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센터에 다니고 있다. 더이상 고수부지나 집근처 공원같은 공간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무한도전, 혹은

J-Channel같은 프로그램을 달린다. 촛농처럼 땀이 흐르고 난 조금씩 안쪽에서부터 녹아내린다.(고 상상한다.)

한시간반쯤 뛰면 머리가 멍해지는데, 그러고 나서야 쇳덩이 좀 들고 기구 좀 사용해 준다. 다른 부위는 모두

구속한 채 특정 부위만을 해방시키는 기구에 몸을 묶은 채 느슨해진 근육들에 긴장을 불어넣다 보면 어느새

두시간이 훌쩍 넘어있다. 꼬챙이에 꼽힌 채 커다란 칼로 살살살 벗겨내지는 케밥용 고기처럼 그렇게 내

껍데기에서는 지방이 벗겨지고, 안쪽에서부턴 왜소하게 박혀있던 근육들이 둔중한 부피감을 과시하며 차츰

밀려나와 안팎으로 꿈틀대는 중이다.(라고 상상한다.) 무리하고 있다. 왼쪽발목이 삐그덕대기 시작해서, 낼부터는
뛰지 말고 걸어야 하지 않을까..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걷고 있다. 강남구청역 바로 옆에 있는 영어 학원에 가려면 한시간반씩 걸리며 두번이나

환승해야 하는데다가, 층을 오르내리며 수업을 들어야 한다. 매일 9시부터 3시까지 있는 수업 역시 녹록치만은

않아서 오전중에 벌써 개풀처럼 지쳐버린다. 어쨌건 덕분에 끈떨어진 졸업생치곤 아주아주 근면성실하게 살고

있는 것같은 포만감은 들지만, 사실은 이게 다다. 헛배만 불렀다.



정몽구는 동아일보 인턴할 때 공판을 지켜봤었고, (인터뷰라기엔 살짝 머한) 짧막한 대화도 살풋 나눴었다. 그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보면서, 얼마나 유리처럼 취약한 세계관에 기대어 우리가 살고 있는지..한심스럽고도

가련했다. '저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우리나라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도박을 하기 꺼려졌다'는 대목. 재판관은

법의 정신에 따라 판결만 하면 된다지만, 법조목에만 능한 그가 가진 경제적, 사회적 소양은 기껏해야 신문에서

줏어본 '상식'이다. 마치 외교과 교수들이 '국익'을 논하면서, 그저 경제학원론 수준의 경제적 이론-규모의 경제,

자유무역의 이익-을 전제한 채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과 같다. 전부다 기능인들 뿐이다. 그저 '상식적'인

이야기를 빌려온 채 자신이 가진 조그마한 양념을 뿌려 판.단.한다.

혐오스러운 기능인들. 최소한 자신이 기능인에 불과함을 인정하고 자기 분야가 아닌 것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

나이브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하는 거다. 물론 그가 판결을 내리려면, 국제정치 문제에 대한 판단을

하려면, 이러한 식의 거친 '상식의 개입'은 불가피하기도 하다.



사실은, 모든 종류의 세상살아가는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최근의 소설이 전부다 일인칭의

자기분석적 서술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지만,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판에 구태여 타인의

시각을 전지적으로 개재시킬 필요도, 능력도 없다는 포스트모던한 자각에서 비롯한 걸 거라고 생각한다. 상황을

해석하고 감정을 헤아리는데 있어서의 기능인. 자신의 감정에 투영시켜 상대를 보고, 자신과 같은 상대의 감정을

기대하는. 내가 갖는 느낌은 기껏해야 내 신체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 그나마 운전을 할 때라거나 검도를 할 때. 내 존재가 차의 보디를 따라 연장/확장되는 느낌이 들면서, 바퀴가

돌을 밟으면 내 다리에 밟힌 것처럼, 엔진이 쿨럭이면 내 심장이 잠시 버거운 것처럼 감각한다. 검을 따라 내 팔이
늘어난 것 같은 감각 역시. 그치만 이것들은 도구화된 무생물일 뿐이다...



촛농처럼 땀을 흘리면서 징징대는 게 아닐까 생각하다가도 무한도전보며 웃다가 자빠질 뻔 하기도 하는 녀석이

무슨 감정을 품고 살고 있는지조차 스스로 알기 힘든 판이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상, 그리고 사람들은 그저

상식대로, 혹은 내가 바라는 '상식'대로 굴러간다고 믿는 게..편하다. 자기편의적인 효용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해만 안 주면야, 내 편한대로 '상식'을 초혼하는 것도 괜찮을 법하다.



후희(post-play), 혹은 금단 현상(withdrawal syndrome).

감정이 달리는데 있어서 전희(fore-play)라는 게 갖는 비중만큼이나 후희라는 것도 중요하다면..오케이.

여전히 남은 온기와 따뜻함의 여운을 쓰디쓰게 되씹는게 충실한 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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