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의 아프리칸 갤러리. 국내에서 유일하게 아프리카 목조각상들을 전문취급한다는 곳이다. 입장료는 천원.

무료로 개방된 공간에 하도 사람들이 바글바글대길래 냉큼 천원을 내고 유료 공간으로 넘어와버렸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무료에서 유료로 넘어가는 계단 벽면을 빼곡하게 장식한 전통탈.

각도에 따라 느낌이 제법 다르다. 대충 눈높이를 맞춘 상태에서 보면 나름 우스꽝스럽고 친근한 구석까지도

읽혀지는 표정이지만, 이렇게 밑에서 올려다보니까 차갑게 눈을 흘기는 것 같기도 하고 볼이 잔뜩 부은 채

금세라도 시니컬하게 갈굴 것만 같다.

며칠 전 트위터에서 누군가 알려준 인도의 소식. 코끼리떼가 이동하다가 새끼 코끼리 발이 철로에 끼고 말았다나,

기차가 달려들 때까지 수십마리의 어른 코끼리들이 새끼를 둘러싼 채 버텼고 결국 일곱마리인가 기차에 치여

숨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먹먹했었다. 그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던 너무 리얼한 코끼리,

그리고 그 살점을 뜯어먹는 콘도르떼들.

아프리카, 하면 기린떼도 빼놓을 수 없다. 드넓은 초원을 달리다가 문득 나무처럼 삐죽삐죽 솟아있는 그들의

긴 목부터 마주치는 순간은 아프리카에 대한 일종의 로망. 에버랜드에 생겼다는 초식동물 사파리에 가서 기어이

기린에 먹을 풀떼기를 쥐어주고 말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아프리카의 이 생생한 표정들, 조개껍질과 돌멩이를 활용해서 저런 얼굴을 표현해 낸다는 건, 대담하기도 하고

창의적이기도 하고. 군대 있을 때 '야전성'이란 표현을 우리끼리 썼던 적이 있는데, 뭐랄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재빨리 해결하는 응급조치의 순발력이랄까 유연한 발상이랄까. 그런 게 아프리카의 것들에서 느껴졌다.

그런가 하면 이런 식으로 조금은 더 '갖춰진' 인형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옷도 제대로 갖춰입었을 뿐 아니라

눈코입의 묘사 역시 클래식한 아프리카 토속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으면서도 아프리카스러운 느낌은 살아있는.

조약돌 세개씩 깜장돌과 하얀돌을 늘어세운 뭔가 단촐한 게임판을 앞에 둔 채 맞은편에 놓인 화려한 의자. 저건

진짜 무슨 게임인지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꽤나 단순한 외양 때문인지 쉬워 보이기도 하고.

강아지가 고개를 슬몃 쳐들고 눈망울을 또르륵 굴려대는 이건, 흔들의자. 반질하게 잘 다듬어진 뒷마무리가 좋다.

책을 세원둔 채 양쪽에서 받쳐두는 책꽂이가 이정도 포스를 풍기다니. 이런 아이템이 제대로 분위기를 가지려면

꽤나 그럴듯한 서재가 있어야 할 듯. 왜 그 마호가니 나무 책상에 벨벳 카펫이 깔려있는 아늑한 방.

기린 모양을 따서 만든 경쾌한 느낌의 의자들. 기린 다리 네 개로 의자의 내 다리를 형상화하고 나니 기린

모가지가 남는다.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 바닥으로 잔뜩 꿇어박음으로써 모가지도 해결.

험상궂고 단호한 턱을 가진, 아마도 짐바브웨에서 왔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전사의 목각상. 전사의 얼굴 생김이

왠지 동네 어귀 장승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게다가 짚으로 엮은 머리띠며 목걸이를 칭칭 감고 있는 것도

낯설지 않은 느낌.

이쁜 아이템들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이런 것들은 하나만 덜렁 놓여있으면 참 멍청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냥

이렇게 이쁜 것들 눈요기하는 것으로도 잠시나마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빛을 머리에 부어내리며 돌아다닌듯

여행의 즐거움을 살풋 맛볼 수 있어서 만족.

아프리칸 갤러리를 나와 경기도 헤이리의 햇살을 한바가지 뒤집어 썼다. 갤러리 앞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빙빙 돌고 있던 앵무새가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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