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외포리 외포선착장에서 카페리를 타고 십분. 그렇게 도착하는 석모도는 생각보다 꽤나 큰 섬인데다가 나름

'산'이라 이름붙은 야트막한 야산들도 불쑥불쑥 솟아 있는 거다. 그 중 하나, 200여미터의 높이로 솟아 있는 봉긋한

낙가산에 기댄 보문사란 절을 찾았다.

석모도는 서울이랑 가까우면서도 배를 타고 나간다는 느낌 덕인지 예전부터 몇 차례 놀러왔던 곳이다. 대학생 때는

훌쩍 섭을 째고는 혼자 놀러 와보기도 했었고, 언젠가의 연말 굉장히 춥던 날에 오기도 했었고. 보문사는 그렇게

벌써 두번째, 그때나 지금이나 하늘로 곧추솟은 이 소나무들이 보문사의 첫인상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간당간당 넘어갈라는 시기, 축축해진 낙엽이 길을 온통 덮었고, 그 사이로 탑처럼 솟아있는 건

사람들이 보문사에 내려놓고 가는 소원 한토막들. 비가 올 거라던 일기예보는 틀렸지만 공기는 꽤나 촉촉했다.

보문사는 양양의 낙산사와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해상 관음 기도도량이라고 한다. 무려 신라시대로

거슬러올라가는 천오백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도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매번 올 때마다

무언가를 간절히 간구하는 불자들의 행렬이 결코 적지 않았었던 거 같다. 당장 이번에 찾았을 때만 해도 수능시험이

끝나고 좋은 대학에 가게 해달라는 어머니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보문사를 특히 유명하게 만든 건 저 위로 보이는 마애관음좌상과 앞쪽의 석실 덕분이다. 마애관음좌상을 보려면

근 500여개의 계단을 올라 저 위로 올라야 하니 일단은 차치하고, 석실부터 꼼꼼히 살펴보기로 했다.

보문사 석실,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석굴사원의 하나라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정말 석굴암 말고 또 석굴을 파고 조성된

사원을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이 안에는 전부 스물두분의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는데 제법 넓찍한 석실 내부에서 스님이

두드리는 목탁소리가 둥그렇고 무지근한 파장을 그리며 울려퍼졌다. 천장에는 온통 연등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는데

왠지 생일파티때 헬륨가스를 잔뜩 불어넣은 풍선들을 천장에 빼곡하도록 불어올린 그런 분위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 보문사 석실(안내판 참조) :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처음 건립하고 조선 순조 12년(1812)에 다시 고쳐지은 석굴사원이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홍예문을 만들고, 동굴 안에 불상들을 모셔 놓은 감실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보살과 나한상을 모셨다. 이들 석불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어떤 어부가

고기잡이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꿈에서 본대로 모셨더니 부처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보문사 석실 앞에 세워져있던 잘 생긴 향나무. 나무둥치가 바로 선 게 아니라 뭔가 구불텅하게 두어번 휜 것이

마치 용틀임하는 모양을 닮은 거 같기도 하다. 향나무의 생김이 범상치 않아 그런지 향나무를 둘러안고 있는

대리석들 위에도 꼬마스님들이나 부처님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으셨다.


보문사의 본당인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해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삼성각이,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마애관음좌상으로 가는

길이 있다. 몰랐는데 한국에 관음성지로 지정되었다는 서른세곳의 성지 중에서 첫번째로 손꼽힌 곳이 바로 이곳,

보문사라는 표지가 붙어있었다. 그냥 서울에서 가까운 바람쐬기 좋은 곳,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석실도 살펴보고

보문사 구석구석 살펴보다보니 생각이 바뀐다. 등잔밑이 어둡다, 는 속담이 자꾸 생각나고 있었다.

그렇게 이전에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보문사의 성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던 중 쐐기를 박은 건 바로 이 와불상.

커다란 와불이 법당 하나의 끝에서 끝까지 머리에서 발까지 쭉 몸을 뉘이시곤 누워 계셨다. 조성된지 얼마 되지 않은건지

또렷한 단청무늬와 사려깊은 조명들이 부처님의 얼굴에 떨어졌고, 앞에는 공양된 쌀과 향과 초들이 놓여있었다.

해가 스멀스멀 기우는가 싶더니, 어느순간 확 어두워져 버렸다. 마애관음좌상을 보러 올라갔다가 황급히 내려와보니

그새 보문사의 풍경이 확 바뀌어 있었다. 기와들을 가지런히 쌓아올려 만들어둔 야트막한 담장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와

생선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퍼런 물이 짙어져가다가 까무룩 시커멓게 변해버리는 하늘 아래 기와지붕은 나름의

음영을 드러내며 운치를 더했다.

저녁 예불 시간이 되었는지 스님 두분이 큰북을 두들기러 나오셨다. 삽시간에 어두워져버린 풍경들을 뒤로 한채

촛농처럼 아래로만 흘러내리는 불빛 몇 개가 스님의 민머리 위에서 잠시 반짝거리다가 흘러내렸다.

이제 슬슬 가볼 참이었다. 석모도를 뜨는 배는 매시 정시와 30분, 그렇게 30분 간격으로 있다 했으니 지금 움직이면

딱 맞춰서 돌아갈 수 있을 듯 했다. 보문사에 오를 때는 경사가 워낙 급한 오르막이라 힘들었는데, 내려오면서는

차라리 오르막길이 낫다 싶었다. 자꾸 발걸음에 가속이 붙는 게 누가 뒤에서 밀치는 거 같기도 하고, 하여 그저

조심스럽게 내려오는 데에만 집중했다. 한걸음한걸음, 보문사의 관음보살을 뵙고 돌아오는 길은 그렇게 한걸음씩

새기면서 돌아올 길이었다.

석모도 들어올 때도 엄청나게 차들이 많아서 자못 당황했었는데, 사방이 이렇게 꺼뭇꺼뭇해진 시간이 되니 그렇게

들어온 차들이 전부 나가겠다고 꼬리에 꼬리를 문 게 그 붉고 노란 불빛들도 볼 만하다. 평일엔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배라고 했지만, 승객들이 늘어나는 공휴일이나 무슨 날에는 그냥 몇 대의 배가 쉼없이 움직이는 거 같다. 들어올 때도

생각보다 금방 차들의 행렬이 줄어들더니 나갈 때도 생각보다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참 가까운 곳,

가까운 곳에 이렇게 영험하고 오랜 사찰이 있는 줄도 모르고 먼 곳만 보았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 인천관광공사에서 컨텐츠 제작에 필요한 지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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