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설작업', 2004년에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는 좀체 입속에서 굴러다닐 일이 없던 단어, 심지어는 귓바퀴에
 
넣고 굴릴 일조차 없던 단어였는데, 무려 6년만에 제설작업에 동원되고 말았다.

장소 : 코엑스 밀레니엄광장

시간 : 200..아니 2010년 1월 4일, 13시 30분-14시 30분

작업목표 : 20센티 이상 쌓인 눈치우기(삼성역 5번출구서 코엑스몰입구까지)

회사 사람들이 우르르 나와서는 눈삽과 빗자루를 들고는 눈이 발목넘게 쌓인 채 통제구역으로 띠둘려진

그 곳에 들어가 제설작업을 시작했다. 통로가 미어지게 지나가던 사람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심지어

외국인들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축축해지는 구두를 느끼며 구두와 양말이 합일되는

경지를 감촉하며 눈을 치우다가 급기야 후배 직원을 엎어뜨리고 눈사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부끄러웠다.


머리 위와 어깨 위로부터 김이 펄펄 오르기 시작할 때 쯤, 역시 머리보다 몸을 움직이는 체질은 아닐까

생각했다. 사무실에 들어가기 싫어서 괜히 여기저기 눈삽 찔러넣다가 끌려가듯 올라왔다.


아침 9시부터 예정되었던 시무식, 누가 센스없이 9시부터 시무식을 하겠다고 했는지 모르지만, 미친 듯이

쏟아붓고 있는 폭설 덕에 회장님이 그만 늦어버렸다. 예정되었던 식순과는 달리 이런저런 즉석 신년사와

축복들이 오고 가다가, 도무지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는지 부회장님이 회장님한테 전화를 했다.


어이구, 어디신가요 회장님, 뭐라뭐라. 어이구, 안 되시겠네요. 뭐라뭐라. 어이구, 그럼 휴대폰으로라도

인사하시죠. (으응?) 마이크에 휴대폰 대고 있음 괜찮아요. (뭐라고?) 제가 노래방에서도 해봤거든요.

그리고 시작된 회장님의 신년사, 마이크 너머 휴대폰 너머 '세상의 끝'에서부터 들려왔다.


꽤나, 신선하고 재미있었던 시무식. 회장님이 늦게 온 덕에 이런저런 사람들도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도

해보고, 유례없이 휴대폰을 사용한 시무식도 경험해보고. 기자들도 재밌다고 생각했는지 기사로도 여기저기
 
난 것 같다. 역시 부회장님은 노래방에서 그런 경험이 있으실 만큼 고렙이신 건가.



* 오늘 눈이 삼엄하게 내리던 새벽에 수영장 가는 길, 마치 '더 로드' 위를 걷고 있는 느낌. 책으로 봤던

스토리를 영화로 보면 대개 실망하기 마련이라 영화는 안 볼 생각인데..이미 오늘 비쥬얼은 경험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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