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의 마지막날, 싱가폴은 이미 한달 가까이 인도네시아로부터 불어온 헤이즈(Haze)로 고생하던 중이었다.


헤이즈란 인도네시아에서 경작지를 마련하기 위해 울창한 숲을 대량으로 태우면서 발생하는 희뿌연 연기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왠지 어디선가 캠프화이어를 하는 느낌이 확 들었던 것.


중국에서 비롯한 화학물질로 그득한 황사에 혹독하게 단련된 한국인이니만치 나무들을 태우는 거니까 딱히 건강에


안 좋을까 싶기도 했고, 나름 나무 타는 냄새가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했지만. 시내 중심가까지 나오면서 


택시 기사님이 해준 말로는, 공기중 미세먼지가 많아지면서 실제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심지어 


휴교령을 내리기도 했단다.


오전 아홉시 열시 어간의 싱가포르강변 풍경. 아닌게 아니라 생각보다 무지 살풍경하다. 출근중인 사람들은 두명 건너


한사람 꼴로 마스크를 쓰고 움직이는 중이고. 



이런 헤이즈는 저번주말 싱가폴에서 돌아올 떄까지 계속 됐는데, 중간에 천둥번개가 치는 큰 비에도 좀체 걷히지가


않아서 한국의 파란 하늘이 꽤나 그립더라. 날씨라거나 하늘의 표정이 사람 맘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친다.



* 비좁고 비싼 서울에서 복닥거리며 버티느니 근교의 괜찮은 땅을 구해 전원주택을 짓고 사시겠다는 것이 우리 부모님의 오랜 꿈이셨다. 마침 건축 쪽에 종사하시는 아버님이신지라 벌써 십여년전부터 어떤 집을 어떻게 지을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고치기를 여러번, 그러다가 올해 4월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전원주택을 짓는 계획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제부터 올릴 사진들은 드문드문 내가 가서 찍은 사진들과 아버지가 현장을 관리하며 찍으신 사진들이 뒤섞일 예정이며, 가능한 집이 세워지는 시간순으로 실시간에 가깝게 업데이트하려 한다. 관련한 문의나 궁금한 점들이 있다면 비밀댓글로 남겨주시길.

 

 

18. 1층 외벽면 철근 설치 및 2층 바닥면 슬라브 거푸집 설치 작업.

 

2015년 5월 5일, photo by father

 

어린이날이라지만 건설 현장이 으레 그렇듯 공사는 쉬지 않는다. 공사장 근처, 집터에 와닿는 다리 건너편에도 쉼없이

 

지어지고 있는 말벌집이 있다. 이걸 어째야 하나..

 

이제 1층 외벽 중에서 노출콘크리트 벽면으로 드러날 벽면을 다 만들어놨으니 그에 맞추어 철근을 조립할 순서.

 

 

이렇게 1층 외벽면 전체에 대해서 철근을 조립하는 작업과 함께,

 

2층 바닥 슬라브 거푸집을 설치하는 작업을 마치고 나면 다시 한번 콘크리트를 부어 1층 벽면과 2층 바닥면을 연성할

 

차례가 되겠지. 굉장히 뚝딱뚝딱 빠르게 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2015년 5월 5일 현재 공사장 전경. 아직 어떤 모양의 집이 저 안에서 뿅하고 튀어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뭔가

 

북적북적하니 활기찬 움직임이 내부에서 잔뜩 일어나고 있어 흥미진진한 상황이랄까.

 

 

 

 

 

 

구글 더블린 오피스, 유럽의 주요 사업본부들이 모여있는 곳이라서 굉장히 번화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도심에서는 꽤나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몇 동의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5동의 건물을 쓰고 있다고.


출입구야 물론 사방에 있지만 그래도 더블린 오피스의 메인 출입구라면 이곳, 구글(Google)의 알파벳 철자를


하나씩 떼어서 형상화해둔 공간들이 택을 찍어야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 전후에 걸쳐 늘어진 리셉션 공간.

 

 

 

그리고 출입문 옆에 외부인들을 위해 열려있는 다소곳한 미팅공간.


 

거대한 G자의 머리를 지붕삼아 만들어진 리셉션, 대략 천명의 더블린 소재 구글러들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트레이닝을 받은 11층 높이에서 바라본 더블린 전경. 하버를 옆에 둔 건물인지라 배들도 보이고.

 

두어 곳의 카페테리아 중 아침을 먹었던 곳. 아무래도 유럽의 시간대 중에서 가장 늦다 보니 여덟시쯤 되는


이른 시간에도 많은 구글러들이 아침식사를 하느라 북적북적.


 

멀찍이 보이는 축구 스타디움, 그리고 원형 모양의 성같은 건물은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라고.


세 개의 건물은 이런 구름다리로 이어져 있어서 굳이 차도를 건너는 등의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었다.


건물 곳곳에 붙어있는 안내 표지판, 몇걸음을 걸어 몇분 정도의 시간이면 원하는 장소에 도달할 수 있는지.

 

 

어느 오피스에서나 마주치는 거지만 참 기발하고 참신한 구글 장식품들을 곳곳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나름의 문화나 지역성까지도 느낄 수 있는 그런 장식들.

 

그래피티를 소재로 한 어느 미팅룸의 데코. 

 

 

그리고 아래의 사진들은 차마 건물 내에서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여행자 냄새를 피울 수 없어 


스마트폰 카메라로 슬쩍슬쩍 촬영한 것들 (photo by iPhone6)




계단을 내려가던 중에 문득 낯익은 공간, 구글의 C-Level 임원들이 종종 등장했던 그 미팅 장소.



카페테리아에서 식사를 할 때, 원한다면 이렇게 샛노랑색 컨테이너 박스 안에 들어가 식사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까페 한쪽에 있던 자전거 거치대를 빙자한 테이블.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더블린식 주택들. 기차놀이를 하듯이 줄줄이 늘어선 야트막한 건물들이 종횡중이다.






구글스토어와 화장실, 미팅룸을 알려주는 센스있는 표지판.










중간중간에 있는 마이크로키친, 아무래도 인원이 많으니까 그렇겠지만 훨씬 먹거리 마실거리가 많이 준비되었다.


온갖 디지털 장비들을 충전할 수 있던 충전소. 


재작년이던가, 저걸 메고 히말라야를 트레킹하면 공짜로 지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막상 실물을 보고 직접 살짝 들어보니 무게가 장난없다. 


마침 더블린 오피스를 방문했던 시기는 St.Patrick데이를 한주 앞둔 타이밍, 나중에야 알았지만 시내는


스물스물 축제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오피스 내에도 기념하는 디지털 포스터들이 이렇게 잔뜩.






밤에 되면 이렇게 화려한 불빛을 물들인 구름다리. 





 

홍콩에 가면 꼭 하루쯤을 할애해서 잔뜩 걸어보는 거리, 캣스트리트. 대략 소호거리와 만모우 사원이 있는 일대랄까.

 

이런 식으로 거리에까지 넘쳐나오는 중국의 전통 예술작품들이나 현대예술작품들이 전시된 갤러리들도 많고,

 

샵 하나를 둘러보는데 반나절이 훌쩍 넘어버리는 홈 인테리어 아이템샵인 '홈리스'도 있고.

 

 

 그리고 골목골목 재미있는 벽화와 풍경들을 숨기고 있기도 하다.

 

 

 

완탕면이라거나 이탈리안 레스토랑같은 이런저런 맛집들도 골목마다 숨기고 있고.

 

 

 만모우 사원에서 풍겨나오는 짙은 향내에 이끌려 사원 안을 둘러보기도 하고.

 

 이렇게 나선형으로 배배 꼬인 채 늘어뜨려진 향을 따라 시선을 뱅뱅 돌리다보면 왠지 어지러워져서 나오게 되는.

 

 

 

 특색있는 건물들, 그리고 건물 벽면을 꾸민 벽화와 디자인들.

 

그 풍경 속에서는 이렇게 모냥빠지게 입구에 찌그려 앉아있는 아이들조차 멋져 보인다.

 

 

그리고 과거 중국의 골동품들이라거나 모택동 시절의 공산당 유품들을 잔뜩 내걸고 있는 골목통까지.

 

재작년에 왔을 때는 여기서 새빨간 색으로 된 마오쩌둥의 어록집을 샀었는데, 영어와 중국어가 병기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사방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과 내리막, 제법 가파른 경사길들.

 

 

 

어느 집앞에 있던 우편함은 이렇게 파스텔톤으로 불규칙하게 배열된 게 꽤나 센스있다.

 

 

캣스트리트의 어느 길가를 지나다 뭔가가 눈에 밟혀 다시 돌아와본 곳에는, 정색하고 있는 여자 얼굴이 그려진

 

오토바이 헤드라이트가 방긋거리고 있었다.

 

 

 

 

라스베가스의 야경, 티끌 하나 없이 말간 통유리창 위로 번지는 건물들의 현란한 불빛이 어지러울 정도다.

 

파리와 이집트와 뉴욕, 그리고 유럽 어딘가의 분위기를 옮겨놓은, 그래서 결국 일종의 테마파크 같은 느낌이다.

 

세계 굴지의 호텔들이 나란히 어깨를 견주며 누가 더 호사스럽고 화려한지를 겨루는 진검승부의 장.

 

 

 

이렇게 거대하고 중후한 직사각형의 건물은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아 오히려 튀어 보인다.

 

미라지 호텔 앞의 불쇼가 펼쳐지는 공연장.

 

한시간 간격이던가, 문득 조명이 밝혀지고 인공섬 위에 연기가 피어오르면 공연이 시작이다.

 

 

 

꽤나 스펙타클한 모습으로 불과 연기와 분수가 어우러진 모습, 사진보다는 영상으로 봐야 실감이 더한데 아쉬울 뿐.

 

그리고 시저스 팰리스. 그리스로마의 분위기가 물씬한 호텔 내부도 그렇지만 외부의 풍경도 어딘가 신전이 연상되는.

 

그 아래에서 아이스크림을 맛나게 드시던 어느 노부부의 모습이 참 보기가 좋더라.

 

 

미라지호텔에 불쇼가 있다면, 그보다 훨씬 유명한 건 바로 벨라지오호텔의 물쇼.

 

 

다양한 레퍼토리에 맞추어 사방으로 솟구치는 직선과 곡선의 물줄기들.

 

 

역시, 사진보다는 직접 움직임과 그 조명의 영악한 활용을 봐야 더 크게 실감할 수 있는 장면들.

 

라스베가스의 낮 풍경이라고 밤보다 못했던 건 아니다. 어느 유럽의 오랜 도시 풍경을 연상시키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이 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부부도 쉽게 눈에 띄었다. 라스베가스의 분위기에 취해 순식간에 결혼해버리는 커플들도

 

있다던데 이들이 그런 커플인지는 모르겠고.

이렇게 거리에서 공연을 펼치는 예술가들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꼭두각시 인형놀이도, 악기연주나 노래나 댄스도,

 

그리고 트랜스포머니 키티니 하는 인형탈을 뒤집어쓴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라스베가스 거리에서 들러볼 만한 샵 두 곳. 우선은 M&M. 미국에서도 세 도시에만 있다고 했던가..확실한 거 하나는

 

이 곳에서는 거의 모든 엠엔엠 초콜렛을 맛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렇게 직접 엠엔엠 초콜렛에 글자를 새겨넣어서 구매할 수도 있다는 점. (뭐, 가격이야 비싸긴 하지만)

 

그리고 또 하나 소개하고픈 곳은 코카콜라 샵. 전세계에서 팔리는 코카콜라의 독특한 디자인들을 볼 수 있고,

 

코카콜라 말고도 해외 각국에서 팔리는 독특한 브랜드의 콜라들도 맛볼 수 있다.

 

이렇게 한국어와 세계 각국의 언어로 코카콜라가 적혀있는 콜라를 팔기도 한다.

 

그리고 각국의 독특한 탄산음료를 맛볼 수 있도록 한쪽의 매장에서 샘플러들을 팔고 있기도 하니 한번 시도해 보길.

 

 

 

 

 

 

 

 

 

 

 

 

 

 

 

 

후텁해진 실내 공기 속에서 나른하게 겨울볕을 쬐다 잠들어버린 고양이, 그런 고양이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결에 카레냄새가.

 

 

 

 

아직 한옥마을의 상권이 확 번져나가지는 않은 끄트머리쯤의 카레전문점. 문구점 간판을 리폼한 듯한 얼기설기한 간판이 좋다.

 

그리고 벽초 홍명희의 생가였던가, 한옥 건물 한켠에 기대어선 돌멩이 가족들.

 

 

 

이런 터무니없이 거창한 이름의 부동산집도 여전히 구경거리가 아닌 실제 삶의 터전으로 버텨내고 있었고.

 

왠지 옛날 목욕탕을 떠올리게 하는 붉은 벽돌담에 한자씩 큼지막하게 돋아난 한약방의 간판도 눈길을 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히말라야 산봉우리들을 배경으로 한 일출을 보고, 조금더 안나푸르나 쪽으로 걸어보기도 하면서

 

훌쩍 지나버린 아침시간. 이 풍경들을 이곳에 놓고 와야 한다는 게 너무 아쉬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길이다치면 빈틈없이 내 옆에서 길을 안내해주고 여기는 어디, 저기는 어디, 안내해주던 훌륭한 가이드 커멀.

 

그를 먼저 내려보내고는 거의 한걸음에 한 장씩, 이 멋진 광경을 꼭꼭 새겨두리라 다짐하며 셔터를 눌렀다.

 

 

 

 

 

 

같은 듯 다른 사진들. 뭐하나 차마 버릴 수가 없던 디테일들.

 

그렇게 겨우 숙소까지 도착해서는 지난 밤 덜덜 떨며 비몽사몽간에 홀로 지새운 휑뎅그레한 삼인실 방을 정리하고는 하산 시작.

 

그새 구름을 잔뜩 뿜어낸 안나푸르나. 구름이 어디선가 흘러와서 덮는 게 아니라 산 스스로가 만들어내어 덮는 느낌이다.

 

 

어제에 비해 훨씬 맑아진 하산길의 시계.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완만한 경사길 위로 강렬한 햇살이 빗겨들었다.

 

이제는 안나푸르나를 등지고, 마차푸차레를 바라보며 가는 길이다. 물고기 꼬리처럼 생긴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선연하다.

 

몰랐는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게이트의 뒷면에는 이런 따뜻한 인사말이 적혀있었다.

 

 

 

그새 풍성해진 구름 틈새로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가 손을 흔들어주는 듯 하다. 마치 오랜 친구를 떠나듯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로 내려가는 길. 전날 오후에 짙은 안개 혹은 구름 속을 헤치며 왔을 때는 몰랐던 풍경이다.

 

 

회색빛 강을 따라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걸어가기를 두시간이 채 안되었을 즈음,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를 지나고 데우랄리를

 

지나고, 어느덧 4,120여미터의 고도에서 3,000미터 어간으로, 다시 2,600미터 어간의 도반까지 내려왔다.

 

달밧으로 점심을 먹고, 따뜻하게 몸을 덥히고 다리를 좀 주물러주다가 다시 출발.

 

사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내려오는 순간부터 다리에 문제가 있었다. 두개의 스틱을 잘 써서 거의 네발짐승처럼

 

빠르고 안전하게 산을 오르긴 했지만, 하루 열시간을 넘나드는 오르내리막의 산길을 6일째 쉼없이 걷다보니 아마도 무리했던 거다.

 

왼쪽 무릎과 오른쪽 무릎이 서로 통증을 호소하며 자기가 더 아프다고 경쟁하더니, 왼쪽 무릎으로 모든 통증이 옮겨가는 걸로

 

정리가 되어서는 발을 내리딛을 때 거의 도가니가 찢겨가는 듯한 아픔이 있었다. 절룩거리며 왼발을 제외한 세 다리로 하산 재개.

 

그래서, 해발 4,12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해발 2,360미터의 시누와까지 내려오기까지는 카메라도 가방 안에 넣고

 

무사히 내려오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특히 점심 먹고 이후의 코스가 꽤나 가파르고 험한 돌밭이어서 조심조심.

 

그래도 무릎에 맨소래담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네팔 현지 연고를 바르고 손수건을 압박붕대삼아 칭칭 감고 걸으니 좀 괜찮은 듯 하여

 

여지없이 열시간 가까이 걷는 하루를 이어갔다. 저녁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이에 시누와 동네 사진 한장. 트레킹코스를 따라

 

길게 형성된 롯지들의 군집. 그게 시누와를 포함한 다른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마을들이 생겨나고 커지는 방식인 듯 싶다.

 

 

저녁은, 두둥. 어느 롯지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Noodle' 메뉴 중의 하나, 'Korean shin lamen noodle'. 심지어 한글로 '신라면'이라

 

적혀있기도 하길래, 대체 맛이 어떠려나 궁금해서 한번 먹어보았는데, 면발이 꼬들꼬들하고 한국보다 더 매콤하니 맛있었다.

 

다리가 아프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등산길보다 하산길은 훨씬 빠르게 주파하는 중이다.

 

올라올 때는 근 이틀이 소요되었던 구간을 하루만에 내려와버린 셈이니. 다리가 안 아팠다면 훨씬 빨리 내려올 수 있었을 듯.

 

 

 

 

남도의 끝, 완도에서도 배를 타고 한시간 못 미처 바다를 달려나가야 도착하는 호젓한 섬 청산도.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선정된

 

섬에서 느긋하게 흐르는 시간대를 담아내려면 왠지 필름카메라가 땡기는 거다. 77년생 소련제 카메라 Zorki 4K.

 

 섬을 종으로 횡으로 이어주는 청산도 슬로길을 설렁설렁 내딛는 걸음 따라 서편제의 풍경이 지나가고 누런 황소의 울음이 맺힌다.

 

 

 섬까지 물자를 실어나르기 쉽지 않아서였을까, 야트막한 단층 가옥을 짓고는 창문은 음료수병꽂이로 대신했다.

 

 

 양귀비가 시뻘겋게 피어난 붉은 밭, 그너머로 다랭이논들처럼 켜켜이 지붕을 잇고 덧붙인 마을의 울긋불긋한 슬레이트 지붕.

 

 구불구불 끊길 듯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마음도 출렁출렁.

 

 

범의 머리 모양을 닮아 범바위라는 이름이 붙은, 청산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뷰포인트 지점.

 

자성이 강해 나침반이 오작동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스캐너가 좀 문제가 있는지 사진들이 좀더 흐릿하고 어둡게 스캔된 게 틀림없지만, 그래도 뭐 일단은 Zorki와의 조우 이후

 

어떤 풍경들을 담고 있는지 남겨두기 위해서라도 몇 장 골라서 올려두는 셈이다.

 

 

 

 

 

뭐,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고.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전날까지 심하게 내렸던 눈으로 인해 대부분의 코스가 막혀버리고 하류쪽

 

약간의 코스만 열려있던 상황이었는데, 그걸 모르고 눈을 헤치고 휘적휘적 나아가다가 어느결엔가 출입통제구역들까지 헤집었단 얘기.

 

 

 

 

에메랄드빛 호수 위로 슬몃 바람이 지나면 가지 위로 한껏 쟁여놓았던 눈발이 마치 하늘에서 내리듯 푸지게 쏟아져내린다.

 

 

아직 사람 하나 지나지 않은 하얀 설원 위에 길을 만들며 휘적휘적, 전후좌우 위아래로 온통 새하얀 풍경들이 쉼없이 이어진다.

 

 

 

 

 

무슨 말을 더 붙여야 할까. 그저 잠자코 사진이나 올릴 수 밖에.

 

 

 

벤치 위에 사람 대신 눈이 그득하니 앉았다.

 

 

 

 

제설차가 밀고간 눈이 온통 길 양옆으로 밀려나면서 다리를 완전 막아버렸지만, 저길 또 뚫고 지나가보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또 신세계. 대충 플리트비체 호수들의 중심, 코자크호수의 중류까지 도착한 듯 하다.

 

 

내가 만들어온 길도 한번 슬쩍 돌아봐주고. 이제 제법 태양이 중천으로 치솟고 있는데도 워낙 사람도 없고 조용하다.

 

 

그치만 또 이런 말갛고 투명한 녹빛의 물이 유유히 흐르는 새하얀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냥 좋다.

 

 

 

 

 

 

 

 

 

 

 

 

 

 

 

커다란 S자로 휘이~ 돌아가는 저 산책로를 밟고 싶어서 이리저리 길을 뚫어보려 하는 참이다. 짙은 초록빛의 호수 가운데의 새하얀 길.

 

 

문득 잊혀졌던 바람이 다시 불면, 어제의 삼엄했던 폭설이 재연되는 순간.

 

그 와중에 내려가는 길을 찾아냈다. 아마도 여기가 날좋은 날엔 보트를 타거나 하는 식으로 호수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포인트인 거

 

같지만, 나중에 다시 올라오면서야 폭설로 출입통제였음을 확인했다. 어쩐지..내려가는 길에 몇번이나 위기를 넘기고. 결국 자빠지고.

 

 

 

결국 한번 되게 넘어지고 나서야 바닥을 보았다. 이곳에서 보이는 플리트비체 호수들의 풍경은 또 굉장히 다르다.

 

 

 

 

 

대체 뭔 사진을 버리고 뭔 사진을 취해야 할지 정하기도 쉽지 않다. 아니, 그보다 플리트비체의 한순간한순간이 너무나

 

인상깊어서, 어느 한토막이나 풍경 한조각을 버리기가 너무 아깝다는 게 맞겠다.

 

 

이번에 방문했을 때는 3월 중순의 늦은 폭설이 내린 직후라 이런 숨겨진 기적같은 풍경들에 매혹당하고 말았지만, 좀더 날씨가 풀리고

 

초록초록 울울창창하게 단장한 플리트비체를 만나는 것 역시 또다른 기적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일지 모르겠다. 언제고 꼭, 꼭,

 

다시 한 번 맨눈으로 다시 보고 싶은 최고의 비경.

 

 

 

 

 

 

 

앞서거니 뒷서거니 움직이던 프로 사진기사 아저씨 일행과 나. 전날 내린 폭설 덕에 한사람 걷기도 쉽지 않은 외길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서로의 위치를 빌려주기도 하고, 서로의 카메라가 향한 곳을 흘깃거리기도 하고.

 

 

 

그리고 잠시 한눈 판 사이, 나는 더이상의 접근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돌아섰던 그 곳을 훌쩍 넘어가버린 프로 아저씨. 엄청 불어난

 

물 때문에 통나무로 만들어진 산책로가 거의 수면 아래로 잠기다시피 했던 길인데, 저 길 너머에 플리트비체의 대폭포인 벨리키폭포가

 

있는 거다. 아마도 이렇게 한 걸음 떼는지 마는지가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일지도.

 

산책로 아래로는 바로 또 낭떠러지 폭포가 이어져 있어서 물소리도 귓전을 때리고, 사방에서 날아다니는 물방울도 온몸을 때리고.

 

 

급물살은 찰박거리며 쉼없이 산책로를 들썩여대고, 폭포수의 맹렬한 소음과 진동은 몸 전체로 전해지는 상황. 이미 신발이고 옷은

 

흠뻑 젖어버렸고, 그저 카메라나 놓치지 않도록 꼭 쥐고 있는 것이 고작인 상황.

 

그래도 역시나, 이쪽에서 바라본 풍경들도 하나같이 숨을 멎게 만들 만한 그런, 절경이다.

 

 

멀찍이서 보이던 눈꽃들의 세세한 디테일과 원근감이 하나씩 드러나는 풍경 속에서, 좀더 두텁고 둔중한 소음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벨리키 폭포. 플리트비체 하류의 대폭포라고도 불리는 이 폭포는 물의 낙폭이 78미터라나, 아래에서 올려다보기 쉽지 않다.

 

 

그리고 폭포 아래로부터 어딘가로 다시 모여 흘러내리는 개울을 이루고는 오랜 세월 무성한 나무들을 키워냈다.

 

 

눈이 많고 추운 계절이라 그런지 아직 유량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도 않은데, 소리나 위용은 굉장히 사납고도 맹렬하다.

 

 

옆엣 산책로를 조금 빗겨 올라가서 벨리키폭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한껏 감상했다. 참, 이쁘고도 오묘한 경치다.

 

 

끊긴 다리를 향해 돌아가는 길, 벨리키 폭포는 플리트비체 공원 하류의 포인트이자 끄트머리이기도 해서, 이제 상류로 올라갈 시간.

 

 

상류쪽으로 멀찍이 보면, 조그마한 웅덩이 같은 에메랄드빛 호수들이 찔끔찔끔 이쪽으로 흘러내려오는 듯한 느낌이 있다.

 

카르스트지형의 특색이랄 수 있는 그런 하류로 미끄러지는 호수들, 그에 더해 하류의 눈꽃에서 미끄러지는 무지개도.

 

 

왠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더 많은 산책로가 폭포수에 먹혀버린 듯 하다. 앞에서 한바탕 찍고 간 프로 사진기사

 

아저씨도 조금 끙끙대며 건너가는 거 같더니 이유를 알 만 하다.

 

 

뭐, 급할 거 없으니 안전하게. 그리고 가능한 풍성하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리고, 산책로가 폭포수에 먹힌 바로 그 시점을 코앞에 두고, 인증샷 한 장을 남겨 이날의 모험을 기억해두겠다며.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앞서 프로 사진기사 아저씨가 선방을 뜨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앞장설 일은 없었지 싶다.)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무키네 마을의 유일한 레스토랑에서 피자 한판과 맥주 두병으로 맛난 점심을 해치운 후에 슬슬 숙소를

 

찾으러 눈보라 속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꽃이 만발한 작고 이쁜 민박집들이 열지어 서있어야 할 마을에는 온통 눈밭.

 

 그래도 용케 문 하나 열린 집을 발견하고, 사람이 지나지 않은지 엄청 오래 되었는지 허벅지까지 쌓인 눈을 지나 드디어 체크인.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입구는 두 개, 1번입구와 가까운 라스토바차 마을과 2번입구와 가까운 무키네 마을인 셈인데,

 

아마 공원이 폐쇄되었을 거라는 주인아저씨의 만류를 무릅쓰고 산책 겸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사람 하나 없는 길. 그래도 드문드문 제설차가 지났는지 큰 길에는 제법 눈이 치워진 흔적이 남았지만, 그 너머는 온통 눈이다.

 

 

 본격적으로 산길. 마을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면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카르스트 호수들이 이어지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다.

 

 

 그렇지만 온통 눈. 어쩌다 만난 관광객 커플에게 앞의 상황을 물었더니 공원은 폐쇄되었고 사람 하나 없는데다가 길도 끊겼댄다.

 

그래도 일단, 풍경이 넘넘 이뻐서 무작정 앞으로 홀린 듯이 나가게 된다. 인적은 끊기고, 소복소복 쌓이는 눈에 소리는 모두 지워지고.

 

 

부지런히 길을 틔워놓는 제설차량의 바퀴자국. 그 위에 다시 소리없이 나려들며 흔적을 지우는 백배 더 부지런한 눈.

 

 

 

이윽고 도착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2번 입구. 폭설이 아니었어도 이미 입장시간은 아니었구나.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오픈.

 

내친 김에 다른 정보들도. 성인용 1일 티켓은 80쿠나, 아이는 40쿠나로 반값, 그리고 이틀짜리 티켓은 성인 130쿠나, 아이 60쿠나.

 

 

 

모른 척 하고 아무도 지키지 않는 입구를 넘어서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온통 하얀 세상, 나만 혼자 남겨진 듯한 착각.

 

누군가의 발걸음을 희미하게 지워둔 채 허벅지까지 들어가는 눈폭탄이 그곳에 있었다.

 

 

찔끔 겁이 나 버려서, 어디선가 들리는 졸졸졸 물소리를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다 말고 포기하기로 했다.

 

여기선 발을 헛딛고 추락하거나 눈밭에서 뒹굴다가 죽어버려도 한동안은 아무도 찾지 못할 거 같단 생각이 들길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전경이 담긴 안내판 위로 수북하게 눈을 이고 지고 있는 나뭇가지들이 축축 늘어져버렸다.

 

 

 

 

 

그리고 이젠 더이상 뭐라 할 말도 없는 하얀 세상.

 

 

 

 

 

저 아랫쪽으로 보이는 데가 아마도 초록빛 신비로운 색감의 플리트비체 호수들이 웅크리고 있는 국립공원 내부.

 

 

 

 

 안내판도 온통 눈으로 하얗게 지워져 버려서, 대체 어디가 어딘지, 아까 밟아 내려왔던 길을 다시 그대로 찾아 올라가기도 힘든.

 

 

 그래도 불쑥 튀어나온 표지판에 의지해서 다시 찾아온 무키네 마을, 사실 2번 입구와 무키네 마을은 고작 2킬로 남짓

 

떨어져있을 뿐인데 이렇게 눈이 푸지게 내리고 길을 지워버려서야 도무지 거리감각이고 뭐고 없다.

 

 

아까 눈여겨보았던 그 슈퍼마켓. 와인을 한 병 사고, 700ml짜리 라키야를 한 병 사고, 일하시는 아주머니의 추천을 받아

 

안주로 제격이라는 치즈랑 오렌지, 올리브 좀 사들고 숙소로 돌아가 성찬을 벌이기로 했다.

 

이런 곳에 세워둔 차는 길고 지루한 겨울이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으려나, 상태는 괜찮으려나 괜한 걱정.

 

 

 

 

 

용이 지키는 도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Ljubljana라는 이름에서 보이듯 기묘하게 얽힌 채 이어지는 발음은 정말 쉽지 않다.

 

류블랴나. 오타가 아니다. 류블랴나. 그런 도시의 밤풍경은 도시의 이름과 닮아서 기묘하게 얽힌 골목들이 두 개의 혀처럼 얽힌다.

 

 

 류블랴나를 관통한 채 숱한 아름다운 다리를 남긴 강의 이름은 류블랴니차 강. 멀찍이 언덕 위의 류블랴나 성이 보인다.

 

 

류블랴나 구도심의 중심인 프레셰렌 광장으로 이어지는 다리. 대체 왜 이리도 발음들이 어려운지, 혀의 낯선 움직임만큼의 거리감이

 

아마 한국과 슬로베니아의 거리감일지도 모르겠다.

 

 물이 맑아서 저런 빛깔이 도는 건지, 아니면 특정한 광물이 녹아들은 물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유속이 되는 강이 시퍼렇다.

 

 

 그리고 밤이 되니 한층 더 흉악해진 눈빛과 포악스런 근육들을 꿈틀거리는

 

 

손님이 들어설 때마다 입구의 주인 아저씨가 피아노로 한곡조 멋지게 연주를 해주는, 따라라라딴딴딴. 그런 서점을 가진 거리.

 

류블랴나 성으로 향하는 길 어귀, 그래서 그런가 가게 앞 셔터를 내리는 대신 삐죽삐죽 못이 튀어나온 방어진을 설치해놨다.

 

 

오벨리스크가 서있는 조그마한 광장을 지나고.

 

류블랴나 시내의 미니어쳐-라고 해봐야 꽤나 커서 왠만한 중간방 사이즈만한-지도가 있는 프레셰렌 광장을 지나면 신시가가 나온다.

 

 

슬로베니아 스타일의 맥도날드 메뉴를 선전하는 광고판에 불이 들어와 있기도 하고,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힌 슈퍼와 온갖 샵들에 기대어 풍금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가 보이기도 하고.

 

그 뒤로는 쇼핑하러 들어간 주인을 기다리며 문 앞에서 충직하게 경계중인 견공이 한 마리.

 

 

그리고 류블랴나의 음악홀..이었던가, 덩그마니 자리잡은 건물을 은은하게 감싸고 있는 조명이 참 이쁘더라는.

 

아무래도 이 용의 위풍당당하다 못해 무시무시한 모습은 서양과 동양의 '용'에 대한 이미지가 갈라지는 지점에 서 있지 싶다.

 

동양의 용에서는 위엄있고 우아하고 현명하다는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면, 이 용님께옵서는 그저 무섭다. 가차없는 야수나 짐승의 느낌.

 

 

 

 

이전에 울릉도 나리분지 안쪽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집들에서 한꺼번에 연기가 오르는 풍경을 본 적이 있다.

 

누런 햇살이 분지를 감싸고 도는 구릉에 빗겨 내리쬐는, 먼지가 풀풀 일던 비포장도로를 몇시간째 걷고 난 저녁무렵이었다.

 

 

그제서야 어느 시에선가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노래했던 구절의 정서가 온전히 와닿을 수 있었는데,

 

포항의 호미곶-임곡간 해안도로 코스 초입의 펜션 창가에서 문득 다시 그 풍경을 반추하는 아침을 맞았다.

 

 

드세고 짭조름한 바닷바람도 채 깨어나지 못한 이른 아침, 무턱대고 하늘로 하늘로 치솟던 농밀하고도 새하얀 연기. 구름.

 

사람 하나 없어보여도 엄연히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는, 또 한끼 식사를 챙겨먹을 거라는 표지, 그건 마치 힘내자는 다독거림.

 

 

 

 

 

100여년전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다는 구룡포항 앞의 조그마한 거리, 일본식의 '적산가옥'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곳으로 향하는

 

입구를 지나면 여느 소도시, 아니 조그마한 마을의 아기자기한 거리 풍경이 그대로 나타난다.

 

 

높아봐야 2층짜리 건물들이 어깨를 맞부비고 있는 조그마한 골목통, 그 와중에도 네모 반듯반듯하고 말끔한 분위기의

 

일본식 건물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옆엣 건물들의 어깨 사이에서 살짝 기죽어 있는 듯한 단층 건물 역시 담백한 직선과 네모로 이루어진 형태가 일본냄새를 풍긴다.

 

 

100년전의 낡은 지붕, 붉은 벽돌과 뻥 뚫린 나무창살까지 일본식 가옥거리의 이전 모습과 지금 모습을 비교한 사진들.

 

 

 

잔설이 채 녹아내리지 않은 채 하얗고 까만 일본식 기와가 얹힌 담장들이 차분하다.

 

그렇게 골목통을 따라 휘휘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일본식 가옥들은 저만치 밀려나고 또다른 생활의 풍경이 나타난다.

 

날것의 거칠한 질감 가득한 콘크리트 벽돌블록을 쌓아만든 담장 옆에는 그래도 구룡포 앞바다빛깔을 담은 파란색 칠의 대문이.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는 외계인 가면처럼 생긴 오징어들이 배를 째고서 바닷바람에 마르는 중이었다.

 

지붕위를 두텁게 덮었던 하얀 눈이불은 발치까지 끌어내려져서는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온통 녹슬어버린 파란 대문짝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풍상, 바닷바람의 짠기, 그리고 이곳 사람들의 일상..

 

 

분분이 남아있던 잔설들은 단정하고 담백한 일본식 기와지붕의 갈비뼈를 까맣게 드러냈고, 거칠고 투박한 벽돌은 축축하게 적셔주었다.

 

 

산기슭을 따라 형성된 근대문화역사거리의 가장 윗동네에 있던 초등학교는 언제부터인지 폐교된 채 방치되었다.

 

그리고 윗동네에서 내려다본 구룡포항의 저녁 풍경. 불밝혀진 노점들의 행렬 너머로 바닷물이 일렁인다.

 

 

어느 골목에서 발견한 찻집. 잠시 들러 몸도 녹이고 차 한잔을 하려 하였건만 자리도 몇 개 안 되고 문도 일찍 닫는 듯 하다.

 

 

애초엔 '근대문화역사거리'인 줄만 알고 들어섰던 골목길이었지만 꼭 그런 느낌만 담겨있던 공간은 아니었다.

 

사실 늘 새롭고 예기치 않은 풍경으로 이끌어줬던 건 이런 골목길들이 품고 있는 마력 덕분이었으니, 이곳 역시도 마찬가지.

 

 

 

 

 

 

 동국대 캠퍼스 너머 남산N타워가 올려다보이는 장충단공원에 다다른 짧은 가을 풍경.

 

돌로 만들어진 석교 위로 사뿐사뿐 떨궈지는 색색의 낙엽을 즈려밟고 가을이 줄달음질치는 중이다.

 

 공원 한쪽에는 가을빛을 머금은 맑고 차가운 개울이 흐르고, 그 위로 울긋불긋한 가을 풍경이 한겹 깔렸다.

 

새파란 하늘, 바삭바삭 익어가는 가을 낙엽들.

 

 

곳곳의 벤치에서 따끈한 가을볕에 몸을 덥히며 여유로운 시선으로 가을 풍경을 만끽하던 사람들,

 

장충단공원의 가을이다.

 

 

 

 

 

 

썬크루즈호텔의 갑판부 위에 있는 풀장에서 바라본 정동진 해안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하던 시간대.

 

해수풀장이었으니 아마도 정동진 앞바다에서부터 퍼온 물이었을 텐데, 작은 파이프에서 쏟아지는 수압이 생각보다 세다.

 

  

 

저녁 7시가 넘어도 아직 사위가 흐적흐적 발가스름하던 때. 고작 두어달이 흘러 해넘이의 호흡은 무척이나 가빠졌다.

 

 

 

호텔 안 7, 8층쯤의 객실에서 내려다본 풍경.

 

 

양손을 살짝 벌려 치켜든 자세는, 살짝 어색하면서 변태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해를 잡으려는 손짓이라 치자.

 

'손각대'를 쓰다보니 좀 많이 흔들렸지만, 조리개를 바짝 조인 렌즈의 빛갈라짐이 제대로 잡혀서 그냥.

 

 

호텔 로비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고, 천장에는 열두 별자리의 상징들이 원형을 이루며 박혀 있었다. 이건 물병자리.

 

 

선크루즈 호텔 앞으로 살살 걸어본 야밤의 산책 풍경.

 

 

 

 

유람선 한 척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서 이 곳에 올려서는 호텔로 쓴다는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저 아랫쪽으로는 조금은 작은 배 모양으로 만들어진 횟집. 옆에는 요트들이 줄줄이 주차중이다.

 

 

호텔에서 뻗어나가는 산책로는 정동진 시내를 굽어보는 전망대로 이어졌다. 작고 어슴푸레한 불빛무더기.

 

 

 

밤마실을 마치고 새벽 해돋이를 보러 달려나가기 전, 잠시 희뿌연 분위기를 감상하며 호텔의 정원을 살폈다.

 

 

그리고 해돋이. 이 호텔과 정동진은 특히 새해 첫 해돋이를 하겠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고 하는데, 사실 꼭 그런 날

 

해돋이를 보겠다고 남들 모두 줄서서 가는 곳에 덩달아 가는 건 조금 생각해볼 부분이 있는 거 같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해돋이가 꽤나 볼 만한 건 사실이니 굳이 새해 첫날 말고, 언제든 본인이 맘을 다잡고 싶은 때

 

오는 건 어떨까. 모든 사람들이 요이땅, 해서 새해 1월 1일부터 새사람이 되겠다며 다짐하는 건 좀 그로테스크하다.

 

정원에서 자라는 나무나 풀들을 보면 꽤나 이국적이다. 무성하지는 않지만 야자수도 자라고.

 

밤마실을 다녔던, 그땐 잘 알아채지 못했지만 꽤나 잘 다듬어진 정원.

 

호텔 출입구에 설치된 우표모양의 구조물. 오가는 투숙객들이 전부다 저 안에 들어가서 기념사진을 찍던.

 

 

 

밤에 봤던 야경이 조금은 어설프고 부족해 보였지만, 역시 바닷가 풍경이 뜨거운 여름 대낮에 봐야 진짜다. 파라솔들하며.

 

 

그리고 다른 쪽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장승공원도 있었는데, 관리가 안 된 건지 아님 잡초들이 워낙 생명력이

 

강인한 건지 거의 버려졌다 싶은 느낌으로 황량하던, 두눈 부리부리한 험상궂은 표정의 장승들이 더욱 부각되던 곳.

 

 

 

 

 

 

찜사쪼이 쪽에서 센트럴을 바라볼 수 있는 해변 산책로, 스타 페리를 탈 수 있는 선착장 바로 옆에는 2층짜리

 

뷰잉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월, 수, 금의 저녁 8시가 될 무렵이면 데크 위는 물론이고 해변가에 온통 몰려나온

 

사람들은 센트럴의 고층빌딩들이 밝힌 불빛을 홀린 듯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8시, 정각이 되면 건물 곳곳에서 소리 없는 폭죽처럼 쏘아올려지는 레이저 불빛 조명과 함께 스피커에서는

 

음악과 알아듣기 힘든 내레이션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덩달아 바빠지는 사람들의 손놀림은 덤이다.

 

완짜이 쪽에 있는 홍콩 컨벤션엑시비션 센터. 서울 삼성동의 코엑스나 비슷한 기능을 맡은 건물이지만 모양새나 입지가

 

천양지차다. 바다에 접해 있는 그럴 듯한 모습하며, 화려하게 번쩍거리는 조명을 두른 모습하며.

 

 사방에서 쏘아올려져 어지러이 허공을 노니는 레이져 불빛들, 그 와중에도 빅토리아항 앞바다를 가르는 조그마한 배들.

 

 

 

 이런 깜찍하고 귀여운 디자인의 배도 통통거리며 홍콩의 화려한 밤 풍경에 한 몫을 더한다.

 

약 15분여의 '심포니 오브 라이트' 쇼가 끝나고 나면 일순 정적에 휘감기는 해변, 그렇지만 반대편에 우뚝 솟은 건물들은

 

여전히 번쩍번쩍 건물 실루엣을 따라 불빛들을 흘려내리고 흘려올리는데 여념이 없다.

 

 

쇼가 끝나고 난 뒤 송곳 하나 꼽을 틈 없던 뷰잉 데크엔 몇몇 사람만이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가 했더니 어느 순간 떠오른 초승달, 조금은 차분해진 홍콩 야경에 운치를 더하러 납셨다.

 

 

 

 

 

이 IFC 건물 위에는 잘 보면 자동차 한대의 형체가 숨어 있다. 헤드라이트 한 쌍, 본넷과 그릴, 유리창틀까지.

 

2003년 완공되었다는 이 88층 빌딩의 높이는 420m, 현재 홍콩 최고의 빌딩이자 세계 7위의 빌딩이라고 한다.

 

대나무를 모티브로 했다는 비대칭 삼각형의 중국은행 건물.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밋을 설계한 사람의

 

작품이라던가, 불빛들이 현란하게 건물의 아래위를 훑어내리는 통에 눈길이고 마음이고 쏙 뺏겨 버렸다.

 

그리고 찜사쪼이의 해변가를 지키고 서있는 시계탑. 아래의 정방형 연못은 왠지 워싱턴의 그것을 떠올리게 만들지만

 

일렁이는 실루엣과 불빛 조명들은 제법 그럴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Symphony of Lights' 쇼를 위해 바삐 움직이며 사방으로 조명을 흩뿌리던 녀석들.

 

그렇게, 기백장의 사진을 찍고도 제대로 된 사진 하나 건지기 힘든 홍콩의 야경 사진.

 

언제나 그렇듯 삼각대는 챙겨놓고도 정작 필요할 때는 쓰지를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보문동의 골목은, 서촌이나 이태원 경리단, 혹은 부암동의 골목길과는 또 다른 풍경이 숨어있었다.

 

사람 두명도 어깨를 부딪기며 걸어야 할 듯한 좁은 골목길을 롤러코스터처럼 타고 몸을 맡긴 채 한참을 흐르다가,

 

어느 허름한 집앞에서 문득 풍경을 발견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앉지도 못하고 스케치북을 잡은 채 서서 그리길 수십여분, 문득 옆엣집 낮은 담장 너머 중국어가 들리더니 삐그덕,

 

녹슨 철문을 열고 나온 사람들은 아마도 중국에서 넘어오신 일가족. 왠지 그분들 중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가

 

대표로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셨고, 나 역시 왠지 미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꾸벅하고 말았다.

 

 

 

이태원을 좋아라 하지만, 이쪽으로는 걸어 올라가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녹사평역에서 남산터널 방향으로,

 

그렇게 조금 걷다보면 나타나는 경리단 골목길. 그러고 보니 타코를 먹으러 한 번 왔다가는 영영 길을 잃은 그곳이구나.

 

함께 드로잉 수업을 듣는 동기이자, 부부가 함께 수업을 듣고 계신 잉꼬 한쌍 중 한 분이 나중에 가보라고 찍어주신 곳.

 

좁다란 시장통 골목을 슬쩍 가리고 선 화려하고 거친 파라솔, 그리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꽃망울들.

 

살짝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이 계속 되고 있었다. 굵은 가지에서 뻗어나가는 잔가지처럼 좌우로 뻗은 골목길들.

 

비슷한 간격으로 놓인 차들이 쩜쩜쩜... 말줄임표를 만들며 오르막길을 버티고 서 있었고.

 

간헐적으로 쟁여진 계단들은 숨이 가쁠만 하면 쉬어가라며 여남은걸음의 평지를 선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닥다닥 붙은 붉은 벽돌 건물들 사이로 슬쩍 날렵한 태를 내비추는 남산S타워.

 

 

그러다가 불쑥, 건물이 이어지던 곳에 주차장이 휑하니 공터를 주장하고 나서자 뒷켠에 숨었던 타워가 덩달아 나섰다.

 

 

이태원의 상권도 여느 이름난 곳들, 신사동이니 삼청동이니 처럼 미어터지기 시작했는지 여기저기 공사중.

 

먼지 비산을 막는 차양을 커튼처럼 치고서 아저씨는 벽돌 등짐을 지려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실핏줄처럼 번져나가는 골목들 중에 어느 하나라도 골라잡고서 무작정 걸어가다보면 무슨 풍경이 나올지 설레는

 

그런 느낌, 상해의 오랜 골목통이나 카이로의 오랜 골목들에서 느끼던 그런 묘한 설레임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공영주차장에 고경일쌤과 함께 올라서는 순간 탁 트이던 풍경. 서울N타워가 바로 지척에서 내려보는 느낌.

 

 

 

납작 엎드린 건물 옥상에서 제법 매운 봄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던 빨래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일단 그림 하나를 후딱 그리고 나서, 타워를 바라보며 조금씩 각도를 옮기며 풍경을 보는 중. 꼬물꼬물한 건물들.

 

 

건물들이 야트마학 사선을 따라 조금씩 무릎을 낮추며 이지러지고 있는 풍경 자체의 운율감이 리드미컬하다.

 

 

 

비슷비슷한 풍경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느낌의 풍경들. 커다란 나무가 웅크린 산비탈 아래의 골목길 끝단에서부터.

 

어지럽게 비틀린 골목길을 따라 잔뜩 어그러진 골목 담벼락.

 

새삼 그림이 그리고 싶어져서, 혹은 재미있어서 이 수업을 들으시는 분들도 많지만 그 중에는 은근 실력자들도

 

많이 숨어 계신데, 이 분도 그런 실력자 중의 한 분. 앉아계신 분위기부터 벌써 다르다.

 

 

경리단길을 오르다보면, 그새 올라간 높이만큼 계단이 삼엄하게 사방으로 오르내린다. 내려와 살피면 옹이구멍만한 하늘.

 

그리고 어느결에 풍경과 하나가 되어버린, 자연스레 그림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하고.

 

 

공영주차장에서 바라본 남산 서울N타워 주변으로 헤쳐모인 성냥갑 집들. 그 오밀조밀 바스락거릴 듯한 풍경과

 

여성전용 주차장 사이에 가로놓인 구멍송송 새하얀 담벼락이 왠지 유럽의 어느 나라를 떠올리게 만들었던 하루.

 

 

 


부산 감천 문화마을의 껍데기, '부산의 산토리니'라고들 하는.


이전 포스팅에서는 그래도 최대한 '껍데기'의 아름다움, 전체적인 외견상의 풍경을 담으려고 했지만 곳곳에서 물이 새듯

현실의 신산함, 고단함이 묻어나는 걸 피할 수 없었던 거 같다. 그치만 사실 그 몇겹의 페인트칠로 달동네의 가파른 경사와

그만큼 가파르게 짊어진 무게감이 가려질 수 있을까. '산토리니'란 이름이 갖는 묘한 설레임과 이국적인 향취, 그 별칭을

갖기엔 여전히 이 곳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가볍지가 않다. 그런 헛되고 헛된 별칭 따위, 자꾸 그렇게

부를수록 사람들은 껍데기만 구경하고 그 안의 사람들을 잊지는 않을까 저어스러울 뿐이다.


풍경 안에 최대한 사람 냄새를 담으려 했다는 핑계로, 나 역시 카메라를 들어 풍경을 담았지만 이건 참. 예의가 아니다.


온통 색바랜 채 아귀힘조차 잔뜩 풀려버린 듯한 빨래집게들이 때가 꼬질꼬질한 빨랫줄에 턱을 괴고 매달려 있었다.

태극기와 무궁화가 주렁주렁 박혀있는 깃발대. 왜 저것들이 보이는 풍경은 늘 적당히 촌스러워 보이는 걸까.

골목길 한켠의 구멍가게 하나 겨우 차릴법한 공터에 윗몸일으키기용 기구와 자전거, 아령 두개가 놓였다. 그리고 이름붙기를,

"운동하는 곳 소변금지". 아닌 게 아니라 적당히 술이 오른 사람들이 슬쩍 가로등 불빛을 피해 바지춤을 내리기에 딱 좋은 곳.

온통 불룩불룩 부풀어오른 슬레이트 지붕 위의 커버. 의도한 건지 아니면 가스같은 게 찬 건지 모르겠지만, 롯데월드어드벤쳐의

그 펑펑 소리가 울리는 가짜 성벽과 동굴벽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이곳이 뭔가 7,80년대 달동네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찍기에 맞춤한 세트장 같단 생각이 계속 들어서일까.

화려한 몸빼바지와 셔츠가 내걸린, 벽과 벽과 슬레이트지붕으로 둘러싸인 채 한줌도 안되는 하늘 아래 바람을 기다리는 곳.

계단이라고 반듯하게 만들어졌다거나, 보폭을 감안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적당히 시멘트를 개어서 적당히 척척,

발딛을 곳만 층층이 만들어주면 끝. 그래도 이 황량한 풍경을 견디게 해주는 건 곳곳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꽃화분들.


그리고 믿기지 않게도, 그 좁다란 골목을 따라 쇠봉을 두개 세우고는 여차할 때 빨래 거는 용도로도 쓰기도 했다.

이런 풍경들. 누군가에겐 그냥 조금 '불편'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본인이 아니라면 그렇게 말할 일은 아니다.

자칫 우범지역으로 화하기 쉬운, 사람들이 떠나간 빈집들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는 낡고 허름하고 가로등도 귀한

골목인지라. 범죄가 발생했을 때 바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해둔 위치 정보. 근데 이런 건 산에서 조난당했을 때나 쓸법한

방법 아닌가. 말하자면 여긴 동네 야산보다 높은 수위의 안전 장치가 요구되는 곳이다.

삐뚤빼뚤 대강 그어진 선들이 건물을 이루고, 옹벽을 이루고, 길가에 앉아계신 할머니 몸위로 쏟아져 내릴 듯한

시멘트 덩어리를 윤곽짓고 있었다.

어느 집과 집 사이, 여지없이 가스통이 세워진 그 틈새 사이에 지압 효과까지 겸한다는 훌라후프가 박혀 있었다.

저 커다란 훌라후트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방안에서는 택도 없을 거 같은 조그마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곳에서, 아마도 사람들의 운동장은 그네들의 집 옥상이 아닐까. 파랑색 수조통이 거개의 공간을 차지한.


이런 정도의 가파른 비탈, 한결같은 그 비탈 위에 건물들이 쓸려내려오다 가까스로 멈춘 듯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 감천동 문화마을이란 곳에 붙은 '부산 산토리니'라는 별칭은, 그리고 '문화마을'이란 이름조차, 어쩌면

이렇게 날것의 시멘트 위에 살짝 엉켜붙은 석회 같은 거 아닐까 싶다. 언제고 쉽게 씻겨나갈 수 있는 분칠.

그 아래에서 시멘트는 여전히 거칠하게 차가운 냉기를 내뿜으며 퇴락해 가고 있는 거고.

신속하고 전화비는 무료,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 112를 안내하는 저런 거창한 광고 문구라니.

이곳저곳에 내걸린 빨래들이 바람에 함부로 휘둘리고 있었다. 무기력하게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몸을 내어맡긴

빨래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몸에 힘이 빠져나가고 허탈해지는 느낌마저 들더라는.


한때 그래도 마을의 가게였을 곳, 위에 덮였던 차양은 전부 뜯긴 채 앙상한 뼈대만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바람에

희롱당하고 있었다.

저렇게까지 쇠가 삭아나가려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하는 걸까. 그리고 언제부터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되었을까.


외벽이 없는 계단이란 건, 굉장히 위태해 보인다. 더구나 이곳처럼 경사가 급한 마을에서 아랫쪽으로 한없이

굴러떨어질 수 있는 곳으로 휘감아 돌아가는 계단이란 건.

야트막한 집들 사이로 불쑥 솟아있는 저 고층 아파트는, 왠지 서울로 치자면 강남의 타워팰리스랄까. 그런 위화감.




위태한 계단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상이 기우뚱해 보인다. 아랫쪽의 철사를 두른 장독 하나와 풀떼기가 심긴

항아리가 신기해서 요리조리 살펴보았는데, 좀체 그 커다란 장독의 쓰임을 알 수가 없다.

전봇대가 힘겨워보이도록, 사방팔방에 십육방위로 하늘을 쪼개고 있는 전선들.


이 곳에서도 곳곳에서 보이던 교회의 십자가, 첨탑들. 비탈길의 각도를 완만하게 버혀내고 산뜻한 페인트로 건물을

단장해줄 수 있다면야 약간의 '마약'은 꽤나 유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기도 훌라후프 하나가, 공사가 진행되다가 만 건물인지 아니면 부수다가 만 건물인지 모르겠으되 뾰족하니

위태롭게 튀어나온 철근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이 동네, 훌라후프 보급운동이라도 벌어졌던 건가.

우리누리공부방 가는 길, 무슨 사막처럼 황량한 풍경이 펼쳐졌나 했더니, 흙바닥인가 했더니. 온통 시멘트가 부어져

꽁꽁 굳어있던 시멘트바닥.

그리고 터키니 대만이니 일본이니 프랑스니, 글로벌한 국기들의 휘황하던 공부방 옆에 만들어져 붙어있던 타일들,

그곳에 씌여진 말들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당연한 거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이렇게 허물어지기 직전처럼 보이는, 폭삭 삭아버린 슬레이트 지붕이 바람에 날려갈까 시멘트 벽돌로 눌러둔 공간.

빨간 대야들이 온통 집밖에 전시된 채 비바람과 햇살에 바래가는 공간.

미용실에 붙은 스티커가 온통 잘근잘근 찢기고 터져나가도록 간판조차 바꾸지 못한 채 문닫은 공간.

그리고, 언제 찍었는지 알 수 없는 사진들 속 사람들이 온통 하얗게 바래지도록 남겨지고 지체된 공간.

오락실조차 온통 기계들이 불을 끈 채 잠들어있던. 사람들의 생기나 온기를 바로 느끼기가 쉽지 않던 공간.


그런 것들이 이 곳, 감천동 문화마을이 감추고 있던 속살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건물들의 군집이 이루는

그 전체 그림만을 보고 감상하며 '산토리니'니 '마추픽추'니 하는 건 좀 실례가 아닐까 싶은 거다.

간판 대신 거북이 박제가 걸려 있는 가게도 있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원하면 저거 사가라고 걸어둔 거라며

친절하게 말씀해주시던 할머니도 계시고.


아, 그리고 이곳 감천동 문화마을이, 감천2동이, '부산 산토리니'가, 태극도 마을 혹은 태극마을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 1950년대부터 이곳에 형성된 '태극도'라는 종교 집단의 집단거주구역이 감천동 이 곳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이 곳에 들어가서 '도인'께 들은 설명에 따르자면 현재 이곳 문화마을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 중에도 상당수가 여전히 '태극도' 신도인 '도인'이라고 하던데 진위 여부는 모르겠고.

감천동 문화마을, 그곳엔 사람이 살고 있다.

산토리니 따위 허명에 속아 이쁘게 담으려 하는 것보다, 그곳에 사는 분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게 우선일 듯 하다.

그리고 사실, '산토리니'라는 포장으로 이곳이 관광상품화되고 팔린다 치자. 지역경제에, 이 곳에 사는 분들에게

어떤 혜택이 얼마나 주어질까, 주어지기나 할까. 도리어 구경거리로 전락했다는, 최소한의 자존감마저 망가뜨리는

건 아닐까, 그치만 또 이런 건 너무 앞선 걱정은 아닐까, 여러가지 고민들이 일어나는 건 결국.


어딘가로 가서, 누군가의 일상이 전개되고 있는 공간을 침범해서 렌즈를 들이대고 걷는다는 행위 자체가

지극히도 이기적인 탓인지도 모른다.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5시만 넘으면 뉘엿뉘엿 어둠이 깔리고 햇살 대신 인공 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밤바다가 먹장처럼 새까매져 도저히 바다와 하늘이 어디에서 갈려나가는지 구분을 못한다고 하지만 광안리

광안대교의 저 휘황한 불빛아래에선 선연하게 갈려나간다. 불빛이 색색의 피아노건반처럼 바닷물에 물든

저기가 바로 수평선.

어둑해지고 나선 누런 모래사장 위로 바닷바람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곤 하지만 쌍쌍이 모여앉은 커플들 사이엔

바닷바람 대신 훈풍이 일고, 영 어설프고 심심한 폭죽이나마 번갈아 쏘아올리니 좀 볼만한 풍경이 되었다.

삼각대는 맨날 들고 가선, 숙소에다 쳐박아 두고 막상 쓰질 못하네..야경 찍을 땐 참 넘넘 아쉽다.



광안리를 굳이 찾는 이유 중의 하나는 광안리 회타운. 1층에서 싱싱한 횟감을 직접 고르고 원한다면 회치는 모습도

볼 수 있는 게 아무래도 가장 큰 매력인 거 같다.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저 고층빌딩 전체에서 사람들이

생선을 잡고 횟를 씹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그로테스크하긴 하다.

언뜻 보면 상해의 야경 같기도 하고. 조금 스케일도 작고 불빛의 휘황함도 못 미치는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바닷물이 이렇게 짓쳐들어온 해안선이라거나 모래사장이 있다는 게 나름의 매력인 거 같다.

모래사장에 텐트를 치고 뭐하시나 했더니, 사주팔자에 관상을 봐주신다는 도사님들이 텐트를 치고 불을 밝혔다.


광안리 해수욕장의 근경과 원경. 깜깜해진 밤바다 수면 위로 번쩍거리는 네온사인 불빛이 미끄러질 때마다 반짝반짝,

나이트 싸이키 조명처럼 단속적으로 반짝이는 조명을 받으며 연인들이 미끄러졌다.



새만금, 몇 년전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그 전에는 간간히 뉴스나 신문에서 접했던

그 곳 새만금에 와 보기는 처음이었다. 어디서 어디가 매립지인지도 가늠하기 힘든 그 곳, 직선으로 쭉쭉 뻗은 도로만이

이 곳이 지도위에 그려진 몇개의 직선을 따라 만들어진 땅일 거라 짐작하게 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거침없는 직선으로

내뻗은 도로를 따라 함께 저너머 안개가 자욱한 곳으로 내달리는 건 듬성듬성하지만 역시 완고한 직선으로 심어진 잔디.


2009 희망다큐프로젝트 "살기 위하여" 시사회..물막이댐을 쓸어낼 '재해'를 기다리며.

 

다큐를 보고 나서도 그렇지만 그 이전에도, 이런 대규모 간척사업이 대체 무슨 경제적 이득이 있을지, 그리고 설사

이득이 있다 해도 다른 생태계 파괴 등의 요소를 고려했을 때도 여전히 이득일지는 의문이었다. 그런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땅이 좁은 나라라 하지만, 실제로 쓸 땅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계획과 시스템의 문제 아니던가 싶어서다.

새만금을 둘러본 건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던지라 판단에 새로운 팩트를 가감하지는 못했지만, 풍경은 남았다.

아직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채 공사중이었던 새만금 관광센터 앞에서 빙글빙글 도는 동그란 순환로가 있었다.

군산으로, 부안으로, 그리고 수변로로 빠지는 길들이 동그라미 밖으로 빠지는 화살표들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그 옆에 노란 삼각형 안에 검은 화살표가 빙글빙글 도는 모습은 왠지 '재활용 표시'같기도 하다. 플라스틱이니

알루미늄이니 재활용이 가능하단 표시로 꼬리에 꼬리를 문 채 순환하는 화살표. 그렇지만 빨갛고 노란 바탕색에

검정 화살표가 그려져 있으니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는 불길한 징조 같기도 하다.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공사중인 모습. 저 멀리 무슨 갑각류의 딱딱하고 화려한 껍데기처럼 반짝이는 주황색

포크레인이 여러 대 세워져 있고, 앞에는 물빼기 작업용으로 쓰였을 녹슨 쇠파이프가 여러개. 그렇게 물이

바싹 빠진 바닥에 물새들이 몇 마리 깃을 접고 내려앉았다.

방조제를 따라 이어진 수변로를 쭉 걷다 보니 방조제 안쪽으로, 아마도 이제 폐선으로 버려지고 만 듯한 배들이

생각보다 잔뜩 있었다. 아직은 방조제 안쪽의 물이 전부 빠지지 않은 상태인지라 제법 둥실거리며 떠 있긴 했지만

바닷바람과 바닷물에 하릴없이 낡아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그리고 수변로 옆의 성기게 심어진 잔디밭 위에 동그마니 놓여있던 배 한 척. 그 조금 위로 씽씽 달리는 관광버스와

자동차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조금씩 흔들거리는 배는 어쩜 잔디가 일으키는 물결을 타고 있는 거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잔디가 어쩜 저리 반듯한 이랑을 만들어 놓고 있는지, 정말 굉장히 작위적이기도 하고 인공적이기도 하고.

그렇게 죽죽 그어진 잔디밭 골들은 그대로 얼어붙은 파도 같기도 하다. 안개가 잔뜩 끼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 빗발도

흩뿌리는 날씨 탓에 왠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반쯤 헐벗은 채 얼어붙은 파도 위에 올라앉은 배 한조각이 분위기를 더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눈에 걸리던 저 콘크리트 기반 위에 비석처럼 서 있는 게 뭔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봤다.

방조제 관리를 위한 전기설비 단자함이란 걸 알고 난 후에도, 이 땅 밑에 잠들어있을 수많은 바다 생명들, 이곳에

깃을 접고 내려앉았을 뭇 생명들, 그리고 이 곳에서 땅을 파고 바다를 일구며 살아왔던 사람들을 위로하는

반듯한 직선으로 만들어진 비석같기만 했다.


이 곳은 방조제로 감싸이지 않은, 살아있는 바다 쪽의 갯벌. 아직 살아있는 것들이 생생한 자취를 남기고, 그에

더해 파도가 얼기설기 갯벌을 흐트러뜨리며 손자욱을 깊게 긋고 내리는 곳.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갯벌을 뒤집고 뭔가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수변로 안 쪽의 갇힌 배들과는 달리 바닥을 드러낸 맨땅 위에 기우뚱 정박해있는 배들, 그건 오히려 이들이

아직 갇히지 않고 자유로이 바다 위를 달리며 움직일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다시 물이 들이차면 둥둥 떠올라선

사람들을 싣고 고기를 잡으러 앞바다로 나갈 준비가 된 배들이다.

수변로를 따라 앞서 내달리던 일군의 자전거 무리들. 관광안내소 앞 주차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달리기

대신 이층으로 탑쌓기 놀이 중이었다. 화려한 유니폼 때문인지 자전거를 차곡차곡 챙기는 모습이 무슨 탑쌓기

퍼포먼스를 하는 것 같더라는.

새만금 방조제가 가둬버린 땅과 바다에는 더이상 파도가 갈퀴질할 갯벌도, 갈퀴질의 흔적이 남을 만큼 말랑한 공간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대신 남은 건 온통 쭉쭉 뻗은 단단한 직선들이다. 게다가 아직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직선들은 사람들의 손길이나 자연의 세례를 받지 못해 엄청 날카롭고 황량해보이기조차 한다. 그러고 보면 여기서

보았던 유일한 동그라미조차 생태계의 순환이 파괴되고 재생이 불가해졌음을 묵시하는 것 같았던 거다.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제주도를 수차례 여행도 하고 출장도 다녀왔지만, 생각해보면 한라산은 늘 '아웃오브안중'이었던 듯 하다.

기껏해야 섬 한가운데 딱 박혀서는 겨울철에 갑작스런 폭설을 쏟아붓거나 변덕스런 날씨를 만드는 주범이라고나

생각했을까, 제주도의 찾아가볼 곳 중에서도 늘 빠졌던 한라산은 그냥 배경화면처럼 거기 있었던 거다.


이번에 그 배경화면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볼 기회가 있었다. 성판악에서 백록담으로 올라 관음사로

내려오는 구간, 오르는데 네 시간이 채 안 걸렸고 내리는데 다섯시간이 채 안 걸렸으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런 구간이겠으나, 아무에게나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는 백록담이 구름을 훑어내고 활짝 열렸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어서. BGM은 '헉헉헉' 쯤 숨이 턱에 닿는 소리라고 치고 사진만으로 포스팅.

백록담까지 오르내리는 길이나, 정상 아래로 깔린 운해나, 백록담의 미묘한 색감, 그리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들의 기이한 형상들까지. 아,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오르고 싶어졌다는 정도는 말해둬야겠다.


벌써부터 부처님 오신 날을 준비중이었다. 파스텔톤의 등불을 빼곡하게 달아두고 있던 경내 마당에

얼룩덜룩 팔각 그림자가 융단처럼 깔렸다. 올록볼록 엠보싱 같기도 하고. 전등사 이름부터 범상치

않더니 땅바닥에 연등 그림자를 내걸었다.

보통 알록달록한 원색으로 만들어진 연등에는 익숙했는데, 이런 식으로 파스텔톤의 다정다감한

연등들이 바람불때마다 쏴아, 가만히 앉아 그 빛깔들이 섞여들어가는 걸 보고 있어도 좋았다.

아무리 날씨가 구질구질하고 여전히 바람이 쌀쌀해도, 5월이 오긴 하겠구나. 이런 식으로

4월이 슬그머니 닥친 걸 보면.

색색의 꽃들, 전등사는 그러고 보면 한해에 한번씩은 꼭 가는 거 같은데. 그때마다 차를 갖고 가서

순무김치를 안주삼아 인삼동동주를 마실 수 없음에 아쉬워하면서 번번이 그런다. 술기운 대신

꽃향기를 맡고서 힘을 내는 패턴이랄까.

그리고 풍경의 두가지 버전. 요새 토이카메라 모드가 꽤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자꾸 찍어보게

되는 첫번째 풍경 사진, 그리고 그냥 여느 때처럼 찍은 두번째 풍경 사진. 물고기가 하늘에 둥둥

떠서는 바람결에 퍼덕거리다가 산호초 사이에 낑겨 버렸다.




방콕에서 인물 사진을 찍을 때는 간단히 물었다. 'May I?' 하며 카메라를 슬쩍 들어올리면

애나 어른이나 다들 알아듣고선 방긋 웃어주거나, 별 흔들림없이 시크하게 멈춰주거나.

그렇게 찍은 사진들. 황금산 위에 올랐을 때 올망졸망 머리를 맞대고 방콕 시내를 내려다보던

가뭇가뭇한 아이들이 귀여웠다.

황금산 주변동네를 진동시키던 징소리, 종소리를 만들어내던 저 팔뚝들. 여자친구와 함께

무언가를 빌러 온 아저씨 하나가 나의 '메이 아이?(카메라 들썩)' 앞에서 흔쾌히 포즈를

취했다. 사진 이후의 다시, 대애앵- 귓바퀴에서 데굴데굴 구르던 굵은 떨림.

황금산 위의 황금탑, 사람들의 기원을 모으는 안테나처럼 위로 뾰족하게 곧추선 그 탑을 향해

무언가를 조용하게 빌고 있던 태국의 아가씨. 꺾인 발바닥이 하얘지도록 미동도 없이 탑을 향했다.

어딘가의 재래시장, 순대를 튀긴 것처럼 곱창 안에 밥풀이 잔뜩 채워진 채 기름으로 튀겨진

간식을 팔던 해맑은 꼬맹이 숙녀들. 하나만 달라는 내게 계속 두개를 디밀어주어 당황시키던.

두리안에도 제철이 있는줄은 몰랐다. 지금은 남국에도 두리안은 제철이 아니라더니, 과일시장은

온통 파인애플과 수박뿐. 조그마한 밴 위로 바늘꼽을 틈도 없이 차곡차곡 쟁여진 파인애플을

내리던 이들의 머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 있었다.

그리고 적재가 끝난 다음인지 파란색 바구니들을 탑처럼 쌓아둔 채 고단한 몸을 뉘인 아저씨.


다른 시장, 또다른 고단함. 고개를 한껏 젖힌 채 불편한 자세지만 잠시라도 쉬어 가실 수 있다면.

짜오프라야 강으로 스미는 방콕의 거미줄같은 운하들, 사람들은 마을버스를 타듯 수상보트를

타고 방콕 깊숙히 들어갔다. 그리고 좁은 운하만큼이나 가늘고 긴 배를 타고 온통 물보라를

일으키며 내달리는 통에 저런 파란 방수포를 끌어올린 채, 검표원만 배 밖에 남겼었다.

지저분한 방콕의 운하 좌우변의 허름한 수상 가옥들을 쾌속 보트로 휙휙 지나치며 문득 눈에

꽂혔던, Joy is UP이란 저 높은 건물. 선착장에 내리니 문득 풍경이 바뀌었다. 여기는 모던 방콕.

그리고 제법 대도시스러운 복장의 사람들.

그리고 어느 재즈바, 클래식기타를 쥐뜯으며 분위기를 잡던, 그리고 그만큼의 공력을 갖췄던

태국의 아티스트가 있었다. 구불구불한 장발을 커튼처럼 늘어뜨린 채 그가 만들어내던 멜로디들.

그런가 하면 태국의 소수부족, 아마도 북쪽 치앙마이 인근에서 온 듯한 분들이 나무 개구리를

막대기로 긁으며 개구리 소리를 내기도 하고, 원색의 고깔모자처럼 생긴 전통모자를 쓴 채

여행자들에게 팔고 있었다. 대부분은 저렇게 단호한 거절, 그래도 개구리 소리는 그치지 않고.



정말 귀엽게 생긴 백인 꼬맹이들이 짜오프라야 강을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유람선 앞선창에

딱 버티고 서서는 아주 신났다. 찢어질 듯 맹렬하게 펄럭이는 태국 깃발에 얼굴을 들이밀고는

어찌나 재미있어하던지. 녀석의 윗도리도 질세라 나부끼고 있었다.

카오산로드 바로 옆에는 커다란 복권 상설도매시장이 위치해 있었다. 방콕 구석구석을 넘어

태국의 곳곳으로 퍼지는 복권을 대량으로 구매하기 위한 사람들, 그리고 팔기 위한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잔뜩 쌓아둔 채 몇십장 단위로 끊어서 스테이플러로 묶어두는 어른들의

부산함 속에서 혼자 가판을 지키는 아이의 눈빛이 심퉁스럽다. 놀고 싶은 거겠지.

라오스에서 왔다는 Kai, 이 게이 아저씨는 내 선글라스를 굉장히 부러워했다. 아침부터 쌀국수에

맥주를 먹는 내 앞에 앉아 계속 재잘재잘, 며칠 안 되는 사이 세번이나 가서 밥도 먹고 그와 얘기도

나누는 '단골'이 되어버렸다. 남자친구 자랑을 어찌나 하던지 문득 시샘이 샘솟듯 하더라는.

왕실선박박물관에서 온몸을 구부린 채 배 안쪽을 수선하고 있던 아저씨. '메이아이(카메라)?'의

물음에 슬쩍 흘려주던 수줍은 미소가 참 좋았는데.

숙소로 돌아가던 길, 카오산로드로 돌아가는 숏컷shortcut, 지름길을 자기집 안방인 양

차지하고 의자에 누워 티비를 보는 가족들이 넘 웃기고 정겨운 거다. 전등 불빛과 함께

어둑한 골목길을 비추는 티비 조명.

어느 음식점들, 골목 뒷켠에 숨어 외국인이나 여행자는 눈에 띄지 않던 그 곳은 태국의

아저씨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신문을 꾸깃하게 펼친 채 달겨붙는 파리에게 엉성하게

손을 휘저으며.

그렇지만 카오산에만 들어가면 이렇게 꿈틀거리는 문신을 과시하며 벗고 다니는 외국인들 천지.

유럽인, 미국인, 아시아인들, 온갖 국적의 인종들이 몰려들어와선 그야말로 국적불명의 문화를

만들어놓은 해방구의 분위기가 참 좋았는데.

이렇게 온몸 가득 타투가 새겨진 마네킹이 서 있던 카오산의 그 어느 골목, 아무래도 저런 식의

타투는 그렇게 이쁘다는 생각은 절대 안 든다.

공원의 큼지막한 그늘 아래에서, 돗자리처럼 펼쳐진 초록빛 잔디밭에 기대 누운 채 책도 읽고

낮잠도 자는 금발의 아가씨들. 저런 식의 여유를 그렸던 거다. 사진을 찍고는 나도 슬몃

풍경에 끼어들어 책도 보고, 낮잠도 자고. 또 누군가 사진을 찍었을지도.

하얗게 칠해진 길다란 벤치 위에 척하니 양반다리를 한 채 신문을 읽던 아저씨가 있었다.

밑에는 커다란 개 두마리가 녹아내린 듯 땅에 달라붙어서 나른하게 잠들어있었고. 꽤나

한가롭고 평화로워보이는 풍경이었는데, 카메라를 들이대니 개들은 도망가고 아저씨만 웃었다.

조그마한 불당에 들어갔는데 아저씨가 부처상 앞을 싸리빗자루로 쓸다가 잠시 멈추더니 한참을

통화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내게 하나도 의미를 싣지 못한 채 그저 시끄럽고 야릇한 노래처럼

울렸지만, 왠지 부처는 다 이해했다는 듯 빙긋 웃고 있었다.

드디어 돌아오던 날, 짐가방을 질질 끌며 공항버스를 기다리던 때. 따끈하게 덥혀진 보도블록에

앉아 눈앞에서 내달리는 차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사방으로 꼬불거리는 글씨가

창문에 가득 적힌 시내버스 한 대가 멈췄고 사람들을 쏟아냈고 다시 삼켰다. 사람들이 몸싸움하듯

오르내리던 부산함 가운데도 흔들림없던 그녀, 무심한 눈빛으로 버스를 보내버렸다.





갈라타타워 위에 올라가니 이스탄불이 온통 발 아래에 펼쳐졌다. 밖에서 올려보며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높은 느낌, 아무래도 탑 자체의 높이에 더해 언덕의 높이만큼 올라선 셈이라 그런 듯하다.

갈라타항에 정박해 있는 호화 크루즈선. 유럽에서부터 관광객들을 뭉텅뭉텅 실어나르는 배라고.

갈라타 대교 너머 왼쪽서부터 성 소피아 박물관, 블루모스크, 그리고 예니사원까지. 기도빨 충전되길

기다리며 장전 중인 수 기의 미사일 미나렛들을 품고 있다.

바닷가, 항만에 빼곡하게 들이차 있는 크고 작은 배들, 도시 한 가운데를 바다가 가로질러 각각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에 속한 지역으로 갈라놓는단 건 정말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스탄불의

그 마력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건 이렇게 바다를 품고서 세 대륙의 기운을 마구 끌어들여서 아닐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구 시가의 골목은 시원시원하게 규칙적으로 종횡하는 게 아니라 툭툭

중간에 막히고 꺽이고 비틀비틀, 갈지자로 건물 사이를 감아돌아간다. 건물들 모양새 역시 꽤나

독특해서 오각형, 육각형 건물이 심심치 않게 보이던 거다.

그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던 반듯한 골목 하나.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이 그저 지붕의 붉은 빛을

대충 공유할 뿐인 건물이 좌우로 시립한 채 반듯한 골목을 하나 만들어내고 지키고 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였지만 갈라타 대교 위에서 낚시도 하고 노니는 사람들이 보이는 거 같다.

하늘도, 건물도, 바다도 모두 축축하게 젖은 진회색, 그 와중에 부드럽게 번지는 붉은 지붕.

갈라타 타워 위, 둥그렇게 이어지는 테라스는 사람 하나 넉넉히 지나다닐 만한 폭이었는지라

뱅글뱅글 앞사람 꼬리를 물며 테라스를 한바퀴 도는 게 순례자의 길 같기도.








@ 서울대공원, '가을방학'의 '가을방학'이란 노래가 떠올랐던 낙엽길에서.



넌 어렸을 때부터 가을이 좋았었다고 말했지
여름도 겨울도 넌 싫었고
봄날이란 녀석도 도무지 네 맘 같진 않았었다며
하지만 가을만 방학이 없어
그게 너무 이상했었다며
어린 맘에 분했었다며 웃었지

넌 어렸을 때부터 네 인생은
절대 네가 좋아하는 걸 준 적이 없다고 했지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고 했지
떠나야 했다고 했지

넌 어렸을 때만큼 가을이 좋진 않다고 말했지
싫은 걸 참아내는 것만큼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맞바꾼 건 아닐까 싶다며
하지만 이맘때 하늘을 보며 그냥 멍하니 보고 있으면
왠지 좋은 날들이 올 것만 같아

처음 봤을 때부터 내 마음은
절대 너를 울리는 일 따윈 없게 하고 싶었어
정말 좋아하게 되었기에
절대 너를 버리는 일 따윈 없게 하고 싶었어

너무나도 늦어 모든 것들이

넌 익숙하다 했지 네 인생은
절대 네가 좋아하는 걸 준 적이 없다고 했지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고 했지
떠나야 헀다고 했지
블로그에 다녀가신 누군가 그랬다. 투르크에 다녀오면 온갖 혹평과 비판, 그리고 이쁜 사진들이 남더라는.

아쉬하바드의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던 풍경들이 그랬다. 사진 한장으로 담기지 않던 그 묘하고 독특한 분위기의

거리들, 자연 풍광들. 특히나 낮에는 낮대로 하얗게 비산되는 햇살 아래서, 밤에는 밤대로 무수한 간접조명을

받으며 반짝이던 하얀 대리석 건물들이 인상적이었다.


대부분 뿌연 황사가 사막으로부터 불어와 찌뿌둥한 하늘을 연출하고 있었지만 잠시 변덕이라도 부릴라 치면

굉장히 맑고 파란 하늘을 드문드문 볼 수 있던 곳. 온통 황량하게 마른 땅 위에서 폭폭 솟아난듯한 건물들이

어색하기도 하고, 뜬금없다 싶기도 하고 그랬지만.


밤에는 온갖 각도에서 실루엣과 음영을 잘 잡아주는 간접조명과 가로등 불빛들 덕에 이 황량하고 기묘한, 아직

생성중인 도시의 휑뎅그레함이 많이 감추어지는 거다. 어둠 속에서 둥실둥실 떠오른 하얀 건물들의 윤곽들,

그리고 쉼없는 말줄임표처럼 느껴지는 가로등불빛의 궤적은 왠지 사람을 망연케 하는 별빛같기도 했다.




하얗게 눈이 부시던 하늘, 시퍼렇게 출렁이던 바다, 드문드문 진한 그림자를 얼룩처럼 가진 초록색 잔디밭,

그리고 청결하고 깔끔해 보이는 하얀 커튼.

알제리에서 가장 앉아보고 싶던 자리 중 하나였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 속에 들어가버리고 싶었으니.

소들이 뛰노는 그림이 그려진 테이블 앞접시. 뭔가 시원한 에어콘 바람이 꽉 채우고 있는 공간에서 느긋하게

맛난 음식으로 이국의 향취를 맛볼 수 있다면.

아랍식으로 길게 늘어지는 응접실 분위기를 한껏 낸 음식점 한쪽의 룸. 저런 곳에서 물담배나 뻐끔뻐끔 피워

올려야 제대로 나른하게 뻗어있을 텐데. (..뭔가 약쟁이의 말투;; )

뭔가 불어로 씌어져서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던 메뉴. 그렇지만 대략 소고기가 나오고 그전엔 벽돌이 나온단

정도는 알겠다.

막 먹다가 문득 생각나서 찍은 '벽돌'. 생선까스랑 비슷한 맛이었던 듯.

그리고 소고기. 난 사실 핏물이 줄줄 흐르는 뱀파이어 스타일의 레어 스테이크가 좋은데, 이아이는 저토록

두툼하면서도 잘 익었다.

후식. 그다지 인상적인 디저트는 아니었다, 외양에서나 맛에서나.

크리스탈이 달랑달랑거리던 조명.

밤에 슬쩍 나가서 쐬었던 알제리의 바람은 시원하면서도 건조했다. 바닷가에 바로 연한 호텔이었지만 끈끈함이나

후텁지근함, 꿉꿉함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늘 출장 중에는 그림의 떡,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인. 호텔의 온갖 시설들. 수영장, 헬스장 따위들.

밤이 깊어 불밝혀진 후에야 슬쩍 한번 돌아보고 나오는 그런 곳들.

여름 휴가를 슬슬 가고 싶은 거다. 이런 불꺼진 고즈넉한 장면들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보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