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그래도 좀 이쁘게 포장되려나. 자그레브 구시가, 성모승천 대성당에서 성마르크 성당으로 가는 길에

 

문득 마주친 흥미로운 뮤지엄 하나.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이다. '깨진 커플 박물관' 정도로 의역하면 될까 싶다.

 

 

연애가 되었건 결혼생활이 되었건, 아니면 짧디짧은 하룻밤의 유희가 되었건 상처받은 이들의 추억과 스토리가 흥건한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건 온갖 인형과 신발, 의류들. 이곳은 세계 각지에서 깨진 커플들의 스토리와 사랑의 징표들을

 

기부받아 세워진 박물관이라고 한다. 이미 꽤나 유명해져서 세계를 돌며 순회 전시도 할 만큼 규모면에서나 인지도면에서 성장했다고.

 

누군가 배 위에서 사랑하는 이에게 썼던 편지와 지도 그림. 흔들리는 배 위에서, 편지지조차 없어서 읽던 책을 찢어서 썼을 만큼

 

그 마음이 뜨거웠을 텐데, 이제는 이렇게 깨지고 부질없는 사랑의 징표로 받은 이의 손을 떠나 대중 앞에 전시되는 중이다.

 

여기서부터는 살짝 19금. 이런 걸 선물해주고 또 착용해서 보여줬을 그들의 내밀하고도 달콤한 이야기들, 덧없고 덧없구나 싶다.

 

 

 

관계가 틀어지고 난 이후에도 이런 걸 계속 지니고 싶지는 않았을 거다. 약간의 후회와 약간의 아쉬움과 민망함이 교차되었을 듯.

 

 

관계의 마지막을 고하던 날, 그 극렬하던 싸움의 흔적이란다. 깨진 유리 조각을 이곳에 기증한 사람도 대단하다.

 

아예 이런 사람도 있었다. 둘이 주고받던 사랑의 편지들을 유리에 붙여서는 산산조각내버리곤 그 조각을 여기에 넘겼단다.

 

 

 

누군가가 아마도 이런 느끼한 대사를 치며 선물하지 않았을까. '내 마음을 여는 열쇠야, 당신이 처음 발견한.'

 

사람을 시니컬하게 만드는 전시인 거 같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들기 시작했다.

 

 

제법 값나가 보이는 옷들도 말짱하니 전시되어 있었다. 사연은 제각각이어서 처음 사귀던 날 입었던 옷이라거나,

 

프로포즈받을 때 입었던 옷이라거나, 결혼식때 입었던 옷이라거나. 그들에겐 이 옷이 그대로 자신들 삶의 한 조각이었을 거다.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쪼개져 나가며 벌어졌던 전쟁의 와중에도, 피난을 떠나던 꼬맹이들의 맘속에는 사랑이 일렁였다.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낀 채 병원에서 재활 훈련을 받던 상이용사와 간호사의 사랑이야기도 있었고.

 

잊을 수 없는 사랑이 남긴 거라곤 프랑스 국적밖에 없다는 한탄이 그대로 들리던 전시품도 있었고.

 

 

 

결혼식날 입었던 웨딩드레스나 혼인 증명서가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나중에 결혼 10주년에 다시 입고서 남편과 춤을 추리라던

 

아름다운 소망이 물거품으로 꺼져버린 후에, 그 웨딩드레스를 볼 때마다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고 아팠을까.

 

이 뮤지엄에 기증하고 나서 이제 자신은 다른 드레스를 입고 자신만의 춤을 추겠다는 기증자의 다짐이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비록 조그마하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선물이었을 망정, 그 물건 하나에 담긴 곡절과 의미와 추억은 이토록 길고도 깊다.

 

 

이 뮤지엄의 기념품 중 하나. 나쁜 기억을 지워준다는 지우개를 팔고 있었다. 이런 뮤지엄을 설립해 전세계의 실연한 이들로부터

 

스토리와 가슴아픈 징표들을 기증받는다는 아이디어도 굉장히 참신했는데 이런 깜찍한, 그렇지만 제법 위로가 되는 기념품이라니.

 

이런 것도 있었다. '당신은 최고에요, 그렇지만 ________', '당신 뿐이에요, 그렇지만 ________' 따위의 빈칸이 있는 카드들.

 

영원할 것만 같던 찬란한 사랑이 지고 난 후의 씁쓸하고도 가슴 아픈 시간을 그대로 직시하게 만들어주는 아이템들이다.

 

 

뮤지엄을 나와 다시 성마르크성당으로 향하는 길, 왠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운운하는 이들에게 어디 한번 보고서 이야기하라고

 

강추하고 싶은 뮤지엄에서 세계 각지의 사람들 마음이 깨지고 부서진 흔적들을 보고 나니 건물벽 균열조차 심상치 않아 보였다.

 

 

 

 

 

 

 

 

 

예식 기본식순.hwp

 

 

예식 기본식순

 

주례 : OOO

신랑 : OOO OOO 의 장남 OOO

신부 : OOO OOO 의 장녀 OOO

 

 

o 사회자 입장 (시작 5~10분전)

 

* 잠시 후 OOO OOO 님의 장남 OOO 군과 OOO OOO 님의 장녀 OOO 양의 결혼식이 진행될 예정이오니 내빈 여러분께서는 식장 안에 마련된 좌석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아울러 정숙한 진행을 위해 소지하고 계신 핸드폰을 모두 진동으로 바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피로연시간안내

피로연 시간은 한시 삼십분부터 네시까지이며,(13:30 ~ 16:00) 예식장 맞은편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o 개식선언

 

* 바쁘신 중에도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하여 참석해 주신 내빈 여러분께 양가를 대신하여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 그럼 지금부터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의 결혼식을 거행하겠습니다.

 

 

o 양가 모친 입장 및 화촉 점화

 

* 먼저 신랑과 신부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양가 어머님께서 단상 위에 마련된 촛불을 점화하여 주시겠습니다.

 

양가 어머니 입장해 주십시오.

 

* (점화시) 신랑 신부가 앞으로 만들 새로운 가정의 앞길을 열고, 어둠을 밝혀 주시는 의미에서 양가 어머님께서 화촉 점화를 하고 계십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정성으로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o 주례 등단 및 소개

 

* 다음은 오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두 사람을 위해 결혼식을 집전해 주실 주례선생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주례를 맡아주신 OOO님께서는 OOO로 재직중이시며, OOO을 맡고 계십니다.

 

주례선생님을 큰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o 신랑 입장

 

* 다음은 오늘의 주인공 중 한사람인 신랑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힘찬 박수로 신랑을 맞이하여 주십시오.

신랑 입장!!! (목소리 힘차게)"

 

 

o 신부 입장

 

* 이어서 오늘 또 한사람의 주인공으로 결혼식의 꽃인 아름다운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힘찬 박수로 신부를 맞이하여 주십시오. 신부 입장!!! (목소리 힘차게)

 

 

o 맞절

 

* 다음은 두 사람이 양가 일가친척과 하객 여러분들 앞에서 성인의 예를 드리는 맞절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례 주도 : 신랑, 신부는 서로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인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신부 맞절!)

 

 

o 혼인 서약

 

* 계속해서 신랑,신부 두 사람으로부터 귀중한 혼인 서약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주례 주도)

 

 

o 성혼 선언문 낭독

 

* 혼인 서약에 이어 이제는 두 사람이 완전한 부부임을 선언하는 성혼 선언이 있겠습니다. (주례 주도)

 

 

o 주례말씀

 

* 이제 주례 선생님으로부터 결혼 생활과 사회 생활을 함에 있어서 항상 간직해야할 소중한 말씀의 주례사가 있겠습니다.

 

 

o 주례말씀종료후

 

* 주례선생님께서 두 사람의 앞날에 귀감이 될 소중한 말씀 해주셨습니다. 다시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o 축가 또는 축주

 

* 다음은 신랑, 신부의 새출발을 축하하는 축가(축주)가 있겠습니다.

(축가 소개후 입장시)

 

박수로 맞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o 내빈께 인사

 

* 이어 신랑 신부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양가부모님과 이 자리를 빛내 주시기 위해 참석하여 주신 내빈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인사를 드릴때 힘찬 박수로 두 사람을 축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례주도)

 

 

o 행진

 

* 이제 가족과 내빈 여러분의 축복 속에서 신랑, 신부가 힘찬 첫 발을 내딛는 행진이 있겠습니다. 두 사람이 첫 발걸음을 잘 내디딜 수 있도록 축하의 큰 박수와 격려로 축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랑, 신부 확인후)

 

신랑 신부 행진!! (목소리 힘차게)

 

 

 

o 폐회식

 

* 이상으로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의 결혼식을 마치겠습니다. 예식이 아름답고 성스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객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오늘의 결혼식을 집전해 주신 OOO님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사진 촬영이 있사오니 양가 가족, 친지, 직장 동료, 친구 여러분께서는 끝까지 함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피로연시간안내

 

피로연 시간은 한시 삼십분부터 네시까지이며,(13:30 ~ 16:00) 예식장 맞은편에 준비되어 있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문화사회 적응 못하는 한국인

한겨레|입력2012.04.15 20:50|수정2012.04.15 22:40

 

[한겨레] 중국동포, 외국인 노동자, 결혼 이주여성 등 국내에 거주하는 특정 지역 출신 외국인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감정이 혼란을 겪고 있다. 이미 2007년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100만명을 돌파하면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특정 지역 출신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한편, 실업과 사회 양극화로 고조되는 불만이 저임금 노동시장을 채우고 있는 이들을 향한 질시로 이어지기도 한다.

커지는 피해 의식

수원 여성 살해사건 뒤 중국동포 추방운동까지 '일자리 잠식' 인식 한몫

인권침해·차별 여전

이주여성 국회 진출 불구 임금체불 등 빈번히 발생 "범죄집단 모는 건 위험"

지난 13일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소름 돋는 외국인 노동자들, 어린 여학생 강제 헌팅 장면'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올라왔다. 지하철역 안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추정되는 남성 3명이 한국인 여학생으로 보이는 여성 2명에게 치근거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번지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지난 1일 경기도 수원에서 중국동포가 20대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뒤에는, 중국동포 운영 상점 불매운동이나 중국동포를 추방하자는 내용의 청원운동이 포털에서 전개되기도 했다.

최황규 서울중국인교회 목사는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인 총격 사건이나, 수년 전 일어난 버지니아 공대의 조승희 총격 사건 때도 미국 사회는 한인들을 비판하지 않았다"며 "다문화·다민족 사회 경험이 적은 우리나라는 개인의 범죄를 집단으로 모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의 이런 인식의 배경에는 실업난과 사회 양극화에 따른 불만도 깔려 있다. 2008년 한 포털에 개설된 다문화 정책 반대 카페는 15일 현재 회원이 8500여명이다. 이 카페의 소개글을 보면 '다문화는 후진국의 값싼 인력과 우리 서민을 저임금 경쟁시키려는 자본가들의 음모다. 이는 가난한 서민에겐 재앙이다'라고 돼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서민들의 일자리와 생계를 위협한다는 우려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건설업·서비스업 등 일부 업종에 한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 일자리를 잠식하는 측면이 있지만, 전체 경제규모나 수준 등을 고려하면 이들이 (내국인들이 꺼려하는) 일자리를 채워주는 부분이 크다"며 "직업을 잃은 일부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건 당연하겠지만, 전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확대해석을 사회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11 총선에서 필리핀 출신 결혼 이주여성 이자스민(35)씨가 새누리당의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자, 이에 대한 반감이 인터넷 등을 통해 생기는 현상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병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정부가 이주노동자, 결혼 이주여성이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겪는 인권침해·차별을 본질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보여주기 식으로 일부에게만 시혜를 베풀거나 지원을 몰아주는 정책 위주로 펴다 보니, 서민들은 그 집단 전체가 수혜를 받는다고 생각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역효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실업과 사회적 양극화에 따른 불만 등에서 비롯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반감·무시·차별은 외국인 범죄의 원인이 돼 사회 갈등을 일으킨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범죄율은 2007년 대비 131% 늘었다. 지난 6일엔 한 중국동포가 못 받은 임금 때문에 다투다 직업소개소장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김용필 <동포세계신문> 편집국장은 이와 관련해 "임금 떼이고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빈번해 중국동포들이 사회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갈등은 수시로 일어날 수 있다"며 "그들이 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kmlee@hani.co.kr

 

 

*                                                               *                                                          *

 

이 기사에 달린 오천개가 넘는 댓글들, 그리고 추천수가 미친 듯이 많은 댓글들...먹고 사는 팍팍함에 외국에서 밀려들어온

 

저임금 이주노동자로부터의 위협이 일부 사실이라 할지라도 저렇게 이빨을 드러내고 맹렬하게 혐오하는 모습은 끔찍하다.

 

생활에 대한 불안감에서 기인한 그들의 분노가 정당하긴 하지만, 그건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과 사회적 안전망의 붕괴로

 

인한 것이며 최근의 자극적인 사건들은 한국 경찰력의 무능력이나 기초 치안의 공백을 탓할 일이지 외국인 노동자 전반에

 

대한 것은 아니니까. 방향을 잘못 잡은 분노는 쉽게 눈에 띄고 만만한 상대에게로 향한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새누리당'에 대한 비난을 토하며 '진보'인 양 하고 MB를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 비난과 반대를

 

이자스민, 그리고 외국인 이주노동자에게로 이어가고 있다는 점. 외국인 노동자 이주정책은 워낙 복잡한, 경제와 문화,

 

사회적 측면에서 살펴야 할 부분들이 많고 세밀하게 다듬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쉽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말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다만 그 기본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건 분명하고, 지금처럼 이렇게 무작정

 

이빨 드러내고 백색테러라도 벌일 듯 막말 퍼레이드를 벌이는 게 호응받고 있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정말.

 

 

(개인적으론 이건 새누리당이 이번 19대 총선을 압승, 과반승한 것 만큼이나 역겨운 일이고, 결국 이게 우리나라의

 

수준이란 생각이다. 게다가 '이주노동자'문제, 다문화문제가 어쨌던 한국사회가 맞이하는 큰 변화의 일부라는 점에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새누리당에 이슈를 선점당한 것 역시 아이러니하고 어처구니없긴 마찬가지.)

 

 

 

 

 

 

 

 

 


 

 

 

"파편화된 채 무기력한 대중으로부터 '클립토나이트'를 빼내고 모두를 당당한 슈퍼맨으로 각성시키고 싶은 영화." ytzsche.

 

 

한국에서 이름 꽤나 알려진 배우들이 이런 류의 영화를 찍은 건 얼마나 될까. 황정민과 전지현의 러브라인은 전혀

 

기대할 수 없으니 로맨스나 멜로도 아니고, 계속해서 비유가 가닿는 지점들을 생각하게 만들고 해석하게 만드니

 

코미디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화의 현실성에 기댄 채 눈물을 짜내는 '휴먼 다큐'식의 신파도 아니다. 액션이나

 

스릴러 같은 장르도 더더욱 아니고. 그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순간에 잡아채이곤 그의 삶을 들여다보다간

 

함께 걷는 이야기랄까. 한국의 주류 영화마켓에서 이런 잔잔하고 대중적이지 않을 영화에 황정민이나 전지현같은

 

대형배우가 출현하다니. 그들의 영화 선구안과 용기(?)에 조금은 감탄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일종의 우화로 다가온다. 스스로를 영웅이라 믿는 가슴따뜻한 바보들의 이야기는 많았다지만, 이 영화는

 

앞서 말했듯 신파나 로맨스나 휴먼다큐의 유혹을 피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차근차근 동화속 세상으로 바꾸어나간다.

 

스스로를 슈퍼맨이라 믿는 황정민을 지천에 널린 또라이처럼 여기며 일회성 방송 소재로나 생각하던 전지현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그의 친구가 되어 그와 같이 세상을 보게 되는 것처럼,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세상의 모습이,

 

상식이 낯설게 바뀌는 거다. 계속해서 번갈아 보여주는 황정민의 날고 뛰고 악당과 싸우는 머릿속 슈퍼맨 이미지와

 

옆에서 보이는 누추하고 엉성한 뜀박질과 허공에 휘두르는 주먹질, 어느 순간 어떤 게 진짜인지 알 수 없어졌다.

 

 

그렇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조금씩 잠식하던 슈퍼맨의 저력은 마지막에 폭발한다. 아이를 구하려 3층에서

 

날아올라 무사히 땅에 착지한 건지, 아니면 무거운 쌀포대가 추락하듯 툭, 땅에 널부러지고 만 건지 잠시동안

 

혼란에 빠지는 거다. 물론 이어지는 후일담은 그가 결국 죽었다는 빼도박도 못하는 현실을 명시하고 있다곤 해도,

 

차근차근 그의 이야기에 스며들었던 그녀처럼 나 역시 황정민이 비로소 클립토나이트로부터 해방되어 날아올랐어도

 

이상할 게 없겠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그가 '자기의 별로 돌아갔다'고 한 전지현 그녀의 대사처럼,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그는 정말로 대머리악당의 저주와 같은 클립토나이트로 초능력을 잃은 슈퍼맨 아니었을까 싶다.

 

 

게다가 끝내 80년 5월의 광주까지 가닿는 욕심많은 영화라니. 어쩌면 이 영화는 우화나 감동 드라마인 척하며 힘을

 

빼고는 있지만 굉장히 정치적인, 실천적인 영화로 읽히는 게 온당할지 모른다. 광주를 짓밟은 계엄군의 총탄이

 

슈퍼맨을 일반인,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지구인'으로 만든 클립토나이트랜다. 그를 그렇게 만든 악당은 대머리고.

 

위기의 사고 현장이나 어려운 사람 앞에서 모두가 못 본 척 외면하거나 발만 구르고 무기력하게 손놓고 있을 때

 

'슈퍼맨임을 잊지 않은', 슈퍼맨이었다는 그가 먼저 한발 앞으로 나서는 거고.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물결이 봉쇄된

 

80년 광주의 상흔을 갖고 기억을 봉인한 한국사회가 무기력하고 무비판적으로 남아있음을 말하는 건 아닌지.

 

 

그렇게 읽는다면, 그런 맥락과 떨어뜨려 놓고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몇몇 영화속 대사들은 새로운 의미와

 

메시지를 담게 되는 것 같다. 예컨대 이런 것들.

 

 

"도와주지 않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아예 잃어버려요. 그럼 내가 누군지 아예 까먹어버리죠. 악당들이

노리는 게 바로 그거에요. 그래서 난 계속 사람들을 도우려 해요."

 

 

"(전지현이 잡고 있는 줄을 잡아당겨 그녀를 끌어당기며)가 이 줄을 잡아당기지 않았으면 거기 있었겠지.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와 있어. 미래가 바뀐 거지. 남을 돕는다는 건 바로 이런 거야. 누군가의 미래를 바꾸는 것."

 

 

"커다란 쇠문을 여는 것은 힘이 아니라 조그만 열쇠이다. 우리 모두 열쇠를 하나씩 갖고 있다. 다른 미래의

문을 열 수 있는."

 

 

영화가 굳이 전지현의 남자친구를 몽골로 떼밀어놓은 채 이야기를 전개해서 황-전의 로맨스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해 버리는 거나, '지구가 더워지고 북극이 녹고 있는' 상황에 대한 지구인들(한국인들)의 자그마한 목소리를

 

세세히 주목하는 거나, 황정민이 끝내 어릴 적 80년 광주에서의 자신에게로 돌아가 길잃은 흉탄을 막아내는 장면을

 

넣은 거나,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이쯤되면 또렷해진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단순히 어느 마음이 힘들고

 

조금은 모자란 사람의 '포레스트 검프' 류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무기력하고 파편화된 무기력한 대중으로부터

 

'클립토나이트'를 빼내고 다시금 모두를 당당한 슈퍼맨으로 각성시키고 싶은 영화.

 

 

애초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게 새삼 아쉽다. 그리고, '엽기적인 그녀'와 삼성프린터

 

광고 속 이미지로 성공했지만 그로부터 벗어나는데 끝내 실패했다고만 여겼던-특히 헐리우드 진출작인 '블러드'를

 

시사회에서 보고 나서-전지현 그녀가 이런 영화도 찍었었다니, 하고 뒤늦게 감탄하고 말았다. 2008년작인 이 영화에서

 

그녀는 제법 연기자다운 결기를 보여준 거 같다. 하나도 꾸미거나 이뻐보이려 하지 않는 맨 얼굴의 모습들, 적당히

 

시크하면서도 삐뚤어진 성격을 잘 드러낸 연기, 그리고 너무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은 감정의 표현이랄까. 다만

 

목소리의 톤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는 '다시보기'로 좋은 영화 하나 건졌다.

 

 

 

p.s. 전지현씨, 결혼 축하해요~* 앞으로 더 좋은 연기, 좋은 영화에서 많이 보여주시길.

 

(혹시 이 리뷰를 언제고 읽게 된다면 실명으로 댓글이라도 하나 남겨서 의견주시면 좋을 텐데요.ㅎㅎ)

 

 

 

 

 

설득 (반양장) - 10점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문학동네

"사랑과 결혼, 그 풀리지 않는 함수관계에 대한 사려깊은 답안, 읽고 나선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ytzsche.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으로 필명을 떨친 그녀가 죽기 일년 전에 남긴 유작이자 또다른 명작이라 감히 칭하고 싶다.

사랑이란 감정이 어떻게 맥놀이하는지를 보여주는 건 이미 숱한 작가들이 숱한 작품에서 묘사하려 애썼던 것이지만,

제인 오스틴이다. 그녀의 문장은 비단처럼 매끄럽고 섬세하며, 그 와중에 날카롭고 예민한 성찰까지 녹아들어 있는 거다.

게다가 이미 이전에 놓쳐버렸다, 지나가 버렸다고 생각했던 사랑이 다시 어떻게 안에서부터 불붙기 시작하고 상황에 따라

어떻게 꺽이고 젖혀지는지, 그리고 다시 만개하는지를 이토록 흡인력있게 묘사해내다니.


결혼이란 문제는 흔히 사랑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 양 이야기하는 게 현명함을 가장하기 쉽다. 자못 어리숙하다느니,

세상물정 모른다느니, 결혼은 또다른 현실이라느니 따위의 야박한 '설득자'들 앞에서, 사랑과 결혼, 연애와 결혼은 별개라는

식으로 편히 갈라놓고 이야기하는 건 제인 오스틴이 목도했던 근대 초기의 세태와 작금의 세태가 과히 다르지 않은가 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프레임도 그런 식이다. 감정에 몰입하기보다는, 결혼을 디딤돌로 얻을 수 있는

물적 조건-적나라하게 말하자, 그때나 지금이나 재력과 '신분'을 업그레이드할 기회인 거다-에 집중하라!


오스틴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펼쳐 놓으며 그들의 결혼, 혹은 결합이 서로에게 어떤 시너지를 줄 수 있는지, 면밀히 따져묻는

당대인의 모습을 눈 앞에 보일 듯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런 세밀화의 풍경엔, 불타오르는 사랑 앞에 모든 게 무너져내리는 듯하던

'로미오와 줄리엣' 류의 눈먼 사랑이라거나 그 반대의 팜므파탈이 나설 공간은 없다. 얼핏 보기엔 우리 옆을 스치는 여느 남녀의

범상한 연애담과 결혼담에 지나지 않을 법한 담담하고 평이한 풍경 속에, 그녀는 잃었다고 생각했던 누군가의 마음이 다시 열리고,

의심하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그 국면을 너무도 강렬하게 돋을새김해 놓는다.


하여, 사랑은 판타지일 뿐이라며 어른의 조언을 따르라는 '설득', 그에 반해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라는 또다른 '설득', 혹은

지난 일은 어쩔 도리가 없이 지난 일일 뿐이라는 옛사랑의 '설득' 따위에서 방황하며 더러는 길을 잃고 더러는 홀로 야위어가던

앤 엘리엇은, 누군가의 설득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로맨스를 찾아간다. 그건 처음부터 로맨스로 시작해 무책임한 결말을 비워두는

이야기도 아니고, 시니컬한 냉소로 시작해 황폐한 풍경만 지루하게 내뿜는 이야기도 아니다. 주위의 설득으로 이미 한차례,

로맨스를 버리고 '현실'을 좇았던 여인이 이제는 안간힘을 쓰며 스스로의 로맨스를 복구해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연애담 혹은 결혼담은, 둔한 눈으로 보면 얼핏 '다들 그러고 사는 것'이라며 무시하고 지나치기 쉬운, 삶의 어떤

결정적인 국면을 포착해내어서는 그 안에 숨어있는 내면의 폭풍과 결단의 순간들을 너무나도 특별하고 따뜻한 시각으로

어루만져 주는 거다. 그것이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감정이 격동했던 이유 아닐까 싶다. 평이한 일상에 그토록 밀도높은 생기와

현실감, 극적인 감각을 불어넣어준 오스틴 덕분에, 심장이 문득 두근거렸다. 어떤 의미로던 이 책 '설득'은 너무도 늦게 한국어로

번역된 거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모처럼의 진한 술자리였다. 열시간이 되도록 이어지던 아주아주 진한 술자리.

중학교 이학년때의 친구 둘을 그때 이후로 처음 만난 거니까, 대충 십칠년쯤만이었던 셈이다.

해가 지기 전 삼겹살을 구우며 시작된 자리는 쭈꾸미로 이어졌고, 그때 노래방으로 놀러다녔던 것처럼

노래방에 몰려가 각자의 노래 실력을 점검받고는 다시 곱창을 씹다간 맥주에 마른 안주로 마무리까지.


문득 가방에 카메라가 있단 걸 기억해내고는 주섬주섬 꺼내들고, 옥도령의 뻘건 卍자가 십자가의 불빛을 잠식하고

노래방 포차의 하트 모양이 그 뻘건 卍자를 다시 잠식한 창밖 풍경을 찍은 건 새벽 세시가 넘어서였던 거다.

열네살의 내가 녀석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어떻게 같고 또 달라보이는지,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술이 더 취하는지 어지럼증도 나고 해서였던 거 같다. 담아두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언젠가 쓰고 역겹던 레몬소주 피처를 하나 마시며 인상쓰던 녀석들이었는데, 그보다 쓰고

힘든 경험들이 자연스레 쌓인 탓일까. 소주는 헛개나무를 담궈둔 것처럼 밍숭맹숭, 술술 넘어가고 있었다.

그새 한 녀석은 6년을 만난 여자와 파혼을 했다고 했고, 다른 녀석은 결혼을 생각하던 여자와 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 나는, 니 녀석들 결혼식에 못 가보나 했더만 잘 됐네, 라고 말해주고 말았다.






일본의 알프스라 불린다고 했던가, 일본 본섬의 동북부 쓰가루 평야를 발 아래로 내려다보는 공원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겨울철에는 스키리조트로 활황을 누리고, 여름철에는 고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온천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라 하는데, 아무래도 때가 때인지라 무척이나 한적했던 분위기.

여기에 눈이 잔뜩 쌓이면, 여느 일본 리조트들이 그런다듯이 별다른 코스 제약 없이 나무사이를 헤치며

산 아래까지 스키타고 쭉 내려갈 수 있는 걸까. 완전 두근두근하는 경사에, 지금 시퍼렁 풍경도 맘에

들지만 여기가 온통 새하얗게 변했다고 하면 더 멋질 거 같다.

전반적으로 호텔은 유럽 분위기를 내고 있었고, 한 옆에는 결혼식을 치를 수도 있을 거 같은 조그마한 성당,

아니면 교회도 지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아오모리 지역의 호텔들은 온천이 포인트. 여기 호텔도

소박하지만 편안한 온천 시설에 피부를 매끈하게 해주는 '물이 다른' 온천수가 펑펑 나오고 있었다.

호텔에서 내려가는 길, 우리나라로 치면 대관령 고갯길이나 지리산 굽이길처럼 굽이굽이, 가파른 언덕에

도로폭도 좁은 길을 한참 감아 내려가고 올라가고 해야 도착할 수 있는 호텔인지라 그만큼 아는 사람들만

찾아올 거 같기도 하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일본 동북부의 시골 풍경을 내려다보며 즐기는

온천의 맛도 제법이었으니 한가로운 휴가를 즐기기엔 딱 좋을 듯.



@ 아오모리 로얄호텔.

지나가던 차, 태권도 학원차였다.

효孝와 예禮를 커다랗게 적어두고 태권도를 익히면 저런 것들도 덩달아 키워진다고 말하려는 듯.

그러다 눈에 들어온 건, '이차에는 미래에(의) 영부인과 대통령이 타고 있습니다'란 문구.

여자는 영부인이고 남자는 대통령인 건가, 조금 뭔가 배려랄까 생각이 아쉽더라는.


대통령은 본인의 힘으로 얻는 직업이랄까, 지위가 되겠지만..영부인은 역시 결혼빨인데.

그리고 굳이 하나 더하자면, 대통령이, 영부인이 훌륭한 사람인가? 이미 그들이 그렇지 않단건

숱한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는데다가, 요새같은 때라면 오히려 저런 문구는 자칫 폭력성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의 결혼식. 신부대기실에서 다른 친구들과 노닥거리며 잔뜩 긴장한 그녀의 표정을 풀어주려

애썼지만 역시. 그녀를 웃게 하는 건 그녀의 신랑. 손을 잡고 대기실을 나서는 그들의 표정이

한편으론 화사하고 다른 한편으론 비장해보이기도 했다.

신부가 허리를 곧추세운 채 앉아서 치장하고 식을 기다리던 곳, 봄날같이 나른하고 보드라운

노랑 커튼이 너울지고 있었다. 그리고 폭신한 느낌의 보료가 깔린 위에는 늘어지는 장의자.

경제학과 이준구 교수님이 주례를 맡았다. 오랜만에 듣는 교수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장난스럽고

탄력있는 느낌, 주례사 역시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돕고 역할 분담도 잘 하는 '훌륭한 민주가정'을

이루라는 메시지로 명료하고 정갈한 마무리였다. 하얀 드레스와 노랑꽃들, 노랑촛불이 참..

양가 부모에 인사하는 신랑신부. 제법 괜찮은 느낌의 흑백 더하기 노랑색 사진. 오래도록 행복하길~*

식장 벽쪽에 예비로 준비되어있었던 의자 세개. 두개는 같은 색인데 하나는 다른 색, 사이좋게

나란히 있는 모습이 왠지 다정해보여서 한 방.


피로연장에서도 다 좋았는데 조금 실망이랄까, 깜짝 놀랐던 것 하나. 냅킨에 '호암교수회관'이라고

파랗게 적혀있는 문구가 인쇄되거나 한 게 아니라 마치 고무도장으로 찍힌 듯 했다는 사실.

저거 밥먹고 입도 닦을 수 있는 건데 저렇게 해도 되는 걸까 조금 걱정스러워졌다.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마침 밤기차로 서울역에 도착하고 나니 3시반. 전철다니길 기다리기로 하고 여관과
아가씨를 권하는 여성분들께 죄송해하며 비됴방으로.


모든 곳에서 의미를 찾으며 모든 곳에서 이러저러한 지침을 받으려는 건 물론 아니지. 때론 시간 때우기 용으로
보기도 하고 그저 일종의 재미만 요구하는 경우가 태반이기도 하고. 그치만 하다못해 무협지나 만화에도

무언가-말투던 단어건간에-得이 될만한 게 있다는 게 내 경험이라서. 이 영화보고 나서 잠시 어리둥절했다.

멋진 영화인데..무언가 완벽하게 속아넘어간 느낌. 마술을 볼때처럼, 박수를 치고 감탄을 하면서도 왠지 한구석이

미진한 느낌이랄까. 스토리 끝의 갑작스런 반전에 원인이 있었나..


그 생경함의 출처는, 숙고 끝에 다다른 답안인데 아마도 이질감인 거 같다. 전혀 말이 안 되는 환타지틱한

이야기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풀어 나가며 '빙의(라 부를만한 것)'의 허무맹랑함을 거의 완벽히 지워버렸으니

말이지. 하긴 동감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그거보다 정도가 훨씬 세지 싶네. "우리는 우주에서 왔어!" 정도로.


마지막의 히로시에 료코가 '까슬까슬' 아빠-남편의 턱을 만지는 장면에서야 군더더기같던 결혼식 장면이 이해가
 
되었다. 결국 남편이 그녀를 딸로 호명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녀는 멋지게 그 변화-아내에서 딸로의-를 이루기
 
위한 연극을 했던 거..남편-아빠는 잠시 발끈해서 그녀의 새 신랑에게 제의를 하고..두대 갈기겠다는, 한대는

딸내미를 위해. 한대는 그녀를 위해. 한대를 있는 힘껏-머리도 희끗해졌으면서-갈기고서 잠시 pause..

그리고 그녀에게 말한다. 새인생이 시작된 걸 축하해.


그저 맹목적인 애정 내지 의욕만으로는 무언가를 이루기에 턱없이 부족하거나 제대로 이뿌게 만들어내기가

곤란하다. 그저 무작정한 친밀하고도 따스한 분위기만이 맥없이 흐르는 경우가 어찌나 많은지. 담을 그릇을

잃어버린 정신이 역할갈등을 겪으면서..어찌할 수 없는 그 변화를 수긍하기 위한 서로의 노력. 그 노력을 눈멀지
 
않게 하기 위한 이벤트가 결국 영화의 중종반간의 스토리지 싶다. 거의 성공해가는 단계에서 굳이 그걸 폭로하는

그녀의 의도가 남편에게 전해지는 순간, 주먹은 멈추고 그는 웃어 줄 수 있게 되어 결국 사랑이 성공하는 셈이랄까.


성공...이란 말보다는 매듭..이란 말이 더 나을라나. 사랑의 매듭.


어쨌거나 지금은 비됴보고 집에 와서...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다.ㅋㅋㅋ



(2003.12.24)
A : 축의금 대신 돈 모아서 에어콘 한 대 들여주면 되는 거지?

B : 됐어, 방하나짜린데 몰.

A : 정말?
A : 나중에 난 굉장굉장히 쎈 거 바랄 텐데.ㅋㅋㅋㅋ

B : 꼬됴
B : 선풍기 이미 샀다.

A : 그나저나 이제 오일 남았네.
A : 기분이 어뗘?

B : ㅜ.ㅜ

A : ㅋㅋㅋㅋ

B : 뭘 ㅋㅋㅋ 냐

A : 이제 좋은 시절 끝이고
A : 쳇바퀴 속으로 들어가
A : 뺑글뺑글 돌겠고만

B : 그걸 '안정'이라 하지

A : 아.

B : 너같은 망나니는 잘 몰라

A : 쳇

B : ㅜㅜㅜㅜㅜㅜ

A : 근데 왜 우냐 너같은 안망나니는.

B : 기쁘잖어.

A : 진짜 기뻐서 우는 거냐..;;;

B : 맘대로 생각하셔.

*                                                               *                                                               *


어쩌면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날밝아 눈뜨면 회사가고, 해떨어질 때쯤 퇴근해서 집에 오고, 다시 자고. 주말이면 조금 노닥대고

휴가 때면 조금 코에 바람이라도 쐬다 오지만. 다시 꼬박꼬박 챙겨 써야지, 하고 엑셀을 밟을 때면 그 뿐,

금세 하얀 속살만 펄럭이고 마는 다이어리처럼 진부하고 판에 박힌 삶이다.


게다가 결혼이라니. 고등학교 졸업, 대학교 입학, 군대 입대, 제대, 대학교 졸업, 취직, 그리고 결혼.

결혼, 아이 탄생, 유치원 입학, 초등학교 입학, 졸업, 중학교 입학, 졸업, 고등학교 입학, 졸업...어느 즈음 퇴직.


나는 틀렸다. '좋은 시절'은 없었다. 무독무해한 기억속에서 쉼없이 매만져지는 과거가 있을 뿐. 쳇바퀴에 새삼

들어가 정신없이 돌리기 시작한 건 어쩜 태어나면서부터였다. 그러니 결혼이란, 단지 그 쳇바퀴의 기어를

변속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기어1에서 기어2로.


어디에서 어떻게 브레이크를 걸고 방향을 틀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왠지 하루하루 맘속에서부터 퍼져나오는 울림이 있다. 이제 그만. 이제 그만.




#1.

두바이, 카이로, 리야드를 거쳐 쿠웨이트시티까지. 비행기를 타면 왠지 인류가 뭔가 대단한 존재에 이르른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가없이 준엄하게 흐르는 시간과 무려 '경쟁'이라도 하듯 달음박질치는 수준인 게다.

덕분에 첫날은 저녁 먹고, 아침 먹고, 점심 먹고, 밥 먹고, 밥 먹고, 다시 저녁을 먹었다. 하루 세 끼-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먹는데 익숙해질 대로 익숙한 개념으로는 좀체 하루에 여섯 끼를 먹는다는 것, 그리고 해뜨고

눈뜨고 해지고 다시 눈감을 때까지의 기간이 24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도무지 낯설기만 하다. 게다가,

출발지와 도착지의 시간차이는 (머릿속으로야) 이해한다지만, 대체 비행기 안에서 시간은 어떻게 흐르고

있다는 건가. 손목시계는 여전히 1초를 1초만에 째깍째깍 새기며 돌아가는데, 어쩌면 비행기 안에서는 1초를

사실 2.4초쯤, 아니면 0.5초쯤으로 새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부분은 약해서 잘 모르겠지만, 뭔가 이상하다.


#2.

피곤한 일정 탓에 비행기만 타면 최대한 엉덩이를 의자 가장자리로 위태하게 내몰고는 몸을 쭉뻗어 침대인양

스스로를 속이고 잠들어보려 애쓰는데, 좀체 쉽지가 않다. 일단 대체 언제쯤 올지 가늠할 수 없는 타이밍에

쳐들어오는 기내식 냄새. 파블로프의 개처럼, 냄새가 비행기 안을 꽉 채우면 배가 고파지고, 혹은 배가 고프단

걸 깨닫게 되고, 번쩍 잠에서 깨어 기계적으로 포장을 뜯고 포크질을 하기 시작한다.

오른켠 사람의 팔꿈치에 방해받고 왼켠 사람의 옆구리를 질러가면서 꾸역꾸역 밥을 먹다 보면 문득 사육당한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분홍색과 똥색이 뒤범벅된 돼지우리 속의 돼지들. 사료 시간만 되면 서로 머리를 치대며

먼저 먹겠다고 아옹다옹대는 뽄새도 그렇지만, 왠지 거대한 비행기 내장 속 기백명의 사람들이 똑같은 시간에

거의 똑같은 메뉴가 똑같이 배열된 식판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다. 더군다나 문득 눈뜨면

답답함에 돌아버릴 것 같은 좁디좁은 좌석에 빽빽히 꽂혀 있는 사람들 아닌가.


#3.

"근처에 볼 게 없네."라는 말을 몇 번 들었다. 호텔 주변을 산책하고 왔던 일행들이 내게 그랬다. 사실 나는 이미

중간중간 땡땡이를 치며 쪼끔씩 주변 골목을 돌아봤던 참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얼마전 버스에서 "사람이

아무도 없네"라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허름한 놀이터가 뙤약볕 아래 달궈지고 있었고, 고장난 샤워기같은

분수대에는 페트병들이 수면을 가득 메워 둥둥 떠올라 있었으며, 멋진 아랍어 그래피티가 골목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전혀 낯선, 그리고 평범한 카이로, 리야드의 골목 풍경이었다. 너무 평범해서 아직 소모되어

버리지 않은 신선한 이미지들. 예컨대, 스핑크스가 달고 있는 두텁한 소꼬리 조각같은.


#4.

변태는 날 좋아한다. 비록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남성이 결혼하려면 굉장히 많은 액수의 지참금이 필요하고,

때문에 결혼을 못한 남성들이 일종의 '대체재'로 동성애를 취한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면 난 대체재 중

상급에 속함에 틀림없다. 리야드의 밤거리, 밤 열두시가 넘은 시각 산책을 하다가 변태를 만났다. 보기 드문

긴머리 히피스타일의 젊은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다가 내 눈과 마주치곤 히죽대며 자신의 온몸을 더듬기

시작한다. 이윽히 시작된 신음소리와 밭은 한숨소리가 걸음을 재촉해 지나친 내 귓가로 달겨들었다. 잠시후

뒤에서부터 달려온 차는 내 앞에 서더니 오른쪽 차문이 덜컹 열리며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뱉어냈다. 두가지

정도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려봤다. 어디로 갈래? 얼마 줄 거야?


차마 말하진 않고, 그 대신 꺼져줄래, 라고 말해줬다. 한국말로. 그리고 속으로 좋아했다. 꺄오, 뉴욕, 카이로,

태국에 이어 리야드에서 먹히는군하~ 잇힝~* (비록 남자에게일지언정)


#5.

출장도 거의 끝나간다. 여긴 쿠웨이트, 밤 12시. 이번 출장 완전 쒯.

김현중이 신종 플루 확진을 받았다고 하는데, 오늘 '코코 샤넬'을 보려고 영화관에 갔다가 내가 앉았던 자리가 바로 F4.

김현중이 완쾌할 때까지라도, F4의 멤버로 활동을...? (퍽퍽;;; )


코코 샤넬은 어느 자의식 강하고 자존심센, 그리고 패션 감각이 탁월했던 여성의 일생을 그린 영화였다. '샤넬'브랜드와는

별로 관계치 않고, '이해하지 못하지만 질투로 말미암아 사랑하게 된' 남자와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제약당한 채

사랑하는' 남자 둘과 벌이는 사랑이 주된 뼈대가 되는 이야기랄까. 프랑스 영화스럽게 잔잔하고 차분하면서도 곧잘

배우들의 연기로 화면이 꽉 들어차는 장면들이 와닿았다. 근데 그 여주인공, 오드리 투투 인가, 강혜정하고 닮았다고

생각하는 건 나 혼자일까.


강혜정한테 예전에 싸인 받았던 게 어딘가 있을 텐데, 못 찾겠다. 그거 찾으면 포스팅해서 저도 결혼식 가고 싶어요~라고

징징댈라 했는데.ㅜ 타블로와의 결혼, 축하합니다~^^



* 저는 진심으로 김현중씨의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 오해 없으시길~^^;


하루키의 신작, 'IQ84'가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팔리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는 언제쯤 나오려나..일본어를 진즉 배웠어야 했다는 후회가 절실할 정도로, 그의 신작이 궁금하다.

어느 순간 이질적인 반짝거림과 냉소적인 아름다움을 상실했던 그의 소설에 뭔가 변화가 생겼을까.


엄마는 티비에서 유리상자를 볼 때마다 둘 중 한명을 짚으며 널 닮았다 하신다. 칭찬인지는 모르겠고,

(누군지도 모르겠고) 그냥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티쪼가리 입고 돌아다니지 말고 좀 '어른스럽게' 입고 '어른스럽게'

머리도 하고 다니라는 압박이다. 근데 엊그제던가 살짝 들었던 그들의 신곡은 아주아주아주아주 실망이었다.

둘다 결혼을 해서 그럴 게다. 사랑을 하면, 왠지 예술가로서 결격사유가 되는 느낌이다.


신해철, 이승환, 이상은, 이적, 서영은..유리상자도 이제 그 샘플에 포함시킬 수 있겠다.

예술은 그들의 비극과 허무함과 가슴공허함을 먹고 자라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그들을 무디게 만들고, 나태하게 만들며, 만족하게 만드니까. 배부른 영혼은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승환이형의 아픔은 어떤 점에선 그의 음악에 큰 공헌을 하지 않았나 싶다)


뭐, 비비 꼬인 소리였고, 밖에는 비가 그칠 줄 모르고, 잠은 올 줄 모르고.


(뜬금없이) 몇 가지 요새 반성하는 점.


아닌 척 하면서도 숫자에 휘둘려 조바심을 쳤다는 심증이 있다. 서른이 꽉 차가면서, 왠지 남들 결혼하는 거 보면서

은근히 압박도 받고 부담스러워도 하고 조급증도 나고 했던 것 같다. 바보. 그랬단 걸 알았으니 이제 피할 수 있겠지.

어차피 내가 자웅동체 달팽이도 아니고, 짝지는 만나야 뭘 하던 할 거 아니냐.


또 뭔가 다른 사람의 평에 기대어 과시하고 싶었달까. 좋은 사람 노릇하면서 여기저기에 무리를 해선, 스스로를 좀

힘들게 만들고 짜증나는 코너에 몰아넣은 격이 되고 말았다. 좋은 건 좋다, 싫은 건 싫다, 왜 이야기를 못해. 가끔

나는 만인의 마음을 얻겠다는 듯이 행동할 때가 있고, 예외없이 금방 후회하곤 한다.


중심이 흔들렸다. 집에도, 회사에도, 어디에도 중심이 없었다. 몸은 움직이는데 마음은 어디선가 부유하고 있다.

크게 한번 흔들리고 나니 좀처럼 회복되질 않는다. 당분간 답을 찾아, 마음을 찾아 다녀야 할 듯 하다.

어디서 뭐하고 있냐. 이건 반성할 점은 아니다. 좀더 마음을 풀어주고, 마음을 따라야 해결될 문제인지도 모른다.


요새 새삼스레 X-Japan을 다시 듣고 있다. 그들의 감각적인 가사하며 맥놀이하듯 뛰노는 멜로디라인하며..
 

I awake from my dream

I can't find my way without you.






#1. '남편'이 아니라 '아내'가 결혼한 이유.

'남편이 결혼했다'란 제목은 '아내가 결혼했다'는 지금의 제목보다 더욱 비현실적일 뿐더러 그닥 신선하지도 않다.

왜 그럴까. 한국에서 남자로, 혹은 남편으로 산다는 건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굳이 따로 결혼을 생각할 만큼 머리가

복잡한 일이거나 채워지기 힘든 불만족을 떠안고 지내는 걸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단순하기

때문일지는 모르지만, 한국 남자에게 결혼은 아직 '남는 장사'고, 하고 나면 장땡인 '쑈부'인 게 사실이다. 


그리고 굳이 '결혼'이란 형식으로 새로운 관계를 틔워놓아야 할 만큼 절박하지도 않으며, 언제든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즐기고..그게 또 '남자답다'는 식으로 용인받기도 하는 게 아직은 사실인 듯 하다. 여전히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고, 영화 중의 대사말마따나 '바람핀 뇬 용서못하고 차버리고 떠난

놈 용서못한다'는 게 일종의 관습법인 게다.

결국 남편이라면, 굳이 또다시 결혼을 할 생각을 할 유인이 적다. 그래서, 아내가 결혼했다.


#2. 목마른 그/녀가 우물을 팔 뿐.

그렇지만 이 영화를 꼭 페미니즘적인 시각, 그러니까 가부장제적인 가족제도 하에서 구속받고 억압받고 있는 

여성의 해방이란 측면에서 보아야 할 지는 모르겠다. 더구나 남자 둘, 여자 하나 간의 섹스에 대한 문제는 살짝

건드리기만 할 뿐, 어정쩡한 선에서 봉합하고 있다고 보이니 그다지 적극적으로 '성 해방'을 이야기하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요사이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코드로 읽어내려가려는 내 편향성이 걸리긴 하지만, 이 영화 역시도

어쩔 수 없이 사랑을 끝까지 추구하고 지켜나가려는 이야기..란 느낌이다.


그녀는 사랑이 하나가 아닐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랑하는 마음이 어떻게 반으로 쪼개지냐는 그의 항변에,

뻔뻔하지만 또 사랑스럽게도 그녀는 이렇게 응수한다. 사랑이 절반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두 배가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럴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마음이 상대의 장점, 단점, 그리고 온갖 고유한 특성들을 다 껴안아 주는

거라면, 그는 그녀가 믿고 있는 이러한 애정관을 미리 알았어야 했고, 껴안거나 내치거나 해야 했을 거다.


그는 그렇지만 '그녀가 원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그녀의 연애 생활을 무덤 속으로 끌고

가려고' 결혼을 이미 해버렸다. 결혼은 그런 게 아닐 텐데, 아니어야 할 텐데, 뒤늦게 수업료가 어마어마하다.


사랑은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애초 서로에게 마법같이 끌려들었던 그 감정을 그대로

지켜 나가는 두 사람에게 이해되고 용인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문제될 것은

없을 거 같다. 그리고 남1과 여, 남2와 여는 그렇게 우여곡절과 자기부정과 관계부정을 거쳐, 자신들의 '사랑'을

새롭게 정의하고 단단히 다져나간다. 그들은 아마, '축구공'을 차고 노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어릴 적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걸 게다. 그들 인생의 축구공을 단단히 쥐고 함께 살아가기를.


#3. 사랑을 유지시키는 신기술, 두 번의 결혼?

그런데 꼭 또 한번의 결혼이어야 했을까. 그보다, 그녀가 남2에게 느꼈던 것은 사랑이었을까. 그녀는 말한다.

상대의 도드라진 점만 보는 연애와는 달리, 결혼은 삶 자체가 포개지는 느낌이라고, 새로운 행복을 느끼게 되었고

그러한 행복을 남2와도 나누고 싶다고.


어쩌면 그녀는 흔히들 결혼을 핑계로, 변화를 핑계로, 혹은 다른 무엇인가 적당한 핑계로 사랑이 식고 '情'으로

굳히기에 들어가는 관계를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한번에 두사람을 사랑할 자신이 있다, 혹은 사랑할 수도

있는 거라고 말하는 거고, 평생에 걸친 '영원한 사랑'의 판타지는 여전히 흔들림없는 게다. (상대가 하나던 둘이던

간에 말이다.) 그런 점에서, "평생 한사람만 사랑할 자신이 있냐"고 묻는 도발적인 카피는 사실 좀 초점이 엇나가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어쩜 덧없고 허무한 '사랑'의 불꽃을 계속 신선하고 뜨겁게 지켜내기 위해 다소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꼼수를 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마음이 사랑이었다고, 혹은 자기합리화라고 재단할 생각은 없다. 그건, 그녀와 사랑하는 자의 몫이다.


#4. 내게 묻는다면.

다만, 내가 그라면, 그녀를 이해하려고 애써보긴 하겠지만..끝내 못하지 않을까 싶다.

사랑이 하나가 아닐 수 있을까. 게맛살 쪼개지듯이 사람 맘이 두 곳으로 쫙 쪼개져서 둘다 진짜임을 주장한다고

해도, 그건 잠정적인 과도기일 뿐 결국은 스스로 지쳐 나가떨어지게 되지 않을까. 도덕적으로 누구에게 미안하고

못할 짓이고 라는 식의 비난이 아니라, 결국 그 두 사람 모두에게서 외로움만 더 커지고 마음의 상처만 깊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한 명씩이었다면 그 순간 상대가 자신의 운명이라고 믿으며, 또 자신의 것-"내꺼"-이라고 믿으며

한때나마 충일감을 느끼고 외로움을 떨쳤겠지만, 그런 기적과도 같은 마법을 온통 망쳐버리는 짓 아닐까.


그래서 나라면, '영원한 사랑'의 판타지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영원한 기간동안 그녀가 나와 또다른

남자를 사랑할 거라는 선언을 받아들여 그녀를 사랑할 자신은 없다. 물론 모, 닥쳐봐야 아는 일이지만.



덧댐. 아마도 '채털리부인의 사랑'에서 나왔던 대목을 차용한 거 같은데, 맨살-혹은 우비만 입고-로 소낙비

빗방울을 후두둑후두둑 맞으며 사랑하는 이와 야외 섹스를 하고 싶다는 그녀의 환타지, 그걸 실제로 남2와

했었다면 그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내가 이 영화를 그다지 강하거나 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 이유다.


덧댐2. 손예진의 매력이란...그리고 뮤직비디오로 '요조'의 모닝스타가 쓰였는 줄은 몰랐다.

그대들의 결혼이 나쁜 결합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대들은 너무 빨리 결합된다. 그 때문에 결혼의 파탄이

뒤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의 왜곡과 결혼 속에 깃든 기만보다는 차라리 결혼의 파탄이 더 낫다. 어떤 여자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결혼을 파괴했어요. 그러나 그보다 먼저 결혼이 나를 파괴했어요!"


잘못 결합된 부부는 최악의 복수심으로 가득 찬 자가 된다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더 이상

혼자서는 살아가지 못한단 사실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보복을 한다. 그러므로 나는 정직한 자들이 서로에게

이렇게 말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 사랑하도록 노력하자! 아니면 우리의 약속을 실수로

돌릴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훌륭한 결혼에 적합한지 어떤지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일정한 기간과 짧은

결혼생활을 허락해다오! 항상 둘이 함께 지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나는 모든 정직한 자들에게 그렇게 권한다...앞을 향해서뿐만 아니라 위를 향해 그대들 자신을 고양시키는 데

결혼이란 정원이 그대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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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이따위로 해놓는 ㅆㅂㄻ에게 화있으라. 니체가 제공한 주례사의 모델#1. 여태 이만큼 좋은 주례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절반은, 결혼으로 사랑이 결실맺었다며 구라쳤고, 나머지 절반은 '에~'가 무한반복되는 심심한 애국조회를 하는

기분이었다. 어쨌거나, "주례사는 준비되었다. 결혼하자, 여자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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