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회사에 한국양궁협회에서 어떤 분이 와서 강연을 하고 간 적이 있다.
그 분은 한국이 '동이족(東夷族)'이라는 판타지에 기댄 채 금메달을 당연시하는 양궁이라는 분야가 실은,
미국, 구 소련, 그리고 일본이 장악했던 종목임을 지적하면서 그런 근거없는 과거 이야기는 어느 나라나 들먹이고
있다고 했다. 마치 '그 옛적의 금송아지 운운'하는 이야기처럼 자신들 조상이 세상에서 활을 가장 잘 쏘았다는.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무한경쟁, 꿈과 희망'이었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는 환타지'를
불어넣는 고도화된 양궁 국가대표선발 시스템의 윤곽이었다. 아무래도 기업체에 와서 양궁 관련 이야기를 버무려
열심히 무한경쟁하자, 꿈과 희망을 품고(혹은 상상하며) 일하자, 그런 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다 보니 그런 걸까.
아님 양궁 같은 체육 종목 자체가 워낙 국가대표 선발과 메달 획득을 두고 치열하다는 반증일까.
강사가 이야기하는 국가 대표 선발 과정은 그 자체로도 지옥이었지만, 사람을 참 처절하게 만든다 싶었다.
새벽 5시반에 기상해선 밤 8시까지 훈련, 그리고 고작 2시간의 자유시간 후 10시 취침이랜다. 그렇지만 누구든
한명이라도 숙소를 벗어나 개인훈련이라도 하는 것 같으면 어느새 대부분이 나와 훈련을 하게 되는 분위기.
예컨대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서 약 일년전부터 남녀 국내 랭킹 100위까지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시켜서는, 10달 동안 대회를 열 차례나 치르고 남녀 각 4명을 선발한다고 한다. 국내 랭킹 80등이
대략 세계 랭킹 5위에 들 정도라고 하니, 그 압박감은 아마 상상을 초월할 거다. 거기서 끝이 아닌게, 또다시
세 번의 국제대회를 거쳐 남자 셋, 여자 셋의 국가대표를 최종 선발한다는 바늘구멍 이야기.
양궁 과녁이 노란 골드 부위 지름이 12cm랜다. 사수는 70m밖에서 서서 쏜다. 그것도 화살 한 발당 30-40초 내에
쏘아야 한다는 심적 제약도 있다. 그 바늘구멍에 누가 가장 가까이 근접해 있는지를 따지는 바늘구멍 이야기는,
혈연이나 지연, 혹은 학연같은 불공정한 요인으로 얼룩지지 않은 only 실력으로만 따진다는 점에서 충분한 매력이
있을지 모른다. 열정만 있으면,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는 거대한 환타지.
그렇지만 노력한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건 절대 아니다. 성공은 금메달로 계측되며, 금메달은 한 사람 몫이다.
비단 그런 까칠한 현실인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미 불만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열정'이라는 개인적 덕목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책임을 모두 꽁꽁 싸매고 있다는 느낌이다.
'무한경쟁'을 반복적으로 호명하면서 "메달 획득은 곧 대한민국의 경사"라고 국가에 대한 헌신과 충성, 그리고
목적의식을 요구하는 국가대표 양성 시스템은 그 자체로 적나라한 (학생들이 맞닥뜨린) 우리 교육계의 현실,
(직딩들이 맞닥뜨린) 기업계의 현실, 그리고 (국민들이 맞닥뜨린)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동원되는 각종 현대과학과 심리학의 결과물들. 스포츠 생리학, 스포츠 심리학, 스포츠 역학...여성들의 경우
생리할 때 컨디션이 40%까지 떨어진다는 게 현대 과학의 분석이고, 그에 대한 과학적 '심판'은 다음과 같다.
음식과 기타 의학적 도움을 받아 생리주기를 미미하게 이동시키기 시작, 생리시기를 피해 가장 컨디션이 오르는
시점에 경기일이 맞춰지도록 몇 달에 걸쳐 조정할 것. 시차에 따른 신체적 적응 여부는 상쾌한 하루를 여는 화장실
행사가 몇시에 있었는지 그 시간을 체크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으니, 쉼없이 관리하고 체크하고 기록할 것.
써놓고 보니 이미 숱한 지면이나 화면을 통해 유사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치만 그때는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느낌은 아니었다, 아마 '꿈과 희망', '도전' 따위의 화창한 단어들과 병존했기 때문일까.
20대에서 30대 초반은 운동선수로서의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선수들을 재우쳐
가며 강박적인 상태로 몰아가는 극한 상황을 다소나마 희석시킬 수 있는 그럴듯한 핑계, 보다 중립적인 단어로는
이유가 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역시 많이 들어본 논리다. 선진국에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성공을
위한 마지막 기회, 기실 그러한 '마지막' 기회 뒤에는 누구도 알려준 적 없는 또다른 기회들이 무수히 있었다.
사람을 조바심내게 만들며 눈을 옹이구멍만하게 만들어, 불과 몇 걸음 앞만 내다보도록 농간부리는 이야기.
그렇지만, 하고 생각했다. 최소한 양궁 국가대표팀을 꾸리는 감독, 코치는 선수보다 항상 먼저 시범을 보인단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공포감을 준다는 11미터 하이다이빙을 할 때에도, 다른 무슨 훈련을 할 때에도, 선수를 앞세우고
뒷통수 치는 게 아니라 함께, 또 먼저 앞장선다는 것. 그런 게 훨씬 인간적이다. 최소한, 최소한 자신들이 말하고
시키는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것들에 대해서, 스스로도 믿고 있음을 나타내는 거니까.
그 분은 한국이 '동이족(東夷族)'이라는 판타지에 기댄 채 금메달을 당연시하는 양궁이라는 분야가 실은,
미국, 구 소련, 그리고 일본이 장악했던 종목임을 지적하면서 그런 근거없는 과거 이야기는 어느 나라나 들먹이고
있다고 했다. 마치 '그 옛적의 금송아지 운운'하는 이야기처럼 자신들 조상이 세상에서 활을 가장 잘 쏘았다는.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무한경쟁, 꿈과 희망'이었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는 환타지'를
불어넣는 고도화된 양궁 국가대표선발 시스템의 윤곽이었다. 아무래도 기업체에 와서 양궁 관련 이야기를 버무려
열심히 무한경쟁하자, 꿈과 희망을 품고(혹은 상상하며) 일하자, 그런 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다 보니 그런 걸까.
아님 양궁 같은 체육 종목 자체가 워낙 국가대표 선발과 메달 획득을 두고 치열하다는 반증일까.
강사가 이야기하는 국가 대표 선발 과정은 그 자체로도 지옥이었지만, 사람을 참 처절하게 만든다 싶었다.
새벽 5시반에 기상해선 밤 8시까지 훈련, 그리고 고작 2시간의 자유시간 후 10시 취침이랜다. 그렇지만 누구든
한명이라도 숙소를 벗어나 개인훈련이라도 하는 것 같으면 어느새 대부분이 나와 훈련을 하게 되는 분위기.
예컨대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서 약 일년전부터 남녀 국내 랭킹 100위까지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시켜서는, 10달 동안 대회를 열 차례나 치르고 남녀 각 4명을 선발한다고 한다. 국내 랭킹 80등이
대략 세계 랭킹 5위에 들 정도라고 하니, 그 압박감은 아마 상상을 초월할 거다. 거기서 끝이 아닌게, 또다시
세 번의 국제대회를 거쳐 남자 셋, 여자 셋의 국가대표를 최종 선발한다는 바늘구멍 이야기.
양궁 과녁이 노란 골드 부위 지름이 12cm랜다. 사수는 70m밖에서 서서 쏜다. 그것도 화살 한 발당 30-40초 내에
쏘아야 한다는 심적 제약도 있다. 그 바늘구멍에 누가 가장 가까이 근접해 있는지를 따지는 바늘구멍 이야기는,
혈연이나 지연, 혹은 학연같은 불공정한 요인으로 얼룩지지 않은 only 실력으로만 따진다는 점에서 충분한 매력이
있을지 모른다. 열정만 있으면,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는 거대한 환타지.
그렇지만 노력한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건 절대 아니다. 성공은 금메달로 계측되며, 금메달은 한 사람 몫이다.
비단 그런 까칠한 현실인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미 불만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열정'이라는 개인적 덕목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책임을 모두 꽁꽁 싸매고 있다는 느낌이다.
'무한경쟁'을 반복적으로 호명하면서 "메달 획득은 곧 대한민국의 경사"라고 국가에 대한 헌신과 충성, 그리고
목적의식을 요구하는 국가대표 양성 시스템은 그 자체로 적나라한 (학생들이 맞닥뜨린) 우리 교육계의 현실,
(직딩들이 맞닥뜨린) 기업계의 현실, 그리고 (국민들이 맞닥뜨린)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동원되는 각종 현대과학과 심리학의 결과물들. 스포츠 생리학, 스포츠 심리학, 스포츠 역학...여성들의 경우
생리할 때 컨디션이 40%까지 떨어진다는 게 현대 과학의 분석이고, 그에 대한 과학적 '심판'은 다음과 같다.
음식과 기타 의학적 도움을 받아 생리주기를 미미하게 이동시키기 시작, 생리시기를 피해 가장 컨디션이 오르는
시점에 경기일이 맞춰지도록 몇 달에 걸쳐 조정할 것. 시차에 따른 신체적 적응 여부는 상쾌한 하루를 여는 화장실
행사가 몇시에 있었는지 그 시간을 체크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으니, 쉼없이 관리하고 체크하고 기록할 것.
써놓고 보니 이미 숱한 지면이나 화면을 통해 유사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치만 그때는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느낌은 아니었다, 아마 '꿈과 희망', '도전' 따위의 화창한 단어들과 병존했기 때문일까.
20대에서 30대 초반은 운동선수로서의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선수들을 재우쳐
가며 강박적인 상태로 몰아가는 극한 상황을 다소나마 희석시킬 수 있는 그럴듯한 핑계, 보다 중립적인 단어로는
이유가 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역시 많이 들어본 논리다. 선진국에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성공을
위한 마지막 기회, 기실 그러한 '마지막' 기회 뒤에는 누구도 알려준 적 없는 또다른 기회들이 무수히 있었다.
사람을 조바심내게 만들며 눈을 옹이구멍만하게 만들어, 불과 몇 걸음 앞만 내다보도록 농간부리는 이야기.
그렇지만, 하고 생각했다. 최소한 양궁 국가대표팀을 꾸리는 감독, 코치는 선수보다 항상 먼저 시범을 보인단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공포감을 준다는 11미터 하이다이빙을 할 때에도, 다른 무슨 훈련을 할 때에도, 선수를 앞세우고
뒷통수 치는 게 아니라 함께, 또 먼저 앞장선다는 것. 그런 게 훨씬 인간적이다. 최소한, 최소한 자신들이 말하고
시키는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것들에 대해서, 스스로도 믿고 있음을 나타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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