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님,

그간 신님께서 제게 얼마나 냉정하셨는지는 신도 알고 나도 아는 일입니다.

흔한 레퍼토리로 조상님이 꿈에 나타나서 번호 여섯 개를 불러주는 일도 없으셨고,

드라마에서 보듯 대기업 총수가 불쑥 나타나 '내가 니 애비다'하는 일도 없었으며,

자동차를 걸고 노트북을 걸고 널리고 널린 경품행사에서는 늘 개인정보를 베풀기만 했으며,

주위의 자랑질처럼 택시를 타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도 두툼한 지갑 하나 줍는 일도 없었고,

하다못해 어렸을 적부터 커피 자판기며 음료수 자판기의 잔돈 구멍을 후벼도 백원짜리 두개를 못 봤습니다.


남들보다 착하게 살았느니, 누구 해꼬지 한 적 없다느니 구구하게 이야기 안 하렵니다.

이제 제게도 천원에 로또를 사서는 십원에 폐지로 팔아야 하는 슬픔 대신

준 돈보다 받은 돈이 열배는 뻥튀기로 돌아오는 환희를 맛보게 하소서.

그저 천원짜리 마권을 사서는 오만원짜리 현찰과 바꿀 수 있는, 조그마한 축복을 내리소서.


아멘할렐루야나무아미타불알라.


*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쥐고 있던 돈다발들. 내 돈도 아니고 쥐었다가 금세 사라질 돈들, 아쉬워서 사진이나.

* 알제리에서 쥐고 있던 돈들, 저 돈들로 부채를 만들어 바람을 부쳤더니 똥냄새가 풀풀 났었지만 그래도 좋더라는.

그게 바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의 숨겨진 의미.

* 현실은, 지갑속엔 이천원이 딸랑딸랑. 카드를 쓸수록 지갑이 두꺼워지는 마술이 일어나고 있다는.

쌓여가는 명세서를 세절기로 찢듯 가늘게 짝짝 찢으며 느끼는 쾌감 대신 두툼한 지갑에서 돈냄새를 맡고 싶어요.

집사야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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