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사에서 독촉 문자가 오는 통에 어제 학교에 갔었다. 과사에 가서 졸업장을 받고, 향후 진로가 어떻게 되는지

묻는 지루하게 긴 설문 조사를 받은 후에야 사회대를 벗어날 수 있었다.


가방에 넣은 졸업장이 나를 툭툭 쳐대면서 학교에서 멀어지자고 떼쓰는 듯했지만, 할 일이 조금 남아 있었다.


어떻게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지 친구녀석하고 얘기 좀 해보려 했고, 게다가 본부에 가서 영문, 국문으로

성적증명서랑 졸업증명서도 떼어 두고 싶었다. 혹시 어디에 급히 쓰일지 모르니까. 워낙에 먼 학교라 언제

또 올지 모르니까.


학교에 몇 년째 다녔는데도 어제서야 겨우 또 하나 알게 된 게 있다. 학관 식당에서-아마 다른 곳에서도?-

2500원짜리 밥먹는데 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단 사실. 날 번번이 헷갈리게 하는 셔틀줄은 여전히 익숙하지 못한

채였고, '서울대입구'라는 역의 이름이 주는 묘한 기분은 여전히 무뎌지지 않은 채였다. 끝내 익숙해지지 못한 채

졸업하는구나. 심지어 집에 갈 때는 지하철을 거꾸로 타기까지.


집에 와서 밤이 되서야 실감이 났다. 더이상 대학생이 아니란 사실, 대학생활(이라 불리는 것들)이 공식적으로

쫑났단 사실, 그리고 이제 정말 어디에도 적을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 어쩌면 졸업식날 무리를 해서라도 가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잠깐 했다. 이런저런 감정을 나누지도 못한 채 혼자 뒷북치고 있는 상황도 별로

맘에 안 들었고, 누군가에게든 새삼스레 수고했다는, 혹은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고 있는-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까지야 바라지 않더라도-내 속내가 살짝 집요해지려 꿈틀댄 것도 별로 맘에 안 들었기 때문.


자축하며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감정이 확 들끓어오를 거 같아서 억지로 잠을 청하길 잘 했다 싶다.


오늘은, 괜찮다. '노다메 칸타빌레'도 무지 몰입하며 전부 봐버렸고, 우에노 쥬리-혹은 그녀가 연기했던

노다메짱-이 좋아져버렸고, 왼발의 근육통이 괜찮아져서 다시 뛰기 시작했으며, 이제부터는 영어 에세이를

써야 한다...는 건 별로 안 좋지만 어쨌거나.


2007년 8월. 혹은 9월 11일. 졸업. 축.졸.업.

+ Recent posts