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4,120미터 고지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새벽부터 일어나 히말라야 산봉우리 사이로 솟는 해를 보고 난 뒤라

 

꽤나 흥분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던 거 같다. 금세 배가 고팠지만 전날 선주문해둔 아침식사라고는 고작 구릉족 전통빵과 벌꿀.

 

그에 더해서 고산병 예방에 특효이자 이 추운 동네에서 몸을 따뜻하게 지켜주는데 효험이 좋다는 마늘 스프까지.

 

아침을 먹고 다시 나왔더니 그새 새파란 하늘이 조금씩 구름을 몰아내는 중이다.

 

 

다시금 두근두근, 이 새하얗고 거대하고 위엄돋는 자연 앞에 언제 다시 서보랴 싶어서 카메라를 쥐고 안나푸르나 쪽으로 무작정 걷다.

 

이제 이 곳에도 새로운 롯지를 짓느라 꾸역꾸역 건축자재들을 등짐으로 이고 지고 나르며 작업이 한창이긴 하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안나푸르나를 비롯한 마차푸챠레, 닐기리 등등 숱한 히말라야의 높은 봉우리들은 여전히 굽어볼 뿐이다.

 

 

롯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 다국적인들, 일행과 함께 혹은 나처럼 혼자서 산을 향해 걷는다. 뭔가 홀린 사람들같기도 하다.

 

 

 

정신줄 놓고 그저 셔터만 누를 뿐. 이런 풍경 앞에서 감히 무슨 단어와 표현을 동원할 수 있겠나 싶다.

 

 

 

 

 

빙하가 훑고 지나며 수백수천년 간 갈아엎었을 저 주름진 협곡.

 

 

 

새하얀 구름들은 새파란 하늘 속으로 점점 녹아내리고, 산봉우리들을 포근하게 감싼 하얀 만년설은 얼음처럼 반짝거린다.

 

 

더 이상 접근하긴 힘들겠다 싶을 즈음, 더 이상 롯지로부터 대책없이 떨어지긴 겁난다 싶을 즈음.

 

 

박영석 대장을 비롯한 안나푸르나 등반대 3인의 위령탑을 발견했다. 불과 2011년의 일. 탑 아래엔 가족사진이 빛바랜채 놓였다.

 

여전히 이 시대에 '탐험'과 '모험'이라는 걸 찾아다니느라 피가 끓었을 사람들, 이 곳에서 평안히 잠드셨기를.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사진을 추리고 걸러내려 애써봐도, 약간의 각도만 틀어져도 또다른 디테일들이 나타나는 거다.

 

그저 얼음 좀 얹혀있는 커다란 바윗덩이려니 생각했는데, 수만년의 시간동안 쪼아지고 다듬어졌을 그 표피의 질감과 무게감이라니.

 

게다가 환청인가 싶을 만큼 드문드문 갸날픈 신음소리를 내며 흘러내리는 빙하. 금세라도 우르릉,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아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던 풍경이라 사진 역시 뭐 하나 버릴 수가 없더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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