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120

Pentax의 K-r이 이토록 다채로운 색깔로 화려하게 등장하리란 건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미 펜탁스 K-x가 나왔고, 소비자들이 그 감각적인 색깔에 열광적으로 호응했다는 점은 충분히

확인이 되고도 남았달까. (국내에는 고작 빨강, 하양, 검정 세가지 색만 들어왔지만) 일본에서는

무려 100가지의 색깔 중에서 마음껏 고를 수 있다는 선택의 자유로움은 가히 획기적인 거였으니까.


사실 그 전까지 DSLR하면 그저 까맣고 무겁거나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딱딱한 녀석, 그래서

좀 친구 사이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재수없는 녀석이 떠오르곤 했는데, 이 아이들은 활짝 피었다.

팬시하고 화려한 색감을 과시하면서도 왠만한 보급기 이상의 성능을 과시했으니, 말하자면

K-x는 '공부도 잘하는데 옷도 잘 입고 성격도 사교적인' 그런 DSLR이었던 셈이다.

이번 K-r은 좀더 본격적이다. 훨씬 대담하고 튀는 색깔들이 바디 12색깔 곱하기 그립 10색깔,

무려 120가지의 '色깔맞춤'이 가능한 셈이다. 게다가 35mm 단렌즈도 12가지의 색상이 준비되어

있다니 가히 부잣집 아이들의 상징이었던 72색 크레파스가 무색할 지경이다.


대체 이런 식의 조합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색깔이 뒤섞인 카메라들이 생겨나는

것은 일종의 부작용일 수도 있겠지만, 주홍색 바지에 하늘색 셔츠 매칭을 잘만 소화해내는 우월한

인류가 존재하는 걸 감안한다면 역시나 120가지의 깔맞춤 하나하나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셈. 


아쉽게도! 이번 K-r 역시 한국에는 핑크색, 하얀색, 검정색 바디만 수입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나머지 바디에 대해서는 일본 펜탁스 홈페이지에서 시뮬레이팅을 실컷 해보는 걸로 대리만족할

수 밖에 없겠다. 그렇지만 차츰 한국에도 Pentax의 색감과 컬러에 호응하는 컬러피플이 많아지면

다음다음 모델쯤에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동일한 '깔맞춤'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어쨌든 현재 한국에서 구현할 수 있는 K-r의 '깔맞춤' 경우의 수는 다음과 같다고 하겠다.

(수식 1)

COLOR : 바디 3色 X 그립 10色  = 30色의 K-r.






형形.Portable DSLR


DSLR을 쓰기 시작한지 이제 2년이 조금 넘은 정도지만 동호회나 평가단 등의 기회를 통해

이것저것 쥐어볼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인 행운이라 생각한다. 갈수록 작아지고 가벼워지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변해가는 DSLR들을 쥐면서 점점 굳어지는 생각은, 이제 충분히 컴팩트한

수준으로 내려섰으니 정작 중요한 문제는 내 손에 얼마나 잘 달라붙어 있느냐는 것.

이번 K-r을 쥐어보고 느낀 건 이전 모델이자 내 메인 DSLR이기도 한 K-x에 비해 훨씬 손에

잘 달라붙는다는 점이다. 길이는 이전 모델과 거의 비슷한 125mm, 담배갑보다 조금 큰

수준이니 사실 더이상 작아지면 흔들림없이 쥐고 셔터를 누르기도 불편해질지 모른다.

DSLR의 무게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샤프하고 실용적인, 그야말로 Portable한 DSLR로서

이 정도의 디자인과 사이즈, 무게라면 최상 아닐까 싶다.

(수식 2)

K-r : 125mm × 68mm × 67mm = 544g (배터리, 메모리제외)



손이 닿는 부분에 씌워진 합성고무 재질의 그립은 땀이 나도 끈적거리지 않고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을 제공했다. 게다가 오른손만이 아니라 왼손으로 받치게 되는 카메라 바디 왼쪽 부분에도

말랑거리는 그립을 감싸 카메라가 더욱 고급스러워보이는 느낌은 물론 촬영시의 단단한

그립을 가능하게 한 것 같다.

※ 참고삼아 찍어본 K-x의 바디. 위의 K-r 바디와는 달리 그립부분의 고무가 꽤나 야박하게 들어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오른손가락들이 조금 바둥거리고 나야 제대로 네 손가락이 고무그립위로

안착하게 되는 오른쪽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아예 왼쪽은 맨들맨들한 바디 맨살이다.

위에서 봤을 때도 K-r은 좀 더 멋진 모습이다. 다양한 수동 노출과 자동 노출 모드를 지원하며

360도 뱅글뱅글 돌아가는 다이얼이 얹혔고, 삼각형 모양의 뾰족한 산처럼 모아지는 헤드 속에는

플래시가 내장되어 있다. "자동, 장면모드, 동영상, 프로그램(P), SV, 셔터속도우선(Tv),

조리개우선(Av), 메뉴얼(M), 발광금지, 야경+인물, 접사, 풍경, 인물, 동체" 등

무려 14가지에 달하는 노출모드는 적시에 타이밍맞게 끌어쓰기 편하다.


여러모로 K-r이 이전에 비해 더욱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건, 이런 조그만

메모리 슬롯의 디자인이나 마무리에서도 드러난다. 오른쪽 사진이 K-x의 슬롯, 왼쪽이

K-r의 슬롯인데, 아무래도 야외에서 촬영을 하거나 장기간 여행을 하며 촬영을 하게 되면

저렇게 툭툭 깊고 투박하게 꺽인 부분에 먼지나 이물질이 끼고 지저분해지기 일쑤였다.


이번 K-r의 슬롯은 메모리 카드를 쉽게 빼고 끼고 할 수 있으면서도 딱히 걸리는 부분이나

먼지가 고이기 쉬운 부분을 최소화하겠다는 세심한 의지가 읽히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흡족했다.

후면은 정말 K-x와 하나도 바뀐 게 없었다. 위로부터 훑어보면 AF/AE-L, LV(Live View),
 
Infomation, Menu버튼과 네방향으로 누르게 되어있는 멀티 셀렉터 등이 차례로 배열되어

있는 거다. 필요한 기능들이 온통 오른손 엄지손가락의 미묘한 움직임으로 해결되는

범위 내에 집중되어 있어 오래 쓰다보면 맨들맨들 후면이 닳게 된다는 단점 아닌 단점은

있지만, 그만큼 편하게 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Tip)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 세상에는 '천지인'과 '이지한글' 따위 한글을 입력하는 다양한

방식을 채용한 원시시대의 폰들이 군웅할거하고 있었다. 각 방식에는 나름의 장점이 있었고

한번 입문한 자를 쉽사리 다른 방식으로 옮기지 못하게 하는 Lock-in 효과까지도 있었는데,

DSLR들의 콘트롤 인터페이스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렇지만 역시, Pentax로 DSLR에

입문했고 그 색감과 성능에 대만족중인 자칭 Pentaxist의 입장으로선 지금의 인터페이스에

대대만족!



선線. 빛과 전기에너지


이전에 비해 돌출된 그립부와 렌즈 사이의 공간이 조금은 더 여유로와 보인다. 실제로 잡아보면

그다지 넓어졌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고 디자인의 문제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정작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던 것 같다. AF(Auto Focusing)을 위해 어두운 공간에서는 녹색의 AF보조광이 피사체에

발사되어 더욱 정확하고 품질 높은 사진이 나오도록 하는 성능향상이 이뤄졌다는데, 바로 그

녹색불빛이 발사되는 곳이 문제의 그곳, 그립부와 렌즈 사이의 공간.

K-r의 특징 중 하나, 휴대 전화나 휴대용 프린터와 적외선 통신을 통해 사진을 전송하고

출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디 왼쪽에 USB단자 위쪽으로 보이는 둥그렇게 까만 지점이

바로 적외선으로 데이터를 송수신할 수 있는 적외선 포트.


개인적으로는 우연찮게 생일선물로 카메라와 연동가능한 휴대용 프린터를 선물받았는데,

애초 프린터가 어디에 적용가능한지 주의깊게 보지 않은 터라 기존 K-x에서는 사용할 수

없어 곤란하던 참이었다. 당장 카메라와 프린터를 들고 나가서 사진을 찍고 적외선 통신으로

인화까지 해보고 싶은 맘은 굴뚝같지만, 일단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잠시대기.
 

정말 무엇보다 가장 획기적이었던 변화는 그렇지만 따로 있었다. 기존에 AA배터리 네 개를

넣어 사용하던 방식(K-x 기준)에서 벗어나 전용 리튬-이온 배터리(D-LI109)를 병용할

있도록 개선했다는 점이다. K-x를 들고 여행이라도 가려면 배터리를 얼마나 많이 준비해야

했는지, Ni-Mn배터리 기준으로 대충 200-300장 정도 찍으면 닳아버렸던 거다. K-r의 경우

전용 리튬-이온 배터리는 약 700장 이상 찍을 수 있어서 확실히 '전기에너지'에 대한 압박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기존 K-x의 배터리 슬롯과 비교해보면 그 모양새가 확연히 다르다. 아무래도 둥그런 배터리

네개만 받아들이게 되어있던 K-x와 네모난 전용 배터리와 AA배터리 둘다 장착할 수 있도록

만든 배터리 슬롯은 다를 수 밖에 없을 테고, 덕분에 배터리 걱정없이 장시간의 사진 촬영

혹은 라이브뷰 운용, 동영상 촬영 등이 가능하게 되었다.


(수식 3)

K-r : AF Green Light + Infrared Light + Lithium-ion battery = 무선(無線)


면面. 광활한 LCD모니터



카메라 바디의 후면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운동장만한' 사이즈의 LCD모니터는 무려 3.0인치에

달하는, 게다가 무려 92만 화소의 고해상도를 자랑하며 굉장히 업그레이드되었다. 기존 K-x의

LCD모니터가 2.7인치, 그리고 23만 화소에 불과했다는 점과 비교하면 정말 굉장히 비약적인

성능 개선이라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 그저 말로만 하면 사이즈의 차이를 잘 모를 듯 하여, 굳이 K-x의 LCD모니터 부위를 촬영해봤다.

밑에 PENTAX라는 로고도 박혀 있고, 오른쪽의 버튼들도 좀더 헐렁하게 공간을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대번에 받게 되는 거다. 그에 비하면, K-r의 저 광활한 모니터라니.

메뉴는 Pentax의 기존 셋업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K-x에 익숙해진 사람은 거의 새로움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디테일한 부분과 성능 면에서 여러 기능이 보완, 추가되었으니

그런 부분은 다음에 좀더 다룰 수 있을 거 같고, 일단은 그저 저 커다란 모니터를 통해

사진을 찍고 확인하는 작업만으로도 속이 다 후련해지고 말았음을 고백하는 수준에서

멈추기로 한다.

한가지, K-r에 대한 성급한 아쉬움을 표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카메라에 메모리 카드를

꽂고, 배터리를 꽂고, 단단히 카메라를 움켜쥔 채 전원 스위치를 돌려 'POWER-ON'하는 순간은

DSLR과 일종의 교감을 나누는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아바타에 비기자면, 토루크막토와

주인공이 머리꼬랑지와 부리를 비비 꼬며 교감을 나누는 순간이랄까.


그런 순간에라면 번쩍, 카메라 어딘가에라도 불빛이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닐까. 토루크막토의

눈빛이 번쩍 섬광이 일거나 하듯이 말이다. 이전 K-x는 'POWER-ON'의 순간 저렇게 번쩍,

파란 불빛이 들어왔는데 아쉽게도 K-r은 그부분이 램프가 아니라 그냥 깔끔한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다. 그런 게 지금, Pentax K-r을 사용한지 근 이삼주, 방콕으로 출사까지 다녀온

마당에 유저로서 느끼는 아쉬움 하나.

K-r에 대해 정보를 찾다가 발견한 일본 펜탁스 홈페이지에서는 K-r의 다양한 색상을 부각하는

시도 중의 하나겠지만, 이런 게임까지도 만들어두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해두었더랬다.

실제로 구현가능한 120가지의 색상이 모두 나오는 건 아니고-그랬다면 정말 굉장한 난이도의

게임이 되었을 테지만-바디의 색상 12가지 만으로 조합이 이루어지는 게임.


게임을 핑계삼아 K-r의 우월하고 우아한 색상으로 눈을 즐겁게 하고 싶거나, 카메라를

핑계삼아 잠시라도 가벼운 오락을 하며 쉬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한번쯤 들러보는 것 추천하고

싶다. http://www.camera-pentax.jp/k-r/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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