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뿐 아니라 인도 대륙 전체를 통틀어 4대 시바 사원 중의 하나로 꼽힌다는 카투만두 파슈파티나스 사원.

 

쉼없이 쌓이는 장작들, 어디선가 끊임없이 옮겨오는 고인들의 유해들이 피워올리는 연기와 독특한 냄새가 특징적이다.

 

그리고 한쪽 강변으로는 11개의 새하얀 탑이 있는데, 이건 힌두교 최고의 신 시바의 성기, 양물을 형상화한 상징과도 같은 것이라나.

 

그 거대하고도 수많은-무려 11개의-양물 아래에서 사람들은 초에 불을 붙인 채 유유자적한 강물에 띄워보내기도 하고.

 

그리고 그 강물은 또다시 화장터에서 쏟아져내리는 잔해들을 삼키고 계속 나아갈 테고.

 

사람들은 유해를 따라 움직이며 눈물을 흘리고 더러는 한국과도 같이 곡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장작 위에 안치되는 고인을 따르는 그 행렬 마지막에는 동전을 짤그랑짤그랑 흘리며 뒤따르는 사람까지.

 

 

파슈파티나스 사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왠지 굉장히 황폐하고 인적도 드물어, 조금 들어가보려다가 말았다.

 

강의 상류, 뭔가 낡고 잔뜩 허물어진 사원들이 이어져 있었지만 왠지 맥이 풀려서 의욕을 잃었다. 냄새 때문일지도.

 

그래도 이만큼 강을 거슬러 올라와 화장터와 사원 본진쪽을 바라보니 마치 삼도천 같기도 하다.

 

강변의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면에 기댄 허름한 오두막들, 이곳에 상주하는 힌두교 수행자들의 수행지라고 한다.

 

 

다시 내려온 화장터에서는 누군가의 화장이 막 시작되려는 참.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이렇게 트인 공간, 게다가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공간에서 화장을 치르는 것 자체가 개념이 다르다는 반증일지도.

 

사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낡은 기부함. 저렇게 양철 껍데기가 삭아들어버릴 정도면 대체 언제 만든 걸까.

 

 

연기가 하늘로, 강변으로 번져나가고 슬슬 빗겨내리는 햇살 속에 까만 실루엣으로 자리한 파슈파티나스사원.

 

화장터가 살짝 그늘 속에 숨겨지고 나니까 그지없이 평화로운 풍경이다. 사진엔, 냄새가 담기지 않는다.

 

 

파슈파티나스 사원의 가운데에 위치한 탑. 힌두교 수행자인 듯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나이스 뷰, 나이스 뷰'를 외친다. 탑 안에 들어와 전망을 볼 수 있게 해줄 테니 팁을 달라는 거 같아 싱긋 웃고 지나친다.

 

파슈파티나스 사원 내의 사원 건물들은 대부분 힌두교도들에게만 입장이 허락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그저 외관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낌이 전해진다.

 

역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카메라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키는 사람들. 이들이 그 유명한 힌두교 수행자들,

 

사두라고 불리우는 이들이다. 사실 저렇게 치장하고 사람들 사이를 슬슬 지나다가 누군가가 카메라라도 쥘라 치면

 

기둥 뒤로 숨어버리거나 얼른 내빼버리고는 돈을 먼저 요구하는 사람들이니, 수행을 한다고 해야 할지는 의심스럽다.

 

내게도 여지없이 돈부터 요구하는 그들에게 지갑을 툭툭 쳐보이고는 카메라를 먼저 가리켰다. 나름 '선촬영 후보수'의 조건을

 

제시한 셈인데, 눈치빠른 이 수행자님들은 바로 알아들으시고 얌전히 포즈를 쥐어주었다. 일단 주도권을 쥐었으니 다양한

 

각도로 일단 쉼없이 셔터부터 누르고 본다. 그리고 나서 감사를 표하며 지폐를 한 장 꺼내들었더니 자기들은 두 명이라며

 

두 장의 지폐를 달라는 이 고명하신 수행자님들. 그냥 둘이 갈라쓰시라는 수신호를 하고는 꾸벅 인사를 해드렸다.

 

 

이 멋진 치장. 대체 저런 액세서리들은 어디서 다 조달해 오신 걸까. 그리고 온몸 가득 하얗게 분칠을 할 때는 무슨 화장품을 쓰는 걸까.

 

그리고 저 앙상한 다리. 아마도 이 분들은, 종교나 문화는 달랐지만 '신밧드의 모험'에 나왔던 그 할아버지와 동류일지도 모르겠다.

 

개울을 좀 건너게 해달라고는 무등을 탄 채 그대로 계속해서 신밧드를 말처럼 부리던 심술궂은 할아버지.

 

이 아저씨도 그랬다. 카메라를 보자마자 알아서 이리저리 포즈를 잡거나 웃거나 손을 흔들고는, 카메라 뷰파인더에서 눈을 뗀

 

나를 보자마자 돈을 달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인다. 아저씨 찍은 거 아니라고, 저 탑을 찍은 거라고 (거짓)수신호.

 

네팔어인지 아니면 산스크리트어(범어)인지 모르겠지만 금이 쫙쫙 가고 가장자리가 깨어져 있는 종들.

 

 

허름한 건물, 아마도 수행자들을 위한 그나마 제대로 갖춰진 숙소인 듯한 공간에서 창살쳐진 창밖을 굽어보는 어느 수행자.

 

 

슬슬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의 구름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화장터의 불빛은 주홍빛으로 더욱 아름다워졌다.

 

몇 개의 사원 건물들이 군집해 있는 이곳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건 역시 파슈파티나스 사원. 금속제의 지붕이 황금빛으로 은은하다.

 

 

안 그래도 가장 센치멘털하고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시간대가 이렇게 뉘엿뉘엿 해가 지기 직전인데, 사방에서 오르는 연기와

 

싱숭생숭 착잡한 냄새까지. 문득 여기가 어디고 난 누구인가, 싶을 만큼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 버렸다.

 

 

떨어지는 해를 보는 걸까, 거뭇거뭇해지는 하늘을 보는 걸까. 아니면, 아직 작고 여린 새끼의 가쁜 심장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나라에 큰 일이 생겼을 때는 봉수대의 모든 봉화를 올려 전력을 다해 불을 피웠다고 했다. 그게 네 개던가 세 개던가.

 

여긴 예닐곱개의 연기가 한꺼번에 피어오르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라의 큰 일보다 더 큰 일, 누군가의 부재를 알리는.

 

 

한쪽에서는 사람이 사라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연극을 하듯 강렬한 조명 아래에서 살아 숨쉬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뭔가 다른 세상에 잠시 떨어졌다가 돌아온 것만 같은 파슈파티나스 사원에서의 오후와 저녁 시간을 보내고,

 

엷은 보랏빛으로 물들던 하늘이 삽시간에 새까매지고 나서야 덜컥 걱정스러워져서 깜깜한 길을 십분여 더듬어 공항으로 걷다.

 

갈 때와는 달리 훨씬 금방 도착했다는 느낌으로, 'Buddha's eye'가 내려보고 있는 국제공항 입구에 도착해서야 안도하다.

 

어디나 그렇지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올랐다 내려올 때도 그랬지만,

 

일단 한번 밟아보고 거리감을 익힌 길에 대해서는 훨씬 금방 도착하는 것만 같다. 훨씬 안정되고 안심한 채로.

 

 

그렇게, 꼬박 10일에 걸친 네팔 여행, 주로 안나푸르나 푼힐과 베이스캠프 트레킹에 할애했던 여행에 마침표.

 

 

 

 

8일간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마치고 잠시 포카라를 둘러보곤 카투만두로 날아왔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은

 

대충 대여섯시간 남은 상황, 카투만두 트리부번 국제공항에서 걸어서 십오분 거리쯤에 있는 파슈파티나스 사원을 돌아보기로 했다.

 

무려 1,000NPR(한국돈으로 약 10,000원)에 달하는 예기치 않은 고액 입장료에 놀랐으나 사원 입구에서부터 현란한 색깔로 압도당하다.

 

나무나 석물을 파서 만든 저 도장들을 위한 염료인 것 같은데, 색깔이 어쩌면 이렇게도 곱고 화려하게 발하는지.

 

사원 비스무레한 건물이 나타나기도 전 이런 류의 기념품샵들에서부터 삼매경에 빠져 한참을 지체하고 있었다.

 

네팔의 상징과도 같은 'Buddha's eye'. 그 문양을 박아넣은 주발. 막대기를 사용해 주발의 바깥을 따라 부비면 거대한 공명이 생긴다.

 

이윽고 나타난 사원 비스무레한 건물들의 실루엣. 켜켜이 중첩된 낡은 건물들, 그리고 그 앞에서 혼자서도 잘 노는 꼬맹이 하나.

 

 

 

그리고 예기치않은 연기와 매캐한 냄새의 기습. 대체 이게 뭐야, 할 틈도 없이 시각과 후각을 빼앗겼다.

 

뭔가 굉장히 불편하고 메스껍기까지 한 냄새, 뭐랄까 고기를 굽는 게 아니라 작정하고 태우는 듯한 그런 냄새와 연기였다.

 

강 건너편에서 불구덩이를 만들고는 뭔가 열심히 태우는 사람들, 거의 다 불길이 사그라들어 연기를 뿜어내는 것도 있었고

 

혹은 이제 막 살라붙은 불이 맹렬하게 장작들을 공략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불쾌하고 역한 속을 애써 다독이며 걷다 보니 커다란 중심 탑 앞까지. 온통 구름 속인 듯 연기가 자욱하다.

 

 

그리고 붉은 축복의 징표가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려 온몸을 시뻘겋게 피칠갑하듯 염색해버린 조각상들.

 

그리고 다리를 건너 좀더 가까이 다가간, 그 장작더미들과 불구덩이들의 정체는.

 

마치..나무로 짜인 침대와도 같은 장작 위에 놓인 그것, 한때 웃고 말하고 움직였을 그 몸뚱아리.

 

이곳 '성스러운 바그머띠 강'을 끼고 위치한 파슈파티나스 사원은, 네팔 최대의 힌두사원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보다도 더 유명한 건, 힌두교도들의 마지막을 위한 강변의 노천 화장터가 상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방금까지 누군가의 마지막을 위한 제의의 공간이었던 곳, 타고 남은 잿가루들이 강으로 쓸려내보내지고 나니

 

어디선가 비틀거리며 조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털썩, 소리가 들릴만큼 주저앉았다. 혹시, 주인이었던 건 아니겠지.

 

화장터 앞에서 망자의 마지막을 지키는 가족들, 그리고 관련된 종사자들. 마치 들것과도 같은 저 철판 위에다가

 

모셔와서는 정성껏 쌓아올린 나무 장작 위에 안치한다. 그리고 구석구석 고체 기름을 꼽고는 불을 댕긴다.

 

 

그게 끝. 아니, 사실 끝은 그보다 훨씬 이전일 거다. 눈을 감는 순간, 심장이 멈추고 뇌가 작동을 멈추는 순간.

 

그러고 나면 남는 쭉정이, 땅에 묻던 불로 사르던 수많은 원소로 돌아가는 건 같다. 다만 속도의 차이일 뿐.

 

 

그렇다고는 해도, 그 정제되지 않은 냄새와 연기. 가까이서 지켜보고 나니 더욱 숨이 답답해지는 것 같아

 

잠시 옆의 지붕이 그럴 듯한 사원으로 피신하여 숨을 돌렸다.

 

 

사실 이곳 파슈파티나스 사원은 힌두교 최고의 신인 시바를 모신 사원 중에서도 손꼽히는, 심지어 인도까지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사원 중의 하나라고 한다. 아마도 그렇기에 교인들이 이곳에서 최후를 맞고 싶은지도 모른다.

 

아까 열심히 연기와 냄새와 싸우며 걸어왔던 강변, 문득 다시 보니 지금은 원숭이떼가 온통 길을 점령해 버렸다.

 

이 곳에 사는 원숭이떼들은 더러 먹거리를 들고 있는 사람을 습격하기도 할 만큼 악명이 높다고 한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조금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사원의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참, 장작을 쌓는 모습을

 

처음부터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방망이 깎는 노인'의 자세랄까, 편안하게 누울 수 있도록 짝을 맞추고 높이를 조정하고.

 

그렇게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쉽게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는 불길이 일 수 있도록 쌓은 장작더미.

 

위에 고인을 모시고 짚으로 몸과 얼굴을 잘 가리고 나면, 삐쭉 나온 두 발이 남긴 하지만 차라리 그건 덜 안타까운 장면.

 

옆엣 공간에서는 굉장히 작고 조그마한 짚덤불이 놓인 채 불이 올랐더랬다.

 

그리고 이리저리 불을 뒤채며 잔해가 남지 않도록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는 일꾼. 결국 재만 남고 나면

 

삽같은 것으로 긁어 강으로 남은 것들을 뿌려버린다. 아이들이 수영하고 뛰어노는 바로 그 강변으로.

 

 

그렇게 강변을 따라 늘어선 대여섯 개의 화장터. 마침표 이후의 잔해가 또 하나, 안식을 찾아들었다.

 

그리고, 이런 장면들을 하루에 수십번씩 벌써 수백수천날을 보았을 어미 원숭이와 그녀의 조그마한 새끼 원숭이.

 

 

 

 

 

허름해보이지만 휠까지 말끔하게 페인트를 칠한 버스에 매달리다시피, 무겁게 몸을 실어넣으려는 네팔 아주머니의 몸짓.

 

대체 버스 바닥높이가 왜 이렇게도 높은 거니.

 

그리고 흔하게 볼 수 있던 '소판'. 드넓은 차도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는 주변 관광객들의 카메라 세례를 즐기는 중이시다.

 

해발 800미터의 포카라. 열대 기후대에 걸맞는 과일들을 주렁주렁 매달고는, 주스 한잔 주문하니 삼십분이 걸렸다.

 

 

포카라 메인로드의 온갖 기념품점의 형형색색 기념품들도 눈에 들어왔지만, 그보다도 더 구미에 당기던 어느 차안 황금색 가네쉬.

 

길쭉하게 아래위로 잡아뽑힌 얼굴상들.

 

론리플래넷이었던가 어느 유수의 여행매거진에 소개되었다고 하는 레스토랑에 들어간 우리를 제일 먼저 맞이한 새끼고양이.

 

제대로 서빙이 되어 나오는 네팔의 '달밧'이란 어떤 건지가 궁금했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나오는 것과 뭐가 다른지.

 

사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히말라야에서 매번 먹었던 달밧들은 제각기 전부 맛있었으니-양이 좀더 많았다 정도?

 

역시나 이런 나름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달밧에 한해서는 밥과 반찬이 리필이 가능하다는 것도 소소한 깨달음.

 

일주일이 넘는 트레킹으로 잔뜩 지친 다리에 풋 마사지 한시간을 선사하고 났더니 이제 카투만두로 떠나야 할 시간.

 

그런데 마사지샵으로 들어갈 때부터 눈에 거슬렸던 저 건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절반만 색칠하고, 아니 절반만 지어놓은 걸까.

 

그렇지만 또 돌아보면 은근히 그런 건물이 많다. 저기 저 건물도, 건물 형태 자체도 한쪽이 확 끊겨버린 듯한데다가 페인트칠 역시.

 

그리고, 그야말로 공항으로서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포카라 공항. 워낙 작고 활주로도 짧아서 종종 결항이나 딜레이가 발생한다고.

 

그래도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카투만두로 출발.

 

 

# Tip. 카투만두에서 포카라로 향할 때는 진행방향의 오른쪽으로, 포카라에서 카투만두로 향할 때는 진행방향의 왼쪽으로 앉아야

 

히말라야의 새하얀 봉우리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 물론 날씨가 맑고 구름이 걷혀 있어야 조우할 수 있지만.

 

 

 

 

포카라의 페와 호수. 히말라야에서 터져나온 물줄기가 모여 호수를 이루었다는 곳이다. 해발 800미터의 포카라에서 해발 8,000미터의

 

즐비한 산봉우리들을 바라볼 수도 있고, 날이 맑고 좋으면 호수면에 비친 또다른 히말라야 영봉들을 볼 수 있다는 명소기도 하다.

 

 

 

굉장히 커다란 호수 주변에는 레스토랑과 바들이 성기게 늘어서서는 관광객들을 맞고 있기도 했지만, 여전히 네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빨래도 하고 낚시도 하고, 잠시 그늘에 쉬어가는 생활의 공간인 듯 했다.

 

띄엄띄엄, 뭔가 아직은 본격적인 관광지라기엔 엉성해보이는 배후시설들. 그래도 몇몇 군데 레스토랑은 당장 들어가 눕고 싶은

 

푹신한 쿠션이나 해먹을 걸어두고 있었다. 모히토 같은 거 한잔 하면서 한나절 빈둥대기에도 좋을 법한 곳.

 

 

아니면 저 산봉우리, '사랑곳'이라는 이름의 1,500여미터 고지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것도 시도해봄직하다. 쉼없이 산봉우리에서

 

낙하하는 분분한 낙하산들. 히말라야 산봉우리들을 뒤로 한채 휘적휘적 바람을 타며 내려오는 모습이 굉장히 재미있어 보였다.

 

 

페와 호수 가운데에는 조그마한 섬이 있는데, 힌두교 여신을 모셨다는 바라히 사원이 세워져있다고 한다.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빌려타기로 하고 가는 길에, 거리의 악사가 잠시 내려둔 네팔 전통 현악기와 타악기를 보았다.

 

현악기의 경우에는 그다지 맑거나 이쁜 소리는 아니고, 좀 탁하고 텁텁한 소리가 났던 거 같다. 튜닝장치도 좀 엉성해보이고.

 

 

 

호수변을 따라 좀 걷다보니 나타난 선착장. 배들이 전부 여기다 모여있었다.

 

 

선착장에서 배를 한시간 빌리고, 코스는 가운데의 조그마한 섬을 돌아보고 호수를 크게 한번 돌아보는 걸로 잡았다.

 

뱃사공이 포함된 요금은 400루피, 한국돈으로는 대충 4천원쯤인데 그에 더해 구명조끼 대여 비용도 개당 20루피.

 

  사랑곳 너머 새하얗고 두툼한 구름이 잔뜩 깔려있어 보이지 않지만, 저쪽 방향이 히말라야의 하얀 만년설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있는 곳이라고 했다. 하늘이 맑고 구름이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호수면에 그대로 반사되어 멋진 풍경이 보인다던데.

 

바라히 사원이 세워져있는 페와 호수 가운데의 조그마한 섬.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원에서 기도도 할 겸 더위도 식힐 겸 들어왔다.

 

해발 800미터의 포카라는 바나나나무가 길거리에 왕성하게 자라나있는 열대기후에 가까운 지역이다. 얼마전까지 안나푸르나에서

 

밤새 추위로 떨었던 걸 생각하면 믿기 어려울만큼의 온도차이다.

 

 

그리고 조그마한 섬을 꽉 채우다시피한 바라히 사원의 모습들.

 

힌두교도로서 하루를 맞을 때 신을 경배하는 의미로 이마에 새기는 빨간 꽃장식을 한 아저씨와 아이가 호숫가로 나왔다.

 

그리고 바라히사원의 중심탑. 왜 그리도 비둘기가 많던지, 그 녀석들이 푸드덕거리고 사방으로 종횡무진 날아대는 통에 시껍했다.

 

호숫물도 왠지 색깔이 혼탁해보이고 지저분해 보여서 뭐가 살기는 하려나 싶었는데, 팔뚝만한 고기떼들이 섬 주변에 잔뜩 몰렸다.

 

 

바라히 사원에서 소원을 빌고 향을 올리는 사람들. 스스로의 이마 가운데에 붉은 꽃잎을 묻히듯 사원을 지키는 사자상들에도,

 

그리고 신들의 조각상들에도 온통 붉은 꽃잎이 핏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섬 주변을 에워싼 안전망 너머로 뭐가 그리도 궁금한지, 조그마한 꼬맹이가 위태롭도록 올라가서는 수면을 바라보느라 정신없다.

 

힌두교 최고의 신 시바와 팔바티의 아들, 가네쉬의 신상. 실수로 아들의 목을 베어버린 파괴의 신 시바가 급한 대로 지나던 코끼리의

 

얼굴을 대신 붙였다는 신화가 바로 가네쉬가 코끼리 형체를 가진 신으로 정형화되는 근거가 되었다고 한다.

 

 

섬의 부둣가에서 신에게 바칠 꽃을 팔고 있는 여인, 그리고 맞은편 부두에서 섬을 향해 순례하러 오려는 수많은 사람들.

 

 

바라히사원에 마지막으로 눈길을 주고는, 다시 보트에 올라타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호수를 한바퀴 크게 돌아볼 차례.

 

내가 탄 보트도 다른 배에서 보면 저런 모양새인 거다. 나와 가이드는 샛노랑 형광색의 구명조끼를 입었고, 사공은 노를 젓는다.

 

  혹은 단체의 경우 저렇게 그늘막이 드리워진 배를 타기도 하는 것 같다. 뜨거운 태양빛을 가릴 수는 있겠지만 왠지 집이 둥둥

 

떠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 직접 타면 그다지 운치는 덜하지 않으려나 싶기도 하고.

 

호수의 맞은편, 굉장히 울창한 숲이 호숫가에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가끔 원숭이나 사슴떼들이 사람 구경을 하기도 한단다.

 

호수 수면위에 온통 둥둥 떠다니는 풀떼기들 때문에 아무래도 호수가 더럽지는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수면을 뒤덮은

 

해파리떼같은 부레옥잠들도 제법 이쁜 꽃을 틔워낸다. 연보랏빛의 하늘거리는 꽃잎, 진흙 속에 뿌리박은 연꽃이나 부레옥잠 꽃이나.

 

 

 

이 드넓은 페와 호수에 기대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지 않을까 싶다. 일종의 어업이라고 해야 하나. 배를 가지고

 

이렇게 관광객들을 유람시켜 주기도 하고, 팔뚝만하던 그 물고기들을 잡아서 팔기도 하고.

 

  그리고 다시 사랑곳. 왠지 한국어와 뭔가 관련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로맨틱해보이는 이름이지만,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한다.

 

영어로는 Sarangkot이라고 쓰던, 저 산봉우리를 언제고 다시 찾아서 패러글라이딩을 꼭 해봐야겠다는 다짐.

 

 

 

한시간을 꽉 채운 뱃놀이가 끝나고 다시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

 

커다란 호수 곳곳에 흩어졌던 배들이 제각기의 궤적과 페이스로 선착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배들을 꽁꽁 동여매서 배다리를 만들면, 이곳에서부터 바라히 사원이 있는 조그마한 섬까지 금세 이어져서는

 

사람들이 다니기도 훨씬 편하지 않으려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생각보다 다양한 원색으로 두텁게 칠한 보트들이 이쁘다.

 

그 작은 보트가 미어지도록 사람을 태우면 이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도 있다. 보트 허릿춤이 거의 물살이 찰박거리도록

 

가라앉아서는 묵직하게 나아가는 보트. 저분들은 전부 바라히 사원에 기도하러 가시는 현지분들인 듯.

 

 

 

 

 

 

 

#1. 네팔 카투만두 국제공항 입국시 필요한 비자신청서

 

 

#2. 비자피 영수증 : 현금으로만 가능하며, 15일이내 체류시 25US$

 

 

#3. 입국신고서 : 처음에는 왼쪽의 노란 신고서를 들고 잠시 멘붕에 빠졌다가, 외국인용의 영어버전을 발견하고 안도.

  

 

#4. 트레킹을 위한 필수 카드 2종류 : Trekker's Card & TIMS Card

 

 

#5. 안나푸르나 푼힐전망대 입장료 : 25NPR(대략 250KRW)

 

 

#6. 포카라-카투만두 국내선 비행기티켓 : 편도 약 10만원, 소요시간 30분 (버스나 택시로 이동시 7시간 소요)

 

 

#7. 카투만두 동쪽, 공항에 인접한 파슈파티나스 사원의 입장권. 1,000NPR(대략 10,000KRW)

 

 

 

 

 

 

시욜라바자르에서 눈을 뜬 아침, 마치 신기루처럼 멀리 보이는 마차푸차레의 두갈래 봉우리. 그러고 보면 굉장히 많이 걸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부지런히 내려와 꼬박 이틀동안 걸었으니 산봉우리가 저만치 밀려날 만 하다.

 

 

이제 두시간여 나야풀까지만 걸어가면 거기서부턴 택시를 타고 한시간, 포카라로 들어가 조금 돌아보고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니

 

사실상 두시간 정도 후면 트레킹도 끝이다. 왠지 헛헛한 마음으로 롯지 근처를 둘러보며 여유로운 아침시간을 즐기는 중.

 

조그마한 키의 주인 아주머니도 진한 홍차를 한잔 들고 나와 아침의 선선한 공기를 즐기시는가보다.

 

롯지 안의 부엌과 여차하면 침대로도 쓸수 있는 식당의 의자들. 실제로 성수기에 방이 모자라면 식당에서 자기도 한다고.

 

 

커다란 물고기 모양의 방키가 나란히 걸려있고, 네팔어인지 티벳어인지 글씨가 쐐기문자처럼 촘촘히 박혀있는 색색의 깃발들.

 

오늘은 얼마 걷지 않을 테니 간단하게 아침식사. 마치 공갈빵을 닮은 구릉족의 전통빵과 벌꿀.

 

아무래도 물자가 귀하고 조달하기도 쉽지 않을 테니, 플라스틱 의자같은 것들도 이렇게 수리해서 쓰는 동네다.

 

이제 마지막 여정을 완수하러 다시 출발. 지붕만 덮인 비닐하우스 너머로 평탄하고 여유로운 길이 계속 이어진다.

 

길을 막고 선 송아지가 혀를 빼물고는 달려들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뭔가 그로테스크하기도 하고, 광우병은 아니겠지 싶기도 하고.

 

트레킹 코스 옆의 허름한 가건물같은 상점에서 과일을 파는 꼬마애들은 자기들이 강에서 잡았다며 '피시~피시~' 이런다.

 

길은 중간중간 히말라야에서부터 터져나온 물줄기로 흠뻑 젖고 잠기고 끊기기도 한 제법 도전적인 오프로드길.

 

 

트레킹 첫날 점심을 먹었던 비레탄티. 이곳에서 트레커 카드와 TIMS카드를 검사받고 체크인을 했었는데, 꼬박 8일만에 체크아웃.

 

아저씨가 도장을 쾅쾅 찍어주고는 어디까지 갔다왔냐며 활짝 웃어준다.

 

비레탄티에서 나야풀로 걷는 길은 트레커들을 위한 장비점들, 그리고 온갖 조잡한 기념품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와중에 눈길을 끈 장면. 말그대로 '닭장차'에서 닭을 사려는 아주머니가 날갯죽지를 잡고 거침없이 끌어당기는 모습.

 

신기하게도 박스 안에 담긴 닭은 더이상 저항도 하지 않고 날개를 늘어뜨린 채 얌전하다.

 

 

나야풀 즈음에서, 그러고 보니 내가 딱 출발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빨노파의 트레커들이 장비를 챙기고 이제 출발하려나보다.

 

그리고 나야풀에 거의 도착할 즈음 가이드가 잡은 택시 한대. 이제 안나푸르나 푼힐, 그리고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끝.

 

용수철 소리 삐걱거리는 자동차의 쿠션에 감탄하며 몸을 편히 뉘인 채 잠시 가던 중에, 차도 역시 히말라야에서 터져나온

 

물줄기들로 잡아먹힌 구간들을 지나게 되어 그야말로 오프로드 체험을 방불케 했다. 저런 길을 지프도 아니고 소형차로 막 건너고.

 

그렇게 나야풀에서 포카라로. 포카라에서는 페와호수를 둘러보고 카투만두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총 10일동안의 휴가, 직행비행기가 아니라 오갈 때 근 12시간-15시간을 소요하고 남는 시간은 거의 전부 트레킹에 썼던 휴가.

 

카투만두에서 포카라까지 국내선 비행기를 타서 오가며 시간을 아끼고, 그렇게 남긴 시간으로 조금 포카라와 카투만두를

 

둘러볼 수는 있었지만, 트레킹에 근 7일을 꽉 채워 할애한 셈이다.

 

 

 

 

 

 

 

 

 

 

이제 거의 7-8일에 달하는 히말라야 트레킹, 정확하게는 안나푸르나 푼힐전망대 코스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코스를

 

합한 일정의 대단원에 도달하는 즈음. 시욜리 바자르까지 가서 하룻밤 묵고 나면, 내일아침에 두어시간 더 걸어서

 

나야풀까지 가면 트레킹 코스의 끝에 닿는 거다. 한층 더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2,000미터 아래로 내려온지라 경사도 훨씬 완만해졌고 길도 편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나무 가지를 줄넘기삼아 깡총거리는 꼬맹이의 표정도 위에서 만났던 소년소녀들보다 훨씬 밝아보이는 것 같고.

 

 

한쪽으로 산비탈이 상당한 이런 좁고 오르내리막하는 길조차 이제는 굉장히 편하고 다정다감한 길로 느껴지는 수준에 이르렀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강물도 훨씬 유속이 느려졌고, 트레킹 코스와의 낙차도 그리 크지 않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 걷기도 재미있고, 중간에 고삐풀린 염소떼들이 온통 길을 점령하고는 시끄럽게 훈계질하는 것도 듣고.

 

 

중간에서 만난 또다른 염소떼들은, 사람을 겁내면서도 잰 걸음으로 자기들 헛간으로 들어가느라 바쁘다.

 

 

안전한 집으로 일단 피신하고는, 커다란 카메라를 들이대는 낯선 사람이 궁금했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삐죽삐죽 고개들만 빼밀었다.

 

차가 다니길래, 시욜리바자르에 다 왔는가 했다. 그게 아니라, 사륜구동 지프차는 여기서부터 다닌다고 한다. 비정기적으로 다니는

 

지프인데, 시욜리바자르나 나야풀까지 간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걷는 길은 좀 비포장된 시골길이랄까, 차가 다닐만한 널찍한 길.

 

 

그래봐야 다랭이논을 이쁘게 정돈해서 빡빡한 생업에 힘쓰는 건 산 아래나 위나 똑같고, 자유롭게 풀린 닭들이 천지사방으로 기웃대며

 

닭털을 풀풀 날리고 다니는 것도 똑같고. 차가 다닌다고 해서 딱히 더 발전된 모습이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 비포장된 시골길을 한참 걷고 있는데, 이제야 손님을 다 채운 지프차가 따라잡았다. 온통 물이 범람하고 바윗돌들이 들썩거리는

 

데다가 심지어 저만큼 한쪽으로 기울어진 길을 거침없이 달리는 지프에는 사람이 그득그득, 뒤에까지 저렇게 매달린 채 달린다.

 

지프를 먼저 보내고 걷고 있다가 만난 네팔의 젊은 아가씨. 등짐을 가득 지고는 맨발로 저런 길을 걸어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버스. 이제 저 굉음과 악취를 동반하는 쇳덩어리가 지배하는 영역으로 들어왔구나, 확실히 실감하고 있었다.

 

맑은 공기 마시며 히말라야 산길을 거침없이 내달리던 지난 며칠이 벌써부터 그리워지던 순간.

 

 

그렇게 찻길을 따라 좀 걷다가, 저 강 옆에 모여있는 집들, 시욜리 바자르로 내려가는 샛길로. 그러고 보면 '바자르'란 단어는

 

아랍쪽에서도 시장이라는 의미로 쓰는 단어인데, 뜻도 같고 발음도 같다. 그렇다고 저 동네가 무슨 시장통은 아니고 이전에

 

그런 물물교환의 거점 역할을 한 모양인데, 대체 네팔과 아랍, 멀리 떨어진 두 지역에서 어떻게 같은 단어를 쓰는 건지는 신기할 따름.

 

 

 

시욜리 바자르에 도착,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그동안 잘 인도해주고 챙겨줬던

 

가이드 커멀과 맥주를 한잔 나눴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이야기며,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는 치하,

 

그리고 나중에 히말라야 트레킹에 관심있어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추천해주겠다는 약속까지.

 

진짜로, 영어와 한국어와 네팔어와 인도어를 굉장히 잘 구사하는 가이드, 게다가 친절하고 자상한 가이드,

 

아무리 네팔 사람들이 순하고 밝고 착하다고는 해도, 이런 가이드는 흔치 않다.

 

우리가 함꼐 나눈 맥주. 독일 맥주던가, 투벅의 공장이 네팔에 있다고 한다. 제법 맛도 좋고 값도 무지 싸고.

 

그가 내 무릎에 압박붕대 대신 감아줬던 그의 손수건. 마치 깃발처럼 그의 방앞 빨랫줄에 얌전히 내걸렸다.

 

그렇게 깊어가는 안나푸르나의 마지막 밤. 이제 다음날 아침 두시간 정도만 걸으면 트레킹도 끝이다.

 

 

네팔어로 '파니'는 물, water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고레파니나 타다파니, 혹은 여기 히말파니까지의 지명에 '파니'가 들어가

 

있는 거라고. 특히나 이곳 히말파니는 히말라야의 물, 이란 의미로 온천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이곳 히말파니까지 오는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한 데다가 욱신거리는 무릎을 뜨거운 물에서 좀 쉬게 하고 싶어, 점심도 먹을 겸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롯지는 이제 우기가 끝나고 몰아닥칠 트레커들을 위해 단장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점심으로 볶음면과 맥주를 주문하고는

 

내리막길로 걸어서 15분정도 걸린다는 온천에 다녀오기로 했다.

 

15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나올 생각은 없고, 앞서 가던 가이드가 물소들이 몸을 담근 저 늪을 두고 온천이라는 소리에 잠시

 

시껍했으나, 다행히도 저렇게 정비되지 않은 물구덩이를 두고 온천이라고 하진 않는 듯 했다. 궁금증은 커져만 가고.

 

사정없는 내리막길이라 무릎이 더욱 아파올 무렵, 근 40분 가까이 걸었다 싶던 참에 비로소 강물 옆으로 나타난 온천 건물.

 

건물이라기보다는 그냥 기둥 박아놓고 슬레이트 지붕 얹어놓은 정도지만 저 정도만 되어도 기대 이상이다.

 

너도나도 재빨리 옷을 벗고 최소한의 복장만 갖춘 채-함께 내려가던 일행 중에 여성도 있었기 때문에-콸콸 쏟아지는 온천수로.

 

강물이 이렇게 거칠게 흐르는 산골짜기 아래까지 내려와야 했으니 롯지에서 여기 온천까지 오는 길이 그리도 험했던 거다.

 

 

그 와중에 먼저 와서 실컷 즐기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려는, 예수처럼 생긴 서양 아이 하나. 그러고 보니 그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벌렁 누워 가방에 꽂힌 우쿨렐레를 연습하던 그 녀석이다. 여성 앞에서도 거침없이 덜렁덜렁 지나가는,

 

그리고 여성 역시도 그다지 당황하지 않는, 서양인들의 그 쿨함과 자연스러움에 잠시 이질감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옆에서는 두번째 탕을 한창 공사중이었다. 이곳에서 상주하는 것 같은 대머리 할아버지랑 그의 아들인 것 같은 두 명이서

 

언제 다 지어질까 싶은 네모난 탕을 만들려는 듯. 물은 뜨겁진 않고 따뜻한 정도, 그치만 몸을 푹 담그니 피로가 확 풀린다.

 

굳이 하나 더 짓지 않고 하나 갖고 복작복작하는 게 왠지 더 이곳의 분위기에는 어울릴 거 같은데.

 

점심으로 나온 볶음면. 다시 올라오는데 걸린 시간은 역시 30분이 넘었던 듯 하고, 올라오느라 어느새 온몸은 땀범벅이 되고

 

조금 나아진 듯 했던 무릎도 다시 아팠지만, 그래도 한번 꼭 들러보길 강력히 추천하고픈 히말파니의 온천.

 

 

한결 개운해진 몸과 가벼워진 무릎으로 한참을 걸어 가던 참에, 이날따라 유난히 햇살이 뜨거워 쉬엄쉬엄. 나오는 마을이나

 

롯지마다 한번씩은 앉아서 땀도 식히고 선크림도 다시 바르고 했던 것 같다. 챙겨간 볼펜을 줘도 좀체 웃지 않던 요 꼬맹이.

 

색색의 빨래들이 얹힌 은빛 슬레이트 지붕, 그리고 마당에 편히 자리잡고 앉아 옥수수를 말리는 아주머니의 다부진 머릿수건.

 

 

와중에 굉장히 이쁘게 꾸며졌다 싶던 어느 마을, 간드룩 지방에 있는 어느 조그마한 마을이었는데 지천에 사루비아가 넘실넘실.

 

길은 거의 헷갈리거나 잘못 들 염려가 없는 한길이었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샛길도 나있고, 그럴 때마다 이렇게 친절한 표지판 등장.

 

게다가, 어느 마을에서부터 졸졸 쫓아오더니 아예 앞장서서 인도해주는 길앞잡이 개까지 친절하다.

 

비록 중간에 물소가 길을 막고 있으면 겁먹고선 꼼짝도 못하는 순둥이에다가, 가파른 내리막 앞에선 주춤거리다가 절룩거리는

 

내 다리 사이로 진로방해를 하는 녀석이긴 헀지만, 그래도 잠시 쉬어가려 배낭을 내려놓으면 다시 돌아와서 같이 쉬어주는 센스쟁이.

 

그렇게 도착한 큐미. 간드룩 지방의 여러 마을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이 다음 마을인 시욜리 바자르Syauli Bazar에서부터는

 

포카라로 가는 교통편을 탈 수가 있다고 한다. 트레킹을 처음 시작한 나야풀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거기에서 다시 택시를 타는

 

코스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7일동안 바퀴달린 거나 엔진같은 동력기관을 본 적이 없다. 왠지 그 세계로 다시 들어가는 걸 최대한

 

미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큐미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들어갈까 아니면 시욜리 바자르까지 예정했던 대로 갈까 고민 시작.

 

꽃나무도 많고, 롯지 한쪽에서는 이렇게 재봉틀이 발랄하게 돌아가는 소리를 내고 있는 말끔한 마을이어서 꽤나 맘이 동했지만

 

그래도 온천빨이 아직 남아있으니 좀더 걸어두기로 했다. 시욜리 바자르까지 가서 저녁 먹고 자는 걸로 결정.

 

 

큐미에서 잠시 앉아서 쉬었다 가려는데 난데없이 들이닥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당나귀떼들.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들에서

 

출현했던 듯한 수많은 당나귀들이 ctrl+c, ctrl+v로 찍어낸 느낌으로 불어나있었다.

 

그 와중에 앞엣놈 엉덩이 냄새를 맡는 놈도 있고, 괜히 대열을 벗어나 사람들에 흥미를 보이는 녀석도 있고.

 

그러고 보면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 게 하산길 초입이니 이틀째 아픔이 지속되고 있는데, 걷고 있는 시간은 좀체 줄지 않았다.

 

아침 일곱시반쯤부터 오후 대여섯시까지, 점심먹는 시간이나 쉬는 시간들을 빼더라도 대략 열시간 내외 걷는 것 같다.

 

 

 

 

여태 들렀던 롯지 중에서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어있던 곳이어서 눈여겨 보았더니, 자매만 셋인 집이었나보다. 나름 한껏 치장하고

 

포즈를 잡은 사진들을 벽면에 잔뜩 붙여두었는데, 히말라야의 녹색 풍경 속에서 문득 현란한 색감을 마주하니 느낌이 새로웠다.

 

이제는 마차푸챠레 봉우리도 등지고 안나푸르나도 등지고, 정말 산에서 내려간다는 실감이 팡팡 나는 내리막길들.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일곱시 반부터 출발해서 조금 걷지 않아 무릎이 절룩거리길래, 중간에 어느 마을에서 잠시 쉬려던 참.

 

꼬맹이들 둘이서 끈을 잡고 앞뒤로 살살 흔들어대는 뭔가가 흥미를 잔뜩 돋궜다. 뭘까.

 

따뜻한 담요로 꽁꽁 싸매어진 그것은 바로 갓난아이가 담긴 포대기. 눈까지 푹 내리씌운 자줏빛 모자가 귀엽다.

 

저런 식의 한글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는 건, 요새 히말라야 트레킹을 오는 한국인이 많다는 반증이겠다.

 

이제 햇살도 다시 완연히 뜨거워졌고, 왠지 초록빛들도 훨씬 더 싱싱해진 느낌. 멀리 새하얀 봉우리가 꿈만 같다.

 

 

 

시누와 아랫마을부터는 물소도 보이고, 당나귀도 짐을 싣고 다니고. 시누와가 그 마지노선이라고 했었다.

 

내리막이라고 마냥 내리막길만 있는 건 아니다. 꼬맹이들도 애기를 업고 이렇게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오르기도 하고.

 

 

그리고 트레킹 길을 관통하며 세워진 '굉장히 큰' 상점. 거의 히말라야 최대의 대형마트 수준인 거다 이정도면.

 

술도 팔고 담배도 팔고 과자와 물과 등산화와 스틱, 수건에 필름, 건전지, 약품류까지. 없는 거 빼놓고 없는 게 없는 상점.

 

 

 

그리고 촘롱에 도착해서 일단 맥주부터 한잔. 아침 6시반부터 열심히 오르내리막, 전반적으로는 내리막길을 걸었더니 몇시간

 

걷지 않아 땀이 흠뻑 나버렸다. 아무래도 아래로 내려올수록 기온이 확 올라가는 게 체감될 정도로, 가파르게 하강 중인 거다.

 

맑은 날에는 촘롱에서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와 마차푸챠레 봉우리가 보인다더니, 정말 선명하게 두개 봉우리가 보인다.

 

새하얗게 반짝이는 만년설로 덮인 날카롭고 위태로와 보이는 두개의 봉우리.

 

다리가 아파 더이상 못걷겠다는 어떤 트레커는 이제부터 말을 타고 내려가기로 하고 백마를 호출했다.

 

 

잠시 쉬고는 다시 출발, 닭들을 쫓으며 노는 아이를 지나기도 하고.

 

노랗고 빨간 무늬의 수건이 높은 바람에 펄럭이는 제법 '대문'이란 것도 갖춰놓은 집을 지나기도 하고.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마차푸차레를 바싹 당겨 관찰해보기도 하고.

 

푼힐 전망대쪽으로 가는 갈림길까지 도착해서는 반대쪽 길로.

 

 

층층이 그 육중한 무게감과 부피감을 과시하는 산의 옆구리들. 그리고 그 모든 굵직한 주름들 너머로

 

짙고 두터운 하얀 구름을 피워올리며 홀로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히말라야 산봉우리들을 배경으로 한 일출을 보고, 조금더 안나푸르나 쪽으로 걸어보기도 하면서

 

훌쩍 지나버린 아침시간. 이 풍경들을 이곳에 놓고 와야 한다는 게 너무 아쉬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길이다치면 빈틈없이 내 옆에서 길을 안내해주고 여기는 어디, 저기는 어디, 안내해주던 훌륭한 가이드 커멀.

 

그를 먼저 내려보내고는 거의 한걸음에 한 장씩, 이 멋진 광경을 꼭꼭 새겨두리라 다짐하며 셔터를 눌렀다.

 

 

 

 

 

 

같은 듯 다른 사진들. 뭐하나 차마 버릴 수가 없던 디테일들.

 

그렇게 겨우 숙소까지 도착해서는 지난 밤 덜덜 떨며 비몽사몽간에 홀로 지새운 휑뎅그레한 삼인실 방을 정리하고는 하산 시작.

 

그새 구름을 잔뜩 뿜어낸 안나푸르나. 구름이 어디선가 흘러와서 덮는 게 아니라 산 스스로가 만들어내어 덮는 느낌이다.

 

 

어제에 비해 훨씬 맑아진 하산길의 시계.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완만한 경사길 위로 강렬한 햇살이 빗겨들었다.

 

이제는 안나푸르나를 등지고, 마차푸차레를 바라보며 가는 길이다. 물고기 꼬리처럼 생긴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선연하다.

 

몰랐는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게이트의 뒷면에는 이런 따뜻한 인사말이 적혀있었다.

 

 

 

그새 풍성해진 구름 틈새로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가 손을 흔들어주는 듯 하다. 마치 오랜 친구를 떠나듯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로 내려가는 길. 전날 오후에 짙은 안개 혹은 구름 속을 헤치며 왔을 때는 몰랐던 풍경이다.

 

 

회색빛 강을 따라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걸어가기를 두시간이 채 안되었을 즈음,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를 지나고 데우랄리를

 

지나고, 어느덧 4,120여미터의 고도에서 3,000미터 어간으로, 다시 2,600미터 어간의 도반까지 내려왔다.

 

달밧으로 점심을 먹고, 따뜻하게 몸을 덥히고 다리를 좀 주물러주다가 다시 출발.

 

사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내려오는 순간부터 다리에 문제가 있었다. 두개의 스틱을 잘 써서 거의 네발짐승처럼

 

빠르고 안전하게 산을 오르긴 했지만, 하루 열시간을 넘나드는 오르내리막의 산길을 6일째 쉼없이 걷다보니 아마도 무리했던 거다.

 

왼쪽 무릎과 오른쪽 무릎이 서로 통증을 호소하며 자기가 더 아프다고 경쟁하더니, 왼쪽 무릎으로 모든 통증이 옮겨가는 걸로

 

정리가 되어서는 발을 내리딛을 때 거의 도가니가 찢겨가는 듯한 아픔이 있었다. 절룩거리며 왼발을 제외한 세 다리로 하산 재개.

 

그래서, 해발 4,12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해발 2,360미터의 시누와까지 내려오기까지는 카메라도 가방 안에 넣고

 

무사히 내려오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특히 점심 먹고 이후의 코스가 꽤나 가파르고 험한 돌밭이어서 조심조심.

 

그래도 무릎에 맨소래담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네팔 현지 연고를 바르고 손수건을 압박붕대삼아 칭칭 감고 걸으니 좀 괜찮은 듯 하여

 

여지없이 열시간 가까이 걷는 하루를 이어갔다. 저녁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이에 시누와 동네 사진 한장. 트레킹코스를 따라

 

길게 형성된 롯지들의 군집. 그게 시누와를 포함한 다른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마을들이 생겨나고 커지는 방식인 듯 싶다.

 

 

저녁은, 두둥. 어느 롯지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Noodle' 메뉴 중의 하나, 'Korean shin lamen noodle'. 심지어 한글로 '신라면'이라

 

적혀있기도 하길래, 대체 맛이 어떠려나 궁금해서 한번 먹어보았는데, 면발이 꼬들꼬들하고 한국보다 더 매콤하니 맛있었다.

 

다리가 아프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등산길보다 하산길은 훨씬 빠르게 주파하는 중이다.

 

올라올 때는 근 이틀이 소요되었던 구간을 하루만에 내려와버린 셈이니. 다리가 안 아팠다면 훨씬 빨리 내려올 수 있었을 듯.

 

 

 

 

해발 4,120미터 고지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새벽부터 일어나 히말라야 산봉우리 사이로 솟는 해를 보고 난 뒤라

 

꽤나 흥분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던 거 같다. 금세 배가 고팠지만 전날 선주문해둔 아침식사라고는 고작 구릉족 전통빵과 벌꿀.

 

그에 더해서 고산병 예방에 특효이자 이 추운 동네에서 몸을 따뜻하게 지켜주는데 효험이 좋다는 마늘 스프까지.

 

아침을 먹고 다시 나왔더니 그새 새파란 하늘이 조금씩 구름을 몰아내는 중이다.

 

 

다시금 두근두근, 이 새하얗고 거대하고 위엄돋는 자연 앞에 언제 다시 서보랴 싶어서 카메라를 쥐고 안나푸르나 쪽으로 무작정 걷다.

 

이제 이 곳에도 새로운 롯지를 짓느라 꾸역꾸역 건축자재들을 등짐으로 이고 지고 나르며 작업이 한창이긴 하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안나푸르나를 비롯한 마차푸챠레, 닐기리 등등 숱한 히말라야의 높은 봉우리들은 여전히 굽어볼 뿐이다.

 

 

롯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 다국적인들, 일행과 함께 혹은 나처럼 혼자서 산을 향해 걷는다. 뭔가 홀린 사람들같기도 하다.

 

 

 

정신줄 놓고 그저 셔터만 누를 뿐. 이런 풍경 앞에서 감히 무슨 단어와 표현을 동원할 수 있겠나 싶다.

 

 

 

 

 

빙하가 훑고 지나며 수백수천년 간 갈아엎었을 저 주름진 협곡.

 

 

 

새하얀 구름들은 새파란 하늘 속으로 점점 녹아내리고, 산봉우리들을 포근하게 감싼 하얀 만년설은 얼음처럼 반짝거린다.

 

 

더 이상 접근하긴 힘들겠다 싶을 즈음, 더 이상 롯지로부터 대책없이 떨어지긴 겁난다 싶을 즈음.

 

 

박영석 대장을 비롯한 안나푸르나 등반대 3인의 위령탑을 발견했다. 불과 2011년의 일. 탑 아래엔 가족사진이 빛바랜채 놓였다.

 

여전히 이 시대에 '탐험'과 '모험'이라는 걸 찾아다니느라 피가 끓었을 사람들, 이 곳에서 평안히 잠드셨기를.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사진을 추리고 걸러내려 애써봐도, 약간의 각도만 틀어져도 또다른 디테일들이 나타나는 거다.

 

그저 얼음 좀 얹혀있는 커다란 바윗덩이려니 생각했는데, 수만년의 시간동안 쪼아지고 다듬어졌을 그 표피의 질감과 무게감이라니.

 

게다가 환청인가 싶을 만큼 드문드문 갸날픈 신음소리를 내며 흘러내리는 빙하. 금세라도 우르릉,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아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던 풍경이라 사진 역시 뭐 하나 버릴 수가 없더란 점.

 

 

해발 4,12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그곳에서 올려다본 안나푸르나 산봉우리를 비롯한 히말라야의 산줄기들은,

 

하얀 색과 검은 색이 어우러졌을 때 도달할 수 있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었다.

  

w/ Pentax K-5, 15mm limited lens

 

 

 

 

 

 

안나푸르나 푼힐&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6일차 새벽, 단언컨대 지상 최대의 스펙타클한 장면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절대 뒤쳐지지 않을 안나푸르나의 일출 장면을 지켜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전날 오후부터 온통 구름밭 속을 거닐던 듯한 베이스캠프 바깥 풍경이 나름 또렷하니 현실감을 얻은 새벽. 

 

밤새 추위에 뒤척거리다가 사람들이 술렁거리는 소리에 문득 창밖을 보니 희뿌연 불빛이 새어나오는 게 새벽인 거다.

 

침낭과 담요를 그대로 뒤집어 쓴 채로 카메라 쥐고 밖으로 뛰쳐나오자마자 맞이한 안나푸르나와의 첫 대면.

 

 

잠깐 사이에도 세상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고 수묵화로 그린 듯한 하얗고 검은 안나푸르나 산등성 아래로도 풍경이 살아나는 중이다.

 

 

 4,200여미터 고지의 베이스캠프에서 올려다보는 7-8천미터 높이의 히말라야 영봉들, 두텁던 구름이 사방으로 찢기고 난리판이다.

 

 산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던 만년설들, 빙하들, 그것들이 산비탈에 그어낸 깊고 굵은 주름살들. 사실 겨울에는

 

이곳 ABC에서 MBC까지 내려가는 길 한켠으로 온통 빙하가 꽁꽁 얼어붙어있을 정도라고 한다.

 

안나푸르나 쪽으로 좀더 올라가 내려다본 베이스 캠프. 그 너머로 보이는 건 물고기 꼬리모양으로 삐쭉한 마차푸챠레 봉우리.

 

 

 거대한 빙벽이나 댐처럼 버티고 선 히말라야 산맥, 얼룩덜룩한 만년설의 흔적이 흡사 호랑이의 얼룩무늬같기도 하다.

 

 

 이곳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안나푸르나 사우스, 안나푸르나 1 봉우리로 가는 길은 달리 없다고 한다.

 

그저 이 거칠고 황량해 보이는 곳 가운데를 조심스레 즈려밟으며 그나마 길 비슷한 것을 만들며 앞사람을 따르는 것 뿐.

 

그리고, 동쪽 하늘에서 드디어 샛노랗게 불빛이 일기 시작했다. 산봉우리들과 맞붙은 구름들이 조금씩 타오르는 하늘.

 

 안나푸르나 쪽도 마찬가지. 봉우리에 노랗게 불빛이 쟁여지더니 조금씩 형체를 갖추어 맺히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번져오르는 불길을 피해 사방으로 아우성치며 쏟아져나오는 짙고 하얀 구름. 빙하가 흐르던 길을 구름이 흐른다.

 

 그리고, 끝내 안나푸르나 봉우리 위에 맺힌 불길은 구름을 흩어냈다. 화이트 앤 블랙의 투톤에 더해진 황금빛 햇살.

 

 

기를 쓰고 내달린 구름이 다시 밑에서부터 서서히 잠식하며 차오르기 시작했다. 빙하가 긁어낸 흔적이 잠기고, 베이스 캠프

 

아랫동네가 잠겼으며, 이제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턱밑까지 다시 차올랐다. 

 

 

 그리고, 어느 새 등뒤의 풍경을 온통 감춰버린 짙은 회색의 장막. 그러고보니 함께 흥분해서 셔터를 누르던 사람들도

 

추위를 못 견뎠는지 대부분 흩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숙소로 돌아가 전날밤 주문해둔 아침부터 든든히 챙겨먹을 시간, 6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해발 4,130미터. 이 표지를 보고 나자 생각보다 훨씬 감개무량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를 오려고 여태 걸었구나, 싶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높이까지 걸어올라와 보았구나, 싶기도 하고. 그냥, 질리도록 걷고 싶었는데 그야말로 5일간 징하게 걸어서 도착한 곳.

 

 

그리고 짙은 안개속에서 헤엄치듯 조금 더 걸어가니 비로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나타났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예기치 않게도 산악인 고 박영석의 기념패. 2011년에 안나푸르나 등정을 왔다가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크고 황량하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시즌이 아니라 더욱 사람이 적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앞서 걷던 미국 친구 하나는 벌써 다이닝룸에 누워서는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있길래, 슬쩍 도촬. 훌륭한 풍경이다.

 

그리고 한쪽에는 새로 롯지를 짓고 있는 공사판이 있고, 그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을 위한 텐트가 짙은 구름 속에 숨어있다.

 

새로 지어지는 롯지에 들어갈 침대들. 그러고 보니 트레킹 중에 내가 누웠던 침대는 모두 저렇게 생겼던 거 같다.

 

멀찍이 흐릿하게 보이는 탑 같은 형체가 삐죽 솟았길래 슬쩍 가봤다.

 

가는 길에는 온통 누군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진과 글귀가 가득했고.

 

 

탑 역시도 티벳 불교식의 깃발을 온통 휘감고서는 안나푸르나를 바라보고 향했던 사람들을 품었다.

 

 

 

비교적 최근에 늘어뜨린 것처럼 보이는 선명한 빛깔의 깃발은 '부처의 눈' 그림을 새긴 채 산아래를 굽어보는 중.

 

4,130미터 고도의 이곳에서도 공사판은 별다를 거 없다. 물론 건축용 부자재들은 하나씩 전부 사람이 이고지고 날라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면 있겠지만, 그렇게 날라온 문짝과 유리와 나무판넬들을 가지고 건물을 세우는 건 기술자들의 몫.

 

이렇게 촘촘한 발받침을 갖고 있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도 할 테고. 저렇게 간격이 좁으면 오히려 불편하지 않을까, 괜한 걱정.

 

여기까지 무사히 트레커들을 인도해서 끌고 온 가이드와 포터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이야기에 열중이다.

 

모두들 추위를 막기위해 오리털 파카에 네팔 전통의 양털 모자를 썼다.

 

그리고 이미 이 곳 다이닝룸에 자리를 잡은 한 트레커는 침낭 안에 들어간 채 꽁꽁 옷을 싸매고 모자까지 쓴 채 독서삼매경.

 

아침마다 향을 새롭게 갈아 피울 텐데, 저렇게 나무벽에 찰싹 붙여서 태우면 위험하지 않으려나 걱정스럽기도 하고.

 

애초 제대로 씻을 생각도 없었지만, 그래도 고양이세수라도 하려고 화장실을 찾았더니 주인 아저씨가 양동이를 내준다.

 

여기는 물도 귀하다면서 저 양동이에 달린 수도꼭지를 틀고 세수도 하고 발도 닦고 하라는 것. 대충 씻고 치웠다.

 

 

그리고, 짙은 안개를 뚫고 불현듯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두둥실, 구름 사이에서 삐쭉 고객만 내밀었다.

 

근데 이토록 가까이 다가섰을 줄이야. 거의 코앞이잖아 싶을 정도로 눈앞을 압도하는 위용과 그 디테일.

 

이내 짙은 구름 속으로 다시 숨어버렸고, 한참을 바라보아도 좀체 다시 나타날 기미가 없더니,

 

해가 거의 떨어지기 직전 다시 한번 슬쩍 안부인사를 건넸다. 굳 나잇. 내일 새벽에 봅시다.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에서 도착해서 점심을 주문하고 잠시 쉬어가는 참.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길에는 네팔의 공작새와 염소 비슷한 동물들이 곧잘 출몰한다고 한다. MBC에서 ABC로 가는 길은 대체로 완만한 오르막길.

 

해발 3,700미터. welcome을 저렇게 중간에 하나 쉬고 적어놓으니 뜻이 미묘하다. well, come to 블라블라. 오시던가, 하는 시크함.

 

 

앞마당에 놓인 테이블과 빨랫줄에서 빨랫감을 넣고 있는 롯지의 주인 아저씨와 따뜻한 홍차 한 잔을 마시는 중인 가이드 꺼멀.

 

 

등산화는 앞코가 긁히고 옆엣 쿠션이 슬쩍 터지고. 그러고 보니 생각보다 많이 상했다. 잠시나마 신발을 벗고 따뜻한 햇살에 일광욕.

 

그리곤 맨발은 얼음같이 차가운 히말라야의 자연수에 담그고 땀을 씻어내고 열도 빼내고. 세째 발톱이 거의 시꺼매졌다.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에서 한숨돌린 일꾼들이 등짐을 메고 아랫마을로 내려가는 길, 그러고 보면 굉장히 스펙터클한 자연의 품안이다.

 

 

이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찍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이렇게 잠시 몸의 근육들을 풀어주기도 하고.

 

나와 함께 페이스를 맞추던 체코의 70대 노부부 두 분도 느지막히 올라와선 등산화부터 풀어젖히고 계신다.

 

롯지 안을 슬쩍 구경해보니 온갖 세계인들의 증명사진들이 한쪽 벽에 빽빽히 붙어있는 게, 여기 다녀왔다는 기념삼아 남겨둔 것인 듯.

 

다이닝룸 안에서 점심식사를 시작하신 두 부부. 불빛 하나 없이 유리창 너머로 스며오는 햇살에만 기대어 갈릭스프를 드시는 중.

 

 

나는 달밧. 따뜻한 콩스프인 '달'이 들어가니까 몸의 구석구석까지 콩단백과 뜨끈한 온기가 전달되는 느낌이다. 막판 스퍼트 준비.

 

안개가 점점 짙어진다 싶은 게, 점점 추워지기도 하고 시계거리도 엄청 짧아지기 시작했다. 조심조심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했다.

 

 

 

키작은 관목들, 그리고 내가 가려는 길을 거슬러 흘러내리는 제법 맹렬한 개천, 끊긴 듯 이어지는 오솔길 하나. 시야는 제로.

 

누군가 길 옆 풀떼기들을 가지고 이렇게 머리채처럼 땋아놨다. 무슨 의미가 담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정성들여 꼼꼼히 땋았다.

 

 

걷다 보니 굉장히 초현실적인 느낌이다. 몸이 둥둥 떠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개천과 산과 언덕과 오솔길. 이런 그림같은 풍경이라니.

 

 

 

 

이런 식의 완만하고 몽환적인 풍경 속을 한참 걷고 또 걷는데, 전혀 힘들지도 않고 그냥 가볍고 유쾌하게 산책하는 기분이다.

 

 

 

 

 

그렇게 한참. 도무지 안개인지 구름은 걷힐 생각이 없어보이고, 저 너머로는 분명 만년설을 이고 있는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안나푸르나 1 봉우리 등등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을 텐데 당장은 한발자국 앞의 보랏빛 꽃송이들이 눈길을 잡아챈다.

 

 

 

 

당장 눈앞의 길은 보인다지만 대체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계속 이어지기는 하는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휘적휘적 이어지는 길.

 

 

 

바위들도 다들 모서리가 날카롭고 거칠기 짝이 없어 한발한발 내딛을 때마다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자칫 넘어지거나 스텝이 꼬이면 망.

 

 

 

앞서거니 뒷서거니, 세상에 온통 나와 가이드 꺼멀 둘 뿐인 듯 하다. 그는 겨울엔 이 곳도 온통 허릿춤까지 쌓인 눈이 가득하다며

 

그때는 알아서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지금은 그래도 걷기 무척 편한 거라며 내게 듬직한 등을 보여줬다.

 

 

그리고, 아무런 징조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 나마스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해발 4,130미터의 트레킹 코스 종점이자

 

본격적인 안나푸르나 등산가들을 위한 시작점. 내게는 5일동안 내처 걸었던 전반적인 오르막의 꼭지점이기도 하다.

 

 

 

5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히말라야 캠프는 2,920미터, 점심은 3,700미터의 MBC, 그러니까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에서,

 

그리고 저녁은 4,13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먹기로 했다. 계속해서 올라가는 길, 정점을 찍는 날이다.

 

바깥이 시끌벅적하길래 눈을 떴다. 맹렬한 추위로 뼈마디가 온통 굳어버렸고 무릎도 발가락도 온통 아프지만, 일단 카메라를 쥐고

 

밖으로 뛰쳐나왔더니 맑은 하늘에 안나푸르나 봉우리가 보인다. 밤새 비가 오더니 그래도 아침만 되면 용케 비가 그치니 다행이다.

 

 

위풍당당하게 출발, 기온이 확실히 떨어져있어서 옷을 좀 두껍게 입을까 하다가 어차피 계속 걷다보면 열이 오르고 땀이 나니 패스.

 

MBC,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가는 길에 있는 거대한 동굴. 비가 오거나 하면 잠시 앉아 쉬어가며 구름바다를 구경하는 것도 좋을 듯.

 

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렇게 오르막 일색인 것도 아니고, 적당한 경사의 오르내리막이 이어지는, 그리고 중간중간

 

날 듯이 걸어갈 수 있는 평지 구간도 안배되어 있다.

 

 

걸어가면서 점점 눈에 잘 띄는 삼각뿔 모양의, 마치 피라미드 같은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

 

얼마 가지 않았다 싶은데 벌써 시야에는 다음 마을, 데우랄리가 보인다. 해발 3,200미터상의 마을이자 그 위로는 단지 ABC와

 

MBC만을 두고 있는 하늘아래 첫동네이기도 하다. 각기 안나푸르나(7,200여미터)와 마차푸차레 등정(7,000미터)을 등정하기 위한

 

베이스캠프인 ABC와 MBC 그 두개는 딱히 마을이라고 부르기는 좀 무리가 있어 보이니깐.

 

 

물살은 한결 더 급하고 격하고, 유량도 많다. 최근에도 이 곳에서 한국 트레커가 한 명 실족해서 사망했던 일이 있었을 만큼,

 

잠깐의 방심이나 실수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빚을 수 있는 곳이다.

 

 

데우랄리에 도착했을 즈음, 하늘은 더 없이 파랗고 햇살은 정말 눈부시다. 자외선지수도 엄청 높을 테니 잠시 앉아 쉴 때마다

 

선크림을 챱챱 발라주고, 안경 대신 렌즈에 선그라스를 끼고 다니기를 정말 잘했다고 실감하는 하늘이다.

 

 

잠시 앉아서 땀도 식히고 물도 좀 마시고 나서는 다시 출발. 이제 마차푸챠레와 안나푸르나가 코앞이라고 하니 없던 기운도 솟는다.

 

 

햇살이 눈부시지만, 그 햇살 속에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갈라진 마차푸챠레 봉우리가 신기루처럼 둥실 떠 있다.

 

 

그리고, 데우랄리 위쪽으로는 계속 걷기 무난한 코스가 이어지고. 사실 촘롱으로 들어선 이후로 그렇게 길이 험하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던 거 같다. 푼힐 전망대쪽에서 촘롱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제일 어려웠던 듯. 정확하게는 타다파니에서 촘롱 구간.

 

 

 

양쪽으로 봉우리가 우뚝 솟아난 틈새, 그 협곡을 따라 걸어올라가는 길이다.

 

 

한쪽으로는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서 내리는 듯한 회색빛의 시냇물이 요란하게 흐르고, 한쪽으론 제법 평평한 공간에 꽃들이.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새하얀 암벽. 히말라야의 숨겨진 비경이다.

 

 

그리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가 드디어 시야에 잡히다.

 

 

고도가 높으니 나무같은 것들은 안 보인지 오래. 키작고 조그마한 식물들이 빽빽히 들어찬 초원이라고 해야 하나.

 

 

왔던 길을 돌아보니 구불구불, 길이 참 이쁘기도 하다.

 

그리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해발 3,700미터 고지다. 아침에 먹은 갈릭수프 덕분인지 고산병의 징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얼마전에 막 새로 단장한 듯 말끔한 페인트칠에, 어라, 벽면에는 이러저러한 기하학적 문양까지 새겨넣었다.

 

그리고 눈이 멀도록 새하얗고 강렬한 태양. 기온은 서늘할 정도로 낮은데 햇살은 찌르는 듯 따가운 그런 기묘한 느낌.

 

마치, 왼발은 찬물에 오른발은 뜨거운물에 담그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러고 보면 매일 비슷한 일정이다. 아침 7시반쯤 출발, 오후 4시에서 4시반쯤 대충 도착. 가끔 오후 6시까지 걷기도 하고, 혹은 아침의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움직인 적도 있긴 하지만 대충 그 정도씩만 걸어도..하루 열시간 가까이 걷는 거구나.

 

 

히말라야 캠프의 롯지는 고작 세 동이던가, 위로 올라갈수록 롯지 수도 줄어들고 마을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곳이 많다더니 정말이다.

 

그래도 납작평평한 돌들로 이렇게 테라스도 만들고 계단도 쌓아두고, 생각보다 훨씬 잘 정비되어 있어서 놀랐다.

 

그렇다고 따뜻한 온수가 나온다거나 난로가 지펴지는 건 아니어서 꽤나 추웠지만, 덕분에 제대로 씻지도 못한 땀과 땟국물이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방금까지 열심히 걸으며 온몸 가득 흠뻑 젖었던 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뽀송뽀송해진 상태.

 

건물 외벽에 나와있는 요 단촐한 시설이 세면대. 여기에서 씻고 이닦고 발도 닦고.

 

어느 포터의 등짐. 대나무로 엮어 만든 등짐에 대충 질긴 천을 찢어 묶어서는 어깨끈을 만들었다.

 

히말라야 캠프 앞쪽의, 아마도 공용 설비라고 해야 하나. 뭐 딱히 롯지끼리 니꺼내꺼 갈라 쓰는 분위긴 아니라지만 여긴 위치상 공용.

 

속속들이 집결하는 트레커들. 촘롱 이후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오르는 길은 이길 하나밖에 없으니 사람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눈인사만 주고받던 사람들이던 '나마스떼~'하고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이던 결국 몇번씩 얼굴을 마주치게 된다.

 

 

아직 우기의 끄트머리라 그런가, 그러고보면 4일차에 이르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왔다. 그나마 하루 빼고는 오후 늦게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걷는데 지장이 없었지만, 중간에 하루 비맞으며 마침 굉장히 오래 걷고 났더니 굉장히 타격이 크다. 옷도 다 젖고.

 

3천미터 어간에서부터 주의해야 하는 고산병.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거나, 식욕이 없다거나, 몸이 무거워지는 등등 다양한 증세를

 

보인다고 하는데, 요새는 고산병 약으로 (혈관 확장효과 때문에) 비아그라를 많이 쓰기도 한다고 한다. 그치만 현지 가이드의 추천을

 

듣건대, 그리고 내 경험상으로도 단언컨대, 고산병에는 마늘수프가 최고다. 갈릭 수프.

 

저녁은 간단하게 갈릭수프와 감자전 비스무레한 것. 갈릭수프는 기대 이상으로 꽤나 맛있었고, 몸도 따뜻하게 덥혀주는 효과까지.

 

네팔같은 빈국의 경제 상황을 가늠케 해주는 것 중 하나는 이런 기본적인 생필품들의 퀄리티를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느쪽이 칼날인지 헷갈릴 정도로 얇디얇은 저 손잡이들. 칼뿐 아니라 숟갈이나 포크 역시 마찬가지다. 칼날만큼 얇은 손잡이.

 

그리고 가스 버너. 한국의 등산가들이 갖고 와서 쓰다가 놓고 갔다던가. 왠지 이 동네에 딱 어울리는 물건이지 싶다.

 

 

그리고 전기조차 귀해서 알전구가 빠져 있는 내 숙소방. 전기가 끊긴 건지 전구가 비싼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내게 지급된 초 한자루.

 

바깥 기온과 딱히 다를 바 없는 실내 기온 때문에 오리털 침낭을 덮고 그 위에 이불을 또 덮었지만 별무소용이라, 따뜻한 물을 다시

 

주문해서 계속 마셨다. 양초도 어찌나 조악하고 조그맣고 얇은지, 생일 케이크 위에 올라가는 초라고 해도 믿겠다.

 

그래도 이토록 짙고 농염한 어둠 속에서도 양초 한 자루, 그리고 헤드랜턴 두개를 가지고 히말라야의 긴긴 밤동안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가져갔던 책이 네 권인데 전부 다 읽고 돌아왔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거침없는 오르막길, 그 문턱에 있는 시누와. 시누와까지만 당나귀나 물소가 다니고 그 위로는

 

사람만 등짐을 메고 다닐 뿐이라고 한다. 덕분에 거머리의 습격도 없고 당나귀 똥밭도 없긴 하지만, 또 그래서 시누와 위쪽으로는

 

미네랄 워터를 팔지도 않고 그저 끓여서 정제한 물만 판다는 단점도 있다. 위로 오를수록 물가가 올라간다는 점도 있고.

 

시누와를 지나 2,310미터 고지의 밤부Bamboo에 다다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대나무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 밤부, 맞다고 한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게 꽃나무고 풀떼기들인데도, 이렇게 플라스틱 케이스를 재활용해서 롯지 곳곳을 식물로 꾸며놓았다.

 

롯지 앞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대나무숲, 사람들이 몇명 들어가서 대나무를 베고 죽순을 채취하고 있었다.

 

이미 슬쩍 소슬해질 만큼 낙차가 느껴지는 기후, 맨땅바닥에 그대로 앉으면 엉덩이가 차가워져서 꼭 저렇게 양털가죽을 깔고 앉으라

 

말해주는 세심한 가이드, 그 덕분에 푼힐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를 무사히 잘 다녀왔다.

 

그리고 점심. 달밧을 시켰는데 반찬이 색다르다. 역시, 대나무가 많이 나는 지역이라더니 밑반찬도 대나무 속대로 만든 요리. 맛있었다.

 

 

다시 배를 채우고 출발, 해발 2,920미터 고지의 히말라야 캠프까지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대충 500미터 어간을 올라야 하는 셈.

 

체코에서 오신 70대 노부부의 페이스에 맞춰서 살살 '천천히 천천히' 올라가기로 했다. 한국어와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가이드가

 

제일 먼저 배운 한국말은 역시나, '천천히 천천히'라고 했던가. 무작정 서두르고 다그치며 오르는 한국인들이 많은가보다.

 

한참 걸어가는데 옆에서 대나무 속대를 채취해서는 다듬고 있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등짐을 메고 이마로 끈을 버팅기며 저 무거운 가스통을 이고 지고 나르는 사람.

 

 

앞의 체코 노부부를 챙기는 가이드도 굉장히 살뜰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다. 다리를 건너거나 경사가 가파른 곳을 지날 때는

 

원, 투, 쓰리, 발 딛을 곳까지 하나하나 지정해줘가며 인도해주고, 어떨 때는 이렇게 힘껏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도 되어주고.

 

아무리 봐도 네팔어는 참, 저 글자를 어떻게 쓰는 건지 신기하기만 하다. 쓴다기보다 그린다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점점 안개인지 구름이 휘감고 있는 지역이 늘어나고, 경사도는 완만해질 줄 모르고 끝없이 오르막인데다가 짐은 무겁다.

 

 

그래도 주변의 풍경들, 급류를 이루고 흘러가는 개울과 온통 초록초록한 가운데 점점이 뿌려진 꽃송이들.

 

그런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며 오르다보니 금세 히말라야 캠프. 2,920미터의 이곳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는 이제

 

세개 포스트 남았다. 데우랄리,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그리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촘롱, 해발 2,170미터까지 내려온 셈이지만 이제부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는 죽 올라가는 한 길이다.

 

제법 큰 이 마을에서 당분간은 누릴 수 없을 따뜻한 물 샤워를 즐기고 떠나기 전, 새벽 댓바람부터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이 훤히 보인다.

 

안나푸르나 1, 안나푸르나 사우스, 그리고 두 갈래로 갈라진 물고기 꼬리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 마차푸챠레

 

(마차 : 물고기, 푸챠레 : 꼬리)의 봉우리가 아무런 장애물없이 훤하게 보이는 아침이다.

 

 

밤새 묵었던 촘롱의 롯지. 그래도 비에 쫄딱 젖은 옷들과 우비들은 모두 방앞의 빨랫줄에 걸어놨지만, 밤사이에 말랐을리 만무.

 

 

안나푸르나 1과 안나푸르나 사우스.

 

그리고 마차푸챠레. 슬쩍 빗겨올라치는 햇살이 뚜렷한 선을 긋는다.

 

4일차의 아침. 오늘은 촘롱에서 시누와를 거쳐 2,920미터에 있는 히말라야 캠프까지 올라가는 걸로 일정을 잡고.

 

그새 태양은 불쑥 떠올라 산봉우리들과 거의 눈높이를 맞췄다. 여전히 시꺼먼 어둠 속에 잠겨있는 산의 아랫도리.

 

창밖으로 보이는 안나푸르나 봉우리의 저 디테일한 근육들과 하얗게 반짝거리는 만년설이 빚어내는 몽환스러움.

 

 

숙소의 내 방 앞을 장식했던 티벳 불교식의 부적들.

 

 

역시나 2인룸이었지만, 이 롯지의 여남은 개 되는 방이 텅텅 빈 채였으니 혼자 넓찍하게 쓸 수 있었다.

 

 

  출발해서 몇 걸음 옮기기도 전. 아침밥 짓는 연기가 부엌의 문짝 위로 새어오르고 닭들과 염소들이 겁없이 길을 막고 서는.

 

 

온통 산악지대다 보니 바퀴 달린 도구를 쓰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 당나귀를 시키거나 아님 사람이 직접 나른다.

 

 

이렇게 자기 키를 훌쩍 넘는 짐꾸러미도 어떻게든 꾸메꾸메 엮어서 한발한발 조심스레 옮겨다니는.

 

 

커다란 협곡 위를 가로지르는 흔들다리. 굉장히 길고 출렁거리는 게 장난이 아니어서 소름이 슬쩍.

 

그나마 다리 옆 얼마전까지 썼다는 허름하고 다 부서져내린 다리를 보니 이게 훨씬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잠시 쉬어가는 참, 촘롱 위에서부터는 미네랄 워터도 팔지 않고 그냥 히말라야 산에서 내려온 물들을 끓여서 정제해서 판다고 하더니.

 

그리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물값과 음식값이 비싸진다. 그래봐야 물 1리터에 400원 어간에서 1000원 어간으로 오른 셈이지만.

 

 

제법 화사하게 꾸민 집 한 채 앞뒤로 층층이 다랭이논이 가꾸어져 있고, 알록달록한 색색의 빨래가 길게 꼬리를 늘어뜨렸다.

 

 

여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저 산등성이들 사이로 요리조리 걸었던 것만 같고.

 

잠시 쉬어가는 참에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니 새파란 게 옆엣 롯지의 새파란 굴뚝과 깔맞춤을 했나 싶다.

 

 

 

어느 집에서는 갓 태어난 듯한 새끼고양이가 베개 위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지만, 이미 내 몸도 힘들어서 쓰다듬어줄 생각도 못하고.

 

 

아침에 출발하고 또 네다섯시간, 점심을 먹기로 한 마을, 시누와가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니 걸음이 다시 빨라진다.

 

 

어제 촘롱까지 오는 길에 워낙 무리를 한 탓인지 오늘은 체코에서 왔다는 70대 노부부와 페이스를 맞춰 걷던 참이었다.

 

78살의 할아버지와 77살의 할머니. 오르막이건 내리막이건 평지건, 한결같은 페이스와 보폭으로 걸어가시는 게 뭔가

 

인생의 연륜이 묻어있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만드는 두 분. 그래서 결국 무턱대고 달리는 젊은이들보다 빨리 도착하던.

 

할튼, 해발 2,360미터 시누와에 도착. 점심시간이다.

 

해발 2,590미터의 타다파니, 롯지들이 몇채 옹기종기 모여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집집마다 티벳 불교도임을 알리는 깃대가 섰다.

 

 새로운 메뉴에 도전, 치즈를 얹은 볶음면. 고수도 들어가고 몇가지 향신료가 독특했지만 전반적으로 좀 질척하고 양도 너무 많았다.

 

그러니까 오늘 새벽 4시반부터 걸은 코스는, 고레파니에서 왼쪽위의 푼힐, 다시 고레파니로 가서 데우랄리에서 벤탄티, 타다파니까지.

 

점심을 먹고 나면 출레, 구르정을 지나 촘롱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고 나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계속 오르막길.

 

 

 

점심을 먹고 계속 가는 길, 점점 구름이 짙어지는 것이 심상치 않은 날씨다 싶더니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어느 아저씨는 물소고기를 손질하느라 휘어진 모양의 네팔 전통칼을 능란하게 휘두르고 계시고.

 

롯지 앞을 장식한 염소의 뿔.

 

그리고 한사람이 겨우 지나는 오솔길을 턱하니 온몸으로 막고 선 물소 녀석. 네팔을 떠나기 전 네녀석 고기를 맛보고 싶었는데 아쉽.

 

 

잠시 쉬었다 가는 길. 물소가 지났던 길에는 거머리를 조심하라더니, 여기서 잠시 쉬다가 순식간에 거머리의 습격으로 피를 빨리고.

 

 

 

그리고 여기서 쉬던 참에는 우연찮게 며칠째 같이 걷고 있는 스페인 친구가 또 거머리에 당해버렸다. 어찌나 피를 많이 빨던지.

 

 

그리고 촘롱까지 가는 길, 더이상 억수같이 붓는 비를 견디지 못하고 카메라를 가방 속에 넣어버리는 바람에 더이상 사진은 없고,

 

그저 우비를 입고 가방에도 비막이를 씌우고 물을 뚝뚝 흘리며 물에 빠진 생쥐처럼 몇시간을 더 걸었다는 것만.

 

대략 오전 4시반부터 오후 6시까지 걸었으니까..13시간 이상 걸은 셈이다. 그리고 촘롱에서 도착직후 쓰러져 잠들다.

푼힐전망대를 내려와서 다시 고레파니의 롯지로. 어제 저녁 주문해놨던 아침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구릉족 고유의 빵과 감자,

 

그리고 오믈렛까지 든든하게 먹고서 다시 길을 떠날 준비. 이제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로 넘어가야 한다.

 

 

짐싸기 전, 밤새 싸늘한 추위에 오리털 침낭안에 들어가고 그 위에 이불을 덮은 채로 머물렀던 내 방에서 보이는 안나푸르나의 설봉.

 

이른 아침의 향내가 은은한 가운데, 입구에는 어김없이 꽃 한송이가 바쳐졌다.

 

롯지의 다이닝룸, 그리고 온갖 기초적인 음료와 간식류들.

 

하트 모양이라 해야하나, 길쭉한 고추 모양이라고 해야 하나, 할튼 숙소방 열쇠들.

 

달밧과 구릉빵과 온갖 메뉴들을 주문받아 만들어내는 주방.

 

어느결엔가 차갑게 식어버린 난로. 그 위의 온갖 세탁물들과 침대 커버들이 무색하다.

 

 

다시 내 방의 창문. 2인실이었지만 아직은 비수기인 덕택에 혼자 널럴하게 다 썼다. 침대 하나는 테이블로 삼고.

 

공용 화장실. 앙상한 세면대와 샤워기, 그리고 그나마 파스텔톤의 색감이 느껴지며 다른 곳의 화장실보다 낫던 곳.

 

출발, 여기도 허수아비를 세워두는구나.

 

 

고레파니에서 동쪽으로 계속 가서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챠레의 두 봉우리 아랫목까지 걸을 생각인데, 제법 이쁜 길이 이어진다.

 

다른 트레커들의 짐을 들어주고 계시던 포터 할아버지, 나이도 꽤 지긋해 보이시는데다 슬리퍼 차림이라니 깜짝 놀랬다.

 

 

그리고 꽃밭. 온통 노랑꽃이 지천으로 피어나선 사방에서 돌비서라운드로 들리는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마구 뒤섞인다.

 

 

 

해발 3천미터 고지대에서 오르내리막하다보니 온통 안개 속이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그 중 하나의 꼭지점에서 잠시 휴식.

 

 

성수기에는 저 집에서 음료도 팔고 물도 팔고 그런다는데 지금은 그저 텅 비어있는 버려진 초막 같은 느낌.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노란 꽃들과 보라색 꽃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풍경, 그 가운데로 뻗어나가는 구불구불한 오솔길까지.

 

 

 

 

 

왜 그 등산화를 포함해서 등산용품들을 선전하는 광고에서 흔히 보이는 '히말라야 트레킹' 장면 같은 멋진 풍경들이다.

 

 

 

나무가 꺽여나간 그루터기 위, 소담한 이끼와 이파리들이 하나의 조그마한 숲을 이루었다.

 

중간에 들른 어느 마을, 하루에 20여킬로씩 걷다 보면 마을을 최소한 세네개는 지나게 되는 것 같다. 여긴 입구부터 버섯을 말리는 중.

 

잠시 차 한잔 마시며 쉬었다 갈까 하다가, 별로 힘들지 않은 길이고 걷기에 참 좋은 길이어서 그냥 계속 가기로.

 

 

 

 

중간에 만난 자그마한 폭포. 히말라야 산맥의 산들은 어찌나 물이 많은지, 사방에서 조그마한 내와 폭포가 흘러넘친다.

 

 

개울을 지나는데 깜짝, 이렇게 돌탑을 쌓아두는 건 우리나라에서만 보이는 건 줄 알았더니 아닌가보다. 납작평평한 이 동네에서

 

자주 보이는 돌들이 이런 돌탑을 쌓는데에는 굉장히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중간중간 개울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 굉장히 엉성하게 나무 두어그루를 묶어둔 것도 있고, 이렇게 제법 꼴을 갖춘 것도 있고.

 

 

 

알게 모르게 설렁설렁 올라가는 길 같기도 하고, 갈수록 점점 산이 깊어진다는 느낌은 짙어진다.

 

그리고 해발 2,870여미터의 고레파니에서 삼백여미터 아랫춤의 타다파니(해발 2,590미터)까지 도착해서 점심시간.

 

 

 

푼힐전망대, 안나푸르나 서쪽에 위치한 이곳은 해발 3,210미터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에서 만나게 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직전의 데우랄리쯤과 비슷한 고도를 점하고 있는 곳이다. 새벽 4시반부터 롯지를 나와 산행을 시작한 건,

 

이 전망대에서 해뜨는 걸 보며 동시에 안나푸르나 사우스, 안나푸르나 1, 마차푸챠레, 닐길리, 힌출리 등의 이름 높은 산들을

 

바라보고자 함이지만, 사실 밤새 구름이 많이 끼고 심지어 비도 조금 내렸어서 큰 기대는 없었다.

 

캄캄한 어둠 속을 헤드랜턴으로 헤치며 근 1시간가까이 헉헉대며 산행을 했을까, 해발 2,874미터에 위치한 고레파니에서 수직으로

 

약 400미터 가까이 올라가야 하는 셈이니 생각보다 거친 산행이었던 셈이다. 슬몃 하늘이 밝아진다 싶을 때 전망대에 도착했다.

 

저멀리 닐기리 산의 눈덮인 정상부가 짙은 구름 사이에서 신비스러운 빛을 내뿜는 게 보였지만, 전반적으로는 구름에 숨은 상태.

 

 

우선 전망대에 위치한 찻집에서 밀크티, 찌야를 마시며 몸을 좀 녹였다. 보통 롯지에서는 50루피 내외(KRW 500원 정도)이던 찌야가

 

무려 240루피. 역시나 여기서도 네팔 본국 사람에 대한 우대는 여전해서, 같은 찌야가 고작 120루피. 대개 그렇듯 차 역시 반값이다.

 

 

맹렬한 속도로 움직이는 구름, 날카로운 삼각뿔 형태의 안나푸르나 사우스에 갈갈이 찢기면서도 하릴없이 몰려왔다. 볼 수 있을까.

 

그 와중에도 한쪽의 벤치에는 쌍쌍이 앉아 있는 커플들, 마치 알프스의 다정다감하고 온유한 산정에 오른 듯한 분위기를 연출 중이다.

 

구름이 없이 맑은 날이면 전망대 아랫춤에 붙어있는 그림처럼 쭈욱 이어지는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을 텐데.

 

 

끈덕지게 시야를 가로막던 구름들이 조금씩 산개하며 밀려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푼힐 전망대의 전망탑. 하늘은 파래졌지만 사실 아직 태양이 지면 위로 떠오르지는 않은, 그야말로 일출 직전의 긴장감.

 

 

밤새 이슬이 내려앉은 어느 벤치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봉우리들.

 

 

삐쭉, 봉우리가 구름 위로 솟았지만 여전히 계속 감질나는 시츄에이션.

 

그 와중에 봉우리들 틈새로 햇살이 빗겨 번지기 시작했다.

 

무슨 수묵담채화도 아니고, 옅은 금빛의 햇살이 시꺼먼 산 아랫도리를 부드럽게 헤집으며 서서히 채비를 갖췄다.

 

 

 

끝내 맑은 하늘을 못 보려는가 싶으면서도 뭐 딱히 서두를 거 있나,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이제나 저제나 목을 빼고 기다리는 중.

 

사실 딱히 안나푸르나 사우스니 마차푸챠레니 하는 봉우리들이 하나씩 툭툭 불거지지 않아도 좋았다. 어차피 난 푼힐 트레킹 코스

 

말고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로 넘어갈 거고, 그러면 계속해서 그 봉우리들을 바라보고 걷게 될 테니 급할 건 없다.

 

 

 

오호라, 그렇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안나푸르나 1과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를 대면할 수 있었다. 금빛 아침햇살을 머금고

 

반짝거리는 새하얗고 매끄러워 보이는 만년설의 질감이란. 게다가 저토록 섬세한 디테일들이 맨눈에도 쉽게 드러나다니 감탄 또 감탄.

 

 

실컷 감상을 하고서 슬슬 내려오면서도 계속 안나푸르나의 봉우리들은 뒤를 지켜 주었다. 이제 모두 저멀리로 날아가버린 구름들,

 

가끔 깃털인양 한두조각씩 걸쳐지는 구름들을 불어내면서 그 거대하고 웅장한, 위엄돋는 봉우리들이 하늘을 받치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쉬웠다. 우선 날이 밝아 발밑이 안전했고, 줄곧 내리막이었으며, 배가 고팠으니깐. 금세 푼힐전망대의

 

티켓 오피스를 지났고 이내 고레파니의 숙소까지 내달릴 수 있었다.

 

고레파니 마을로 들어서기 직전의 회전문. 대체 왜 저런 문을 설치했나 했더니, 닭이니 염소니 물소니 그런 것들이 함부로

 

마을 경계를 넘어 도망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해발 2,874미터의 마을 고레파니. 백두산이 2,744미터였던가 그러니까 이미 백두산보다 높은 지역으로 올라온 셈이다.

 

제법 기온도 서늘해졌다 싶더니, 해가 떨어지고 나니 삽시간에 추위가 몰려온다.

 

아직은 해가 떨어지기 전, 아침 7시반부터 3시까지 근 7시간여 걷고 난 후에 숙소에 들어오고 나서 마을 구경에 나섰다.

 

머물게 된 숙소 근처에서 발견한 그럴듯하게 휘감긴 염소뿔의 위용. 슬쩍 집어오고 싶을 정도로 위풍당당하더라는.

 

 

하루의 트레킹을 끝내고 숙소로 오면 일단 맥주부터 시원하게 한 캔 혹은 한 병씩을 마시는 게 그렇게도 맛났다.

 

네팔의 국산맥주인 에베레스트 맥주는 좀 싱거운 느낌이었고, 원래 유럽맥주지만 네팔에 공장이 있다는 투벅 맥주는 훌륭한 편.

 

그 외에 위스키나 럼, 아니면 옥수수나 곡물을 증류해서 만든 네팔 전통주 락시도 있는데 락시는 약한 안동소주의 느낌이랄까.

 

 

마치 서울의 여느 달동네나 산동네처럼 야트막한 집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이 입체적인 마을에서 그나마 너른 편인 광장 한켠,

 

아저씨들이 모여서 시끌벅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이런 게 바로 그 유명한 '투전판'이로구나. 주사위가 들어있는 검정 사발을 흔들고 뒤집는 아저씨들의

 

손놀림이 유쾌하다. 타지에서 온 트레커 따위는 거의 신경쓰지도 않고 즐겁게 놀고 계셨다.

 

 

어느 틈에 그 조그마한 광장을 점령해버린 당나귀 동무들. 등짐도 안 올리고 어딜 그렇게 왁자지껄하게 몰려다니는 거요.

 

좀더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흥미로운 표식. 여긴 초등학교에서 뭔가 마법진 연성하는 걸 가르치는 건가 싶은 저 별모양이라니.

 

사실 네팔에 대한 흥미는 어렸을 적 '3X3 EYES'로부터 유래했는지도 모른다. 시바와 파르바티, 삼지안이 등장하는 그 초현실적인 만화.

 

 

그렇지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정작 신체 건강하고 정신도 건전한 네팔의 남녀 젊은이들이 무려 성대결을 펼치는 중이었다.

 

그들이 토스하고 스파이크하는 소리가 산중에 메아리치는 느낌, 대결을 지켜보는 어느 어머니의 표정이 따사롭다.

 

이런 빈티지스러운 학교 간판이라니.

 

 

 

 

마을 입구에서 아까 지나쳤던 사당, 제법 모질게 부는 바람에 사당 입구를 수놓은 붉은 리본들이 마구 휘날린다.

 

 

숙소로 다시 돌아와 고레파니 마을을 내려다보니, 온통 파란 지붕들이 시루떡처럼 층층이다.

 

 

숙소 안으로 들어와 그새 차갑게 굳은 몸을 녹이려 밀크티 찌야를 마시며 이번엔 숙소 안 구경. 여기는 식당마다 휴지를 저렇게

 

한장한장, 삐뚤빼뚤 포개넣으며 탑을 쌓아놨더라. 그게 꼭 활짝 피어오르는 꽃송이 같더라.

 

그리고 밤새 추위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난로, 뜨거운 물로 샤워를 모처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요, 땀에 흠뻑 젖은 옷들을

 

슬쩍 빨아볼 엄두를 내게 해준 것도 이 난로 덕분이었다.

 

그리고 저녁. 아무리 롯지마다 다른 레시피의 달밧을 내어준다지만 뭔가 변화를 주고 싶어서 주문한 베지터블 카레.

 

 

 

바탄티에서 점심을 먹고 고레파니까지 가는 것이 2일차 오후의 목표. 고레파니는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 중 이름난 전망대인

 

푼힐 전망대와 1시간 이내로 떨어져있는 곳이어서, 내일 아침 해뜨는 것을 푼힐에서 보려면 해발 2,874미터의 고레파니까진 가야한다.

 

으레 그렇듯 점심 메뉴를 고르고 나면 적어도 삼십여분, 노닥거리는 시간이 생기기 마련이어서 롯지 주변을 어슬렁대다가

 

새끼 고양이를 둔 고양이 부부를 발견했다. (주문후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최소 삼십분, 길면 한시간까지도 각오해야 한다는)

 

어미인지 애비인지, 제 부모 꼬리가 들썩일 때마다 정신못차리고 덤벼드는 꼬꼬마 새끼 고양이.

 

여긴 그래도 제법 사방에 꽃도 피어있고 나름 정원 비스무레한 느낌을 주는 앞마당이 아늑한 편이다.

 

주인 아저씨가 돌을 일정하게 깔아둔 포석 사이의 잡풀을 뜯고 있는데 고양이 녀석은 안겨들고, 강아지는 뜯긴 풀을 씹고 있다.

 

그야말로 개풀 뜯어먹을 만큼 평화롭다 못해 나른해지는 정경.

 

메뉴는 달밧. 달밧을 시키면 저 콩으로 된 스프인 '달'과 밑반찬들, 그리고 풀풀 날리는 안남미쌀밥을 무제한 리필 요청할 수가 있다.

 

 

 

주인 아저씨가 다른 가이드들과 한담을 나누는 사이 이번엔 주인 아주머니가 풀뜯기에 나섰다. 몇분 지켜보지 못하고 아주머니한테

 

엉겨붙어 놀아달라고 애교부리는 강아지 녀석. 아주머니는 반갑게 덥썩 안아주며 요래조래 놀아주었지만.

 

 

너무 신난 나머지 정신못차리고 엉겨붙던 녀석은 급기야 아주머니한테 한대 씨게 얻어맞을 뻔 하고서는

 

잔뜩 주눅이 들어 저쪽 그늘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양이 가족들의 단란한 한때. 새끼고양이의 재롱에 부모 모두 차마 눈도 못 뜨고 있다.

 

 

그러다 이내, 이렇게 두 녀석이 휘영청 구부러진 몸뚱이를 찰싹 붙이고는 하트 모양으로, 게다가 제 새끼는 척, 팔로 감싸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건 오래 걸려도 먹고 잠시 쉬다가 출발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통틀어 한시간 내외정도.

 

뭐, 어차피 스케줄이나 움직이는 시간 같은 거야 전적으로 내가 알아서 하는 거니깐 내 맘대로 하면 되지만, 그래도 움직여야 할 때.

 

노랑꽃들이 흐벅지게 길 양옆에 피어났다. 원래는 봄철에 와야 산 전체가 네팔의 국화인 붉은 랄리그라스가 지천에 피어 더 이쁘단다.

 

잠시 쉬어가는 길, 내 짐과 (양 팔을 이어 두발로 기능케해 준) 두 개의 스틱, 그리고 가이드이자 동반자인 친구의 짐을 내렸다.

 

 

우연히 마주친 다른 일행의 포터. 포터는 정해진 루트를 따라 짐을 옮겨주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짐이 무겁다.

 

 

얼마동안이고 힘들고 지칠 때까지 걷다가, 잠시 길가에 적당한 돌들을 골라 그 위에 털썩. 이왕임 근처에 물가라도 있음 더욱 좋고.

 

 

그리고 고레파니 도착. 꽤나 큰 마을이어서, 마을 입구에는 이런 환영의 표지물도 다 서 있다.

 

 

 

마을을 가로질러 머물 롯지를 찾는 중에 발견한 히말라야 마오이스트들의 표지와 구호. 이제 3천미터에 가까운 고도에 걸맞게

 

슬쩍 서늘한 느낌이 드는 터에, 이 게릴라 집단이 여전히 횡행하는 지역에 있다는 실감에 더욱 소슬해졌다.

 

그랬다가, 요 염소 녀석이 꼬맹이들을 무시하고 사방으로 내달리려 하는 모양새에 이내 웃음이 터져버리고.

 

줄을 꼬옥 움켜쥐고 끌려가지 않으려는 다홍빛 전통의상의 꼬맹이 입매에 서린 긴장과 결의가 대단해 보인다.

 

 

고레파니의 체크포인트. 트레커 카드와 TIMS 카드의 소지 여부를 확인하고, 지금 현재의 이곳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무사히 도착했음을 기록으로 남기는 기능을 하는 곳이다. 만의 하나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한 기록인 셈이다.

 

그리고, 이 고산지대 마을 가운데 조그마한 광장 한가운데서 눈에 띄었던 '부처의 눈'이 그려진 조그마한 탑.

 

 

 

 

안나푸르나 푼힐 전망대 코스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코스를 합쳐서 대략 8일쯤의 일정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 중 2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현재 해발 1,540미터 고지의 티케둥가의 롯지.

 

한국에선 밀크티, 인도에선 짜이, 그리고 네팔에선 찌야. 차 한잔과 Gurung Bread, 말그대로 구릉족의 전통빵 하나를 꿀과 함께

 

먹는 것으로 아침식사를 마쳤다. 조금 양이 모자랄까 싶어 꿀을 듬뿍듬뿍 발라 먹어주는 센스.

 

현재시간 6시, 창밖은 어느새 환하게 날이 밝았고 새소리와 물소리가 쉼없이 쏟아져들어온다. 밤새 짖던 개는 뉘집 개일꼬.

 

엊저녁 가이드에게 배웠던 네팔의 독특한 숫자 체계, 그리고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 붉게 칠해진 달력.

 

히말라야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티벳 불교도들, 아침마다 향을 피우고 문턱 양쪽을 꽃으로 장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날밤 친해진 스페인에서 온 친구와 그의 가이드. 히말라야 트레킹은 대개 한두명의 소수로 와서 가이드나 포터가 한둘 붙는 형태다.

 

 

고뇌하는 당나귀. 다리를 건널 것인가 말 것인가. 그렇지만 늘 그렇듯 그는 온순하고 순종적이다.

 

 

쉬지 않고 혀를 차고 기합소리를 넣으며 당나귀들을 몰아대는 꼬맹이, 카메라를 보더니 든든하게 포즈를 잡았다.

 

 

다리 저편에서는 어느 부부가 당나귀 등짐으로 닭장 가득 우겨넣어진 닭들을 동여매는 참.

 

 

이른 아침 제법 소슬한 바람에도 슬몃 땀이 배어들 만큼 걸었을 즈음, 어느 집에서는 뒤늦은 밥연기가 피어올랐다.

 

남녀를 불문하고 자식을 갖게 해준다는 '영험'을 가졌다는 비석이 불쑥 눈앞으로.

 

 

꽤나 화려하게 치장을 하려다가 실패한 모양, 남아있는 잔해는 왠지 화투의 6, 매화그림 같기도 하고.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들른 롯지, 밀크티 찌야를 시키고 땀을 식히려는데 꼬맹이 동생을 얼르고 달래는 누나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미리 챙겨갔던 볼펜을 두어자루 꺼내들고 누나랑 동생한테 하나씩 쥐어주었더니 '나마스떼'도 두손모아 인사해주고

 

방긋방긋 경계심없이 활짝 웃어주는 거다. 심지어는 꼬맹이를 업었던 숄을 풀어서는 저렇게 해맑해맑한 표정으로 패션쇼까지.

 

그 와중에 깜놀, 이 해맑고 순수한 아이들이 앵그리버드가 뭔지는 알까. 근데 여하간 옷과 신발에는 저런 캐릭터들이.

 

마시고 난 찻잔, 먹고 난 식판들은 모두 마당 한쪽 구석의 세면대로. 히말라야가 쉼없이 흘려보내는 물이 호스를 타고 콸콸 흐른다.

 

이 집은 그래도 센스있게도, 호스로 물을 사용할 때는 뚜껑을 닫고, 아닐 때는 저렇게 다른 호스로 연결해서 다랭이논으로 직행.

 

 

주인댁이 사는 방문이 열려있길래 슬쩍. 어떤 분위기인지 기웃기웃.

 

 

허름한 삶의 터전, 철사와 전선으로 칭칭 동여맨 슬레이트 지붕엔 녹슬고 날카로운 못이 불쑥 튀어나와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온통 나무와 곡선, 짙푸른 녹색의 향연이다.

 

 

 

 

길 한 복판에 덜컥 서서는 지나는 이를 뒷발로 차겠다고 벼르는 듯한, 결기어린 눈빛의 염소 한 마리.

 

 

 

울레리Ulleri라는 마을에 접어들었지만 신속하게 빠져나가는 참, 점심은 2,210미터 고지에 위치한 반탄티Banthanti라는 곳에서 먹기로.

 

매콤해보이는 새빨간 고추가 야트막한 집 지붕 위에 얹혀 햇볕 아래 반짝반짝.

 

 

 

계속해서 오르막길, 가파른 계단길이 계속되다 보니 체력이 급속히 저하되고 있는 참에 통닭들이 어른어른거린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어차피 걷는 길은 뻔하다지만 각자의 페이스가 다르고 체력안배를 위해 쉼표를 찍는 지점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앞서거니 뒷서거니, 때로는 몇걸음 차로 붙어다니다가도 훌쩍 멀어져 안보이기도 하고. 만나면 더욱 반가울 수 밖에.

 

 

대나무로 바구니를 엮고 계신 할아버지와 마을 어르신들 옆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서는 천하태평의 기세로 잠든 검둥이.

 

 

 

 

여기도 페인트칠, 다소곳한 손놀림으로 창틀을 갈색으로 칠하고 계신 아저씨. 근데 왜 다들 파란색과 갈색 일색일까.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평지. 세가지 모드로 천변만화하는 트랙의 변화 속에서도 일정한 자신만의 속도와

 

체력안배를 유지하는 것이 정말정말 중요하다.

 

 

신기한 게 사방에서 봇물터지듯 흘러내리는 냇물, 개울들이 모두 약간씩 회색빛을 띄고 있다는 사실. 빙하가 녹아내려서 그럴까.

 

 

 

이제 점심을 먹기로 스케줄을 짜둔 반탄티Banthanti 어귀로 도착. 돌로 쌓아둔 휴식처에 삼각형 모양 제단이 설치되어선 향내음이 물씬.

 

그리고 그 위로는, 히말라야 지역에 여전히 존재하며 활동중이라는 마오이스트들의 표시. 낫과 망치의 그림이 선명하다.

 

최근에도 트레커나 등산가들을 향한 테러를 저질렀다고 했던가. 여전히 이 깊은 산에 의지해 게릴라 활동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은근히, 의외로 많이 보이는 한글들. 어느 롯지에서고 'Noodle' 메뉴에서는 '신라면'을 찾아볼 수가 있을 정도다.

 

드디어, 바탄티에서 점심을 먹을 롯지에 도착.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아 들어간 주방에 슬쩍 따라들어가 구경을 잠시.

 

 

 

나야풀에서 티케둥가까지.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을 포함해서 대충 다섯시간을 걸어 올라와서 쉬엄쉬엄 맞이하는 저녁시간.

 

여력이 충분히 남은 상태인지라 마을을 둘러보고, 산장 겸 식당으로 기능하는 롯지도 요모조모 살펴보고.

 

심심치 않게 지나는 염소떼라거나 당나귀들도 구경하고.

 

웨스턴 스타일의 토일렛이 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네팔은 물을 사용하는 수식 화장실. 그러니까 휴지 따위 준비되어 있지 않고

 

수도꼭지와 바께쓰 하나만 놓여있을 뿐. 손과 물을 써서 닦아낸 후에 물로 흘려보내란 이야기인데, 자연에 조금 부담을 줄지언정

 

표백물질과 화학물질이 혼합되어 있을 새하얀 크리넥스 티슈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직 우기가 끝나기 직전이라 비수기에 해당하는 9월 초중순, 1인실, 2인실에 따라 방값도 다르지만 넉넉하게 혼자 차지한 독채.

 

게다가 양쪽으로 창이 훤히 뚫려 있어 햇살도 잘 들어오고 모기랑 나방도 잘 들어오고..

 

 

 

숙소 2층에서 내려다본 당나귀들의 행렬. 양쪽으로 균형잡고 실린 짐들은 대개 생필품이라거나 곡물류, 심지어는 가스통까지.

 

 

 

이 곳에는 편마암이랄까, 결을 가지고 일정한 두께로 쪼개지는 돌들이 많이 있나보다. 계단도, 포석도 모두 그런 돌들로 마감되어있다.

 

 

롯지 안의 다이닝룸, 사방에 트레킹족들과 산악회들의 깃발과 명함이 나부끼는 가운데 한글로 된 깃발들도 많이 보인다.

 

그 와중에 머리끄댕이를 못박힌 채 노랗게 잘 말라가고 있는 옥수수 몇 자루.

 

높은 산들로 가로막힌 고산지대의 밤은 꽤나 이르게 내려앉았고, 몇개 되지 않는 알전구들의 밝기란 밤하늘의 별빛보다 못했으니.

 

어디서든 거의 마찬가지였는데, 식사를 주문하고 나면 나오는데 거의 한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 같다. 아무리 간단한 단품이던 달밧이던,

 

조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조차 예외없이 삼십분 이상의 대기 시간이 필요했다는. 역시나 저녁은 달밧, 이었지만

 

이것도 롯지마다 레시피가 다르고 곁들여 나오는 반찬이 달라서 매번 새로운 느낌이다.

 

그렇게,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에서의 1일차가 지나고 있었다.

 

 

 

 

나야풀에서 시작한 트레킹, 비레탄티Birhethanti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속행하여 좀더 걷기로 했다.

 

저녁까지 해발 1,540미터의 티케둥가Tikhedhungga까지 가기로 했다.

 

 

길가에서 유유히 노니는 암탉과 병아리들.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피하지도 않는 대범함을 소유했다.

 

 

 

특히 이 위풍당당한 녀석은 카메라를 보더니 더욱 당당하게 앞가슴을 내밀고는 지나다니는 암탉들을 노려보느라 여념이 없더라는.

 

 

 

그리고 비레탄티 마을을 벗어나 본격적인 산과 강을 벗삼은 트레킹이 시작됐다.

 

 

 

 

신기하게도 제주도의 전통적인 문살처럼 이 곳에서도 나무기둥 두세개로 문짝을 대신하고는 표지를 정해 의미를 전달한다고.

 

 

 

완만한 오르내리막이 계속되고 층층이 만들어진 다랭이논과 지붕만 겨우 덮은 비닐하우스가 띄엄띄엄 눈에 띈다.

 

상하수도 시설은 이미 포카라를 떠나는 시점에서 포기, 모든 물은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흘러내리는 자연수에 파이프를 대고 얻는다.

 

물소떼가 길을 문득 가로막는 건 흔한 일, 물소떼가 몰고 다니는 거머리에 물리는 것 역시 흔하디 흔한 일.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시루떡처럼 쌓아올려진 다랭이논들.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롯지에서 만난 부녀는 페인트칠로 새단장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기가 막 끝나는 9월중순이니

 

이제부터 트레커들이 많이 찾아들 것을 대비하는 타이밍이라는 게 함께 한 가이드 꺼멀의 친절한 설명.

 

 

쌀과 옥수수를 재배해서 주식으로 삼는다더니 온통 집집마다-트레킹 중에 만나는 집은 대부분 롯지를 겸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옥수수를 잔뜩 내걸고 말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티케둥가 마을에 도착. 첫날이라 그런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고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정도랄까.

 

살짝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 느낌도 들었고. 여하간 아침 10시쯤부터 오후 3시쯤까지 설렁설렁 걸었다. 이쯤이면 할 만 한데 싶은 정도.

 

 

 

9월 초인 아직은 우기가 끝나기 직전이라더니, 티케둥가에 들어서자마자 쏟아지는 소낙비. 얼른 숙소로 들어섰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위해서는 우선 카투만두에서 비행기로 30여분 걸리는 포카라로 이동해야 한다. 아침 8시반 비행기로 출발,

 

포카라에 도착후 다시 택시로 한시간여 비포장도로를 달려 트레킹의 최초 출발점인 나야풀Nayapul에 도착하다.

 

 

이로써 해발 850미터의 포카라에서 1,070미터의 나야풀까지는 수월하게 도착. 이제 3,200여미터의 푼힐 전망대를 찍고 다시

 

3,700미터의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4,13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오르고 돌아오는 대장정을 시작하려는 참이다.

 

 

얄포름하고 앙상한 철판과 철망으로 만들어진 구름다리. 지나는데 20여킬로그램에 달하는 가방무게에 체중이 더해져 출렁출렁.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끼고 사는 마을이라 역시 애들 낙서조차 범상치 않다. 삐죽삐죽한 산들 아래 마을, 그 앞엔 왈칵 휘여돌아가는 강.

 

골목길을 연해 활짝 뚫려 있는 이발소 아저씨는 내 카메라를 보더니 슬며시 포즈를 잡으며 미소를 짓는다. 머리는 집에 가서

 

감아야 한다는 게 네팔 이발소의 법도.

 

개와 닭들이 이렇게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는 정경. 확실히 평화로운 시골 동네 분위기가 물씬 배어난다.

 

 

골목이 끝나갈 무렵의 조그마한 '마트'. 바닥에 앉아 동생과 놀던 아이가 내 쪽을 손짓하며 뭐라뭐라 신나서 떠드는 중.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유용한 수송수단이 된다는 당나귀들. 길가에 똥을 어지간히도 싸질러놓는지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만드는.

 

 

다리를 지나고 체크포인트에서 트레커 카드와 TIMS 카드를 확인받고 나서는 점심식사부터 하기로 결정.

 

꼬질꼬질하게 때가 묻어있는 저 스위치들, 숫자는 많지만 정작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자주 끊긴다고 한다.

 

샤워설비가 굉장히 열악해 보이는구나, 벌써 땀은 이렇게 흐르는데. 싶었지만..나중에 3000미터 위에서부턴 샤워도 못했다.

 

기온이 뚝 떨어진 시점에서 샤워를 하면 자칫 감기에 걸려 고산병으로 고생하기 십상이기 때문에, 아예 제대로 씻기조차 포기.

 

티벳 불교도의 상징, 울긋불긋한 깃대를 올린 집. 사실 히말라야 산에 깃든 사람들은 대개 티벳 불교도라서

 

거의 모든 롯지(산장)에서 이런 깃대와 장식들을 볼 수 있었다.

 

첫 점심. 네팔의 전통음식이라 해야 하나, 달밧. '달'은 콩으로 만든 스프를 의미하고 '밧'은 흰쌀밥을 의미한다.

 

거기에 두어가지 찬을 더해서 제공되는 음식이 달밧. 첫 음식이니만치 든든하게 치킨 커리를 추가로 주문.

 

산장 겸 식당을 운영하는 롯지의 주인 아주머니가 쓰는 낡은 계산기와 장부.

 

그리고 다시, 1일차 오후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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