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문학류라 묶일 것들부터 정리..)

보르헤스, '셰익스피어의 기억'
- 보르헤스의 단편들에서 풍기는 현실 너머의 현실에 대한 감각.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냐..랄까.

정지아, '봄빛'
- 점심시간 짬을 내어 읽기에는 단편집이 좋았다.
"소멸을 의식함으로써 똑딱 하는 소리와 함께 흘러가는 이 순간은 더욱 생생해졌다. 여자는 소멸해가는 중이었고,
그러나 아직 살고 있었다." 

장영희, '축복'
- "헤매는 자가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행복해보인들 '미래'를 믿지 말라."

주제 사라마구, '눈먼자들의 도시'
- 눈이 먼 자들 사이에서 눈뜬 자는 되려 병신일 뿐 아니라, 온갖 추악함을 생생히 감각해야 하는 천형을 받은 몸.

주제 사라마구, '눈뜬자들의 도시'
- 으레 그렇듯 보수 40%, 중도 50%, 진보 10%랬던가..그 써늘한 냉소가 허울뿐인 민주주의를 향했다.

노신,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 식민지 지식인의 양가감정, 지키고 긍정해야 하는 자신의 뿌리로서의 민족과 동시에 깨우기 위해 비판하고
부정해야 하는 과거의 것으로의 민족. 그 사이에서 균형잡고 줄타기에 능한 노신.

댄 브라운, '다빈치 코드'
- 프랑스 가기 전에 파리의 몇몇 풍경에 이야기들을 심어두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종교적 편향이 없는 내겐
그다지 충격은 크지 않았지만, 그 유리 피라밋 아래 조그만 피라밋이란 게 대체 어딘지는 결국 못 찾았다.

코맥 매카시, '더 로드'
- 광고문구에서 표현되듯 이책은 묵시록인 걸까. 불을 운반하는 아버지와 아들, 그들이 가닿는 감정의 깊이와
순정함을 보면서 난 자꾸 그 말이 떠올랐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는가.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그가 20대에 썼다는 이런 소설, 나도 한번은 쓰고 싶었던 소설. 사랑이 태어나고, 자라고, 꽃들을 피우고, 죽는다.
그리고 또다시 상처를 머금고 씨앗은 자란다.

남무성, 'Jazz it up'(1-2)
- 재즈의 기원부터 전개 과정, 빛나는 뮤지션들까지 만화체로 풀어 설명한 책. 중간중간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나올 때 맛보는 마치 퍼즐조각의 제자리를 찾아낸 듯한 쾌감.

파울로 코엘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점심시간 짬짬이 일주일에 걸쳐 읽었던가. 뜬금없이 하루키에 비기자면, 하루키가 시니컬하고 삐뚤어진 태도로
'그래도 살아 제길' 정도 이야기해줄 때, 코엘료는 왠지 아름답고 부드러운 밤하늘을 가리키며 '아름다운 밤이에요'
할 거 같다.

주이란, '혀'
- 조경란과의 표절논쟁으로 떠들썩해진 덕에 굳이 사서 읽었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왠지 나도 소설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태까지는 스스로의 감정을 풀어내기도 힘든데 감정이입따위 해가며 픽션을 쓸 염은 없었다.

한상복, '배려'
- 이런 류의 책..자기계발인지 뭔지, 정말 혐오한다. 치즈를 누가 옮겼던 말던, 어차피 그런 교훈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이야기의 '원형'은 넘치도록 많다. 왜 같은 이야기를 온갖 디그레이드된 버전으로,
그것도 건방지고 오만한 말투로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지. 그나마 다행히 숙제였던 이 책은 좀 낫다 싶었지만.


(다음, 비문학류랄까, 아님 인문사회과학류랄까..)

조지프 캠벨, '서양 신화-신의 가면3'
- 레반트 지역의 남성신이 어떻게 그 이전의 여성신들을 전복하고 전유했는지. 성경에 매장된 채 변형된 세계.

프로이트, '정신분석 입문'
- 프로이트의 '예술, 문학, 정신분석'을 보고 싶어서, 워밍업차 오랜만에 다시 한번 일독.
그는 참 무서운 사람이다. 자신의 사고를 겁없이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갓난애의 천진난만함은 유아기의 성욕으로
해석되고,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의 관계를 문명의 외피를 벗기고 사유하려는 그의 강철같은 정신.

프로이트, '꿈의 해석'
- 읽다보니 꿈의 해석도 한번 다시 읽고 싶어져서.

프로이트, '예술, 문학, 정신분석'
- 인간이 평등함을, 혹은 평등해야 함을 말하지만. 인간은 무의식 앞에서 평등하다, 아마도 그것만이 있는 그대로 진실일지 모른다.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정권이라는 상투어, 그리고 대한민국헌법1조를 말하는 자는 국민(Korean)이 아니라
인민(people)이어야 한다는 해석..배제함으로써 포섭하는 사회의 갈가리 찢어 관리하는 시스템을 그려보인다.

최장집 등,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 2007년에 나온 이 책 제목 앞에는 몇마디가 더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이명박이 당선되기 전인 2007년 현재".
이 책에서 낙관인줄 모른 채 깔고 시작했던 전제들이 몇몇 휘떡 뒤집힌채 허우적대고 있는 2008년 말.
 
앤서니 기든스, '노동의 미래'
- 솔직히 학자들이 미래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내면 보고 싶지 않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워낙 넌센스
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몇몇 개념어를 강조하고 싶은지 미래에 커다랗게 빨간 글씨로 그런 아이디어를
그려넣는다. 별로,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 이름은 익히 아는데 내용은 모르는, 마치 연예인같은 책 중 하나였다. 일본에 가지 않고도 이런 깊이와 균형잡힌
시각의 분석이 가능하다니..하고 놀랬었다. 그리고 이미 이 책이 있는데 왜 '일본은 없다' 따위 쓰레기가 소비될까
잠시 (순진하게도) 의아해졌더랬다.

만델라, 'Long walk to freedom'
- 751페이지짜리 문고판. freedom fighter라는 역할을 혼신의 열정으로 연기해내는 만델라..를 보는 것 같다. 그는
현재 마흔여섯살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후 섬에서 복역 중이다. 여기가 현재 내가 읽는 468페이지의 만델라.

강준만, '지방은 식민지다'
- 서울제국을 위한 내부식민지. 남한 내 비서울지역. 국토균형발전이니 뭐니 말도 많지만, 결국 지방 스스로의
민주적 역량과 실질적 제도적 정비의 뒷받침이 없이는 온통 서울로 빨려들어갈 뿐이라는. 돈도 사람도.

최일도, '이밥먹고 밥이되어'
- 밥퍼공동체에서 봉사를 하고 받은 책. 목사라지만 그는 사람을 사랑하는 정말 목사인 것 같다.

최병일, '한미 FTA 역전시나리오'
- 나무가 아깝다.

'글로벌 시장을 리드하라'
- 면접준비용 책이었다.

앨빈 토플러, '부의 미래'
- 미래..라는 단어 갖고 사람을 현혹하는 건 이제 그만. 지금의 시스템이 어떠한 과거의 유물과 현재의 부산물로
어떻게 융합되어 있는지부터 철저히 따진 후에야 고작 예측 정도가 가능할 텐데..대체 무슨 과신인지.

'세계는 지금 이런 인재를 원한다'
- 엔트로피의 법칙을 안다면, 이런 책은 사지도 팔지도 만들지도 말자.

(정기적으로 본 것들..)

시사IN
- 이명박 사진 좀 올리지 말라고 독자의 편지에 투고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TIME
- 미국을 조정한다고 믿고 싶은 자들이 보는 잡지랬던가..Economist가 실제로 미국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보는 잡지라고 했던 거 같아서 바꿀까 했으나.

저번주부터 몸이 힘들어하더니, 급기야 주말이 되자 퍼져버렸다.

토요일, 일요일 계속 이불을 싸매고는 땀을 비오듯이 삐질거리고 있다가, 조금 나은 것 같아 어제 또 술을 마셨다.

군대동기들, 대학친구들, 고등학교친구들, 조모임친구들, 입사동기들 등등에 이어 마지막 우리 부서 송년회.

팀장님이 꺼내놓은 양주가 소고기와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기침을 말보다 더 많이 한 날이었음에도 홀짝대고

잘도 받아마셨다. 결국 오늘 또다시 붕괴.


휴가라서 느지막히 일어나서는, 그것도 상당한 노력과 이를 악문 참을성이 있어야 했지만, 두들겨맞은 듯한

몸을 겨우 일으켜 땀에 흠뻑 절어버린 잠옷을 벗어던졌다. 선뜻한 기운에 얼른 옷을 꺼내입는데 옷이 팔다리에

쓸리는 느낌이 어찌나 아프게 느껴지는지..바로 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대.만.원.


한 삼십분 기다려서 진료를 받고 나온 병명은 코감기와 심한 몸살. 요새 과로했냐고 물어서, 일은 안 힘들었지만

송년회가 매일 있었다고 말하려니 좀 뻘쭘했다. 주사를 맞는데, 왠지 주사를 맞는 순간엔 갑갑하게 막혀있던 코가

뻥, 뚫리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알콜적신 솜으로 채 제대로 부비지도 못하고 모종의 사정으로 이용한 급작스레

이용한 화장실에서 힘을 주었더니, 이번엔 주사맞은 엉덩이가 뻥, 터졌다.


사실 말그대로 뻥, 하고 풍선터지듯 엉덩이가 터진 건 아니고, 그냥 피가 좀 나더란 얘기.


고양이의 날님 블로그에 놀러갔다가, 캐러나비라는 게 있길래 뭔가 싶어서 따라해봤다.

일종의 동물캐릭터적 개성심리학이랄까..http://www.charanavi.co.kr/에 가면 해볼 수 있다.


***님
198*년**월**일생 (양력)
  
42 고집있는 치타
당신의 본질
야무진 외형에 시원시원한 태도가 인성적인 당신. 성질이 급하고 동작도 활기차며 한숨 돌릴 시간도 없을 정도로 속효성 결론을 내는 타입입니다. 머리가 좋고 멀티적 재능을 가져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자. 상대의 마음을 간파하는 예리한 감이 있으며 교양이 넘치는 기획이 가능한 것도 당신의 큰 무기가 됩니다. 그 반면 사람에게 부탁받으면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좋은 면도 있습니다. 그러한 낙차도 당신 매력의 하나입니다. 또한 낙천적이고 야심가인 당신은 세계 속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듯한 다이나믹한 일생을 보내고 싶다고 바라고 있습니다.

왠지...은근히 맞지 싶은데? 이것도 혈액형이나 MBTI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자기 입맛에 맞게 들리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러한 낙차'를 짚어낸 건 좀 와닿긴 한다.




분석명 분석상세
개성 

개개인의 성격, 행동 본질을 분석 하여 기본행동특징, 사고방식, 생활습관을 제공한다.

운세 

오늘/주간/연간운세 리듬을 분석하여 라이프 흐름과 타이밍을 제공한다.

연애 

본인의 연애경향과 상대방의 연애경향을 분석하여 궁합을 진단해주며, 다양한 공략방법과 접근방법을 제공

육아 

자녀의 개성 및 행동 본질을 분석하여 교육에 도움에 되는 육아 팁을 제공한다.?

비즈니스 

개인별 비즈니스 분석을 토대로 직장 내 인간관계 조언 및 고객개성 분석을 통한 영업 팁을 제공한다.

테마 

◈ 혈액형 별 궁합분석 ◈ 캐릭터별 다이어트 분석 ◈ 패션/여행/건강분석






 

말그대로, 티스토리의 탁상달력 사진공모를 빙자해서 올 한해동안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모처럼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 이전에 찍은 사진들은 왼쪽하단에 2004. 11. 1 이런 식으로 년도가 찍혀있는 필름사진이나

온통 인물이 배경을 가린 '증명사진'들 뿐이어서, 그다지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남는 사진들은 대개 혼자 다녔던 여행에서 찍었던 풍경들이거나, 최근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포스팅을

염두에 두고 찍은 사진들이다. 우선 7월.

#0. 몽마르뜨 언덕위 하이얀 사크레쾨르성당.

#1. 베르사유 궁전에서 내다본 18세기 프랑스 정원.

#2. 루브르 궁전에서 맞이한 석양.

#3. 루브르 궁전에서 맞이한 석양2.

#4. 고풍스러운 루브르 궁전과 현대적 미감의 유리 피라밋, 그리고 한결같은 하늘.

#5. 황금빛 튈를리 정원.

#6. 저녁 무렵의 에펠탑 전경.

#7. 앵발리드를 끼고 도는 세느강의 야경.

#8. 무성영화처럼 아스라히 고즈넉한 파리의 야경.

#9. 푸른빛 가득한 에펠탑의 야경.

#10. 리야드 알-파이잘리야 타워의 야경.

#11. 후쿠오카 고묘젠지의 연두빛 단풍나무.

#12. 콩코드광장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개선문.

#13. 뤽상부르 공원의 평온한 주말.


#14. 에펠탑에 내려앉은 별무리.

#15. 노틀담대성당에 기댄 거리의 악사.

#16. 생샤펠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화려하게 물들이는 7월의 햇살.



지금까지의 1/4에서 3/4까지가 올해 찍은 사진들로만 고른 거라면, 마지막 4/4는 지금까지 곱게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채 빛을 못 보고 있던 사진들 중 그나마 인물이 소거되어 있거나 있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사진. 사실은

조만간..아마도 조만간 내 블로그에 전부 글과 함께 올리려고 하는 사진들인데, 어느새 사진공모에 몹시 몰입한

터라 우선 몇 장 올려본달까. 6월이 좋겠다 싶은 사진들. (자꾸 머릿속에서 '6월은 호국보훈의 달' 어쩌구 음산한

목소리가 맴돌지만, 꿋꿋이 거부하는 중..)

#1. 태국 농눅 빌리지의 프렌치 가든.

#2. 태국 농눅 빌리지의 프렌치가든2.

#3. 태국 아유타야사원의 어느 길.

#4. 방콕 인근 어딘가의 높은 사원.

#5. 그 태국 방콕 인근 높은 사원에서 내려다본 아랫풍경.

#6. 태국 농눅 빌리지 안의 어느 정원길.

#7. 태국 어딘가의 수상 시장.

#8. 태국 아유타야 근처던가..코끼리와 사이좋은 아저씨.

#9. 태국 꾸란섬 가는 길의 해변가.

#10. 태국 수상 시장위 벌려진 좌판대들.

#11. 6월엔 아마도 부처님오신날. 태국의 어느 사원.

#12. 태국 아유타야 사원의 부처상.

#13. 태국 위만멕궁전의 처마.

#14. 터키의 파묵칼레. 하얀 수반에 담긴 하늘빛 물결.

#15. 터키 파묵칼레 위로 쏟아지는 햇살.

#16. 터키 에페스의 원형극장.

#17. 터키 카파도키아, 땅에서 솟아난듯한 버섯마을.

#18. 터키 카파도키아, 러브 밸리란 이름의 유래는..?

#19. 터키 카파도키아. 뒷편의 장미빛 고운 로즈 밸리.


10월에 찍은 사진이 11월에도 가고 9월에도 맞겠지 싶는 것들이 있다. 매 달에 딱 떨어지는 정합성을 띄고 있거나

대표성을 띈 사진을 찾기도 쉽지 않아 그렇기도 하고, 사실 10월과 11월, 혹은 9월이란 덩어리가 가진 특징이

뚜렷치 않은 탓이기도 할 거 같다. 굳이 어린왕자처럼 10월 31일과 11월 1일의 차이가 뭐죠, 라고 묻고 싶진 않고.


티스토리측에서 꼭 매달에 맞는 사진을 골라달라고 할 게 아니라 차라리 봄여름가을겨울, 이렇게 사계에 맞는

사진만 분류해서 응모해달라고 하는 게 좀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사실 그 많은 사진들을 골라내는 작업에도

한계가 있을 테니 어쩔 수 없을 거다. 응모하는 측에서 그 부담을 조금만 더 덜어주십사 하는 걸텐데, 글쎄..정말

달별로 쪼개는 작업은 쉽지도 않고, 하다보면 스스로 세웠던 기준 자체가 흔들흔들하고 있어서 어렵다.

#1. 10월 - 후쿠오카 유센테이 코헨의 가을 풍경.

#2. 10월 - 후쿠오카 고묘젠지에서 떠낸 붉은 단풍.

#3. 10월 - 후쿠오카 고묘젠지의 가을 정취 물씬한 정원.

#4. 10월 - 후쿠오카 고묘젠지의 단풍.

#5. 10월 - 남이섬 인근의 북한강 풍경.

#6. 10월 - 남이섬 인근 북한강에 불난 듯, 자욱한 새벽 물안개.

#7. 10월 - 북한강변의 가을 단풍.

#8. 10월 - 제주도의 가을 바람.

#9. 10월 - 후쿠오카 유센테이 코헨에서 찍은 달력포즈 사진.

#10. 10월 - 욱씬욱씬 커가는 노란 제주귤.

#11. 10월 - 후쿠오카 다자이후의 가을.


#1. 11월 - 스산하게 얼어붙은 임진강변. 개성가는 길.

#2. 11월 - 후쿠오카의 아크로스 후쿠오카 건물 위에서 바라본 가을.

#3. 11월 - 후쿠오카 고묘젠지의 붉은 단풍.

#4. 11월 - 후쿠오카 유센테이 코헨의 금빛 잉어.

#5. 11월 - 후쿠오카 다자이후 골목을 지나는 여고생들.


8월, 9월...전략적으로 생각했을 때, 8월은 뭔가 여름휴가하면 생각나는 작렬하는 태양, 눈부신 육체, 그리고 축제

같은 분위기가 질펀해야 할 텐데 별로 그런 사진을 찾기 쉽지 않았다. 9월 역시 추석이라는 거대한 이벤트가 

있으니만치 그런 사진들을 올려야 할 거 같은데, 별로 해당될 만한 사진이 안 보인다. 객관적으로 내 사진들을

따졌을 때에도 그닥 뛰어난 사진은 없으므로 틈새를 노려야 한다는 고려도 한 몫해서 사진들의 해당 월수를 찾아

주었던 것.


애초 사진공모를 '빙자'했다고 했으나...어느새 몰입하고 있다는.

#1. 8월 - 제주도의 어느 노천 수영장.

#2. 8월 -  샹젤리제 거리에서의 일광욕.

#3. 8월 - 축제의 도시, 파리의 휴일날 거리공연.

#4. 8월 - 아침고요수목원의 오래묵은 소나무.


#1. 9월 - 후쿠오카 유센테이 코헨의 가을 정취.

#2. 9월 - 김태희 허수아비가 지키는 남녘의 들판.

#3. 9월 -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한  웨이크보드가 응시하는 새벽안개 자욱한 남이섬.

#4. 9월 - 후쿠오카 유센테이 코헨의 이끼슨 석등.

#5. 9월 - 세느강변의 조금 이른 낙엽, 그리고 푸른 잔디밭.

#6. 9월 - 제주도 주상절리대의 검푸른 물결.



경험적 세계의 유토피아적 가능성...에서, "이채(異彩, ytzsche)가 꿈꾸는 경험적 세계의 유토피아적 가능성"으로

블로그명을 살짝 바꿨답니다.ㅎㅎ

제가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써왔던 필명이랄까, 오죽하면 제 예비군모자에도 ytzsche라는 단어를 오바로크쳐 놨을

정도지만..대체 어떻게 발음해야 할 지, 무슨 뜻일지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을 겁먹게 하거나, 혹은 무관심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더구나 제가 하나하나 붙잡고 뜻을 설명할 수도 없구요.


'Che'는 익히 알려진 체게바라의 그 '체'입니다. 동지라는 뜻, 친구라는 뜻(Comrade)이 담겨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Nietzsche의 tzsche, 근대를 넘어서 새로운 인간형, 새로운 문명을 추구한 그의 전복적이고 혁명적인

사고에 매혹되었(었)다는 징표기도 하구요.

한자로 풀면, 異彩, 다른 빛깔 정도로 해석할 수 있으려나요.

이미 가수 이상은씨가 lee-tzsche던가요, 비슷한 방식으로 명명된 앨범을 내기도 했었지만..사실 저도 그전부터

이 제멋대로 뜻을 더해올린 옥상옥의 이름을 좋아라 하며 쓰고 있었답니다.


해서, 다시금 "異彩가 꿈꾸는 경험적세계의 유토피아적 가능성"으로 시작합니다.

Just call me "이채", bebe~^-^*


안녕하세요.티스토리 입니다^^
회원님의 포스트가 현재 다음 첫화면 카페.블로그 영역에 보여지고 있습니다. 카페.블로그 영역은 다음 첫화면에서 스크롤을 조금만 내리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회원님께서 작성해 주신 유익하고 재미있는 포스트를 더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다음 첫화면에 소개 하게 되었으니, 혹시 노출에 문제가 있으시다면 tistoryblog@hanmail.net 메일로 문의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티스토리와 함께 회원님의 소중한 이야기를 담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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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날 아는 사람이 없는 이곳에서, 오프라인 세상은 물론 싸이월드 상에서의 인간관계와도 전혀 엮이지 않은

이곳에서 내 블로그의 조회수를 올려주시는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이렇게 다음 첫화면에 노출되지 않을

때에도 꾸준히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왜 난 여전히 신기할까.



9. 18. 블로거를 시작한지 두달쯤, 왜 갑자기 조회수가 늘었는지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했던 하루.
        (후에 유추컨대 아마도 블로그 뉴스 종합베스트 화면에 떴었던 듯..)


9. 22. 며칠 되지 않아 또다시 조회수가 급등하는 기현상이 발생하여, 누가 날 스토킹하나 가벼운 망상증.
       (후에 18일건과 함께 유추컨대 아마도 블로그 뉴스 종합베스트 화면에 다시 떴었던 듯..)


10.12. "파리에 튈를리정원가니 자유로운 애정표현이 가능해.."라는, 다소 변형된 제목으로 다음 메인화면에 뜨다.
       (친절하게도 지금 현재 다음 첫화면에 노출되고 있음을 알려준 운영진 덕분에 화면까지 캡쳐 성공!)


10.28. "몽마르뜨 언덕 완상하기"란 글이 다음 메인화면에 뜨다..떴었나보다. 출장 중이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11. 2. 블로그 뉴스 종합베스트에 "어이없는 예비군훈련 안내문"이 뜨다.
       (...이게 베스트에 뜰 만한 글이었는지는, 아니 글이라기도 그렇다. 사진 한장이었는데..ㅡㅡ;)


11. 8. "관광비자를 내주지 않는 나라, 사우디아라비아"란 글이 다음 메인화면에 뜨다.
      (제목을 그대로 써주신 것은..뭔가 좀더 새끈한 제목을 고민해주시기가 귀찮으셨던 걸까^^;)



이런 기회를 통해 내 블로그에 방문하시는 분들이 내 다른 글들도 모두 봐주셨으면 하는 자그만 욕심이 있어요~*

러뷰~♡

어제 왜관서 부산까지 무궁화 타고 오는데, 무궁화호 정말 많이 감편된데다가 거의 통일호마냥 예전엔 걍 쌩까고

지나가던 소소한 역들까지 서가면서 좀체 속도를 못낸다. 자리도 꽉꽉 차가지고 입석승객도 무진장 많은데다가..

그걸 툴툴댈만큼 선택의 폭이 넓지도 않고 자칫 시간에 맞춰 복귀하기도 힘들만큼 편수가 줄어버린 게 정말이지
 
치명적이다. 오후 통틀어 네 대밖에 없다니.



어젠 TMO를 타고 왔는데, 그것 역시 빈 자리가 하나밖에 없었다.

사실 일병, 상병 때는 출장 다님서, 외박 다님서 편의점서 캔맥주 하나 사갖고 기차서 마셨는데, 이제 머...그런

'군인답지 못한' 행동은 자제하기로 타협본지라 걍 조용히 빈자리에 꽂혀앉았다.

원래 내가 선호하는 자리는 창가쪽에 앞에서 한 5~10째줄 쯤..글구 창가도 시야가 가리지 않고 깨끗이 확보된

자리를 좋아하고 왠만함 옆좌석이 비어있는 곳-누가 앉게 될지 알수 없어 채워지기 전까지 뜬금없는 상상을 펼칠

수 있는-을 좋아한다.



비어있던 자리는 기차칸 뒷구녕쪽에 통로쪽, 옆에 여군이 앉았을 리는 없고 어떤 사납게 생긴 직업군인 아찌.

게다가 결정적으로 내가 앉을 자리 앞좌석의 아저씨가 거의 만땅으로 의자를 뒤로 꺽어버린 채 신문을 보고 있던

거다. 자리에 끼듯 앉아서 잠시 기대...이아찌가 내 존재를 육안으로 식별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자연적인

사이버네틱 과정을 거쳐 좌석을 최소한 약 30도쯤 당겨주지 않을까 했던 거다.



...잠시 궁리. 왜 안 땡겨줄까. 걍 말을 걸어 양해를 구해 볼까.



근데 걸린다. 그 아찌가 민간인일리는 없고, 얼굴이 절라 삭은 상병이나 일병, 아님 자대배치받은 이병...일리도

없고. 아님 병장이라 할지라도 절케 삭은 병장은 아직 견식한 바 없고. 백방 직업군인인데다 애도 한둘 딸려있을

연세이신데, 병장 나부랑쓰가 제한몸의 평안을 위해 고계급간부님의 복지 및 후생을 제약하려 해서야 쓸

말인가...'군인답지 못하다'.



물론 알 수 없다. 그 아찌가 말이 통하는, 좀 '군인답지 않은'-내 나름의 기준으로는 군인답지 않은 군인은 거개가

제대하고 그 나머지만 '잔류'한다. 왜 그 싱크대 배수구에 붙은 오물통처럼-사람이라면, 내가 얘기했을 때 어이구~

하면서 자리를 땡겨줬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 (원사, 상사, 중사, 대위,...)간부와 짝퉁말년 윤병장과의

계급차에서 비롯된 민망함과 '송구스러움'은 남는다.



그리고 내가 아는 방포 간부...마치 애초 내가 원했던 좌석이 아닌 '남겨진' 자리 하나에 앉을 수 밖에 없었듯이

내가 투입되어 경험한 군대...는 80년대 육군의 마인드를 강고히 유지하고 있는 터라, 어마어마한 권위의식과

계급의식을 갖고 있다. 추상적으로 부여된 실체없는 계급으로 호칭되는 x원사, x상사..가 아니라, 자신이 어떠한

계급이고 그 계급피라미드에서 어느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하는 의식을 명철히 갖고 모든 언행에 우선적으로

투영시키는 진정한 계급.



그래서, 군용객차칸에서는, 민간객차칸에서 하듯이, 사람에 대한 양해나 뭐랄까 그나마 수평적 입장에서의

이해-전략을 세울 수가 없어서, 걍 두시간 십분동안 좌석 사이에 끼어서 왔다.



- 2004.5.30.

#1. 2008 PIFF

토요일 아침 댓바람을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국제영화제.

대학 들어와서부터 계속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갈 만한 타이밍이 없었달까. 다른 짓들을 이것저것 

하다보니 번번이 '보다 더' 바쁘고 중요해 보이는 일들이 생겼더랬다.

원래는 토욜부터 일욜 저녁까지, 한 예닐곱 편의 영화를 쭈욱 볼 생각이었지만. 이러저러한 변수들로 인해 예매했던

표들을 전부 취소하거나 현장에서 교환하게 되었고..군대 동기들 그리고 그 여자친구들과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거리를 걷고, 바다를 보고, 학교 캠퍼스에서 연못을 보고, 길에 눕고, 술을 마시고, 해맞이를 했다.


야외상영관에서 했던 '공각기동대' 감독의 애니 '스카이 크롤러' 더하기 2008 칸느영화제 심사위원장상이던가..

라던 이태리 영화 '고모라'를 보다가 영화가 중간에 끊기고 이탈리아어가 너무도 리드미컬하게 잠을 불렀던 게

그 모든 걸 촉발시켰다. 아마도 야외상영관의 약간은 산만한 배경도 한몫했을지도.


부산내려간다 하면 니 와봐야 지갑아작나고 몸씹창난다고 오지말라고 걸진 욕지거리를 전화로, 문자로 질겅이는
 
녀석들이지만, 그래도 결국, 이번에도 밤새 뭔가 촛불 하나를 뿌리채 태워버리는 듯한 기분으로 놀아제껴버렸다.

가장 최근에 봤던 건 올해 초 협회 연수기간, 북경, 상해를 거쳐 부산으로 왔을 때, 룸메이트였던 행님 한분을

옆방에 밀치고는 밤새도록 양주마시고 웃고 떠들고..우리가 포대 BX에서 냉장고 열린 문짝서 새나온 불빛을

조명삼아 밤새 술마시던 이야기와 하루키의 소설을 두고 벌이던 담배 한개피의 이야기들..그런 안주거리 삼아 

진지해지기도 했다가는, 결국 침대에 담배빵 한두개 내주고 토하고..담날 아침에 정신못차린 녀석들 쫓아내곤

나 역시 하루종일 널부러져 지냈던 기억.


그나마 이전처럼 숱하게 잘려나간 필름쪼가리들만 넝마처럼 늘여뜨려 돌아온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있는 기억을 갖고 돌아와서 다행이다. 비록 리비도와 어렴풋한 불만으로 가득한 자유연상법을 차용해

스토리와 인과관계를 무시한..일종의 포스트모던을 표방한 독립영화였지만.


다음엔 영화만 보고 와야겠다..고 잠시 생각도 했었지만, 흔들리는 핸드-헬드(hand-held) 카메라로 로드 무비를

찍듯 부산녀석들과 밤새 이야기하고 걷고 노는 게 역시 더 매력적이다. 그리고도, 영화를 한꺼번에 세네편씩

과식하는 건 잘 소화시켜 내는 것보다 도로 토해놓는 게 더 많은 거 같아서.




#2. 채용설명회

어제 1시, 서울대학교 140동에서 무역협회 채용설명회가 있었다. 140동이 어딘가 했다. 홈피에서 확인해보니

국제대학원. 몰랐는데, 우리학교에서 채용설명회를 위해 공간을 빌리려면 대관료를 내야 한단다. 한 번에 30,

두 번에 50. 학교가 배가 불러서 그런 걸까. 여러 모로 생각해도 배부를 상황은 아닌 거 같은데, 다른 학교는

쌍수들고 환영이라건만 이상한 일이다. 결국 협회와 관계를 맺고 계신 국제대학원 교수님을 통해 무료로 장소

협찬. 빈정상한 협회 인사팀분들은 자칫 우리학교를 스킵할 뻔 했고, 난 하루 볕쬐며 모교안에 포스터붙이고

채용설명회를 준비하는 색다른 이벤트를 놓칠 뻔 했다.


협회 신입에서 3년차쯤까지 중에 서울대 출신 '대표'로 뽑혀나온 나로선, 내게 주어진 15분쯤의 시간을 어찌 쓸까

고민하다가 그냥 최근 대두되는 '사회적 기업'이란 개념을 끌어다가는 60여년전부터 협회가 그런 상을 구현해온게

아닐까 한다거나, 민간부문과 같은 역동성으로 공익성을 추구한다는 매력이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

국제통상본부에서 내가 하는 일들이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하고 민간통상협력활동을 촉진'하는 거창하고 보람찬

일이며 일과 삶의 밸런스가 잘 잡혀 있다는 반증으로 PIFF 참관기와 색소폰 연습 등을 주워섬기는, 나름 모범적인

답안을 제시했던 것 같다. 


중소업체들이 행사나 세미나에 참석하며 진정 고마워할 때 보람을 느끼지만, 가끔 걸려온 전화가 코트라가 아니냐
 
따진다거나 협회는 어디에 있고 대체 뭐하는 데냐고 물을 때 당황스럽다는 '진솔한' 얘기도 가볍게 눌러 해주고.


Q&A시간에는 대부분 구체적인 전형 절차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글쎄..사람들이 보통 채용설명회 안 오는

이유가, 질문이 어떤 수위를 넘어 예민한 영역으로 넘어오면 정답이 안 넘어오기 때문 아닐까. 나도 그래서 작년에

채용설명회는 두세번밖에 안 가봤던 것 같은데 그것도 대개 선물로 준다는 USB나 꽁짜점심 때문이었다. 뭐..그런

당근도 없는 상황에서 그 자리를 지켜준 사람들이라 감사했고, 열심히 질문을 해준 사람들이라 더욱 감사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도 아닌 것이, 사실 나는 작년 한 번, 그 중에서도 고작 한 차례 서류에서

CEO 면접까지를 거쳤을 뿐인 조그마한 샘플인 거다. 동기들도 제각기 다른 질문, 다른 취향의 면접관을 마주했고,

일년 전 전형절차를 밟은 선배들은 더욱더 다른 환경과 내용으로 시험에 처했다. 그리고도 올해 전형이 어찌 될

지에 대해서는 인사담당자가 아닌데 무슨 책임있고 신뢰감 있는 말을 할 수 있으리오.


물론, 그런 건 있다. 협회의 분위기에 비추어 어떤 사람을 원할지,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이 역시 어쩔수없이 많이
 
주관적이겠지만), 그리고 이 곳이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을지. 아마 마지막 문제의 경우에는 이미 이 공간에서
 
닳아버린채 닮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나로서는 외부인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위한 채용설명회마저 내 고민과 기억을 위한 자리로 변질시켜버렸달까. K, Ba, Ca같은 강력한 산화력으로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을 나를 중심으로 도는 양 묘사하는 건, 지독한 이기심의 발로인 게다. 사랑을 한다는 건

마음을 가로세로 넓히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오로지 그 상대만을 향해서였을 뿐, 어쩜 주위에 대해서는

외려 가로세로 좁혀버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회사에 한국양궁협회에서 어떤 분이 와서 강연을 하고 간 적이 있다.

그 분은 한국이 '동이족(東夷族)'이라는 판타지에 기댄 채 금메달을 당연시하는 양궁이라는 분야가 실은,

미국, 구 소련, 그리고 일본이 장악했던 종목임을 지적하면서 그런 근거없는 과거 이야기는 어느 나라나 들먹이고

있다고 했다. 마치 '그 옛적의 금송아지 운운'하는 이야기처럼 자신들 조상이 세상에서 활을 가장 잘 쏘았다는.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무한경쟁, 꿈과 희망'이었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는 환타지'를

불어넣는 고도화된 양궁 국가대표선발 시스템의 윤곽이었다. 아무래도 기업체에 와서 양궁 관련 이야기를 버무려

열심히 무한경쟁하자, 꿈과 희망을 품고(혹은 상상하며) 일하자, 그런 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다 보니 그런 걸까.

아님 양궁 같은 체육 종목 자체가 워낙 국가대표 선발과 메달 획득을 두고 치열하다는 반증일까.


강사가 이야기하는 국가 대표 선발 과정은 그 자체로도 지옥이었지만, 사람을 참 처절하게 만든다 싶었다.

새벽 5시반에 기상해선 밤 8시까지 훈련, 그리고 고작 2시간의 자유시간 후 10시 취침이랜다. 그렇지만 누구든

한명이라도 숙소를 벗어나 개인훈련이라도 하는 것 같으면 어느새 대부분이 나와 훈련을 하게 되는 분위기.

예컨대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서 약 일년전부터 남녀 국내 랭킹 100위까지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시켜서는, 10달 동안 대회를 열 차례나 치르고 남녀 각 4명을 선발한다고 한다. 국내 랭킹 80등이

대략 세계 랭킹 5위에 들 정도라고 하니, 그 압박감은 아마 상상을 초월할 거다. 거기서 끝이 아닌게, 또다시

세 번의 국제대회를 거쳐 남자 셋, 여자 셋의 국가대표를 최종 선발한다는 바늘구멍 이야기.


양궁 과녁이 노란 골드 부위 지름이 12cm랜다. 사수는 70m밖에서 서서 쏜다. 그것도 화살 한 발당 30-40초 내에

쏘아야 한다는 심적 제약도 있다. 그 바늘구멍에 누가 가장 가까이 근접해 있는지를 따지는 바늘구멍 이야기는,

혈연이나 지연, 혹은 학연같은 불공정한 요인으로 얼룩지지 않은 only 실력으로만 따진다는 점에서 충분한 매력이
 
있을지 모른다. 열정만 있으면,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는 거대한 환타지.


그렇지만 노력한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건 절대 아니다. 성공은 금메달로 계측되며, 금메달은 한 사람 몫이다.

비단 그런 까칠한 현실인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미 불만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열정'이라는 개인적 덕목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책임을 모두 꽁꽁 싸매고 있다는 느낌이다.

'무한경쟁'을 반복적으로 호명하면서 "메달 획득은 곧 대한민국의 경사"라고 국가에 대한 헌신과 충성, 그리고

목적의식을 요구하는 국가대표 양성 시스템은 그 자체로 적나라한 (학생들이 맞닥뜨린) 우리 교육계의 현실,

(직딩들이 맞닥뜨린) 기업계의 현실, 그리고 (국민들이 맞닥뜨린)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동원되는 각종 현대과학과 심리학의 결과물들. 스포츠 생리학, 스포츠 심리학, 스포츠 역학...여성들의 경우

생리할 때 컨디션이 40%까지 떨어진다는 게 현대 과학의 분석이고, 그에 대한 과학적 '심판'은 다음과 같다.

음식과 기타 의학적 도움을 받아 생리주기를 미미하게 이동시키기 시작, 생리시기를 피해 가장 컨디션이 오르는

시점에 경기일이 맞춰지도록 몇 달에 걸쳐 조정할 것. 시차에 따른 신체적 적응 여부는 상쾌한 하루를 여는 화장실

행사가 몇시에 있었는지 그 시간을 체크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으니, 쉼없이 관리하고 체크하고 기록할 것.

써놓고 보니 이미 숱한 지면이나 화면을 통해 유사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치만 그때는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느낌은 아니었다, 아마 '꿈과 희망', '도전' 따위의 화창한 단어들과 병존했기 때문일까.


20대에서 30대 초반은 운동선수로서의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선수들을 재우쳐

가며 강박적인 상태로 몰아가는 극한 상황을 다소나마 희석시킬 수 있는 그럴듯한 핑계, 보다 중립적인 단어로는

이유가 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역시 많이 들어본 논리다. 선진국에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성공을

위한 마지막 기회, 기실 그러한 '마지막' 기회 뒤에는 누구도 알려준 적 없는 또다른 기회들이 무수히 있었다.

사람을 조바심내게 만들며 눈을 옹이구멍만하게 만들어, 불과 몇 걸음 앞만 내다보도록 농간부리는 이야기.


그렇지만, 하고 생각했다. 최소한 양궁 국가대표팀을 꾸리는 감독, 코치는 선수보다 항상 먼저 시범을 보인단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공포감을 준다는 11미터 하이다이빙을 할 때에도, 다른 무슨 훈련을 할 때에도, 선수를 앞세우고

뒷통수 치는 게 아니라 함께, 또 먼저 앞장선다는 것. 그런 게 훨씬 인간적이다. 최소한, 최소한 자신들이 말하고

시키는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것들에 대해서, 스스로도 믿고 있음을 나타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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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창가에 그어지는 빗방울처럼, 움직이는 건 자취를 남긴다죠..죽을때까지 먹고 싸는 지렁이처럼.

난 내가 싸제끼는..나로부터 소외되고 나를 소외시키는 감정들을 계속 보고싶진 않은데. 말과 글..이란 건,
 
그로써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자 하는건 너무 지치는 일이네요. 소모적이야. 


여지껏 내가 살아온답시고 나도 모른새 쏟아내고 다닌 말들과, 잠시 그것에 콧물처럼 묻어있던 감정들도

그렇고..주섬주섬 수거한단 건 불가능할뿐더러 나..자신, 맷돌에 대고 갈아버리는 느낌이 든단 말이죠.

죽을 때까지 따끈함과 신선함을 간직한 채 감정을 실을 만한 그릇이 없네요. 뱉어놓고 나면 썩어버리는

느낌을 온전히 전해줄 방법이 없네요. 말의 온기와 감정의 신실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외마디 비명에

의미를 담고 죽어나자빠지는 게 그나마 가장 스스로에게 충실한 거겠죠.


말은, 글은..아무것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각자의 머릿속에 깊이 골지워진

손바닥만한 우물속에서 죽도록 외로워해야한단 걸 외면하는 데엔 너무도 성공적이었던 걸까요, 아님 '최면'에

걸린 채 몰입했던 걸까요..살아야 한다고 믿을만한 이유는 그거밖에 없는데, 아둥바둥 살아야 할 이유는

결국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고 싶어서인데. 알고보니 적어도 난, 아무것도 피워내지 못하고, 아무것도 품거나

전달하지 못하는 불임의 인간인지도. 몰입이 안되는 게 아니라, 몰입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굳이

몰입해 보겠다는 것부터가 무리였는지도.


왜. 노이즈 가득한 세상에서 자기조차 믿지 못하는 말들을 내뱉으며 스스로 냉소를 머금은 채 살아야하죠..

장마가 시작되고, 폭우가 쏟아져내려도 우린 몇천년 째 고작 우산 하나 가졌을 뿐인데. 왜. 왜..대체 뭘

믿고 그리도 당연하게 다들 살아가는 거죠. 난 질식해버릴거 같은데. 우산으로 하늘을 가려보겠다고 정수리나

겨우 가린 파리하고 위선적인 사람떼를 보면 토할 거 같은데. 나 역시 그 족속의 가죽과 핏물을 지닌

일부라기에 더더욱.

#1. 노출증에 대해 생각하다.

용도에 따라 크고 작고 휘어진 그릇들, 접시들이 산개해 있듯이..적당한 형태를 취한 말글을 통해 타인과 접속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는 애초 말글의 목적이 타인과의 소통에 있다는 전제를 편의적으로 밟고 전개되는 이야기이나, 똘갱이가 아닌 이상 지 혼자만의 이야기를 펼쳐 말글의 형태로 지속적으로 구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므로 말글의 목적이 노출에 있음을, 그리고 그에 상응한 피드백을 기대함에 있음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2. 45억년의 외로움.

우주의 한생명으로 지구가 탄생하고, 지구의 한생명으로 유기생명이 태어나고, 유기생명의 진화체인 인류가 탄생하고, 그 세포 내에선 끊임없는 유전자적 진화가 이루어져 엄지손가락이 되고, 맹장이 되고. 우주적인 단위에선 지구가 외롭고, 동물적인 단위에선 인간이 외로우며, 개개 인간의 단위에선 내가 외롭지만, 어쩜 내 둘째손가락이나 소장의 상피세포가 외로워할지도 모른다.(미지의 영역이다) 다른 말로, 천왕성이 외롭고, 금붕어가 외로우며, 당신이 외롭고, 당신의 뇌하수체 국물이나 새끼발톱이 외로워할지도 모른다.


#3. 이야기하고 글을 쓴다는 것-나와 타인간의 관계

더구나 이렇게 홈그라운드를 탄탄히 구축하고 그 안에 자신의 온갖 사념들을 응집해 넣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임상병리학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미 하루끼가 상실의 시대에서 갈파했듯, 사람들은 '내'가 하루에 계단을 몇개 밟고 몇걸음을 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또한 맹목적인 호의나 감정이 관심을 끌어내는데 서툴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타인의 관심을 끊임없이 유발해내고 타인들의 세계관에 자신이라는 존재를 지속적으로 개입시켜 나가기 위한 노력이 바로 자신을 언어로써 기술해넣는 skill인 것이다. 홈그라운드를 설정하여 타인을 자신의 거미줄로 불러들임으로써 얻는 이점에는, 자신의 연속적인 생각의 궤적을 타인으로 하여금 읽어내어 자신의 현재와 미래의 좌표를 가늠하게 하여 갈기갈기 찢긴 서로의 시공간적 공백을 보다 효과적으로 메워보고자 함에 있으며, 또한 타인과의 소경 길 더듬듯 하는 소통에 있어 모종의 어드밴티지를 얻고자 함이다. 담화의 소재와 주체를 최대한 자신 쪽으로 기울임으로써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장악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homo politicus로서의 본성이 발휘되는 것이라 하겠다.


#4. 글을 쓰는 걸 보고 이야기하는 걸 듣는다는 것-나 자신의 문제

그러나 타인에게 이해되는 순간에 본연의 자신은 왜곡되고 박제되어 버린, 예컨대 '04년2월2일오전3시54분의 홀로술기울이는아무개(남,24)'라는 괴상한 것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사실 그러한 수정과 왜곡, 축약의 과정을 거쳐야 모두에게 읽힐 수 있는 '인간'으로써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획득할 수 있기에 불가피한 과정이라 여겨진다. 다만 니체가 이야기했듯, 편의상 구체화한 삶의 구라들을 진실로 여겨 지혼자 상처받고 울지 않도록...언제나 타인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한 관계란 완전할 수 없음을 유념하고 매분매초마다 그 냉혹한 현실에 두손들어 항복하여야 할 것이다. 문제는,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불가피한 랙에 걸린다 할지라도 자신이 자신을 기술하고 이해함에 있어 개재되는 말글의 형해화이다. 내가 자신을 읽어내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자동기술적인 방식이나 브레인스토밍과 같은 카오스적인 방식을 활용한다 할지라도 역시나 자신을 위한 언어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언어화함으로써 사념처럼 떠돌던 몇가지의 전기적신호들이 형태를 갖추어 자신을 지속적으로 설득해내기도 하여, 결국 말글이 인간의 생각의 흐름을 구속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요는, 자신을 이해함에 있어 본질적으로 인간은 언어를 필요로 한다는 성찰이다.

역시, 인간은 모두에게 타인일 수 밖에 없으며 결국 자기 자신마저 자신에게 타인일 수 밖에 없는 이유,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나 방금 쓴 글에서 낯선 남자의 향기를 맡는 경우는 그나마 그 어쩔 수 없는 진실을 대면한 순간이다. 마치 화염이나 파도, 바람과 같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를 예측할 수 없도록 변화무상하게 지속하는 인간이 '씌여지고 말해지는' 바로 그 순간, 그 속류화한 인간형은 생기를 잃고 한 fiction의 등장인물과 다를 것이 없어진다.


#5. 다시 틈새에 끼어들어 무임승차를 꾀하다.

그렇다고 하여 말글을 통한 인간의 통상적인-큰 틀에서의-자기 규정을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한 말글은 역사를 이루어왔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특정양식으로 고착화하거나 인간들간의 일들을 엮고 풀어왔으며 타인과의 관계를 묶는 접착제가 되어왔던 것이다. 미니홈피 한장한장 역시 타인과 자신간의 사이에 놓인 우주와도 같은 그 허무를 메꾸기 위한 벽돌이자 시멘트가 되어 서로의 훼손을 감내한 소통의 기초가 되는 게 아닌가를 생각한다. 말글은, 그 빈약하고 거친 표현으로 인해 서로를 '일반화된 양식'으로 변형시키고-깎아내린단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보이지만-그로부터 다시 서로의 '고유한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가기 위한 양대 도구-몸과 언어-이다. 그렇지만, 모두 서로를 자신의 고유한 영역으로 들이기 꺼리고, 타인의 고유한 영역에 들어가길 꺼린다면. 그저 각자 언어화된 형태로 자신의 그릇내에 안전히 존재할 뿐이라면, 그렇게 그저 세워져 있을 뿐이라면 이건 그저 그림자 놀이일 뿐이다. 제각기의 달팽이껍질 속에서 그 언어가 다중에게 노출되고 의미가 명확치 않은 익명속으로 증발해버리지 않으려면, 최소한 '일반화된 모두'를 위한 중첩적인 아크로폴리스가 필요하단 이야기. 방어선으로써.

세상에는 규정할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리고 모종의 독단적인 결단만이 그러한 공백을 메울 만한 단어를 선택하게 만듭니다.


무딘 혀끝, 손가락끝에서 나온 단어들은 그렇지만,

세상 그 자체, 혹은 세상을 가득 채운 유토피아적 가능성을 올곧이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에 대한 저 자신의 주관적인 반응이거나 고작해야 편견에 가득찬 지엽적 파편에 불과하다는 사실.


규정할 수 없는 존재를 규정코자 하는 그러한 시지푸스적인 헛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여리고 허약해서 바람 한번에 훌떡 뒤집어져버리는 게 내 유일한 소통 수단이란 깨달음.


그러한 사실에 좌절하고 깨달음에 이악물며, 세상의 공백을 조금씩 메워나가려는 블로그입니다.

그러한 공백은 모 티비 프로그램처럼 네모나게 각진 까칠한 것이 아니라,
 
둥글둥글 동그라미라고 상상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재미없는 대한민국 사내들의 5가지 키워드

― 큰 가슴, 마라톤, 폭탄주, 안마시술소, 독수리 5형제 ―

김정운 명지대 교수·여가경영학 entebrust@naver.com

행복하고 재미있는 삶을 경험해보지 못한 대한민국 사내들에게서 웃지 못 할 공통점들이 발견된다. 가슴 큰 연예인에게 열광하고,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자학에 가까운 마라톤에 매달리며, 집단적 자폐증상을 드러내는 폭탄주 문화에 빠져 있다. 이들은 또 피부를 자극하는 서비스산업의 주 고객이며, 허황된 논쟁에 빠져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찾는 데는 젬병이다. 자신의 속 깊은 내면을 이해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스스로 행복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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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음식이 맛없는 식당’이다. 어떻게 이렇게 맛없는 음식을 돈 받고 팔 생각을 했을까, 도대체 주인은 이 음식을 먹어보기는 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식당들이 있다. 이런 식당에 다녀온 날이면 하루가 정말 우울하다. 때론 분노까지 치민다. 내 하루의 행복을 빼앗겼다는 생각 때문이다. 맛없는 식당은 죄악이다. 그러나 식당 주인은 그것을 모른다. 오히려 반대다. 자기 식당의 음식이 정말 맛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장사를 계속하는 것이다. 이런 식당은 그러다 결국 망하게 되어 있다.

음식이 맛없는 식당 주인의 딜레마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씨름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맛있는 게 어떤 것인지 알아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삶의 재미와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야 즐겁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행복하고 재미있는 삶의 구체적 조건에 대한 이해가 없는 한국인들이 만들어내는 상품이 경쟁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단순히 상품생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일궈나가야 하는 구체적 삶의 조건들도 행복과 재미라고 하는 가치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좋은 것이 뭔지 도대체 아는 바가 없는데 어찌 좋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1. 큰 가슴 : 김 혜수 를 좋아하시나요?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배우 김혜수를 싫어했다. 왠지 불필요하게 도도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타짜’를 본 이후, 나는 김혜수에 대한 내 편견을 단번에 다 버렸다. 이제 나는 그녀가 무슨 짓을 해도 다 용서할 수 있다. 살펴보니, 배 나오고 탈모로 고민하는 내 주위의 중년 남자들은 대부분 김혜수를 좋아한다. 그들도 그 영화를 본 후부터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다 그녀의 엄청난 가슴 때문이다. 김혜수는 ‘타짜’에서 단 몇 초간 자신의 가슴을 보여줬을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장면에서 철없는 중년들은 한 결 같이 정신이 혼미해진다. 김혜수의 과감한 연기 이후 가슴 큰 여배우들은 아주 노골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드러낸다. 영화제 시상식이나 시사회가 있는 날의 뉴스에는 어김없이 그녀들의 가슴을 볼 수 있다. 이들이 가슴을 드러내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가슴을 훔쳐보는 철없는 이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왜 남자들은 큰 가슴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미국식 포르노그래피에 길들었기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단순한 해석이다. 미국식 포르노그래피는 큰 가슴 외에도 정말 많은 것을 보여준다. 채찍, 가죽장화…. 그러나 이 땅의 사내들은 그중에서 유독 큰 가슴에만 집착한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심층심리학적 욕구가 숨겨져 있다. 사는 게 재미없는 한국 남자들의 첫 번째 현상, 즉 ‘큰 가슴으로의 퇴행’이다. 그것은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살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게다가 세상은 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무기력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상황이 온통 뒤바뀌어 황당했던 경험이 반복되면 오히려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의사소통의 문제다. 진정한 의사소통 행위는 정서공유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서로 정서를 공유하는 과정이 박탈된 논리적 의사소통 행위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로 인한 불안 때문에 한국 남자들은 큰 가슴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 큰 가슴에 머리를 깊이 처박고 울고 싶은 것이다.

인간이 가장 완벽한 소통을 경험하는 곳은 어머니의 가슴에서다. 어머니의 젖을 빨 때, 아기는 자신을 가장 완벽하게 이해해주는 또 다른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자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끼는 또 다른 존재가 세상에 있다는 사실로부터 인간의 의사소통행위는 시작된다. 이를 철학적인 개념으로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라 한다.

생각해보라.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가슴’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이해하는 ‘가슴’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똑같다고 도대체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서로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근거 없어 보이는 ‘상호주관성’의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바로 어머니의 가슴에서부터다. 어머니와 피부를 맞대고 정서를 교환하는 행위로부터 인간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세상과 내가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신념은 어머니의 가슴에서 시작된다. 소통이 어려워질수록 인간은 불안해진다. 이 불안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지극히 원초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어머니의 가슴에서 완벽했던 정서의 소통 경험에 대한 기억이 큰 가슴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기가 자라나면, 어머니 이외의 사람들과 또 다른 정서공유의 소통 경험을 하게 된다. 놀이다. “놀이”는 어머니의 가슴에서 경험했던 의사소통의 원형적 경험이 확대되는 과정이다. 이를 사회화라고 한다. 놀이에 참여하는 이들은 동일한 성질의 정서적 경험을 하게 된다. 재미다. 놀이에서 경험되는 ‘재미’라고 하는 심리적 경험은 어머니의 가슴에서 경험했던 상호주관성이 확대된 형태다. 결국 나와 같은 철없는 중년들이 김혜수의 가슴에 열광하는 것은 소통부재의 불안과 재미없는 삶으로부터 도피하려는 퇴행적 현상이다.

2. 마라톤 : 왜 죽어라 뛰는가

소통부재의 불안에 시달리며 재미라고는 전혀 없는 삶에 지친 한국의 중년들에게 최근 나타난 이상 현상이 있다. 마라톤이다. 몇 년 전부터 마라톤 대회가 열리면 사람들로 미어진다. 대부분 40, 50대 중년들이다. 대개 건강을 위해 뛴다고 한다. 그러나 왜 하필 마라톤인가. 군대에서 10km 구보를 해본 남자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42.195km를 안 쉬고 달린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그러나 이 땅의 사내들은 죽어라 하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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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성들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달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은 과연 싸워서 이
겨야만 하는 존재일까.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면 절대 적자 나는 법이 없다고 한다. 전국에서 고통을 사서 겪겠다는 사내들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이들의 마라톤 완주 횟수는 1년에 10~20회에 육박한다. 그러나 이봉주 선수와 같은 전문 마라토너의 1년간 완주 횟수는 3~5회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 번의 마라톤 완주는 엄청난 체력 소진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땅의 중년들은 죽어라 하고 뛴다.

잘못하면 생명까지 위협받는 이 고단한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건강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건강을 위해 달리는 이도 많다. 내가 궁금한 것은 ‘느닷없는’ 마라톤 열풍이다.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셀 수 없이 많은데, 왜 하필 그 재미없고 고통스러운 마라톤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세상과 더는 소통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존재확인 방식은 자학이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와 소통을 통해선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고통을 통해 느끼고 싶은 것이다.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한 이들의 인터뷰에서 한결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뛰었다는 것이다. 아, 그러나 나 자신은 싸워서 이겨야 하는 존재가 절대 아니다.

자신과 소통하는 행위를 철학에서는 자기반성(self-reflection)이라 한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듯 자신과 마주 보며 스스로 이야기하는 행위가 자기반성인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사내들은 자신과 마주하며 이야기하기보다는 자신과 싸워 이기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내 진정한 존재가 회복될 수는 없다. 소통행위의 부재로 야기된 불안은 소통의 회복으로만 해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달린다. 이것이 사는 게 도무지 재미없는 이 땅의 사내들에게 나타나는 두 번째 현상, 즉 ‘자학적 존재 확인’이다.

3. 폭탄주 : 왜 죽어라 마시는 가

세 번째 현상은 ‘폭탄주’다. 이건 정말 심각하다. 마라톤은 그 자체로 해결책은 될 수 없으나, 그래도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진지한 노력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마라톤에 비해 폭탄주는 아주 악질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해결책이 나온다. 하지만 폭탄주는 문제로부터 도피하려는 아주 심각한 퇴행적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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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랜 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가장 신기(?)했던 것은 폭탄주였다. 저녁마다 모여 폭탄주를 돌리는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 집에서 친구 아버지가 아끼는 양주를 몰래 마시고 양주병에 보리차를 채워 넣던 기억은, 나름 놀아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아까운 양주를 사람들은 밤마다 정말 보리차 마시듯 마셔버린다. 무엇보다도 그 아까운 술을 그런 식으로 마셔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왜 폭탄주를 마시느냐고 물었다. 빨리 취한다고 했다. 나는 또 물었다. 왜 빨리 취하려고 하느냐. 친구들은 맨 정신으로 서로 멀뚱멀뚱 바라보며 이야기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빨리 취하려고 폭탄주를 돌린다고 했다. 폭탄주가 몇 잔 돌아가고 눈이 흐릿해지면 그때서야 비로소 맘을 터놓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이런! 취한 후에 이야기하는 것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주정 부린다’고 한다.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증상을 정신병리학에서는 자폐증이라고 한다. 폭탄주 문화는 집단 자폐증상이다. 자폐증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아동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자폐현상은 나타난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음에도 그 사람의 구체적 신상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경우가 가끔 있다. 절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 내면의 세계가 타인과 공유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런 경우도 약한 정도의 자폐증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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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 문화는 일종의 “집단 자폐 증세”라는 분석이 있다

자폐증의 원인은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그러나 타인과 자신의 생각과 정서를 공유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증상을 폭넓게 자폐증이라고 정의한다. 심각한 자폐환자든, 정상적 사회생활이 가능한 자폐환자든 모든 종류의 자폐환자들이 공유하는 증상이 있다. 상대의 눈을 절대 마주치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이 드러날까 두려운 까닭이다. 마찬가지다. 폭탄주를 마시고 눈앞이 흐릿해져야만 타인과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 땅의 사내들 또한 심각한 자폐증을 앓고 있다.

술을 마시지 말란 이야기가 아니다. 제대로 마시란 이야기다. 술이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세계관을 공유하거나, 지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정서를 공유하려고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정서를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두려워 빨리 취하려고 마시는 술자리가 어찌 정상이라 할 수 있을까.

더 심각한 것은 일반 샐러리맨들만 폭탄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교수들도 모이면 폭탄주를 마신다. 관공서 공무원들도 마신다. 정치인들도 밤마다 폭탄주다. 소통 부재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 국민이 밤마다 폭탄주라는 집단 자폐증에 걸려 휘청거린다.

4. 안마시술소 : 만질수록 커진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변화 중에 눈에 띄는 현상이 있다. 스포츠마사지, 각종 스파 시설로부터 안마시술소, 퇴폐이발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피부를 자극하는 서비스산업이 엄청난 호황이다. 동네마다 다 있는 운동장만한 찜질방도 크게는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도대체 왜 갑자기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나는 이를 ‘피부자극 결핍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의사소통 장애로 야기되어 나타나는 네 번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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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각 신체부위를 담당하는 뇌 부위의 크기에 따라 그린
인간의 모습인데, 펜 필드의 호문쿨루스(homunculus)라 불린다.

만지는 행위는 상호작용의 가장 기본적 형태다. 우리가 남의 몸을 손으로 만질 때 우리의 손은 상대방의 몸에 의해 ‘만져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 껴안는다. 만지고, 또 만져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무도 나를 만져주지 않는다.

금실 좋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살다가 할아버지가 먼저 죽으면 할머니는 평균 4년 정도 더 산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니가 먼저 죽으면 할아버지는 6개월 이내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스킨십’의 차이 때문이라고 일본 심리학자 야마구치 하지메는 주장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없어도 스킨십의 대상이 있다. 손자들을 만지고, 며느리를 만진다. 그뿐만 아니라 바느질, 요리 등을 통해 끊임없이 피부를 자극한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할머니가 사라지면 도무지 만질 대상이 없다. 결국 깊은 소외감에 시달리다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모든 포유류는 피부접촉을 통한 정서적 안정을 본능적으로 추구하게 돼 있다. 스킨십이 박탈된 상태에서 자란 원숭이는 면역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불안 증세를 보이다가 일찍 죽는다. 새끼 쥐를 둘로 나누어 한 집단에는 물을 묻힌 붓으로 피부를 계속 자극하고 다른 집단에겐 그저 먹을 것만 줬다. 물 묻힌 붓은 어미 쥐가 혀로 핥아주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보였다. 먹을 것만 제공받은 쥐는 불과 몇 주를 못 버티고 죽은 반면, 붓으로 계속 자극해준 쥐는 건강하게 살아남았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간호사들이 지속적으로 터치를 해주는 중환자실 환자의 생존율이 그렇지 않은 중환자실 환자의 생존율보다 훨씬 높았다고 한다.

뇌 생리학자인 와일드 펜 필드는 뇌가 담당하는 신체부위의 차이를 그림으로 그린 적이 있다(오른쪽 그림 참조). 신체부위를 담당하는 뇌의 부위는 각각 다르고, 그것의 크기 또한 다르다. 이에 따라 각각의 신체부위를 맡고 있는 뇌의 비율을 역으로 계산해 신체의 크기를 묘사한 것이다. 그림을 살펴보면 우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자주 만져주길 원하는 성기는 의외로 작다. 우리의 뇌는 그 부분에 그리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자꾸 그 부위만 만져달라고 한다. 헛발질이다 (^^).

뇌가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부위는 손과 입술이다.래서 사랑하는 이를 끊임없이 "만지고" 싶은 것이다. 키스도 그래서 하는 것이다. 뇌를 보다 많이 사용해 느끼고 싶은 까닭이다. 더 많이 느끼고 싶은 젊은 연인들은 혀도 아주 자주, 다양하게(!) 사용한다. 그림을 보면 왜 혀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입술만큼이나 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지고 만져지는 스킨십을 통한 의사소통 과정이 박탈당하면서 에로티시즘의 왜곡이 나타났다고 영국의 사회학자 기든스는 주장한다.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상호관계성이 성기에만 집중되어 나타나는 왜곡된 남근중심주의적 포르노물의 범람이 그 예다. 한국의 안마시술소, 퇴폐이발소는 이러한 이론적 맥락에서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단순한 변태 성매매가 아니다. 건강한 일상의 재미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러운 정서적 교류가 박탈된 한국 남자들의 의사소통장애가 범람하는 안마시술소, 퇴폐이발소의 진짜 원인인 것이다. 이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의 각종 변태영업은 성매매금지법 따위로는 절대 해결할 수도, 해결될 수도 없는 일이다.

사회적으로 건전하다고 여겨지는 스포츠마사지, 스파, 안마와 같은 서비스 시설 또한 이러한 근원적인 소통부재의 불안을 치유하기 위해 나타난 자본주의적 해결책이다. 21세기에 나타난 대부분의 웰빙 산업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정말 블루오션이 아닐 수 없다. 만지고 만져질수록 자신과 상대방의 존재는 커진다. 상호작용적 존재감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해결책은 엉뚱한 특수 부위만 자꾸 커지게 한다. 어쨌든 만질수록 커진다. 어느 부위든.

5. 독수리 오형제 :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한국 남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술 한 잔 마시면 지구를 지킨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국내의 모든 문제는 아주 쉽게 해결될 것처럼 목에 핏대를 세운다. 주가를 비롯한 경제 문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그 어느 전문가보다 확실한 진단과 대안을 내놓는다. 어디 국내 문제뿐인가. 독도 문제나 이라크 파병과 같은 외교 문제, 심지어는 미국 대통령선거나 지구온난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지구방위대가 되어 온갖 우주의 침략자와 싸우는 데 그렇게 용감할 수가 없다.

일상에서 끊임없이 확인돼야 할 재미와 놀이를 통한 정서공유, 의사소통을 통한 존재확인의 과정이 생략된 이들에게는 오직 지구를 지키는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이를 나는 다섯 번째 현상, 즉 ‘독수리5형제 증후군’이라 정의한다.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5형제. 그런데 문제는 이 용감한 지구방위대가 정작 “자신의 행복을 챙기라”고 하면 하염없이 비겁해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일주일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 주말에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갑자기 맛있는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 때 우아한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가 스테이크와 레드와인을 시켜 혼자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혼자서! 그런데 어렵다. 허름한 순대국밥 집에 혼자 들어가 배를 채우는 일은 할 수 있어도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혼자 즐기는 일은 대부분 힘들어한다. 왜 그럴까. 남이 나를 사회부적응자로 볼까 두려운 까닭이다.

음악회는 혼자 갈 수 있는가. 그것 역시 쉽지 않다. 정말 좋은 음악은 혼자 들어야 한다. 혼자 들어야만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혼자 음악회에 앉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컴컴한 영화관에 혼자 앉아 있는 것조차 쑥스러운 사람이 대부분이다. 왜일까. 이 또한 남 눈이 두려운 까닭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자. 내가 혼자 와서 음악 듣는 것, 혼자 스테이크 먹는 것에 대해 그 어떤 이도 관심 갖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존재하지도 않는 눈길이 두려워 혼자 맛있는 스테이크를 즐기는 일, 음악회에 가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리고 술집에 앉아 혼신을 다해 지구를 지킨다. 이게 정상인가. 절대 아니다. 그래서 독수리5형제 ‘증후군’인 것이다.

사는 게 재미없는 이들은 세상이 뒤집히길 원한다. 2002년 월드컵처럼 온 국민이 나와 빨간 옷 입고 세상이 뒤집히는 축제만 재미있다고 느낀다. 엄청난 재미에 대한 환상이다. 그러나 세상이 자주 뒤집히는가. 월드컵 4강 신화만 해도 그렇다. 우리 생애에 월드컵 4강을 또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은가. 솔직해지자. 월드컵 4강은 우리나라에서 경기했으니 가능했던 일이다. 아닌가? 외국에서 경기를 치른다면 16강에 들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런 엄청난 재미만 진짜 재미인 것처럼 착각한다. 세상이 뒤집혀야만 재미있는데 세상이 그리 쉽게 뒤집히질 않으니, 우리의 독수리5형제는 폭탄주를 마시고 자기 위장을 뒤집는다. 세상이 뒤집히질 않으니 자기 스스로 뒤집히는 것이다.

우리의 독수리5형제는 뉴스도 열심히 본다. 어쩌다 집에 일찍 들어오면 8시 뉴스부터 보기 시작한다. 8시 뉴스가 끝나면 바로 9시 뉴스. 9시 뉴스가 끝나면 잠시 기다렸다가 11시 뉴스. 그 사이를 견디기 어려운 이들은 아내와 아이들의 엄청난 저항을 무릅쓰고 24시간 뉴스채널인 YTN으로 잠시 채널을 돌린다. 11시 뉴스가 끝나면 다시 마감 뉴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들 열심히 뉴스를 보는 것일까. 세상이 뒤집히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저 밋밋한 뉴스만 나오면 재미없다. 갑자기 세상이 뒤집히는 엄청난 뉴스가 나오길 끊임없이 기다리며 리모컨을 만지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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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여담이지만 아직까지 전혀 밝혀지지 않은 정말 중요한 비밀이 있다. 독수리5형제가 정작 ‘형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가. 다섯 명 중 한 명이 여자다. 그러니까 형제가 아니라 남매다. 더 중요한 비밀이 있다. 이 비밀은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에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다섯 명 중 독수리는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정말 엄청난 비밀이다. 맨 앞의 한 녀석만 독수리이고, 나머지는 콘도르, 백조, 제비, 부엉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독수리5형제가 전부 독수리인 줄 알고 있다. 이 녀석들은 사실 ‘조류5남매’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독수리5형제라고 사기치고 다닌다. 이 땅의 사내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독수리5형제인 줄 알고 지구를 지키겠다며 큰소리를 치지만, 술 깨면 조류5남매에 불과한 것을 깨닫게 된다. 슬픈 이야기다.

6. Key Word : "재미"는 사회적 구성요소

남성에게서 발견되는 이런 현상들을 분석하기 위한 틀 (Framework)이 ‘재미’다. 그런데 아는가. 재미라는 단어가 역사적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오늘날 우리가 매일같이 반복하는 ‘재미있니?’라고 하는 문장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일상적 용어가 됐다. 물론 재미와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 이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재미’라고 하는 단어 자체는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나타난 것이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미국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fun’이라고 하는 단어가 일상적인 용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활자화한 문헌의 역사적 기준이 되는 성서를 찾아보면 간단히 증명된다. 현재 사용하는 성경 중 가장 오래된 영어번역본인 King James Version(1611)에 ‘fun’ 이란 단어는 아예 없다. ‘fun’은 1978년 출간된 New International Version에 단 한 번 나온다. 그것도 조롱한다는 의미로 나온다. Some, however, made fun of them and said, “They have had too much wine.”(Acts 2:13)

오늘날 브리태니커 사전을 능가하는 만능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fun’을 검색해보면 ‘recreation’으로 넘어가버린다. 아직까지 fun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그토록 많이 사용되며,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로 여겨지는 미국에서조차 ‘fun’에 대한 백과사전적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독일어의 ‘spass’나 일본어의 ‘다노시미(樂しみ)’도 같은 운명이다. 아직 편집 중이거나 설명이 없다고 나온다. 각 언어의 ‘재미’에 해당하는 다른 표현들은 물론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삶의 가장 중요한 차원으로 생각하는 ‘재미’라고 하는 단어는 역사적으로 생성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를 문화심리학에서는 ‘정서의 사회적 구성’이라 설명한다.

재미와 연관된 심리적 현상은 인간의식이 생겨난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 현상을 정의하는 (언어적) 개념이 문화적으로 구성될 때, 이 현상은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다. 마치 ‘정(情)’이라는 정서적 차원이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실제 우리가 이야기하는 ‘정’과 비슷한 정서는 어느 문화권이나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개념화하여 ‘정’이라고 "이야기"하는 우리의 경우는 막연한 심리적 현상으로 존재하는 다른 문화의 경우와 질적으로 다르다. ‘그 놈의 정 때문에…’라며 자신의 현실을 해석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한국 문화는 다른 문화에서 좀처럼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도 마찬가지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제까지 막연히 존재해온 ‘재미’와 관련된 심리적 차원을 각 문화권은 다양한 “용어”로 정의하기 시작한다. 재미를 사회적으로 구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미의 사회적 구성을 가능케 한 조건은 주체의 성립이다. 이제까지 신분, 계급, 또는 친족이라는 봉건적 아이덴티티로부터 자유로운 ‘독립된 개인’이라는 주체가 근대에 들어서며 개념적으로 성립된 것이다. 이 개인은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구조적 억압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주체적 행위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자기 나름의 의미체계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이전에 ‘역사서술’이라고 하는 집단적 의미부여의 행위가 개인의 차원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세계 심리학계의 패러다임을 이끌었던 제롬 브루너는 이 현상을 ‘내러티브 전환(narrative turn)’이라고 부른다. ‘내러티브’란 자기서술의 행위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과 느낌에 대해 스스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야기하기, 즉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라는 현상은 삶의 목적을 정당화하는 의미부여의 과정이다. 왜 내가 이런 행동을 하고, 이런 느낌을 가지는지에 대해 조직이나 집단이 대신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다 하니까 나도 폭탄주나 골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의 의식세계를 사회가 지배하던 단계를 벗어나 진실로 개인의 자아 독립 실현). 이 엄청난 내러티브 전환은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우리는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즉 스토리텔링의 내용은 대부분 자신의 행위를 가능케 한 동기, 즉 모티베이션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예를 들어 “사랑”을 생물학적인 종족번식이라는 동물적 충동이 아니라,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 사랑스러운 목소리 등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내러티브 구성과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가장 잘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의미부여가 명확한 개념으로 ‘재미’라고 하는 차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개인의 “자아”와 가치체계가 국가 사회 집단으로부터 진실로 독립할 때 비로소 자신의 “재미”를 정립하게 된다. 그게 안 되면 그저 남들이 하는 걸 “집단적”으로 따라가는 신세 ; 군 시절 흡연, 골프, 마라톤, 폭탄주...)

7. 사족 : 나 훈아 괴담의 문화심리학적 구조

가수 나훈아가 자신에 얽힌 괴담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벗어야 믿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가 한번 벗길 은근히 바랐다. 정말 한번 보고 내 것과 비교해보고 싶었다. 그는 전설로만 존재하는 정력의 화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탁자 위에 서서 허리띠만 붙잡고 있다 도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가 벗겠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허연 수염을 기르고, 머리꽁지는 뒤로 묶고 야릇한 미소와 표정을 순간순간 묘하게 바꾸는 나훈아의 표정 뒤로는 모든 수컷이 충분히 동경할 만한 우상의 아우라 (Aura)가 있었다. “벗어야 믿겠습니까?”하는 나훈아의 외침은 어릴 때부터 들어온 나훈아의 남성성에 관한 스토리텔링의 완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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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괴담은 이 땅의 중년남녀들이 꿈꾸는 스토리텔링의 구조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우선 그 스토리에는 김혜수, 김선아와 같은 글래머 스타들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모든 남자가 한번은 안겨보고픈 큰 가슴의 미녀들이다. 사실 나훈아 괴담에서 김혜수, 김선아라는 구체적 개인은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큰 가슴의 미녀 탤런트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소통부재의 불안 때문에 나훈아 괴담도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환갑이 가까운 나이의 나훈아가 이 미녀 글래머들과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는 나이를 먹을수록 수컷의 향기를 상실해가는 중년들의 묘한 질투와 대리만족의 이중적 구조를 반영한다. 여기에 철없는 중년들은 자신들의 성인 만화적 로망을 덧붙인다. 야쿠자의 등장과 복수다. 이는 어릴 때 숨어 읽던 방학기류의 아주 익숙한 성인 만화적 클리셰(cliche, 진부한 표현)다. 그리고 그 결말은 남성성의 절단이다. 아주 완벽한 결론이다.

사실 대중스타는 자신의 스토리텔링에 익숙지 않은 대중을 위해 존재한다.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폭력으로 입건된 최 민수는 아주 훌륭한 대중스타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안성기는 대중스타로서의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그에 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착실하고 성실한 배우일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안성기보다 최민수가 훨씬 더 좋다.

나훈아의 경우,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고 섣부른 신비화 전략을 택한 것이 화근이었다. 대중스타, 특히 나훈아와 같은 부류의 대중스타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제공해야만 한다. 그것이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런데 나훈아는 그 책무를 거부했다. 스타가 스스로 이야기를 제공하지 않으면, 대중은 자발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특히 나훈아 괴담의 경우, 중년들이 앞 다투어 이 스토리구성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특기할 만하다. 청소년들에게서나 나타나던 팬픽 (팬들이 쓰는 스타에 관한 소설 : Fan Fiction)이 중년들에게서도 나타난 것이다.

결국 나훈아 괴담은 스토리텔링에 굶주린 이들이 벌인 해프닝이었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 행복과 재미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 땅의 중년들이 어설프게 만들어낸 슬픈 이야기였던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부재가 개인의 삶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스토리텔링 결핍의 문화심리학적 차원은 한국 기업문화에서도 다시 발견된다. 지식경영과 창조경영으로 이어지는 진부한 이야기의 반복이 바로 그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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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지지율이 30% 이상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대체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올림픽에서 자신의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돌아오지도 못하게 막고 퍼레이드를 기획한다고 비판도 무성하지만, 어쨌든 선수들의 금메달을

자기 목에 건 양 지지율이 올라가는 게 사실이다.

YTN 사장을 낙하산 태웠고, KBS 사장을 순식간에 결정짓고자 하며, 잘 나가는 인천공항을 뜬금없이 민영화한다

하고, 든든한 '백'으로 한나라당 쓰레기들을 치켜세우는 이명박. 진정한 '홧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사람.

그리고 차츰...그는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 적나라하고 극적인 결과물이라는 일각의 시니컬한 지적이 맘에

와닿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심인성 기자 =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6개월 동안 수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초기 `일하는 정부'를 표방하면서 사회 전반의 변화와 쇄신을 주문했으나 5월 들어 `촛불정국'이 도래한 이후에는 목소리를 낮추고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는데 주력했다. 이 대통령은 건국 60주년인 올해 8.15를 계기로 새출발을 다짐했다.

다음은 이 대통령 취임 후 주요 발언.

▲"섬김의 봉사정신으로 국정을 살피겠다"(2월25일 취임사에서 `섬기는 리더십'을 펼치겠다며)

▲"공직자는 서번트(머슴)다"(3월10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공무원들에게 머슴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돌아보라고 비판하면서)

▲"우리 의식 속에 박힌 전봇대를 뽑는 것이 중요하다"(3월19일 상공인 간담회에서 의식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청와대에 실세는 없다"(4월2일 비서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일에 매진할 것을 주문하면서)

▲"어느 당에도 내 경쟁자는 없다"(4월22일 한나라당 국회의원 당선자 초청만찬에서 친박복당 문제와 관련, 당내 화합을 촉구하면서)

▲"축사에 비상구 표지 붙인다고 소가 그걸 보고 나가나"(4월27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재정전략회의에서 규제혁파와 현장중심 행정을 주문하면서)

▲"정치가 뭉치면 잘되는데 뭉치지가 않는다"(5월22일 건국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첫 회의에서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 처리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을 지적하면서)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5월22일 쇠고기 사태와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인터넷의 힘은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약 아닌 독이 될 수 있다"(6월17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장관회의 개회식 환영사에서 인터넷의 역기능을 지적하면서)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6월19일 특별기자회견에서 `쇠고기 파동' 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

▲"촛불로 뒤덮였던 거리에 희망의 빛이 넘치게 하겠다"(6월19일 특별기자회견에서 `쇠고기 파동' 극복의지와 함께 대국민 협조를 당부하면서)

▲"쇠고기 논란 끝내고 경제살리기 국면으로 가자"(6월26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 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더 이상의 소모적 논란을 접자고 촉구하면서)

▲"개혁을 하는데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6월26일 일본의 개혁 전도사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게이오대 교수를 접견한 자리에서 개혁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3차 오일쇼크라 할 만한 상황"(7월2일 청와대 수석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고유가 위기를 거론하면서)

▲"경제살리기 횃불을 높이 들 때"(7월3일 제1회 지역투자박람회 개막식 축사를 통해 국가적 차원의 경제살리기 노력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에 가도 괜찮으냐'는 전화 많이받는다"(7월3일 제1회 지역투자박람회 개막식에서 촛불시위에 대한 외국 경제인들의 우려를 전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각오로 일어서고자 한다"(7월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 축사에서 새출발의 의지를 피력하면서)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7월12일 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목소리는 낮추되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겠다"(7월24일 국가경쟁력강화위 5차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개혁과제의 차질없는 추진을 역설하면서)

▲"공무원의 힘이 곧 나라의 힘"(7월15일 공무원에게 보낸 서면 메시지를 통해 공무원의 사기진작 필요성을 언급하며)

▲"우리끼리 자책하면 일본이 웃지 않겠나"(7월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 투표장에서 독도사태 관련 책임자 문책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대통령전용병원 왜 필요하나"(8월4일 건국60주년 기념사업위 회의에서 소격동 대통령 전용병원의 국민반환 입장을 밝히면서)

▲"여기가 독도입니다"(8월6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청와대내 정상회담 장소로 이동하던중 복도에 붙은 대한민국 지도 가운데 독도를 가리키며)

▲"베이징은 `상전'(商戰)과 같았다"(8월12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의 첫 당청회동에서 중국 방문과정에서 느낀 각국의 자원외교 경쟁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으면서)

▲"남북관계도 당당히 정상화해야"(8월14일 취임후 계룡대를 첫 순시한 자리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기본원칙을 재천명하면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비전의 축으로 제시한다"(8월15일 8.15 경축사에서 녹색성장을 신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국가발전 패러다임으로 규정하면서)

▲"이렇게 든든한 백이 있는데 내가 뭘 걱정하겠느냐"(8월20일 한나라당 신임 당직자 만찬에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대하면서)

(끝)

난잡하다. 1. 행동이 막되고 문란하다.
              2.사물의 배치나 사람의 차림새 따위가 어수선하고 너저분하다.

난삽하다. 글이나 말이 매끄럽지 못하면서 어렵고 까다롭다.


뭔가 일상이 난잡하고, 또 난삽스러워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보통 책을 한권씩 읽어나가는 편인데, 다빈치 코드와 로드를 비롯한 네다섯 권의 책들을 사무실에 한권, 가방에

한권, 반디앤루니스에 한권, 내 방에 두권 이렇게 벌려놓고 닥치는대로 읽고 있다. 그다지 내게 잘 맞는 독서법은

아니라는 재확인..앉은 자리에서 쫙 읽고 해치워야 제대로 몰입이 되지.


어제 점심엔 호주대사관의 Evanor, Stephanie랑 두시간동안 54층 마르코폴로서 행사 뒤풀이를 겸해 와인한잔에

코스요리를 먹었고, WTC Seoul의 공식실무자로서 WTC LA에서 온 손님과 한시간동안 인터뷰를 했다.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겠구나, 라는 부채감..그리고 대체 언제..라는 꿉꿉함.


아침에 시사인을 보면서 출근하다가, 종종 글을 올리는 김현진이란 에세이스트가 기륭전자 노동자 두분의 단식

농성에 동조단식을 하며 쓴 글을 보았다.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청와대로 쳐들어가 제대로 된 사과가 뭔지

보여주겠다고 사과를 던지려고 했다던, 사과한테 사과하라며 강짜를 부리던 그녀는 대체로 깊이보단

재기발랄함에 기댄 감성적인 글을 쓰는 편이다. 별다른 이슈가 없거나, 스스로 이슈를 포착하지 못했을 때에는

다소 시니컬한, 큰 임팩트 없는 그저그런 글들이 이어지던 터였다. 그런데 최근 그녀가 쓰는 글들의 주제와

내용이 점차 '진화'하더니, 급기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표적 싸움터로 통하는 그곳에서 울고 굶고..

그러고 있다고 한다. 왠지 '건국절' 행사에 동원되어 버린 걸 포함해 인천공항 민영화 주체로 가시화되는 맥퀘리

그룹회장을 만찬 헤드테이블로 챙겨넣고 있는 사람과 비교된다. 신경쓰기 싫고 화내기 싫어서 그냥 등돌리고

서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


문득 다이어리를 보면, 일주일이, 한달이, 텅빈 채 넘어가고 있다. 하다못해 날짜조차 안 적힌 채 하얗게 비어있는

그 시간들이 참..내가 뭐하는 건가 싶은 감상에 지배당한 날이다.

[술잔#1] 조각만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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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한쪽 끝에 서면, 다른쪽 끝이 보일만큼 자그마한 섬에 가보고 싶다.
내가 가보았던 섬들은 모두 너무도 크고, 사람이 너무 많았다. 김한길이 이야기했던가, 북극곰은 다른 곰을 만나면 사랑에 빠지고야 만다고. 평생 한번 만날지조차 기약없는 만남이므로. 그렇게, 조각만한 땅뙈기에서, 술잔과 오른손의 인연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술잔#2] 그녀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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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마주섬에서 시작된다. 설레이며 눈을 마주치고, 술잔과 오른손은 서로가 품고 있는 표정과 이야기를 알고 싶어하고. 여전히 스스로의 감정과 상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채 두손 떨구고 어설픈 사랑.



[술잔#3] 목소리 좀 들려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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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동하면 몸이 움직인다. 몸이 움직이면 마음이 간다.
입밖으로 소리내어 사랑을 말하는 순간 손가락은 술잔에 매료되고 말았다. 당신도 날 보고 있었나요..우선, 술잔 당신의 매끄럽고 후끈한 목소리를 좀 들려줄래요. 우리 목소리부터 익혀나가는 건 어떨지. 손길이 닿으면 갸냘프지만 분명한 술잔의 응답. 말꼬리를 땋기 시작했다.



[술잔#4] 살짝 접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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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술잔은 위험하지 않다고, 냄새와 향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손을 뻗어 만지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꿈이었던양 떠나버릴 것 같아..오른손은 술잔의 부피와 질감을 확인하기 시작하다. 이 세상에 있었구나, 조각만한 세상에서 병아리오줌만한 인연을 타고. 고마워서.



[술잔#5] 외전. 기어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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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은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오른 유리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니미럴 절라 높네.



[술잔#6] 니 이야기를 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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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되고, 나도 니가 될 수 있었던 소중한 기억들..하루가 하루를 지랄같이 소모시켜도 기꺼이 온몸으로 귀가 되어주는 술잔이 있었기에. 서로의 사용설명서를 꼼꼼이 읽어내리며, 조금씩 마카로니 치즈의 맛을 음미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몇번씩의 구역질과 거부감을 인내한 후에야.



[술잔#7] 어깨 빌려 사람人의 뜻을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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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휩쓸려 가라앉지 않으려면 댄스댄스댄스. 끊임없이 똑딱이며 빛바래가는 세상 속에서 오른손의 이정표는 술잔. 생기와 의욕을 말려버린채 기어코 삶의 뒷켠으로 내리눌러버리겠다는 시간을 비웃으며 어깨도 걸어보고. 가벼운 스텝으로 하루하루 생을 더해갈 수 있다면. 하루치 삶의 의미를 아침마다 떠올릴 수 있다면.



[술잔#8] 손잡고 가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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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다 힘들면 쉬었다 가기도 하고, 손잡고 가기도 하고.
지겨워서, 힘들어서, 살다가 지쳐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손내밀어 이끌어주기도 하는. 어차피 시작해 버린 인생, 최종 목표는 트루 러브라 외치는 술잔과 오른손. 그 치기어린 말과 행동은 한때..아름답다.



[술잔#9] 기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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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기. 허물어지듯 무너지더라도, 두팔가득 받아줄 술잔이 있다면 나중나중에 다시 일으켜세워볼 요량도 생기겠지. 세상이 무거워졌다고 느낄 때 대신 하늘을 빤히 노려봐주는 노랑색눈깔의 술잔.



[술잔#10] 좌우명은 올인(al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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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지 못하겠음 뛰어든다. 이리저리 재봐야 답도 안보이고 머리만 아플터. 맷돌에 장렬히 뛰어든 콩처럼 곤죽이 된채 설설 밀려나올지라도, 올인이다. 눈에 보이고 말이 섞이고 심장이 따라간다면. 오른손과 술잔의 이빨과 이빨이 부딪쳐 불똥이 튄다해도, 좌우명은 올인.



[술잔#11] 완전한 밀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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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래길에 도착. 정점에 도달했으니 식도를 타고 내려갈 길만 남은 건가. 혹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속으로..? 완급의 조절, 호흡의 조절. 산낙지마냥 술잔에 엉겨붙은 오른손은 그저 좋댄다. 일생동안 흔치않을 황홀한 충만감. 손을 위한 술잔. 술잔을 위한 손.



[술잔#12]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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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충실한 게 술잔이라지만, 납득할 수 없는 오른손.
어디갔을까, 아무런 냄새도 풍기지 않고 순식간에 말라붙은 술잔.



[술잔#13] 넌 왜..비어 버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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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에 비견될만한.
넌 왜 비어버렸니.
털썩, 절망한채 바닥에 무너져내리는 오른손.



[술잔#14] 술은 술이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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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만한 인연이 사그라들고, 잘록한 곡선과 짙은 향을 닮은 술잔을 다시금 어디선가 들어올리겠지만. 지나간 시간과 흘러간 이야기들은 사진첩에 봉인된 채 고이 '버려진다'. 찍히는 순간 죽어버리는 밴댕이같은 사진, 그리고 그속에 담긴 기억들처럼. 달그림자가 비치듯 그대의 마음에 잠시 비쳤던 것 뿐이니..슬퍼할 것도, 그리워할 것도 없다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어디선가 오른손의 이야기와 표정을 떠올려 준다면..

술은 눈코입으로 마시고 마음으로 마신다. 그리고 무엇보다...술과 술 사이, 그 비워진 잔 또한 마셔야 한다.

핑크빛 돌고래같이 반들반들하게 윤기가 흐르면서 왠지 모를 바다 깊숙히 어두운 곳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내 위장과의 첫대면.


건강검진이 있는 날이었고, 처음으로 내시경을 경험했다.

난 억지로 눕혀져 주사를 맞는 짐승처럼 옆으로 뉘여진 채 자전거에 바람넣는 호스처럼 생긴 내시경을 공포스런

눈길로 바라봤다. 우악스럽게 내 입을 쑤시고 들어가는 검은색 호스에 나는 왠지 '겁탈당하는' 느낌이었고...

30여초 동안 후비는데 정말 게거품을 줄줄줄 흘리며 끊어질듯 불안한 숨을 내쉬었더랬다.

내 십이지장에는 헬리코박터균이 원인이 되었을 거라 추정되는 궤양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조직검사를 위해

철사 하나가 슝슝슝 들어가서 살점을 조금 떼어낸듯 한데, 난 광우병 걸린 소마냥 침을 질질 흘리면서 정신이

나갔다 들어갔다 나갔다 들어갔다.


못할 짓이었다. 몹쓸 짓이었고. 참...내장을 직접 보겠다는 심플한 아이디어를 극단까지 밀어올린 우악스럽고

미친거 같은 시술이란 감상. 알고 보니 영동세브란스 병원의 내시경은 여전히 두껍기로 소문난 구식의

그것이라는. 목젖이 너덜너덜해진 느낌으로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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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질반질하고 핑크빛선연했던 내 귀여운 내장사진을 갖고 싶었는데, 비슷한 사진이라도 찾아보려 구글신에

빌었으나 역시 내것만한 것은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이런 사진을 빌려와 조금이나마 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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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하 수상하여 호주총리의 공식실무방문에 대한 경호문제가 상당히 빡빡하다.

느닷없는 부시의 방문으로 가뜩이나 정신없어진 청와대 경호팀이지만, 어찌됐건 난 예정대로 금욜쯤에는

청와대로 진격해서 이명박을 해치우고...라기보다는 신원조회절차를 마친 사람들의 비표를 가져와야 한다.


오늘까지는 만찬 참석예정자들의 명단을 완료하고, 호주대사관과 예상참가인원을 검토, 웨스틴조선호텔측과

행사장 세팅에 대해 논의를 마쳐야 했다. 참석희망자들의 주민번호와 주소, 영문이름과 직함까지 포함된

인적사항을 받아야 했는데 호주대사관은 마냥 '높은 사람들'을 초청하고 싶은 게다. 헤드테이블에 앉혀서 지네

총리 체면을 세우고 싶었겠지. 외교부장관, 지경부장관, 국토해양부 장관, 통상교섭본부장, 이회창, 박근혜,

정세균 민주당 대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박진 국회의원 등에 이르기까지..온갖 곳을 다 찔러놓더니

기어이 오늘 터진 거다.


시작은 한나라당 국회의원 1인. 비서라는 사람이 전화가 와서는, 내가 발송한 공문에는 8월 1일이 신청 마감이라

명시되어 있었음에도, 지가 모시는 사람한테 그런게 어딨느냐, 신원조회 절차도 필요없다, 라고 생떼를 쓰는

거다. 그것도 확실히 참석하겠다는 게 아니라 갈지 안갈지 모르지만 단지 한 자리를 마련해 놓으라는 강짜.

거만하고 느릿한 비서의 말투에 짜증이 버럭 나서 꺼져...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안되겠다고 단호히

끊어버렸다. 다소 어이없어 하는 반응이었지만, 나몰라라 하고 뚝 끊었다. 뭐랄까, 한나라당에 잘 보일 일 따위

없다..란 생각과 동시에, 비서가 내 이름 알아봐야 대체 뭘 어쩌겠어..란 얄팍한 산술이 뒤엉켰달까.


뒤이은 또다른 한나라당 국회의원 1인. 신나겠지 한나라당. 맹박이가 그리 망쳐놔도 공정택 너끈히 당선되는

이 지랄맞은 상황이니 더욱. 아까 그사람보다는 최소한의 상식과 예의는 갖춘 비서였다. 하기야 그는 한-아랍

소사이어티 창립총회를 비롯, 우리쪽 행사에 자주 출몰했던 사람이기도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조금 봐줘서,

지금 당장 참석 여부를 확인해오면 넣어보겠다고 한 발 빼줬다.



이른바 갑-을의 관계, 거기에서 파생하는 기분더러움과 망나니틱한 막무가내식의 행태들은, 어쩌면 그 물고

물리는 위계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폭력성과 '노동하는 인간'의 고됨이 표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먹고 살기 위해, 죽지 못해 일을 하며 쌓여가는 스트레스와 짜증스러운 순간들, 응어리들은 언제든지

약한 곳을 타격하며 터져나가기 십상이다. 예컨대 나보다 약자의 입장에서 전화를 걸어오거나 아쉬운 소리를 할

법한 상대는 언제고 쉽게, 스트레스 해소나 짜증을 분출을 위한 샌드백이 되버리는...


그 스트레스들을 갑-을 놀이의 부산물이라고 하면서 슈퍼갑이 되고 싶어, 라거나 을의 위치에 처한 본인의 상황을

씁쓸해하지만 사실 그 사슬엔 어디에도 정점이 없는데다가, 누군가의 갑은 항상 누군가의 을인 게다. 결국

문제는, 이렇게 덥고 이렇게 짱나는 세상에 닥치고 일만 꾸역꾸역 해야 한다는 거 아닐까 싶다. 회사원이 된다는

것, 낯설게 보면 한없이 낯설어지고 다소 어이없어지기까지 하는 시츄에이션. 개인적인 견지에서야 도닦는셈

치고 '노동하는 인간'의 고됨, 그리고 그로 인한 날카로움과 짜증을 약자에게 전가하며 해소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다지만, 애초 그러한 열악한 상황에 빠뜨린 사회와 근대적 시스템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어야

하고 어떤 식으로던 제고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름 아직까지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려고 애쓰고 있다. 호주대사관의 참사관 하나가 어이없이

짜증내며 전화하길래 같이 버럭해주고 나서는, 목소리를 가다듬을 새도 없이 받은 지방중소업체의 전화에

나긋하게 응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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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사에서 독촉 문자가 오는 통에 어제 학교에 갔었다. 과사에 가서 졸업장을 받고, 향후 진로가 어떻게 되는지

묻는 지루하게 긴 설문 조사를 받은 후에야 사회대를 벗어날 수 있었다.


가방에 넣은 졸업장이 나를 툭툭 쳐대면서 학교에서 멀어지자고 떼쓰는 듯했지만, 할 일이 조금 남아 있었다.


어떻게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지 친구녀석하고 얘기 좀 해보려 했고, 게다가 본부에 가서 영문, 국문으로

성적증명서랑 졸업증명서도 떼어 두고 싶었다. 혹시 어디에 급히 쓰일지 모르니까. 워낙에 먼 학교라 언제

또 올지 모르니까.


학교에 몇 년째 다녔는데도 어제서야 겨우 또 하나 알게 된 게 있다. 학관 식당에서-아마 다른 곳에서도?-

2500원짜리 밥먹는데 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단 사실. 날 번번이 헷갈리게 하는 셔틀줄은 여전히 익숙하지 못한

채였고, '서울대입구'라는 역의 이름이 주는 묘한 기분은 여전히 무뎌지지 않은 채였다. 끝내 익숙해지지 못한 채

졸업하는구나. 심지어 집에 갈 때는 지하철을 거꾸로 타기까지.


집에 와서 밤이 되서야 실감이 났다. 더이상 대학생이 아니란 사실, 대학생활(이라 불리는 것들)이 공식적으로

쫑났단 사실, 그리고 이제 정말 어디에도 적을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 어쩌면 졸업식날 무리를 해서라도 가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잠깐 했다. 이런저런 감정을 나누지도 못한 채 혼자 뒷북치고 있는 상황도 별로

맘에 안 들었고, 누군가에게든 새삼스레 수고했다는, 혹은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고 있는-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까지야 바라지 않더라도-내 속내가 살짝 집요해지려 꿈틀댄 것도 별로 맘에 안 들었기 때문.


자축하며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감정이 확 들끓어오를 거 같아서 억지로 잠을 청하길 잘 했다 싶다.


오늘은, 괜찮다. '노다메 칸타빌레'도 무지 몰입하며 전부 봐버렸고, 우에노 쥬리-혹은 그녀가 연기했던

노다메짱-이 좋아져버렸고, 왼발의 근육통이 괜찮아져서 다시 뛰기 시작했으며, 이제부터는 영어 에세이를

써야 한다...는 건 별로 안 좋지만 어쨌거나.


2007년 8월. 혹은 9월 11일. 졸업. 축.졸.업.

스포츠센터에 다니고 있다. 더이상 고수부지나 집근처 공원같은 공간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무한도전, 혹은

J-Channel같은 프로그램을 달린다. 촛농처럼 땀이 흐르고 난 조금씩 안쪽에서부터 녹아내린다.(고 상상한다.)

한시간반쯤 뛰면 머리가 멍해지는데, 그러고 나서야 쇳덩이 좀 들고 기구 좀 사용해 준다. 다른 부위는 모두

구속한 채 특정 부위만을 해방시키는 기구에 몸을 묶은 채 느슨해진 근육들에 긴장을 불어넣다 보면 어느새

두시간이 훌쩍 넘어있다. 꼬챙이에 꼽힌 채 커다란 칼로 살살살 벗겨내지는 케밥용 고기처럼 그렇게 내

껍데기에서는 지방이 벗겨지고, 안쪽에서부턴 왜소하게 박혀있던 근육들이 둔중한 부피감을 과시하며 차츰

밀려나와 안팎으로 꿈틀대는 중이다.(라고 상상한다.) 무리하고 있다. 왼쪽발목이 삐그덕대기 시작해서, 낼부터는
뛰지 말고 걸어야 하지 않을까..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걷고 있다. 강남구청역 바로 옆에 있는 영어 학원에 가려면 한시간반씩 걸리며 두번이나

환승해야 하는데다가, 층을 오르내리며 수업을 들어야 한다. 매일 9시부터 3시까지 있는 수업 역시 녹록치만은

않아서 오전중에 벌써 개풀처럼 지쳐버린다. 어쨌건 덕분에 끈떨어진 졸업생치곤 아주아주 근면성실하게 살고

있는 것같은 포만감은 들지만, 사실은 이게 다다. 헛배만 불렀다.



정몽구는 동아일보 인턴할 때 공판을 지켜봤었고, (인터뷰라기엔 살짝 머한) 짧막한 대화도 살풋 나눴었다. 그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보면서, 얼마나 유리처럼 취약한 세계관에 기대어 우리가 살고 있는지..한심스럽고도

가련했다. '저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우리나라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도박을 하기 꺼려졌다'는 대목. 재판관은

법의 정신에 따라 판결만 하면 된다지만, 법조목에만 능한 그가 가진 경제적, 사회적 소양은 기껏해야 신문에서

줏어본 '상식'이다. 마치 외교과 교수들이 '국익'을 논하면서, 그저 경제학원론 수준의 경제적 이론-규모의 경제,

자유무역의 이익-을 전제한 채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과 같다. 전부다 기능인들 뿐이다. 그저 '상식적'인

이야기를 빌려온 채 자신이 가진 조그마한 양념을 뿌려 판.단.한다.

혐오스러운 기능인들. 최소한 자신이 기능인에 불과함을 인정하고 자기 분야가 아닌 것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

나이브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하는 거다. 물론 그가 판결을 내리려면, 국제정치 문제에 대한 판단을

하려면, 이러한 식의 거친 '상식의 개입'은 불가피하기도 하다.



사실은, 모든 종류의 세상살아가는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최근의 소설이 전부다 일인칭의

자기분석적 서술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지만,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판에 구태여 타인의

시각을 전지적으로 개재시킬 필요도, 능력도 없다는 포스트모던한 자각에서 비롯한 걸 거라고 생각한다. 상황을

해석하고 감정을 헤아리는데 있어서의 기능인. 자신의 감정에 투영시켜 상대를 보고, 자신과 같은 상대의 감정을

기대하는. 내가 갖는 느낌은 기껏해야 내 신체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 그나마 운전을 할 때라거나 검도를 할 때. 내 존재가 차의 보디를 따라 연장/확장되는 느낌이 들면서, 바퀴가

돌을 밟으면 내 다리에 밟힌 것처럼, 엔진이 쿨럭이면 내 심장이 잠시 버거운 것처럼 감각한다. 검을 따라 내 팔이
늘어난 것 같은 감각 역시. 그치만 이것들은 도구화된 무생물일 뿐이다...



촛농처럼 땀을 흘리면서 징징대는 게 아닐까 생각하다가도 무한도전보며 웃다가 자빠질 뻔 하기도 하는 녀석이

무슨 감정을 품고 살고 있는지조차 스스로 알기 힘든 판이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상, 그리고 사람들은 그저

상식대로, 혹은 내가 바라는 '상식'대로 굴러간다고 믿는 게..편하다. 자기편의적인 효용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해만 안 주면야, 내 편한대로 '상식'을 초혼하는 것도 괜찮을 법하다.



후희(post-play), 혹은 금단 현상(withdrawal syndrome).

감정이 달리는데 있어서 전희(fore-play)라는 게 갖는 비중만큼이나 후희라는 것도 중요하다면..오케이.

여전히 남은 온기와 따뜻함의 여운을 쓰디쓰게 되씹는게 충실한 후희.

#1.

사무실에서 일하던 중 문득 그녀의 전화를 받고 끊을 때, 그녀는 말한다. "공부 잘해~". 집에서 회사일을 말할 때

나도 문득 말한다. "학교에서~".

아직도 어색한 정장차림과,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출근길, 그리고 여전히 번거롭기만 한 아침마다의 의례.

넥타이와 셔츠의 매치. 대학생이자 인턴인 남자아이 하나와 대졸 회사원이자 외부적으론 대리인 남자아이 하나
 
사이에는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는 그런 묘한 분위기가 이따금씩 피어올랐다 사라진다.


#2.

적나라한 금전적 성과로 환산되지 않는 업무의 특성때문인지 이곳 사람들은 확실히 스트레스가 적고, 덜

늙어보인다. 들어오기 전도 그렇지만 들어오고 나서도 줄기차게 들었던 말, 이곳 사람들은 다들 너무 좋다고.

첨에는 정말 여긴 사람들의 인성을 많이 보고 뽑나보다, 할 정도로(글탐 내가 뽑힌 게 100% 시스템 에러겠지만)

사람들이 하나하나, 다들 좋아 보였다. 물론 지금도 좋아 보인다.


다만 그러한 '사람 좋아보임' 이면에는, 굳이 다른 사람에게 까칠해 보이기 싫고 뒤로 싫은 말 듣기 싫다는

암묵적인 계산이 깔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 깊게 개입되지 않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허허 웃고 치우는

거다. 그럴수록 뒤로만 말이 무성해지지 않을까. 선배들이 최소 3개월은 나죽었다 생각하고 이미지관리 잘 하고

앞으로도 이미지로 '쇼부'칠 거라는 충고를 던지는 건 괜한 게 아니다. 굳이 부딪히지 않고, 마침 크게 부딪혀야

할 일도 없고 뚜렷이 숫자로 된 성과로 계측되는 집단도 아니니, 좋은 소리 듣고 좋게좋게 가는 게 제일 중요해

지는 거 같다. 아님 술자리에서, 어디에서든 질겅질겅 씹히면서도 정작 본인은 모르기 십상이지 싶다.


누구였더라, 사석에서 남의 뒷담화만 안 해도 제대로 회사생활하는 거라는 말씀은 갈수록 묵직하게 느껴진다.


#3.

내가 외국계 기업을 가고 싶어했던 건, 그곳에는 뭐랄까, 문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술을 먹어야

빨리 친해진다거나 매일같이 이어지는 술자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거 말고.

여기도 많이 먹는 편은 아니며,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이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으레 술을

깔아놓고 몇차씩 옮기며 마시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을 못찾고 있는 것 같다.


단적으로 합격자 발표 후 가족들을 불러 식사를 함께 하는 IBM의 '가족적'인 마인드는, 사실 한국 기업들에선

찾아보기 힘들 거다. 적어도 협회에선 확실히 그런 거 같고. 그래서 한국 대기업식의 빡빡한 조직문화도 아닌

것이, (다소 이상화된) 외국계기업식의 개인화된, 동시에 다른 방식으로 묶여있는 조직문화도 아닌 것이

어정쩡하게 조직과 개인을 모두 풀어버린 지금의 그림이 아닌가 싶다. 그닥 뚜렷한 묶임이 없고 각자 적당히

친한 척하며 살짝살짝 그림자만 스칠 뿐인 피.상.적.이기 쉬운 관계. 그렇게 두루두루 친하고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곳이 아닐까. 하고 다소 기우 중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어떻게, 어떤 관계를 누구와

만들어나가야 하는 걸까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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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 속에 들어있는 것 같이, 47층 창밖에는 온통 뿌연 공기만 가득.

창문 왼쪽끄트머리서부터 생선대가리가 설설설 헤엄쳐온다고 해도, 혹은 오른쪽끄트머리서부터 상어나 고래가

입벌리고 덜컥 튀어나와도 별로 안 놀랠 수 있겠다.

이 정도 높이에선 아마도 안개가 아니라 구름이지 싶다. 쉭쉭 달려가는 구름을 찢어놓는 고층빌딩. 은근히

남성적이다..랄까.


갑자기 호주총리가 방한하고, 호주대사관서 만찬행사를 해달라고 졸라대는 데다가 전경련에서 갑자기 자기들이

행사를 맡겠다고 떼쓰는 통에 큰 일이 생겨버렸다. 청와대까지 가서 신분확인을 위한 비표를 제작하게 생겼으니.

MB의 위세를 업고 전경련이 아주..요새 기세등등이라는 평이다. 효성회장 조석래가 이러저러한 비리문제에도

휘말려 있고 그런 것 같은데...사돈이라 은근슬쩍 뭉개고 있는 거 같다.

어쨌든. 이번행사는 내가 첨부터 끝까지 쥐고 하게 되는 최초의 행사라서 8월 11일까지는 정신없게 생겼다. 머,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글줄 써가며 한탄할 여지야 찾으면 나오기 마련이지만.ㅋㅋ


하나더, 8.15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고 대대적으로 60주년 행사를 펼치기로 했단다. 경제4단체가 뭔가 하나씩

맡아서, 전경련은 무슨 마라톤대회던가를 하고, 어디는 음악회를 하고, 협회쪽은 재독 간호사, 광부들을 초청해서

뭔가...행사를 해야 한다는 상황. (의견수렴이나 사전 협의없이) 다짜고짜 건국절로 바꾸겠다고 설레발치는 거나,

2주 남겨놓고 그런행사를 벌인답시고 난리를 치는 거나, 여러모로 짜증스러운 색퀴다.

#1. 환영회

부서에 배치받은지는 어언 한달이 넘어가는데, 외국 출장과 각종 행사로 바빴던 터라 어제야 내 환영회가 있었다.

미루어지다 보니 마냥 내 환영회랄 수만도 없는 게, 대학 같은 과 친구이자 입사 3년 선배인 분께서 우리 부서로

옮겨온 환영회도 더해졌고, 어제 새롭게 합류해 한학기동안 인턴활동을 할 대학생 인턴환영회까지.

여태 팀회식은 한번도 없었지만 익히 예상했던대로 술은 그렇게 먹지 않는 분위기에, 소탈한 팀장님 이하

화기애애한 팀원들의 거리낌없는 대화가 오가는 자리여서 맘에 들었다. 평소 사무실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뭐, 아직 내가 바쁜 시기를 경험치 못한 탓도 있겠지만.



#2. 시간.

그러고 보면, 대학 졸업에 이르기까지는 계속해서 시간표가 학기 단위, 월 단위, 시험 단위, 주 단위로 짜여져

있었다. 딱히 시간을 분절시켜서 쓰고 있다는 감각 없이도, 주어진 커리큘럼을 따라가다 보면 알아서 규칙적인

일정과 시간 관리가 가능해지는 그런 상황에서 이십여년을 살아왔던 거다. 거창하게는 근대적 노동자의 예비..

랄 수도 있겠고, 안정적으로 주어진 스케줄표라 할 수도 있겠지만 여튼지간. 그래서, 정식 출근 후 고작 한 달여

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떤 스케줄이 가능할지에 대해 감이 안 잡히는 건

당연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중간중간 규칙적으로 꼽혀있는 깃발들..이 안 보이니 내가 뭔가 스스로 시간을

덩어리로 묶어가며 써야 될 거 같은데, 아직 일년 한 바퀴도 돌지 않은 상황에서 감잡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일의

템포-강약강약이랄까 강약중강약이랄까-를 강조하는 팀의 고유한 분위기 탓, 혹은 고유한 스케줄 탓인지도

모르지만 일단은...그런 식의 타협으로 2월 한 달을 정신없이. 아무것도  계획한 거 못하고 보내버린 스스로를

조금은 살갑게 용서.ㅋ



#3.

열두개가 찍힌 커피빈 쿠폰으로 자그마치 6,200원짜리 아이스 블렌디드를 바꿔들고 올라와선 9시 땡치고 일과가

시작되었음에도 쓰던 글은 마저 써야겠다고 이러고 있다.ㅋ

#1. 이미지(Before & After랄까..)

'한국무역협회'와 '이희범회장'을 키워드로 해서 뽑아 보았던 1년반치 기사뭉치, 월간지, 논문들에서

비쳐진 무역협회란 곳은 전경련을 필두로 한 경제4단체 중 하나라곤 해도 조금 달라보였다. 자력으로

무역하며 위협섞인 엄살을 피워대는 대기업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근근히 수출하며

먹고살기 바쁜 중소무역업체, 중앙에서 소외된 지방업체의 이익을 통틀어 대변하려 하는 무역업체들의

이익단체. 애초 공기업도 아니고 공공기관도 아니고 단지 한국의 '무역업계'만을 위한 민간단체가

정체성이라지만, 다른 것도 아닌 '한국의 무역'이라니 공공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게다.


해병대 등 이런저런 희떠운 연수스케줄 몽땅 합쳐봐야 아직 한달도 안되었다지만 실제로 중소

무역업체를 위한 일도 많이 하는 것 같아 보인다. 高원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정부에 촉구한다거나,

FTA활용방안을 홍보한다거나..SERI가 삼성이란 일개 사기업의 지적 전위부대로서 충실한 역할을

하는데 반해, 협회산하 국제무역 연구원은 그래도 국가 차원의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 분석, 대안 제시의 노력도 진지해 보이고. 물론 그러한 식의 '수출 XX불',

'세계 XX위'같은 유치한 양적과시가 끊임없이 거슬릴 뿐더러 기업인이 한국의 1등국민이라는 암묵적

전제도 썩 와닿지는 않지만. 그리고 아마도 그러한 필연적 결과로 한미FTA를 앞장서 주도했으며

한EU FTA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무척이나 불쾌하지만.(근데 대체 한미 FTA와 한EU FTA에

대처하는 진보진영의 자세가 왜 이렇게 다른지, 반미의식에 편승해 쉽게 감정을 동원할 수 있겠단

꼼수 > 자본에 대한 문제의식?)



#2. 낯익은 위화감

게다가 벌써부터 거슬리는 문제들도 있다. 만약 중소무역업체와 대기업의 이해가 상충하는 무역현안이

있다면, 무역협회는 어떠한 의견을 채택할 건지? 비록 6만5천여 회원사를 모시는 서비스단체..란 게

공식적인 외피라지만, 정몽구회장이 사회환원한다며 만든 재단위원장에 협회장을 위촉시킬 만큼,

삼성역 무역센터 54층짜리 건물과 코엑스의 번듯한 외양이 중소무역업체들을 왠지모르게 위축시킬만큼,

친재벌과 친기업이란 입장 간의 간극은 만만치 않다. 나아가, 무역협회라지만 수출협회라는 치명적
 
약점. 여태 한국은 수입업체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에 소홀해 왔는데, 수입에 대한 막연하지만 뿌리깊은

부정적 이미지 때문일 게다. "무역흑자를 갉아먹는..국부를 유출시키는..신토불이를 나몰라라 하는..

사치스러운.." 등등.


그렇지만 수출만큼 수입도 중요하며, 수입의 질적, 양적인 면에서 뒷받침이 필요하단 인식이

보편화된다면 한국 사회나 기업들이 보다 균형있게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무역협회는 '무역흑자가 지고의 선'이라는 중상주의적인 가치관에 기댄 채

수입업체들로부터의 많은 가능성을 사장시켜 왔다고 생각한다. 사실 대부분의 수입은 가공생산을 위한

원자재란 걸 생각하면, 전략적인 측면에서나 원칙적인 측면에서나, 협회가 수입업체들을 외면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상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제대로 의미를 싣지도 못한 채 뭉뚱그려진 친재벌과 친기업, 친기업과 친시장 간의

엄연한 차이. 수출입의 질적 측면, 실제 수익성 등에는 소홀한 채 그저 수입을 최대한 묶고 수출을

최대한 이끌어서 국부를 쌓겠다는 단순무식한 중상주의적 사고.


친재벌과 친기업, 친기업과 친시장간의 모호한 경계에 모호하게 발붙이고 선 무역협회는 그러한 상식이

얼마나 무디고 편향적인지 첨예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중소기업 편인지 대기업 편인지, 김용철 변호사가

개XX인지 삼성이 XX끼인지. 이미 면접 때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입장을 물었고 나름의 답까지 제시해

줬었던 무역협회다. 흑자면 장땡이라는 단순무식한 사고방식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으며 심지어

신중상주의로 부활하고 있다는 건, 70년대 건설업체 사장나부랭이가 'CEO'라는 21세기적 단어가 가진

마력을 빌려 대통령에 덜컥 당선한 마당인지라 이상할 것도 없다.



#3. 창조적인 불만, 냉소에서 출발하는 낙관,..Whatever.

과장스러운 환영사와 일장훈시들은, 결국은 "초심을 잃지 말아라" 혹은 "비싼 밥이니 맛있게 먹어라"

정도로 요약된다. 누구나 초심을 운운하며 새로운 공간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말하지만, 사실 12월 31일과

1월 1일의 차이처럼 문제는 자신의 마음인 거다. 내게 있어, 모든 초심의 초심은 '즐거움'이고..즐겁게

일하고 싶다.

일단은..아직 발령도 안 받은 신입직원 나부랭이로서는, 이렇게 내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곳을 갈구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래놓고 부메랑처럼 돌아올 부담감과 깨어있음의 압박을 기대하고 있다.

내년 이맘때쯤 ver2.0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런지.

혼자 밥먹는 건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다. 이어폰을 귀에서 탈착할 필요도 없으며, 밥먹는 데에 집중하거나 꼬리를

무는 어떤 생각에 집중하거나 간에 장애가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밥먹고 나서 걍 바로 자리를 뜨고 자판기 커피

한잔 뽑아먹음 한 끼 해결인데, 마음도 편한데다가 아주 자유로운 느낌마저 든다. 학관 지하에 12시 약간 전에만

가주면, 자리도 널럴해서 왠지 주위에 둘러싸인 사람들에게 압박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왠지 저사람들은 서로가

무진장 친밀한 따뜻한 나라에 사는 거 같고, 난 왠지 어딘가 그림자가 빠져있거나 심장이 빠져있는 나라에 사는

듯한 감정이 유발되곤 하는 거다, 식탁 가득 사람이 빼곡히 들어차 있으면.



그 중에 혼자 밥먹는 사람도, 혹은 같이 먹더라도 별반 안 유쾌한 사람도 기실 그럴 때엔 나랑 같은 감정을 느낄

게다. 어쩌면, 걍 아무나 혼자 먹고 있는 사람 있음 그 앞이나 옆자리에 앉고서 친한 척하며, 혹은 친해지며

밥먹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 싶다. 통성명부터 시작해서 과, 나이, 등등 '코스'를 밟아가며 미팅을 시작하는

방법도 있을 게고, 걍 무작정 반찬투정부터 시작하며 공감대를 열어가는 방법도 있을 거고.(여기 밥 절라

맛없잖냐? 개밥이야 개밥..)



가끔 걍 주위를 휘 저어보면 저기 어딘가 혼자 밥먹고 있던 처자나 남정네와 눈이 딱 마주치기도 하는데, 백방

그럴 경우 그녀석도 나처럼 무작정 아무나하고 같이 밥먹어 보까 하는 쓸데없는 객기를 발동시켰을 테다. 그나마

오늘은 자리가 워낙 휑~했어서 내 심리적인 안정 공간을 확보한 채 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사람이 많아져

내 옆앞뒤로 내 공간을 침범한 타인..들이 늘어나면 어쩌면, 숨쉬는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은 친한 사람과

밥을 먹거나 밥을 먹으며 친해지는 방법 두가지밖에 없는듯하다. 왜 바둑에서, 단수에 몰린 말이 살기 위해

숨통을 트는 방법은 돌을 하나 이어 숨구멍을 넓히는 거처럼.



글타고 내가 '단수에 몰렸다'거나, 혼자 밥먹는게 불유쾌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이제 밥먹는 상황에서도

인간관계를 유추해버리고 마는 지극히도 편향적인 이 사고의 흐름을 어쩔 수가 없단 탄식.ㅋ 어쨌거나, 밥을 같이

먹는다는 행위는 결국 내 숨통을 넓혀줘, 아님 내가 따뜻한 남쪽나라에 살고 있다는 걸 믿게 해 줘...라는 말과

등치되는 거다. 따뜻한 피가 쿨럭이며 심장을 후비고 있으며, 내 그림자도 언제나처럼 묵묵히 발치에서 날 내려다

보고 있단 걸 확인시켜 주는 행위, 그게 바야흐로 "같이 밥먹자"란 말이 담고 있는 지극한 의미가 아닌지.



혼자 밥먹을꼬얌~ 하는 퇴짜는, 글타면 그러한 외부의 도움없이도 혼자 숨을 충분히 쉴 수 있거나 (산소호흡기던

부레를 갖췄건 간에) 혼자서도 충분히 따뜻한 남쪽나라란 걸 실감할 수 있어서인가...그 이전의 삶 A가

2년 6개월여의 B를 거치면서 A'로 변질된 거 같긴 한데, 아직 난 A와 A'를 비교하며 ....되는 경향보다는, B와

A'를 비교하며 마냥 좋아라 하는 경향이 더 큰거 같다. A와 A'를 비교함 글쎄........?

자정 쯤에는 한미 FTA가 타결될지 알 수 있을 거라는데, 글쎄요, 시한 안에 협상을 타결짓고 세부적인 조항은

이삼일 동안 더 논의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고, 민변이나 국회의원들의 반발도 가세한 반대 시위는 촛불의

장관을 이루기도 했고. 협상 체결 후 일방적인 파기의 가능성은 아마도 한국에서 더 크지 않을까요. 워낙 국내적

합의가 미진한 상태에서, 꾸준히 여론을 무시한 채 달려간 합의라서요.ㅋ

저는 FTA 내용 자체보다도, 협상을 진척시키면서 전혀 국내 정치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 한국의 외교적

마인드랄까..가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은..현실주의적으로 보았을 땐 다소 암담한 그림이 나온다, 그리고 지금 조금씩 국제 레짐이

형성되고 있으니 그에 기반하면 한국도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다..라는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현실적인 기반이 제공하는 객관적 범위 내에서 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구요, 국제 레짐은

강대국이 이른바 단기적인 이익을 양보하는 수준 정도에 (아직은) 불과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앞으로도

국제관계를 규율하는 레짐이 그 범위를 계속 넓히리라거나 발전해 나갈 거라는 전망도 너무 낙관적이라고

생각하구요.


윈셋 이론이나, 국제레짐 이론에서 말하는 협상이란 건 다소 자연과학의 실험실과 같은 조건을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경제학에서 말하는 'Ceteris Paribus'와 같은 거지요.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이라는

전제 조건이요. 여타 국제 정치적 상황이 안정되어 있고 지금의 협상에 아무런(혹은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가정이겠죠. 문제는, 미국같은 강대국은 판 자체를 새롭게 다시 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냉전 해체 후 단극 질서의 안정성을 의심받던 상황에서 돌발적인, 또한 예견되었던 9.11 테러를 빌미로, 미국은

성공적으로 자국이 확보한 가장 큰 자산의 효용을 갱신해냈습니다. 새로운 집단으로부터의 테러 위협에

대항하겠다는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의제화하고 '악의 축'국가를 상정하면서 잠시 의문시되었던 무력의

중요성을 복권시킨 것 아닐까요. NMD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고, 신속기동군을 축으로 한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GPR)도 그렇구요. 세계적 차원의 반미반전 여론이 일고 있고, 미국 내에서도 반발이 거센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 탈냉전의 세계에 새로운 적을 규정짓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은데요. 상존하는 위험성,

불안정성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미국의 헤게모니와 권력자원을 공고히 하는데 공헌했죠.

요는, 국제 레짐이나 협상이론에서 말하는 공정한 체스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강대국이 보아 넘기리라

생각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새로운 의제를 던지면서 판 자체를 흔들어 자국에 유리한

국제 환경을 조성하는 것, 실제로 모든 국가들의 생존전략 아닌가요.


물론,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단기적인 손해를 감수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 말 자체가 무엇을 의미할까요? 대체로

단기적인 손해는 소프트한 영역의 레짐에서 일어나는 반면, 보다 장기적인, 근본적인 이익은 전지구적 차원의

병력 배치를 관철한다거나, 에너지 자원의 확보,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군사정치적 헤게모니의 유지, 혹은

(헤게모니란 단어가 거슬리신다면) 국력의 현상유지 아닐까요. 이러한 장/단기적 이익을 구분할 때, 대략 하드/

소프트 폴리틱스의
영역과 중첩되는 것 같거든요. 물론 경제적 분야의 경우처럼 그 자체의 장/단기적 이익이

상충하는 경우도 있겠지만요. 그렇다면 여전히 현실주의적 가정이 살아있는 것 아닐지요. 어느분이 예로 드신 게

이라크전에 대한 미국내 역풍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서 문제되는 장/단기적 이익이 뭔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미국내 역풍은 결국 미국의 헤게모니와 권력자원(소프트&하드)를 허비시킨 것에 대한 전술적 차원의 반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현실주의의 시각을 차용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여지가 상당히 좁고 답답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그치만

그건, 마치 우리 나라의 영토적 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강대국이 되기 힘든 본래적 제약이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시장규모, (경제활동)인구, 인재발생 가능성, 자원 등 여러 측면에서

출발선이 다른 걸 인정하듯, '우리'에게 주어진 권력 자원이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희소한 것이 사실이죠. 머..

그런 '비장한' 현실인식 위에서 전략을 짜는 것이 꼭 '패배주의'와 동일시되어야 한단 법은 없는 것 같은데요.

거기에 역사적인 피해의식과 조바심, 그리고 '우리'를 국가 자신으로 사고하는 다소 국가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열패감을 조장하는 게 아닐까요.


저는 사실 외교과 학생들이 너무 국가중심적인 사고만 하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말해봅니다. 흔히 수업시간에

'우리'라는 단어로 지칭되는 건, 단일자로서의 국가, '대한민국'이죠. 국가에 몰입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주의적

사고의 가장 큰 폐해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라고 흔히 지칭되는 측면에서 망각되기 쉬운 건

국내정치적 문제구요. 국제정치와 국내정치간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우리'라고 묶여서

호칭되는 국가의 이익을 좀 깨어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전부다 대한민국의 대표인양 말하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국내정치의 동학과 연계해서 그야말로 '비국가 행위자'의 입지를 강화하고 그에 대한 이론적 성과를

내놓는 것. 그것이 현실주의의 암울한 전망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지요. 한국이라는 공간 내에 하나의

액터만이 아니라, 여러 개의 액터가 존재할 수 있고,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영역을

넘나들며 작용하고 있다는 것.


게다가, 지금 FTA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온갖 오류들은, 결국 국가적인 차원의 경쟁력과 수익을

제고하겠다고 채근하는 과정에서 국내 정치적 요소는 도외시하고 활용하거나 고려할 생각도 안 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외교정책 담당자들이 너무 국가중심적으로만 사고해왔기 때문은 아닐지요.

외교가 국가의 총수익만 키워놓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던 시기는 지났다고 보는데요.


그래서 사실, 윤영관 선생님이 저한테 그 질문을 하셨다면, 제 답은 아마도..당신이 돈많은 사람이면 한국이 더

편하니 눌러 붙어있고, 돈없고 빽없는 사회적 약자라면 어딜가나 똑같으니 남아라..정도일까요.^^ㆀ

(사실 이민가고 싶음 가는 거지 모. 지가 가겠다는데 왜 말리겠어.ㅋ)


from '국제정치경제' 수업 커뮤니티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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