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왠지 다른 때보다 훨씬 힘들게 준비했던 출장이 드디어 오늘. 밤 열한시 오십오분 비행기로 두바이로 향하고,

이집트, 사우디, 쿠웨이트 차근차근 밟고 올 예정이다. 이집트는, 2004년에 배낭여행으로 다녀왔던 그곳을

5년만에 다시 간다니 꽤나 설레는 곳이고, 두바이에선 조금 돌아볼 시간도 있을 듯하여 뭘 볼 수 있을까

기대도 하고 있지만. 사우디랑 쿠웨이트는 뭐, 작년에 갔던 곳 다시 가는 거라-더구나 출장도 작년과 같은

형태와 내용이라-그다지 기대는 없다. 20일에 돌아올 테니 어디 보자..7박 8일의 일정.


#2. 

이러저러한 분위기 변화로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던 게다. 그 밖에도 여러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겠지만-오호, '이러저러'하단 표현이 꽤나 편리하구나-문득 펼쳐 보니 다이어리가 몇주째 텅텅 비어있다.

앞장을 넘기면 정해진 스케줄이 없거나 적어두지 않아 광막한 백지, 뒷장으로 돌아가도 기록해 두지 않고

기억해 두지 않아 광막한 백지. 끙끙대며 뭐했더라...기억하다 보니 왠지 하이얀 앞장과 뒷장 사이에서

까만 점 하나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길다랗게 말아진 김밥을 탁탁탁 칼질하면 생겨나는 점, 점, 점.


#3.

다이어리 정리는 점심때 있었던 일, 요새 너무 주위에서 재우치는 것들도 많고 해서 뭔가 점심시간 한 시간을

혼자 쓰고 싶었다. 엠피쓰리와 다이어리를 들고 까페에 자리잡고는 카라멜 마끼아또 한잔 하며 끼적끼적.

단단한 듯 살짝 굳어진 표면이지만 혀와 입술과의 접촉으로 이내 허물어지고는 부드러운 속내를 드러내는

우유크림, 뜨거울 때는 커피에 녹아있다가 차츰 열기를 잃어가며 표면에 얇고 이질적인 막을 팽팽히

땡겨가며 거미줄치듯 부지런히 만들어내는 끈적하고 달콤한 카라멜, 그래서 갈수록 줄어드는 '한모금'의 양.

한 시간을 푸욱 쉬기엔 딱 적당했던 한 잔.(이라 쓰고 혹자는 '된장질'이라 읽기도 한다.)



#4.

'어른남자'란 게 어떻게 생겨먹은 생명체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슬슬 그걸 준비해야 하려나 싶다. 뭐, 단순히

무뎌지고 지치고 생기빠진 그런 게 '어른남자'라 매도할 생각도 없고, 혹은 성숙하고 핏한 수트가 어울리는

시크한 도시남성, 뭐 그런 게 '어른남자'라 무지몽매한 환상에 빠질 생각도 없지만, 어쨌든 그 중간 어디메쯤

내 나름의 '어른남자' 이미지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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