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점심마다 짬을 내어 피아노 학원을 다닌지도 어언 3개월, 이제 슬슬 새끼손가락에도 힘이 들어가고 어렸을 적

배웠던 것들이 몸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질러버렸다. 피아노. CASIO의 PX320, 가뜩이나 책으로 가득차서

좁은 방에 뭔가를 더 들이는 게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멜로디 악기를 쭉 배우고 싶단 생각에 중고로 질렀다.

(셔터속도 15 sec, 조리개 F/29.0, ISO 800)

그리고 틈날 때마다 맹연습 중.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날이나, 늦게 들어가더라도 괜히 술이 땡기는 날이면 예전처럼

혼자 술을 홀짝이는 대신 피아노 커버를 벗기고 이것저것 치고 있다. 초딩 때 쳤던 정규과정에 따르자면 모차르트

연습곡 번호 5번이나 7번을 치는 수준에까지는 돌아왔는데, 굳이 그 레파토리 따르지 않고 치고 싶은 곡들 치려고

지금은 유키 구라모토의 'ROMANCE'와 야니의 'ONE MAN'S DREAM'을 주로 연습하는 중.

(셔터속도 5 sec, 조리개 F/11.0, ISO 100)

술을 혼자 마시거나 하진 않는다고 말은 했지만, 엊그제부터는 집에서 위스키나 꼬냑 한 잔 따라두고 향이 잔잔하게

퍼지기를 기다리며 두어번 곡을 연습하는 재미에 눈을 떠 버렸다. 비틀비틀 건반 위를 허우적대다가 보면 어느 순간

황금빛 알콜의 짙고 끈적한 향이 음표처럼 방안을 떠도는 거다.

(셔터속도 8 sec, 조리개 F/32.0, ISO 1600)

우야튼 그리하여, 정확히 10월 6일에 업어온 피아노. 어느새 3주로 접어들고 있지만 피아노를 향한 열정은 식을 줄을

모른다. (심지어 이름도 지어줘버렸다. '나넬', 모짜르트의 누나이자 숨겨진 천재, 그리고 최근 영화로도 개봉된 그녀의 이름)

두고 봐야겠지만 어느 정도 부끄럽지 않은 실력이 되었다 싶으면 동영상 녹화를 해서 여기에 하나씩 악보와 함께

올려볼까 싶기도 하고. (셔터속도 1/25sec, 조리개 F/3.5, ISO 800)


아, 그리고 악기 사진 올린 김에 겸겸. 회사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우기 시작한 알토 색소폰을 불고 있는 사진도.

2년 가까이 배웠지만 주중에 한번 잠깐 배우고 잠깐 연습한 거여서 아쉬운 점이 많다.

2년 동안 불면서 그래도, 아저씨들의 뽕삘 대신 근사한 재즈삘의 엇박을 조금은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길고 이쁜 동그라미를 그리며 호흡을 내뿜도록 좀더 가다듬게 되었다는 건 앞으로도 큰 재산이 될 듯.

물론 그 '재즈삘의 엇박' 감각은 정박 클래식 악보를 펼치고 피아노 연습을 하면서 한참 충돌하더니 지금은

어디갔는가 모르겠다. 아마도 안드로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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