭉근하니 단맛이 퍼지는 그런.

왠지 힘이 불끈하는 느낌..?ㅋ

이어지는 말고기쌈. 얇게 썰린 무채에 올려놓인 다른 야채들과 함께 한점 올려진 말고기가 참 촉촉하기도 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 눈에 보인다. 젓가락으로 잘 감싸서는 한입에 쏙.

육사시미 때부터 계속 느꼈던 거지만 말고기 참..먹음직스럽게 생겼다. 색깔도 투명한 선홍빛으로 이쁜데다가

사방으로 갈라지는 고기의 결도 그렇고, 촉촉히 배어나오는 고급스런 윤기까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투명한 색감 그대로 깔끔하고 산뜻한 맛에다가 입안에서 바로 허물어지는 부드러움, 그리고 촉촉하고 매끄러운

치감이라니. 말고기 초밥을 먹으면서, 만약 이게 요리만화라거나 그렇다면 아마도 난 지금 보드랍고 매끄러운

갈기를 나부끼는 구릿빛 튼튼한 말을 타고 드넓은 녹색의 대초원위를 경쾌하고 뛰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말고기 스테이크와 내장. 말고기 스테이크는 뭔가 소스가 가득 뿌려져 있는 탓에 내용물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던 데다가, 소스의 맛과 향이 말고기 특유의 향을 상당부분 감춰버려서 그다지 별 차이점을 못 느끼고

먹어버렸다. 그냥 다진 고기로 만든 여느 함박스테이크랑 비슷했던 듯. 그렇지만 내장은 정말, 말 특유의

냄새가 가장 진하게 났던 부위였던 거 같다. 소나 돼지에 비해 좀더 부드럽게 씹혀서, 내장의 쫀득한

씹는 맛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조금 실망할지도. 그래도 정말 말 한마리 어느 하나 못 먹을 부분이 없단 걸

체감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이다.

그리고 말고기 갈비찜과 말고기 구이. 마지막으로 나온 말뼈사골국까지 해서 그야말로 말고기를 날로 먹고

쪄서 먹고 구워 먹고 다져 먹고 고아먹고 엑기스로 짜서 먹고, 온갖 방식으로 조리해서 맛볼 수 있었다. 

갈비찜에 들어간 말갈비는 소갈비랑 얼추 비슷한 사이즈였던 듯 하고, 고기의 육질은 (조리하기에 달린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 부드러웠다.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말고기엔 기름이 많지 않은 건 확실하다.

구이로 나왔던 고기들도 기름기가 많지 않아 담백하고 부드러운 살코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구제역이 한참일 때 소나 돼지와는 달리 말고기의 소비가 제법 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발굽 사이에서

물집이 잡힌다는 구제역은 발굽이 두개 이상으로 쪼개진 동물이나 걸리는 병인지라, 통굽인 말은 구제역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라던가. 그렇지만 구제역이 무서워서뿐 아니라, 말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말고기가

사람 몸에 '그렇게도 좋다'더라는 이야기를 전파하곤 한다. 말 머리에서부터 신장, 허파, 심장, 음경과 고환,

심지어는 말꼬리와 말굽에 이르기까지 참 세세하게도 효능을 적어둔 이 내용을 그대로 믿어보자면,

말한마리를 잡아먹으면 뭔가...변강쇠가 될 거 같다. 아저씨들의 취향에 맞춘 효능 안내인 걸까.

효능이야 여하간에, 말고기는 기름이 적어 꽤나 담백하고 부드러운 육질을 가진, 별미로 맛봄직한 고기인

거 같다. 제주도에서 갈수록 눈에 쉽게 띄는데다가 이제 슬슬 서울에까지 분점을 내고 있는 말고기전문점은

어디가 되었건 한번 들어가서 시도해보면 색다른 제주도 체험이 되지 않을까. 다만 이렇게 길가에 망아지가

자유롭게 노니는 제주도에서 혹시 동족의 냄새를 맡은 녀석이 뒷발로 차기라도 하면 목숨이 위험할지는

모르겠다.



제주도 서남부에 '오설록' 차박물관이 있다면 동북부에는 '다희연'이 있는 셈이었다. 너른 차밭이 언덕을

꿀렁꿀렁 넘어다니며 펼쳐진 모습도 장관일 거라 생각은 했지만, 여기는 동굴까페가 있는 데다가 카트를

직접 운전하며 6만평 차밭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것.


거문오름 자락에 연해 있다고 하더니 정말, 다원 한쪽엔 거문오름 트레킹코스 종점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고, '다희연'이란 이름보단 '동굴의다원'이란 이름으로 계속 도로표지판이 나오더니 정말,

구석구석 땅밑세계가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갈라지고 터진 검정돌바닥 아래로 슬쩍 내비치는 땅밑의

터널이라거나, 물소리가 졸졸거리며 옆구리가 터친 동굴까지.

우선 카트를 빌려서 다원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6만평에 달한다니 걷기엔 무리인 크기인데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피하기엔 저렇게 꽁꽁 비닐차양이 둘러쳐진 전동카트가 제격.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소리없이 나가는 그 느낌이 굉장히 신기해서 한두어 바퀴 다원을 돌며 카트레이싱을 펼쳐보기도 했다.

카트를 타다가 발견한 전망대..라기엔 조금 애매한 높이의 2층짜리 건물. 비에 젖은 철계단을 조심스레

휘휘 돌아감으며 2층까지 올라갔더니 탁 펼쳐진 풍경. 몇개 놓인 나무의자와 말간 아크릴창 너머 가지런한

싱그러움이 있었다.

아침부터 여우비가 오고 있었는지라 햇살이 언뜻언뜻 내리쬐는 와중에도 부슬거리는 빗발. 안개가

자욱한 구릉들이 안온하게 감싸고 있는 녹색의 다원. 차라리 비가 조금 온 게 다행이다 싶었다. 사람 하나

마주치기 쉽지 않은 공간에 고즈넉한 공기가 차분하게 내려앉은 채 단단히 응결된 느낌.

카트를 타며 지나친 풍경들. 6만평이란 게 얼마나 넓은지 처음엔 와닿지 않더니, 좀 달리며 둘러보니까

비로소 실감이 간다. 산도 있고 나무도 있고 오르막내리막길도 있고 언덕도 있고 다원도 있고. 저런

흔들의자들이 띄엄띄엄 놓여있기도 하고. 참 많은 게 들어가는구나.

그야말로 '언덕 위의 하얀 집'이다. 빗물에 씻겨 더욱 싱싱하게 풀빛을 뿜어내는 녹차밭과 잔디밭 사이로

깜장돌이 차곡차곡 즈려박혔고, 돌이 이끄는대로 밟아 올라가면 도착하는 언덕 위의 하얀 집. 그리고 다희연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또다른 뷰포인트.

녹차밭만 있다기엔 중간중간 우거진 나무들도 있고, 늘씬하게 뻗은 채 그림처럼 서 있는 나무도 있었고,

아직은 전부 조성완료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자귀나무 동산이나 종가시나무로 조성한 미로 비스무레한 것도

있었다. 나뭇잎이 듬성듬성 가지끝에 성기게 매달린 게 종가시나무인 거 같던데, 아직 미로라기보다는 그냥

정신없이 우거진 종가시나무숲이란 느낌이었지만 조만간 정비되면 괜찮지 않을까. 녹차나무로 팔괘진을

만들었단 곳은 제법 잘 정비되어 있었고, 사진에 이쁘게 나오려면 조금 높이서 내려볼 수 있는 받침이나

사다리를 만들어두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조금 남았던 곳.


곶자왈, 제주도 여기저기에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 많다 했더니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였다.

'곶'은 숲, '자왈'은 자갈을 가리키는 제주도 사투리. 그러니까 자갈이 깔려있는 숲길이랄까. 제주도의 독특한

화산지형으로 생겨난 산책로인 셈인데, 비를 맞아 더욱 꺼뭇꺼뭇 구멍송송해진 현무암 틈새로 빼곡히 자리를

잡은 이끼들과 잘박거리며 발 아래에서 뒹구는 자갈들이 묘하게도 정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다지 길진

않았지만 온통 나무들이 빼곡하게 하늘을 가린 곶자왈 산책로를 걷고 다시 탁 트인 차밭으로 나오니

기분이 묘하다.

그렇게 곶자왈도 숨어있는 6만평의 너른 차밭을 샅샅이 수색하듯 전동카트로 헤집고 나서, 드디어 동굴의 다원

입장하기 직전. 거문오름에서 뻗어내린 여러 자락 중에서도 동굴계 자락 끄트머리에 자리한 덕분에 가능했던

거라고는 들었지만 대체 어떤 식이길래 동굴의 다원이라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고, 녹차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크기도 했고.

생각보다 깊고, 크고, 넓은 동굴이 조금 이어지더니 불쑥 밝은 빛이 가득한 홀이 나왔다. 뭔가 물이 뚝뚝

떨어지고 흐릿한 조명에 조악한 테이블이 몇개 있으려니 했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깔끔하고 나름

단정한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갖춘 천장 높은 까페가 있었던 거다. 30만년전에 형성된 동굴이라더니, 그래서

저리도 넓고 큰가 싶었다.


녹차 아이스크림은 물론이고 녹차빙수, 녹차발효액에 각종 케잌과 빵류까지 제법 잘 갖춘 까페에서 잠시

앉아서 시원한 에어콘을 쐬면서 이것저것 맛도 보며 쉬다 보니 금세 땀이 식어버렸다.


돌아나오는 길, 들어가는 길이나 나오는 길이나 같은 길이었지만, 이런 경우 늘 신기한 건 들어갈 때 못 보았던

것들을 나오면서 새삼 발견하는 경우가 왕왕 있더라는 것. 내가 관찰력이 떨어지거나 주의가 산만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저렇게 동굴 외길 한켠에 나란히 걸린 '사랑의 서약'은 왜 아까 못 봤을까.

녹차를 응용한 음식들을 파는 레스토랑도 있고 도자기만들기를 체험해볼 수 있는 전통도요도 있다고

하는데 뭐, 배는 고프지 않고 도자기는 익히 만들어보았으니 전부 스킵. 사전에 예약하면 녹차따기나

녹차팩만들기, 녹차비누만들기나 녹차장아찌, 녹차발효액만들기 체험도 해볼 수 있다고 한다. 조그만

아이들이랑 함께 제주도에 놀러간다면 한번쯤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지만, 머리 굵은 사람들끼리의

여행이라면 짙푸른 녹색의 다원에서 카트를 질주하곤 동굴까페에서 녹차 팥빙수 한그릇 흡입해주는 정도면

충분하지 싶다.



동생과 내가 각자 직장을 다니다 보니 부모님이랑 3박4일 가족여행을 맞춰 떠나기도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부모님과 동생은
3박4일, 난 마지막 하루 일정을 빠지고 2박3일만 함께 했던

오랜만의 가족여행이었다. 렌트카를 빌려서 돌아다니는 기동성있는 여행일정으로 참고삼아

제주시와 동부를 아우른 2박3일, 그리고 제주 서남부를 포함한 3박4일 스케줄을 기록.



첫째날. 한라산 등반


06:50 김포 출발

08:00 제주 도착 - 렌트카 픽업, 점심거리 구매

08:30 제주공항 출발

09:20 성판악 도착, 등산 시작

13:00 백록담 도착

13:30 백록담 출발
18:00 관음사 도착

19:00 숙소(제주시) 도착, 저녁식사

21:00 해안도로 까페촌



둘째날. 제주 동북부


08:30 숙소 출발

09:30 다희연 도착

12:00 산굼부리 도착


13:30 점심 (말고기)


14:30 제주미니랜드 도착


16:00 사려니숲길 도착 (불어난 계곡으로 인해 출입금지)

16:30 김녕미로공원 도착


18:30 삼양검은모래해변 도착


20:00 저녁 (붉은못허브팜 빅버거) take-out


20:30 숙소(제주시) 도착



셋째날. 제주 동부


07:30 숙소 출발

08:40 성산포항 도착

09:00 우도행  카페리 출발(15분 소요)

09:15 우도 - 우도봉, 우도등대공원, 서빈백사, 하고수동해수욕장, 비양도, 동안경굴


11:30 성산포행 카페리 출발(15분 소요)

11:45 성산포항 도착

13:00 제주시 진입, 점심 (전복뚝배기)

14:00 제주민속5일장 (2/7일 개장)


15:30 제주공항 도착




(남은 일정)


쇠소깍

쉬리의 언덕

내국인면세점(10-21시 운영)

숙소(모슬포) 도착, 저녁식사


* 넷째날. 제주 서남부

제주조각공원

화순해수욕장, 용머리해안

초콜렛박물관

생각하는 정원

유리의성

금능해수욕장-애월항 해안도로 드라이브





모슬포항 앞,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로 배를 가득 채운 '만선'의 꿈이 뭔가 어촌의 정취가 느껴지면서도

여유롭고 뿌듯한 삶을 바라는 인간의 당연한 욕망이 느껴지는 단어라면, 그 뒤로 보이는 단어는 훨씬

강렬하고 직설적이다. '돈방석'이라니. 굉장히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욕망을 드러내는.

내가 꼭 저 만선식당에서 먹었던 고등어회가 정말정말 맛있어서만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뜩이나

신선도가 금방 떨어져서 회치기가 힘들다는 고등어, 왠지 비릴 거 같기도 한 그 생선회를 구운 김에

싸서 깨소금과 참기름으로 비빈 밥과 함께 먹으면. 캬아..제주도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인상에 남는.

바다에 비가 내리는 걸 보노라면 뭔가 망연해진다. 비가 오는 날 회를 먹지 말라던 건, 비싼 회를 조르는

아이들의 입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던 어른들의 궁여지책 같은 거 아니었을까. 배고프다.

제주도답게, 구멍이 송송하고 반들반들한 현무암스러운 돌멩이로 냅킨을 눌러둔 까페에 앉아

책도 들척이고, 노래도 듣고. 그러고 있으면 참 좋았다. 어딘가로부터 어딘가로 걸었던 길 끝에서,

혹은 어딘가로 떠나기 전 길을 앞에 두고, 쿠션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포실포실한 쿠션을 꼬옥

끌어안고는 잠시 몸을 부려두는 거. 그리고 여력이 된다면 다시 책 속이나 멜로디 속으로 떠나는 거.

더구나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씨라면.

모슬포항 주변에도 이런저런 벽화가 그려져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맘에 들었던 건 저 해녀 사진.

몸의 동작이나 모양새 자체가 바다 속이라는 느낌이 가득하도록, 살짝 흐느적거리거나 유영하는 듯하다.

무중력 상태에서 자유롭게 몸을 운신하며 바다 밑 해산물들을 채취하는 그네들의 생활이 꼭 저럴 거 같다.


이렇게 며칠째 비가 내리는 날에는 바다 밖의 사람들도 저렇게 둥둥 유영해다니는 거 같다. 길거리를

부유하는 우산들도 그렇지만, 뭐 하나에 마음이 집중되지 못하는 정신상태 역시.









제주 모슬포항 근처를 밤늦게 어슬렁대다가 만난 간판. 수음?

제주산 흑돼지고기를 파는 '수눌음'이란 음식점 간판에 가운데 '눌'자 불이 꺼져있었던 거다.

5,60년대 한국문학에서 적잖이 사용되던 그 단어, 뭔가 고풍스러우면서도 은밀한 뉘앙스를 가진.

네이버에 물었더니 비슷한 말까지 우르르, 한자로 풀리니까 더욱 뜻이 선명하다. 손수手에 음란할음淫.

손으로 하는 '음란한 짓'이랄까. 그렇지만 뭐, 자연스런 욕망의 발현을 굳이 음란하다느니 따위로 색안경

끼고 볼 일은 아닌 거 같다.


그래서, 여하간, 제주흑돼지 파는 집 간판에서 '수음'이란 단어를 떠올리고 말았다는 이야기.



커다란 컨테이너가 흙바닥을 찍어누르듯 자리잡고서 오랜 시간이 지났나보다. 온통 붉은 녹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컨테이너 철판껍데기에는 햇빛 알레르기처럼 자잘한 물집이 빈틈없이 잡혀 있었다.

흉흉하고 살벌해보이는 그 두껍고 우왁스러워보이는 컨테이너차벽, 그런데 그 벽면에 바싹 기대어선

노랗고 하얀 꽃들을 피워내는 들풀들이 있었다. 햇볕도 가리우고, 철이 부식되고 페인트가 떨어져

나오며 참 많이 방해받았을 텐데, 기어이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 제주, 가파도.


이런 거 왜 계속 방치해두고 있나 모르겠다. 아예 저렇게 철판이 다 썩어서 산산이 부서질 때까지

방치할 생각인 걸까. 가파도의 풍광은 아름다웠지만, 시멘트를 때려부어 만든 길은 편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했고, 그 와중에 이 녹슨 컨테이너 박스가 가시처럼 박혔다.






배들이 부딪힐 것에 대비한 걸까, 타이어를 촘촘이 둘러둔 제주 모슬포항 가장자리는 짠내나는

비바람에 말라터진 각목재들이 한번더 둘려 있었다. 그렇게 파도에 흠뻑 젖었다가 햇볕에

바싹 말라 소금꽃을 피웠다가, 그렇게 반복하며 저렇게 껍데기만 겨우 지탱하고 있는

각목과 시멘트 사이에서 풀꽃들이 피어났다.


어디에선가 실려왔을 풀꽃씨가 용케도 바다에 삼켜지지 않고 저기에 안착하기까지, 그리고

느닷없이 출렁거리는 물벼락이나 바닷소금의 짠기에 침범당하지 않고 싹을 틔우고 저렇게

작지만 샛노란 꽃을 피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있었을까. 다 썩어빠진

나뭇토막엔 대체 양분이 남아있기나 하려나.

서울로 돌아오기 전 협재해수욕장에서 낙조를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언제 이렇게

해넘이 시간이 늦어졌는지, 7시가 넘어도 좀체 가라앉지 않는 태양보다 서울행 비행기가

먼저 떠나버릴 지경이어서 여기까지..여기까지만 해가 내려앉은 걸 보고 버스를 부랴부랴

잡아타고 말았다.



@ 제주도, 모슬포항 & 협재해수욕장

제주도하면 역시 말, 드넓은 푸른 초원 위에 자유롭게 풀린 말들이 느적대며 풀을 뜯거나

자기들끼리 장난치는 그런 풍경이 떠오르는 거다.

말은 서서 잔다더니 정말, 그 중에는 저렇게 서서 꼼짝도 안 하는 말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뒷다리 하나는 야무지게 꼬고서는 가끔 갈기만 휘날리며 꼼짝도 않는 모습이 도도한 긴생머리

아가씨같은 분위기도 얼핏 풍긴다.

울타리가 둘러져 있긴 하지만 크게 말들의 움직임이나 자유를 구속하는 거 같진 않다.

꽤나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데다가, 녀석들의 급할 것 없는 걸음걸이를 보면 좀처럼

갑갑증을 느끼거나 저너머까지 뜀박질을 하고 싶은 느낌은 한톨도 없는 듯 하다.

말들의 세계에 '조나단 리빙스턴'갈매기 같은 녀석은 없는 걸까.

자기들끼리 유유자적 산책하는 발걸음으로 초록 풀밭을 거닐며, 때로는 머리를 맞대고

뭔가 속삭이기도 하고, 때로는 홀로 풀을 씹으며 고독에 잠기는 척 하기도 하고. 꿈벅거리는

큰 눈에 선한 입매, 단정한 발걸음 품새까지 보다보면 그냥, 울타리고 뭐고 에라 모르겠다

여기서 풀이나 뜯자 하는 기분이 들고 마는 거다.



@ 제주.

절 옆에서 물이 솟아난다 하여 절물이라던가, 제주도의 절물자연휴양림 들어서는 입구다.

역시 탐라국답게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반겼다.

"오십디강 잘 쉬었당 갑써양", 제주 말이 잉잉거린다 싶은 건 바닷바람에 날린 탓이라고.

현충일을 앞둔 황금연휴의 시작, 토요일 오전이었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적었다. 일기가 궂어서

사람들이 제주도로 많이 못 내려왔나 싶기도 했지만 속속 도착하는 대형버스들이 사람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조금 일찍 출발한 덕분에 새소리 가득한 호젓한 숲길을 고즈넉히

걸어볼 수 있었다.

쭉쭉 곧게 뻗은 나무들이 빼곡하게 버티컬 커튼처럼 내리쳐져서는, 땅바닥의 갈빛과 천장의

녹색빛깔 사이에서 조금씩 그라데이션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앞서 걷는 사람 하나 찾아보기

쉽지 않은 그런 숲길, 어디선가 은은한 꽃향기와 나무향이 흘러넘쳤고 나무 사이를 휘감는

바람은 정말 머릿속 두통까지 털어내는 듯 했다.

나뭇가지를 지팡이처럼 꺽어쥐고 걷던 꼬맹이가 뭐에 심통이 났는지 빽 소리지르며

울기 시작했나보다. 당황한 부모가 일단 나뭇가지부터 던져버리고 아이를 달래기 시작,

나무 등걸을 타고 덩굴이 올라가듯 아이의 울음소리가 하늘로 번져 오르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사람많고 아스팔트로 꽉 찬 도시의 울음과는 그 괴로움의 정도가 훨씬 덜했다.

그나저나 나무 참 미끈하게 쭉쭉 잘도 뻗었다. 지면이 평평하던 기울었던 상관없이 나무는

하늘을 향해 알아서 방향을 잡아가다니, 무던하게 1미리씩 오차를 수정해가며 하루하루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꺾어나갔을 거다. 지구 중심부로부터 바로 뻗어나온 그런 각도아닐까,

왜 둥근 태양에서 햇살처럼 번져나는 느낌으로 지구에서 뻗어나간 나무들.

중간중간 놓여있던 너른 평상, 잘 관리되는 푸른 잔디밭 위에 잘 생긴 나무들이 우쭉우쭉

자라나 초록 그늘을 드리워 바람이 머문다 싶은 곳엔 여지없이 평상이 놓여있었다. 시간만

많다면 그냥 저기 벌러덩 누워서 바람쐬고 먹고 자고 하면 딱 좋겠다 싶었는데, 부러운

맘에 선택받은 사람들의 그 평온하고 편안한 분위기만 슬쩍 취했다.

덩굴식물을 보고 있으면, 특히나 녀석들의 조그맣고 반질거리며 단단한 이파리를 보고 있으면

이 아이들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실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건 아닐까 싶어질

때가 있다. 위에서부터 크리스마스 트리에 전구나 리본을 둘둘 감듯이 나무둥치에 휘휘

감아놓은 듯한 분위기여서 그런 걸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다.


얼핏 초록빛 일색으로 보이던 숲이 알고 보면 무수하게 다양한 빛깔을 품고 있었다. 뭐랄까,

상이색이나 에메랄드색 크레파스같은 빛깔이 풍기는 숲그늘이 너무 신기해서 한참 둘러보다가,

나무를 눈여겨보고야 그 이유를 알았다. 나무껍질에 온통 옅은 녹색의 이끼가 잔뜩 끼어있어서,

전체적인 색감이 그렇게 오묘하게 나왔던 거다.

드디어 '절물'이란 이름의 연원에 도착, 절은 없어졌고 조그마한 암자가 남아있다지만

절 옆에서 흘러나온다던 물은 그대로였던 거다. 층층이 이끼가 시루떡처럼 얹혀있는 샘물,

나무대롱을 타고 흘러내리는 수량이 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급살맞게 콸콸 흘러내리는

지경은 아닌데다가 주변이 온통 파릇파릇하고 폭신한 분위기인 게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어느 한 장면 같다. 토토로라도 뛰어나올 분위기.


코스가 여러곳으로 뻗어나가 있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산책했던 코스도 있고 하여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맛이 있을 거 같다. 절물오름까지도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도

있다고 하니 할애할 시간도 짧게는 한시간 내외에서부터 길게는 몇시간까지 즐길 수

있을 거 같고. 제주시에서 멀지도 않으니 꼭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인 듯.

"왕방강 잘고라줍서", 와서 보고 가서 잘 이야기해달라는 그 당부 아니어도 이야기를 신나서

잘 할 수 밖에 없던 곳. 절물자연휴양림이었다.







@ 제주, 섭지코지.



얼마전 회사의 홍보대사를 뽑는다는 자리에 면접관으로 갔었다. 88, 89년생이 대부분인 대학교 2,3학년. 남자는

그래도 군대도 다녀오고 이러저러하여 85년생까지도 보이던 자리.


대학생들인지라 자기소개서는 꽤나 '신선'했다. 반말투로 적은 자기소개서, '성별 : 남'이 아니라 '성별 : 건장한

남', 느낌표와 말줄임표와 이모티콘이 난무하던 자기소개서까지. 아, 볼에 바람 불어넣은 셀카사진을 첨부한

여학생도 빼놓을 수 없겠다. 나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사진과 실물이 다르니 '실망'이라 부를 만한 감정이

불끈, 오른 건 사실이었고, 그보다 자기소개서 같은 공식적인 글은 조금은 형식을 갖추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면접 자리에서도 꽤나 재미있었다. 아무래도 정식 직원이 아니라 홍보대사를 뽑으려는 거라 본인의 적극성과

사교성을 보여주려는 응시자들이 많았다. 대입 면접을 대비하며 지하철 객차 안에서 했다던 인사말을 정말 큰

소리로 다시 해보이는 학생, GEE 가사를 개사해서 개다리춤과 함께 노래하는 학생, 본인의 계획과 의지를

스케치북에 적어서는 발표해보겠다는 학생, 핸드폰을 팔아보이겠다는 학생도 있었으니, 반나절 내내 백 명

가까이 보면서 심심하진 않았다.


제주에서 비행기 타고 왔다는 학생은 그랬다. "여기까지 오는데 한시간 반밖에 안 걸립니다. 제주라고 넘

멀다고만 생각지 마시고, 그런 선입견 없이 저를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멋진 멘트, 멋진 학생이었다. 지방은

확실히 서울 근교에 비해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스펙 업'할 기회도, 경력도 적어 보였다. 이력서에 적힌 온갖

인턴, 홍보대사, 봉사활동이니 단체활동이니, 절대적인 양에서 차이가 엄연하지만, 그래도 이런 배짱이라면.


GEE를 부르며 개다리춤을 춘 학생은 정말 부끄러운 기색 하나 없었다. 옆자리의 차장님이 부끄러워 하시며

그만하라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끝까지 듣고 나선 다시 한번 앵콜을 청했을지도. 그리고 나선 아마도

무한재생 버튼을 눌렀겠지. 그치만 정말 가사를 적절히 개사하고 외워서 면접관들 앞에서 흔들림없이 춤과

함께 노래할 수 있단 건 굉장한 일이다.


둘이 맞춰서 보핍보핍~을 재연해보려던 학생들은 합이 전혀 맞지 않아 왠지 캥거루 권투시합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을 연출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뭔가 보여주려는 의지가 강해보였다. 아무리 기회를 주려고 해도,
 
잔뜩 옹송그린 채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지원자들도 적지 않았기에 그 권투시합이 좋게 보였던 게다. 더구나

이건 '조용히 중간만 가도 되는' 그런 거라기보다는, 아무래도 본인이 홍보대사에 적합함을 어필하는 게 나은

전략일 텐데 묻어가려는 지원자들이 의외로 많았다.(어쩜 정말 되면 좋고 아님 말고, 그런 식이었는지도.)


혹시 '소'수염을 굳이 깍으라 한다면 어쩔 건지, 란 질문에 그건 오히려 학생들에게 우리 회사의 자유로움을

보여줄 수 있는 증거일 수 있는 데다가 본인의 개성이라 말하던 학생도 있었다. 내가 인턴 면접보러 가서

귀걸이 못 빼겠다고 뻔뻔히 이야기하고 합격했던 게 생각나서 만점을 줘버렸다. 회사의 입장에서도, 직원

채용과 홍보대사/인턴 채용이 엄연히 다른데 그정도의 유연함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이런 면접 경험이라곤 대입 때나 알바 구하는 첫자리 정도였을 미숙함에 더해서, 게다가 요새 여기저기

공공기관과 사기업에서 온갖 인턴이다 홍보대사다 '스펙 업'하라며 숙제만 잔뜩 내어주는 터라 나름 긴장도

적지 않았나 보다. 생각보다 많은 응시자들이 확연히 떨고 있었다. 별 것도 아닌 홍보대사인데, 안쓰러워서

농담도 해주고 기회도 두번세번 주고 했지만 끝내 버벅이고 움츠러드는 게 넘 마음이 안 좋았다. 그만큼 정말

부담이 커지기도 한 게 사실이니까. 괜히 개나소나 다 인턴이니 뭐니 뽑겠다며 대학생들을 괴롭히니 원.


이왕 뽑는 거면 좀 잘 썼으면 좋겠다. 인턴 뽑는 거야 내가 함께 일하며 가르쳐주고 잘해주고 하면 되지만

홍보 대사는 직접 함께 상시적으로 일하는 것도 아니어서. UCC니 블로그니 활용할 줄 아는 능력자도 많고

말잘하고 열정적인 사람도 많았는데, 회사나 뽑힌 사람이나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관건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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