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도 쓰레기매립장이 난지 퍼블릭 골프장으로의 변신을 거쳐 난지 하늘공원으로 조성된 거라고만 알고 있었다.

근데 알고 보니 난지 하늘공원, 평화공원,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 노을공원 이렇게 다섯개가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주변에 위치한 5대공원이었던 것. 전투적으로 하루 날잡아 전부를 돌아보는 일 따위 하지 않고, 그냥 조금조금

돌아보기로 하고 우선 난지천공원부터 돌아보았다.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 '가을방학'의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듣고

싶어지던 어느 가을날.





 

 

 






 

 








언젠가, 술에 잔뜩 취해서 조금은 울었던 다음날.

머릿속이 잔뜩 복잡하던 전날과는 달리, 머리를 떼어서 흐르는 찬물에 좀 담궈놓았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

오로지 그 생각 하나밖에는 남아있지 않던 날.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가사만 계속해서 되뇌이다 못해 장문의 네톤 대화명으로 적어두었던,

영혼이 절룩거리다 못해 절뚝거렸던 날.


그러고 보면, 다짜고짜 '절룩'이라고 써보냈더니 자기가 미안하다던 친구도 참.

이 캡쳐가 들어있던 폴더명도 참. "새새새새새새새새새새새새새새새새새".

알집에서 새폴더를 만들고 만들고 만들면 까마귀가 나오고 지빠귀가 나오고 해오라기가 나오다간

급기야 새, 새새, 새새새가 나온다는 걸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2010년 4월의 어느날.







첫날

8시 서울 출발

12시 담양 도착

12-1시 점심 ; 담양한우


1시 죽녹원

3시반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 by 자전거

4시 관방제림 by 자전거

5-6시 저녁 ; 대통밥 & 떡갈비


둘째날

 

10시 삼지천마을(슬로우시티) 도착


(11-12시 점심 ; 국밥촌)

2시 소쇄원 도착

4시 담양 출발

 

 

 

 

 

 

 




한번 작정하고 카메라를 들고 빌딩 옥상쯤에 오른 날. 사실 옥상은 아니고 꼭대기층이었지만. 아무리

유리창을 말갛게 닦았다 하더라도 완벽하게 말끔할 수는 없어서 약간의 잡티가 거슬리긴 하지만

이정도면 그래도 중간에 유리창 같은 방해물 티 많이 안나는 '어느 가을날의 하늘, 그리고 한강'이다.

여기서 보면 강남과 강북의 스카이라인이 참 다른 거 같다. 한강변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아파트숲이야

공히 같다지만, 강남 테헤란로와 강남대로를 따라 달리는 빌딩들의 높이는 강북에 비해 훨씬 월등한 거다.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보이는 거대한 빌딩들의 거대하고도 짙은 그림자들. 저 아래 인도에서 걷는

사람들은 미처 의식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크고 단호한, 칼같이 끊어지는 빌딩 그늘들이다.







보송보송하고 달달한 바람이 파랗게 쨍한 하늘 저편에서부터 시원~하게 불어오는 계절, 가을.

가을은 그런 계절이어야 하는데 아침부터 비가 오더니 공기가 무겁다. 하늘은 온통 꽉 막히고 무거운

느낌의 회잿빛 구름이 빈틈없이 드리웠고, 때문인지 답답하고 음침한 공기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기분이 영 회복되지를 않아서. 며칠전 어느 대학 캠퍼스에서 찍은 가을 풍경 사진 몇 장.


아, 정말 얼마 되도 않는 이 좋은 계절, 좋은 날에 비를 흩뿌리는 건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이다.

갈래갈래 갈린 길, 양쪽으로 갈라지는 길을 표시하는 아스팔트 위 하얀 페인트가 꼭 뿔모양 머리띠를 쓴

와이(y)자 같이 생겼다. 쟤도 저러고 한일전 축구 응원가서 '일본 대지진 축하한다' 따위 헛짓하는 건 아니겠지.

이런 하늘이 보고 싶다구. 날씨 어쩔 거냐능.

riding on '가을'. 가을ing.




강원도 정선, 그 근방에 있는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조그마한 동네인 정선에 슬쩍 그 산자락 하나를

얹어놓은 것만 같은데, 실은 강원도란 데가 온통 산자락이 구불렁구불렁한 곳인지라 어디서부터 어디가

무슨 산인지 딱 끊어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거다. 여하간 그 이름모를 산자락 앞에 바싹 머리를 디민

커다란 해바라기 하나. 파란 하늘도 좋고 샛노란 해바라기 꽃잎도 좋고.

정선의 메인로드라고 해봐야 이삼층을 못 넘는 야트막한 건물들이 채 백여미터나 될까 싶은 왕복 4차선

찻길을 호위하고 있던 그 호젓하던 길, 길가에 무성하게 자라난 야생국화꽃이 지나는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춰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정선역까지 기차를 타고 왔던 게..아마도 2001년쯤, 군대 가기 전이었던가. 그때 역사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주변 풍경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라면 아무 기억도 없다. 그저 그 때 강원 카지노랜드와 민둥산을 들러서

눈밭에서 잔뜩 뒹굴고는 정상에 올라 꽁꽁 언 캔맥주를 마셨었던 기억 뿐.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하늘. 새파랗고 새하얗고. 정말 너무나 좋은 9월의 하늘.

땅.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지도 않는 하늘과는 달리, 땅에는 약한 것들 투성이다. 뽑고, 꺽고, 밟고,

심지어 만지는 손길에도 치명적일 수 있는 여린 생명들.

이렇게 여린 빛깔을 여지껏 품고 있는 거다. 빛을 받아 문득 투명해진 연두빛의 잎사귀들, 저런 여리고

약한 생명 앞에선 손끝에서 가위라도 절그럭대는 것처럼 조심조심 몸가짐을 여미는 게 인지상정.

휴양림 내에서 크고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는 산책로 옆에 뒤집어져 있는 쓰레기통, 그 첫 글자인

'쓰'의 쌍시옷이 왠지 방긋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연상시킨다.

본격, 9월의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위에 펼쳐진 하늘. 그냥 아무 말없이 흘러가는 구름만 바라보고 있어도

하나도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은 날이 있는데, 딱 그런 날의 하늘이었다.

그래서 정말, 휴양림 어디쯤엔가 철푸덕 자리 깔고 앉아서는 하늘만 보다가 돌아나왔다. 숲속을 떠나도

하늘은 따라와서, 정선의 고즈넉한 길가 위에나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 위에도 파랗고 하얗고. 문득

스머프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우야튼,


저렇게 동글동글 수제비처럼 떼어내진 구름떼가 바람에 밀려가고, 그 훨씬 위에 칠해진 투명한 파랑색 하늘이

어느순간 일렁인다 싶은 환상에 빠질 즈음이면, 누군가 기분좋게 머릿카락을 쓸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정선 시내를 산책하다가 만난 풍경들 몇 개. 바리케이드로 쓰이는 노랗고 까만 철제구조물에 비닐을

씌워서는 고추를 말리는, 아아 나른하다 나른해, 라고 고추들이 비틀리며 중얼거리는 거 같다.

쌍꺼풀이 엄청나게 짙던 강아지 한마리. 쌍꺼풀도 길고 속눈썹도 길어서 왠지 눈매가 낙타를 연상시킨다. 


'자전거포'라고 어렸을 때 불렀던 거 같은데 요새야 엔간하면 전부 무슨무슨 샵, 으로 바뀌었다지만. 아마

그 나이를 따지자면, 바이크샵<자전거포<자전차 정도 되지 않을까.

벌써 어디인가는 연탄불을 지피고 있는 건가, 근처에 연탄불 고기집 같은 곳이 안 보이는 주택가였으니

아무래도 난방용으로 쓴 건가 싶다. 아니면 무슨 온실같은 곳에서 공기를 덥혀주느라 태웠다거나.

어느 골목길, 아이들이 길가에서 공을 차며 자기들 눈에만 보이는 골대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색색의 플라스틱 우유상자를 화분삼아. 구멍이 숭숭 난게 공기 통하기도 좋겠고, 사방으로 나 있는

손잡이 덕에 옮기기도 편하겠고, 여러 개 저렇게 배열해놔도 깔끔하게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고.

전깃줄 위에 앉아서 쫑긋쫑긋 머리를 사방으로 돌려대는 새 한마리. 저렇게 새들이 머리를 마구 돌려대며

사방을 경계하는 걸 보면, 꼬깃꼬깃 돌려대다가 뚝 하고 끊어져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슬몃 들기도 한다.

여하간, 또다시 가슴을 둥둥둥 울려대는 9월의 하늘. 여행가고 싶다..






안 올 거 같더니, 그래도 가을이 온다. 그렇게 2011년이 간다.

사계절을 다 탄다지만 아무래도 가을은 좀더 강한 흔적을 남긴다.




하늘을 이리저리 내키는대로 구획하고 있던 까맣고 강단진 나뭇가지들이 까칠해 보였지만,

그네들이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주홍빛의 살짝 길쭉하고 둥근 열매는 마냥 풍만해보였다.

장대가 닿기 쉬운 가지 아랫자락은 몽창 털린 채, 바짝 손들고 선 나무 꼭대기층에나

듬성듬성 남은 채 대책없이 매달려있던 감들. 정확히 말하자면 감 중에서도 대봉시들이다.

감을 딴다는 것, 감이 아니라도 나무에 달린 뭔가를 딴다는 작업을 어떻게 하는지는 사실

평소에 별로 생각을 해볼 일도 아니고 상상을 해본 적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나무

작대기 끝에 천으로 대강 기워진 주머니를 달아서는 하나씩-좀 숙달되면 세네개씩-따는 것

이상 더 좋은 방법이 없단 건 조금은 놀랍달까. 더 편하고 더 빠른 방법이 없다니.

감나무를 기어오르기란 생각보다 수월한 게 디딜만한 어깨를 여기저기에 마련해둔 거다.

나무 높이의 반절만 기어올라도 잔뜩 달고 있는 묵직한 대봉시들의 무게로 추욱축 늘어진

가지를 손쉽게 털 수 있다. 여차하면 장대 대신 손만 뻗어도 될 만큼 눈앞에 매달린 녀석들.

감나무에 달린 건 감뿐 아니라 지저분하게 말라붙은 감잎새들도 있어서, 사진 찍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렇게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를 찍으려니 잎사귀에 이리저리 뻗어나간

수목에 뭔가 너무 지저분해 보이는 거다. 그렇지만 거의 감나무와 밤나무만으로 이루어진

이 산에서 정말 가을철 한 때는 온통 감빛 열매가 지천에 매달린 풍경은 꼭 정제되고 아름다운

풍경만은 아닌 게 사실이니까.

올해는 태풍도 여러 번 다녀가고, 감산도 제대로 관리를 안 해서 여느 해보다 감이 조금 달린

편이라고 했지만 딱히 작년이나 이전의 풍경을 못 봤으니 이 자체로 충분히 감탄하고 말았다.

저렇게 얇고 허약한 가지 끄트머리에 저토록 씨알이 굵고 무거운 열매를 우글우글하게

피워올린다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 그야말로 일종의 기적인 듯 싶다.

보다 보면 나무 끝에 이렇게 이쁜 엉덩이처럼 두개가 톡 붙어서 몽실몽실 커나간 녀석들도

있는가 하면, 브이자로 갈라져 자라나간 가지 양끝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듯 마주보며 커나간

녀석들도 있었다. 저런 녀석들은 장대를 요리조리 움직여 한큐에 담아내는 재미도 있지만

가지째 잘 꺽어내서 어딘가 걸어둔채 오늘의 가을을 기억하는 재미가 더 쏠쏠할 듯.

장대로 훑어낸 대봉시들은 꼭지 끝에 남아있는 나뭇가지를 떼어내고 포대에 차곡차곡 담는다.

어떻게 보면 출산이랑 같다. 나뭇가지로 연결되어 한몸이던 나무와 열매를 억지로 떼어내선

탯줄과도 같았을 '꼬다리'를 잘 정돈하고 나면 저렇게 배꼽자국이 거칠게 남는다. 이녀석들,

포대 안에서 응애응애 들리지 않는 울음을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만 감나무 역시 마찬가지다. 감이 익을수록, 조금씩 커질수록

감나무 가지 역시 고개를 숙여간다. 급기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툭 떨궈지고 마는 시선.




@ 경남 하동. 11월말.


알고 당하나 모르고 당하나, 결과가 같다면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 건지도 모른다.


어줍잖지만 사회과학도입네, 지식인입네, 하며 읽어내린 글들과 귀담았던 풍월들은 조금이나마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온갖 것으로부터 씌워진 색안경들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요새는 사실 차라리 몰랐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전쟁을 외치는 보통 사람들의 광기나, 멀쩡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미혹케 만드는 정치인들이나 똑같다. 사람을 구타하고 돈을 던져주는 재벌2세의 행동이나,

힘없고 놀림받는 딴따라 몇 명을 물고 뜯어 '정의'를 구현한다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이토록

야만적이던 시절이 또 있었을까 싶다.


차라리 흑백이 뚜렷하던 시기가 조금은 더 인간성과 지성이 한켠에나마 온존했을지 모른다.

민주주의가 하향 평준화인 양 받아들여진 시대, 자신보다 나은 인간과 지성을 존중하지 않는

시대, 경쟁적 나르시시즘에 빠진 채 모든 걸 빈정거리지만 실상 모든 것에 배신당하는 시대.


그냥 문득, 내가 애초 사회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사회과학서적들을 읽어대지 않았다면,

조금이나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조금은 덜 피곤하게 살지 않았을까 싶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더 해서 학자나 이론가가 될 것도 아니고 그저 나와 내 주위 사람들 챙기고

보듬기도 바쁜데 왠 정치인, 경제인 나부랭이들에 거대 담론들을.


인간들은 습관처럼 미래를 말하지만 마냥 쳇바퀴만 돌고 있거나 혹은 퇴보하는 건 아닐까.

심지어 지금은 수백년 전처럼 세상으로부터 숨어들어갈 한뼘의 땅조차 남지 않은 거다.

무지무지하게 시니컬해져서, 어차피 세상은 그들의 것이니 조때로 하세요, 이렇게 치우고

난 전부 몰라라 하고 싶어졌다.




아직 해가 굼실굼실 지평선에서 게으름을 피우던 때,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시야를 채운 곳에

도착했다. 시화호 갈대습지. 만지면 청량하게 바스락거릴 듯한 갈빛 갈대가 눈 바로 앞에서부터

저 너머 산부리들로 끊어지는 곳까지 가득 차 있었다.

요새 날씨가 좀 춥긴 했으니 별로 놀랄 일도 아니지만, 갈대들을 잔뜩 품고 있는 습지의 수면이

살짝 얼어붙었다. 거친 선으로 굵게 그려진 크로키처럼 쭉쭉 뻗어나간 살얼음의 잔뼈들을 타고

햇살이 와작와작 부서지는 듯.

시화호에 방파제를 쌓아 물의 흐름을 끊어놓은 뒤부터 물이 썩어들어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던 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다. 농업용지와 공업용지를 확보한다며 바다를 막고 땅을

메우는 간척사업 명분이었다지만, 결국 사업 전에 감안했던 득실계산과 실제 드러난 득실은

꽤나 큰 차이를 보이고 만 거니까. 그래도 이렇게 갈대습지를 조성하고 오염을 정화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결국 자연 생태계를 회복시키고 새들까지 불러오는 결과를 낳았다. 다행히도.

철새들의 시선을 피해 굳이 저런 조류관찰대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곳곳에 만들어져 있는

벤치와 쉼터에 잠시 앉기만 해도 사방에서 푸드덕거리는 소리, 꽥꽥거리는 소리, 어디선가

물을 움키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갈대만 가득한 줄 알았더니, 그 곳을 빌어 살아가는 것들이

정말 많구나 싶도록. 새들 뿐 아니라 고라니나 멧토끼, 족제비까지 종종 발견된다니 신기하다.

멀리서 볼 때는 그냥 갈빛이 빼곡해서 사람들이 걸어갈 길이나 제대로 나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곳곳에 길이 숨겨져 있었다. 아예 무슨 공원처럼 널찍하게 잘 조성된

흙길도 있었고, 어느새 살얼음이 전부 풀려버린 채 찰박거리는 습지 위로 만들어진 나무길도

있었고.

갈대 습지가 정말 생각보다 꽤나 넓어서, 설렁설렁한 걸음으로 한 바퀴 돌아본다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듯. 중간중간에 쉬고 멈춰서 구경하고 할 테니 세네시간은 족히 소요될 테니 반나절

데이트 코스로도 제격이겠다.

습지 중간중간에 T자 모양으로 서 있는 나무 등걸이나 섬처럼 쌓여있는 돌무더기들은 새들이

쉬어가라고 만들어둔 것이라 한다. 갈대숲만 이렇게 울창해도 새들이 올 텐데 이런 식으로

서비스까지 확실하니, 많은 새들이 이 곳을 찾아들어 한해에만 약 15만 마리가 날아드는 게

놀랄 일은 아니다. 새를 가장 많이 관찰할 수 있는 시기는 겨울철새들이 찾아오는 12월에서

2월 사이. 망원경과 조류도감, 인내심을 갖고 오면 온갖 잡새 구경이 가능하다고.

평일이고 아직은 이른 시간대라 그런지 사람이 새들보다도 훨씬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갈대숲 사이에서 어른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가을도 좋지만 눈을 흠뻑 이고 있는

겨울이라거나, 봄볕이 나른하게 내리쬐는 봄에도 좋을 거 같다. 여름에도 좋을 거 같긴 한데,

아무래도 습지니까 모기나 날벌레들이 많지 않을까 싶어서 조금 조심스럽고.

돌아나오는 길이 아쉬워서 계속 뒤를 돌아보며 나왔다. 나중에는 좀 더 넉넉하게 시간을 보내며

쉬다 가야지, 그리고 조류도감은 아니어도 망원경 정도는 챙겨줘야겠다, 따위 다짐들을 새기면서.

그리고 갈대. 끝에 소복하니 먼지털이개처럼 달려있는 보드라운 털뭉치가 따뜻해 보인다.

바람이 일면 갈대 끝에 엉켜있는 그 털뭉치가 민들레홀씨처럼 탁 깨어져서는 퍼져나가는 거

아닐까, 위태한 맘으로 지켜보았지만 의외로 단단히 붙어서는 바람보다 앞서 바람결을 그려냈다.





스스로에게 하루 가을방학을 내어주고 대부도 즈음에 풀어두었다. 어느 꼬부랑길을 앞에 둔

차도변에서 문득 마주한 교통표지판 하나를 보았지만, 그보다 더 눈에 들어온 건 표지판 아래

하늘거리는 갈대와 저 너머 헐벗은 나무 한 그루. 급커브길을 조심하라는 진지하고 열띤 낯빛의

표지판이 문득 푸근하고 너그러운 홍조를 띈 표정으로 바뀌며 가을에게 말해 준다.


조금 돌아가도 좋습니다. 그렇게 서둘러 떠날 필요 없다구요.

시화호갈대습지를 걷다가 만난 새빨간 열매들, 잎 한장 걸치지 않은 야트막하고 얄포름한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뭔가 풍선이 부풀어오르는 느낌으로 탱글거리는 열매들이 직선으로 쭉쭉 뻗고

날카로운, 그래서 조금은 거칠고 외로워 보이는 나무가지들을 사방에서 보듬어주는 것 같다.

벌레먹고 찢어진 나뭇잎이 한 장, 덩그마니 남아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가슴이 짠하다. 마침

오늘 수능을 치고 지난 12년의 교과과정을 한 큐에 검증받아야 하는 안쓰럽고 대견한 학생들을

볼 때 같은 느낌이랄까. 고생했어요, 토닥토닥 해주고 싶은 나뭇잎.

까치밥을 남겼구나,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감나무 한 그루에 딱 한 개 감을 남겨두었던 거다.

철벽수비라도 펼치듯 온통 하늘로 손을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 얼기설기 보이는 파란 하늘, 그리고

그 파란색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감빛 덩어리 하나.

국화일까, 무슨 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새 같은 쌀쌀한 날씨에 더해 황해의 바닷바람까지

버텨내며 이렇게 탐스런 꽃을 피워냈다는 게 대단하다. 화려한 색감이 남국의 뜨거운 태양을

연상시키면서도 어딘지 가을의 스산함을 채 숨기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바야흐로 한반도의 인류는 긴 겨울을 대비해 태양 에너지를 비축하는 중. 무청을 빨랫줄에 잔뜩

널어두고 햇빛을 충전하고 있다. 축축 늘어진 채 아삭하고 풋풋한 생기 대신 햇빛의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차곡차곡 쟁여두는, 가을이다.




@ 청남대

@ 헤이리

@ 헤이리

@ 경남 하동

@ 수원 화성

@ 서울대공원

@ 충북 보은

@ 충북 보은



여기저기 한옥마을이니 뭐니 하여 초가지붕과 기와지붕을 사이좋게 모아둔 공간이 꽤나 생기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세트장보다는 그럴 듯한 느낌이

덜하다. 민속촌 같은 컨셉은 조금 더 실생활에 가깝게 복원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일 테니 이쁘고

운치있게 보이기 위한, 그리고도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기 위한 세트장과는 목적부터가 다른 거다.

남양주에 있는 종합촬영소에는 19세기말 종로통을 재현해 둔 민속마을 세트장이 있었다. 기와지붕과

초가지붕이 좌우로 열지어 있는 이 골목이 인사동에 남아있는 피맛골의 예전 모습이었겠구나,

아무리 말로 백번 들어봐야 한번 이렇게 보는 것만 못하다. 머릿속에 과거 피맛골의 모습이

대번에 아로새겨졌다.

애초 오원 장승업의 생애를 다룬 영화 '취화선'의 세트장으로 마련된 이 곳은 이후 '천년학'이나

'왕의 남자', '스캔들', 심지어는 '다모'나 '해신'같은 드라마 세트장으로도 활용되었다고 한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 최대한 공간을 조금 차지하면서도 다양한 구도를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걸까, 아니면 정말 저 시대에 저렇게 기와집과 초가집이 바싹 붙어있었던 걸까.

세트장이라고는 하지만 건물들의 외관만 보면 다들 굉장히 번듯번듯하고 오래 묵어 보여서, 실제로

사용되던 건물들을 보존해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가만 살피면 기와 밑에 숨어있는 비닐이나

스티로폼 따위 현대의 건축 자재들이 살짝 드러나 있는 부분들도 있고, 열린 문짝 안으로 들여다본

내부는 좀체 사람손이 닿지 않은 싸늘한 기운만을 가득 품고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거의 조그마한 동네 하나를 만들어둔 규모의 세트장인지라, 안에서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어느 순간 몇몇 영화에서 접했던 조선 말기 한성의 풍경과 겹치면서 더욱 실감나더라는. 둥그스름한

초가지붕이 저 너머의 둥글둥글한 야산의 실루엣을 닮았다.

그리고 여기는 판문점 세트장, 판문점에서 실제 영화 촬영이 불가능하니까 이곳에 실물의 85% 규모

판문점 세트장을 마련했다고 한다. 판문점을 배경으로 해서 찍은 영화는 뭐니뭐니해도 JSA, 유명한

장면 속에 들어가 볼 수 있는 인형 두 개가 서있었다. 이병헌과 송강호의 얼굴 대신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저 안에 들어갔을 거다.

판문점 남측 사무소인 '자유의 집', 여기서 어떤 장면이 찍혔었는지는 좀체 기억이 안난다. 

그러고 보니 공동경비구역 JSA가 대체 언제적 작품인가 싶기도 하고, 그 중 한두장면이라도

기억에 남아있는 게 대단하지 싶기도 하고.

야외 세트장에서 실내의 영상지원관으로 내려가는 길, 영상지원관 내부에는 소품실, 의상실,

법정 세트장 등이 개방되어 있다고 해서 꽤 재미있을 거 같기도 했고, 생각보다 11월 중순의

날씨가 선뜩선뜩 서늘했던 탓에 발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반대편 벽면에는 무려 '포토존'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밭 한가운데

그려져 있었다. 마치 요정인 양 그 글자를 가린 채 화려한 나비 날개를 달고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이나 재미있어서 사람들의 대범한 포즈를 잠시 구경.

건물 안에는 지금 촬영이 진행중인 스튜디오도 있고 불이 꺼져 있는 스튜디오도 있고, '촬영중

조용히'라는 표지에 불이 켜진 스튜디오 안에서 무슨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 살짝

문을 돌려봤지만 열리지 않아 포기. 궁금증은 여전했지만.

국내에서 유일하다는 법원 세트장, 우리 나라 영화나 드라마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법원 장면일 텐데 그렇다면 그 장면들은 모두 여기서 찍혔다는 이야기 아닐까. 내부를 전후좌우,

심지어 위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천장이 휑하니 뚫려 있던 대법원 세트장의 법관석은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없이 모두들 한 번 앉아서 사진을 찍어보려 하는 명당 중 명당.

워낙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빠르다보니 조금 조악하게 느껴지는 몇몇 특수촬영 체험관을 지나고

영화의 풍부하고 실감나는 사운드를 더하는 폴리 음향을 직접 만들어보고 영화에 덧입혀보기도

하는 체험을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사실 처음에는 별다른 기대없이 조금 둘러보다가

금방 나와야지, 했는데 막상 들어가서 여기저기 세트장을 둘러보고 체험 같은 것들도 시간 맞춰

함께 해보고 그러다보니 반나절 가까이 지나버리고 말았던 것. 야외도 둘러보고 실내도 둘러보고,

날이 조금만 덜 추웠어도 좀더 야외 세트장을 둘러보고 싶었는데 살짝 아쉬웠다.




슬쩍 겨울로 넘어가려는 타이밍, 차가운 칼바람이 거침없이 한강변을 내달리던 팔당댐 근교에 섰다.

낙엽도 남김없이 떨어버린 채 한철 장사를 마무리하던 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뻗어 가을물을 만져보고

있었다.

주위 나무들은 온통 헐벗었는데, 이따금씩 툭 툭 소리내며 나뭇잎을 아깝다는 듯 뱉어내는 나무.

노란 빛으로 물들었던 나뭇잎들이 가장자리부터 갈빛으로 타들어가고 있었지만 좀처럼 그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여느 때보다도 더 추울 거라는 이번 겨울 소식에 겁먹었는지도 모른다.

팔당댐 근교에서 들렀던 곳은 '강마을 다람쥐'라는 이름의 도토리 음식 전문점. 음식점 안팎으로

귀여운 다람쥐들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었다. 현관 앞에서도 맨질한 코를 가진 두 마리가 바싹

붙어선 채 도토리를 달라는 듯 손을 내밀고 있었고.

따끈한 햇살이 내리쬐던 싸늘한 마당 귀퉁이에 세워진 우편함 안에도, 그리고 버섯으로 빼곡하던

어느 노쇠한 나무 등걸 위에도, 다람쥐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선 '내 도토리' 내놓으라며.

인상적이던 음식 두 종류, 참깨와 들깨가 아낌없이 뿌려졌던 맛깔나는 양념에다가 도토리가 많이

들어간 듯 쌉쌀하면서도 깔끔한 뒷맛의 도토리묵무침.

그리고 도토리전병. 완전 두툼하고 따뜻한 전병이 두부와 김치로 꽉찬 속을 단단하게 조이고선

김을 모락모락 내며 등장했는데 순식간에 무찔러 버리고 말았다. 그밖의 도토리로 만든 온면이나

도토리비빔밥같은, 도토리로 만들어진 온갖 음식들이 있으니 다람쥐들이 그렇게 떼로 달려들어

'내 도토리 내놔~!'라고 시끄럽게 굴 만 한 집이다. 아 배고파...ㅡㅜ



불꽃을 몇 초간이라도 응시해 본 사람이라면 마력과도 같이 눈길을 붙잡아 두는 그 마력에 저항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익히 알고 있을 거다. 새빨갛다 못해 하얗게 탈색되어 버린 듯한 불꽃이 낼름대며

불똥을 뱉어낼 즈음이면 머릿속에서 그 옛날 어둡고 눅눅하던 동굴에서 번갯불을 소중하게 간직했던

조상의 기억이 마구 분출되는 느낌인 거다.

느닷없이 추워진 날씨에 모닥불이 어찌나 반갑던지, 으레 모닥불과 쌍으로 떠오르기 마련인

은박지두른 고구마니 감자 따위는 한참이나 불곁을 지키고 나서야 생각이 났더랬다. 그 와중에도

불티는 사방으로 날리며 누군가의 패딩 점퍼, 누군가의 코트에 빵꾸를 내려는 듯 기세등등.

가을이라고 몇 번 찡얼대기도 전에 단풍잎들은 온통 미이라처럼 바싹 말라 오그라붙은 채

분분하게 떨어져버렸다. 모닥불은 낙엽들의 잔해와 꼿꼿한 나무등걸을 남김없이 살라먹으며

이제 다시 겨울이 왔음을 선포하고 있었다. 가을은 그야말로 낙엽 한 잎사귀 떨어지는 순간

끝나버리고 말았다.




@ 남양주, 봉쥬르.



@ 전주 한옥마을 등..


@ 제주, 섭지코지.




@ 서울대공원, '가을방학'의 '가을방학'이란 노래가 떠올랐던 낙엽길에서.



넌 어렸을 때부터 가을이 좋았었다고 말했지
여름도 겨울도 넌 싫었고
봄날이란 녀석도 도무지 네 맘 같진 않았었다며
하지만 가을만 방학이 없어
그게 너무 이상했었다며
어린 맘에 분했었다며 웃었지

넌 어렸을 때부터 네 인생은
절대 네가 좋아하는 걸 준 적이 없다고 했지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고 했지
떠나야 했다고 했지

넌 어렸을 때만큼 가을이 좋진 않다고 말했지
싫은 걸 참아내는 것만큼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맞바꾼 건 아닐까 싶다며
하지만 이맘때 하늘을 보며 그냥 멍하니 보고 있으면
왠지 좋은 날들이 올 것만 같아

처음 봤을 때부터 내 마음은
절대 너를 울리는 일 따윈 없게 하고 싶었어
정말 좋아하게 되었기에
절대 너를 버리는 일 따윈 없게 하고 싶었어

너무나도 늦어 모든 것들이

넌 익숙하다 했지 네 인생은
절대 네가 좋아하는 걸 준 적이 없다고 했지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고 했지
떠나야 헀다고 했지
흡사 이것은 신호등의 빨노초, 아니면 신호등을 따서 만든 '신호등' 사탕의 빨노초. 아마도 같은 호박일 텐데

이렇게 다른 색깔로 늙어버릴 수 있는 건지. 제각기 바람에 씻기고 빗물이 괴었던 풍상의 자국이야 매한가지라지만

늙고 나서 돌아본 색깔이 저렇게도 다르다.

이 녀석들이 그렇게 늙어버린 거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요렇게 셋이 쪼르르 이어 붙여놓은 건 분명

센스있고 다감하던 가게 주인아주머니의 작품일 거라 짐작해보며, 요리조리 사진을 찍어보는데 그다지 맘에

드는 구도가 안 나온다.

그냥, 그래도, 푸욱 맘놓고 늙어버린 저 녀석들을 보면 왠지 가을의 정취가 막 밀려오는 것 같고, 게다가

저렇게 제각기의 색깔로 지인생 마무리하는 듯한 모습도 보기 좋고. 곱게 늙을지어다, 우리도 이 정도는

곱게 늙지 않았는가베. 하고 말해주는 거 같기도 하다. 빨갛든 파랗든, 혹은 노랄지라도.





누굴까, 이렇게 여행 가방에 탑을 쌓아올리듯 옷가지들을 소복하니 쌓아두곤 뚜껑도 안 닫고 떠나버린 사람은.

헤이리에 차를 대고 나서 룰루랄라 발걸음을 옮기려다가 저 이쁘장한 분홍빛 클래식한 여행가방을 발견했다.


쏴아~ 하고 불어오는 바람소리도, 그 바람에 괜시리 마음흔들다 나부끼는 낙엽들의 춤사위도, 그리고 문득

서늘해진 가슴도, 점점이 하얀 빛이 새어드는 파랑 하늘도,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가을이다.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차로 돌아오니 가방은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왠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맛좀 보라지, 하는 표정으로 다짜고짜 여행가방을 싸짊어지고 여행을 떠나는 '불평분자' 아닐까 상상을 잠시.

머릿속에서 탁, 여행가방이 단호하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현실은...여행이 아니라 출장을 준비하고 있다능.)


@ 헤이리.

@ 올림픽공원.


때로는 말보다 그저 사진 몇 장으로 그치는 게 낫겠다 싶다. 어제의 하늘, 어제의 구름이 그랬다.








@ 강원도 어딘가.





@ 제주도.




@ 남이섬.

@ 제주도, 서귀포 인근.






故장자연이 카섹스신과 자살신에 등장한다며 마케팅을 펼쳐 다소 물의를 빚는 영화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 영화가 이 영화였는 줄은 모르고 봤다. 꽤 긴 러닝타임, 그녀의 카섹스와 그녀의 자살은 흐름을 받치는 꽤나

중요한 포인트였다고 생각했고, 아마 그녀의 분량을 덜어냈다면 영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겠다 싶었다. 비록

가고 없는 고인이 영화속에서 싱싱한 육체를 흔들며 신음소리를 내뱉고, 욕조 속에서 손목을 그은 채 죽어있다

해도, 그녀는 연기자로서 마지막 필모그래피를 해낸 거 아닐까. 마케팅에 의도적으로 동원한 측면이 있다면

그건 분명히 그녀의 죽음을 팔아 선전하는 거겠지만, 그녀의 자연스럽고 그럴 듯한 연기는 나무랄 데 없었다.


영화는 다소 가지가 많달까, 좀 많이 쳐냈어야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러닝타임도 길고, 너무 잡다한 상념과

너무 힘이 들어간 상징들이 즐비하다 싶어, 좀더 밀도있게 응집시켰어야 했다 싶은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꽤나 상류의 삶을 영위하는 30대 초반 세친구들이 보이는 현실적인 삶과 더불어, 장혁의 환상과 상상을

이미지화하여 스크린에 쏘아내면서 영화는 좀 종잡을 수 없이 흐르거나, 때로 관객의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던
 
거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 견디다 못해 나가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걸 테고.


'펜트하우스 코끼리'. 아마도 '펜트하우스'가 세 친구 그들의 부족할 것 없는 삶, 허영에 찬 삶을 상징한다면,

때로 구름 위에서 네다리를 휘젓고 혹은 벽면에서 3D 영상으로 나타나는 '코끼리'란 녀석은 그들의 환상이자
 
막연한 지향점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묘한 제목은 그렇게 현실과 환상을 병치시키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내용은 크게 두 개의 흐름이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채 조울증에 시달리는 장혁의 뇌까림,

코끼리만 찾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탄식. 그리고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상황에서, 다시

장님 코끼리 만지듯 무언가 막연한 걸 잡고 일어서는 모습. 농도짙은 섹스신과 야하고 야비한 농담들,

그로테스크하고 시니컬한 장면들은 덤이다.


장혁이 어렸을 적 사람이 붐비는 동물원에서 엄마와 했던 약속, 혹시 손을 놓치면 코끼리 우리 앞으로 오라던.

코끼리만 찾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코끼리 우리도 너무 크고, 주위엔 사람들도 많고, 코끼리란

자식 역시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었다며, 인생을 통틀어 가장 두려웠던 기억이라 장혁은

고백하는 장면, 난 여기서 영화가 끝나는 걸까 생각했다. "코끼리만 찾음 되는 건줄 알았는데." 그 말의 울림이

가히 엔딩 수준이었단 말이다. 대학만 가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직장만 잡으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결혼만

잘하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돈만 많이 벌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사랑만 하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개인적으로는, "내가 나이 삼십 넘어서 이렇게 후지게 살 줄은 몰랐어."라는 대사가 꽤나 와닿았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전부 후지게 살고 있었다. 코끼리 따위는 대마 연기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세상, 펜트하우스의

재력으로도 별 수 없는 거다. '가을을 탄다'라는 표현이 내면의 파르르 떨리는 마음을 가을 한철로 몰아넣고

말아버리듯, '사춘기'라는 표현 역시 심약하고 가파르며 위태로운 내면의 풍경을 특정 나이대의 특징인 양

구별짓고 떠밀어버린다. 사실은 '나이 삼십넘어서'도, 혹은 '평생'(이라 해도 좋을만큼의 시간동안) 한결같이

쭈욱 가을을 타고 사춘기/오춘기에 시달리는 건지도 모른다.


제길, 코끼리만 찾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코끼리만 찾으면 되는 게임이면 참 쉬울 텐데. 어쨌거나 문득

동물원에 가보고 싶어지게 만든 영화였다.





#1.

출장 다녀온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내일부터 또 출장이다. 인천 송도에서 벌어지는 모 행사가 있어서, 수십명의

자원봉사자들한테 오리엔테이션하고, 모레랑 글피는 사람들에 부대끼며 헥헥대고 있을 거 같다. 사실 뭔가

행사-판을 짜고 준비하고 운영한다는 건 꽤나 매력적인 일이다. 대학교 때 새내기준비위원회라느니, 4.19기념

마라톤이라느니, 모의유엔이라느니, 그런 것들에 꼭 감투 하나씩 쓰고 헥헥댔었으니 그 맛을 알아버린지는

꽤나 오래다. 뭔가 무대를 만들어주고 판을 벌여주는 역할, 굳이 판 위에서 놀지 않아도, 그 옆에서 판이 잘

돌아가게 도와주는 것도 충분히 재미있다.


여튼, 그래서 이박 삼일 (또) 다녀오겠습니다.ㅜ



#2.

사실 한 두어달 전부터 준비하던 자격증 시험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그래도 공부하는 거야 뭐

그냥 하면 되는 거니까, 문제는 절대적인 시간의 확보가 관건이었다. 물론 초반에 좀 알량한 셤, 알량하게

대응하리라, 는 건방진 맘으로 시동을 늦게 걸었던 탓도 있지만, 뒤늦게 확정된 7박8일의 출장이 완전 개씨루를

박아버렸다. 막판까지 책보다 지쳐 쓰러져 잠들도록 버닝해봤지만 절대량이 넘 많아서 결국 무위.


왠지 올해 하반기가 '무위'로 돌아간 느낌이다. 아쉽게도 문제 두어개 차이지만, 어쨌든 시험은 합격 아니면

불합격인 거다. 사실 셤 자체는 별로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다만 단번에 합격했음 이것저것 금전적 이익이

꽤나 있었을 텐데-그보다 2006년의 그 불쾌하도록 하얗던 감정이 떠올라버렸다. 본체에서 유리된 채 멀거니

내가 밥먹는 걸 지켜보고, 말하는 걸 지켜보고, 걷는 걸 지켜봤던 그 메슥거리던..누우런 갱지같던 감정.


그냥, 그런 기억이랑 겹쳐져 버려서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3.

가을을 타고 있다고 생각했다.

출장 다녀오니 가을이 끝나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침저녁으로 쌀랑해서 자전거를 타고 달려도 땀은 안나고 몸은 따뜻해진다.

코엑스 앞을 지날 때마다 국화향이 진득한 황금빛 토종꿀처럼 녹진녹진 흘러들어왔다.


아직 가을이다.


출장을 마치고, 뒷정리를 어영부영 해치우고, 이제야 부랴부랴 제5차 동시나눔에 나섭니다.

지난 글들을 보며 대체 이번이 몇 번째인가, 궁금한 맘이 일어 헤아려보다가 말았습니다. 나눔이라 이름붙은

건 9번, 10번 된다지만 숫자를 세기 시작하니 왠지 자꾸 숫자를 늘리고 싶은 맘이 불끈 동하는 거 있죠?

티스토리 초대장도 나눈 건 나눈 거니까 몇 번 더해넣고 싶고, 뭐 그런 게 사람 맘인지라 그냥 숫자는 잊기로

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포스팅 하나하나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거니까요^^


이번 나눔, 뭘 할까 한참 고심하였...다는 건 뻥이고, 이번엔 스토리텔링으로 승부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출장 가서 사온 하이퍼울트라 은하계급 초레어 아이템을 나누고자 합니다. 무려 "LOVE CANDY"!!

미처 사진을 찍어두지 못한 관계로, 사무실 복사기에 넣고 컬러스캔했습니다. 컬러스캔하고 복사해서

몇가지 광고 문구를 넣어 보았습니다..ㅡㅡ;;


이게 뭐냐고 하실지 몰라도, 무려 연애세포재생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거 아닙니까.

길도 이거 딱 두 알 먹고 나니 박정아랑 사귀었답니다. 강혜정? 타블로가 가루로 빻아서는 억지로 먹였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대륙 통일할 때 전사들이 모두 하루에 이거 한알씩 먹고 전투에 임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소위 "인생은 육십부터 연애중"이라는 모두 익히 알고 계신 황금언을 가능케 만든

기적의 캔디가 바로 "LOVE CANDY"인 것입니다.


왜 이래요, 러브 캔디 한 알 못 먹어서 평생 연애 한번 못 해본 사람들처럼.
연애세포가 뭔지는 다들 아실 거고, 언제까지 솔로로 살 텐가. 가을이고 날도 춥고 바람도 차가우니 요

"LOVE CANDY" 하나씩 물고 푸석푸석해진 연애세포 좀 생기발랄하게코롬 촉촉하게코롬 되살려 보시죠ㅎ
 
덤으로 제가 직접 만년필을 휘둘러 손편지도 써드립니다.(음..이건 좀 마이너스..일까나..ㅡㅡ; )


2009. 10. 24(토) 24:00 까지 댓글로 자신이 아는 가장 멋진 사랑의 멘트를 알려주시는 분 5분을 선정하여
 
'영혼을 위한 비아그라'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기적의 캔디, "LOVE CANDY"(정품, 수입승인번호:

식가583-183092)와 제 정성을 가득..쪼끔 담은 손편지 한 통을 보내드리겠습니다.




* 이번 동시나눔 진행중이신 분들

주관하시는 BlogIcon 민시오™

[블로그 동시 나눔 행사] 제5차 "OO 기념 동시 나눔 마당" 진행 - 제5차 가을맞이 기념 나눔 이벤트

BlogIcon Slimer
정신 없이 바쁜 기념으로 조금 나누어 봅니다.

BlogIcon 백마탄 초인™
10월에 터지는 행운을 잡아라~!! [제5차 블로그 나눔]

BlogIcon 초하(初夏)
◆ '제5차 동시 나눔' 마당에 동참할 이웃지기님들을 기다리며

BlogIcon 2Proo
2proo.net 블로그 5차 동시나눔 이벤트 - 방문자수 4백만명 돌파 이벤트

BlogIcon Design_N
이사 완료 기념, 동시 나눔! (5차)

등등 많은 분들이 있으니 한번 둘러보고 가셔요^^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블로그와 나눔]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추석때 갔던 구리 한강시민공원. 차들이 2차선 도로변을 빼곡하게 메워놓고 주차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이토록 넓은 코스모스밭에 듬성듬성 풀려나 있었다.

그냥 분홍빛 풀밭으로 보이던 것들, 가까이서 보면 초록 풀빛 위에 얹힌 형형색색의 분홍빛 꽃잎들이다.

발 디딜틈 없이 빼곡하게만 보이던 '그야말로 꽃밭', 한 가운데 길이 나있었다. 물을 공급하는 검정 호스가

좀 거슬리긴 했지만, 양쪽 시야에 코스모스를 꽉 채우고 길을 걷자니 꽤나 멋지다.

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색이니 향이니 모양이니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울러서

이 뽀송뽀송하고 때묻지 않은 '새것'이란 느낌 그득한 점이 크지 않을까. 적어도 난 그렇다.

꽤 잘 꾸며놓았다. 오두막에 주렁주렁 매달린 잘 익은 조롱박, 처음엔 너무 이쁘게 생겨서 가짜인가 했댔다.

언제부터 나와서 원두막을 차지했는지 아예 안방처럼 편하게 자리잡으신 가족들.

신기한 탈것도 있었다. 워낙 넓은 공원을 모두 코스모스 밭으로 꾸며놓은 터라, 걸어서 돌기도 쉽지 않은 터에

피곤하다 싶은 사람이라면 굉장한 유혹을 느낄 만한 탈거리지 싶다.

똑같은 계절인데 코스모스들도 제각기 다르게 느끼나 보다. 잔뜩 만개한 코스모스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한 귀퉁이는 이미 이렇게 꽃이 지고 뾰족하고 길쭉한 코스모스씨를 툭툭 떨구고 있는 대궁이들이 있었고

또 다른 쪽에서는 아직 탱탱한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기도 했다.

제목은? "꽃과 나", "갈대처럼 지저분한 나", "코스모스도 한 철, 나도 한 철", "코스모스가 뛰니가 나도 뛴다"..?

애초 컨셉은 신해철이 넥스트로 활동할 때 잔뜩 가오잡고 있어보이는 척했던 그런 포즈였는데..OTL.





어쩌다 보니 요새 들고 다니고 있는 PENTAX *istDL.


배경을 다 날려버리고 잠자리에 초점 맞추기도 힘든, 나는나는 초짜.ㅋ

잠자리를 좀더 토실토실 살찌워서 최소한 번데기만큼 오동통한 꼬랑지를 갖게 해줬으면

너도 편하고 나도 편했을 텐데. 미안 잠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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