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진한 술자리였다. 열시간이 되도록 이어지던 아주아주 진한 술자리.

중학교 이학년때의 친구 둘을 그때 이후로 처음 만난 거니까, 대충 십칠년쯤만이었던 셈이다.

해가 지기 전 삼겹살을 구우며 시작된 자리는 쭈꾸미로 이어졌고, 그때 노래방으로 놀러다녔던 것처럼

노래방에 몰려가 각자의 노래 실력을 점검받고는 다시 곱창을 씹다간 맥주에 마른 안주로 마무리까지.


문득 가방에 카메라가 있단 걸 기억해내고는 주섬주섬 꺼내들고, 옥도령의 뻘건 卍자가 십자가의 불빛을 잠식하고

노래방 포차의 하트 모양이 그 뻘건 卍자를 다시 잠식한 창밖 풍경을 찍은 건 새벽 세시가 넘어서였던 거다.

열네살의 내가 녀석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어떻게 같고 또 달라보이는지,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술이 더 취하는지 어지럼증도 나고 해서였던 거 같다. 담아두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언젠가 쓰고 역겹던 레몬소주 피처를 하나 마시며 인상쓰던 녀석들이었는데, 그보다 쓰고

힘든 경험들이 자연스레 쌓인 탓일까. 소주는 헛개나무를 담궈둔 것처럼 밍숭맹숭, 술술 넘어가고 있었다.

그새 한 녀석은 6년을 만난 여자와 파혼을 했다고 했고, 다른 녀석은 결혼을 생각하던 여자와 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 나는, 니 녀석들 결혼식에 못 가보나 했더만 잘 됐네, 라고 말해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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