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을 몇 초간이라도 응시해 본 사람이라면 마력과도 같이 눈길을 붙잡아 두는 그 마력에 저항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익히 알고 있을 거다. 새빨갛다 못해 하얗게 탈색되어 버린 듯한 불꽃이 낼름대며

불똥을 뱉어낼 즈음이면 머릿속에서 그 옛날 어둡고 눅눅하던 동굴에서 번갯불을 소중하게 간직했던

조상의 기억이 마구 분출되는 느낌인 거다.

느닷없이 추워진 날씨에 모닥불이 어찌나 반갑던지, 으레 모닥불과 쌍으로 떠오르기 마련인

은박지두른 고구마니 감자 따위는 한참이나 불곁을 지키고 나서야 생각이 났더랬다. 그 와중에도

불티는 사방으로 날리며 누군가의 패딩 점퍼, 누군가의 코트에 빵꾸를 내려는 듯 기세등등.

가을이라고 몇 번 찡얼대기도 전에 단풍잎들은 온통 미이라처럼 바싹 말라 오그라붙은 채

분분하게 떨어져버렸다. 모닥불은 낙엽들의 잔해와 꼿꼿한 나무등걸을 남김없이 살라먹으며

이제 다시 겨울이 왔음을 선포하고 있었다. 가을은 그야말로 낙엽 한 잎사귀 떨어지는 순간

끝나버리고 말았다.




@ 남양주, 봉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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