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놔, 카메라가 갑자기 두동강 나서 바닥에 철푸덕. 이제 막 길을 나서서 해장국골목서

한그릇먹고 일어나려다가, 엉덩이가 그대로 붙어버렸다.


#2. 황남빵 한박스 사들고 가끔 꺼내먹으며, 비닐봉다리에 담긴 카메라 두조각 달랑거리며

걷고 있다. 대릉원, 첨성대, 계림, 월성과 안압지를 지나 황룡사지에서 잠시 휴식중.

#3. 걷는 것만큼 확실하고 단단하게 이동하는 방법은 없지 싶다. 내가 감내할 만한 속도로

주위사물들을 하나씩 만지듯 분별하며 뒤로 흘려보내고, 주위 분위기에 흠뻑 젖을만큼

스스로와 풍경을 동화시켜준달까.

#4. 경주 시내를 빠져나와 오릉, 박혁거세니 유리왕이니 소설속 인물같은 이들의 소설같은

무덤을 둘러봤다. 저 언덕들은 참 곱게도 잔디를 입혀놨단 생각만 들 뿐, 죽은 이들이 쉬는

공간에서 느껴져야 할 답답함이나 무거운 공기가 없다. 이천년 가까운 시간이 죽음의

무겁고 퀘퀘한 냄새조차 날려버렸다. (그나저나 안내판엔 온통 한자뿐. 그것도 손글씨.)


#5.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서린 우물이라 신라의 우물, 나정인가. 예수보다 육십년쯤 먼저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가 발견된 우물이 아직 남아있단 게 더 신기. 우물이니 알이니

동정녀니, 섹스(혹은 불륜)를 숨기거나 신성화하려는 전략이란 점에서 예수나 혁거세나

베들레헴이나 경주 나정이나 오십보 백보.


#5. 나정에서 포석정을 지나 삼릉골로 가는 길이다. 포석정 뒷길로 남산을 오를까 하다가

매표소 아줌마에게 추천을 청했더니 역시 삼릉골로 오르는 게 볼 것도 많고 길도 재밌다고.

남산은 당시 신라인들이 부처가 머물고 있다 생각했던 곳이라 했던가. 골짜기마다 잔뜩

조성된 석탑과 석불 따위 불교 유적들이 대단하다. 아마도 사람들은 산에 기대듯 부처에

기댔던 거다. 아니면 부처에 기대듯 산에 기댔는지도.

#6. 삼릉골이란 이름은 골짜기 입구에 세 개의 커다란 릉이 있어서라고 하지만, 막상

언덕만한 왕들의 무덤이래봐야 남산에 의탁하고 나니 그다지 위신이 안 선다. 왕이

자연에 귀의한 느낌이랄까, 산자락에 오체투지의 자세로 늘어붙은 것 같은 젖꼭지 세개.

#7. 워낙 삼릉골을 따라 조성된 탑이니 부처가 많은지라 이름모를 조각들도 뒹굴고 있었다.

그 중 문득 시선을 사로잡던 저 미묘하게 불룩한 위치와 모호한 손놀림.

#8. 선각육존불, 커다란 바위에 선으로 여섯 부처를 그려놓았던 곳이다. 그렇지만 바위

자체의 무늬와 오랜세월 깍이고 다듬어진 자취 때문에 선을 하나하나 식별하기가 이젠

쉽지 않아진 그림판. 군데군데 청동처럼 녹도 슬었다.

#9. 저 바위의 효용은, 그보다는 저 위로 좀더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해바라기했을 때다.

왕릉같이 부드럽지만 위엄있는 선을 그려내는 경주의 산들이 바라보였다.

#10. 돌아나오는 길에 어느 새로 짓는 듯한 전통음식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한옥지붕위로

어벙벙하게 웃고 있는 저 표정, 조그만 눈과 헤벌쭉한 입이 그렇지만 굉장히 다정다감했다.

2010년에 다시 그린 경주인, 신라인의 얼굴일지도.


* 경주남산 가이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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