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렌즈에 대한 어줍잖은 論('노가리'라 읽는다).

카메라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렌즈, 워낙 조그마해서

DSLR 바디에 찰싹 붙어있다 싶은 렌즈도 있는가 하면 대포알이라도 쏘아낼 듯 거대한

렌즈도 있는 거다. 거기다가 18-55mm네 18-200mm네 35mm네, 이상한 길이들은 또 뭐고

F2.4니 F3.5-5.6이니 F로 시작하는 소숫점의 숫자들은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한 렌즈의 세계.

조금은 눈에 그런 숫자들이 들어온다 싶을 즈음, 카메라 사면 기본으로 끼워주는 번들렌즈만

여지껏 쓰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단렌즈'라는 걸 써보게 됐다. Pentax DA 35mm F2.4라는 렌즈.


mm가 붙어있어 뭔가의 길이를 재는 듯한 35mm는 초점거리, '카메라의 렌즈로부터 피사체의 상이

맺히는 카메라 센서 사이의 거리'란 의미라고 하지만 간단하게는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의 거리에

준한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mm 앞의 숫자가 커질수록 먼 곳의 피사체가 잡히는 거니까.ㅋ

35mm의 초점거리를 필름으로 환산하면 53.5mm쯤, 눈에 보이는 시야와 비슷한 표준화각으로

찍을 수 있는 렌즈라는 걸 알려주는 셈이다.


그리고 F로 시작하는 숫자 F2.4는 조리개값, 렌즈를 덮는 눈꺼풀같은 조리개가 얼마나 많이 나와있는지

그 길이를 나타내는 셈이니까, 아무래도 조리개값이 낮을수록 빛이 많이 흠뻑 들어오게 되니까 어두운

실내에서도 밝은 사진이 나올 수 있다. 번들렌즈의 조리개가 아무리 활짝 열려도 F3.5니까-다시 말하면

최대 조리개값이 F3.5니까-이전까지 사진찍으면서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조리개값인 거다.  



결론! 조리개는 눈꺼풀, 단렌즈는 순정만화 여주인공 샤방샤방 눈망울

뭐랄까, 순정만화 여주인공의 그렁그렁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연상하면 되려나. 활짝 열린 채

뭇 남성들-선배, 친구, 후배, 선생님(?), 학부형(?!)-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런 커다란 눈망울.

그렇다고 이런 흠칫 무서운 사진을 연상할 건 아니고, F2.4의 단렌즈는 이렇게 눈꺼풀이 바득바득

끝까지 벗겨진 커다란 눈망울같은 렌즈를 갖고 사진을 찍는 셈이란 것만 이해하면 될 거 같다.

그래서, 보통 200g에 달하던 번들렌즈(18-55mm)를 들고 다니다가 124g에 불과한 단렌즈를

달고 다니며 이런저런 사진들을 찍어보았다. 성능을 시험해본다는 핑계로 참 잘 놀았다 싶게,

F2.4에서 F22까지의 폭넓은 조리개값은 잘만 활용하면 꽤나 섬세하지만 분명한 차이를 드러냈던

것 같다. 그리고 배경을 확 날려버리는 아웃포커싱 역시 질리도록 써봤다.


※ 아, 사진들 올리기 전에 짚고 넘어갈 것 하나. '단렌즈'라고 하지만 정말 렌즈가 하나 들어가서

'단單'렌즈인건 아니었다. 어떤 렌즈를 막론하고 'X군 X매' 따위로 몇개의 렌즈가 들어가서 마치

안경점에서 시력 보정하듯 이런저런 렌즈를 매만져 이미지를 잡는다고 하는데, Pentax DA 35mm

F2.4 단렌즈의 경우는 '5군 6매'로 이루어진 렌즈들이 있는 셈이다.




조리개를 쪼였다가 풀었다가~

 


조금씩 조리개를 쪼여가며-렌즈의 눈꺼풀을 감겨가며-4층짜리 원형 화분받침대를 위에서

내려다 보았다. 앙상한 철골의 형체가 꼭대기층만 보이다가, 그 아래층까지 보이다가, 다시

그 아래층까지 보이다가 땅바닥까지 환하게 보이는 순간에까지 이르는 거다. 왼쪽 위부터

F2.4, F3.2, F4.0, F4.5, F5.6, F7.1, F9.0, F11, F14로 점점점 조리개가 닫혀간-렌즈가 점점

감겨진-사진들이다.

그리고 F22까지 조리개를 바싹 조인 사진. 흔히들 똑딱이로 찍은 사진이 DSLR과 느낌이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건 이런 조리개를 조이고 풀은 그 차이가 아닌가 싶다. 똑딱이는 조리개를 활짝 열고

배경을 전부 날려버릴 수 있는 옵션이 애초 주어지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자유로이 조리개를

조정할 수 있는 DSLR이 좋긴 하겠지만, 상황이나 분위기에 따라 의도에 맞도록 쓰면 좋겠다.

예전엔 그저 '아웃포커싱'하면 우우- 하면서 굉장한 뭔가부다 했는데 딱히 그런 건 아니더라는.


왼쪽은 F2.4, 오른쪽은 F10, 밑에서 바라본 불규칙한 형태의 장식장 역시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밑엣사진은 반대로, 왼쪽은 F18, 오른쪽이 F2.4, 가로등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전혀 다른 공간인 듯 달라졌다. 조금만 멀어진다 싶어도 선이 뭉개지고 형이 흔들리면서

조금 불분명해지기도 하고, 부드럽달까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는게 F2.4의 느낌이라면,

세부의 디테일이 멀찌감치 떨어진 곳들도 제법 살아있으면서 전체적으로 생생하고 또렷한

분위기로 똘똘해 보이는게 그보다 조리개를 조인 사진의 느낌인 거다.

항상 그렇게 두드러진 차이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조리개를 극단에서 극단으로 조였다가

풀었다가 하기보다는 미세하게 움직여서도 미묘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의 차이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게 더 신기한 거 같다. (위쪽 : 1/2500, F2.4, ISO1600, 아래쪽 : 1/50, F8, ISO1600)


뭐랄까, 물에 조금 번졌던 풍경이 조금씩 말라들어가며 뽀송뽀송, 디테일들이 다시

선명하게 각을 갖추기 시작하고 색감을 촘촘이 갈무리하는 느낌이랄까. 조금은 너그럽고

포근하게 바라보던 시선이 조금씩 엄하고 칼같이 날카로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왼쪽위부터 F2.4, F5.0, F8.0, F14, F22로 삼엄하게 조여지는 순정만화 여주인공의 눈망울. 

 

아웃포커싱의 효과가 두드러진 사진들. 배경이 되는 시멘트블록의 거칠고 까칠한 디테일이

물기를 머금은 듯 뭉글뭉글 부드럽게 지워졌다. 샤기컷을 한 듯 부담스럽던 디테일이 많이

쳐내지고 나니까 한결 가볍게 살아나는 중심 피사체의 느낌. (왼쪽 : F2.4, 오른쪽 : F16)

 

A. 시멘트와 나무, 철제 난간의 혼합재료로 만들어진 계단 모양의 오브제를 위에서 밑으로 바라본

사진. 촬영 세부정보는 1/2000, F2.4, ISO1600.

B. 마찬가지의 시멘트와 나무, 철제로 이루어진 오브제를 같은 각도로 바라보고 찍은 사진.

촬영 세부정보는 1/40, F18, ISO1600.


A와 B의 서로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 건 오롯이 렌즈 조리개의 몫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순정만화 여주인공같은 그렁그렁한 눈망울에 힘입어, 진부한 일상에서 새로운 감성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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