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그릇먹고 일어나려다가, 엉덩이가 그대로 붙어버렸다.
#2. 황남빵 한박스 사들고 가끔 꺼내먹으며, 비닐봉다리에 담긴 카메라 두조각 달랑거리며
걷고 있다. 대릉원, 첨성대, 계림, 월성과 안압지를 지나 황룡사지에서 잠시 휴식중.
주위사물들을 하나씩 만지듯 분별하며 뒤로 흘려보내고, 주위 분위기에 흠뻑 젖을만큼
스스로와 풍경을 동화시켜준달까.
무덤을 둘러봤다. 저 언덕들은 참 곱게도 잔디를 입혀놨단 생각만 들 뿐, 죽은 이들이 쉬는
공간에서 느껴져야 할 답답함이나 무거운 공기가 없다. 이천년 가까운 시간이 죽음의
무겁고 퀘퀘한 냄새조차 날려버렸다. (그나저나 안내판엔 온통 한자뿐. 그것도 손글씨.)
#5.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서린 우물이라 신라의 우물, 나정인가. 예수보다 육십년쯤 먼저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가 발견된 우물이 아직 남아있단 게 더 신기. 우물이니 알이니
동정녀니, 섹스(혹은 불륜)를 숨기거나 신성화하려는 전략이란 점에서 예수나 혁거세나
베들레헴이나 경주 나정이나 오십보 백보.
#5. 나정에서 포석정을 지나 삼릉골로 가는 길이다. 포석정 뒷길로 남산을 오를까 하다가
매표소 아줌마에게 추천을 청했더니 역시 삼릉골로 오르는 게 볼 것도 많고 길도 재밌다고.
남산은 당시 신라인들이 부처가 머물고 있다 생각했던 곳이라 했던가. 골짜기마다 잔뜩
조성된 석탑과 석불 따위 불교 유적들이 대단하다. 아마도 사람들은 산에 기대듯 부처에
기댔던 거다. 아니면 부처에 기대듯 산에 기댔는지도.
언덕만한 왕들의 무덤이래봐야 남산에 의탁하고 나니 그다지 위신이 안 선다. 왕이
자연에 귀의한 느낌이랄까, 산자락에 오체투지의 자세로 늘어붙은 것 같은 젖꼭지 세개.
그 중 문득 시선을 사로잡던 저 미묘하게 불룩한 위치와 모호한 손놀림.
자체의 무늬와 오랜세월 깍이고 다듬어진 자취 때문에 선을 하나하나 식별하기가 이젠
쉽지 않아진 그림판. 군데군데 청동처럼 녹도 슬었다.
왕릉같이 부드럽지만 위엄있는 선을 그려내는 경주의 산들이 바라보였다.
어벙벙하게 웃고 있는 저 표정, 조그만 눈과 헤벌쭉한 입이 그렇지만 굉장히 다정다감했다.
2010년에 다시 그린 경주인, 신라인의 얼굴일지도.
* 경주남산 가이드맵.
'[여행] 짧고 강렬한 기억 > Korea+DPRK'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해 줘, 아고라. (4) | 2010.12.19 |
---|---|
포대 안에서 응애응애, 감나무산 대봉시가 울다. (6) | 2010.12.15 |
술자리에서 주사위놀이를 즐기던 신라귀족들. (1) | 2010.12.12 |
참 좋지만 포장이 엉망인 공간, 포석정에서 술잔을 띄워보냅니다. (0) | 2010.12.10 |
신라 옛 왕들의 석양바라기 풍경. (0) | 2010.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