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미학, 크로스 프로세스.


Pentax K-r이 가진 강력한 장점이자 흥미로운 점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이녀석이다.

직전 기종인 K-x부터 장착된 기능인 크로스 프로세스. 이름만 들어도 뭔가를 비비 꼬아서

'허를 찌르는' 결과물을 내놓을 거 같은 느낌이 팍팍 오는 거 같았는데 정말 그랬다.



한국의 전통적인 오방색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큰 북이 있었고, '크로스 프로세스' 기능을

적용해서 연사로 드르륵 긁어버렸다. 한장한장 약간씩 두드러진 색감이 달라지면서

차갑거나, 센치하거나, 옛스럽거나, 혹은 환상적인 느낌이 담기는 거다. 애초의 오리지널

사진이 빈틈없이 원색을 반영하는데 집중하느라 조금 단호하고 빈틈없이 느껴진다면,

크로스 프로세싱 기능을 통해 예기치 못한 빈틈이 생기고 거기에 감정이 담긴달까.




물론 그렇게 색감이 변하는 과정을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크로스 프로세스'

기능은 크게 세 가지의 방향으로 색감을 바꿔나갈 수 있다. 초록색-청색이 강화되는

게 하나, 노랑색이 강화되는 게 하나, 그리고 붉은색-보라색이 강화되는 게 다른 하나.

위의 사진들만 봐도 오리지널 사진에 어떤 색감이 강조되어 변형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디폴트 값(초기값)으로 주어진 세팅이 그렇게 세가지가 있으니 원하는 걸 선택한 후

셔터를 누르면 끝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크로스 프로세싱'의 묘미는 다소 우연에 맡겨두는 거다. 특정 색감을

예측하고 찍기보다는 그저 랜덤으로 우다다, 대여섯장의 사진을 찍어두고 K-r이 알아서

변환시켜 내뱉는 사진을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같은 공간에 대한 전혀 다른 색감,

그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와 정취가 느껴지는 사진이 예기치 않게 튀어나오는 즐거움이란

뭐라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저 한번 경험해 보랄 밖에.


광화문 인근을 걸으며 찍은 사진들, 역사박물관 앞에 있는 전차는 지날 때마다 생각했었다.

참 주변이랑 안 어울린다고. 전차만 딱 놓고 봤을 때는 뭐 그럭저럭 괜찮지만 화려한 간판을

두른 높은 건물들 사이에선 왠지 뜬금없고 위화감마저 든달까. 그걸 자연스럽게 풍경에

녹여내는데 조금이나마 성공했다면 역시 '크로스 프로세스' 기능의 위력. 아직도 스산한

바람이 내달리는 덕수궁 돌담길에 늘어뜨려진 앙상한 나무 그림자라거나, 갤러리 안을

덥히고 있는 빨갛게 달아오른 난로라거나, 나름의 분위기를 살려내며 신선한 느낌을

발견해 낼 수 있게 해주는 거다.


(How to use)

K-r의 메뉴 구성은 굉장히 찾기 편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메뉴 버튼을 누르고 나름의

기준에 따라 탭으로 묶여있는 기능들 가운데 '크로스 프로세스'를 찾아 누르면 이런

화면이 나타난다. 디폴트값으로 꺼져 있는 OFF, 그리고 차례로 랜덤모드, 초록빛 강화,

노랑빛 강화, 붉은빛이 강화되는 모드에 더해 세가지 마이스타일 즐겨찾기 모드까지.

아무래도 '우연'같은 사진을 발견하는 재미를 원한다면 랜덤모드가 최고인 듯.



언제고 손쉽게, 디지털 필터.


렌즈 앞에 돌려 껴야하는 '아날로그 필터'는 나름 가격도 있는 데다가 그때그때 카메라를 부여쥐고

낑낑 돌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는 거 같다. 사진 한두장 효과를 더해보자고 필터를 바꾸는 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어서 그냥 포기하곤 했는데, 그럴 때 유용한 게 바로 디지털 필터다. 요새는 다른

브랜드의 카메라에도 왠만한 디지털 필터 기능은 있다고 하지만 K-r만큼 다양하고 섬세한 조정이

가능하지는 않은 것 같다.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디지털 필터 기능은 ①토이카메라, ②복고풍, ③하이콘트라스트, ④색추출,

⑤소프트, ⑥트윙클, ⑦어안, 그리고 ⑧커스텀(맞춤형) 기능이다. 그 각각에 대해서 몇가지의

디테일한 수정과 변경이 가능하니까 꽤나 광범위한 선택의 폭을 가진 셈이다. 위의 사진은 차례로

각 디지털 필터를 기본적으로 적용시켜본 일곱가지 샘플인데, 각각의 효과가 뚜렷하다.

특히 마지막 어안렌즈가 적용된 사진은 다소 유머러스하게 나와서 보고 있음 웃음이 난다.



파스텔톤의 천이 색색이 늘어뜨려진 공간, 부드럽긴 하지만 다소 늘어지고 밋밋한 느낌의 풍경이

필터의 도움으로 꽤나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보였다. 굉장히 강렬한 콘트라스트가 적용되어

역동적이랄까 거친 분위기로 바뀌기도 하고(③하이콘트라스트), 모노톤 가운데 빨간색깔만 추출해

두드러지게도 하고(④색추출), 아님 아예 천들이 너울치는 물결인양 극도로 부드럽게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⑤소프트), 다소 뜬금없게 공간을 휘어버려 당혹스럽게도 하는(⑦어안) 사진들.



일월성신도를 배경으로 한 왕좌를 마찬가지로 여러 디지털 필터를 적용해서 찍어 보았다.

필터를 전환하는 것 역시 매우 간단한지라,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와중에도 금방 모든 필터를

활용해서 사진을 찍어볼 수 있었는데 그 와중에 정말 재미있는 기능 발견! 색추출기능이 참

요모조모 독특한 느낌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거다. 노란색, 초록색, 파랑색, 빨강색, 분홍색,

하늘색 등 여섯가지 색깔을 추출해내고 나머지는 모두 모노톤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능.


즐겨찾기 #1. 색추출 기능!

 

이런 식인 거다. 알록달록한 색감의 놀이터를 각각의 색으로 쪼개서 표현할 수 있는 기능이다.

그러고 보면 이런 식의 기능은 광고 포스터나 영화 포스터에서 적잖게 봤던 거 같다. 립스틱

광고라면 입술만 새빨갛고 나머지는 모두 모노톤으로, 영화 광고라면 특정 물체만 색깔을

살리고 나머지는 모두 모노톤으로. 어쨌든 원하는 색깔, 원하는 물체를 부각시키는 데에는

그만큼 탁월한 기능이란 반증인 거 같다. 재미있기도 하고.



한번에 한가지 색만 추출하는 게 아니라 두가지 색까지 동시에 추출할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위에는 각각 파란색, 노란색 하나씩만 추출해 본 사진들이지만 바로 위에는 파랑과 노랑 두가지

모두를 추출한 사진들. 좀더 은근하게 분위기를 바꾸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어디가 이상한지

딱히 못 찾아낼 정도긴 하지만 그렇다고 평소에 질리도록 보았던 평범한 풍경과는 뭔가 다른.

평소 보던 풍경, 아랫쪽과 같은 풍경이었다면 노랑색만 추출해낸 사진은 영 느낌이 달라졌다.

샛노랗게 두드러지는 색감도 눈에 쏙쏙 꽂히도록 이쁘고, 슬쩍 저너머 나무에 묻어나는 노랑

개나리 뭉치의 느낌도 좋다. 

 


마찬가지로 다채로운 빛깔의 차들이 종횡하는 거리의 풍경에서 잡다한 색깔을 지워내고 각각

파란색, 빨간색만 남겨내어 보았다. 단순 모노톤의 사진과는 달리 생생한 빛깔 하나가 추가되어

별 인상도 남기지 못하고 그저 그렇던 사진이 조금은 구제되었달까.


이렇게 빨간색만 살려내는 게 그간 봐왔던 광고나 영화 포스터의 수법이었던 거 같은데, 그냥

모노톤에 빨간색 하나 끼는 것만으로도 제법 그럴 듯한 사진이 되는 거 같다.


(How to use)

간단하다. 메뉴에서 '디지털 필터'를 누르면 이렇게 펼쳐지는 다양한 옵션, 무슨 디지털 필터

마켓에 온 듯한 느낌이지만 당장은 색추출이 급하니깐. 첫번째 추출할 색깔을 정하고 사진을

찍거나, 기본적으로는 꺼져 있는 두번째 추출할 색깔을 마저 선택해서 사진을 찍으면 된다.

각각 감도를 다섯단계에 걸쳐 설정할 수도 있으니 좀더 섬세한 접근도 가능한 건 물론이다.



즐겨찾기 #2. 어안 렌즈 기능!

 

 

봄볕은 따뜻하지만 아직 바람이 차갑던 날에, 건물 옥상 언저리에서 외벽 청소를 하고 계신

아저씨가 있었다. 왠지 위태해보이기도 하고 굉장히 추워보이기도 하고, 가느다란 줄 하나에

의지해 계신 아저씨가 불안해서 뭔가 발받침이 될 만한 게 없을까 싶었다. 불쑥~, 사진으로나마

아저씨의 발이 가닿을 만한 곳을 잡아당겨서 조금은 편하게 일하시라고.


이런 게 어안 렌즈의 본래적인 기능이야 아니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뭔가 유연하고 찰진

반죽을 쑥~ 잡아뽑듯이 볼록하게 잡아당겨내는게 재미있다.


(How to use)

불룩하게 잡아뽑는 정도도 세 단계로 조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⑧커스텀' 기능에서는 잡아뽑는

기능 말고도 밀어내는 기능도 있으니까 언제 한번 쑤욱~ 밀어내는 것도 시도해 보면 좋을 듯.

 

 

즐겨찾기 #3. 트윙클 기능

반짝반짝, 불빛을 잡아내서 그 위에 뭔가를 씌울 수 있다면 어떨까. 스티커사진처럼 유치하지는

않되 적당하게 귀엽고 발랄한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디지털 필터에 포함된 '트윙클' 기능이

딱 그런 의도에 부합하는 것 같다. 무려 다섯 가지 모양을 불빛에 덧씌울 수 있는데 잘만 활용하면

심심하거나 건조한 사진에 포인트를 줄 수 있을 듯. 물론 어쩌다 한두번 생각났다는 듯이 쓴다면

그다지 익숙해지지도 않고 번번이 생경할 테지만, 디지털 필터니까 쉽게 언제든 써볼 수 있을 거다.


(How to use)

십자 모양, 별 모양, 눈꽃 모양, 하트 모양, 혹은 음표 모양으로 빛나게 설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크기나 숫자, 기울어진 각도까지 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아무래도 빛에 감응하는 거니까

ISO 감도를 바꾸거나 조리개를 바꾸는 것에 따라 나타나는 숫자가 다르더라는 것도 참고하시길.



간단한 편집까지 바로바로, 동영상.


동영상의 관건은 화질, 음향 아닐까 싶다. 그런 것에 더해, 카메라에서 직접 간단한 편집이 가능한

DSLR이라면 더할나위없겠다. 그런 점에서 Pentax K-r의 동영상 기능은 제법 강력한 거 같다.

 

찍은 동영상을 다시 확인하면서 보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는 92만화소 3.0인치의 광활한 LCD창이

넉넉하고도 화질이 참 좋아서 시원한 느낌이다. 색감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사방에서 쨍쨍거리며

울리는 전통 음악 역시 제법 살아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영상을 보면서 직접 간단한 가위질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를 가려내며 동영상을 분할하거나 추출할 수 있는 편집이 가능하니까 앞뒤로 조금

불필요한 부분이 들어갔다고 해서 신경쓸 필요도 없고. 전용 배터리도 빵빵하니까 라이브뷰로

보면서 동영상 촬영하며 배터리 닳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방콕의 'Golden Mountain'에서 탑돌이 중인 사람들, 그 와중에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징소리

같은 것들을 잡아내려면 역시 사진으로는 안되겠는 거다. 동영상으로라야 그들의 조심스런

발걸음, 간절한 표정, 너울지는 징소리 따위를 잡아낼 수 있다 싶었다.


그리고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 저 정연한 발걸음은 근대식 훈련을 받은

군인들의 그것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군기를 보여주는 거 같다. 게다가 색색의 화려한

깃발과 복장들이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은, 사진으로는 담기 힘든 풍경.


그리고 사람 눈을 순간 의심하게 만드는, 뭔가 공간을 찌부러져든 건가 싶은 저 조각상들 역시

사진만으로는 좀 느낌을 전달하기 애매하지 싶다. 위에서, 옆에서,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모두

보여줘야 저 미묘한 느낌이 살 수 있을 텐데 역시 그러기엔 동영상만한 게 없을 거 같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환경에서, 충분한 성능을 갖고 원하는 바를 잡아낼 수 있도록 섬세한

표현이 가능토록 해주는 건 역시 Pentax K-r이 가진 '보급기 종결자'로서의 스펙 덕분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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