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학교에 갔더니 곳곳에 새 건물들이 들어섰다. 이미 이러저러한 공간들을 비집고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고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당장 내가 군대 포함해서

십년 가까이 먹고 마시고 자고 놀던 공간, 사회대 근처가 이렇게 변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매년 개강집회, 과 학생회장 선거, 사회대 학생회장 선거, 축제, 각종 문화제, 공연,

외부집회 나가기 전 사전집회, 단대 차원의 온갖 행사들이 치뤄졌던 사회대 아고라.

밥먹고 나서 우유팩 두개 거꾸로 접어 꼽아서는 '팩차기'를 해대던 공간이기도 하고,

사회대 도서관의 고시생들이 잠시 나와 바람을 쐬며 담소를 나누던 공간이기도 하고.


반원형의 둥근 재떨이같이 옴폭 파인 채 학생들을 불러모았던 그 공간 한 가운데

저렇게 공사판이 벌어졌고, 센스있는 학생들이 낙서를 잔뜩 해놨다. 기억해줘.

모든 걸 여기에 묻고 간다. 우리들의 광장 아고라.ㅋㅋ '끝'이란 단어가 괜히 원망스럽다.

사회대 도서관쪽에서 바라본 아고라. 다음 '아고라'가 온갖 이슈들에 대한 토론과 청원이

벌어지는 자유로운 백가쟁명의 공간이듯, 서울대가 연희동에서 관악산 자락으로 옮겨오고

사회대가 여기 건축되고 난 이후 쭈욱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 그 원래적인 의미로 일상적인

온갖 활동이 펼쳐지던 집회공간이었던 곳이다. 비록 점점 사람들이 여기 모이기 힘들어졌고

더러는 도서관에서 집회 소음이 시끄럽다며 항의하는 지경에까지 처했었지만, 이젠 아예

그 공간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속이 서늘하다.

주차장이던 공간에는 3, 4층짜리 건물이 섰다. 무려 파파이스랑 자바시티 커피점이 들어섰더라는.

뭐, 그런 게 다 들어서다니 학교가 정말 예전같지 않구나 싶기도 하지만, 사실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게 있다.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맥도널드가 처음 생겼을 때,

미제의 브랜드가 신성한 대학 상권에 진입한 걸 항의하는 집회까지 있었다던가.

'미제', 미국 제국주의에 민감했던 시대적 정황을 염두에 두면, 그리고 당시에 생각하던

'대학'이란 지금 상식처럼 통용되는 대학의 의미와 달랐음을 염두에 두면 딱히 해프닝이라

치부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대학 사회가 꼭 과거와 같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같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니까 그런 프랜차이즈들이 학내까지 들어온다고 정색할 일도

아닌지 모른다. '통큰치킨'으로 상징되는 손쉬운 합리적 소비욕구가 결국 영세 자영업자들을

전부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지만, 대학이라고 뭐, 별 수 있나.

씁쓸한 맘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와중에도 커피숍 한쪽이 눈에 들어왔다. 소화전을

에워싼 그림들과 더불어 무슨 그림작품처럼 치장된 소화전의 세련된 모습. 어쩌냐.

눈은 자연스레 이쁘고 세련되고 센스부릴 여유있는 것들로 가는 게 인지상정인 건가.

어라, 내가 다닐 때는 이런 이정표는 없었던 거 같은데. 교내에 뿔뿔이 산재해 있는

민주화 투쟁 열사들 추모비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민주화의 길'. 나중에

날이 좀 풀리면 학교에 놀러와서 한번 이 경로대로 걸어봐야겠다, 추모비들을 하나하나

새겨놓아야겠다 싶다. 언제 또 사라질지 모르는 것들이다.

졸업하기 전 꼭 해보고 싶던 것 하나가 있었다. 이 위에 올라가서 술 한잔 하는 것. 흔히 전면에서

찍힌 사진에만 익숙한 이 '샤' 정문은 알고보면 ㄱ과 ㅅ과 ㄷ의 조합일 뿐이지만, 덕분에 그게

'공산당'의 약자니 뭐니 그런 이야기도 있었던 거다. 옆에서 보면 제법 두툼한 이중의 철판이

단단히 땅에 조여져 있는데, 그 사이로 계단처럼 밟고 가라며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것들이

층층이 박힌 채 꼭대기까지 인도하는 거다. 졸업하기 전에 야밤을 틈타 저길 한번 올라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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