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왓으로 향하는 길, 며칠째 들어서는 길목이라 낯설지 않은 그 길에 노란색 풍선이 떴다. 앙코르 왓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다면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그렇지만 또 달리 생각하면, 이미 세계의 이름난

유적들의 전경은 눈에 많이 익숙해져 있는 거다. 그것들을 실감하기 위한 첩경은 그 전체적인 그림에 세세한

자신만의 디테일을 새겨 넣는 것,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며 세세한 부분들을 가슴에 담는 것이라 생각한다.

앙코르 왓에 들어서려면 무려 이백여 미터에 달하는 해자 위에 놓인 한 줄기 참배로를 지나야 한다. 바닥에

깔린 포석들이 불규칙한 듯 하면서도 잘 짜맞춰진 채 서쪽에서 동쪽으로, 그렇게 천년을 버티고 있었다.

참배로 가운데, 이를테면 중앙선 같은 위치 왼쪽으로는 살짝 돌들이 일어서있긴 했지만 유독 그곳만 무너진 건

뭔가 이유가 있어보일 만큼, 다른 곳의 포석들은 탄탄하게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쩌면 중앙선 왼쪽과

오른쪽의 건축 연대가 다르거나 건축 책임자가 다를지도 모르겠다.

참배로 옆으로 보이는 해자, 그리고 무성한 정글의 수풀. 해자는 방어의 목적으로 건설되기도 했지만 이 사원,

앙코르 왓에서 행해지는 의례로 참석하기 전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기 위한 정화의 공간이기도 했다고 한다.

더러운 진흙속에서 싹을 틔워 미끄덩대는 녹조류 가득한 연못물을 헤치고 나와 봉긋 피워올려지는 연꽃봉오리.

게다가 아침에 꽃잎을 열고 저녁이 되면 꽃봉오리를 다시 닫는 그 모양이 세계의 시작과 끝을 상징한다고

여겼댄다. 앙코르 왓의 연꽃봉오리 모양 사원보고 여봐라는 듯한 진홍빛 연꽃.

해자 안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공간이 열린다. 예전에 살던 곳 근처 올림픽공원이 1kmX1km의 사이즈였다고

하는데, 이건 그보다 더 크다. 동서로 1.5km, 남북으로 1.3km. 그 공간이 오롯이 앙코르 왓을 위해 바쳐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앙코르 왓은 비슈누를 위한 힌두교 사원이니까, 비슈누에게 바쳐진 셈이다.

아침에 들어서니 태양이 스물대며 떠오르는 걸 바라보며, 동쪽을 향해 걸어야 했다. 구름이 슬쩍슬쩍 태양을

가릴 때마다 격하게 달라지는 빛의 농밀함.

앙코르 왓은 무려 37년 동안 지어진 사원이라고 한다. '왓'은 불교 사원을 뜻하는 단어로, 애초에는 단순히

'앙코르'라고 불렸다고 하며 왕궁이자 사원이자 도시의 역할을 겸했다고 한다. 비록 목조로 지어졌을 왕궁과

가옥은 사라져버렸지만 약 2만명이 거주했던 도시의 분위기는 얼핏 상상해 볼 수 있다. 아직 조금은 이른

시간임에도 바글대기 시작하는 여행객들.

앙코르 왓은 단순히 사원 하나가 아니라 도서관, 연못 등의 각종 '부대시설'을 포함한 공간이다. 참배로를 따라

가는 길 좌우에 포진해 있는 신비한 느낌의 도서관. 건물이 저렇게 '꼬질꼬질'해지기 전에는 얼마나 이뻤을까

싶을 정도로, 뭐랄까 다보탑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언뜻언뜻 비치는 것 같다.

도서관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둘러보니 내부는 너무 단촐하다. 장식도 없고 담백해서, 문밖 풍경에 눈에 간다.

앙코르 왓 중앙성소를 바라본 사진들. 구름이 두껍게 내려앉았다가도 깜빡했다는 듯 금세 고개를 내미는 햇살

덕분에 앙코르 왓의 실루엣이 선명하다.

앙코르 왓은-물론 다른 힌두교사원들도 그렇지만-좀더 선명한 피라밋 구조를 느낄 수 있다. 중앙으로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한 층씩 고도가 올라가는 거다. 힌두신들이 산다는 메루산, 그 세계 자체를 지상에 구현해 놓으려는

의지가 담겼지 않을까, 사방에서 사원을 수호하고 있는 동물상들.

본격적으로 사원 내부로 들어서기 직전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아직 해가 본격적으로 성내기 전이라 그다지

힘들진 않았지만, 뙤약볕이 내리쬐는 정오쯤 되면 그늘이 귀한 꽤나 고생스런 길이 될 거 같다.

사원의 북서쪽 귀퉁이, 꽤나 많은 여행객들이 사원 내부로 들어섰는데 워낙 큰 공간에 풀려서 그런지

다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연밥무늬 창살은, 외부로부터의 가혹한 햇살을 막고 내부의 습기를 밖으로 원활히 빼내는데 적합한

형태로 고안된 것이라고 한다. 그에 더해 안에서는 밖을 잘 볼 수 있지만 밖에선 안을 잘 볼 수 없단

점도 고려된 게 아닐까 싶다.

입구에서부터 건물 내부를 휘휘 도는 회랑이 시작하는 지점, 두 명의 여신이 양쪽을 지키고 서있었다.

근데 왜 저렇게 가슴과 코가 맨들맨들 닳아버린 거지, 여기도 뭔가 저런 데를 부비부비하며 소원을 빌면 애기가

생긴다거나, 남자아이를 잉태한다거나, 로또 대박이 될 거라고 믿는 분위기인가.

원래 여기는 물이 저만큼 차 있어서 목욕재계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를테면 앞선 해자에서

'상것'들과 함께 몸을 섞기 싫은 '높은분'들을 위한 VIP용 욕탕이랄까.

오랜 연원의 유적들을 보면 늘 돌빛깔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잊기 쉽지만, 사실은 당대의 모습은 꽤나 화려한

채색과 치장이 되어있었던 게 대부분일 거다. 이집트의 피라밋이나 오벨리스크, 상형문자 가득한 사원들도

사실 굉장히 현란하고 화려한 아프리카풍의 색감이 가득했었지만 전부 씻겨지고 벗겨지고. 여기 역시 마찬가지

채색의 흔적만 아스라히 남아있었다.

반띠아이 쓰레이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정교한 문양들, 각진 모서리가 여전히 쫑긋 서있는 게 신기하다.

중앙사원의 턱밑에서. 아쉽게도 앙코르왓의 최중심부에 서있는 중앙성소에는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무려 70도에 이른다는 가파른 계단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인간이 아닌 신을 위한 계단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이라고 저런 계단을 잘 오르리란 보장은 없을 텐데. '신성'이 꼭 가파른 계단 오르기 따위로 증명될

건 아니겠지만, 인간을 초월한 존재를 드러내는 참신한 기제인 거 같기도 하다. (다른 식으로 신적인 걸 어떻게

증명하고 나타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꽤나 골치아픈 문제인 거 같다.)

중앙사원을 바라보며 둘레를 한바퀴 탑돌이하듯 돌아 보았다. 돌로 반듯하게 다져진 바닥, 돌로 만들어 세워진

벽, 돌로 만들어 끼워진 창, 그리고 돌로 만들어 올려진 지붕과 장식들까지. 온통 돌이다.

중앙사원에 있는 탑들마다 사받으로 뻗은 계단이 있지만, 서쪽으로 향한 계단들은 약간씩 경사가 완만하다고.

사람들이 탑에 오르내리려면 서쪽 계단으로만 다녔다고 한다.

한쪽 벽에 조각된 압사라 댄스를 추고 있는 여신들. 딱히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듯한 분방한 자세와 표정이 딱

맘에 들었다.

앙코르 왓은 항상 어딘가 조금씩 보수 중이라고 한다. 그래도 전체 그림을 망칠만큼 흉하게 넓은 부위를

덮고 보수 중이거나 탁 튀는 색의 휘장을 둘러놓고 하는 게 아니어서 별로 거슬리지 않았다. 아마 그 때문에

중앙사원 내부로 들어가는 게 금지되었던 것 같지만, 이 정도 거리를 두고 보는 것도 충분히 좋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잘 다듬지도 않은 돌들을 그냥 무질서하게 아무렇게나 쌓아둔 듯한 중앙사원의 탑 꼭대기.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봉긋한 곡선이 아름답기도 하고, 삐쭉삐쭉 솟은 날카로운 돌의 모서리조차 잘 안배된

것처럼 보인다. 중앙사원탑 위에 짧막하니 올라 있는 저건 현대에 들어와 보완한 피뢰침인 걸까.

아침에 앙코르왓으로 오면서 보았던 노랑색 풍선, 이제 꽤나 높이 올라섰다. 아니, 이미 몇 차례 뜨고 내리기를

되풀이했을 거다. 저 위에서는 이 오돌토돌한 질감이 또 어떻게 느껴졌을까, 궁금해졌다.

차츰 햇살이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사원 내부는 마치 동굴 내부에 들어온 양 시원하고 약간의 촉촉한

습기마저 느껴졌던 것 같다. 어디 바람 잘 불고 그늘진 곳을 찾아 잠시 쉬어 가기에 딱 좋은 타이밍.

앉아서도 계속 두리번두리번, 아름다운 사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뭐라더라, 앙코르 왓의 도면을 그리려면

슈퍼 컴퓨터로도 삼년이 걸린다던가, 그런 식의 '선정적'인 이야기는 그다지 믿기지도 않고 의미도 없지만

굉장히 세밀하고 구석구석 아름다운 사원인 건 실감했다.

문득, 창 너머에서 압사라 여신들이 나타났다. 회색빛 돌벽에 퀴퀴한 색감으로 조각되어 있던 그녀들이 입고

있던 옷은 기실 저런 화려한 색감과 금빛 장식이 반짝이는 거였을 터. 여행객들이 얼마인지 모를 돈을 내고

그녀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어서, 살짝 무임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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