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왜관서 부산까지 무궁화 타고 오는데, 무궁화호 정말 많이 감편된데다가 거의 통일호마냥 예전엔 걍 쌩까고

지나가던 소소한 역들까지 서가면서 좀체 속도를 못낸다. 자리도 꽉꽉 차가지고 입석승객도 무진장 많은데다가..

그걸 툴툴댈만큼 선택의 폭이 넓지도 않고 자칫 시간에 맞춰 복귀하기도 힘들만큼 편수가 줄어버린 게 정말이지
 
치명적이다. 오후 통틀어 네 대밖에 없다니.



어젠 TMO를 타고 왔는데, 그것 역시 빈 자리가 하나밖에 없었다.

사실 일병, 상병 때는 출장 다님서, 외박 다님서 편의점서 캔맥주 하나 사갖고 기차서 마셨는데, 이제 머...그런

'군인답지 못한' 행동은 자제하기로 타협본지라 걍 조용히 빈자리에 꽂혀앉았다.

원래 내가 선호하는 자리는 창가쪽에 앞에서 한 5~10째줄 쯤..글구 창가도 시야가 가리지 않고 깨끗이 확보된

자리를 좋아하고 왠만함 옆좌석이 비어있는 곳-누가 앉게 될지 알수 없어 채워지기 전까지 뜬금없는 상상을 펼칠

수 있는-을 좋아한다.



비어있던 자리는 기차칸 뒷구녕쪽에 통로쪽, 옆에 여군이 앉았을 리는 없고 어떤 사납게 생긴 직업군인 아찌.

게다가 결정적으로 내가 앉을 자리 앞좌석의 아저씨가 거의 만땅으로 의자를 뒤로 꺽어버린 채 신문을 보고 있던

거다. 자리에 끼듯 앉아서 잠시 기대...이아찌가 내 존재를 육안으로 식별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자연적인

사이버네틱 과정을 거쳐 좌석을 최소한 약 30도쯤 당겨주지 않을까 했던 거다.



...잠시 궁리. 왜 안 땡겨줄까. 걍 말을 걸어 양해를 구해 볼까.



근데 걸린다. 그 아찌가 민간인일리는 없고, 얼굴이 절라 삭은 상병이나 일병, 아님 자대배치받은 이병...일리도

없고. 아님 병장이라 할지라도 절케 삭은 병장은 아직 견식한 바 없고. 백방 직업군인인데다 애도 한둘 딸려있을

연세이신데, 병장 나부랑쓰가 제한몸의 평안을 위해 고계급간부님의 복지 및 후생을 제약하려 해서야 쓸

말인가...'군인답지 못하다'.



물론 알 수 없다. 그 아찌가 말이 통하는, 좀 '군인답지 않은'-내 나름의 기준으로는 군인답지 않은 군인은 거개가

제대하고 그 나머지만 '잔류'한다. 왜 그 싱크대 배수구에 붙은 오물통처럼-사람이라면, 내가 얘기했을 때 어이구~

하면서 자리를 땡겨줬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 (원사, 상사, 중사, 대위,...)간부와 짝퉁말년 윤병장과의

계급차에서 비롯된 민망함과 '송구스러움'은 남는다.



그리고 내가 아는 방포 간부...마치 애초 내가 원했던 좌석이 아닌 '남겨진' 자리 하나에 앉을 수 밖에 없었듯이

내가 투입되어 경험한 군대...는 80년대 육군의 마인드를 강고히 유지하고 있는 터라, 어마어마한 권위의식과

계급의식을 갖고 있다. 추상적으로 부여된 실체없는 계급으로 호칭되는 x원사, x상사..가 아니라, 자신이 어떠한

계급이고 그 계급피라미드에서 어느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하는 의식을 명철히 갖고 모든 언행에 우선적으로

투영시키는 진정한 계급.



그래서, 군용객차칸에서는, 민간객차칸에서 하듯이, 사람에 대한 양해나 뭐랄까 그나마 수평적 입장에서의

이해-전략을 세울 수가 없어서, 걍 두시간 십분동안 좌석 사이에 끼어서 왔다.



- 200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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