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건축가, 요새 대세인 건축학개론 말고. 고 정기용 건축가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사실 건축이란 거, 여태 관심이 없었던 게 이상할 정도로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예술인 거다. 사람을 에워싼

 

공간을 확보하고 형체를 부여하는 것. 그런 건축물들이 이번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새로 짓는 공모전에서

 

드러났듯, 그리고 청계광장의 빨갛고 파란 골뱅이탑에서 드러났듯, 인간과 역사에 대한 성찰과 배려없이는

 

쉬이 위압적으로 되어 천박하고 자기완결적으로 폐쇄된 '바벨탑'이 되고 마는 거니까.

 

 

그는 등나무에 기대어 선 운동장과도 같은 무주의 공공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제주도니 어디니 전국 곳곳의

 

기적의 도서관을 만들어내는 등 쉼없이 건축의 윤리성을 묻는다. 건축이 지향해야 할 바, 건축이 가져야 할

 

가치를 묻는 그의 태도는 대단히 완강하고 보수적이랄 수도 있겠지만-그래서 그의 건축은 첨단소재나 기법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한 가지 질문에 대한 나름의 성실한 답을 내놓는다.

 

 

공간을 실제로 활용할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평생 인간을 위한 공간, 형체를 만들기위해 애썼던 그가

 

자신이 지어올린 건물-목욕탕 겸 마을회관-옆에 앉아 볕을 쬐며 노인들과 담소하는 모습이란, 그가 꿈꾸던 인간적이고

 

공적인 건축물의 현현이자 그 질문에 대한 최선의 답을 보여주는 거 같았다. 그 건물을 누가 지었는지 관심조차 없는

 

노인들 옆에서, 다만 쓰잘데기없는 마을회관 대신 꼭 필요했던 목욕탕이 생긴 걸 기뻐하는 그들 옆에서, 가만히 웃는 그의 모습.

 

 

건축가로서 차츰 드러나던 그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사람이 보였다.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건축가로서의

 

시선을 갈무리하고 평생의 성취를 내보이는 회고전을 치루는 모습은, 그렇게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무리를

 

단단히 지으려는 모습은, 이미 특정 분야의 그렇고 그런 '전문가'의 모습을 넘어서 있었다. 어쩌면 저렇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삶의 마지막을 매듭짓는 모습 자체로 모든 이의 공감과 존경을 받기에 충분한 거 아닐까.

 

 

'고양이를 부탁해'를 찍었던 정재은 감독은 그런 그의 죽음을 두고 괜히 눈물샘을 자극하지도, 턱없는 아량과

 

하릴없는 상찬을 늘어놓지도 않는다. 성대결절로 고생하는 병든 건축가의 갈라진 목소리를 자막도 없이 그대로

 

드러내며, 관객들이 모두 숨죽이고 귀를 쫑긋 세우고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꼭꼭 새겨듣도록 한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거슬린다 싶더니, 어느 순간 그 목소리가 너무도 뭉클하게 다가왔을 만큼 강력한 영화였다. 영악한 감독 같으니.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