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장 중에 엠피쓰리 플레이어 이어폰을 잊어버렸다. 뱅앤올룹슨, 동생이 사다준 무지무지 비싼 이어폰을

어쩌자고 출장길에 덜컥, 가죽 케이스까지 곱게 들고 나선 건지. 출장 내내 찝찝하다가 확실히 분실했음을

돌아와 가방 다 헤집으며 찾아보고 확인한 뒤에야 꿈에 나왔다.


집에 굴러다니던 몇몇 이어폰들은 마침맞게도, 사무실서 일할 때 듣는다고 다 들고 간 참이었다. 그러다 하나는

빙빙 돌리다가 물컵에 빠져 맛이 가버려서 버리고, 다른 하나는 양쪽 다 끼고 일하긴 눈치보이던 차에 한쪽-

주로 왼쪽-만 끼고 듣는다고 아예 나머지 한쪽은 잘라내 버렸댔다. 덕분에 '애꾸귀'용 이어폰만 하나 남았다.


그래서 졸지에 벙어리가 되어버린 엠피쓰리 플레이어. 그 많던 이어폰은 다 어디로 가 버리고. 당장 출퇴근길에

자전거 달리며 목도리 날리며 깔아줄 BGM이 급하단 말이다.



#2.

전화기를 한달전쯤 바꿨나보다. 그 전에 쓰던 초콜렛폰이 근 5년 가까이 쓰다보니 버튼부분도 많이 상하고,

배터리도 반나절 버텨내고 있어서, 마침 모 통신계열사에 다니는 친구 덕에 꽁짜폰으로 바꿨다. 그러고 나니

한 가지 문제, 제조사도 다르고, 새 핸폰도 택배로 받은 터라 전화번호부를 어케 옮겨야 할지가 난감. 출장 중에

둘 다 들고 가서 시간날 때 옮겨볼까, 따위 택도 없는 생각을 하다가 걍 이래저래 한달째 냅두고 있다.


필요한 번호 하나씩 그때그때 입력하고, 모르는 번호-전화번호 따위 외우지 못하니-뜨면 어버버, 하다가

욕 감사히 쳐듣고는 번호 하나 입력해놓고. 그런 식이다. 근데 그것도 며칠 지나고 나니 뜸하다. 아...이렇게도

인간관계가 좁았던가. 그 전 핸폰에 저장되었던 근 칠백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은...


뭐, 아무 통신사 서비스센터에 가면 바로 옮겨준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귀찮기도 하고 급하지도 않고 해서

언제나 백업할지 모르겠다. 어쩜 이대로 쭉 갈지도. 의도치 않은 상황에 의도 한 스푼을 얹어 인간관계 리셋..?



#3.

카이로를 거쳐 사우디 즈음, 같이 갔던 점잖은 사장님 한 분이랑 룸메이트였는데, 현지 시간 새벽 세시에

한국에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으셨다. 비몽사몽 간에 문득 들린 허억, 숨 넘어가는 소리와 남자가 낮게 흐느껴
 
우는 소리. 부친상이었다. 아마도 누군가 돌아가셨음을 전해듣는 순간에 함께 했던 건 지각이 생기고 나선

처음인거 같다. 번쩍 잠이 깨서는 덩달아 경황도 없고 먹먹하고..그랬다.


실무적인 일들은 그때부터. 바로 돌아가는 비행편 챙겨드리고, 남은 짐 챙기는거 도와드리고 출장 뒷마무리도

챙겨드리겠노라 다짐하고. 번쩍 잠이 깼었지만 이내 다시 가물가물, 죄송스럽게도 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을 설치고 나서 담날부터 감기기운이 픽 왔댔다. 열도 나고 기침도 심하고, 어지럽고.


인천공항에 들어서며 검역대에 놓인 열감지기 앞에서 괜히 설설 걸으며 기침도 두어번 했지만, 그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제길. 알고 보니 요새 신종플루는 열이 꼭 37.8도까지 오르지 않아도 맞다던데 왜 나를 잡지

않았을까. 기침은 여전하고, 몸은 뻑적지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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