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바다, 이런 추운 날씨에도 꽃마차는 경포 해수욕장 근처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닐 포장막 안과 밖으로 울긋불긋한 조화들이 샛노란 마차 색깔과는 잘 어울려 보인다.

 

확실히 바다 근처에서 거칠 것 없이 내달리는 바람 덕분에, 소라도 팔고 번데기도 파는 아저씨 뒤를 지키고 선

 

커다란 파라솔이 마치 격류에 휘말린 말미잘처럼 촉수들을 나부끼고 있는 중. 

 

모래사장까지 들어오지는 못한 마차 대신, 경포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에는 말들만 들어와있다.

 

느긋하게 누워 손님을 기다리는 말, 그리고 무릎을 구부리는 것조차 귀찮은 듯 나른한 표정이 인상적인 말. 

 

 

 바닷바람 냄새를 잔뜩 품고서, 강릉의 커피골목으로 들어왔다. 골목 입구서부터 벽면에 그려진 그래피티가 예사롭지 않다.

 

 

 사층짜리 건물 한 채가 오롯이 까페였는데, 아쉽게도 옥상은 개방되어 있지 않았고 2층에만 올라가도 이렇게

 

한가롭고 포근한 분위기의 공간이 펼쳐졌다는.

 

 

 

그렇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두 손으로 모아쥐고 홀짝거리다가 문득 창밖을 보니 코앞이 다시, 바다다.

 

 

 

'광주에서 즐기는 7일간의 아시아문화여행'이라는 홍보 문구가 잘 보여주듯, 올해 최초로 열린 제1회

아시아 문화주간 행사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문화가 서로 만나고 교류하고 녹아드는, 그런 기회를

여러 차례 예비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강력하고 인상적이었던 무대는 역시 음악의 영역에서

아시아 각국의 전통 문화를 서로 소개하고, 알아가고, 끝내 어우러지던 그런 자리들이었다.

2011 광주 월드 뮤직 페스티벌은 문화주간 중에서도 금토일, 가장 중요한 대목에 해당하는 시기를 책임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클라이막스를 광주 도심 한복판의 금남로공원, 아시아문화마루인 쿤스트할레, 그리고

빛고을 시민문화관과 첨단쌍암공원을 넘나들며 책임져야 하는 월드뮤직 페스티벌, 가장 먼저 만났던 공연은

아시아 각국의 대표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각자의 고유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을 선사했다.

다 같은 아시아인이라고는 하지만 요모조모 뜯어보면 서로 생김새도 딱히 같다고 하기 뭐하고, 표정이나

악기의 음색, 연주법 따위도 다 다르지 싶으니 그런 생각이 조금씩 들기도 했다. 대체 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가 뭘까. 무엇이 이들을 하나로 묶어서 '아시아'라는 정체성을 만들게 되는 걸까. 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이에 해당하는 수억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시아 대륙을 쪼개어 각자의 민족국가에서 살고

있는 그들이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 '아시아'로 뭉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점점 신명나게 고조되는 음악의 힘을 빌어 희미한 힌트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몰입해 버린 순간 그 다양한 국적, 필리핀, 태국, 방글라데시, 몽골, 베트남 등등의 사람들은 어느새 하나의

덩어리처럼 혼연일체가 되어 있었다. 모양이 많이 달라지고 제각기의 민족성이나 특성에 따라 변주되는

악기의 분화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원형은 지켜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뜨겁고 무더운 날씨에도 관객들은 좌석을 꽉 채우고 더러는 뒤에서 서서 구경하기도 했다. 이런 페스티벌의

분위기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건 이렇게 활짝 열려 있다는 점. 점잖게 자리에 앉아 연주되는 음악을 즐기던

할아버지는 중절모를 쿡 눌러쓰더니 카메라폰을 들고 무대 앞까지 돌입하셔서 사진을 찍기에 이르셨다.

아마도 카메라폰 쓰는 법을 가르쳐준 손자나 손녀에게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걸 함께 나누고 싶어서 아닐까.

다음 무대는 인도네시아였던가, 왠지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남국에서 왔을 법한 뜨거운 피를 가진

이들이 차지했다. 그들의 몸에는 온통 타투가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중요부위만을

가린 채 나풀거리는 천조각은 카메라를 들고 그 빈틈을 노리며 무대 주변을 맴돌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차림새나 타투들 만큼이나 노래 역시도 생경해서, 이건 혹시 자메이카나 아프리카 같은 멀고도

이국적인 곳에서 온 음악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지만, 동시에 '아시아'란 지역이 품고 있는 문화적

배경이나 DNA가 이만큼 광범위하고도 풍요롭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인기 만점이었던 이들의 이 멋진 무대의상, 이랄까 혹은 전통의상이랄까.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사방에서 달려와 너도나도 사진을 찍으려는 통에 그냥 스킵하기로 했다.

은근히 여성 관객이나 여성 진행도우미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낸 듯.

계속 이어지는 공연을 보면서는 계속 그랬다. 넋놓고 그들의 음악을 즐기다가도 어느순간, 어라 근데 이게

아시아음악이라고? 그리고 저 연주자가 아시아사람이라고? 그만큼 음악적인 색깔도, 연주자의 외모나

신체적 특징들도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전통의상에서 느껴지는 색감이나 미감 역시

뭔가 여태까지 내가 갖고 있던 '아시아'에 대한 상식이나 선입견이 얼마나 좁고도 편협했는지 돌이켜보게

해줄만큼 충분히 자극적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무대 뒤에서는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미 리허설이나 공연 중간중간의 조우를 통해

서로 얼굴을 익힌 게 틀림없는 공연자들끼리 어느새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어서 무대 뒤에서 서로 장난도

하고 웃고 떠들며 서로를 격려해주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던 거다. 이런 게 아마 우리가 바라는

'아시아 문화'의 정수 아닐까. 서로에 대한 열린 마음, 친밀한 감정, 그리고 저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마침 한국과 몽골의 수교 20주년을 맞이했다는 올해, 몽골에서 온 연주자들의 공연도 있었다. 선명한 원색의

옷차림에 독특한 악기들이 이목을 특히 끌었었는데,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고 나서는 마치 짙초록색의 드넓은

몽골 초원 위를 내달리는 말위에 몸을 맡긴 듯한 그런 느낌. 초원위를 가지런히 갈퀴질하며 지나는 바람소리를

닮은 그네들의 악기도 그랬지만, 몽환적이고도 격정적인 구령소리같은 노랫소리도 매력적이었다.

 

가만히 보니 현악기의 머리 부분에 조각된 건 다름아닌 말의 머리 모양. 정교하게 말갈기와 주둥이 모양이

새겨져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의 연주와 노래가 마냥 신기했는지 맨 앞자리에 앉아서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아이들의 뒷모습.

 

 

그렇게 첨단쌍암공원에서의 오픈 스테이지 공연은 일단 막을 내렸다. 아시아 각국, 조금은 친숙한 나라도

있었고 조금은 생경한 나라들도 있었지만 그네들의 연주와 노래를 들으면서 조금씩은 더 반가워지고

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네들의 다채로운 복장 만큼이나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 위에서 만난 아시아

각국의 연주자들, 아마도 그들이 가장 크게 서로에게 자극받고 친숙해진 계기가 된 건 아닐까. 모두가

함께 무대에 올랐던 마지막 연주는 이번 월드뮤직 페스티벌을 통해 그들이 서로 '아시아인'으로 느끼고

하나되는 화룡점정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도로 가는 길은 한가지다. 제주 동쪽끝의 성산 일출봉, 성산포항에서 거의 한시간 간격으로 있는 카페리에

몸만 싣던, 아님 차도 싣던 해서 그 배를 타고 우도로. 승용차 기준 9대가 꽉 차는 카페리의 아가리가 닫히고

15분 정도만 바다 위를 달리면 우도가 나타난다.

2층의 조타실에서 키를 잡고 있는 선장님, 촘촘하게 나사를 박아 단단해 보이는 창문 너머 허브 화분이

눈에 띄어서 한장. 그리고 불과 3.8킬로미터 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우도는 벌써부터 보이길래, 저 너머

길게 소가 물속에서 머리를 내민 모양으로 보이는 바로 우도다. 소牛 자를 써서 우도.

바다가 생각보다 많이 거칠었다. 듣고 보니 제주 서남쪽 모슬포항에서 출발하는 가파도행, 마라도행 배도

궂은 날씨로 뜨지 못했다던가. 저번에 왔을 때는 작은 섬이라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제법 큰 섬이었다.

섬 해안도로만 따라 걸어도 17킬로미터, 약 천오백명이 사는 섬이라니.

우도는 해양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특별히 관리될 만큼 자연생태나 풍광이 빼어난 섬인데, 그런 풍경을

'우도팔경'이라고 이름붙여 놓았다. 제주에서 배타고 우도로 향하는 중에 보는 우도의 풍경, 앞선 사진의

그 모습도 그 중 하나. 그리고 천진항으로 입항해 우도봉으로 걸어올라가는 길의 너른 잔디밭도 팔경 중 하나.

멀리 왼쪽으로 보이는 게 우도등대공원, 그리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구릉의 꼭대기가 우도봉. 132미터밖에

안되는 높이이긴 하지만, 거칠것 없이 불어닥치는 바닷바람 때문에 올라가는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길.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대는 탓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는 가족들과의 대화도 목소리를 키워서 해야 했다.

우도의 소 형상, 그중에 머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해서 '섬머리'라고 불린다는 부분이 바로 여기니깐,

말하자면 소 머리를 기어오르는 길인 셈이다.

방금 배타고 도착했던 천진항이 저만큼 내려다 보였다. 우도엔 천진항과 하우목동항, 이렇게 두 개의 항구가

있는데 대부분의 배가 왕래하는 곳은 천진항. 그 너머 보이는 게 제주도 본섬이니 날씨가 좋아 저 구름이

다 걷히는 때면 한라산도 보이지 않을까. 쉽지는 않겠지만 그 역시 우도팔경의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성산 일출봉의 저 묵직하면서도 날렵한 모양새. 중후한 독일제 세단을 보는 거 같은 느낌마저 든다.

계속해서 소머리를 밟고 올라가는 길. 키작은 잔디가 촘촘하게 자라나 푹신하게 밟히는 느낌이 참 좋다.

섬 바깥쪽으로는 무너지는 곳도 있고 지반이 약한 곳도 있다 하여 이렇게 넉넉하게 울타리를 둘러놓고는

'넘어가지 마세요'라고 안내판도 붙여두었지만, 장난스런 누군가가 두 글자를 지워 의미를 뒤집어버렸다.

사람들이 밟지 않는 쪽 풀떼기들은 뭐가 저리도 무성한지, 먼바다 파도처럼 넘실넘실.


우도봉 정상..이라기엔 좀 뭐한 높이지만, 그래도 속이 탁 트이도록 시원한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높이다.

싱싱한 초록색의 잔디가 곱게 깔려있던 구불구불한 길이 울타리의 인도를 받았고, 그 너머로는 짙푸른

담청색의 바다가 제주도와 우도를 갈라놓았다. 머리가 사방으로 봉두난발처럼 뻗쳐나가게 희롱하던

바람의 위력이란. 저 풀떼기들이 여자들 싸울 때 머리끄뎅이 잡아뽑히듯이 전부 뽑혀 훌훌 날려갈 기세.

울타리쪽으로 고무깔판을 깔아두어 미끄럼을 방지한 길 대신, 잔디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다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듬성듬성 야트막한 산처럼 쌓인 말들의 '생의 흔적'을 만났고, 그 중 한 곳에서는 질펀하게

싸제껴진 똥덩어리 사이로 노랑색 꽃을 피워낸 민들레를 발견했다. 저것이 양분이 되어 꽃을 틔웠다기엔

시간차가 좀 있는 거 같고, 이제라도 더욱 선명하고 이쁜 노랑색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지 않을까.


제주도식 무덤은 꼭 이렇게 봉분 주변을 돌울타리로 한번 치는 게 상례라고 했다. 소나 말, 혹은 다른 동물이

행여 봉분을 훼손하지 않도록 막기 위함이라는데 보통 현무암을 얼기설기 쌓아올려 울타리를 치더니 여긴

시멘트로 아예 발라버린 거 같다. 천오백명이나 산다더니 정말, 이쪽의 양지바른 곳에 묘지가 잔뜩 모인 게

거의 공동묘지 분위기였다. 야트막한 언덕이 온통 올록볼록 엠보싱.

잔디밭 한가운데 시멘트로 엑스(X)자 모양을 만들어둔 헬기 이착륙장을 지나, 우도봉 뒤로 일찌감치

봐두었던 우도등대공원으로 걸었다. 정신없이 불어제끼는 바람 때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발길을 돌려 우도의 해안으로 가는 거 같았지만, 저번에 여기 왔을 때 꽤나 멋졌던 곳으로 기억하고

있어서 굳이 걸어올라갔다. 사실 얼마 멀지도 않고.

사람들이 많이 오진 않는지 길 한복판에 둥둥 떠서 멈춰있던 잠자리에 깜짝 놀랬다. 날아가는 모습 그대로

공중에 멈춰 있다니, 자세히 보니 길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이어진 커다란 거미줄에 걸려서 이미

적잖은 시간 비바람에 시달린 듯 하다.

거미줄을 피해 조심조심 오르는 길, 나무 데크로 잘 정돈된 길을 오르다 보면 우리나라나 세계의 주요 등대들

모형이 차례로 만나게 된다. 마라도니 독도니, 우리나라의 주요 뱃길을 비추는 등대들도 그렇고, 뉴욕의

허드슨강을 지키던 등대니 뭐니, 이것저것 훑어보다 보면 어느새 공원의 끝, 우도 등대에 다다르는 거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실제로 쓰였다는 우도 등대. 그리 높진 않지만 단단하고 든든해보이는 체구의 하얀 등대다.

아래부터 위까지 스캐닝하듯 쭉 훑어보다가 발견한 저 풍향계, 그리고 꽃술처럼 풍성하게 벌어진 피뢰침.

풍향계에 그려진 N, E, W, S가 뚜렷하다. 그러고 보니 동서남북의 사방을 가리키는 영어 첫자를 따서 어케

잘 조합하면 뉴스(NEWS)가 되는구나. 뜬금없는 생각에 괜시리 감탄 한번.

그래도 역시, 더이상 쓰이지 않고 사람들이 드나들지도 않으며 비바람에 씻겨갈 뿐인 건물이란 건 왠지 슬프다.

문에 걸린 채 붉은 녹물만 주룩주룩 흘려대는 자물쇠 몇 개가 앙상하게 부식된 껍데기를 떨구고 있었다.


우도등대 앞에 서서 내려다본 우도의 마을 풍경. 시퍼렇다 못해 시꺼먼 바다가 해안에 다가와선 시퍼런 거품을

만들며 시위 중이었다. 그리고 울타리 틈틈마다 거미줄을 만들며 삶을 이어가는 거미. 샛노랗고 까뭇한 색의

대비가 바다보다 화려했다.

더이상 쓰이지 않게 된 하얗고 조그만 등대 대신 그 뒤에 버티고 선 등대전시관의 등대가 새로 작동하고

있다고 했던가. '에어콘 가동중'이란 안내에 낚여 뛰쳐들어갔다가 전혀 냉기 따위 없다는 걸 직감하고 그보다

빠른 속도로 뛰쳐나오느라 이 건물 안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바람은 강했지만 바닷가이다 보니 습하고

소금기 꿉꿉한 기분까지는 어쩔 수 없어서 에어컨으로 좀 말리고 싶었단 말이다.(버럭!)


우도를 지키는 해안경비단을 지나 다시 내려오는 길. 아까는 나무데크가 잘 정돈된 길로 올라가며 등대공원의

여러 전시품들을 둘러봤었고, 이번엔 완만한 내리막길로 걸어내려오며 바다 너머 제주도의 구름 가리운

풍경과 (무엇보다) 발밑을 내려다보며 걸었다.


다시 우도의 너른 초원을 걸어내려가는 길, 옆에서 이리저리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이 있고 1박2일팀이

와서 말을 타고 갔다는 광고가 내걸려있다. 가족 중의 누구 한번 타보라는 권유에 선뜻 앞으로 나선 동생,

요새 승마를 좀 연습했으니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기대.

종아리를 다 덮는 기다란 장화를 신고는 아저씨에 이끌려 초원으로 향했다. 조금 걷다가, 이내 머리가 날리도록

내달리기 시작하는데 제법 멋지다. 쏜살같이 내달려 어느새 손톱만한 사이즈로 변해버린 두마리 말을 좇아

카메라를 이리저리 들이대야 했다. 말을 배우려면 이렇게 풍경 멋진 데서 오르막 내리막을 모두 경험하며

배워야 한다고 아저씨가 코웃음쳤다던가.


차를 주차해둔 쪽으로 걷던 중에 우도의 명물 땅콩을 파는 아주머니들 옆으로 망아지 한 마리가 휘적휘적

유유히 걸어다닌다. 사람들 틈에 섞여서도 무서워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그저 제 갈길 간다는 태도. 그 옆에는

망아지 갈기와 땅콩 껍질을 소용돌이치듯 갈퀴질하는 거센 바닷바람에 날려 뒤집혀버린 하얀 의자가 적나라하니

나뒹굴고 있었다.

서빈백사. 우도의 서쪽 바닷가에 하얀 홍조단괴해빈해수욕장에 있는 모래는 온통 하얗게 반짝거렸다.

하얀 산호와 조개껍데기들이 깨지고 부서져서 바닷가에 쌓인 게 이 모래 아닌 백사장의 정체라고 하는데,

우도팔경 중의 하나로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다. 발로 밟으며 걷기엔 조금 아픈 감도 있는 게 아직 산호나

조개껍데기가 모래알처럼 작게 깨지거나 고와지지 않고, 나름의 형체를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산호가 풍화되어 생겨난 하얀 백사장은 우리나라에서 여기 딱 한 군데라고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독특한 풍경 속에서, 맨발벗은 발을 따꼼따꼼 찌르는 아픔 속에서도 천막에 앉아 해삼과

멍게, 그리고 우도 특산물이라는 '톳'을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다른 해산물들도 다들 싱싱하고 맛났지만

특히 이곳에서 처음 맛본 톳은 싱싱하고 탱글거려서 제일 먼저 없어져버렸다는.

무려 3미터짜리, 3톤이 넘는다는 해녀상이 서 있던 하고수동 해수욕장. 세계 최대의 해녀상은 1932년 3개월동안

1만 7천여명의 해녀가 항일 항쟁을 벌였던 것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하는데, 당시 해녀가를 지어 불렀던

해녀가 우도 출신이었기에 여기 이런 거대한 해녀상이 선 거라고 한다. 
 

그 앞에는 또 하나의 해녀상이 서 있었는데 그 유래는 전혀 모르겠고, 시선이 계속 쏠리는 건 그 상들 너머

에메랄드빛 바다. 자잘하게 부서진 파도가 잔잔하게 이는 그 깊고 투명한 색감의 바다가 멋지다.

어라, 제주도에 비양도는 북서쪽 금능해수욕장 맞은 편 아니었던가. 알고 보니 여기도 비양도라는 같은 이름을

쓰는 섬이 하나 우도랑 연결되어 있었다. 조그마한 섬이고 우도랑 붙어 있어서 그냥 시멘트길이 넓게 이어져

차를 타고도 쉽게 한바퀴 돌아보고 나올 수 있었는데, 섬 앞머리 표식이 인상적이다. 온통 조개 껍데기를

탑처럼 쌓아올린 표식 바깥에 촘촘히 붙여놓아서, 멀리서 보면 새하얗게 반짝거리던 것.

우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검멀레 모래사장 앞 '동안경굴'. 검멀레는 왠지 발음부터 연상되더니

역시, 검은 모래를 가리키는 제주도말이라 하고, 그 앞의 동굴까지 사람들이 내려가 볼 수 있는 거다. 이 동굴에

옛날엔 커다란 고래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는데 그 앞의 깊고 짙푸른 바다를 보면 왠지 상상이 되었다.

동안경굴, 우도팔경 중의 하나였던 그 동굴 위로 뻗은 산책로 앞에 있던 제주도 전통 대문인 '정낭'의 나뭇살

세개가 모두 구멍에 끼어져 있다. 주인이 멀리 출타 중이란 의미를 남길 때 저렇게 세 개를 모두 구멍에

끼어놓는다고 했는데, 산책로를 당분간 폐쇄한다는 안내판에 꼭 맞는 의미심장한 표식인 셈이다.


* 참고로, 제주도 전통 대문인 '정낭'의 표식에 대한 의미 정리. (네이버 지식인 참조)
 
ㅇ 나무가 한 개도 걸쳐 있지 않을 경우 : 집안에 사람이 있음

ㅇ 나무가 한 개 걸쳐져 있는 경우 : 가까운 곳(이웃집 등)에 잠시 나가 있음

ㅇ 나무가 두 개 걸쳐져 있는 경우 : 이웃 마을 등에 갔음

ㅇ 나무가 세 개 모두 걸쳐져 있는 경우 :  멀리 출타중임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말은 뱃속으로'란 말이 가장 맞지 않을까 싶었던 말고기

오찬. 제주도산 말만 취급한다는 전문점에서 세트메뉴를 시켰더니 가장 먼저 나오는 건 말고기 사시미.

참치살처럼 새빨갛고 촉촉한 살점이 가지런히 놓여 나왔다. 굉장히 부드럽고 단 맛이 도는 고기라서 사진 한번

찍고는 훌떡훌떡.

이어지는 육회. 생고기로만 만드는 육사시미의 맛을 알고 나서부터는 저가의 냉동육에 계란과 배로 맛을 내는

육회는 그다지 안 먹게 되었지만, 말고기의 경우는 물론 예외인 거다. 계란과 배를 잘 섞어서 맛보는데, 딱히

냉동고기 같지도 않고 비린 맛도 없다. 아니,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말 특유의 냄새가 약해진 거라 말해야

하지 않을까. 많이 안 먹어보던 고기, 예컨대 양이나 염소 같은 고기에 노린내가 나니 냄새가 심하니, 말하지만

사실 모든 고기엔 특유의 향취가 있는 거니까. 다만 우리가 소와 닭과 돼지 냄새에 익숙해 있을 뿐인 거다.

말의 향취를 그야말로 응축시켜서 느낄 수 있던 건 육회 다음으로 나왔던 말엑기스. 시꺼멓고 끈적한 느낌의

액체가 막걸리잔보다는 조금 작은 잔에 담겨나왔다. 원래 한약냄새 풀풀 나는 것들도 잘 먹는지라 조금씩 맛을

음미하며 마셨는데, 에스프레소처럼 첫맛은 쓰고 시다가 뒷맛은 뭉근하니 단맛이 퍼지는 그런.

왠지 힘이 불끈하는 느낌..?ㅋ

이어지는 말고기쌈. 얇게 썰린 무채에 올려놓인 다른 야채들과 함께 한점 올려진 말고기가 참 촉촉하기도 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 눈에 보인다. 젓가락으로 잘 감싸서는 한입에 쏙.

육사시미 때부터 계속 느꼈던 거지만 말고기 참..먹음직스럽게 생겼다. 색깔도 투명한 선홍빛으로 이쁜데다가

사방으로 갈라지는 고기의 결도 그렇고, 촉촉히 배어나오는 고급스런 윤기까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투명한 색감 그대로 깔끔하고 산뜻한 맛에다가 입안에서 바로 허물어지는 부드러움, 그리고 촉촉하고 매끄러운

치감이라니. 말고기 초밥을 먹으면서, 만약 이게 요리만화라거나 그렇다면 아마도 난 지금 보드랍고 매끄러운

갈기를 나부끼는 구릿빛 튼튼한 말을 타고 드넓은 녹색의 대초원위를 경쾌하고 뛰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말고기 스테이크와 내장. 말고기 스테이크는 뭔가 소스가 가득 뿌려져 있는 탓에 내용물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던 데다가, 소스의 맛과 향이 말고기 특유의 향을 상당부분 감춰버려서 그다지 별 차이점을 못 느끼고

먹어버렸다. 그냥 다진 고기로 만든 여느 함박스테이크랑 비슷했던 듯. 그렇지만 내장은 정말, 말 특유의

냄새가 가장 진하게 났던 부위였던 거 같다. 소나 돼지에 비해 좀더 부드럽게 씹혀서, 내장의 쫀득한

씹는 맛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조금 실망할지도. 그래도 정말 말 한마리 어느 하나 못 먹을 부분이 없단 걸

체감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이다.

그리고 말고기 갈비찜과 말고기 구이. 마지막으로 나온 말뼈사골국까지 해서 그야말로 말고기를 날로 먹고

쪄서 먹고 구워 먹고 다져 먹고 고아먹고 엑기스로 짜서 먹고, 온갖 방식으로 조리해서 맛볼 수 있었다. 

갈비찜에 들어간 말갈비는 소갈비랑 얼추 비슷한 사이즈였던 듯 하고, 고기의 육질은 (조리하기에 달린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 부드러웠다.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말고기엔 기름이 많지 않은 건 확실하다.

구이로 나왔던 고기들도 기름기가 많지 않아 담백하고 부드러운 살코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구제역이 한참일 때 소나 돼지와는 달리 말고기의 소비가 제법 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발굽 사이에서

물집이 잡힌다는 구제역은 발굽이 두개 이상으로 쪼개진 동물이나 걸리는 병인지라, 통굽인 말은 구제역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라던가. 그렇지만 구제역이 무서워서뿐 아니라, 말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말고기가

사람 몸에 '그렇게도 좋다'더라는 이야기를 전파하곤 한다. 말 머리에서부터 신장, 허파, 심장, 음경과 고환,

심지어는 말꼬리와 말굽에 이르기까지 참 세세하게도 효능을 적어둔 이 내용을 그대로 믿어보자면,

말한마리를 잡아먹으면 뭔가...변강쇠가 될 거 같다. 아저씨들의 취향에 맞춘 효능 안내인 걸까.

효능이야 여하간에, 말고기는 기름이 적어 꽤나 담백하고 부드러운 육질을 가진, 별미로 맛봄직한 고기인

거 같다. 제주도에서 갈수록 눈에 쉽게 띄는데다가 이제 슬슬 서울에까지 분점을 내고 있는 말고기전문점은

어디가 되었건 한번 들어가서 시도해보면 색다른 제주도 체험이 되지 않을까. 다만 이렇게 길가에 망아지가

자유롭게 노니는 제주도에서 혹시 동족의 냄새를 맡은 녀석이 뒷발로 차기라도 하면 목숨이 위험할지는

모르겠다.



모슬포항에서 출발하는 배는 마라도 아니면 가파도에 가 닿는다. 더러는 마라도를 지나 가파도에

닿기도 하고, 가파도를 지나 마라도에 닿기도 한다지만, 가파도로 바로 가는 직행 선박은 하루

서너차례쯤 있다고 한다. 9시, 11시, 14시에 모슬포행에서 출발.

빗발이 잘게 부서져 분무기에서 뿜어나오듯 사방으로 비산되는 궂은 날씨, 쾌속선 뒤의 스크류가

퍼올리는 바닷물 방울들까지 합쳐져 배 뒤는 온통 뿌연 안개다.

멀찍이 보이는 산방산. 신령이 한라산을 빚다가 너무 높다 싶어 산봉우리를 뽑아 내던져서 생겼다는

커다란 바위산이 불쑥 솟아서는 잿빛으로 케케한 풍경 너머 실루엣만 내밀었다.

가파도에 들어선 길. 채 20분이 걸렸나 싶을 정도로 짧은 코스였다. 날이 흐리고 파도가 높아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미처 걱정스런 마음을 채 펼치기도 전에 야트막한 바다를 건너 도착.

가파도는 '섬속의 섬', 제주 올레길 10-1코스다. 제주도를 따라 동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쭈욱

이어지는 긴 끈같은 올레길이 이어지는 와중, 우도니 가파도니, 옆으로 새어 나온 길은 '다시' 표시가

붙어서 가까운 올레길 번호로부터 갈라져나온다. 신기한 게 남쪽이 상동, 북쪽이 하동. 이 섬과

섬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바다를 바라보고 살았단 증거 아닐까.

올레길 10-1코스, 가파도 코스는 총 5킬로미터, 한두시간이면 주파할 거리지만 어차피 조그마한 섬,

올레길에 구애받지 않고 사방으로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한 세네시간 여유롭게 돌다보면 숨어있는

이쁘고 신기한 풍경들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비가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게 조금 에러.

가파도에 살고 있는 인구는 겨우 150명 내외, 고양이가 얼마나 똑똑한지 모르겠지만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는 전부 알만큼 조그마한 섬인 건 확실하다. 바다 넘어 어디론가 달려가는 배 한척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동도 않는 고양이 뒷모습이 맘을 건드렸다.


어서 오십시오, 가파도 올레길을 시작하는 길 앞머리에 그려진 포석은 그려진지 얼마 되지도 않은 거

같은데 벌써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날근날근해졌다. 그 옆으로는, 바람 많은 섬 제주도의 구멍 숭숭한

돌 현무암으로 괴어올린 구멍숭숭한 돌담을 시멘트 벽돌로 따라 만들어 놓은 거 같다.

원래 이게 정석 아닌가. 돌 많고 바람 많은 제주도의 돌담이라고 하면.

왜 그렇게 고양이가 많던지. 어쩜 가파도도 노인분들 밖에 남지 않아서 반려동물로 애지중지하며

키우고 있는 거 아닐까, 외로움을 달랠 벗삼아서. 그래서인지 고양이들 눈빛이 더욱 새초롬하다.

섬 외곽의 해안선을 따라 올레길이 조성되어 있긴 하지만, 조금만 화살표 벗어나 섬 안으로 들어가면

온통 미로같은 길이 꼬불꼬불하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온통 까만색 현무암으로 구획된 채 사방으로

열리거나 닫혀있는, 더러 가정집 앞마당이나 뒷마당에서 막다른 골목으로 인도하는 그 길이 재밌다.

가파도에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건, 역시 섬에서 마실 물을 구할 수 있어서였다고 한다. 풀떼기가 무성하게

자라난 저 웅덩이가 우물인지 아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때는 우물 비슷한 거였지 않을까. 그리고

둥그스름하게 곡선을 그리며 쌓아올려진 돌담은, 왠지 똥돼지를 가둬놓고 기르면  딱 좋을 거 같은데.

저 쪽이 제주도. 자욱하게 피어오른 바다안개와 비구름 사이에 낀 채 겨우 봉오리만 봉긋 세운

산방산과 울룩불룩한 제주도의 실루엣이 보인다.

올레길을 조성하면서 섬 해안도로를 시멘트로 포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미처 다 완공되진 않았다고

옷이랑 신발 버린다며 딴 길로 가라고 알려주시던 가파도 주민 할머니, 맘 써주시는 게 고맙긴 했지만

조금 묘한 생각도 들었다.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자연 그대로의 길, 흙길을 더욱 반길 테지만 막상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흙길 대신 시멘트길을 당연히 더 반기는 거다.


'지방'에 대한 '서울' 사람들의 인식, '시골'에 대한 '도시'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다. 휴양지로서, 추억을

되새기고 재충전을 하기 위한 공간으로 이상화된 자연, 박제된 과거의 이미지가 유지되길 바라는 건

아닐까. 불편함을 감수하고 인간다움과 자연을 만끽하겠다는 건, 그게 일상이 아니라 잠시지간의

일탈, 혹은 여행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올레길이 유명해지며 자연이 파괴되고 인심이 황폐해진다는

걱정은 도시 사람들의 것, 올레길이 유명해지니 이제 좀 살길도 트이고 개발되어 좋다는 건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것 아닐지. 많이 거칠게 굳이 나눠보자면. 쉽지 않은 문제다.

깡총 솟아있는 한쌍의 쓰레기통이 귀여웠다. 금방이라도 저 철봉을 잡고 앞뒤로 흔들대다가 훌쩍

한바퀴 공중제비라도 넘을 거 같은 거다.

가파도를 걸으며 만난 꽃들, 거센 빗방울에 툭툭 꺾였다가도 힘내어 곧추서는 단단한 줄기에 매달려

말갛게 꽃잎을 씻어내고 있었다. 침침한 날씨에 꺼뭇한 돌틈 사이에 가려져서 원래 빛깔이 제대로

나오지 못한 꽃도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꽃도 있었고.


가파도 북쪽 끝단에 가까워질 무렵, 아까 길이 채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이 있는데 비때문에 진창이

되어 있을 거라더니 여기 이야기였다. 온통 찐득한 진흙이 철퍽대는 길을 따라 걷다가 굵어진 빗발을

그을 겸 옆의 오두막 같은 곳으로 올라가 잠시 쉬었다. 알고 보니 여기가 가파도에서 일출을 보기

가장 좋은 해맞이 장소라던데, 저렇게 잿빛 파도가 출렁이는 너머에서 해가 뜬다면 굉장히 멋질 듯. 


가파도에서 봄에 열리는 축제가 하나 있는데, 청보리밭 축제라고 한다. 조그마한 섬이지만 중간중간

제법 커다란 손바닥만한 보리밭이 현무암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었고, 아직 청보리를 수확하지

않은 건지 그 푸르름을 미루어 짐작함직한 '샘플'들이 남아있었던 것. 4,5월 쯤에 청보리가 지천에

틔워올랐을 때 다시 와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래도 뭐, 다른 계절에 왔다고 해도 저렇게 돌뿌리에

기대어 소담하게 피어난 꽃들도 보이고, 갑갑한 창고 속에서도 초록빛 싱싱한 풀떼기도 보이고.

이쪽 각도로 보면 날이 좋을 때 무려 6개나 되는 봉우리를 볼 수 있다는 안내가 있었지만, 날이

잔뜩 궂은 날에야 그런 풍경보다는 차라리 저 안내판이 더 눈이 갔다. 제주도를 상징하는 말의

형태를 본딴 게 틀림없는 파란색 철제 표지판. 제주도에 흔했을, 그래서 가파도에서 제법 흔했을

말과 소 같은 짐승들의 침범을 막기 위해 제주도의 무덤은 저렇게 돌담으로 네면을 모두 꽁꽁

싸매어놓는다고 한다.

마을의 안녕과 고기잡이의 성공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던 마을 제단이 있던 곳. 남자 9명이 제관으로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제를 올렸다는 이곳은, 정확히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공간이다.

지금도 매해 정월쯤에 날을 잡고 제사를 올리고 있는데 벌써 그게 150여년의 전통을 만들었다는.

해안길을 따라 계속 걷는 길, 그래도 자그만 섬에 항구는 남북으로 두개나 있는 데다가 커다랗게

헬기장도 하나 지어져 있다. 뭐 이렇게 날씨가 궂은 날에는 파도도 높고 기상도 안 좋아서 바닷길이나

하늘길이나 둘다 위험하긴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특히나 긴급 후송환자가 있다거나 할 때 많이

도움이 되겠지 싶다.

비가 와서 그런가, 초록빛 식물들이 아주 극악스럽게 고개를 내민 것 같기도 하다. 깨어진 시멘트 길 

사이로 번개치듯 우르릉쿵쾅 내달리는 초록빛 새싹들하며, 해안가 옹벽을 잡아먹을 것처럼 두텁고

무섭게 흘러내리는 덩쿨들하며, 길가의 커다란 돌멩이 곳곳에 틈을 내어 뿌리를 뻗고 자라나는

끈질긴 녀석들까지.  


쉼없이 내리는 비, 우산을 접어버리고 우의를 걸친지 오래지만 맹렬히 내리는 비 앞에서는 전부

별무소용이지 싶다. 말하자면 이렇게 휑하니 뚫려있는 지붕 아래 서 있는 기분.

가파도수퍼를 필두로 해서 골목 곳곳에 이렇게 파랑색 벽화가 그려져 있는 거다. 이쪽 벽에서는

해녀가 자맥질을 하고 있는가 하면 저쪽 벽에서는 가파도의 마을 제단이 그려져 있기도 하고,

나무들이 꽃을 주렁주렁 매단 채 우뚝 서있기도 하고. 그렇게 화려하거나 그림 하나하나가

심오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벽들이 좌우로 늘어서 만들어진 골목길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가파도 깊숙이 들어서며 사방으로 번지는 골목길들이 모두 이런 식이니, 사방으로

헤매고 다니며 그림 구경을 해도 다리 아픈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문득 발견한 파란 하늘과 파란 청보리밭이 그려진 긴 벽면에 나있는 구멍 하나. 쥐구멍이라기엔

넘 높고, 무슨 호스같은 게 지나는 물받이 구멍이라기엔 넘 어정쩡한 위치. 뭔가 해서 가까이 다가가니

그 구멍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던 초록색 잎사귀들. 저 식물을 살리려고 구멍을 뚫어두진 않았겠지만

자꾸 그런 식으로 상상이 되는 거다. 벽을 세우려는데, 저기에 저 풀떼기 하나가 눈에 자꾸 밟혀서

그 부분만 저렇게 빼놓고 벽을 세운 건 아닐까, 그런 식으로.


저 커다란 꽃들, 한송이만으로도 푸짐한 느낌이 넘쳐나는 화려한 색감의 꽃들은 가운데에 하나씩

뽀얀 색 진주를 박아넣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담백한 돌담벼락에 기대어 손가락길이의 잎사귀를

피워내고 끝내 담벼락을 닮은 담백한 빛깔의 꽃봉오리까지 활짝 틔워낸 녀석도 대견하다.


벽화 작업을 언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 가파도에 옹기종기 모여살던 집들도 바닷바람과 파도에

씻겨내린, 그런 자연스러움이랄까 분위기가 한껏 살아있다. 적당히 낡고 헤진 옷이 갖는 편안함같은.


가파도에도 고인돌 군락지가 있다길래 궁금해서 푯말을 따라갔더니, 글쎄, 아직 발굴조사 중인지라

뭐가 고인돌이고 뭐가 자연석인지 구분하기가 영 쉽지 않다. 그냥 맨들맨들하니 조금이라도 인간이

가공한 흔적이 남아있고 평평한 돌이 있으면 저게 고인돌 추정 돌멩이인가 하는 거고. 고인돌 찾으러

들어갔다가 게으른 청보리밭 한뼘 구경하고 돌아나왔다.


이제 슬슬 가파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항구로 돌아나오는 길, 9시 배를 탔었고, 2시엔가 떠나는

배를 타겠다고 미리 표를 사뒀었던 거다. 일단 사고 나면 회항 시간은 못 바꾼다 했던가, 그래서 부러

여유있게 돌아보고 있었던 거기도 했다. 가파도 한가운데쯤 있는 건 초등학교. 놀이터가 잘 꾸며졌다.


항구에 가까워지니까 어라, 이런 좋은 길이 또 정비되어 있었단 말야, 싶도록 말끔한 산책로가 나왔다.

청보리밭 산책로라던가, 3,4월에 청보리밭 축제를 할 때 이 길을 거닐면 온통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청보리바다 한 가운데서 유영하는 느낌이 들 거 같다. 그리고 가파도를 지키고, 남해를 지키고 있는

해수관음상.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질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관음의 상이 남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상동포구, 모슬포행 선착장에 거의 도착할 무렵 또다시 마주친 제주의 바다. 이 정도 섬 사이즈면 딱

내가 좋아라 하는 섬의 크기다. 빨리 걸어서 이십여분이면 섬의 끝에서 반대쪽 끝으로 가닿을 수 있는

크기, 그리고 섬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이 보일만한 크기. 그 정도 사이즈라야 이게 섬이구나,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채 외로운 땅덩이구나 할텐데, 사실 제주도는 섬인지 뭔지 잘 감이 안 오니까.

항구를 둘러싼 채 두툼한 가랑이를 한껏 찢어벌린 방파제들이 흠뻑 젖었다. 빗물에 젖은 건지, 아니면

바닷물에 젖은 건지, 그렇게 조금씩 헐어가며 차갑게 반들거리던 시멘트 껍데기는 자갈과 모래가 섞인

뼈다귀를 드러낼 거다. 다음번에 조금더 헐어있는 방파제를 밟고 올라설 때엔, 눈위로 뜨거운 햇살이

쨍쨍 내리쬐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어김없이 정시에 가파도를 떠난 배는 불과 이십여분만에 다시금 제주의 모슬포항에 사람들을

부려놓았다. 섬 속의 섬, 이라는 표현이 딱 와닿았다. 서울이나 다른 '육지', '본토'에서 제주도로

넘어온 사람들에겐 제주도 자체가 섬이란 감각이 생경하다지만, 막상 또 제주도에서 가파도로

들어오니 이게 진짜 섬같다는 느낌이 확연한 거다. 모슬포항에 도착하니 왠지 발딛고 선 땅덩이가

커진 만큼 가슴도 넓어지는 거 같고, 좀더 세상이 커다랗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제주도하면 역시 말, 드넓은 푸른 초원 위에 자유롭게 풀린 말들이 느적대며 풀을 뜯거나

자기들끼리 장난치는 그런 풍경이 떠오르는 거다.

말은 서서 잔다더니 정말, 그 중에는 저렇게 서서 꼼짝도 안 하는 말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뒷다리 하나는 야무지게 꼬고서는 가끔 갈기만 휘날리며 꼼짝도 않는 모습이 도도한 긴생머리

아가씨같은 분위기도 얼핏 풍긴다.

울타리가 둘러져 있긴 하지만 크게 말들의 움직임이나 자유를 구속하는 거 같진 않다.

꽤나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데다가, 녀석들의 급할 것 없는 걸음걸이를 보면 좀처럼

갑갑증을 느끼거나 저너머까지 뜀박질을 하고 싶은 느낌은 한톨도 없는 듯 하다.

말들의 세계에 '조나단 리빙스턴'갈매기 같은 녀석은 없는 걸까.

자기들끼리 유유자적 산책하는 발걸음으로 초록 풀밭을 거닐며, 때로는 머리를 맞대고

뭔가 속삭이기도 하고, 때로는 홀로 풀을 씹으며 고독에 잠기는 척 하기도 하고. 꿈벅거리는

큰 눈에 선한 입매, 단정한 발걸음 품새까지 보다보면 그냥, 울타리고 뭐고 에라 모르겠다

여기서 풀이나 뜯자 하는 기분이 들고 마는 거다.



@ 제주.

Episode 1. 경마장 가는 길.



겨울에도 말들은 죽자고 달렸다. 가을철에 만났던 말들보다는 조금 뻣뻣하고 둔해진 네발놀림인가

싶었지만, 어느 순간 새하얀 입김을 격하게 토하며 팽팽한 근육을 조여대며 질풍처럼 내달렸다.

어찌나 빠르던지 눈앞까지 짖쳐들어온 말들은 휙 바람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트랙 너머로 사라졌고,

사람들의 고함소리는 결승선에 가까울수록 아이유의 3단부스터처럼 높아가기만 했던 거다.

(이전 포스팅 : 쩍쩍 갈라진 말근육들의 향연, 과천 경마공원.)

그런 역동적이고 스펙타클한 장면들, 분위기를 전달하기엔 역시 사진보다는 동영상이다.

중딩때 야설로 시작해 고딩쯤 야사(야한 사진)를 거쳐 야동으로, 그리고 이제 3D로 촬영된 야동으로

진화해 가듯, 분위기와 느낌을 조금이라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는 역시 사진보다

동영상이 유리한 거다. 마찬가지로 같은 동영상이라도 그냥 동영상보다는 HD동영상이 화질면에서

훨씬 더 우수한 데다가 더구나 핸디캠의 전설 소니의 Full HD 화질이라면야.


이전에 경마장 왔을 때 미처 사진으로 못 나눴던 풍경들, 분위기들을 이제라도 소니a33의 힘을 빌어

사람들과 나눠보기로 한다. 물론 그건 사진을 발로 찍는 허술한 실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세상엔 사진을 굉장히 잘 찍는 사람보단 웬만큼 찍거나 조금 찍을 줄 아는 사람, 혹은 나처럼

발로 찍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거다. 남은 문제는 두 가지, 사진 셔터 누르는 만큼 동영상 촬영하기가

쉬운지, 그리고 그렇게 찍힌 동영상이 적어도 발로 찍힌 사진만큼은 봐줄 만한지.


동영상기능의 마지노선#1. 사진 셔터 누르는만큼 동영상찍기가 쉬운지.

 : 아무리 동영상 기능이 있으면 뭐하나, 조작하기가 쉽지 않고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야 한다면

정작 눈앞에서 UFO가 지나쳐가도 동영상찍을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휙, 보내버리고 말 거다.
 

경마장 구경가야 하니까, 간단하게만 말하면 무지하게 쉬웠다. 그냥 버튼 하나. 저 빨간 눈알이

박혀있는 'MOVIE' 버튼만 누르면 바로 촬영. 화이트밸런스, 노출보정, 측광모드나 오토포커싱

기능은 사진 촬영때 쓰이던 설정값이 그대로 넘어가니 따로 손댈 것도 없고, 셔터속도와

조리개값은 자동으로 조정이 된다. 게다가 자동으로 초점이 계속 변환되어 알아서 찍는 대상에

초점을 맞춰준다고 하니, 정말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끝이란 얘기다.


물론 여러가지 옵션이 있긴 하다. 사진찍을 때처럼 커다란 LCD모니터에 몇가지 디스플레이모드를

택할 수 있는데, 자이로센서가 수평수직을 잡아주는 게 동영상 촬영 때 도움이 크더란 건 찍어보고

나서의 경험에서 우러난 얘기. 이외에도 동영상 파일 형태를 바꾸거나, 동영상 크기를 바꿀 수도

있던데, 어렵지도 않거니와 부수적인 이야기니까 패스. 이럴 때가 아니라 경마장에서 '발로 찍은

동영상' 이야기 할 때란 말이다.



동영상기능의 마지노선#2. 동영상이 적어도 발로 찍힌 사진만큼은 봐줄 만한지.

 : 아무리 동영상 찍기가 간편하다고 해도 초점도 안 맞고 화질도 엉성해서 당췌 이게 뭘 찍어놓은

건지 알아보기 힘들거나 알아보기 싫다면, 차라리 발가락으로 사진찍기를 계속하겠단 거다.



1)
말돌리기 : 과천 경마공원을 기준으로 하자면, 우선 경마가 시작되기 삼십분 전 조그마한

광장에서 경주마들을 빙빙 돌리며 말의 상태와 워킹 등을 보여준다. 말의 저 탄탄한 허벅지와

굵직하고 강건해 보이는 말근육들, 이건 그야말로 '발로 찍은 말 사진'이지만 그래도 이정도다.





경주마들이 자그마한 원형 광장을 돌며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자리, 말들을 하나한 렌즈로

훑으며 첫 촬영을 시작했다. 단지 장면 하나를 찍는 게 아니라 어떻게 화면이 움직이고

어떤 방향으로 돌아야 할지 따위, 생각해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다는 걸 그제서야 알아채고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그 와중에도 카메라는 잘도 돌더라는.




2) 기수태우고 말돌리기 : 위 영상에서도 볼 수 있지만 좀더 확연하게 티가 난다. 지가 알아서

앞뒤의 말들로 초점을 순식간에 조정해내는 카메라의 AF, Auto Focusing은 가히 AI라고

할 만하다. 요새 유행한다는 조류독감만 AI가 아니라,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도 AI인 거다.

알아서 초점을 이리저리 조정하며 기수를 태우고 광장을 도는 말들의 흩날리는 갈기, 강인한 걸음,

잔뜩 긴장한 근육 매무새들이 앞뒤로 생생하게 잡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3) 트랙으로 나서기 : 저번에 청담공원 등지에서 잘 써먹었던 파노라마 기능, 넓은 트랙에

경주마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사람몸통만한 엉덩이근육을 씰룩거리며 잘 정돈된 트랙위로

나서는 말들과 기수들에서 풍기는 긴장감과 비장함에 입김마저 조심스럽다.


4)
출발선에 주차, 아니 주마(駐馬)하기 : 기수를 태운 말들이 하나씩 출발선 앞에 섰다.




5) 폭풍질주하는 말들 : 트랙을 한바퀴 돌고 다시 결승선으로 들어오는 말들, 제법 엎치락뒷치락

손에 땀을 쥐는 순간들이 지나갔고, 사람들의 고성 소리는 높아만 갔다. 자동으로 초점을 잡아주는

카메라는 듬직하게도 무리지어 지나가는 말들을 하나하나 선명하게, 번호는 물론이고 발굽에서

뿜어져나오는 흙먼지까지 보여주던 거다. 비록 내 마권은 전부 휴지조각이 되었지만 이런 멋진

영상들이 남았으니 그걸로 만족이랄까.



+ 알파(α). 실제로 동영상기능을 어떻게 쓰게 되더라는 경험담.

 :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다가도, 동영상으로 남기면 괜찮겠다 싶은 순간들,

혹은 동영상으로밖에는 표현이 안 되겠다 싶은 순간들이 있는 거다. 예컨대, 눈발이

거꾸로 땅에서 하늘로 휘날리는 광경이라거나, 불빛 가득한 밤거리를 즐겁게 떠도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같은 것들.



고층빌딩 주변에서는 바람이 마구 뒤집혀 불기도 하고, 마를린 먼로의 치마도 펄럭 뒤집는

음흉한 광풍이 분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눈발마저 거꾸로 휘날리게 할 줄은 몰랐다.

그치만 사진으로는 그렇게 지상에서 하늘로 치솟는 눈발을 잡아낼 재간이 내겐 없는 거다.



다행히도, 버튼 하나로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게다가 이렇게 화질이 뛰어난 영상을 담을 수 있는

카메라를 마침 갖고 있었기에 남길 수 있는 풍경이 바로 이런 거 아닐까.




그리고 포스코사거리 앞의 범상치 않은 루미나리에, 촘촘한 꼬마전구가 알박힌 그곳의 풍경을

경쾌하게 뒤흔드는 아이의 웃음소리, 그리고 엄마의 따뜻한 목소리까지. 이런 것들이 멈춘채

굳어진 풍경이 아니라 생생하게 움직이는 영상으로 담긴 건 다행이다. 근경과 원경을 유연하게

오르내리며 풍경을 잡아내고 밝기도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걸 확인할 수 있다는 건 덤.


그렇게 저장된 파일들은 각기 다른 폴더에 저장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왼쪽에서 보이듯

동영상은 동영상 폴더에, 오른쪽에서 보이듯 사진은 사진 폴더에. LCD모니터가 넓어서인지

저렇게 폴더 두개가 한번에 보이는 빼곡한 구성에도 그다지 답답하거나 조그매보이진 않는다.





Episode 2. 고감도 & '노이즈'줄이기.



#1. 빛이 적은 곳에서도 좋은 사진을 얻어낼 수 있는, 고감도성능!!



ISO100에서 무려 ISO12800까지 올라가는 권장노출지수(ISO)는 과연 야경 촬영에 강하다

소니의 명성을 그대로 확인시켜주는 듯 하다. 기본적으로 ISO가 높을수록 적은 양의 빛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사진이 찍힌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데, 감도가 높을수록 화면의 입자가

거칠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아무래도 사진 두장이 느낌이 다르다. 오른쪽 사진은 ISO12800으로 잔뜩 감도를 높인 사진,

덕분에 조그마한 사이즈에서도 입자가 거칠거칠 드러나보인다. 반면 왼쪽 사진은 감도를

ISO1600으로 낮춘 사진, 그래서 확연히 부드러워 보이는 거다.


혹은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오른쪽 사진은 ISO12800으로 감도를 한껏 높여 조금 사진이

거친 느낌이 나긴 하지만 불빛을 보다 환하고 이쁘게 잡아낸 거다. 반면 왼쪽은 ISO를 낮추어

불빛이 부드럽긴 한데 너무 어두워서 다소 침침해 보인달까, 느낌이 안 산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ISO100의 저감도로 찍힌 왼쪽 사진은 잔뜩 흔들려 버렸지만, ISO12800

고감도로 찍힌 중간 사진은 또 조금 입자가 굵은 노이즈가 보인다. 오른쪽 사진은 ISO1600으로

잡아낸 풍경, 이래서 적당한 감도를 설정하고 최대한 노이즈를 줄여내는 게 관건인 거 같기도 하다.


여하간 ISO12800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성능은 흐리거나 어두워서 빛이 부족한 공간에서

사진을 찍기에 보다 수월하게 해주는 것은 확실한 거 같다. 이 자체로도 나름 멋진 야경을

부족한 발실력으로나마 잡아낼 수 있도록 해준 건 오로지 소니a33의 성능 덕분.



#2. 빛이 적은 곳에서도 '노이즈'를 최대한 줄여서 사진을 찍기 위한, 다중프레임 NR!


ISO감도의 폭이 넓어지는 건 분명 흐리거나 어두울 때, 혹은 어두운 실내에서 사진을 찍을 때

좀더 디테일을 살려주는 장점이 있지만, 그와 함께 사진 입자가 거칠게 느껴지는 '노이즈'는

아무래도 고감도의 특징이라기보다는 단점에 가까운 거 같다. 그런 '노이즈'를 조금 덜어내고

가능한 밝고 선명하되 부드러운 사진을 구하는 건 인지상정.

그래서 소니a33에서 채용한 기능은 '다중 프레임 NR(Noise Reduction)'. 자동으로 6장을

연속 촬영하고 그 화상들을 합성한 후 노이즈를 줄여서 하나의 화상으로 저장하는 기능이다.

그저 감도를 자동 설정하고 1장을 촬영하는 'AUTO' 모드에 비해 훨씬 진화한 기능인 셈이다.


AUTO 모드 외에도 ISO100~400 구간에선 (화창한 날씨에 야외에서) 밝을 때 촬영에 적합하도록,

ISO800~1600 구간에선 밝지 않을 때 촬영하는 경우(흐림, 저녁, 실내 등), ISO3200~12800 구간엔

조명이 어두울 때 손에 들고 촬영하는 경우, ISO25600에선 어두울 때 손에 들고 촬영할 때 각각

노이즈를 줄일 수 있도록, 이렇게 ISO100~25600의 총 9가지 '다중 프레임 NR' 모드

있다는 건, 꽤나 섬세하고 사려깊은 배려라고 감탄할 만하다.


이렇게 '다중 프레임 NR' 모드를 활용해 사진을 찍으면, 감도를 더 높여 밝으면서도 노이즈 역시

훨씬 줄어든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거다. 왼쪽은 ISO12800으로 찍은 한밤중의 놀이터, 오른쪽은

무려 ISO25600으로 찍은 같은 장소지만 훨씬 밝고 선명하면서도 노이즈 역시 줄어들었다.


혹은 같은 ISO12800으로 찍더라도, 좀더 밝고 노이즈가 줄어들어 부드러운 사진이 얻어지는 거다.

원목 재질의 안내판 배경이 좀더 따스하고 보드라운 느낌으로 찍힌 사진, 딱 보면 알겠지만 역시

오른쪽 사진이 '다중 프레임 NR' 모드가 작동한 사진이다.


+ 알파(α). 실제로 '다중 프레임 NR' 기능을 어떻게 쓰게 되더라는 몇 장의 사진들.



위에서 그저 ISO를 높여서 찍었던 풍경들도 '다중 프레임 NR' 모드로 다시 찍는 순간 좀더

부드러우면서도 밝고 따뜻한 느낌의 사진이 된다. 6장이 순식간에 찰칵찰칵 찍히는 소리도

맘에 들지만, '처리중'이란 안내화면이 지나가고 합성된 화면이 이렇게 뜨는 순간도 과연

어떤 사진이 나올지 두근두근 기대하게 만드는 거다.


경마장 건물 1, 2, 3층을 빼곡히 메운 채 주먹쥐며 말들을 응원하던 사람들, 포스코사거리 앞의

루미나리에 아래에서 풍선을 들고 뛰놀던 아이들, 어느 일식주점의 벽면을 장식한 인형과 촛불들,

그리고 어느 까페에서 만났던 완전 푹신하고 편안해 보이던 낡은 의자까지. 다중 프레임의

세례를 받고 새롭게 조율된 사진 속에서 더욱 따스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담고 있는 듯 하다.









* 이 글은 소니 a33 평가단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구봉도에서 낙조를 보기로 했다지만 사실 구봉도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고 나선 길이었다.

좀처럼 숨이 죽지 않아 짱짱한 햇살이 감히 바로 쳐다볼 엄두도 못 내게 하던 때, 그래서 아직은

오늘도 어제처럼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오리란 걸 믿을 수 없을 만큼 사방이 훤하기만 하던 때

구봉도에 도착하고 나니 몇 마리 말들만 선한 눈을 꿈벅이며 반겨주었다.

'구봉도'는 대부도 북서쪽 끄트머리에 부리처럼 삐쭉 튀어나온 조그마한 섬의 이름이지만,

대부도가 섬과 육지 사이에 놓인 다리로 연결된 연육교인 것과 달리 아예 사이 바다를 메워

대부도의 일부가 되어 버린 섬 아닌 섬이다. 덕분에 인접한 제부도에서 하루에 몇 번 바다길이

열리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을 기다려 들고 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아무때고 원하는 대로

가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굳이 찾을 만한 이유는 역시 낙조. 안내자료에 따르면 '갯벌이

해를 삼키는 진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정말 그런 광경을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작정하고 낙조 사진을 찍어보겠다 나선 건 처음이어서

살짝 두근대는 마음으로 적당한 포인트를 찾아 걸었다. 한걸음 한걸음, 어느 순간 내가 내딛는

걸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해가 내려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맘이 조금 급해졌다.

바다를 바라보고 선 옹송그린 어깨의 할머니처럼 보이는 저 바위는 역시 할매바위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오른쪽의 좀더 크고 남성적인 실루엣을 드러낸 바위는 할아범바위,

이렇게 두 개의 바위가 '구봉도 선돌'이라 하여 이 곳의 유명한 낙조 관람 포인트라고.

그리고 드디어 맨눈으로도 바라볼 수 있을 만큼 그 빛과 열을 잃어버린 태양이 땅위로

내려서는 순간, 움찔움찔 지표면과 가까워진다 싶더니 하필 야트막한 능선의 산언저리에

내려가 앉는다. 산의 경사면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가면 재밌겠다.

그런 나의 기대가 무색하게, 일단 산 너머로 저물기 시작한 해는 삽시간에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단순히 가라앉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뭔가에 빨아들여지듯 그렇게.

꼴깍 완전히 산에 먹히기 직전에 내지르듯 뱉어낸 시뻘건 불빛, 뭔가 산 정상 부근에서

폭발한 것처럼 붉은 빛이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하늘에 구름이 좀 층층이 끼어 있었다면

좀더 멋진 풍경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지만, 아무래도 가을 하늘인지라 구름이 불타는 듯한

그런 풍경과 마주치긴 쉽지 않을 거다.

해가 넘어갔다고 바로 세상이 어두워질 거라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늘 새롭게 깨닫지만

금세 잊어버리고 있는 사실이다. 여전히 위쪽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 빛을 담아

바다의 파도 결결이 붉은 갈매기가 날고 있었다.
그렇지만 확연히 온도가 떨어지고 있는 듯 했다. 금세 몸이 차갑게 식었고, 바람 역시 더욱

거칠 것 없이 불어오는 통에 재빨리 철수. 그 와중에 바닷가에 박혀 있는 그물 울타리뼈대들이

바다 너머 저쪽으로 건너가는 오솔길 같단 생각에 한 두방 더 욕심을 부렸다. 마침 사진에 함께

담긴 건 집으로 돌아가는 갈매기 한 마리.

이번에는 남쪽 해안길만 걸었지만 나중에 시간 나면 구봉도의 해안 오솔길을 따라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꽤나 괜찮을 거 같다. 요새 느닷없이 '올레길' 유행에 휘말려 여기저기에서

걷기가 광풍이라지만, 사실 길은 그때나 지금이나 천지사방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는 거니까,

이름나고 유명해진 길을 한줄로 서서 순례하듯 걷는 거보다 이런 고즈넉하고 호젓한 길을

바닷바람 맞으며 파도소리 들으며 걷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 싶다.





경마장 가는 길, 기도문을 바치다.

에서 기도문을 바친 효험이 있었던 건지, 과천 경마공원에서 경마 세 게임에 만원을 베팅하고 나선 깨달은 바가

있었다. 아, 여기가 바로 '내집마련'의 꿈을 이뤄줄 곳이로구나.ㅋ

삼천원이 (구만원이 되려다가) 만이천팔백원이 되고, 이천원이 삼천이백원이 되고, 그리고 (약간 삐끗해서)

오천원이 사천오백원이 되는 곳. 게임비 낸다고 치고 몇시간 재미있게 노는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건

사실 말들을 잔뜩 볼 수 있었다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꿈틀꿈틀 굵게 일렁이는 말근육들을 보는 재미랄까.

고등학교 일학년때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올림픽공원으로 소풍갔다가, 도망나와선 무려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비디오방에서 봤던 게 '옥보단'이었다. 좁은 비디오방에 바글대며 앉아서는 옥보단을 보고 있던 상황도 꽤나

기억에 오래 남았지만 역시 '옥보단'이라고 하면 말의 근육이 인상에 꽂히는 작품.

경주가 시작되기 삼십분쯤 전에 1000미터짜리 트랙 옆의 조그마한 트랙을 빙빙 돌며 사람들에게 말을 보여주는

시간, 정보지를 손에 쥔 아저씨들이 날카롭게 말을 살피고 전광판을 살피며 뭔가를 적기도 하고, 계산을 하기도

하고. 내 나름으로 나도 열심히 살폈던 건, 말들의 걸음걸이가 경쾌한지, 신경이 곤두서거나 겁먹어 보이진

않는지, 그리고 역시 '말근육'이 쩍쩍 갈라져 있는지.

이 녀석은 긴장한 탓인지 자꾸 트랙을 벗어나려 하더니, 급기야 앞발을 쳐들고 진저리를 친다. 무슨 사고라도

나는 건 아닌가 싶어 잠시 긴장했지만, 침착한 인도자의 토닥거림으로 이내 차분해졌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말근육의 향연. 군살 하나없이 날렵하면서도 딱딱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냥 에너지덩어리가 

꿈틀꿈틀대며 말의 형체를 빚어낸 건 아닌가 싶도록 아름다운 몸이다.

이 녀석은 경주에 나서기 전부터 벌써 땀이 번질번질, 바싹 땡겨진 근육들이 범상치 않았다. 스타카토로 톡톡

튕기듯 하는 걸음걸이도 그렇고 온몸에서 뿜어내는 기운도 그렇고. 이 녀석이 일등한다는 데 걸었으면 무려

구십배의 배당을 받았을 텐데, 소심하게시리 삼등 내에 들 거라는 데 걸어서 열두배밖에 안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요새 재미있게 보았던 미드 '스파르타쿠스', 그야말로 말근육을 가진 로마시대 검투사들의 피와 살이 사방에

흩뿌려지는 하드코어한 이야기지만 적어도 근육에 있어선 이 말들보다 못한 거 같다. 팽팽하게 긴장감을

머금은 채 사방으로 갈라지며 부들부들 떨리는 저 근육들.

말들이 조그마한 트랙 위를 몇 바퀴 도는 새 전광판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이번 게임에 걸린 판돈이 무려 이십억을

넘어가고 있었다. 제각기의 말들에 걸린 배당률도 돈이 쌓이면서 시시각각 변해가고 있었고, 아무래도 강력한

우승 후보일수록 배당률이 낮은 건 당연한 이치. 증권 시장이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이런 식으로 돈 놓고 돈 먹기의 판에서는, 무엇보다 돈 앞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다.

적당히 포트폴리오를 짜서 손실을 통제하는 가운데 전략적으로 승부를 칠 줄 아는 감을 가다듬는 건 그 다음.

그러고 보니 정말 8번 말의 사진을 많이 찍긴 했다. 어쩌면 난 말을 알아보는 천부적인 눈을 가진 건지도

모르겠다는.ㅋ '경마가 가장 쉬웠어요' 한권 쓸까부다.;

마지막 바퀴는 기수가 말을 타고 돌았다. 경마에서 이기려면 아무래도 체구가 작고 가벼워야 한다더니 정말,

저 강인하고 아름다운 말 위에 기수가 살짝 얹힌 느낌이다. 전혀 무거워하지도 않을 거 같고, 오히려 에너지

충만한 저 말들이 방방 날아가지 못하도록 슬쩍 자그맣고 가벼운 돌멩이로 눌러둔 거 같달까.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트랙을 정돈하는 차들이 지나가고, 전광판에서 차츰 줄어들던 마권 구매가능 시간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부터 두두두두, 말들이 내달리며 일으키는 흙먼지와 응원소리가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천 미터라고 해서 너무 짧은 건 아닌가 했는데, 의외로 엎치락 뒤치락 거푸 순위가 바뀐다. 심장이

쿵쾅쿵쾅 두근대면서 옆사람의 흥분과 고함소리에 전염되더니 눈앞을 쌩하니 지나가는 말들을 따라 시선이

먼저 올라가고, 그다음 양손이 번쩍 올라갔다. 일등이다!

안으로 들어가서 마권을 돈으로 바꾸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시 마권 구매표를 한 장 뽑았다.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구매표에 표기를 해서 카운터로 가져가면, 이번 경기에서도 마권을 다시 돈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이거 크게 욕심만 안 내고 잘만 하면 야금야금 돈 벌 수 있겠는데. 


경마장 바닥엔 휴지처럼 쓸모없어진 마권이 잔뜩 널부러져 있었다. 토요일이 지난 로또처럼.

그러고 보니 맘의 여유만 있다면, 경마장에서도 가을을 느끼기란 어렵지 않았던 하루.



오늘 시청앞에서 뜬금없이 마주쳤던 말과 포도대장 아저씨, 옆에는 버스가 씽씽 달리고 있는데 요 잘생긴

말들은 벌써부터 주눅이 들었는지 잔뜩 겁먹은 표정이다.

이번 월드컵, 사실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은 그다지 마뜩찮다. 축구에 평소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닌데다가

사실 별로 긴장감도 없고 스릴도 없는 경기를 두시간여 멍하니 지켜봐야 한다는 건 고문에 가까운 일이다.

더구나 갈수록 그 'Reds'들이 대기업에 놀아난다는 느낌. 처음 2002년에 거리를 그들이 접수했을 때만 해도

오, 이건 뭘까 멋지다~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점점 상업화되고 대기업의 도구로 전락하는 느낌이다. 하여

'대한민국은 샤우팅입니다' 요 짧은 문장 하나에서 맘에 안드는 글자가 무려 일곱글자나 된다.

우야튼, 교보빌딩 앞을 지나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발견. 교보빌딩이 포장중이었다.

아직 어떤 문장인지 명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대들의 함성으로 승리를 두드려라' 정도 되려나. 홍명보

형님이 활짝 웃고 있는 오른쪽의 그림은 열심히 건물 외벽에 부착작업 중이었다.

참 고생이시구나, 싶었다. 늘 여길 지날 때면 교보빌딩 외벽에 적힌 몇마디 촌철살인의 문구들이 참 좋았는데

저기도 월드컵 열풍을 빗겨나가지는 못하는구나 싶어서 씁쓸하기도 하고. 사실 난 차라리 SBS가 월드컵

중계를 독점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월드컵 기간이라고 개자식들이 사건사고를 안 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채널에서는 그래도 내가 궁금한 것들에 대해 무기력하게나마 이야기해주겠지.





선물이 있는 퀴즈. 풀죽은 말 두마리를 내달리게 하려면? 에 대한 답이 되는 포스팅입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퀴즈지만 저 빼고 다른 사람들은 많이 알지 않을까 싶었는데, 쉽지 않았던 문제인 듯 해요.ㅎ


종이를 접건 자르건 뒤집건, 이 종이 위의 말 두마리가 신나게 내달리는 포즈만 연출해 낼 수 있으면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몇가지 재미있는 답이 나왔습니다.

A1. 쟤네들은 원래 달리고 있었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을 뿐. : 그렇다고 보기엔 좀 동작이 ㅄ같죠?ㅋㅋ

A2. 그냥 기수 둘이 나가고 두 말끼리 관계를 맺게 해 준다 아닙니까? : ...이렇게요? ...뭔가 내달리긴 하는 듯.;

A3. 남들 못 보게 종이를 구겨버리고 그냥 지들끼리 알아서 달리겠거니 생각한다. : 정답~*

은 아니고,  우선 이렇게 종이를 자릅니다.

양 쪽의 말 두 마리 그림을 서로 등을 마주보게 옮겨놓습니다.

벌써 눈치빠르신 분들은 아셨겠지만, 말 두마리가 네 토막으로 나뉘어 뭔가 새로운 그림을 품고 있군요.
짠~* 이제 기수 그림만 그 위에 살포시 얹으면 끝입니다.

뜀박질한다기보다는 거의 '퍼어어얼쩌어억~' 날고 있다는 느낌으로 떠 있는 말 두마리네요.





출처를 알 수 없는 곳에서 얻은 종이 한 장이 있습니다.

말 두마리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과 말등 위에 앉아 있는 듯한 기수 두 명의 모습이 담긴 그림입니다.


종이를 접던 자르던 뒤집어 붙이던, 말 두 마리가 신나게 내달리는 모습을 만들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한시간은 2분이지만, 사실 제한시간이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어떻게 하는지 아시는 분은 댓글로 쉽게 설명을 해주시거나, 아예 풀이과정을 포스팅해서 올려주시면

새해맞이 선물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ㅎㅎㅎ

(이거 절대 제가 못 해냈으니 남들도 모두 못할 거야, 따위의 오기가 발동해서 내는 문제는 아니에요.)


다시 한번, (작심삼일 시즌2까지 지나버렸지만) 1월 7일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짧은 제주 일정의 마지막 경유지는 바로, 성산 일출봉. 대학교 일학년 때 친구들과 자전거로 제주도를 일주할 때

멀리서부터 그 봉우리를 보고는 다들 미친듯이 페달을 밟았던 기억이 생생한 곳이다. 이번에는 일출봉 바라보고

가던 길에 배가 고파 살짝 무슨무슨 맛집, 어디 프로그램 소개 맛집, 요런 데 들러서 가볍게 식사를 했다.

그 식당 앞에 무질서하게 쌓아올려진 듯 보이는 돌담, 바람이 숭숭 잘도 통하게 쌓아놨다.

매표소 옆의 계랸색 매점 건물을 지나 눈을 높이면, 웅장한 맛을 풍기는 일출봉이 우뚝하다.

제주 지역방송들이 방송 중간중간에 간지 끼워넣듯 껴넣는 이미지, 성산 일출봉에 해뜨는 모습이라지만 사실 여기서

해뜨는 건 번번이 못 보고 지나갔었다. 가족들과 어렸을 적 왔을 때는 아예 요앞에서 묵으며 해를 기다렸는데 날이

흐려서 못 봤었고, 다른 날은 여기에서 일출이나 일몰을 기다릴 타이밍이 되지 못했더랬다.

성산봉 오르는 길목, 초록빛 싱그러운 초원 위에는 잘 생긴 갈색 말 몇 마리가 묶인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뿐 아니라 제주도를 돌다 보면 드문드문 승마 초보자 환영, 말타볼 수 있는 곳, 이런 간판을 많이 볼 수 있다.

초원 같은 평지, 살풋 각도가 느껴지는 평지를 지나 본격적으로 등산 시작. 일출봉 어귀에 있던 매점에는 중국어가

떡하니 적혀있었다. 샨샹메이요우슈웨이~. 일출봉 오른 후엔 물 파는 데가 없으니 여기서 사란 얘기. 그러고 보면

제주도에서 중국인 단체관광객은 눈에 참 많이 띈다.

일출봉 가는 길이 그때도 이렇게 잘 닦여 있었던가, 처음부터 끝까지 차곡차곡 계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다지 길지

않고 힘들지도 않은 코스, 지레 겁먹었던 동생님도 어느새 생기발랄해졌다. 왕복 50분이면 넉넉히 보고 돌아올 듯.

일출봉에 올라서서 바람으로 땀을 식히는데, 좀 곤란하다. 커다란 분화구 모양의 일출봉. 사진을 찍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를 허용치 않은 채 나와 방문자들을 덥썩 안아 버렸다. 제법 까끌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지는 초록빛

커버가 분화구를 매끈하게 메우고 있었다. 현무암에 잔뜩 슬어있던 이끼같기도 하고, 스프 위에 좀 과하게 뿌려놓은

아스파라거스 가루 같기도 하다.
 
안개 자욱한 분화구 너머 마을이 희끄무레하게 보이고, 분화구의 오톨도톨한 가장자리가 험준한 산의 능선이나

백두대간처럼 쭉 이어진 산맥처럼 보인다. 파도치듯 쉼없이 달려나가는 백두대간의 미니어쳐랄까. 아님 우유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우윳방울이 낙하한 직후의 왕관같은 흔적과도 흡사하다. 천분의 일초 쯤으로 찍어올린 장면,

튀어오른 물방울들은 전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정상에서 굽어본 중간 쉼터. 사람들이 조그만 게 개미같고, 나무들은 딴딴하고 속이 찰진 파슬리나 브로콜리 같다.

멀리 보이는 마을과..저건 호수인 척 하는 바다일까. 그러고 보니 이날 날씨가 하루종일 흐린 편이었기에

더위도 덜했고, 땀도 그다지 많이 나지는 않았던 거 같다. 바람이 찍혀 나온 사진.

성산 일출봉에 올라 사람들이 밟을 수 있는 영역이란 딱 여기까지다. 울타리가 설치된 구간은, 커다란 분화구의

오분지일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의 공간만 확보해 주었을 따름이다. 사람들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나름

최선의 뷰를 잡아보려 애쓰지만, 어쩌면 이 곳의 풍광을 오롯이 감상하려면 열기구나 헬리콥터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게다가 맨눈보다도 못한 카메라로는 눈으로 감상하는 풍경의 절반도 담지 못하겠더라. 적어도 나는.

내려가는 길, 그러고 보니 내게 남아있던 일출봉의 이미지란 단지 그 뾰족한 화구만의 것은 아니었다. 거기까지

이르는 길에 푹신해보이도록 깔려있는 녹색의 잔디밭, 언덕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곡선, 그리고 그 너머에서

산산이 부서져 있는 햇살, 그 햇살이 둥둥 표류하는 바다.

어라, 한쪽에는 모터보트 선착장도 생겼나보다. 이런 거 못 봤던 거 같은데. 계속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내어 굳이

대조해보게 되는 건 왤까.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느끼려고 애쓰면서도, 막상 쉽지 않다. 어쨌거나, 혹시

모터보트 추격신이 필요하거나 해안 총격장면을 찍어야 하는 감독이라면 한번 추천해주고 싶긴 하다.

내려오는 길 어딘가에서부터 사람들이 다듬어진 돌계단길을 버리고 잔디밭으로 걷기 시작했다. 사실 보폭이 그다지

고려되지 않은 채 만들어진 계단인지라 계속 왼쪽 다리로 계단을 내려서게 되거나, 혹은 반발짝을 마저 걸어야 하는

등 좀 불편하고 힘들었다. 푹신푹신, 경사가 제법 되는 길인데도 사방을 둘러보며 걸을 여유가 생겼다. 덩달아

여유로와보이는 저너머 '노인과 말'.

늘 생각하지만 제주도에 가서 성산 일출봉은 왠만함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봉우리 하나

등산하듯 오르내리는 게 아니라, 그 봉우리 앞에 쫙 펼쳐져 있는 이런 풍경들, 이렇게 이쁜 길들, 그것들은

'성산 일출봉'이란 이름과 떼어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공간들이지 싶다. 일출봉이 덮고 있는 무릎깔개처럼

안온하고 포근한 느낌을 전해주는 그 보들보들하고 싱싱한 녹색. 그러고 보니 언젠가 한번 구경갔던 골프장의

인공조경과 비견할 만한 굴곡에 녹색이다.


일단 올해 다녀온 제주도 여행기는 여기서 끝~*


제주#1. 제주올레 7코스, 외돌개를 끼고 걷기 시작하다.
제주#2. 꽃길, 찻길, 논두렁길, 바닷가길을 넘어 건너.
제주#3. 철조망에서 자유로운 제주도의 해안..?
제주#4. 남/녀 노천탕에 사람은 없고 조개껍데기만.
제주#5. 올레길 7코스의 바닷가 우체국.
제주#6. 강정포구 가는 길(올레길 7코스)
제주#7. 올레길 7코스 vs 해군기지.
제주#8. 월평포구에서 끝난 올레길 7코스.
제주#9. '업'에서 나왔던 커다란 새를 찾아내다.(아프리카 박물관)
제주#10. 오설록녹차박물관에서 '현미녹차'를 생각하다.
제주#11. '식상한' 천지연보다 '제주감귤와인'이 궁금했다.
제주#12. 이름이 왜 5.16도로일까.
제주#13. 숲다운 숲, 비자림 거닐며 산림욕 한번 어떨지.



이명박 지지율이 30% 이상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대체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올림픽에서 자신의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돌아오지도 못하게 막고 퍼레이드를 기획한다고 비판도 무성하지만, 어쨌든 선수들의 금메달을

자기 목에 건 양 지지율이 올라가는 게 사실이다.

YTN 사장을 낙하산 태웠고, KBS 사장을 순식간에 결정짓고자 하며, 잘 나가는 인천공항을 뜬금없이 민영화한다

하고, 든든한 '백'으로 한나라당 쓰레기들을 치켜세우는 이명박. 진정한 '홧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사람.

그리고 차츰...그는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 적나라하고 극적인 결과물이라는 일각의 시니컬한 지적이 맘에

와닿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심인성 기자 =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6개월 동안 수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초기 `일하는 정부'를 표방하면서 사회 전반의 변화와 쇄신을 주문했으나 5월 들어 `촛불정국'이 도래한 이후에는 목소리를 낮추고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는데 주력했다. 이 대통령은 건국 60주년인 올해 8.15를 계기로 새출발을 다짐했다.

다음은 이 대통령 취임 후 주요 발언.

▲"섬김의 봉사정신으로 국정을 살피겠다"(2월25일 취임사에서 `섬기는 리더십'을 펼치겠다며)

▲"공직자는 서번트(머슴)다"(3월10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공무원들에게 머슴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돌아보라고 비판하면서)

▲"우리 의식 속에 박힌 전봇대를 뽑는 것이 중요하다"(3월19일 상공인 간담회에서 의식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청와대에 실세는 없다"(4월2일 비서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일에 매진할 것을 주문하면서)

▲"어느 당에도 내 경쟁자는 없다"(4월22일 한나라당 국회의원 당선자 초청만찬에서 친박복당 문제와 관련, 당내 화합을 촉구하면서)

▲"축사에 비상구 표지 붙인다고 소가 그걸 보고 나가나"(4월27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재정전략회의에서 규제혁파와 현장중심 행정을 주문하면서)

▲"정치가 뭉치면 잘되는데 뭉치지가 않는다"(5월22일 건국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첫 회의에서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 처리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을 지적하면서)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5월22일 쇠고기 사태와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인터넷의 힘은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약 아닌 독이 될 수 있다"(6월17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장관회의 개회식 환영사에서 인터넷의 역기능을 지적하면서)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6월19일 특별기자회견에서 `쇠고기 파동' 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

▲"촛불로 뒤덮였던 거리에 희망의 빛이 넘치게 하겠다"(6월19일 특별기자회견에서 `쇠고기 파동' 극복의지와 함께 대국민 협조를 당부하면서)

▲"쇠고기 논란 끝내고 경제살리기 국면으로 가자"(6월26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 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더 이상의 소모적 논란을 접자고 촉구하면서)

▲"개혁을 하는데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6월26일 일본의 개혁 전도사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게이오대 교수를 접견한 자리에서 개혁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3차 오일쇼크라 할 만한 상황"(7월2일 청와대 수석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고유가 위기를 거론하면서)

▲"경제살리기 횃불을 높이 들 때"(7월3일 제1회 지역투자박람회 개막식 축사를 통해 국가적 차원의 경제살리기 노력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에 가도 괜찮으냐'는 전화 많이받는다"(7월3일 제1회 지역투자박람회 개막식에서 촛불시위에 대한 외국 경제인들의 우려를 전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각오로 일어서고자 한다"(7월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 축사에서 새출발의 의지를 피력하면서)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7월12일 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목소리는 낮추되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겠다"(7월24일 국가경쟁력강화위 5차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개혁과제의 차질없는 추진을 역설하면서)

▲"공무원의 힘이 곧 나라의 힘"(7월15일 공무원에게 보낸 서면 메시지를 통해 공무원의 사기진작 필요성을 언급하며)

▲"우리끼리 자책하면 일본이 웃지 않겠나"(7월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 투표장에서 독도사태 관련 책임자 문책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대통령전용병원 왜 필요하나"(8월4일 건국60주년 기념사업위 회의에서 소격동 대통령 전용병원의 국민반환 입장을 밝히면서)

▲"여기가 독도입니다"(8월6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청와대내 정상회담 장소로 이동하던중 복도에 붙은 대한민국 지도 가운데 독도를 가리키며)

▲"베이징은 `상전'(商戰)과 같았다"(8월12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의 첫 당청회동에서 중국 방문과정에서 느낀 각국의 자원외교 경쟁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으면서)

▲"남북관계도 당당히 정상화해야"(8월14일 취임후 계룡대를 첫 순시한 자리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기본원칙을 재천명하면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비전의 축으로 제시한다"(8월15일 8.15 경축사에서 녹색성장을 신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국가발전 패러다임으로 규정하면서)

▲"이렇게 든든한 백이 있는데 내가 뭘 걱정하겠느냐"(8월20일 한나라당 신임 당직자 만찬에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대하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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