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해 추석은, 추석뿐 아니라 명절날 아침은 왠지 약간 어리어리한 시각적 이미지가 남아있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은 늘 아침일찍 일어나 차린 차례상의 제사주를 음복할 때. 아, 작년 이맘때도 아침 댓바람부터

술을 몇 잔씩 마셨었구나, 그래서 아침부터 발갛게 살짝 취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2. 제사주를 일본주로 올렸다. 조상님들도 늘 우리것만 맛보실 게 아니라 물 건너온 외국것도 좀 맛보시는게

어떨까 싶어서, 라곤 하지만 따로 차례주를 사자니 마침 집에 많은 일본 청주-사케-를 올려도 되지 않겠냐고

내가 쿡쿡 찌른 탓이다. 사실 한때 광풍처럼 일었던 '신토불이'의 프로파간다가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있는

곳이 제삿상, 차롓상인 거 같은데 이거 좀 의심스럽다. 제삿상 음식을 꼭 과거 어느 한지점에 고정된 것으로

바득바득 챙겨야 하는지도 의심스럽고, 술이니 음식이 꼭 국내산이어야 하는 이유 역시.


#3. 추석이니 설이니, 친척들 바글바글 모인 풍경의 한 귀퉁이에는 으레 왠지 '촌스런' 화면을 뱉어내고 있는

티비가 시끄럽기 마련이다. 올해도 작년처럼 사람들의 응원소리가 소음처럼 고스란히 담겨있는 야구 경기를

하나쯤 보았고, 한복을 차려입은 진행자들이 우글우글한 프로 몇개를 보았으며, 경이로운 '동안'이라며

시청자에게 억지부리는 프로그램도 빠지지 않았다.


#4. 젊은 것들의 대중가요 세계가 온통 핫하고 쿨하고 섹시하며 불끈불끈한 '사랑'으로 가득하다면, 트로트의

세계는 그 죽일놈의, 끈끈하다 못해 더럽고 무섭다는 '情'이 담겨있다. 몇 번의 사랑을 거치고 나면 사랑이

아니라 정 때문에 살아가고, 정을 추억하며 살아가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정'이나 '사랑'이니 정의내리기

어렵긴 매한가지지만, 어느 지점에서 '사랑'이 '정'으로 바뀌었음은 자각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트로트의

세계가 새롭게 보이는 나이대로 진입하고 있는지도.


#5. 개천절이니 일요일이니 토요일이니 추석이니 연휴가 겹쳤으면 겹친 만큼, 그만큼 찐하게 쉬어주고 놀아

줬어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늘 허무하게 끝나는 명절 연휴. 명절은 쉬는 날이 아닌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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