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마침 밤기차로 서울역에 도착하고 나니 3시반. 전철다니길 기다리기로 하고 여관과
아가씨를 권하는 여성분들께 죄송해하며 비됴방으로.


모든 곳에서 의미를 찾으며 모든 곳에서 이러저러한 지침을 받으려는 건 물론 아니지. 때론 시간 때우기 용으로
보기도 하고 그저 일종의 재미만 요구하는 경우가 태반이기도 하고. 그치만 하다못해 무협지나 만화에도

무언가-말투던 단어건간에-得이 될만한 게 있다는 게 내 경험이라서. 이 영화보고 나서 잠시 어리둥절했다.

멋진 영화인데..무언가 완벽하게 속아넘어간 느낌. 마술을 볼때처럼, 박수를 치고 감탄을 하면서도 왠지 한구석이

미진한 느낌이랄까. 스토리 끝의 갑작스런 반전에 원인이 있었나..


그 생경함의 출처는, 숙고 끝에 다다른 답안인데 아마도 이질감인 거 같다. 전혀 말이 안 되는 환타지틱한

이야기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풀어 나가며 '빙의(라 부를만한 것)'의 허무맹랑함을 거의 완벽히 지워버렸으니

말이지. 하긴 동감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그거보다 정도가 훨씬 세지 싶네. "우리는 우주에서 왔어!" 정도로.


마지막의 히로시에 료코가 '까슬까슬' 아빠-남편의 턱을 만지는 장면에서야 군더더기같던 결혼식 장면이 이해가
 
되었다. 결국 남편이 그녀를 딸로 호명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녀는 멋지게 그 변화-아내에서 딸로의-를 이루기
 
위한 연극을 했던 거..남편-아빠는 잠시 발끈해서 그녀의 새 신랑에게 제의를 하고..두대 갈기겠다는, 한대는

딸내미를 위해. 한대는 그녀를 위해. 한대를 있는 힘껏-머리도 희끗해졌으면서-갈기고서 잠시 pause..

그리고 그녀에게 말한다. 새인생이 시작된 걸 축하해.


그저 맹목적인 애정 내지 의욕만으로는 무언가를 이루기에 턱없이 부족하거나 제대로 이뿌게 만들어내기가

곤란하다. 그저 무작정한 친밀하고도 따스한 분위기만이 맥없이 흐르는 경우가 어찌나 많은지. 담을 그릇을

잃어버린 정신이 역할갈등을 겪으면서..어찌할 수 없는 그 변화를 수긍하기 위한 서로의 노력. 그 노력을 눈멀지
 
않게 하기 위한 이벤트가 결국 영화의 중종반간의 스토리지 싶다. 거의 성공해가는 단계에서 굳이 그걸 폭로하는

그녀의 의도가 남편에게 전해지는 순간, 주먹은 멈추고 그는 웃어 줄 수 있게 되어 결국 사랑이 성공하는 셈이랄까.


성공...이란 말보다는 매듭..이란 말이 더 나을라나. 사랑의 매듭.


어쨌거나 지금은 비됴보고 집에 와서...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다.ㅋㅋㅋ



(200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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